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도서관 - 책과 영혼이 만나는 마법 같은 공간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주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르헨티나 출신인 알베르토 망구엘은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독서가다. 책을 좋아하고 책읽기를 일생 가까이 하는 사람을 `독서가'의 범주에 넣는다면 그것은 얼마나 흔한 이름인가.  그는 젊은 시절, 서점 점원으로 일하다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라는 거장을 만났다. `환상적 사실주의'라는 장르를 개척한 남미의 독보적 소설가였던 보르헤스는 당시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망구엘은 그와의 인연을 계기로,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는 남자가 되었다.  거장과의 만남은 그를 독서와 글쓰기의 세계로 이끌었다. 문학적 영감을 자극받은 그는 훗날 소설가로서 문학상까지 거머쥐었다. 그런데, 망구엘은 소설가의 길을 포기한다.  그 이유가 특별하다. 

어린 시절 망구엘은 글짓기를 위해, 꼬박 이틀 밤을 새워본적이 있었다. 그 고통스런 글쓰기의 세계는 악몽이었다.  그에 비해, 독서하는 시간은 행복했고,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선물했다.  그는 고달픈 작가보다는 즐거운 독자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인 장 폴 사르트르는 자서전 <말Les mots>의 제 1 장 소제목을 `읽기'라고 붙였다.   숱한 철학저작들을 써 낸 사르트르는 자서전에서 고백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보답이 없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고통스런 노력이다.  그러나 독서는 일종의 축제였다"  장 폴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 속 주인공 로캉텡은 매일 도서관으로 출근한다.

그곳에서 그가 하는 일은 오래된 고전 작품들을 뒤적이는 것이다.  이것이 소설의 주요한 이야기이자 공간적 배경이다.  읽기의 세계에서 그들에게 짜릿한 축제의 장소는 어디였을까.  바로 도서관이다.  20년 전 대학시절 대학의 그 많은 건물 가운데, 기억에 남는 공간을 꼽자면 도서관을 들어야 한다.  늦은 오후, 강의가 끝나면 내 발길은 도서관으로 향했다.   한번은 레포트 자료를 찾기 위한 도서관에 간 일이 있었다. 오랜 시간 미로 같은 선반을 배회했고 도서관 선반이 늘어선 그 책의 숲 속에서,  목적없는 방황의 재미를 발견했다.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는 그 책들 사이에서 때로 길을 잃고 말았다.  아무 책이나 빼어보고, 문장 몇 마디를 읽다 책장에 넣곤 하는 일은 대학시절 행복한 기억이다.  그 때를 회상하며 망구엘의 책을 집어들었다. 

알베르토 망구엘은 <밤의 도서관>(세종서적,2012)에서 인류와 함께 했던 도서관들을 소개한다.  기원전 220년 건립된 인류 역사상 최대의 도서관이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부터 나치 치하의 수용소에서 죽음을 앞둔 수감자들이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돌려보곤 했다는 미니 도서관의 역사까지 훑어 본다.  그런데,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자신의 도서관을 소개하고, 그 공간에서 책을 읽어나가는 즐거움에 대한 고백으로 읽힌다. 망구엘은 프랑스에 정착하며 허름한 창고를 개조해 비교적 큰 서재를 만든다.  그는 이 공간을 `밤의 도서관'이라 불렀다. 낮엔 일을 하거나 글을 쓰는 일이 많았으므로, 망구엘이 도서관에서 자신의 책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읽을 수 있는 시간은 고요한 밤 시간이었다. 

" 내 도서관이 내 삶의 일대기라면, 내 서재는 내 정체성을 결정짓는 곳이다 "  186쪽, 알베르토 망구엘 <밤의 도서관>

15세기 말, <군주론>을 지은 마키아벨리는 당대 이탈리아의 권력을 쥐고 있던 메디치 가문으로부터 버림 받는다. 그때까지 그는 촉망받는 학자이자 유능한 장관이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전 재산을 빼앗긴 후, 허름한 농가에 유폐당한다.  낮에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노동을 하다,  밤이 되면 그는 땀에 젖은 옷을 벗고, 멋드러진 궁전복으로 갈아 입었다.  왜 그랬을까. 장중한 옷을 입고 옛 현인들을 배알하는 장소로 들어서기 위해서다. 자신의 농가에 만든 그만의 도서관에 입장하기 위한 나름의 의식이었던 것이다. " 그는 매일밤 그렇게 4시간 가량을, 세상을 잊고 고민거리를 기억하지 않으며,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에도 떨지 않으며, 그렇게 글의 세계에 파묻혔다. "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도서관은 `돈'이 나오는 `사무실'이나 `업무 현장'이 아니다.   도서관은 실물경제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비경제적인 영역이다.  하여, 오늘날 도서관은 시험공부를 위한 장소이거나 `학자연하고' 싶은 사람들이 찾는 공간으로 매도당하고 만다.  서재를 갖고 있는 개인들은 쉽게 찾아볼 수도 없다.  낯선 누군가의 집을 방문했을 때, 가끔 역시나 실망할 때가 많다. 그 집에 책이 보관된 책장이 단 한개도 존재하지 않았을 때다.  그에 비해,  누구의 집을 방문하든 거실의 터줏대감은 쇼파와 티브이다. 서재는 오늘날 특별한 사람이 가진 특별한 공간이 되고 말았다.  부유하거나 아니면 독서라는 전혀 쓸모없고 젠체하는 사람들이 가진 유별난 장소인냥 말이다.  하지만, 그 누군가의 서재는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담고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역사이자 그 사람의 정체성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닌가.

" 서재는 그 주인, 즉 그곳을 독점적으로 사용하던 독서가에게 `에우테미아(euthymia)'를 준다. 세네카는 에우테미아가 `영혼의 행복'을 뜻하는 그리스어라고 설명하며, `트란킬리타스(tranquillitas, 평온)'로 번역했다.  에우테미아는 방해받지 않는 기억이며, 글을 읽는 시간의 편안함이다."   196쪽

망구엘의 `밤의 도서관'을 방문하는 이들은 곧잘 묻곤 했다. 그 많은 책을 다 읽어보았으냐고 말이다. 누구든 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는 이 질문에 어떻게 답했을까.  정말로 도서관과 서고의 책들을 소장인은 모두 읽어보아야 하는 걸까.   망구엘은 답한다.  "모든 책을 펼쳐본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규모가 어떻든 간에 도서관에 있는 책을 모두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기억과 망각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룰 때, 독서가는 이익을 얻는다."(264쪽)  도서관의 역설은 인간이 읽을 수 있는 책이 한정 돼 있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망구엘의 이 말은 그런 걱정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큰 위안거리다.  인간이 일생 몇 만 권의 책도 읽질 못하지만, 사람이 책을 만나는 시간은 `로또 당첨'의 기회일 수도 있다.  그 가운데 단 한 권의 책이 그 누군가에겐 삶의 전환점을 안길 것이다.

군복무 시절 군 서가의 책을 섭렵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래봤자 100여권 정도 였다.  전방 철책에 있을 때에는 야간 보초 근무로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내가 잠을 잤던 1번 관물대 옆에는 근무상황을 총괄하는 상황실이 있었는데, 내부를 볼 수 있도록 창이 나 있었다. 그 상황실의 불빛과 밤새 오가는 무전 송수신은 잠을 방해했지만,  책을 읽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그 불빛에 의지해 책을 읽는 것도 소대장의 눈치를 봐야했지만 말이다.  군대라는 억압된 공간속에서 그 시간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우주와 세계를 나고 들 수 있었던 기회였다.

최근 몇 해, 이사를 한두번 하면서 그동안 모은 책, 800여권을 처분했다.  망구엘의 글을 읽다가 다시금 `나만의 도서관'에 대한 잊혀진 꿈을 꾸게 되었다.  지금껏 내게 책을 모은다는 것은 집안에 작은 서재를 꾸미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인도 도서관을 만들 수 있다. 그 공간의 역할은 `위안과 망각'이어야 한다.  삭막한 현실을 가끔은 잊고 거리를 둬야 한다.  인간에겐 서재에 앉아 책을 읽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때, 인간은 억압하는 세계를 벗어나 세네카가 말한 `에우테미아(영혼의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  책을 읽는다는게 별게 아니다.  세상일의 경중과 삶의 진실을 구분하고 놓치지 않는 일이다.   밥을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게 사람 삶의 모두가 아니지 않은가.  최근 몇 해, 노숙자과 교도소의 수감자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프로젝트가 세계적으로 번져나간적이 있다. 그들이 한잔 술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고전 몇 권을 읽고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회복했단 것은 생의 진실을 포착하는데 있어, 책의 역할을 증거한다. 

"밤이면 가끔 나는 완전한 익명의 도서관을 꿈꾼다. 제목도 없고 저자도 밝히지 않는 책들로 가득해서, 온갖 장르와 온갖 문체 및 온갖 사연이 주인공이나 장소도 모르는 채 하나로 모여 시냇물처럼 끝없이 흐르며 이야기를 이루는 도서관이다. 나는 그 이야기의 어디에라도 풍덩 뛰어들 수 있다. "  73쪽

산 정상에 올라서 바라보는 풍경은 세상이 생각보다 작다는 깨달음이다. 그 좁은 공간속에서 옥신각신하며 이해를 다투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하지만, 그 공간속에서도 산보다 더 높고 깊게 인간을 되돌아볼 수 있는 장소가 존재한다.  그곳은 도서관이다.  책을 통해, 자신의 영혼과 세계의 실상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 매일 재방송처럼 재미없는 삶과 일순간 작별할 수 있는 공간, 그곳은 인간에게 위안과 망각 그리고 희망을 전달하여 주는 마법의 장소다.  책의 가장 큰 역할이 인간의 삶에 위안을 건넨다는 점은 중요하다. 사람은 그 어디에서 위안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생을 포기한다. 위안은 곧 `생의 의미'다.  알베르토 망구엘은 책을 읽는 행위의 의미와 중요함을 역설하는 독서가다.  <밤의 도서관>을 통해 평범한 독자들에게 이상적인 상상과 위안의 공간으로서 도서관을 재발견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그처럼 `밤의 도서관'의 주인장을 꿈꾸어보라고 부추긴다.  내게 책과 도서관은 말초적이지 않고도 짜릿해서 피할 수 없는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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