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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으로 본 한국역사 - 젊은이들을 위한 새 편집
함석헌 지음 / 한길사 / 2003년 4월
평점 :
한국 역사를 책 한 권으로 정리할 수 있을까. 그것도 5천년의 시간이 담긴 한민족의 역사를 말이다. 20세기 90여년 일생을 민족의 교사로 살다간 함석헌의 책 <뜻으로 본 한국역사>(한길사,2003)는 그같은 의문을 풀어주기에 적합한 대중 역사서다. 오늘날 수많은 위치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우리 시대의 지도자와 교사들이 함석헌의 이 책에 대한 독서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괜한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운 이 때다. 졸지에 역사교육이 자랑스런 국정교과서를 보유한 북한과 방글라데시 수준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 국정교과서 집필진을 급거 모집하고 그것조차 중도사퇴하는 마당에, 제대로 된 역사해석에 대한 독자들의 불안과 갈증은 증폭되지 않았을까.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본래 `성서적 입장에서 본' 이란 수식어가 붙은 책이었다. 함석헌은 일제시대 일본에서 유학하며, 우치무라 간조의 무교회주의 신앙에 영향을 받아 기독교인이 되었다. 객관적인 역사에다 `성서적 입장'이란 수식어를 붙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는 성경의 자리에서만 역사를 쓸 수 있고 역사철학은 성경밖에는 없다는 말로 해명 한다. 이 책이 기독교의 서사와 논리를 바탕으로 한국 역사를 풀어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는 모든 종교적 진리를 하나로 보고 종교간의 차이를 형식의 차이로 이해한다. 함석헌에게 있어 유교와 불교, 유대교와 이슬람교, 기독교와 카톨릭은 형식이고, 각 종교가 내세우는 선한 가치는 `뜻'이며 진리다. 그가 생전 한국 교회집단과 자주 논쟁한 것은 이런 기본적 종교관 때문이었다.
그는 훗날 퀘이커 교도로 개종하는데, 퀘이커 교회가 평화와 비교권적 제도를 지지하였기 때문이다. 동,서양간 다양한 종교를 통합하여 하나의 독창적 철학을 만들었는데 함석헌의 `씨알 사상'이다. 그는 투철한 신념을 갖고 당대의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투사였으며, 비폭력, 민주주의, 평화에 대한 지지로 `민중이 깨어나야 나라가 산다'는 씨알의 계몽을 위해 사상가이자 역사가이자 민중 지도자이자 교사로서 90년 생애를 꽉 채웠다. 종교적 서사와 논리에 기대 한국 역사를 풀어나가는 것이 생소하고 거부감이 일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난으로 압축된 역사안에서 그 안에 담긴 뜻을 찾고, 역사의 개념과 한국 민족이 가져야 할 태도와 미래를 서술한 것은 그의 탁월한 명문과 아름다운 우리말 속에서 깊은 감동으로 살아난다.
그에게 역사는 지나간 과거의 일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다. 그 과거 가운데 기록할 필요, 알 필요를 느끼는 것은 현재 안에 살아 있고,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관은 과거의 단순한 사실을 적는 것이 아니라, 사실 가운데 고르는 것이요, 그 고르는 표준이 지금과의 관련성이다. 현재에 가지는 의미, 뜻을 찾아내고 발견하고 기록하는 게 사관이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다. 하여, "역사가의 자격은 그 기억에 있지 않고 판단에 있다."(43쪽) 역사의 사실(事實)은 해석된 사실인데, 여기서 해석의 주관성이 위태로울 수 있다. 그러나, 역사가에게 요구되는 `바름'이란 해석하기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나'에게도 통할 수 있는 `참나'가 수긍할 수 있도록, 뚫어보고 해석하는 힘을 갖고 바른 기록을 해나가는 행위를 말한다. 함석헌이 말한 `참나'와 대립되는 것이 `작은나, 거짓 나, 사(私)다. 역사를 제멋대로 조작하고 해석하려는 욕망이 어디서 기원하는지 눈치챌 수 있겠는가?
함석헌은 역사가 사랑에서 나왔고 사랑에 이끌려 사랑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 아가페를 공자는 인(仁)으로 보았고, 노자는 도(道)로 보았고, 석가는 빔(空)으로 보았다. 그가 협소한 기독교인의 논리를 벗어나 동,서양 사상을 융합하여 더 큰 진리로 나아가려는 시도는 이렇듯 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동,서양 역사는 대립의 개념으로 발전해 왔다. 동양이 복종,통일,되풀이,지킴의 역사였다면 서양역사는 반항,자유,발전,진보의 역사다. 동서양이 정반대인 것으로 보이고, 그 역사 발전에 우월이 있다고 착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다. 동양은 서양 문명을 추월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서양의 교만하던 입에서 동양 소리가 차차 높아진다. 이렇게 동,서양이 서로 다른 길을 따른 것은 보다 높은 것을 드러낼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한국 역사와 세계 역사의 흐름 안에서 `뜻'을 찾고 갈구하여야 할 이유가 이렇게 제시된다.
"모든 것이 뜻이 있어서 되었다. 죽은 것은 나기 위해서요. 실패한 것은 이기기 위해서다. 동서양이 서로 갈라진 것은 서로 도와 모두 높은 데 오르기 위해서다. 마치 두 다리가 서로 갈라지고 서로 반대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듯이, 동양은 정신을 맡았고 서양은 물질을 맡았다." 80쪽,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
그는 역사를 지어내는 것이 `아가페'라면 한국역사도 그 마지막 뜻이 `아가페'일 것이라고 단언한다. 함석헌은 이 책에서 그 뜻인 아가페가 실제의 한국역사 안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실패하며, 시험되는지 서술하고 있다. 아가페는 어떤 도구를 필요로 할까. 함석헌에게 한국역사를 추동하는 힘은 `고난'으로 정리된다. 그는 회고하기를 역사를 가르치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하면 젊은 가슴에 영광스런 조국의 역사를 안겨줄 수 있을지 힘써 보았으나 쓸데없었고, 어려서부터 듣던 민족의 영웅들을 크게 불러보았으나 부질없는 짓이었다고 고백한다. 그 작은 소리로 묻어버리기엔 한민족 5천년 앓는 소리가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있는 것은 압박이요, 부끄러움이요, 찢어지고 갈라짐이요, 잃고 떨어짐의 역사뿐이다"(95쪽)
한국 사람에 대한 분석이 이어진다. 심각성이 부족하며 파고들지 못한다. 생각하는 힘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깊은 사색이 없고, 현상 뒤에 실재를 붙잡으려고, 무상 뒤에 영원을 찾으려고, 컴컴한 깊음의 혼돈을 타고 앉아 알을 품는 알탉처럼 들여다보고 있는, 운동하는, 얼이 모자란다. 그래서 시 없는 민족이요, 철학없는 국민이요, 종교 없는 민중이다. 종교가 없지는 않으나 그것은 다 남에게 빌려온 종교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다. 백의 민족, 동방예의지국, 다 좋은 소리다. 하지만, 사람들은 좋을지 모르나 자기를 깊이 들여다보고 팔 줄 모른다. 자기를 파지 않기 때문에 자존심이 없다. 자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유도 없다. 이런 한국 사람의 성향은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을까.
정치라면 구차한 외교로 나라의 명맥을 유지하는 일로 알았고, 거기서 사대주의가 생겼고 지금까지도 큰 나라에 의지하며 눈칫밥을 먹고 사는게 일상사다. 백년을 앞둔 건축물이 없고, 집 중에서 제일 큰 것은 겨우 경복궁이요, 돌로 만든 것 중에 제일은 은진미륵 정도다. 직업을 구한다면 입에 풀칠하는 것이 목적이니 대를 잇는 명문이 없고, 사업을 한다면 내일로 보수가 돌아오기를 바란다. 함석헌은 고려 인종1127년에 발생한 묘청의 난이 실패하고 김부식 일파가 승리한 것이 유교가 한학을 불교가 국풍파를 이기며, 한국 역사가 보수적, 속박적 사상에 정복된 기점이라고 분석한다. 옛 고구려 시절 이후로, 한번도 북벌을 단행하지 못하고 고려의 서경(평양)천도가 실패하며 한국 역사가 결국 정치,사상적 종살이로 고려,조선을 허송세월하게 된 원인으로 꼽는 것이다.
"한민족이 한을 모른다는 것은 참 우스운 일이요, 안타까운 일이다. 소련 가서 종살이하마 약속하고 외교에 성공했다는 놈들아, 미국 가서 심부름 충실히 하마 한 것을 무슨 영광이나 되는 양 꽃뿌리고 맞이하는 놈들아, 그게 어찌 우리 갈 길이냐? 허리에 칼을 꽂음은 어서 빼란 명령 아니냐? 나라의 절반을 자름은 곧 도로 붙이라는 명령이 아니냐? 형제를 칼 들려 맞세움은 칼을 내버리고 울고 서로 쓸어안으라는 말이지 어찌 정말 싸우라는 말이냐? 미국,소련이 서로 세력을 자랑함은 거기 속지 말라 함이지, 어찌 그 어느 놈에 붙으란 말이냐? 왜 그렇게 힘이 없느냐? " 434쪽
그러나, 한국 역사는 이것이 다가 아니다. 고난이 있다면 `뜻'이 있기 때문이요, 고통이 있다면 `극복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함석헌은 침략과 수탈과 민중의 고난이 줄을 잇는 한국 역사에 고난의 뜻과 의미가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 역설적으로 그는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지은 죄로 인하여, 나를 버린 죄, 역사의 뒤안길에서 뜻을 찾지 않는 죄, 생명을 찾지 않는 죄, 우리의 평면적 인생관을 고치지 않은 죄, 자아에 충실하지 않은 죄, 고식주의와 은둔주의를 벗어나기 위하여 더 큰 고난이 필요하며, 숙명철학을 몰아내고 장차 올 새 역사에 우리의 사명을 다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 고난은 필요하다. 보다 높은 도덕, 진보적인 사상의 앞잡이가 되고, 낡은 것을 사정없이 빼앗아가는 고난의 좁은 문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지금껏 한민족은 세계사적 사명을 잊고 살았다. 함석헌은 이 사명을 깨닫는 힘이 우리 안에 내재해 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우리 조상들이 고구려 만주벌판을 누빌 때 흥안령을 넘기 전부터 가슴 깊이 간수하고 길러온 `선한 품성', 착한 바탕이다. 우리는 스스로 인(仁)한 사람이란 것을 믿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민족의 성격이 되기까지는 길고 긴 고통과 고난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우리가 가만히 손을 대어보면 상한 가슴 밑에 `인'의 일맥이 할딱이고 있음을 안다. 인은 곧 알맹이다. 생명이며, 절대자의 명령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세계역사가 폭력과 쟁탈의 역사였다면 앞으로의 역사는 도덕적 싸움의 역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477쪽)
함석헌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끝을 세계, 민족, 국가라는 거대한 개념의 서술로 마무리 짓지 않는다. 그가 이 책의 마지막에서 강조하는 것은 개별적 인간의 지성과 덕성의 자라남이다. 생각을 키우고, 지성을 계발하며 덕을 숭상할 때 한민족의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예언한다. 역사 추동의 힘을 결국 깨어있는 개인의 몫으로 그는 믿고 있었다. 이것은 일생 그가 천착한 "씨알사상"의 핵심적 개념이다.
대부분의 사가들은 한 시대의 역사적 의미를 캘 때, 1, 200년을 그 범주 안에 두고 서술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함석헌은 `뜻'으로 이름 붙인 성서적 역사철학이란 도구를 갖고 통합하고 융합하며, 한민족의 역사를 세계 역사, 인류 역사의 서사안에서 해석하고 풀이한다. 하여,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지금껏 읽어온 어떤 역사책도 하지 못한 넓은 시야와 통찰력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그것은 부정적으로 보자면, 객관적 역사에 종교적 도그마를 잣대로 사용하였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뜻'이란 독창적인 역사분석의 도구는 의외로 독특한 해석에 가닿으며 무한한 의미를 생성시켜 주었다. 도대체 뭔가 희망이 보이질 않는, 작고 보잘것 없는 한민족 고난의 역사가 그저 고난으로 끝나지 않으며, 더 큰 뜻으로 소생할 수 있다는 희망과 근거를 심어준 것이다.
겨우 책 한 권을 읽고, 20세기의 한국의 위대한 사상가이자 스승인 함석헌에 대해 다 말할 수 없다. 이 책을 읽고 오랜 시간 서평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은 그같은 이유에서다. 대표작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통해, 독자들은 함석헌이란 사상가를 맛본 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그의 저작들을 오래도록 읽고 연구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역사를 `작은 나, 거짓 나, 사심’으로 해석하고 가르치려 하는 세력에 맞서, 우리 시대의 독자들이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역사책이 있다면 바로 이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