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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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삼미 슈퍼스타즈였고, 모든 사람들은 ‘프로’였다.

나 역시 ‘프로’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고, 5년의 세월이 흐르고, 깨달았다.

‘치기 어려운 공은 치지 않고, 받기 어려운 공은 받지 않는다’는 단순한 진리를.

내가 늘 마음 속에 그리던 삶이 바로 ‘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와 똑같았다는 것을.

나는 결코 ‘프로’가 될 수 없고, 되려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 ‘프로’의 강박에서 벗어나렵니다.

모두들 행복한 ‘프로’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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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쓸 때는 회사에 다닐 때였고, 조금 우울한 상황이었습니다.

경쟁, 비교, 실적 등 모든 직장인들이 떠안고 있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많이 들던 때여서 이 책의 내용에 공감하게 되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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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 엥겔스 평전
하인리히 겜코브 지음, 김대웅 옮김 / 시아출판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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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평전을 읽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 시간 정도씩 읽으면서 너무나 좋았던 책입니다. 다 읽기가 아까운 그런 책 있죠?

잘 쓴 평전은 한 사람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특히, 무수히 많은 오해와 왜곡으로 칠갑된 인물일 경우, 올바른 평전은 한 인물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기도 합니다.

근현대사의 세계적 인물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그의 반대자들마져 동의한-인물이라면 당연히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입니다.

사실 칼 맑스는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한, 또한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와 물질적, 물리적 토대가 사라지고 나서도 여전히 역사적 의미를 잃지 않을 유일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인류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꿨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처럼 인류의 근본을 뒤흔든 역사, 경제, 철학 이론을 제시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봉건제 사회에서 자본제 사회로 이행할 때, 자본가-부르주아-의 역할에 대해 방향을 제시했고, 부르주아의 역사적 사명에 대해 높이 평가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공산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노동자 계급)의 역할과 사명, 의무에 대해 강력한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자본가와 자본가가 구성한 의회, 언론, 국가 권력은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노동자 계급의 성장에 대해 이데올로기를 동원하고 물리력을 강제한 탄압으로 체제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2백년이 넘는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노동자 계급의 성장은 본질적인 면에서 처음이나 현재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동 시간, 복지, 문화, 생활 수준, 건강 상태, 위생 상태 등이 상대적으로 좋아진 것은 그만큼 물질의 생산력이 증대했고 노동자 계급이 투쟁을 한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조금이라도 노동자 계급이 멈칫거리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 자본가(와 그의 국가)는 즉각 반격에 나서 노동 조건을 퇴보시키고 노동 시간을 늘리며 임금을 삭감하고 고용을 불안정하게 만듭니다.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쓴 ‘자본’은 자본주의의 본질을 해부한 완벽한 이론서입니다. 어떤 자본주의의 경제학자도 두 사람이 쓴 ‘자본‘의 분석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오늘날에도 가장 위대한 저작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자본’을 포함한 두 사람의 저작은 자본주의의 본질을 꿰뚫고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를 이끌고 나갈 새로운 주인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역사가 발전한다고 했을 때, 원시 공산제, 노예제, 봉건제를 거쳐 자본주의 사회가 되었다면,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가 올 것이며 그 세계는 더 이상 착취와 억압이 없는 평등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두 사람은 믿었습니다.

바로 그 평등과 자유의 세상을 만드는 주인공이 노동자 계급이라는 것입니다. 너무도 자명한 논리 앞에 많은 사람들은 의심하기도 하고 열광하기도 했지만, 두 사람은 인류의 미래를 과학적으로 예견했습니다.

이 책은 19세가 유럽의 정세를 비교적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1848년 독일 혁명부터 1876년 프랑스 혁명, 유럽 노동의 역사인 제1인터내셔널, 제2인터내셔널의 탄생에 관해 맑스와 엥겔스의 역할이 어느 정도였는지, 당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노동자 계급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맑스와 엥겔스의 우정입니다. 두 사람은 진정으로 ‘친구란 두 개의 육체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라는 말처럼 마치 한 사람인양 생각하고 행동했습니다.

맑스가 이룩한 모든 위업은 또한 엥겔스가 이룩한 것이며,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없었다면 이 모든 업적은 결코 나올 수 없는, 불가사의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맑스와 엥겔스에 대해 일부분만 알고 있던 저에게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정보와 균형잡힌 시각으로 맑스와 엥겔스의 삶을 볼 수 있게 했고, 그래서 더욱 두 사람을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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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단편전집) 카프카 전집 1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주동 옮김 / 솔출판사 / 199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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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카프카 작품집을 다시 읽었습니다.

카프카를 처음 만난 것은 어릴 때였는데, 그때 읽었던 ‘변신’과 엊그제 읽은 ‘변신’은 느낌이 많이 달랐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기억으로는 주인공이 어느날 아침 갑자기 벌레로 변했고, 그러다가 죽는다 정도였다면, 이번에 읽으면서는 정말 슬픈 느낌이었습니다.

카프카는 보통 난해한 소설을 쓴 작가로 알려져 있고, 어느 정도 타당한 내용입니다.

그가 쓴 글들 대부분은 고도의 상징과 은유를 내포했지만, 실제 표현하는 방식은 매우 사실적이고 구체적이어서 현실과 환상을 구분할 수 없게 합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변신’만큼은 ‘사실적 환상’보다는 ‘상징과 은유’라는 면이 더 도드라지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의 삶은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모품으로 전락한, 인간이란 ‘벌레’와 같은 미물이라는 존재를 강렬하게 일깨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특히, 가족과의 관계에서 가족과 개인, 가족의 근본적인 의문을 이 작품은 드러내고 있다고 봅니다.

가족에게서도 소외된 주인공은 결국 자신을 ‘벌레’로 만들어버리고 맙니다.

주인공이 ‘벌레’로 변신한 이유는 중층적이어서 자본주의 사회, 자본주의적 가족 관계에 동시에 걸려 있고 그런 체제와 제도, 관계 속에서 소외당하는 ‘인간’, 자연인으로의 인간의 좌절을 그린 작품이라고 봅니다.

카프카의 ‘변신’이 오늘날, 우리나라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한 것은 우리 사회가 카프카가 살았던 그때와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회의 구조가 억압적일수록 사회와 개인, 가족과 개인의 관계가 비인간적으로 변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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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세계 - 대학교양총서 18, 개정판 대학교양총서 18
박세희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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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수학이 세계를 지배한다]를 다 읽었습니다.

이 책은, 한 과학자이자 철학자가 세계의 수학자를 찾아다니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수학은 발견되는 것인가, 발명하는 것인가?’

가상의 수학자들은 각기 자신의 분야에서 수학의 본질에 관해 설명합니다.

수학은 인간의 ‘정신’에 의해 ‘발견’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지만, 역시 많은 부분에서 의문이 남습니다.

인간의 삶은 무수한 수학적 원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실제 수학적 응용이 적용되지 않고는

문명의 발달이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뿌리는 ‘피타고라스’로 이어진다고 필자는 믿고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 바빌로니아, 그리스, 메소포타미아, 양자강 문명이 인류의 시작이었다고 하더라도

수학이 특별히 그쪽에서-서양-만 발달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동양과 아프리카는 정말 ‘미개’했기 때문인지, 문화나 과학의 수준이 낮아서 그랬던 것인지…

어느 곳보다 수준 높은 정신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동양에서

과학 문명에 대한 영향력이 이렇게 낮은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온통 의문투성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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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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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현대작가 위화가  쓴 [허삼관 매혈기]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작가의 말대로, 허삼관은 중국 인민을 상징하는, 보통 중국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현대사 속에서 중국 인민들이 살아가는 삶 자체가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고, 비극적이면서 한편으로는 웃기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느껴지는데, 이걸 ‘비애와 연민’의 감정이라고 평론가는 말하는군요.

중국 인민의 삶이지만, 크게 보면 인간의 삶이 ‘비애와 연민’의 삶이 아닐지…

허삼관의 낙천적이고 넓은 마음이 중국을 있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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