〈팽목항으로 부치는 편지〉세월호 도보 순례의 이름은 진실입니다
은화 어머님께
지금은 해 뜨기 전 다섯 시입니다. 여기는 서울의 높은 건물 10층에 있는 병상이에요. 아래를 보니 차가 움직이는 게 한둘 보이는군요. 이 새벽에 저들은 어디를 가는 걸까요. 어제 만난 초등학교 때 친구는 하루 종일 고았다면서 생강탕을 가지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초등학교 친구라는 게 그렇습니다. 아프다고 말한 적 없는데, 일 년에 한두 번 연락할 뿐인데도 이상하게 아플 때마다 제일 먼저 연락이 닿아요. 먼저 알고 제게 연락을 해옵니다. 잘 지내니? 이 한 마디면 그간의 시간들이 잘과 지내니 사이 행간에서 발음되지도 않은 채로 묻어나오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또 가슴이 저립니다. 잘 지내니라고 물을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숨과 숨이 교차해야 알 수 있는 행간조차 잃어버린 사람들은 아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한 줄을 쓰고 다시 눕고 한 줄을 다시 쓰기 위해 일어납니다. 조금 지나면 새벽이 오는 게 보이겠네요. 지난달 한국작가회의 작가들과 팽목항에 내려갔을 때, 그곳은 바다와 하늘의 경계 따위는 보이지 않더군요. 어둠이 섞여 검푸른 짙음을 만들며 몸을 섞는데 먼 데서 소리가 들렸어요. 진도의 닭 울음소리를 들어보신 적 있나요? 여러 번 듣고, 믿기질 않아서 숙소에 있는 작가들에게도 물었어요.
“저 닭 울음소리 들리세요?”
작가들은 귀를 모았습니다. 세상에, 진도의 닭은 이렇게 우는 거예요.
“호철아!”
한 번이 아니면 두 번, 두 번이 아니면 세 번, 새벽이 깰 때까지 바다와 하늘이 뒤섞인 그곳을 향해 외치고 있었어요. 그러자 바다를 품은 하늘과 하늘을 품은 바다가 열리며 기적처럼 해가 나오더군요. 새벽이 열리는 거였어요. 그렇게 진도의 하루는 남의 이름을 부르며 시작되더군요. 새들은 자기 이름을 부르며 운다고 하던데, 아니었어요. 진도의 닭은 남의 이름을 부르며 새벽을 깨우고 있었습니다.
저도 병상에서 닭처럼 울어봅니다.
“은화야! 은화야! 은화야! 은화야!”
은화는 우리에게 하루를 줍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주는 이름이 된 거지요. 우리는 세월호 참사 이후 4월 16일이라는 하루를 잃어버렸어요. 대한민국의 한 해 달력에는 하루가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365일이 아니라 364일을 살아야 해요. 416 이후라는 게 있다면요, 그 이후 4월은 15일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금요일에는 돌아와야 하는 봄소풍 간 아이들이 5월에는 오겠지 했습니다. 5월에 못 온 아이들이 6월에는 올 줄 알았어요. 6월에도 못 온 아이들이 더운 여름에는 올 줄 알았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는데 아이들은 오지 않았어요. 길가에 은행잎은 왜 그렇게 노랗던가요. 노랗게 떨어진 은행잎 하나하나가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이름 같아 길에 서서 한참을 운 적도 있습니다. 이것은 폭력입니다. 건질 수 있는 아이들을 물 속에 남겨둔 학살이에요. 우리는 그 학살을 눈 뜨고 지켜본 가담자였어요. 그 죄가 너무 깊어 움츠리고 있었습니다. 발음할 수가 없었어요. 우리가 본 것들이 믿기지 않아 한참을 우회했습니다. 나와 너를 가르고 일반 희생자들과 단원고 희생자들을 가르고 유가족들과 실종자들을 가르는 동안 300일이 지났습니다.
팽목항에 붙어 있는 호소문이 떠오릅니다. 가족식당 문에는 ‘제발 우리 은화를 찾아주세요’라는 호소문이 걸려 있었어요. 호소문은 ‘은화를 하늘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 성빈이의 엄마’가 쓴 것이었어요. 세상에 이렇게 슬픈 연대가 있을까요? 하늘에서 기다리고 있는 딸에게 친구 은화를 찾아주고 싶다는 성빈이 어머님의 호소문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 적어야 하나요. 매일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수다를 떨며 학교에 갔다는 승희가 바다에서 나온 후 “은화도 빨리 데리고 갈게”라고 했다던 승희 어머님의 약속을 우리는 또 무어라 기록해야 한단 말입니까.
팽목 분향소에서 416 이후 지금까지 팽목항을 지키고 있는 윤희 삼촌 김성훈 씨로부터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지금 아버님들은 알코올 중독 증상이 심해 거의 대부분 손을 떨고 있다고요. 어떤 분들은 전재산을 털어서 돈을 물처럼 쓰고 있다고요. 빨리 돈을 쓰고 돈을 다 쓰는 날 이 생을 마치시겠다 한다고요. 아버님들이 술을 마시지 않을 때는 스마트폰을 잡고 있는데, 아이들 사진을 보거나 아니면 게임에 빠져 계시다고, 게임이라도 집중해야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요. 팽목항은 평소에는 평온해 보이지만 밤만 되면 화장실 뒤켠에서, 등대 앞에서 오열이 터져나온다고요. 어머님 중에는 장운동이 멈춘 분도 계시다고요. 들어가는 게 있는데 나오는 게 없다고, 병원에서 어떤 진단도 내리질 못한다고요. 비가 오는 밤이면 사지가 마비되고 숨을 못 쉬는 어머님도 계시다고요. 이 모든 증세가 416의 연장이라고요. 윤희 삼촌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의 삼촌으로 불러달라는 김성훈 씨는 아직도 포르말린 냄새와 통곡소리를 잊지 못하겠다고, 그런데 지금은 그 냄새와 통곡소리조차 들리지 않아서 오히려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하셨어요. 지금 팽목은 통곡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슬픔만 가득한 곳이라고 하셨습니다. 분향소를 나오려는데 실종자의 가족인 아버님 한 분이 제게 리본을 한 움큼 내밀었습니다. 저는 참았던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어요. 리본을 든 아버님은 멍한 눈빛으로 손을 심하게 떨고 계셨어요. 슬픔이 뒤흔들고 있는 명징한 몸 앞에서 우리는 슬픔보다 더 큰 슬픔을 만나고 있습니다. 등대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며 얼마나 많은 슬픔이 슬픔 위에 얹어져야 진실이 그 모습을 드러낼지, 저 무너질 대로 무너진 떨리는 손들을 어떻게 부여잡아야 할지 몰라 바다만 바라보았어요. 남현철님 박영인님 조은화님 허다윤님 이영숙님 고창석님 양승진님 권재근님 권혁규님. 바다를 향해 실종자들의 이름만으로 쓰여진 정우영 시인의 「팽목항」을 쏟아내야 했습니다.
지금은 하루의 절반이 지난 낮 세 시예요. 안산에서 팽목항으로 향한 걸음이 광주를 지나고 있다고 하네요. 봄은 어느새 눈이 되어 옵니다. 아이들이 계절을 짊어지고 옵니다. 잃어버린 아이들이 바람을 타고 사방에서 몰아칩니다. 눈이 오는데 왜 눈물이 나나요. 아이들은 안 온 것이 아닙니다. 못 온 거였어요. 올 수 없도록 바다를 가두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를 죄인으로 만들어버린 국가를 인정할 수가 없어요. 2014년 4월 15일 승객 447명과 승무원 29명, 총 476명을 태우고 인천항을 출발한 세월호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려 했던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5명과 교사 15명 중 생환자는 학생이 75명, 교사는 단 3명뿐입니다. 돌아오지 못한 것은 304명의 생명만이 아닙니다. 출항에서 침몰까지 14시간의 진실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304명의 샛노란 이파리들이 눈송이로 날리며 증언하고 있어요. 이것은 폭력입니다. 학살이에요. 우리가 붙잡아야 할 단 하나의 무기는 진실입니다. 바다를 엎어서라도 밝혀내야 하는 것은 우리를 이 무구한 슬픔 앞에 가슴을 치게 만든 세월호가 아닙니다. 진실을 바다로 덮어버린 국가의 폭력이며, 그 폭력을 누가 왜 덮으려고 하는지 밝히지 않는 언론이며, 언론의 밑바닥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본의 협잡입니다. 그들이 모르는 것을 알려주려고 눈이 옵니다. 아무리 덮어도 덮을 수 없는 물결이 되어, 이 폭력의 한가운데, 맹골수도 밑바닥을 향해 걷고 있는 순례길에도 눈이 오겠지요. 그들의 가슴에는 이런 글자가 적혀 있습니다. ‘진실 규명’ 순례의 이름은 진실입니다. 진실만이 바다가 되어버린 이름들을 뭍으로 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에요. 슬픔이 너무 깊어 몸 속에 슬픔의 지도를 새기고 있는 그 길에 다음 구호를 외치며 우리 작가들도 함께 하겠습니다.
“실종자 9명이 세상의 중심입니다. 실종자는 찾아내고 세월호는 인양하라.”
2015년 2월 9일
하명희 드림
http://www.pressian.com/news/scrap_proc.php?mode=insert&no=123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