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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자서전 - 전2권 ㅣ 김대중 자서전
김대중 지음 / 삼인 / 2010년 7월
평점 :
오직 철학자 군주(philosopher-king)만이 국민을 인도할 자격이 있다.
한 권의 책이 위대한 것은 한 사람의 기억속에 무언가를 깊이 각인시킨다는 데 있다. 이것은 어떤 권위나 편견 때문은 아니다. 현실과 사상이 명확히 일치될 때 느끼는 공조의 감정 때문이다. 내가 철학에 대해 관심 갖게 된 것은 20대 시절 접한 어떤 교양철학서를 통해서다. 미국의 교육자 윌 듀란트가 쓴 <철학이야기The Story of Philosophy)가 바로 그 책이다. 평범한 교사였던 윌 듀란트를 일약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이 저작은 내게 서양 철학의 기본 지식을 주었고 권위가 깃든 사상도 비판해야 한다는 근거를 안겼다. 그리고 이후 철학에 대해 이야기 할때마다 바로 이 책에서 말한 철학자와 그들의 철학을 생각하였다. 1992년이었다. 정치인 김대중이 제 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하고 정계 은퇴 선언을 하던 시점이었고, 나는 이 책을 읽고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바로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플라톤 철학에 대한 서술이었다. 김대중은 40년의 정치생활 가운데, `다섯 번 죽음의 고비, 6년 동안의 옥중 생활, 수십 년간의 감시와 연금, 망명 생활'을 극복했다. 그러나 1990년 1월 노태우와 김영삼 김종필의 3당 합당을 통해 탄생한 민자당의 대통령 후보인 김영삼에 200만 표 차이로 지고 말았다. 1992년 12월 19일 김대중은 패배에 대한 충격이 가시기 전, 국민을 상대로 하나의 연설을 했다. 바로 자신의 정치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정계은퇴 선언이었다. 그 때의 허탈감은 어쩌면 내게도 컸던가 보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한 정치인의 `사라짐'이 아니라, 그가 가진 어떠한 `능력'과 `지식'이 더이상 `쓸모없게' 된 사실이었다. 곧이어 나는 플라톤의 이 문장에 이르게 되었다.
"부로 인해 마음이 들뜬 장사꾼들이 통치자로서 군림할 때 국가의 파멸이 온다. 혹은 장군이 군대를 이용하여 군사 독재를 수립할 때 파멸이 온다. 생산자는 경제 분야에서, 군인은 싸움터에서 그 진가를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다. 그들 양자 모두 관직에는 가장 적합하지 못하다. 그들의 거친 손에 의해 수립된 정책은 정치의 도(道)를 타락시킨다. 정치는 과학이요 기술이다. 정치가가 되려면 오랜 준비와 체험을 필요로 한다. 오직 철학자 군주(philosopher-king)만이 국민을 인도할 자격이 있다. " <국가> 플라톤
세계가 인정한 민주화 지도자였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조국 한쪽에선 `선생'으로 불리웠고 한쪽에서 `대통령병 환자'로 매도 되었다. 선거에만 나오면 정치권은 그를 용공으로 내몰아 사상을 의심했고, 언론은 왜곡된 기사를 난발하여 궁지에 넣었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후보의 비전과 정책일 테지만, 우리의 선거문화는 항상 북풍이나 지역감정을 앞세워 인간을 흠짓내고 모략하는데 치중했다. 김대중은 대표적인 희생자였다. 그런 현상은 여태껏 변하지 않고, 최근까지 애용되는 망국병이다. 1990년 김대중의 은퇴는 그의 진정성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실망과 허탈감을 주었다. 김대중은 <자서전>에서 은퇴 선언후, 많은 국민들의 전화를 받았다고 적었다. 그 가운덴 전화를 걸어 아무 소리 없이 울기만 하던 지지자도 있었다. 침묵속의 흐느낌, 어떤 말로도 그 패배의 억울함과 고뇌를 설명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당시 한둘이었겠는가?
" 동교동 우리집으로 편지와 전화가 쇄도했다. 전화는 끊기가 무섭게 다시 울렸다 . 어떤 이는 전화를 걸고는 그저 울기만 했다." <김대중 자서전1> p.607
서양 철학의 긴 역사가 플라톤 철학의 주석이라는 말이 있다. 이천년전 사람인 플라톤은 그 이후 등장한 모든 서양 철학자의 명실 상부한 아버지라는 의미다. 철학은 다양한 방면으로 발전하고, 천재들에 의해 진보하였지만 플라톤을 넘어서지 않았고 넘지 못했다,는 의미다. 인용한 플라톤의 <국가>의 일부분은 내게 왜 그가 그러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일깨웠다. 시간의 구애를 받지않고 핵심을 찌르는 그의 사상은 놀라웠다. 정치군인에 의한 독재에 시달렸던 한국 현대사, 플라톤은 명확히 얘기하고 있질 않는가? 군인과 장사꾼은 통치의 적임자가 아니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철학자 군주'란 용어는 지극히 이상적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민주주의는 꿈이요 이상이었다. 플라톤의 이상적인 군주관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김대중의 은퇴를 보며 양식있는 지지자들이 느꼈을 분노와 안타까움은 바로 여기서 기원한 것이다.
40여년 정치 생활과 민주화 투쟁을 통해, 김대중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갖춘 준비된 지도자로 성장했다. 의정 생활 동안엔 국회 도서관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의원으로 유명했고, 그러한 노력으로 끊임없이 정책들을 개발했다. 그 결실이 바로 경제분야에선 <대중 경제론>으로 통일 분야에선 <3단계 통일방안>으로 그 결실을 맺었다. 6년의 감옥 생활 동안 많은 책을 읽었고 훗날 감옥에서의 6년간을 대학 생활로 바꾸어 부를 정도로, 독서의 가치와 지식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다. 망명 기간동안 외국의 대학이 그에게 많은 학위를 수여했고,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는 방문하는 지역마다 대학으로부터 학위를 받았다. 그의 민주화와 인권를 향한 비전과 지식은 한국 현대사에서 철인(哲人)에 근접한 지도자가 바로 그였음을 증거한다. 오직 철학자 군주만이 국민을 인도할 자격이 있다,는 플라톤의 선언이 김대중이란 정치인을 통해 우리시대에 실현됐다.
상어에게 하반신을 뜯어 먹혀도 상반신만으로라도 살고 싶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제국주의로부터 독립한 150여개의 크고 작은 나라 가운데, 오늘날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를 가장 선명하게 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불과 60년 전 한국 전쟁 당시, 폐허의 땅덩어리가 이젠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고, 인권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언급했듯이 1960년대에는 케냐가 한국보다 더 잘 살았다. 오늘날 그 두 국가는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한다. 김대중은 사회주의의 몰락을 공산주의를 했기 아니라 민주주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 자서전에서 단언했다. 민주주의는 시장 경제를 하기 위한 초석이었다. 김대중은 어린 시절 일제 치하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수많은 차별과 반민주적인 행태를 겪었다. 그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품게 된 것은 이러한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이리라.
그러나, 오늘의 민주주의가 결코 공짜가 아니었음을 우리는 그의 자서전을 통해 확인한다. 이승만의 자유당 독재가 판을 치던 1954년 제 3 대 민의원 선거를 통해 정치에 입문후, 그는 자유당의 부정 선거와 방해 공작을 통해 선거에 나와 무수히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부정과 비리가 일상화된 정권이 4.19 학생 혁명을 통해 무너지고 난후 그는 인제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섰으나 부재자 투표 제도의 도입으로 또한번 패배한다. 그러나 장면 총리는 김대중을 대변인으로 지명했다. 그의 정치 인생과 한국 민주주의가 꽃을 피울 지점에 있었다. 그러나 역사적 반동의 힘은 그와 대한민국을 독재의 시련속에 빠뜨린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육군 소장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 이후 박정희가 자신의 충신이었던 김재규의 총탄에 죽임을 당하고 다시, 전두환 일당의 정치 군인들이 518를 일으켜 정의 사회 구현을 내건 제 5 공화국을 건립한 이후,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종적을 감추었다. 그 시련 한복판에 김대중이 있었다. 그는 이땅의 민주주의가 유린 당하는 가장 분명한 증거가 되었다. 투옥과 망명, 연금과 사형선고가 그 시절 민주주의의 운명이었고 김대중의 운명이었다. 그 어느 한국 정치인이 이 험난한 민주화 투쟁의 경험을 간직하고 있는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강제 수용소에 감금되었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훗날 <죽음의 수용소에서>란 책에서 강제노동과 가스실의 죽음이 일상화된 수용소를 회상하며 인간이 절박한 순간를 이겨낼 수 있는건 하나의 꿈을 통해서라고 쓴 바 있다. 김대중 자서전의 한 귀퉁이에서 그가 자신을 겁많고 눈물많은 사람으로 서술한 부분를 읽었다. 죽음의 고비를 넘겨온 투사의 겸손처럼 넘어가려 했다. 그러나, 죽음이 다가온 순간 그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그도 여느 보통 사람처럼 공포에 떨었고 죽지 않으려 발버둥쳤다. 그럼에도, 그는 그 순간을 넘기자 또다시 자신의 길을 이어간다. 뒤돌아서거나, 곁길로 나아가지 않고, 살아온 비전과 이상에서 한틈의 벗어남이 없었다. 민주화와 시장경제, 그리고 한민족의 화해와 평화적 공존, 통일에의 꿈이 그의 길을 지켰다. 용기는 말에서가 아니라 행동에서 시작됨을 그는 입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이 자서전의 가장 비장한 순간은 자신에게 죽음이 임박했을 때를 서술한 장면이다. 1973년 중앙정보부가 주도한 김대중 도쿄 납치 사건과 1980년 신군부가 조작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판결에서, 그는 죽음의 곁에 다가 앉았다. 어떤 소설이 이보다 더 극적일 수 있을까? 그 순간을 회고하는 그의 언어에서 한 정치인의 생명과 민주주의가 벼랑끝에 선 지극한 절박함과 진실성이 전해온다.
"`물속에서 쇳덩이를 벗길 수 있을까. 아마 힘들 것이다. 바닷속이니 몇 분이면 모든 것이 끝날 거야. 고통도 사라지겠지. 그러면 내 고단한 삶도 끝날 거야. 어떤가. 이 정도 살았으면 된 것 아닌가.' 그러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다. 살고 싶다. 살아야 한다. 아직 할 일이 너무 많다. 상어에게 하반신을 뜯어 먹혀도 상반신만으로라도 살고 싶다.'" 김대중 자서전 1 p.313
역사는 정의와 양심의 편이다
이 자서전을 매듭짓는 말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그는 "역사는 정의의 편이다" 라고 이 자서전을 끝맺었다. 지난 2009년 6월 11일 6.15 남북 공동 선언 9주년 기념연설은 정치인으로서 마지막 발언이었다. 그는 피맺힌 마음으로 절규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유독 그의 자서전에는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역사와 정의 그리고 양심이다. 무엇이 이 늙고 병든 전직 대통령을 절규하게 하였을까? 몇 년이 지난 오늘의 현실은 그러한 절규를 필요치 않는 세상이 되었을까?
이 자서전을 읽으며 그의 고향인 전남 신안 하의도를 다녀왔다. 김대중이 청년의 꿈을 키워가던 목포에도 들렀다. 그가 머물렀을 장소마다에서 자서전을 펴고 읽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하의도 후광리 복원 생가 곁에 자리한 갯벌에서였다. 가을의 갯바람은 차갑지 않았다. 짠내음이 밀려오긴 했지만, 책읽기를 방해하진 못했다. 동생 대현과 갯벌을 뛰노는 어린 시절 그의 모습이 환영처럼 다가왔다. 소년은 그때부터 꿈을 가졌을 것이다. 갯벌엔 온갖 생명들이 차고 넘쳤다. 개발의 손이 미치지 않은 섬과 갯벌은 여행자에게 자연과 생명의 가치를 무언의 언어로 가르쳐 주었다.
김대중은 정치인으로서 다양한 꿈을 갖고 있었다. 그가 위대한 정치인인 것은 자신의 꿈을 죽음의 위협과 망명, 연금과 고문의 시절에도 지켰다는데 있는게 아니다. 히틀러나 히로히토 천황의 꿈의 가치는 2차 세계대전의 전범 수준의 것이었다. 오늘날 그들을 존경하는 세계시민은 없다. 정치인의 꿈은 인류보편적인 공헌을 담보해야 한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고 남북경협이 주춤하고 천안함 사태 이후 전개된 한미 군사 훈련에서,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미항공모함이 군사 훈련에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주민은 여전히 굶주림에 허덕이는데 3대 세습체제 선전에 열을 올리는 북한 정권은 국민을 굶주림에 방치하고 있고, 남한은 그런 북한에 쌀 한 톨 주는 것을 아까워하는 형국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고령의 이산가족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뜨고 있다. 살아생전에 허리잘린 조국에 태어난 죄로, 고향땅 한번 밟아보지 못하고 혈육의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그들의 한은 죽어서도 풀리지 못할 것이다. 이 모두를 평화롭게 풀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 정치인이요, 그 방법이 올바른 정치다.
김대중의 꿈은 남과 북이 화해와 협력 그리고 통일을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이루는 것이었다 .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도 우리 민족의 일부분이다. 반세기가 넘게 분단되어 있지만 장구한 우리 역사에 비추어보면 그 시간이란 `찰나'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북한을 배고픈 아우에 빗대 형처럼 돌보자고 했던 것이다. 통일은 나중에 하더라도 끊어진 허리를 이어 한반도에 피가 돌게 하고, 이 땅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반도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 사상은 이 지구에 발딛고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거대한 생명 경외의 사상이다. 그는 자서전의 끝머리에서 "세상에 생명보다 위대한 것은 없다" 라고 단언한다.
이제 정치인 김대중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는 영면에 들었다. 역사에서 가정이란 무의미하다. 그래서 이제 그가 연륜과 지혜로 조국에 좀더 기여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이라는 가정은 역사를 써나가야 할 주체인 우리로서는 너무 무책임한 말이다. 이제,우리 스스로 그가 떠난 자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거대한 투쟁을 통해 박정희 군사독재로부터 민주주의를 이루어냈고, 남북의 첨단 무기들이 대치한 휴전선을 뚫어 누구나 그리워만 했던 금강산으로 소풍을 떠날 수 있었다. 분단 후 최초로 남북의 정상이 만나 세계를 감동시켰고, 훗날 북한의 인민무력부장이 청와대를 방문해 한국의 대통령을 예방했다.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그의 재임 기간 동안 현실이 되었다. 하의도 갯벌 소년의 꿈은 얼마나 위대하고 막강했던가?
정치인이 어떤 비전을 품느냐, 하는 것이 한 민족의 운명을 갈라놓고 미래를 결정짓는다. 2차 대전의 독일과 영국에서 히틀러와 처칠은 그 좋은 본보기다. 20세기와 21세기 우리국민은 한 위대한 정치인을 소유했다. 그는 세계가 인정한 한국의 대통령, 김대중이었다. 그가 품었던 인권과 평화의 상상력으로부터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잠시 주춤할 수 있지만 역사가 정의와 양심의 편이란 진리는 불변이다. 그가 최후에 내뱉은 말이자 이 자서전을 끝맺고 있는 말이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한국과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 및 북한과의 화해와 평화에 기여한 한국의 김대중을 선정했다. 한국에서 수십 년간 지속된 권위주의 체제 속에 계속된 생명의 위협과 기나긴 망명 생활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은 한국 민주주의 대변자였다. 김대중은 햇볕 정책을 통해 남북한 사이에 50년 이상 지속된 전쟁과 적대감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이제 한반도에는 냉전이 종식되리란 희망이 싹트고 있다....." 군나르 베르게(Gunnar Berge) 노벨평화상 선정위원장

2010.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