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체르노빌의 목소리(새잎, 2008/2011)

예전에 원전에 반대하는 어느 책에서 '체르노빌레츠'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임산부들이 늘어났다는 것이었는데, 그 이유가 자신의 몸에 남은 방사선 찌꺼기들을 태아에게 주고 임신 7개월쯤에 중절 수술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제 인간의 생명은 나를 위해 태아를 희생시켜야 하는 지경에 도달했구나, 철학은 죽었다고 선언해야겠다고 느꼈다.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떨어지는 걸 보며 인류는 종으로 전락했다고 탄식하던 화학자의 선언이 떠올랐다. 체르노빌에 관한 책들은 꽤 찾아 읽었지만, 이 책만큼 확실하게 세계관을 흔들어놓은 책은 없었다. 세계는 다같이 죽어가는 현장이 되어버렸다는 인식, 새가 찾아오고 꽃이 피고 하는 자연의 흐름은 단절되었다는 비탄, 이제 멈추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세계인식. 그러나 20113.11이 곧 5주년이 된다. 안전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삶이 사라졌다는 절박함이 도착한다. 우리는 모두 핵에 볼모로 잡힌 세계인이다. 이 책을 보며 녹색당에 가입하고 싶어졌다. 소비에트연방공화국에 균열을 낸 것은 분명 체르노빌에서 시작된 것임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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