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저는 해냈어요
김규환 지음 / 김영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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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주위에 널린 것이 성공신화다.   서점에 가보라.  모두가 자신의 인생이 성공했다, 고 주장하는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우리 시대에 성공은 이제 `신화'가 아니라 점점 싸구려 영웅담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들의 성공담이 `싸구려'인 이윤, 어떤 천박함을 띠고 있어서다.  오직 `최고'만으로 포장된 인생엔 정이 안간다.  최고가 성공의 기본조건도 아니다.  삶속에 철학이 없다면, 최고가 된다음 추락하는 일밖에 없는 법이다.   귀감이 될만한 성공신화에는 피와 땀,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 어떤 태도가 담겨 있어야 한다. 그의 현재적 지위가 아니라 그런 지위에 오른 과정이 담겨 있어야 하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기교가 아닌 지혜를 건낼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성공신화가 최고의 대학, 최고의 직장, 많은 돈, 최고의 지위에 오른 사람들의 삶을 다룬다.  이런 책들은 태도보다는 결과에 치중하고, 대중이 갖고 있는 잠재적 욕망을 부추기는데 앞장선다 . 그런 얄팍한 의도에 질려,  성공담을 엮은 책은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예외도 있는 법이다.  제목처럼 삶에 순박하고 겸손한  김규환의 <어머니 저는 해냈어요>를 읽고선 가슴 뭉클했다.   오랫동안 책장에 잠들어 있던 책을 꺼내 읽었다.  많은 책들을 읽지만 가슴속에 불을 지피는 책은 흔하지 않다.  가장 좋은 독서의 결실이란 독자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손에 기름을 묻히고 살지만, 대한민국 품질명장으로 대통령상을 수차례 받은 바 있는 기술자 김규환의 글은 내가 어떤 태도를 갖고 삶을 살아가야 할지, 그 당연한 결론에 힘을 실어 주었다.  우리는 모두 성공의 조건들에 박식하다.  사실 성공법칙은 의외로 단순한 법이다. 자신의 인생에 정직하고 성실하면 된다.  그는 최고의 부자는 못될지언정, 최고의 지위에 오르진 못할지언정, 성취욕과 행복이란 가장 큰 결실을 얻는다. 

김규환은 1955년생으로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일제시대때 친일파들에게 땅을 모두 잃었고 그래서 아버지는 강원도 산촌에서 화전민으로 어렵게 농사를 지으면 살아야 했다.   집이 가난해서 초등학력이 전부이고, 가난 때문에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한 어머니를 비통하게 잃었다.  평생을 화전민으로 살다, 탄광노동자로 취업해 병을 얻은 아버지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 병을 악화 시켰고 그런 아버지를 가난이란 죄목으로 또 잃었다. 배우지 못해서 좋은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  자살이란 극단적 결심에 치달았을 때, 신문 귀퉁이의 광고 문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대우가족을 찾습니다' 라는 문구 하나로 취직문을 두르렸으나 초등학력 때문에 문전박대를 당했다.  공장 수위에게 등이 떠밀리기직전,  前 대우 김우중 회장의 동생 김성중 사장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공장 사환으로 취업이 된다.  가장 밑바닥에서 시작한 그는 이제 어떻게 대한민국 엔지니어의 최고 영예인 품질명장에 올랐을까?  이 책은 그 과정에 담긴 기막힌 경험담을 독자에게 기교없는 진실한 문장으로 들려준다. 

배울 의지가 없어서 배우지 않은 것이 아니고,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배움을 한으로 가지고 있다.  혹은 가난 외의 다른 여건 때문에 더 열심히 공부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한 때, 어떤 난관이 삶을 일순간 흔들어 놓을 수는 있어도 영원히 선량한 인간을 침몰시키진 못한다.  왜냐하면,  내면에 담긴 긍정의 기운이란 언제나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김규환은 초등학력으로 공장 사환이 됐지만 특유의 성실성과 열정으로 자신이 맡은 소임을 다한다.  공장 주변을 청소하고, 기술자 형들이 다루는 기계를 걸레로 닦는 일은 공장 사환이 해야 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가장 낮은 자리에서 그가 맡는 일마다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헌신의 태도를 보여준다.  화단에 난 꽃은 조경 전문가라도 되는 듯 관리했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기계를 일일이 분해해서 청소해 놓아, 기술자 형님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배운게 없었지만, 자격증 하나를 따기 위해 9전 10기의 자세로 노력해서 훗날 국가 기술자격증 시험을 통과했다. 운전 면허증도 마찬가지 9번 떨어지고 10번째 붙었다.  정식직원이 되고 난 후에도, 그는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일본의 높은 기술력을 따라잡기 위해, 회사에서 침식을 하며 밤을 지새웠던 일도 허다하다.  가난과 배움에 대한 열망으로 하루 3시간의 취침 방법을 연구했고,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 사회 초년시절엔 가난 때문에 두가지 일을 해냈다.  새벽 3시부터 어판장에 나가 생선상자를 나르고, 다시 공장에 출근하여 밤 10시가 다 되도록 회사일에 매달렸다.  5개국어와 한자에 능통하게 된 것은 매일 1개씩의 문장을 하루종일 중얼중얼 외웠던 덕분이고,  62개의 초정밀부품의 국산화와 총 2만 4천여 건의 아이디어를 제안하여 결국 일본 수입에 의존했던 부품들을 국산화 하는데 성공했다.  이런 각고의 노력으로 그는 각종 품질관리 경진대회에서 우승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다수의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며, 품질 관리 분야 한국 대표로 수차례 외국의 경진대회에 출전하였다.  최고의 기술자를 교육시키는 창원기능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대통령으로부터 대한민국 최고의 품질 명장을 인증받았다.   그가 유명세를 탄 것은 10여년전 <MBC 성공시대>에 출연하면서 부터다.  오늘 그는 가장 인기있는 기업강사로 국내외를 오간다.  주위엔 이분의 강의를 들은 사람이 흔할 정도다.  무엇이 이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청년을 오늘의 지위에 우뚝 올라서게 했을까? 

"그러나 그 행복은 절대로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실패도 있고 좌절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바로 행복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나라를 이만큼 일으켜 세우신 어른들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남들보다 한시간 늦게 자고 한 시간 일찍 일어난다는 것.  부지런한 사람, 준비하는 사람, 생각하고 일하는 사람, 조금 더 노력하는 사람은 모든 이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기본 조건이요, 성공하는 사람의 마음일진대 우리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가?"  본문 280쪽 

이젠 아무리 못살아도, 아파서 병원 진료 한번 못해본다거나 그것 때문에 부모님을 잃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요즘 시대에 공장 허드렛일을 위해 취직하는 청년이나 그 일 자체에서 감사와 기쁨을 누리고 좀더 잘하려고 노력해보는 사람도 없다.   이 책을 읽으며 오늘 우리들의 풍요를 생각해 본다. 고깃국 한그릇을 제대로 먹어본적이 별로 없었고 그 밥 한그릇에 감사할 줄 알았던 청년 김규환의 삶을 읽으며 내가 가진 이 넉넉한 조건들을 생각해 본다.   청년 실업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요, 그것은 나의 탓 때문만은 아니다.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은 정치인과 경제인이 가장 앞서 해 내야 할 일이다.  그러나, 포커스를 자신에게 맞춰봐야 할 때가 있다. 김규환의 책을 읽는 분들은 더욱 그럴 것 같다.  나에게 문제는 없을까?  나는 왜 회사에 다니는가?  나는 회사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으며, 어떤 태도로 일하고 있을까?  회사에서 나는 쓸모 있는 존재인가?  회사가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기 전에, 내가 회사에 공헌하기 위해 매일 고심하고 있긴 하는가?  김규환은 매일 아침 거실에 걸어둔 회사마크에 절을 한단다.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해주고 가족을 먹여 살리며,  자신에게 할 일을 준 그 회사에 감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리고 서슴없이 자신의 종교를 `대우종합기계교'라고 선포한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회사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시키는 것 외에는 하질 않고, 회사에 애정도 없으며, 회사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한 하나의 통로로 생각하질 않았는가?  언제나 급여가 적다고 불평하고,  나에게 피해만 없으면 복잡한 일은 애써 피하려는 복지부동의 자세로 살아오질 않았는가?  시험에 한두번 떨어지면, 머리가 나쁘거나 실력이 없거나 ? 둘중 하나라고 일찍 포기하고 인생에 어떤 계획보다는 그저 현재의 지위에 만족해버리지 않았을까?  이 시대, 대체 `목숨걸고 노력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목숨걸고 노력한 후에서야 우리는 정말 포기하는가?  이 책을 읽어나가며, 나는 이렇게 끊임없는 질문을 받았다.  김규환은 성실하게 살아가는 삶이 어떤 것인지 그의 헌신적 태도를 통해 보여주었다. 그리고 가난하고 못배웠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간직한 조건들이 아님을 증거한다.  그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부터 시작했다. 그가 가진 것은 돈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었다.  맑은 정신, 그것 하나 뿐이었다.   자신을 제약하는 모든 조건들에 불평하기 전에, 우리가 제어 가능한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조절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성공의 비밀은 거기에 있다.  

 



201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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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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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행복전도사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유서 한장을 달랑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을 때 내 감정은 복잡했다.  나처럼 복잡했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다.  적절한 유머, 날카로운 직관, 촌철살인의 비유를 섞어 대중을 사라잡는 그의 강연을 가끔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던 난 항상 느꼈던게 어떻게 저렇게 말을 잘 하나? 였고, 다음으론 아, 행복은 멀리 있질 않구나였다.  그녀의 행복학 강의를 듣고 있으면, 행복해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 같은게 스며들었다.  그의 책이나 강의를 일부러 찾아 읽거나 보진 않았지만, 우연하게 마주하면 귀를 쫑긋 세우곤 했던게 기억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딱 하나 이상한게 있었다.  행복하라,고 말하는 그녀의 표정엔 미소가 없었다는 거였다.  미소? 

얼마전 회사 상사에게 들었던 얘기다.  최근 인턴직원을 뽑는데 심사위원으로 차출 돼 간적이 있단다.  인턴 지원자들 중 상당수가 여대생이었는데, 질문지의 질문 한가지에 모두 같거나 비슷한 답을 내 놓았다고 했다.  질문은 현재 가장 존경하는 인물과 그 이유였고, 답은 한비야요, 이유는 한비야 언니의 용기와 도전의식을 닮고 싶어서였단다.   이 말을 하면서 그 상사는 몹시 회의적이었다.  닮고 싶은 여자가 겨우 한비야냐?  정도로 들렸다.  아니, 왜 젊은 애들이 닮고 싶은 사람이 같을 수가 있나? 라는 의구심도 그의 표정엔 담겨 있었다.   

젊은이건 아니건 누구나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스승이나 멘토를 갖는다는 건 중요하다. 삶이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우리는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용기를 얻고 새롭게 마음을 추스려 자신의 길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전도사는 최후를 행복과는 거리가 멀게 마무리했지만, 그가 쏟아낸 언어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의 죽음을 통해, 행복의 정의나 조건이 바뀐 것은 없다.  우리는 여전히 살면서 행복을 지향해야 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며 행복을 찾아가야 한다.  사는 것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니까.  인턴지원자들이 한비야를 존경하는 인물로 뽑은게 이상하다는, 상사의 의문은 그가 나이들어 젊은 사람들의 요즘 경향에 눈멀다는 증거일 수도 있겠다.  최근 여론 조사에서 한비야는 여대생이 존경하는 인물로,  정치인 박근혜와 한명숙의 뒤를 이어 당당히 3위에 오른적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한비야에 열광하게 하는가 ?  간혹 단독자로서 개인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적이 있다.  군집사회에서 집단에 비해, 개인이란 얼마나 나약하고 소소한 존재인가?  인간은 죽음에 마주하여 사회속에서 개인이 가진 의미에 절망하리란, 생각이 든다. 나 하나 죽는다고 세상이 놀라지도 않을 것이고, 내가 세상에 필연적인 존재도 아니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러나, 군집 이전에 개인이란 얼마나 크고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는가?   명사들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이 어떤 생각을 품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 하는 것이 사회 전체를 긍정과 부정의 한 축으로 움직일 수 있다. 군집의 일부분으로서 개인은 물리적으론 무가치한 존재다. 그러나 군집에 영향력을 발휘해 그 방향을 좌우하는 것도 결국 한 개인일 뿐이다.  개인의 위대성은 그곳에 있다.  

한비야는 키 160에 몸무게 50킬로 남짓의 연약한 여성일 뿐이다.  이 여성이 지금껏 해 왔던 일은 그러나 거구의 남성도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물리적인 힘이 아닌 그가 가진 생각, 비전, 용기, 행동이 오늘 한비야라는 연약한 여성을 여대생들이 존경할 수밖에 없는 인물로 우뚝 세웠다.  인턴심사장에서 앵무새처럼 한비야를 연호하는 지원자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상사에게 그의 책들을 권하고 싶다.  전작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 이은 그의 두번째 에세이집 <그건, 사랑이었네>를 읽었다.  

일찍이 잘나가던 외국계 홍보회사를 때려치고, 어릴 적부터 꿈꾸었던 세계도보여행를 떠났고, 재난 현장를 누비는 월드비전에 입사해 자애와 봉사의 정신으로 목숨을 내건 구호 사업에 치중했던 여인으로서 한비야, 는 너무도 잘 알려졌다. 전작 <지도밖으로 행군하라>에서 그는 월드비전의 구호 현장을 생생한 육성이 담긴 문장으로 엮어내, 뭇 사람들에게 재난현장의 고통을 알리는데 일조했고, 세계시민으로서 왜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 하는지, 뭉클한 감동을 주며 NGO의 구호사업에 인식의 전환를 가져왔다.  신작 <그건, 사랑이었네>는 그와는 좀더 다른 성향의 에세이집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내밀한 삶을 들춰보인다.  거기엔 실패한 첫사랑의 이야기를 비롯해, 소소한 일상의 단편들이 흥미롭게 묶여 있다.  다섯가지 점에서 나는 그를 `마음놓고 닮고 싶은 여자'로 생각한다. 

첫째, 낙천주의자라는 점이다.  사람이란 나이와 조건에 상관없이 온갖 걱정과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오지 여행으로 지구를 몇 바퀴 돌면서 그가 터득한 인생철학은 현재에 맞닥뜨리는 사건 사고들, 마주하는 모든 풍경들을 실컷 보고, 느끼고, 표현하며,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살아가자는 것이다.  마음 졸이며 걱정한다고 해서 우리의 일상사가 단 한가지라도 해결되진 않는다. 일단,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부딪혀 보는 것은 여행이라는 습성 그 자체와 닮아 있다.  여행은 실로 얼마나 많은 불안과 공포가 내포된 행위인가?  그러나, 한걸음 내딛여 보면 불안과 공포의 많은 부분이 거짓임이 판명나는 경우가 많다.   

둘째, 책읽기와 글쓰기를 평생 실천하고 있다.  간혹 신문지면으로 그의 글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이분 글쓰기 내공이 보통이 아니군, 이란 느낌이 들었다.  글이 호흡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란 쉽지 않다. 그의 글은 문장 하나하가 살아 숨쉰다. 군더더기도 찾을 수 없다. 경험과 인상이 짧은 글에 잘 녹아 있다.  그런데,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고교 시절 이후, 1년에 책 100권 읽기를 실천하고 있는 열혈 독서가요, 지면에 발표될 글 한 편을 짓기 위해 거의 예외없이 하룻밤을 지새우는 열정의 작가였다.  

셋째, 옹졸하지 않는 종교인이다.  그는 독실한 천주교도다.  온갖 위험과 비극이 일상화된 구호현장을 다니면서 언제나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나약함과 지혜를 하느님께 의지하고 구했지만 자신의 신앙을 구호 현장에선 내비춘적이 없다.  구호활동의 영역은 전세계를 아우르고 그 지역의 문화와 종교는 판이하게 다르다. 자신의 종교를 내걸고 구호 업무에 종사하는 일은 곧 종교적 시혜란 오해를 살 수 있으므로 엄격히 금지된다.  일부 종교인들이 전도와 개종을 목표로 현지의 문화와 관습을 무시하고, 이슬람 사원에 들어가 찬송가를 부르는 행태가 있었다.  세계 시민으로서 얼마나 큰 무지와 결례인지 그들은 알까?  

"`종교 간의 대화 없이 종교 간의 평화가 있을 수 없고, 종교 간의 평화 없이 세계 평화가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명언이요 진리다. 나는 요즘도 텔레비전에서 부처님 오신 날 특집이나 이슬람 문명 특집을 하면 `본방 사수'를 해가며 꼭 챙겨 본다. 재방송이라도 본다. 이런 프로그램은 재미도 있지만 그냥 보기만 해도 세계 평화에 일조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 지구상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가 공존하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며 상대방을 제대로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종교 간의 평화, 나아가 세계 평화의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아프가니스탄 부엌에서 얻은 내 확신이다."   본문,271 <그건,사랑이었네>  

넷째,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영감을 준다.  젊은사람들에게 그가 가장 인기 있는 명사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이나 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치는 사람은 많지만, 진정 행동으로 그걸 살아내기란 어렵다. 말과 행동에 간극이 비좁은 사람이 바로 그다. 한비야는 성공적인 삶의 조건이란 자신의 목표뿐만 아니라 공공의 선도 함께 이루는 사람, 그리하여 그들의 성공의 열매가 곧 우리 모두의 것이 되리라는걸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다섯째, 쉰살의 나이에도 새로운 꿈을 간직한 사람이다. 그는 현재 백수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다시 학생이 되었다. 월드비전 구호팀장과 베스트셀러 작가 등, 모든 사회적 명함을 내려놓고 그는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터프츠 대학교의 `인도적 지원에 관한 석사 과정'에 지원해 다시 배움의 자리로 돌아갔다. 세계 각국의 명석한 두뇌들이 모여 토론 위주로 진행된다, 는 수업에 그는 당당히 도전했다.  우리 주위엔 나이 오십에 은퇴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이십대의 나이로 애늙은이 같은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 젊은이들도 많다. 나이 오십에 배움의 자리에 선 그는 지금 어떤 가슴 설레이는 꿈을 꾸고 있을까? 

청년들이 읽으면 많은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책이다.  한비야는 누나처럼, 형처럼, 불확실한 미래에 발이 묶인 청춘들에게 한줄기 빛을 선물한다.  이제 삼십 후반줄에 들어선 나도, 되돌아보면 온갖 불행과 상처만이 그 청춘시절 나를 설명한다. 그 시절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더 잘 살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 같다.  청춘을 통과한다는 것은 모두에게 힘들다.  더군다나,  공정한 사회를 외치면서도 온갖 특혜와 면제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오직 실력과 이상만으로 꿈을 이루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행복전도사는 행복하지 않아서 죽었다. 이러한 역설은 가끔 인생을 헷갈리게 만든다.  우리 안의 어떤 우상을 심는 일은 옳지 않다. 한비야도 마찬가지다.  한비야는 젊은 이들의 `우상'에 머물 순 없다.  이 책이 감동적인 사연으로 가득하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그도 우리와 다를 바 없이 인생에 대해 어려움과 고뇌를 품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임을 알게 될 것이다.  다만, 그는 우리에게 부족한 유쾌한 사고와 결단력을 갖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며 군집에 긍정의 영향력을 전파하는 사람이었다.  한비야는 마음 놓고 닮고 싶은 여자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선 곤란하다.  한비야를 참고서 삼고 모든 세상의 위인들을 본받아 세상에 긍정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우리 젊음이들의 목표는 그것이어야 한다.  그는 앞서 눈길위를 바르게 걸어간 젊은이들의 사표(師表)가 될 만 하다.  

 


2010.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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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10-26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비야, 이러니 저러니 이 책에 대한 말이 많아도
전 그녀를 좋아해요.
진심이 묻어나는 걸 느낄 수 있는데, 그게 허상일 거라 생각되지 않아요.
그녀의 에너지 백분의 일이라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최윤희님에 대한 부분 중, 행복을 전도하면서 정작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배어있지 않았다는 내용이 와닿네요. 정말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아, 누군가의 삶은 정말 규정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녀는 나름대로 그녀만의 고민이 있지 않았을까요.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안타까워요. 공감도 되구요.

개츠비 2010-10-26 23:06   좋아요 0 | URL
한비야의 거짓말이라는 인터넷글이 뭔가 프레이야님 글을 보고 검색해 봤답니다. 이름에 세례명을 달았다, 여행지의 정보가 다르다, 6개국어 하는거 맞냐? 1년에 책을 100권 읽는건 거짓말같다. 참으로 다양하더군요. 이런 글을 유포한 사람은 잡아다가 곤장을 좀 매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비야의 거짓말이라는 글은 타진요의 모함들을 연상시키던데요. 인터넷엔 컴퓨터 바이러스만 있는게 아닙니다. 인간 바이러스들이 가득한데, 백신으로 잡을 수도 없고 어째야 할지...왠
 
김대중 자서전 - 전2권 김대중 자서전
김대중 지음 / 삼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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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철학자 군주(philosopher-king)만이 국민을 인도할 자격이 있다.

한 권의 책이 위대한 것은 한 사람의 기억속에 무언가를 깊이 각인시킨다는 데 있다.  이것은 어떤 권위나 편견 때문은 아니다.  현실과 사상이 명확히 일치될 때 느끼는 공조의 감정 때문이다.   내가 철학에 대해 관심 갖게 된 것은 20대 시절 접한 어떤 교양철학서를 통해서다.  미국의 교육자 윌 듀란트가 쓴 <철학이야기The Story of Philosophy)가 바로 그 책이다.  평범한 교사였던 윌 듀란트를 일약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이 저작은 내게 서양 철학의 기본 지식을 주었고 권위가 깃든 사상도 비판해야 한다는 근거를 안겼다.  그리고 이후 철학에 대해 이야기 할때마다 바로 이 책에서 말한 철학자와 그들의 철학을 생각하였다.  1992년이었다.  정치인 김대중이 제 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하고 정계 은퇴 선언을 하던 시점이었고, 나는 이 책을 읽고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바로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플라톤 철학에 대한 서술이었다.  김대중은 40년의 정치생활 가운데, `다섯 번 죽음의 고비, 6년 동안의 옥중 생활, 수십 년간의 감시와 연금, 망명 생활'을 극복했다.   그러나 1990년 1월 노태우와 김영삼 김종필의 3당 합당을 통해 탄생한 민자당의 대통령 후보인 김영삼에 200만 표 차이로 지고 말았다.  1992년 12월 19일 김대중은 패배에 대한 충격이 가시기 전, 국민을 상대로 하나의 연설을 했다.  바로 자신의 정치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정계은퇴 선언이었다.  그 때의 허탈감은 어쩌면 내게도 컸던가 보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한 정치인의 `사라짐'이 아니라,  그가 가진 어떠한 `능력'과 `지식'이 더이상 `쓸모없게' 된 사실이었다.  곧이어 나는 플라톤의 이 문장에 이르게 되었다.

"부로 인해 마음이 들뜬 장사꾼들이 통치자로서 군림할 때 국가의 파멸이 온다. 혹은 장군이 군대를 이용하여 군사 독재를 수립할 때 파멸이 온다. 생산자는 경제 분야에서, 군인은 싸움터에서 그 진가를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다.  그들 양자 모두 관직에는 가장 적합하지 못하다. 그들의 거친 손에 의해 수립된 정책은 정치의 도(道)를 타락시킨다. 정치는 과학이요 기술이다.  정치가가 되려면 오랜 준비와 체험을 필요로 한다.  오직 철학자 군주(philosopher-king)만이 국민을 인도할 자격이 있다. " <국가> 플라톤

세계가 인정한 민주화 지도자였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조국 한쪽에선 `선생'으로 불리웠고 한쪽에서 `대통령병 환자'로 매도 되었다.  선거에만 나오면 정치권은 그를 용공으로 내몰아 사상을 의심했고, 언론은 왜곡된 기사를 난발하여 궁지에 넣었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후보의 비전과 정책일 테지만, 우리의 선거문화는 항상 북풍이나 지역감정을 앞세워 인간을 흠짓내고 모략하는데 치중했다.  김대중은 대표적인 희생자였다.  그런 현상은 여태껏 변하지 않고,  최근까지 애용되는 망국병이다.   1990년 김대중의 은퇴는 그의 진정성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실망과 허탈감을 주었다.  김대중은 <자서전>에서 은퇴 선언후, 많은 국민들의 전화를 받았다고 적었다.  그 가운덴 전화를 걸어 아무 소리 없이 울기만 하던 지지자도 있었다.  침묵속의 흐느낌, 어떤 말로도 그 패배의 억울함과 고뇌를 설명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당시 한둘이었겠는가? 

" 동교동 우리집으로 편지와 전화가 쇄도했다. 전화는 끊기가 무섭게 다시 울렸다 . 어떤 이는 전화를 걸고는 그저 울기만 했다." <김대중 자서전1>  p.607 

서양 철학의 긴 역사가 플라톤 철학의 주석이라는 말이 있다.  이천년전 사람인 플라톤은 그 이후 등장한 모든 서양 철학자의 명실 상부한 아버지라는 의미다.  철학은 다양한 방면으로 발전하고, 천재들에 의해 진보하였지만 플라톤을 넘어서지 않았고 넘지 못했다,는 의미다.  인용한 플라톤의 <국가>의 일부분은 내게 왜 그가 그러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일깨웠다.  시간의 구애를 받지않고 핵심을 찌르는 그의 사상은 놀라웠다.  정치군인에 의한 독재에 시달렸던 한국 현대사, 플라톤은 명확히 얘기하고 있질 않는가?  군인과 장사꾼은 통치의 적임자가 아니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철학자 군주'란 용어는 지극히 이상적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민주주의는 꿈이요 이상이었다.  플라톤의 이상적인 군주관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김대중의 은퇴를 보며 양식있는 지지자들이 느꼈을 분노와 안타까움은 바로 여기서 기원한 것이다.    

40여년 정치 생활과 민주화 투쟁을 통해,  김대중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갖춘 준비된 지도자로 성장했다.   의정 생활 동안엔 국회 도서관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의원으로 유명했고, 그러한 노력으로 끊임없이 정책들을 개발했다.  그 결실이 바로 경제분야에선 <대중 경제론>으로 통일 분야에선 <3단계 통일방안>으로 그 결실을 맺었다.  6년의 감옥 생활 동안 많은 책을 읽었고 훗날 감옥에서의 6년간을 대학 생활로 바꾸어 부를 정도로, 독서의 가치와 지식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다.  망명 기간동안 외국의 대학이 그에게 많은 학위를 수여했고,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는 방문하는 지역마다 대학으로부터 학위를 받았다.  그의 민주화와 인권를 향한 비전과 지식은 한국 현대사에서 철인(哲人)에 근접한 지도자가 바로 그였음을 증거한다.  오직 철학자 군주만이 국민을 인도할 자격이 있다,는 플라톤의 선언이 김대중이란 정치인을 통해 우리시대에 실현됐다.

 

상어에게 하반신을 뜯어 먹혀도 상반신만으로라도 살고 싶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제국주의로부터 독립한 150여개의 크고 작은 나라 가운데, 오늘날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를 가장 선명하게 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불과 60년 전 한국 전쟁 당시, 폐허의 땅덩어리가 이젠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고, 인권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언급했듯이 1960년대에는 케냐가 한국보다 더 잘 살았다.  오늘날 그 두 국가는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한다. 김대중은 사회주의의 몰락을 공산주의를 했기 아니라 민주주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 자서전에서 단언했다.  민주주의는 시장 경제를 하기 위한 초석이었다.  김대중은 어린 시절 일제 치하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수많은 차별과 반민주적인 행태를 겪었다. 그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품게 된 것은 이러한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이리라. 

그러나, 오늘의 민주주의가 결코 공짜가 아니었음을 우리는 그의 자서전을 통해 확인한다. 이승만의 자유당 독재가 판을 치던 1954년 제 3 대 민의원 선거를 통해 정치에 입문후, 그는 자유당의 부정 선거와 방해 공작을 통해 선거에 나와 무수히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부정과 비리가 일상화된 정권이 4.19 학생 혁명을 통해 무너지고 난후 그는 인제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섰으나 부재자 투표 제도의 도입으로 또한번 패배한다.  그러나 장면 총리는 김대중을 대변인으로 지명했다. 그의 정치 인생과 한국 민주주의가 꽃을 피울 지점에 있었다. 그러나 역사적 반동의 힘은 그와 대한민국을 독재의 시련속에 빠뜨린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육군 소장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 이후 박정희가 자신의 충신이었던 김재규의 총탄에 죽임을 당하고 다시, 전두환 일당의 정치 군인들이 518를 일으켜 정의 사회 구현을 내건 제 5 공화국을 건립한 이후,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종적을 감추었다.  그 시련 한복판에 김대중이 있었다.  그는 이땅의 민주주의가 유린 당하는 가장 분명한 증거가 되었다.  투옥과 망명, 연금과 사형선고가 그 시절 민주주의의 운명이었고 김대중의 운명이었다.  그 어느 한국 정치인이 이 험난한  민주화 투쟁의 경험을 간직하고 있는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강제 수용소에 감금되었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훗날 <죽음의 수용소에서>란 책에서 강제노동과 가스실의 죽음이 일상화된 수용소를 회상하며 인간이 절박한 순간를 이겨낼 수 있는건 하나의 꿈을 통해서라고 쓴 바 있다.  김대중 자서전의 한 귀퉁이에서 그가 자신을 겁많고 눈물많은 사람으로 서술한 부분를 읽었다.  죽음의 고비를 넘겨온 투사의 겸손처럼 넘어가려 했다. 그러나, 죽음이 다가온 순간 그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그도 여느 보통 사람처럼 공포에 떨었고 죽지 않으려 발버둥쳤다.  그럼에도, 그는 그 순간을 넘기자 또다시 자신의 길을 이어간다.  뒤돌아서거나, 곁길로 나아가지 않고, 살아온 비전과 이상에서 한틈의 벗어남이 없었다. 민주화와 시장경제, 그리고 한민족의 화해와 평화적 공존, 통일에의 꿈이 그의 길을 지켰다.   용기는 말에서가 아니라 행동에서 시작됨을 그는 입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이 자서전의 가장 비장한 순간은 자신에게 죽음이 임박했을 때를 서술한 장면이다. 1973년 중앙정보부가 주도한 김대중 도쿄 납치 사건과 1980년 신군부가 조작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판결에서, 그는 죽음의 곁에 다가 앉았다.  어떤 소설이 이보다 더 극적일 수 있을까?  그 순간을 회고하는 그의 언어에서 한 정치인의 생명과 민주주의가 벼랑끝에 선 지극한 절박함과 진실성이 전해온다.

"`물속에서 쇳덩이를 벗길 수 있을까. 아마 힘들 것이다. 바닷속이니 몇 분이면 모든 것이 끝날 거야. 고통도 사라지겠지.  그러면 내 고단한 삶도 끝날 거야. 어떤가.  이 정도 살았으면 된 것 아닌가.' 그러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다. 살고 싶다. 살아야 한다.  아직 할 일이 너무 많다. 상어에게 하반신을 뜯어 먹혀도 상반신만으로라도 살고 싶다.'"  김대중 자서전 1 p.313

 

역사는 정의와 양심의 편이다  

이 자서전을 매듭짓는 말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그는 "역사는 정의의 편이다" 라고 이 자서전을 끝맺었다.  지난 2009년 6월 11일 6.15 남북 공동 선언 9주년 기념연설은 정치인으로서 마지막 발언이었다.  그는 피맺힌 마음으로 절규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유독 그의 자서전에는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역사와 정의 그리고 양심이다.  무엇이 이 늙고 병든 전직 대통령을 절규하게 하였을까?   몇 년이 지난 오늘의 현실은 그러한 절규를 필요치 않는 세상이 되었을까?

이 자서전을 읽으며 그의 고향인 전남 신안 하의도를 다녀왔다.  김대중이 청년의 꿈을 키워가던 목포에도 들렀다.  그가 머물렀을 장소마다에서 자서전을 펴고 읽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하의도 후광리 복원 생가 곁에 자리한 갯벌에서였다.  가을의 갯바람은 차갑지 않았다. 짠내음이 밀려오긴 했지만, 책읽기를 방해하진 못했다.  동생 대현과 갯벌을 뛰노는 어린 시절 그의 모습이 환영처럼 다가왔다.  소년은 그때부터 꿈을 가졌을 것이다.  갯벌엔 온갖 생명들이 차고 넘쳤다.  개발의 손이 미치지 않은 섬과 갯벌은 여행자에게 자연과 생명의 가치를 무언의 언어로 가르쳐 주었다.
김대중은 정치인으로서 다양한 꿈을 갖고 있었다.  그가 위대한 정치인인 것은 자신의 꿈을 죽음의 위협과 망명, 연금과 고문의 시절에도 지켰다는데 있는게 아니다.   히틀러나 히로히토 천황의 꿈의 가치는 2차 세계대전의 전범 수준의 것이었다.  오늘날 그들을 존경하는 세계시민은 없다.  정치인의 꿈은 인류보편적인 공헌을 담보해야 한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고 남북경협이 주춤하고 천안함 사태 이후 전개된 한미 군사 훈련에서,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미항공모함이 군사 훈련에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주민은 여전히 굶주림에 허덕이는데 3대 세습체제 선전에 열을 올리는 북한 정권은 국민을 굶주림에 방치하고 있고,  남한은 그런 북한에 쌀 한 톨 주는 것을 아까워하는 형국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고령의 이산가족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뜨고 있다.  살아생전에 허리잘린 조국에 태어난 죄로, 고향땅 한번 밟아보지 못하고 혈육의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그들의 한은 죽어서도 풀리지 못할 것이다.  이 모두를 평화롭게 풀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 정치인이요, 그 방법이 올바른 정치다. 

김대중의 꿈은 남과 북이 화해와 협력 그리고 통일을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이루는 것이었다 .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도 우리 민족의 일부분이다. 반세기가 넘게 분단되어 있지만 장구한 우리 역사에 비추어보면 그 시간이란 `찰나'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북한을 배고픈 아우에 빗대 형처럼 돌보자고 했던 것이다. 통일은 나중에 하더라도 끊어진 허리를 이어 한반도에 피가 돌게 하고, 이 땅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반도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 사상은 이 지구에 발딛고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거대한 생명 경외의 사상이다.  그는 자서전의 끝머리에서 "세상에 생명보다 위대한 것은 없다" 라고 단언한다.

이제 정치인 김대중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는 영면에 들었다.  역사에서 가정이란 무의미하다. 그래서 이제 그가 연륜과 지혜로 조국에 좀더 기여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이라는 가정은 역사를 써나가야 할 주체인 우리로서는 너무 무책임한 말이다. 이제,우리 스스로 그가 떠난 자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거대한 투쟁을 통해 박정희 군사독재로부터 민주주의를 이루어냈고,  남북의 첨단 무기들이 대치한 휴전선을 뚫어 누구나 그리워만 했던 금강산으로 소풍을 떠날 수 있었다.   분단 후 최초로 남북의 정상이 만나 세계를 감동시켰고, 훗날 북한의 인민무력부장이 청와대를 방문해 한국의 대통령을 예방했다.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그의 재임 기간 동안 현실이 되었다.  하의도 갯벌 소년의 꿈은 얼마나 위대하고 막강했던가?

정치인이 어떤 비전을 품느냐, 하는 것이 한 민족의 운명을 갈라놓고 미래를 결정짓는다.  2차 대전의 독일과 영국에서 히틀러와 처칠은 그 좋은 본보기다.  20세기와 21세기 우리국민은 한 위대한 정치인을 소유했다.  그는 세계가 인정한 한국의 대통령, 김대중이었다.  그가 품었던 인권과 평화의 상상력으로부터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잠시 주춤할 수 있지만 역사가 정의와 양심의 편이란 진리는 불변이다. 그가 최후에 내뱉은 말이자 이 자서전을 끝맺고 있는 말이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한국과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 및 북한과의 화해와 평화에 기여한 한국의 김대중을 선정했다. 한국에서 수십 년간 지속된 권위주의 체제 속에 계속된 생명의 위협과 기나긴 망명 생활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은 한국 민주주의 대변자였다. 김대중은 햇볕 정책을 통해 남북한 사이에 50년 이상 지속된 전쟁과 적대감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이제 한반도에는 냉전이 종식되리란 희망이 싹트고 있다....."  군나르 베르게(Gunnar Berge) 노벨평화상 선정위원장  




2010.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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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글쓰기와 책읽기가 삶의 문제들에 맞설 수 있을까?  우리의 존재론적 고민과 현실적인 문제들은 어떻게 문학이 되며, 그것은 한 인간을 궁지로부터 구해낼 수 있게 되는가?  문학에는 그러한 힘이 있기나 하는 걸까?  소설이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담고,  우리의 평범한 삶에 어떤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소설을 읽는 일은 기쁘고 즐겁다.  김영하의 신작 소설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는 내게, 김영하를 읽은 첫 경험이었으나 그리 낯설진 않았다.  말줄임표가 붙을만한 이 어정쩡한 소설집의 제목은 여러 함의들을 담고 있고, 동시에 현실의 해명 불가능한 사소한 사건들에 대한 답답함을 표출한다.  사실, 소설집의 제목이란 대개 단편의 제목 한 꼭지를 가져오질 않는가?  그러나, 김영하는 소설속 문장 하나를 제목으로 삼았다.  형식에 대한 극도의 반감, 천편일률적 일상에 대한 반항, 제목에서 받은 인상은 이랬다.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집에 돌아간 후에도 매트에서 뒹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그런 아이의 파트너가 되어 함께 땀을 흘리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두 사람은 모두 그저 일상적인 스파링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단지 아이가 건 기술이 정확하게 들어가 남편의 몸이 허공에 붕 떴고 미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몸이 매트 밖으로 떨어졌던 것입니다. 머리가 바닥에 부딪히는 바람에......"
  <밀회>,김영하 p.92

평범함과 다양성을 가진 개인의 일상을 탐색하면서, 색다른 방법으로 그 내면의 복잡 다단한 욕망과 일상의 짓궂은 운명 같은 것에 반항하는 주인공들은 여타의 소설속 등장인물과 비슷하다.  그러나, 그들은 좀 색다른 방식으로 김영하의 문장속에서 변이를 일으킨다. 소설 <로봇>의 수경은 궁핍한 삶을 살아가는 보통의 직장인처럼 보인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어떤 남자가 그를 스토킹 하는건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 불청객은 불쓱, 그저 겉모습에 반해 그의 회사까지 찾아와 구애를 표출한다.  얼핏 보기엔 순애보 같은 사랑 이야기가 전개될 것 같으나, 실상 주인공 수경은 사장과 은밀한 관계를 짓고 있고, 직원들은 그런 수경을 외면한다.  그 은밀한 관계가 수경의 궁핍과 가난 때문이란 것을 가련한 변명처럼 보여주며 또다시 독자는 수경의 처지를 이해하려 할 때, 수경은 지하철 `우연남'과 시시껄렁한 로봇 3원칙을 들먹이며 진한 섹스에 몰두한다.  김영하의 이야기는 의미 짓기를 거부한다.  이야기는 전혀 교훈적인 방면으로 나아가질 않지만,  지상의 어느 지하철 역, 개찰구를 통과하는 한 여성의 삶속엔 존재할 것만 같다.  그러나, 사건의 허무맹랑함을 짓는 작가는 이야기 곳곳에 깃발처럼 자본주의와 탐욕에 물든 세상을 부표한다. 

"모래폭풍이 부는 도시라니, 멋진걸. 목이 칼칼해지는걸 느끼면서도 그녀는 황사라는 자연현상에 매혹되었다. 황사는 평등했다.  황사는 어디에나 있었고 그것 때문에 모두가 함께 고통을 겪었다. 실로 공평한 재난이었다.  먼지는 일억원이 넘는 고급 승용차의 보닛 위에도, 오십만원짜리 스쿠터 위에도 모두 내려 앉았다. 황사가 지나가는 동안엔 멋진 빌딩도 화려한 쇼윈도도 모두 별볼일없었다." <로봇>, p.21 

거울처럼 독자의 평이한 내면과 리얼한 현실을 비추어주는 작품이 없는건 아니다.  단편 <여행>과 <아이스크림>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결혼을 앞둔, 옛 연인을 납치하는 <여행>속에 등장하는 장면들과 대사들은 가장 보편적이며, 익숙한 방식으로,  독자의 경험을 추스린다. 결혼을 앞둔 수진은 오빠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빠한테는 말해줘야 할 것 같아서, 그게 예의인 것 같아서"(p.37)  소설속 대사 한 마디로, 독자의 사랑에 난 흠결들을 보듬아 앉는 솜씨가 놀랍다. 이 보편적인 사랑의 패악은 드라마처럼 낯익지 않은가?  강제적으로 여행길에 오른 수진과 오빠의 평범한 대사와 분위기를 중계하고 있는 이 소설은 마지막 수진의 이상한 대사를 통해 그 진의가 확인된다.  여행지에서 괴한에 쓰러진 오빠를 엠블런스에 보내고, 관계를 부정하며 동승을 거부한 수진이 택시 한대를 잡고서 택시기사와 나누는 대화는 이렇게 편리하고 사무적일 수 있나?

"서울에 무슨 급한 일이 있나봐요?"
제가 곧 결혼을 해요...."
  p.61 <여행>

<아이스크림>속 가난한 부부 동규과 혜선은 어떤가?  IMF 시절의 가난한 젊은 부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유머와 페이소스를 적절히 배합한 유쾌한 소설이다.  가난한 부부에게 유일한 낙은 동네 슈퍼에서 매번 따로 포장된 사각형의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일이다. 따로따로 포장된 아이스크림을 베어먹는 일은 가난한 시절을 견딜 수 있는 그들의 호사였다. 그러나, 이 아이스크림이 배신을 한다. 기름냄새가 나는 아이스크림을 맛보고, 소비자상담실에 전화를 걸고, 곧 그들의 아파트에 제과회사 부장이 007 가방을 들고 모습을 드러낸다.  아이스크림을 조사하는 척 하면서 기름냄새가 나는 그걸 몇개나 먹어치우는 부장은 부부가 보기에 안쓰럽고 동시에 분통 터진다.

"그러더니 내용물을 통째로 입에 넣었다. 동규와 혜선은 예기치 않은 전개에 놀랐다. 회사를 위해 저렇게까지 몸을 던져 충성을 하다니! 동규는 대기업의 기업문화에 주눅이 들면서 동시에 먹고사는 일의 숭고함에 대해 새삼 경건한 마음을 품었다."  p.161 <아이스크림>

이후, 동규의 상상은 유쾌하지만 동시에 측은한 시절을 상징한다.  제과회사 소비자 상담실의 대기실 구석, 명퇴를 당하고 50줄에 새로 입사한 대기업 부장들이 007 가방 하나씩을 들고 앉아 있다. 전화가 오면 출동을 할 요량으로 마치 군대의 5분 대기조 꼴이다.  동규네처럼 까다롭지 않고, 고급 초콜릿 선물세트로 어물쩡 넘어가는 고객이 있는 반면 그 앞에서 기름냄새 나는 스넥이나 아이스크림을 다 먹어치워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상은 재미있지만, 씁쓸하다.  유머와 페이소스는 같이 오는가?

"저는 인간들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어리둥절한 채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다가 결국은 죽어 사라지는 존재라고 봐요. 물론 여러 가지 영생에 대한 관념들도 있지만, 저는 그런 관념에는 동의하지 않아요. 그것에 관해서는 뭐랄까, 아주 오래 전부터 도저한 허무주의를 갖고 있었어요. 제가 이십대 후반에 쓴 소설에 나타난 허무주의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젊어서 그럴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계속 보신 분들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을 거예요.  앞으로도 저는 별로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문학평론가 김수이와의 대담, 2007년

의미를 탐색하고, 의미를 생산하는데 주력하는 기존의 소설과는 다른 의미의 생성과 탐색 끝에, 허망하게 결말을 구성하고 생성된 의미를 해체시키는 방법은 김영하 소설의 일상다반사한 전략이다.  의미를 탐구하는 독자들은 이 허망한 결론과 가벼운 서술에 불만과 어리둥절함을 갖고 있겠지만, 이것이 근원적으로 작가의 허무주의적 세계관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이러한 성향은 여성화자를 앞세운 연애소설 <마코토>의 이야기를 통해 또다시 재연되는데,  한국 대학원에 유학온 일본인 남학생 마코토를 짝사랑하는 나와 나의 경쟁 상대로 등장하는 학우, 현주의 모든 것을 곡해하는 `나'는 그의 아버지의 직업을 의심하고, 마코토와 그의 사랑을 시기하며, 결국엔 현주가 사람들 앞에서 자주 쓰러지는 위중한 병세까지도, 쇼에 지나지 않다며 확신케 된다.   소설은 마코토와 현주의 사랑 끝에 물러서는 `억울한'  피해자로 나를 서술하다가 결국 그 모든 것이 나의 오해였다는 것을 알고서도 별다른 양심의 가책이나 미안함 따위보다는, 잊혀진 사랑과 재회하고 다시 `가미카제 특공대처럼 내 불타는 입술을 그대로 내리꽂고야 마는' 사랑의 어떤 결말을 열정적으로 서술한다.   현상에 대한 고민이나 현상에 대한 의미, 보다는 현상에 임의로 대처해 나가는 나의 사랑방식은 아무래도 현실적이지 않지만, 어떤 개인의 현실과 빼닮은 이중성을 갖는다.  있을 것 같은 이야기로 시작해, 있어선 안되는 이야기로 흐르다가, 결국엔 그 모든 이야기의 의미를 비약하는 방식은, 김영하의 고백처럼 소설이 허무주의에 닿아 있음을 증거한다.

"도둑키스와 어설픈 포옹은 생각보다 오래도록 지속되었고 나는 거기가 어디인지, 내가 누구와 키스를 하고 있는지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 아득해지는 감각 속에서 내 영혼이 마치 잘 맞은 야구공처럼 펜스 너머 저 광대한 우주로, 하나의 작은 점이 되어 사라져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암전. "  p.137 <마코토>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이자 백화점의 판매원인 `정'을 사랑하는 경찰 `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 <조>에선 그에게 구애하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연민에 가득한 눈빛으로 서술한다.  조는 백화점의 도둑들을 체포하고, 그들을 정의롭게 처단하는 인물이지만 도둑에게 빼앗은 비싼 시계를, 은밀히 `정'에게 다시 보냄으로써 타락의 순간은 어느 누구에게나, 어느 순간에나, 가능할 수 있다는, 타락의 일상성을 고발한다.  <퀴즈쇼>의 두 등장인물 `은이'와 `동국'은 어떤가?  무참한 범죄로 부모를 잃은 은이가 인생에 맞서는 담담한 태도는, 제법 비범한 깨달음 덕분인데 사건의 비참함 보다는 그 이후를 `잘 살고 있는 청춘들'의 모습은 어떤 담대한 지혜를 주는 듯 하다.

"난 열여섯 살 이후로 깨달은 게 있어. 하고 싶은 걸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야. 그럼 늦어버려. 우리 아빠는 정말 완벽한 사람이었어..그런데.. 그렇게 완벽한 분도 한 치 앞을 못 내다보는 게 인생이야. 인생이라구. 니가 그런 걸 알아?"  p. 247-248  <퀴즈쇼>

김영하의 소설을 읽으며, 일상의 모든 것은 소설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다. 단지, 어떤 문장으로 어떻게 현실을 프리즘 하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김영하의 소설은 전혀 소설 답지 않다.  이야기에 특별함이 없고, 별다른 흥미로움을 발산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야기가 평탄한 듯 하지만 어느 순간 비약하면서 색다른 결말에 도달한다.  과도한 성애가 드러나진 않지만, 끊임없이 감추어진 욕망을 드러내고(로봇,밀애)  자본주의의 물신적 타락을 비난하지 않지만, 은밀히 비꼬며(아이스크림,퀴즈쇼),  타인과의 소통불능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지만 극복을 위한 나름의 투쟁을 전개한다.(마코토, 여행)

김영하의 작품은 이번 단편집이 처음이다. 그러나, 나름 김영하를 주목해왔다.  1995년 하이텔 시절(대학원에 재학중이었을까?), 그가 게시판에 올려논 짧은 소설이나 평론들을 읽은 기억이 나며, 그 색다른 강렬함은 지금껏 유효하다.(나는 그 시절 군인이 되기 전이었다)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최근 그의 작품들은 외국에서 받는 인세가 국내 인세를 초과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은 미국이나 유럽 뿐 아니라, 제 3 세계의 나라들에서도 번역돼 출판되고 있고,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 시대에 가장 세계적인 작가가 그이며, 한국의 하루키에 버금갈 작가라는 것을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싶다.  이 모든 건 어쩌면,  김영하가 짓는 이야기가 세계 독자들의 보편적 지지를 받아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변해서 이제는 세계가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 이런 비루한 일상 속에 갇힌 인간들의 삶을 다루는 문학들의 시대가 왔어요. 그 점에서 이런 식의 고민을 하는 작가도 제가 마지막인 것 같아요. 제 뒤에 나온 작가들은 저처럼 왜 내 삶이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이렇게 평범한가, 같은 고민은 더 이상 안 하는 듯 해요."  문학평론가 김수이와의 대담, 2007년

문학이 시대를 해석하고, 비범한 인간들을 논하며, 역사의 아이러니를 고발하고, 이념의 경중을 따져들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세계는 더이상 그런 재밌는 화제들을 양산해 내지 않는다.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에 매몰돼 살아가고 있다.  정치적인 이슈들에 민감하지 못하고, 선거날엔 투표보다는 아직껏, 유흥을 즐기는데 앞장서고, 아니 그보다는 하루하루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과감히 정치적 관심을 끊고 자신의 삶의 반복성 속에서 지겨움을 거슬러 재미를 찾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김영하의 허무주의적 소설들은 이 `개인'들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영웅과는 거리가 멀고, 비범함 보다는 비루함이 가득한 사람들을 다루고 있는 소설은 그래서 독자와 가깝다. 친숙하다.  비루함은 이제 문학의 본령이 되었다.  거대담론은 저리가라.  흩어진 개미들의 삶이 문학세계의 흥미진진한 이야깃 거리들을 창출해 낼 것이다.  미래는 그들의 것이다.   

 


201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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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에이전트의 시대 - 개정판
다니엘 핑크 지음, 석기용 옮김 / 에코리브르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경영학의 구루 피터 드러커는 미래 사회는 지식 노동자들이 주도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평균 지속 년수가 30년에 지나지 않는 기업들과 비교해서 지식을 가진 노동자는 기업간 이동성을 무기로, 오래도록 장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1960년, 노동자의 새로운 미래를 예언한 피터 드러커의 직감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피터 드러커의 노동자는 여전히 `조직'에 속해서 일하는 존재다.  조직 노동자는 여전히 조직의 명령과 통제 아래 있었다.  그는 조직들이 탐내는 `지식'을 갖고 조직간 이동을 할 수 있었지만 언제까지 조직의 규율 아래 통제받는 노예와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신무기를 획득했지만 조직의 억압아래 `자유'와 `창의성'을 획득하진 못했다. 

대니얼 핑크는 그의 <프리 에이전트의 시대>에서 피터 드러커가 고안한 지식 노동자에 비로소 `자유'를 선언한다.  프리 에이전트로 독립한 노동자는 이제 '무한한 자유를 가지며, 진실해지고, 자신을 스스로 책임지면서, 자기 나름대로 성공을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세상이 정해놓은 성공의 조건이나 부의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  대부분의 조직 인간들은 그와 반대다.  그는 자유를 헌납하고 조직에 충성을 약속하며 조직의 사명 아래 일한다. 그 대가로 그는 꼬박꼬박 월급을 받고 복지 혜택을 수혜하며, 비로서 안정을 선물로 받았다.  그런데, 이게 왜 과거형으로 서술되어야 하는 걸까?   신자유주의가 만연되기 20-30년 전까진 조직과 조직인간 사이의 의리와 서약은 굳건했다.  마치 조폭들의 세계와 다를 바 없이, 조직에 충성을 서약한 조직 인간이라면, 조직은 노동자의 생존을 담보해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조직이 조직 인간을 배신하고 말았다. 그 서막은 우리로 치자면 IMF 시절 혹독한 구조조정이었다.  일방적인 해고 통지서로 충성을 서약하고, 생존을 담보받았던 개인은 조직에서 과감히 밀려났다. 그것은 한번의 배신이 아니다. 상시적인 구조조정은 노동자들의 자존심을 짓뭉게고, 안정을 박탈하는 수단이 되었다.  상시적으로 조직 인간을 내치는 조직에 지금도 여전히 노동자들은 충성을 서약하고, 어려운 입사시험을 뚫고 힘겹게 들어간다.  그러나, 이미 배신의 귀재가 되어버린 조직앞에 노동자의 충성 서약이란 어떤 진실성이 담길 수 있을까?    핑크는 오랜 시간 무해고 정책을 고수했던 IBM이 1992년 무려 12만명의 직원을 해고했던 사례나 노동자를 `가족'이란 개념속에 끌어넣으며 1916년 창립 이래 부모와 같은 보호자 역할을 자처했던 보잉 사가 1990년대의 경기 침체를 겪으며 가족에서 `팀'으로 직원을 은밀히 격하시킨 예를 끌고와 윌리엄 화이트가 그의 <조직인간론>을 통해 노동자에게 헌사했던 화려한 용어인 `조직인간'의 종말을 선언한다.  

산업혁명 이후, 일반화된 조직 노동자는 비교적 최근의 개념이다.  그 전까지 인간의 노동은 가내 수공업 중심이었다. 그는 빵을 만들거나 구두를 수선하거나 철을 달구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생산 수단은 모두 가정에 귀속돼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니,  오늘날처럼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 전쟁을 치르며 직장에 나가지 않았고,  보스나 상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다.  핑크는 조직 인간이 출연한 역사적 우연성과 오늘날 조직 인간이 처한 우울한 환경을 딛고, 이제 21세기 신(新)경제를 주도할 새로운 세력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그는 프리 에이전트다.  

이 책은 프리 에이전트(조직에 소속되지 않고, 독자적인 재능과 지식을 바탕으로 1인 기업을 이끌어 나가는 새로운 경제 주체)의 처음과 끝을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프리 에이전트는 익숙한 노동자의 개념은 아니다.  그 용어 자체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몹시도 자유롭지만 여전히 조직 노동자로서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조직에서 벗어나 혼자가 된다는 것은, 두렵고 낯선 일이다.  그러나, 핑크는 이 편견을 이 책에서 치밀한 자료조사와 통계, 그리고 미래적인 식견으로 돌파한다.  전 미국을 자동차로 여행하며, 그는 수많은 프리 에이전트를 만나고 그들의 삶과 이야기를 듣고 기록했다.  이 책은 조직 인간에 익숙한 대기업의 보스나 그들의 밑에서 조직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수많은 비자발적인 노동자 노예들에게, 새로운 비전과 견해를 심어주기에 충분한 책이다. 

"이 책은 프리 에이전트에 대한 책이다.  이 용어가 모호하다면, 그 이유는 내가 지금 얘기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묘사할 수 있는 그 어떤 다른 표현 방법도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거대 조직체의 굴레에서 자유롭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책임지는 에이전트들이다.  그들은 미국 사회에 새로이 등장한 전형적인 노동자상이다.  오늘날 또 다른 경제 부흥의 절정에서 미국 경제의 새로운 상징은 속박되지 않은 독립 노동자, 기술과 지식을 겸비하고 스스로를 의지하는 자, 자기의 길을 스스로 계획하는 초소형사업가들이다."   대니얼 핑크, <프리 에이전트의 시대> p.33 

우선, 저자인 대니얼 핑크 자신이 프리 에이전트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 책의 도입부분을 좀 독특하게 서술했다. 클린턴 정부 시절 부통령이었던 앨 고어(Al Gore)의 수석 연설 원고 작성자였던 그는 백악관에서 조직 인간으로서 마지막 직장 생활을 청산하기 전의 기억을 들려준다.  푹푹찌는 6월의 어느날, 그는 에어컨이 고장난 사무실에서 연설문을 연달아 작성하다 백악관의 로비에다 구역질을 하고 만다. 그 사건 이후, 그는 정규직이었던 자리를 그만두고 은퇴를 선언한다. 그리고 그의 농담섞인 이야기에 따르면, `화이트 하우스'가 아닌 집의 서재인 `핑크 하우스'에 사무실을 꾸리고 프리 에이전트로 거듭났다.  그 이후 핑크는 조직에 속한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이 열정에 가득한 책은 그러니까 다름아닌 자신의 직업 철학에 대한 핑크의 간절함이 가득하다.  사실, 핑크처럼 더운 여름에 회사에서 일하다 온갖 스트레스에 졸도할 지경에 이른 조직 인간들이 한둘이겠는가?   

핑크에 따르면, 조직 인간은 인류 역사상 산업 혁명의 영향아래 급조된 몹시도 비인간적인 형태의 노동자상이다. 인간이란 본래 통제와 억압을 싫어하며, 자유로운 분위기 안에서 주도적으로 일할 때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다.  조직 속에서 일하는 인간은 끊임없이 일 외적인 부분들에 신경을 써야 하고, 수많은 부분에서 구속을 받고, 시간을 낭비하며, 노동과 휴식을 철저히 분리하며, 노동을 통해 순수한 기쁨을 만들어 낼 가능성을 줄인다.  한번 프리 에이전트가 된 이들이 다시는 조직 인간으로 살아가려 하지 않으려는 것도 다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조직 인간과 프리 에이전트를 가르는 확실한 차이점은 여전히 존재한다.  소득과 복지 혜택의 안정성은 여전히 조직 인간이 가진 큰 장점이다. 그러나 핑크는 이 책에서 중요한 개념 한가지를 끌고 온다.  인간의 노동이 단순히 금전적인 보상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노동하는 이유를 조직인간론에서 몹시도 단순화시켜 놓았다.  돈과 노동을 맞바꿈 하는 것이다.  매슬로의 욕구단계설의 최 상위를 지키는 자기실현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생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다.  일반적인 노동은 그러나 이 욕구단계설의 최상위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프리 에이전트는 노동을 통해, 금전적 보상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노동을 통해 삶을 누리고, 기쁨을 얻는다.  고소득과 프리 에이전트는 동의어가 아니다.  프리 에이전트에게 노동은 행복한 삶이자 인생이다.  이것은 노동 개념에 관한 코페르니쿠스적 인식의 전환 아닌가? 

"시간은 또한 인간이 존재하는 기간 전체를 꿰뚫고 흐른다. 1년을 계속 이어놓으면 그것이 결국 `일생'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여기서도 프리 에이전트는 무언가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루, 1주일, 1년의 각 단위에서 보았듯이, 낡은 방식은 어지간히 획일적이다. 전형적인 일생 역시 정해진 길을 그대로 따랐다.  일정 기간의 교육을 받고, 이어서 몇 십 년간 일하고, 그리고 다음 짧은 기간의 은퇴기가 이어졌다. 프리 에이전트의 방식은 그런 표준적인 접근을 거부한다."  p.173 

프리 에이전트는 평생 교육을 추구한다. 핑크에 따르면 기존의 교육은 `추수감사절 칠면조 모형'에 의존한다. 즉, 아이들을 12년간의 정규 교육이라는 오븐 속에 집어넣었다 충분히 익을 때까지 조리한 다음 그들을 꺼내 고용주에게 봉사하도록 헌납한다. 그러나 이 모형은 시간 주기가 가속화 되고, 기술이 신속하게 퇴보해가고, 조직의 수명이 짧아지는 오늘날에는 맞지 않는다.  평생 교육을 추구한다는건, 프리 에이전트에게 은퇴가 없다는 얘기와 같다.  IT기술의 발전과 인터넷을 통해, 프리 에이전트는 세계를 무대로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환경에 접어들었다.  68세의 은퇴자였던 베티 할머니가 인터넷 세계에서 베티탓컴을 통해 거대 기업에 지분을 매각하는 프리 에이전트로 성공한 사례를 핑크는 책의 시작과 끝 부분에 싣고 있다. 베티 할머니에게 은퇴의 전후를 구분짓게 하는건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직업은 계속되어야 할 삶이자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핑크는 신경제의 주역이 프리 에이전트이자, 동시에 그것은 여성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여성은 현재의 조직 사회에서 여전히 암묵적인 차별을 받는다.  승진 최상한선을 정한것은 남성 조직이다. 그에 맞서는 최선의 지름길은 옆문으로 조직을 빠져나오는 것이라고 그는 조언한다. 실제로 1999년 미국은 전체 사업체 수의 38%를 여성이 차지하며, 온라인 접속 경제에서 주 고객은 여성이고, 창업률 자체에서도 남성을 앞지르고 있음을 그 증거로 든다. 그것과 더불어 여성이 사람과의 친화력이 앞서고, 솔직하며, 프리 에이전트의 네가지 가치(자유, 진실성, 책임감, 스스로 정의하는 성공)와 훨씬 더 잘 조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대니얼 핑크는 21세기는 태평양 시대나 미국의 시대, 라는 말보다는 여성의 세기라고 하는게 옳다고 주장한다.  

"소년들은 예상했던 대로 `대장놀이' 같은 것을 하고 노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최고, 즉 가장 거칠고 가장 힘센 골목대장이 됨으로써 작은 공동체 내에서 높은 지위를 획득한다. 예를 들어 바비가 빌리를 넘어 뜨리면 바비가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반대로 빌리가 바비를 넘어뜨리면 바비는 낮은 지위로 떨어진다. 아무도 넘어뜨리지 못하는 아이는 최말단을 차지하게 된다. 소녀들도 경쟁적인 면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 애들은 전혀 다른 규칙에 따라 놀더라고 로렐은 말했다. 소녀 중에서 최고의 지위를 얻는 아이는  다른 애들을 물리칠 수 있는 아이가 아니다.  최고는 바로 다른 아이들을 가장 잘 연결해주는 아이다. 그리고 그렇게 맺어준 만남이 호혜적인 관계일 때 특히 더 지위를 인정받는다. 이제 나에게 한번 물어보라. 진정한 신경제에서 당신 같으면 어느 성(性)에다 돈을 걸겠느냐고."  p.428-430 

청년들이 취직을 못해 고민하고, 화려한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프리 에이전트를 꿈꾼다는 것은 어불성설인줄 안다. 40대에 은퇴를 생각해야 하는 그런 나라에서, 조직 인간이 되기 위해 수많은 경쟁자들을 꺽어야 하는 현실은, 암담한 노동시장과 구직자의 자화상이다.  그러나, 왜 우린 구조조정을 통해 노동자를 헌신짝 버리듯 쉽게 내다버리는 그런 조직으로 기어코 들어가려 하는 걸까?  핑크의 이 당당한 프리 에이전트의 찬양앞에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더라도 노동자가 거대 조직에서 일하게 된 것은 겨우 200년도 되지 않았다.  나또한 조직 인간이긴 하지만 때로는 노동자가 아니라 노예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심상찮게 많다.  정해진 출근 시간에 단 몇 분이라도 늦지 않기 위해, 위험한 곡예운전을 일삼은 아침, 퇴근 시간만 다가오면 이상하게 바빠지는 상사가 미워지던 저녁녘은 일상다반사다.  법적 휴가를 쓰기 위해서도, 업무 스케줄을 고려해야 하고, 형편없는 보스들이 내 눈을 거스를 때도 묵묵히 눈감아야 했다.  왜냐하면, 나를 먹여살린다는 그 이유 한가지 때문에 말이다.   

여행 작가들의 삶을 기록한 책 <슈퍼라이터>란 책에서 작가 이지상은 다음과 같이 썼다. 

"몇 년만 더 다니면 해외 지사에 파견 나갈 수도 있었고 평상시에도 할인표가 나와서 여행하기에는 정말 좋은 직장이었다. 몇 달을 망설였으나, 결국 사표를 내기로 결심했다. 즐기고 돌아오는 짧은 여행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사건들이 매일 매일 축제처럼 터지는 `삶의 모험'을 원했기 때문이다."   여행작가 이지상 

대니엘 핑크는 미래 신경제의 주역은 프리 에이전트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피터 드러커가 지식 노동자의 시대를 예언한 것처럼, 그의 예언이 적중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수많은 조직 인간들이 지금 조직의 비인간성과 비효율성을 혐오한다.  한 사람의 보스와 피라미드에 가까운  먹이사슬을 품고 있는 조직속에서 노동자는 통제와 억압에 내몰린다.  4,50대 돌연사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핑크는 프리 에이전트의 4가지 가치를 자유, 진실성, 책임감, 그리고 스스로 정의하는 성공으로 요약한다.  누구나, 이 4가지 가치를 실현할 `용기'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진정 작가 이지상의 말처럼 `매일 매일 축제처럼 터지는 삶의 모험'을 우리의 노동 가운데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인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질식시키는 삭막한 조직으로부터 한가지 해방의 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대니얼 핑크의 <프리 에이전트의 시대>는 일독해야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대니얼 핑크는 에필로그에서 프리 에이전트의 미래를 낙관했다.  안정적인 수입과 조직의 전폭적인 지원에서 벗어난 프리 에이전트를 그는 왜 낙관했는가?  그 답속에 프리 에이전트의 미래와 신경제에 관한 핑크의 독창적 견해가 담겨 있다.  

"지금이 좋은 시대건 나쁜 시대건 또 경기가 활황이건 파산 직전이건 상관없이, 어쨌든 오늘날 주사위는 개인의 편에 던져졌다. 그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나의 느낌이 유쾌한 이유이다. 그건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독립성을 주장할 수 있고 자신의 경제적, 개인적 운명을 스스로 이끌어갈 수 있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노동의 템포는 빨라질 것이고, 삶의 요구는 점점 맹렬해질 것이다. 하지만 더 다양한 배경을 가진 더 많은 사람들이(어쩔 수 없이 프리 에이전트가 되었건, 자발적으로 뛰어들었건) 굴종에서 오는 안락함을 벗어 던지고 자신의 진정한 잠재성을 발현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그것은 분명한 진보이다."   에필로그 p.435  

 



 

201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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