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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김정운 글.그림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꽤 유명한 사람이다. KBS는 2015년 새해 3일간 황금시간대에 신년 특강을 그에게 맡겼다. 시청률도 만만치 않게 높게 나왔다. 그 당시 그는 막 <에디톨로지>라는 신간을 냈을 때였다. 물론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특강이 시작되기 전, 신간 서적으로 읽은 터라 강의가 더 재밌고 귀에 쏙쏙 들어왔던 기억이 난다. 그가 특강에서 한 이야기는 지난 몇 년간 자신의 저서에서 주장한 이야기들이 주 내용이었다. 그는 국내외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성공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고생끝에 시간강사 생활을 벗고 정교수가 되었고 12년 동안 교수 생활도 열심히 했다. 논문도 많이 썼고, 대한민국 여가정책을 입안한 주인공도 그라고 고백한다. 그런 그가 2012년 안식년을 맞아 일본으로 떠났고 어느날 갑자기 몇 년 후면, 연금이 보장되는 교수직을 집어던졌다.
<에디톨로지> 이후, 1년만에 신간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21세기북스,2016)를 내놨다. 일본의 한 전문대에서 그림을 전공하고 최근 졸업한 그는 이번 저서속에다 자신이 직접 그린 삽화를 페이지 곳곳에 배치했다. 그의 글쓰기는 유머러스하고 쉽다. 이런 장점을 통해 그는 자신의 주전공인 심리학 이론을 재미있게 풀어낸다. 이번책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엔 자신의 삶과 심리학, 그리고 세상에 대한 사유가 널뛰기 하는 글쓰기를 보여준다. 참 솔직한 글쓰기다. 내가 그의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에로틱하고 탈권위적인 자유로움때문이다. 우리 시대, 점잔빼는 어른들은 공개된 장소에서 절대로 성적인 농담을 쉽게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글쓰기에서 성적인 취향을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알고 있다.
김정운은 반대다. 그가 성적인 이야기를 농담 수준으로 하고 있는 이유는 고지식한 독자들이나 출판사의 편집자를 진정시키기 위한 트릭 같단 생각이 든다. 아쉬운 부분이다. 인간은 성적인 것에 관심이 밥 먹는 것 다음으로 많을지 모른다. 아니, `그것부터 하고 밥을 먹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쉰을 넘긴 중년 남자, 김정운은 글쓰기에서 이 동물적인 본능을 농담이란 포장지에다 거침없이 쏟아낸다. 그가 독자를 상대로 사기치지 않는단 생각이 들었다. 그는 2012년 새해, 다이어리에다 "난 이제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한다"고 썼다. 생각해보니,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가장 싫은 일이었다. `더이상 학생들에게 사기쳐선 안된다'는 생각으로 교수직을 `때려치웠다'.
우리사회에서 일하고 싶어서 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누군들 일이 취미가 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은 대개 재미없고, 밥벌이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연봉이 억대가 넘어가는 항공사의 기장이나 은행원이나 그들이 좋아서 비행기를 몰고, 돈을 세고 있는게 아니다. 가르치는게 즐겁고 재밌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김정운은 어려서부터 선생을 신뢰하지 못하는 기질적 성격에다 교수가 된 후, 12년만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자신의 적성과는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했다. 대학교수라는 명패를 던져버리고 그는 일본에서 4년간 체류하며, 재수업을 받는다. 평소 관심있었던 `성인만화'를 전공하고 싶었다. 그것이 100세 시대, 노인들이 주 소비층으로 올라설 세상의 블루오션이란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그림 그리기를 사랑했다.
김정운은 혈혈단신 쉰 살에 자취생활을 시작한다. `격하게 외로운 4년'을 그는 어떻게 보냈을까. 연초 황금시간대에 공영방송에서 특강을 맡길 정도로 `명사'였던 그는 이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일본의 한 귀퉁이 시골마을에서 외로움과 사투를 벌인다. 그러나, 그 4년간 그는 성인만화가 아닌 일본화를 전공해 전문대 학위 하나를 따냈고, 총 6권의 책을 번역,집필 및 기획했다. 일본어 독해실력을 부쩍 키웠고, 수년간 집중해서 주전공인 심리학을 더 깊이 파고들고 책을 내려고 사진작가 윤광준과 유럽의 뒷골목을 배회했다. 그는 그 시간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생산적인 시간이자 인생에서 이토록 재미있게 공부해본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모두 외로움을 담보로 얻어낸 성과물입니다." (13쪽)
김정운은 이 모든 성과를 `외로움'으로 돌렸다. 외로움이란 사람들이 기피하는 감정이다. 외롭지 않으려고 사람들은 모임을 만들고, 경조사를 챙긴다. 자신의 경조사가 외롭게 보이면 안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과 멀어지려 한다. 마음이 공허하면 곁에 사람이 없어서이기 때문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카페에 모여 그렇게 하릴없이 수다를 떨고 있는 것이고 쓸데없는 술자리를 만들어, 2, 3차 까지 밤을 지새우는 것이다. 김정운은 반대로 `격하게 외로운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로움이 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바쁠수록 더 공허해진다고 말한다. 외로움을 피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을 그는 제안한다. " 격하게 외로워야 덜 외롭다 "는 것이다.
"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외로운 존재임을 깨닫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것이 무서워 외로운 시간을 피하려고 합니다. 외로움은 그저 견디는 겁니다. 외로워야 성찰이 가능합니다. 고독에 익숙해져야 타인과의 진정한 상호작용이 가능합니다. `나' 자신과의 대화인 `성찰'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가지는 심리학적 구조가 같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에 익숙해야 외롭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외로움의 역설입니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김정운 8쪽
그런데, 김정운이 외로움을 사랑하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 외로움은 자유와 연결 돼 있다. 홀로 있는 것을 두려워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홀로 있을 때 자유롭게 좋아하고 즐기고 사랑하는 일을 해야 그 외로움이 두렵지 않다. 김정운의 외로움 예찬은 하여, 인생에서 진정 하고 싶은 일의 발견을 전제로 한다. 세상 사람들이 바쁜 척 하며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이유는 그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하여, 겸손하지만 진정한 능력자인 김정운 식으로 자신의 직장을 바로 때려치우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평생 추구할 목표나 공부하고 싶은 주제를 먼저 정하는 것이 순서이기 때문이다.
먼저, 당신은 무엇을 일생 추구하고 싶은 사람인가? 당신이 사랑하는 일과 인생의 목표는 무엇이며,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겁나? 이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 이 질문에 자신있게 답할 수 없는 나같은 사람은 김정운의 용기와 결단을 영원히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거다.
김정운은 그림을 공부하기로 한 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결정이었다고 고백한다. 주체적 삶이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공부할 때 가능해진다고 주장한다. 하여, 그는 `계속 공부할 거다'라며 이 책을 끝맺는다. 김정운의 새해 계획은 아무 연고도 없는 전라도 여수 땅에 자신만의 아지트를 꾸미는 것이다.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고, 밤에는 책을 쓰며, 아주 잘생긴 진돗개 두 마리를 키우며, 그림 그리다 졸리면 마루에 누워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잠든다. 물론 이 공간안에서도 그의 창의적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 책읽고 연구하고, 결국 좋아하는 공부를 계속하는 삶 말이다. 상상만해도 여유롭고 행복한 삶이다. 지상에 유토피아가 있다면 바로 저 김정운의 바닷가 외딴 집으로 주소지를 옮기는게 좋을 듯하다.
" 조르바가 이 책의 주인공(카잔차키스)을 처음 만난 날, 함께 일하자는 주인공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처음부터 분명히 말해놓겠는데, 마음이 내켜야 해요...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주인공은 묻는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조르바는 아주 간단하고도 단호하게 말한다. `자유라는 거지!' " 322쪽
우리 사회 쉰(50)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옆을 봐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여전히 살아 남았다면, 그들은 권력과 재력을 갖고 있을 것이다. 지위에 알맞은 권력, 일중독, 오직 일을 통해 형성된 인맥이 삶의 모든 것 인양 상상하며 살고 있는 사람은 많다. 김정운은 대한민국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다 만나봤으나 대부분 `정상이 아니었다'고 회고한다. 상식적으로 그 위치까지 오르느라고 얼마나 미친 듯 살아왔겠냐는 거다. 말할 것도 없지만, 하루하루를 겨우 견디어내는 보통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고 묻는다. 일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쉰'은 불행하다. 은퇴가 몇 년 앞으로 다가온 쉰은 여전히 자신의 인생목표가 없는 것이다. 권력이 빠져나간 자리 외로움을 대신할 `대체제'도 없다.
난 그런 `쉰'이 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능력자인 김정운 식으로 직장이란 링 위에다 `하얀 수건'을 던질 용기는 없다. 하지만, 끊임없이 자유를 갈망하며 기회를 엿본다.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탐색하는 시간을 갖는다. 링위에선 방심하는 즉시 상대의 펀치가 날아든다. 그것을 요리조리 피하려면 시선과 상대의 움직임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발을 재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사각의 링 위에선 움직이지 않고는 버텨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직장인의 숙명도 그와 같지 않을까. 치열하게 일하면서 다른 세계를 꿈꿀 수밖에 없는 존재. 하지만, 당장의 위협이란 핑계로 꿈꾸기를 포기한다면 그 좁디 좁은 링, 공포의 링이 존재의 기반으로 고착되고 말 것이다.
외로움과 자유에 대한 긍정적 수용과 갈망을 꿈꾸고 싶다. 쉰이 넘어 안정적인 삶을 던져버리고 불안정한 자유에 안착한 김정운은 자유로운 생을 꿈꾸는 이들에게 먼저 눈 밭을 걸어가 멋드러진 자취를 남긴이로 기록될 것이다. 김정운의 책은 세번 째 독서다. 첫번째는 놀이를 기피하는 사회와 개인에 대한 문화심리학자의 따끔한 충고였다. 두번째 책은 지식은 편집에서 오는 것이란 가르침이었다. 지식인은 편집자란 메세지가 인상깊었다. 세번 째 책에서 그는 모든 이들이 피하고자하는 외로움이야 말로 자유로운 삶의 기반이 됨을 입증했다. "성공해야 행복한게 아니라 행복해야 성공한다"는 김정운식 `개똥철학'에 공감한다. 하여, 나는 더욱더 에로틱하게 재미를 발견하며, 생산적 고독속에서 꿈을 기억하고 자유를 탐색하는 삶을 이어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