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메탈을 듣는 방법
김혜정 지음 / 델피노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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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
[헤비메탈을 듣는 방법] - 김혜정 작가
 
장 그르니에의 말처럼,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섬이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떠 있는 섬이며, 그 섬들을 오가는 건 우리의 ‘육체’가 아니라 ‘마음’이고 ‘정서’다. 일렁이는 물결처럼, 섬에 부딪치는 파도처럼, 우리의 마음과 정서는 다른 사람, 다른 섬에 부딪치며 전달된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거칠게.
김혜정의 이 소설은 짧은 이야기 아홉 개가 마치 저마다 하나의 독립한 섬처럼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마지막 장을 읽다보면, 서로 다른 이야기와 개별로 등장했던 인물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연작 장편 소설이다.
아홉 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우리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 가운데 약간의 재능을 가진 사람, 약간의 육체적 불편함이 있는 사람이 있지만, 그런 부분적 모습으로 구분할 만큼 우리들은 특별하지 않다.
오히려 그런 부분적이고 사소한 면들을 감싸고, 아우르며, 서로의 공감대를 만드는 게 이 소설에서 마치 바다처럼 사람들의 감정을 전달하는 ‘음악’이다. ‘음악’은 사람들 사이를 연결하고, 감정과 정서를 전달하며, 저마다의 삶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음반 가게를 운영하는 화자는 평범한 중년 남성이다. 그는 다른 재주가 없고 음악을 많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음반 가게를 열고, 생업으로 살아간다. 어느 날, 두 젊은 여성이 가게에 들어와서 ‘굿바이 제리’라는 밴드의 라이브 음반을 찾는다.
음반을 찾는 여성이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음악을 들을까 생각하다, 귀를 막고 음악을 크게 틀면 진동으로 음악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뒤로 가면서 다른 단편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과 관계가 하나씩 드러나는 방식으로, 작가는 독자가 궁금해서 계속 읽게 만드는 기법을 쓰고 있다. 청각장애가 있는 수연은 음반 가게에 함께 온 지우와 친구이고, 수연은 하진을 만나 연인이 되었다가 헤어지지만, 음반 가게 사장의 후일담에서 두 사람이 다시 결합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방식으로 만났던 사람들의 뒷 이야기까지 촘촘하게 이야기의 그물로 엮었다.
 
작가는 음악과 청각장애라는 두 가지 장치를 통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 음악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방식과 헤비메탈이라는 음악 장르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말한다. 두 가지는 비슷하면서 다른데,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수연과 글렌 크레이그라는 헤비메탈 음악을 하는 미국인 그리고 한 쪽 눈만 오드아이인 고양이가 등장한다.
수연은 여섯 살 무렵 열병을 심하게 앓고 나서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고, 글렌 크레이그는 천재 음악가로 알려졌으나 교통사고 이후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고양이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 선천성 장애인데, 헤비메탈 밴드에서 활동했던 글렌 크레이그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작곡을 한다. 마치 베토벤이 말년에 청각을 잃어버린 뒤에도 작곡을 했던 것처럼.
여기서 작가는 헤비메탈 밴드 ‘굿바이 제리’에 관해 자세한 묘사를 하는데, 독자는 이 그룹이 마치 실재 있는 듯한 착각을 하도록 만든다. 당연히 ‘굿바이 제리’라는 헤비메탈 그룹은 작가가 만든 가상 그룹이다.
 
작가 자신이 지체장애가 있으니, 그의 작품 소재에 장애가 있는 사람, 동물이 등장하는 건 자연스럽다. 그리고 작가의 (마음의)눈은 사회적 약자들의 삶에 더욱 세심하고, 섬세하다. 비장애인이 무심하게 살아가는 하루가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는 특별한 하루이며, 날마다 새로운 체험으로 본다. 아니, 장애가 있고 없고가 아니라, 삶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감성과 정서의 파도를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이라면, 하루하루가 늘 새로운 날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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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양장)
쑤퉁 지음, 김은신 옮김 / 아고라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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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 쑤퉁

현대 중국문학 작가들 가운데 모옌, 옌롄커, 다이호우잉, 위화의 작품은 그나마 읽었는데, 쑤퉁의 작품은 이번에 처음 읽었다. 쑤퉁의 작품은 소설보다 영화로 먼저 만났다. 그때는 몰랐는데, 장이모우 감독의 '홍등'이 쑤퉁의 소설 '처첩성군'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앞에 언급한 중국 작가들의 작품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작품 속 인물들이 거의 모두 자기 욕망에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 작품에서는 보기 어려운, 매우 보기 드문 현상인데, 이렇게 개인이 자기 욕망을 한껏 발산하게 되는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있을 것이고, 특히 '현대 중국 문학'의 특징으로 드러나는 배경을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중국은 '산업화'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봉건시대에서 곧바로 '공산주의' 체제로 진입한 매우 독특한 역사를 가졌다. 러시아가 '쏘련(쏘비에트 연방공화국)'이 될 때도 유럽에 비해 산업화, 공업화가 매우 뒤쳐진 상태였으나, 그래도 제정 러시아는 중국보다는 훨씬 산업화가 진전되고 있었다.
러시아는 레닌과 볼셰비키가 이끄는 혁명 전략을 따라 '혁명적 노동계급'의 조직적 투쟁으로 봉건 왕정과 부르주아 의회 권력을 쫓아내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수립했다. 결과로만 보면 '러시아 혁명'은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실천이었으나 실패했다. 그것도 레닌이 권력을 잡았던 불과 몇 년을 제외하고, 레닌이 사망한 이후, 스탈린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러시아 혁명'은 철저하게 배신당하고, 봉건 왕정과 형식만 다를 뿐, 독재자와 독재 체제를 오래 유지했다.
중국 역시 이와 매우 비슷한 길을 걷는다. 더 나빴던 점은, 중국은 아예 '산업화' 단계를 거치지 조차 못한 상태로 모택동이 이끄는 중국공산당이 장개석 군벌을 대만으로 내쫓고 '프롤레타리아 독재' 권력 체제를 수립했다. 19세기 공산주의자들은 지금과 달리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세상을 꿈 꿨던 사람들이다. 그때는 자본주의와 봉건주의에 맞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성공하는 것이 역사의 당위였으며, 억압과 착취로 신음하는 민중을 해방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겼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명제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도 비켜갈 수 없다.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과 '1984'를 통해 권력 그것도 새롭게 등장한 권력이 구시대(봉건 왕정, 자본주의)의 권력보다 더 나을 게 없는 건 물론, 오히려 더 악랄하게 인민을 착취하고 억압한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다.
'쏘련' 당시, 스탈린 독재가 한창일 때, 혁명의 선두에 섰던 뛰어난 노동자, 혁명가들이 '반동'이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참혹하게 고문을 당한 채 살해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많았다. 이건 북한에서 김일성이 '한국전쟁'에서 실패한 이후 전쟁의 책임을 '남로당'에 떠넘기면서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 공산주의자들 대부분을 '미제 간첩'이라는 누명으로 살해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중국 역시 모택동 체제가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던 1970년대, '문화대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모택동 체제에 반대하거나, 반대할 기미가 보이는 혁명가, 지식인, 노동자들을 '반동', '수정주의자'라는 이름으로 낙인을 찍어 거리에서 집단 린치로 살해하거나, 오지로 보내 중노동을 시키거나, 사회적으로 매장을 시키는 방식으로 독재 체제를 강화했다.
중국 현대 문학은 여전히 '문화대혁명'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노벨문학상을 받은 모옌이나 강력한 후보인 옌롄커 같은 작가들 작품이 중국 당국의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다. 이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도 중국 내에서 작품 발표가 금지되고, 금서 목록에 올라 작품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쑤퉁의 작품 '쌀'은 이런 중국의 현실을 배경으로 나온 작품이다. 중국공산당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이후의 '중국'은 '왕조'에서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로 진입하고, 체제를 비판하는 창작 활동은 철저하게 금지된다. 쑤퉁의 작품 속 시대가 1920년대에서 1940년대인가를 이해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중국 문학의 거목, 루쉰의 소설에서도 시대 배경은 대부분 혁명 이전이다. 봉건제 시기의 중국은 철저한 신분제와 계급의 착취가 극심했고, 외세의 침탈에 무능한 지배 계급, 폭정과 가난으로 찌든 인민들의 분노가 밑바닥에서 들끓기 시작하던 시대였다.
'쌀'에서 주인공 '우룽'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이행하는 중국의 농촌에서 태어난다. 그는 쌀농사로 유명한 지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고향에서 큰 홍수가 발생하고, 사람과 쌀이 모두 홍수에 휩쓸려가자 살 길을 찾아 남쪽의 도회지로 탈출한다. 우룽의 처지에서 그가 도착한 도시는 '하얀 눈처럼 수북이 쌓인 쌀, 아리땁고 농염한 여인, 철도와 부두, 도시와 공장, 사람과 재물...' 등은 그의 고향에서는 볼 수 없는 동경의 대상이고 천국과 가까운 모습이다.
우룽이 정착한 도시는 '뤼대감'이라는 군벌이 지배하는 도시였고, '대홍기 쌀집'의 펑사장은 대를 이어 쌀가게를 운영하는 부유한 집안이다. 우룽이 쌀집에서 일하게 되면서, 펑사장과 두 딸 쯔윈과 치윈의 만남은 악연으로 이어지고, 대를 이어 끔찍한 범죄와 만행이 끊이지 않는다.
쯔윈과 치윈은 봉건제와 남성가부장제의 피해자이며, 중국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혁명' 이전에 어떠했는가를 보여준다. 쯔윈은 나름으로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에 저항하지만, 결과는 참혹하다. 치윈 역시 뜨내기였던 우룽과 결혼하면서, 자매가 한 남자와 결혼하는 기괴한 결혼을 보여준다.
우룽은 쌀집의 가장이 되었고, 지역의 조직폭력단에 들어 우두머리가 된다. 우룽은 빈털털이로 이 도시에 들어와 돈과 권력을 거머쥐었다. 그는 술집을 드나들며 접대부와 난잡한 관계를 맺다 결국 매독에 걸리고, 그의 육체가 썩어들어가는 꼴을 보면서 점차 비참한 몰골로 전락한다.
우룽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려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살인과 방화를 저지르고, 도둑질과 강도질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돈을 모으고, 자신의 멀쩡한 이빨을 모두 뽑고 금니로 박아 넣는다. 그에게 최고의 성공은 번쩍거리는 금니와 눈처럼 하얀 쌀이었다.
우룽의 이런 악행은 그의 집안에 거대한 불행과 파멸로 돌아온다. 우룽의 세 자식인 미셩, 챠이성, 샤오완은 어릴 때 집안의 보물을 우연히 발견하지만, 그걸 사탕가게 주인에게 넘기고 사탕 한보따리를 받는다. 하지만 이 사실이 발각되고, 큰아들 미셩은 아버지 우룽에게 심하게 매질을 당하는데, 미셩은 막내 샤오완이 고자질했다고 생각하고 샤오완을 쌀 창고에서 쌀에 묻어 죽인다. 우룽은 동생을 죽인 미셩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가족은 서로에게 원망과 저주의 심정을 갖고 살아간다.
쌀집의 몰락은 큰딸 쯔윈의 일탈에서 시작했지만, 우룽을 받아들이면서 우룽의 탐욕과 무지에서 오는 사악함으로 집안이 이웃들의 저주를 받고, 처절하게 파멸한다. 인간의 타락한 욕망이 얼마나 추악하고 역겨운가를 우룽의 삶을 통해 드러내면서, 이런 사회가 봉건적 중국의 실상이며, 어리석은 중국 인민의 모습이라는 걸 쑤퉁은 잔인함을 과장하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우룽의 운명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고, 그가 지배하던 도시의 폭력집단이 배신하면서 급격히 몰락한다. 그는 쌀을 팔고, 강도짓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고향에 넓은 땅을 매입해 쌀 농사를 짓는 꿈을 현실로 만든다. 우룽에게 중국의 운명은 전혀 관심이 없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느라 질주하고, 가족도 돌보지 않으며, 핏줄에 대한 애착도 보이지 않는다. 욕망에 휩싸여 인간성을 잃은 우룽을 통해 인간의 어두운 모습, 타락한 모습을 중국 인민에게 알리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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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해방 - 치매, 암, 당뇨, 심장병과 노화를 피하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법
피터 아티아.빌 기퍼드 지음, 이한음 옮김 / 부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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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거의 읽지 않는 분야의 책들을 꼽자면, 마케팅, 재테크, 투자, 자기 계발, 종교, 건강 등이다. 나와 아무 관련도 없을 뿐 아니라 대중을 기만하고, 심하게 표현하면 대중을 상대로 사기 치는 책들이 많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종류의 책에서도 배울 점은 있고, 어느 정도 훌륭한 내용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삶의 본질에 관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 살고 죽을 때까지 끊임 없이 공부하고 배워야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데, 그 배움의 과정에서 얄팍한 껍데기만 핥는 내용으로 쓴 책을 읽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구체적으로 필요한 내용을 쓴 책을 읽어야 할 때가 있다. 기술 서적이 아니라 인문학을 포함한 폭 넓은 시야와 역사와 인간을 교직하는 입체적인 내용을 다룬 책을 읽는다면 배움도 있고, 읽는 즐거움도 크다.
예전에 약 2년 정도, 암 투병을 하면서 암을 완전히 치료한 어떤 분을 도와 건강에 관한 책을 만들 때가 있었다. 나는 그 분이 쓴 초고를 컴퓨터로 옮기면서 초고 내용을 다 읽었고, 그 분이 구입한 건강 관련 책 약 200권의 목록과 그 내용을 어느 정도는 읽어서 내용이 익숙했다.
암 환자가 암을 극복하고 '완치' 판정을 받은 건 대단한 사건이다. 의학이 발달해도 암은 여전히 매우 심각한 질병이며, 시한부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건강이 나빠지고, 병이 들고, 암이 생기는 걸 두려워 하면서도 건강을 유지하고 늙어서도 오래도록 건강하게 생활하려면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가를 잘 모르거나, 고민하지 않거나, 배우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또는 알면서도 실천, 실행하기를 게을리 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은 텔레비전, 유튜브 등에서 건강 관련 정보가 해일처럼 쏟아지는 세상이다. 전문가인 의사들이 출연해 세세한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모든 질병에 관한 자세한 설명과 예방, 치료 방법까지 일러준다.
그렇게 의학 정보가 넘쳐도 여전히 병에 걸리는 사람은 많고, 병원에는 환자가 가득하며, 의료보험이 고갈될 위기에 있다는 언론의 보도가 나온다. 너무 많은 정보 때문에 사람들은 의학에 관해 많은 걸 안다고 착각한다.
여기저기서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사람들은 거의 준 전문가처럼 건강과 질병에 관해 이야기하고, 건강과 질병은 술자리의 안주꺼리로, 친구끼리의 잡담 소재로 활용한다. 성인 흡연률은 줄었지만, 청소년, 여성 흡연률은 증가하고, 술 소비량은 한국도 세계 상위권이며, 각종 성인병 지수도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다. 평균 기대 수명도 80세가 넘어 세계 상위권에 있으면서 또한 각종 질병의 유병률도 높아, 오래 살지만,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아닌, 나이 들면서 온갖 질병과 질환에 시달리는 노인이 되어 간다는 통계가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사람들이 파편적으로 알고 있는 건강과 노화, 장수에 관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크게 3부로 나누고, 모두 17장으로 구성한 책은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 무려 750페이지가 넘는 책으로, 많은 내용을 담고 있으며, 각 장마다 꼭 해야 할 말을 잘 정리하고 있다.
1부에서는 건강과 장수, 현대 의학의 문제점에 관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누구나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지금까지의 현대 의학(필자는 현재의 의학을 '의학 2.0'이라고 말한다)이 꽤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의학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걸 '의학 3.0'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개인의 삶을 바꾸기 위한 방법으로 운동, 영양, 수면, 정서 건강에 관해 설명할 거라고 알려준다.
2부에서는 구체적 사례를 통해 질병의 발생과 원인에 관해 설명하는데, 환자의 임상과 현대 의학, 생물학, 진화학, 심리학, 병리학 등을 모두 동원해 유전자, 장수의 비결, 당뇨병과 식단, 심장병과 동맥, 콜레스테롤의 관계, 암의 발생과 전이, 암세포의 생리학적 특성, 암 발생을 촉진하는 건강의 문제, 치매, 알츠하이머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의 발생과 예방 등에 관해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면서도 어렵지 않게 설명한다.
3부에서는 2부에서 다룬 심각한 질병들을 예방하거나 치료하기 위한 방법과 대안을 제시한다. 필자가 제시하는 방법과 대안은 건강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상식으로 아는 내용들이라 뻔하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오히려 과장하지 않고,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 실천에 도움이 된다.
운동, 통증 예방, 호흡, 근력 운동의 필요성, 영양 섭취의 중요성과 방법, 식단을 구성하고 자기 식단을 찾는 법, 수면의 중요성과 질 좋은 수면을 만드는 방법 등에 관해 다양한 사례를 들며 장점과 단점을 말하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 가장 마지막에 나오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내용이 바로 '정서 건강'이다. '정서 건강'은 우리가 말하는 '정신 건강'과는 다른, 자기 자신의 본 모습을 올바르게 들여다 보고, 삶을 긍정하는 태도를 갖는 과정을 말한다.
필자인 피터 아티아는 누가 봐도 성공한 의학자다. 그는 스탠퍼드 의대를 졸업한 의학 박사이며, 세계적인 장수 의학의 권위자로 명성을 얻고 있는 사람인데, 그가 '정서 건강'에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 하는 장면을 보면, 겉으로 보는 세속의 출세와 명예, 권위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를 잘 알 수 있다.
인간의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건, 겉으로 보이는 출세, 명예, 성공보다는 자신과 가족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육체가 아무리 건강하고, 오래 산다고 해도, 정서 건강이 나쁘면 행복할 수 없다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또한 정서 건강이 좋은 상태를 유지하면 많은 부분 건강 문제는 해결된다고 믿는다.
건강 문제는 그 자체로 대응해야 하지만, 건강 문제에서 '정서 건강'을 따로 떼어놓을 수 없으며, 육체의 건강과 '정서 건강'은 반드시 함께 맞물려 이해해야 하고, 건강을 지키거나 치료할 때 늘 함께 고려해야 할 관계라고 말한다.

노화와 장수에 관심을 갖는 세대는 이미 노인 세대라고 말하지만, 사실 노화와 장수는 20대 이후부터 꾸준히 관심을 갖고 실천해야 하는 건강의 문제다. 따라서 이 책은 중년 이상의 세대가 읽겠지만, 그보다 젊은 세대도 꼭 읽어보길 권한다. 청년 세대의 부모들이 겪게 될 건강의 문제를 청년 세대가 미리 배우고, 이해하면, 부모의 건강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고, 대처하는 방식도 더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질병해방

  • 이 글은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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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촉감
김한조 지음 / 새만화책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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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둔 노인이 과거를 회상한다. 그는 결혼했고, 자식을 두었으며, 평생 큰 불행 없이 무난한 삶을 살았다. 아내는 무던하고, 자식들도 저마다 자리를 잡고 잘 산다. 중산층으로, 평범하면서 안온한 가족을 꾸리며 평생 살았던 노인이지만, 죽음을 앞두고 잊었던 오래된 기억이 떠오른다. 독자는 노인의 독백을 따라 과거의 시간으로 따라간다.

노인의 삶은 회한과 후회로 가득하고, 자기 연민의 시각이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알면서, 죄책감과 죄의식을 마음 깊이 감춘 채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노인의 과거는 철저하게 자기 중심과 이기적 태도로 일관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노인과 동거했던 여인 두 사람이 주인공이지만, 내용으로 보면 노인의 시각과 입장만 드러난다. 따라서 독자는 노인의 주관적 감정선을 따라가게 되는데, 노인의 심정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회환과 후회, 죄책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작품을 노인의 시선에서 멀어져, 객관의 시선으로 보면, 노인은 극도로 이기적인 인물로 볼 수 있다. 노인(남자)이 청년이었을 때, 대학을 졸업할 무렵, 어떤 여인과 동거했다. 동거는 몇 년 이어졌는데, 집안에는 여인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애당초 결혼할 마음이 없었던 남자는 혼인하지 않고 부부처럼 살아간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진 않았겠지만, 평생을 함께 하겠다는 마음도 없었다.
남자는 대학을 졸업했고, 이제 막 세상에 뛰어들어 자기 삶을 뿌리내리기 시작했지만, 동거하던 여성은 아마도 많이 배우지 못했을 것이고, 그녀의 집안도 대단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남자는 결혼하기에 여자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남자의 무의식에 오만함과 차별 의식이 자리 잡았고, 그 시대를 살았던 남성 일반처럼, 가부장제, 남성 우월주의 관점으로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여자가 고향으로 며칠 떠나고, 남자가 짐을 챙기러 동거하던 집을 찾았을 때, 여전히 여자를 그리워하는 장면이 있지만, 그건 여자를 깊이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여자를 착취하며 누렸던 시간을 잃는 것이 아쉬웠기 때문이라는 건 깨닫지 못한다. 남자는 여자와 동거하면서 마치 가정부를 부리는 듯한 호사를 누리며 살았다. 여자는 헌신적으로 '아내'처럼 행동했겠지만, 남자에게는 여자가 '아내'가 아니라, 집안을 보살피고, 밥과 빨래를 해주고, 심지어 성 서비스까지 해주는 조건 없는 하녀를 둔 것으로 인식했을 걸로 보인다. 물론 남자가 여자를 사랑했을 걸로 보인다. 다만 그 사랑의 무게와 깊이가 남자의 이기심을 극복할 정도로 진지하지 못하다는 게 문제였다.
남자가 청년일 때,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던 사람은 20대에서 불과 20%도 안 되는 특권층에 속했다. 이 말은, 남자의 집안이 남자를 대학에 보낼 정도로 풍족한 집이었으며, 그것도 서울로 유학을 보낼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의미다. 남자가 동거하던 여자를 어떻게 만났는지 나오지 않지만, 동등한 처지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남자는 동거하던 여자를 붙잡지 못했다고 후회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먼저 끝낸 사람은 의외로 여자였다. 남자가 여자와의 관계를 숨기고, 갈등하고,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여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남자는 비겁했고, 끝까지 망설였으며,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여자가 보인 단호한 태도는 여자 자신보다 남자를 위한 태도로 보인다. 마지막까지 남자를 배려하고, 용서한 건 여자였다.
이 작품과 짝을 이루는 작품으로 여자의 시각으로 남자를 기억하는 내용이 나온다면 어떨까. 여자는 남자보다 독립적인 삶을 살지 않았을까. 남자의 삶이 더 없이 무난하고 평범해서 그의 유일한 추억이자 회한이 대학 졸업 무렵 만나 동거한 여자와의 추억이 전부였다면, 남자와 헤어진 다음부터 일어난 여자의 삶은 최소한 남자보다 훨씬 드라마틱 할 건 분명하다.
다른 면에서 보면, 노인(남자)의 가족은 노인의 삶에서 대상화, 소외된다. 남자가 여자와 헤어진 다음,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다는 건 그의 회상으로 드러난다. 결혼을 했지만 그건 아마도 중매 결혼이었을 확률이 높고, 가부장 사회에서 남자는 직장인으로 평생 살았을 거고, 자식을 돌보고, 키우는 건 남자의 아내가 맡았을 거다. 아들과 딸은 특별한 재능이 없는 한, 아버지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걸로 보인다.
남자는 죽음을 앞두고 아내와 자식의 얼굴을 떠올리지 못한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있어 의식이 흐릿한 탓도 있지만, 남자가 말하듯, 동거하던 여자와의 결별 이후의 삶은 마치 껍데기만 살아온 듯한 느낌이다. 사람의 자기정체성, 존재감은 스스로가 아니라 타인을 통해 확인받는데, 남자는 가족을 통해 그런 존재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걸 가족의 문제나 가족의 책임으로 돌릴 수도 없는 건, 남자의 삶이 가족과 일체감을 이룬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남자는 평균적으로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로 살았지만, 그가 살았던 가부장 사회,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스스로 소외되었고, 남자는 자신이 주인공처럼 살았던 사회에서 자기가 소외되었다는 사실 조차 모른 채 살았다. 남자는 아내도, 자식도, 자기 자신도 진심으로, 온몸으로 사랑하며 살지 못했다. 그건 어떤 면에서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비슷하다. 뫼르소의 삶은 건조하다. 감정이 빠져나간 삭막한 이성만이 그의 내면을 채우고, 사람과 세상은 관계가 아니라 '대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남자가 피, 눈물, 땀, 슬픔, 기쁨, 행복, 절망과 같은 오욕칠정의 감정이 거세되고, 감정이 '대상'으로 사물화 한 원인은 여자와 헤어지면서 자기의 '진짜' 감정을 스스로 살해했기 때문이다. 그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 꿈, 희망을 스스로 살해했다. 그런 점에서 남자와 동거했던 여성은 남자의 '꿈', '희망', '행복'과 같은 보이지 않는 감정의 현현이다.

남자는 가족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고,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가 두려웠기에, 현재를 포기하고 안정된 현실을 선택한다. 그 과정에서 남자가 진정으로 바라던 꿈, 희망, 행복은 거세되고, 그의 내면은 삭막한 사막처럼 죽어간다. 남자는 이제 '진짜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결별했던 여자의 진짜 모습을 알아챈다. 그건 바로 자신의 꿈, 희망, 행복이었고, 그건 다시는 볼 수 없는 저 먼 과거의 한 줄기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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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동 사람들
박건웅 지음 / 우리나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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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웅 작가의 창작 그래픽노블. 한국현대사를 꾸준히 다루고 있는 작가의 역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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