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조지 오웰, 위건부두로 가는 길(한겨레출판, 1937/2010)

아직까지 내게 르포르타주의 전형으로 박혀 있는 책은 이 책이다. 그래봤자 읽은 지 10년밖에 안 됐으니까 대략 르포를 관심있게 보게 된 기간쯤 된다. 이 책에서 내가 얻은 것은 잉글랜드 북부 탄광 노동자들의 밑바닥 삶이 아니었다. 광부들의 처참한 생활모습이 아니었다. 외려 이 책에서 내가 배운 것은 그것을 대하는 작가의 냉정한 시선이었다. 일부러 냉정함을 가장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조지 오웰은 감정이입을 배제하고 있다. 일부러 애쓴 것 같지는 않다. 그는 평생 이러한 시선을 유지했고, 그렇게 소설을 쓴 작가이다. 아마 이것은 그가 사회의 이면이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는가, 사회주의 이상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실현을 염두에 둔 글쓰기에 집중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그의 이상은 그 너머를 상상하는 것, 사회주의 이후를 설계하는 것에 꽂혔던 것 같다. 평생 이런 냉정한 시선을 유지했고 말년에는 '오웰리스트'라고 해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회주의자들의 명단을 정부에 넘긴 이력이 있는 이 사람은 어떤 세상을 꿈꿨을까. 그가 꿈꾼 세상이 밝지 않은 것은 그의 작품에도 그대로 드러나지만, 그것이 현실의 반영이어서 지금도 그의 책을 읽게 만든다. 디스토피아가 매력적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것은 그의 객관적 거리두기와도 맞닿아 있는 글쓰기 방법이다. 감정은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고 냉정한 관찰과 세세한 목록을 작성하고 그러고도 얼마든지 흘러들어간다. 그러니 굳이 글을 쓰는데 감정 혹은 당위성을 앞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웰은 노동자 계급의 밑바닥 생활을 객관적인 자료들로, 2개월간의 취재로, 그가 직접 본 것들로 세세하게 채운 후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에 따라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우리 시대가 살기에 완전히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음을 나에게 일깨워주는 것은 근대 기술의 승리도, 라디오도, 영화도, 매년 5천 종씩 출간되는 소설도, 애스컷 경마장의 인파도, 명문교 이튼과 해로의 크리켓 라이벌전도 아니다. 그것은 참으로 묘하게도 내 기억에 남은 노동 계급 가정의 거실 풍경이며, 그중에서도 아직 영국의 번영기이던 전쟁 이전의 내 어린 시절에 이따금 보았던 정경들이다."

160쪽이면 대략 원고지 500매 정도의 보고서가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 르포르타주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유는 뭔가. 책 한 권 분량의 보고서들이 현실에 접근한다는 이유만으로 감정적 호소를 이끌어내고 그러면서도 그것이 쉽게 휘발되는 이유를 짚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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