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몽골 민간 신화, 체렌소드놈 지음, 이평래 옮김(대원사, 2001)

몽골 신화는 역시 이야기가 구성지다. 예를 들어 천둥이 치게 된 사연은 큰 물 가운데 물고기 두 마리가 서로 상대방의 꼬리를 물고 둥근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 모래와 흙이 쌓여 숨베르산(수미산須彌山)이 되고 물고기 몸은 4대륙이 되었으며 숨베르산 꼭대기에 큰 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천신인 텡그리들이 그곳에서 열매를 딸 때마다 천둥이 친다는 식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빙빙 도는 이야기 방식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손이 재빠른 도둑(도둑놈은 이후 장인匠人, 다른 말로 예술인을 뜻하는 '다르항'의 시조가 된다)을 설명할 때는 "까마귀 깃털을 까치 깃털과 바꾸고 까치 깃털을 까마귀 깃털과 바꾸는 사람"이라고 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모티프도 있다. 아들이 하나밖에 없는 대왕이 아이가 못생긴 것을 숨기기 위해 아이들을 유모로 삼았는데 아들이 너무 못생겨서 다들 하루를 못 버텼다. 그러던 중 한 소녀만은 유독 오려 견뎠는데 아들은 소문이 두려워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꼭 타르바가(몽골 지역에 서식하는 설치류) 굴에 가서 외치라고 명했다. 하루는 소녀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타르바가 굴에 가서 "대왕의 아들은 아주 못생겼다. 소처럼 뿔이 있고 돼지처럼 이빨이 있다"고 외친다. 소문은 삽시간에 번져 대노한 대왕이 소문의 진원을 파악한즉 범인은 타르바가로 찍혔다. 대왕은 타르바가를 잡아다가 발가락을 하나 잘라서 타르바가는 발가락이 네 개가 되었다. 우리와 비슷한 유형의 이러한 이야기가 많은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나그네 옷 벗기기 내기>,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등등 수두룩하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우리의 당산목과 같은 신목神木과 그들의 나무의식이다. 해와 달이 생기기 전, 사람들이 빛을 모르던 시절에는 사람마다 자기의 나무가 있어 태가 연결되어 있었으며 자신의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를 따먹고 살았다는 테마는 다른 설화에서는 보지 못한 부분이다. 물론 라틴아메리카의 '나무인간'이나 이집트의 오시리스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 나무(관목인 에리카, 히스나무라고도 하고 기둥으로 쓰였으므로 참나무라고도 하고) 속으로 들어간 이야기 등은 있지만 이는 이미 다른 인간들이 있거나 부활하는 경우이다. 사람의 기원에 대한 이 이야기를 번역자의 앞서 책의 주석에서 보고 메모해놓았었는데 이 책에 나와 있는 것이었다.

 

저 위의 하늘이 남자 열여덟 명, 여자 여덟 명을 주고, 이 땅에 인간의 씨앗을 퍼뜨리라고 하였다. 처음에 사람들은 남녀 관계를 모르고 지내다가 나중에야 성을 알게 되었다. 그 뒤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들은 "무슨 일이냐"고 하면서 몹시 두려워하였다. 그 무렵 세상은 해도 없고 별도 없는 완전한 암흑이었다. 사람들은 아이를 낳으면 무서워하며 즉시 내다버렸다. 이렇게 버려진 아이들 어머니의 태반에서 나무가 자라나 꽃이 피고 그 나무에 과일이 열려 익으면, 아이들은 그 과일을 따먹고 연명하였다. 과일나무와 아이들의 배꼽은 연결되어 있다가 아이들이 자라면, 나무와 아이는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그때는 사람마다 과일나무가 있었기 때문에 오직 자기의 과일만 먹고 살았다. 다른 사람의 과일은 따먹지 않았다. 또한 세상이 완전히 캄캄했기 때문에 사람마다 빛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한 사람이 있는 곳에 반드시 하나의 빛이 있었다. 망가스(괴물)는 그 빛을 보고 사람이 있는 것을 알고 거기로 가서 사람을 잡아먹었다. 한동안 암흑이었던 세상에 어느 날, 샥자모니(석가모니)가 어디선가 해를 가져다가 매달아주었다. 처음에 그 해를 망가스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놀라서 허겁지겁 구멍을 파고 들어가 숨었다. 망가스는 사람이 어떤 동물인가 잘 알지만, 사람은 망가스가 어떤 동물인지 잘 몰랐다. 망가스를 알아본 순간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또한 밤에 불빛을 가지고 있으라고 별들을 가져다주었는데, 사람들은 작은 망가스가 왔다고 생각하고 더 큰 굴을 파고 숨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사람들은 해와 달과 별에 익숙해져 이들이 망가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두려움에서 벗어나 굴속에서 나왔다. 그 후로 사람들의 몸에 있던 빛도 없어졌다.

 

인간의 기원과 더불어 민담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나다. 천연두가 만연해서 다 죽어가던 아이의 영혼이 지하세계의 에를렉 칸(염라대왕) 앞에 도착했다. 에를렉 칸은 왜 죽지도 않았는데 이곳에 왔느냐고 묻는다. 소년은 자신은 버려진 아이로 이미 몸이 쇠했으니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답한다. 소년의 영혼이 마음에 든 칸은 그를 지상으로 돌려보내며 갖고 싶은 것을 말하라고 한다. 소년은 사랑과 재산, 부모와 형제를 선택할 수도 있었으나 '민담'을 갖겠다고 답한다. 지상으로 돌아온 소년은 그가 지하에 있는 동안 이미 까마귀가 자신의 두 눈을 다 파낸 뒤라 앞을 못 보게 된다. 고아인 장님 소년은 세상을 떠돌며 민담을 전해주는 사람이 되었다 한다. 이 부분에서는 울컥 오고트멜리가 떠올랐다. 그도 이야기의 전달자라는 역할을 맡기 위해 장님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또 담배의 기원을 외로움과 평안에서 찾는 그들의 이야기는 잔잔하다. 사이 좋은 노부부가 있었는데 아내가 먼저 죽자 남편은 "한 살배기 망아지가 딸린 암말이 떠내려갈 정도로, 두 살배기 망아지가 딸린 암말이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고 난 후 아내의 무덤에 찾아갔다. 남편은 무덤에 핀 잎이 큰 풀을 보고 따가지고 와서 아내를 생각하며 외롭게 앉아 냄새를 맡다가 잎을 피워보니 마음이 평안해지는 듯하여 계속 피우게 되었다는 줄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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