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의 코구레(권준호)X미쯔이(정대만) 커플을 등장시킨 야오이 패러디 동인지로 그 이름을 날렸으며, 이제는 <서양골동양과자점>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작가 요시나가 후미. 최근 들어선 본령인 야오이 외에도 <사랑해야 하는 딸들>이나 <아이의 체온>처럼 가족 간의 관계를 그리는 작품 등으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녀의 만화에 보내는 나의 지지는 확고하다. 그녀의 내러티브는 즐겁고 유쾌하다. 하지만 그것으로만 끝나버렸다면 그녀에 대한 지지는 이토록 확고하진 않을 것이다. 요시나가 후미는 그림과 내러티브,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대사들로 긴 여운을 남긴다. 그 긴 여운들은 가슴 깊은 곳을 건드리고, 곧이어 따뜻한 색의 물감이 번져나가듯 가슴을 채운다. 그래서 그녀의 만화를 보는 것은 유쾌하고 또한 가슴 아린 경험이다.
요시나가 후미의 그림은 얼핏 보면 급하게 쓱쓱 흘려그린 듯한 선으로 이뤄져 있다. 선뿐인가, 화면 역시 참으로 어이없을 정도로 비어있다. 하지만 짧은 단편 하나만 읽게 된다면, 흘린 듯한 선과 비어있는 화면들이 얼마나 당신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요시나가 후미에 대해선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게 사실이지만, 딱 한 가지 신경이 쓰이는 점이라면 작품 전반을 알게 모르게 지배하고 있는 그녀의 '엘리트주의'이다. 요시나가 후미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타고난 미남에 영리하며, 학벌이나 재능도 빵빵해 도무지 노력이라곤 모르고 살 것 같은 도련님들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이들은 대개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서양골동양과자점>의 다치바나는 어릴 적 유괴당했던 기억에서 평생 벗어나질 못하고, <제라르와 자크>에 나오는 자크는 귀족에서 하인으로 전락한 처지이다. 혹자는 이를 '차분한 엘리트주의'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어차피 야오이란 환타지에 가까운 것인데 그런 설정까지 따지고 들어가면 골치아프다는 의견도 있지만 어쨌거나 이 점은 아쉬운 부분.
국내에 단행본으로 소개된 작품이라면 정식판이던 비계약작이던 가리지 않고 모았지만, <솔베이지>만은 구하질 못했다. 노트본의 경우엔 <서양골동양과자점> 위주로 모았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 노트본만은 손에 넣질 못했다. 아마 만화를 모으는 그 날까지 나의 눈은 이 작품들을 찾아 번뜩이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제일 사랑하는 작품은 <서양골동양과자점>의 패러디본인 '영원은 있습니까?'. 영원히 이뤄질 수 없기에 함께 할 수 있는 다치바나와 오노의 슬픈 이야기는 원 작품의 여운과는 또 다른 여운을 전해주었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결말!'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요시나가 후미는 '악마같은 남자'와 '파랑새'로 확실하게 뒤통수를 때리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나는 '영원은 있습니까?'를 사랑한다.
요시나가 후미의 작품을 추천해주면, '그거 야오이라서 싫어'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더 멋진 신세계로 발을 내딛기를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다! 정 싫다면 서울문화사와 시공사의 정식계약본들로 만족해도 좋다. 그래도 요시나가 후미가 훌륭한 작가라는 것엔 확실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링크는 요시나가 후미의 작품들에 대해 좋은 평을 들려주고 있는 블로그. 한 번쯤 읽어볼 만 하다. (무단링크라 죄송한가...)
http://www.mediamob.co.kr/heian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