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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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행복전도사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유서 한장을 달랑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을 때 내 감정은 복잡했다.  나처럼 복잡했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다.  적절한 유머, 날카로운 직관, 촌철살인의 비유를 섞어 대중을 사라잡는 그의 강연을 가끔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던 난 항상 느꼈던게 어떻게 저렇게 말을 잘 하나? 였고, 다음으론 아, 행복은 멀리 있질 않구나였다.  그녀의 행복학 강의를 듣고 있으면, 행복해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 같은게 스며들었다.  그의 책이나 강의를 일부러 찾아 읽거나 보진 않았지만, 우연하게 마주하면 귀를 쫑긋 세우곤 했던게 기억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딱 하나 이상한게 있었다.  행복하라,고 말하는 그녀의 표정엔 미소가 없었다는 거였다.  미소? 

얼마전 회사 상사에게 들었던 얘기다.  최근 인턴직원을 뽑는데 심사위원으로 차출 돼 간적이 있단다.  인턴 지원자들 중 상당수가 여대생이었는데, 질문지의 질문 한가지에 모두 같거나 비슷한 답을 내 놓았다고 했다.  질문은 현재 가장 존경하는 인물과 그 이유였고, 답은 한비야요, 이유는 한비야 언니의 용기와 도전의식을 닮고 싶어서였단다.   이 말을 하면서 그 상사는 몹시 회의적이었다.  닮고 싶은 여자가 겨우 한비야냐?  정도로 들렸다.  아니, 왜 젊은 애들이 닮고 싶은 사람이 같을 수가 있나? 라는 의구심도 그의 표정엔 담겨 있었다.   

젊은이건 아니건 누구나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스승이나 멘토를 갖는다는 건 중요하다. 삶이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우리는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용기를 얻고 새롭게 마음을 추스려 자신의 길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전도사는 최후를 행복과는 거리가 멀게 마무리했지만, 그가 쏟아낸 언어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의 죽음을 통해, 행복의 정의나 조건이 바뀐 것은 없다.  우리는 여전히 살면서 행복을 지향해야 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며 행복을 찾아가야 한다.  사는 것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니까.  인턴지원자들이 한비야를 존경하는 인물로 뽑은게 이상하다는, 상사의 의문은 그가 나이들어 젊은 사람들의 요즘 경향에 눈멀다는 증거일 수도 있겠다.  최근 여론 조사에서 한비야는 여대생이 존경하는 인물로,  정치인 박근혜와 한명숙의 뒤를 이어 당당히 3위에 오른적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한비야에 열광하게 하는가 ?  간혹 단독자로서 개인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적이 있다.  군집사회에서 집단에 비해, 개인이란 얼마나 나약하고 소소한 존재인가?  인간은 죽음에 마주하여 사회속에서 개인이 가진 의미에 절망하리란, 생각이 든다. 나 하나 죽는다고 세상이 놀라지도 않을 것이고, 내가 세상에 필연적인 존재도 아니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러나, 군집 이전에 개인이란 얼마나 크고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는가?   명사들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이 어떤 생각을 품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 하는 것이 사회 전체를 긍정과 부정의 한 축으로 움직일 수 있다. 군집의 일부분으로서 개인은 물리적으론 무가치한 존재다. 그러나 군집에 영향력을 발휘해 그 방향을 좌우하는 것도 결국 한 개인일 뿐이다.  개인의 위대성은 그곳에 있다.  

한비야는 키 160에 몸무게 50킬로 남짓의 연약한 여성일 뿐이다.  이 여성이 지금껏 해 왔던 일은 그러나 거구의 남성도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물리적인 힘이 아닌 그가 가진 생각, 비전, 용기, 행동이 오늘 한비야라는 연약한 여성을 여대생들이 존경할 수밖에 없는 인물로 우뚝 세웠다.  인턴심사장에서 앵무새처럼 한비야를 연호하는 지원자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상사에게 그의 책들을 권하고 싶다.  전작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 이은 그의 두번째 에세이집 <그건, 사랑이었네>를 읽었다.  

일찍이 잘나가던 외국계 홍보회사를 때려치고, 어릴 적부터 꿈꾸었던 세계도보여행를 떠났고, 재난 현장를 누비는 월드비전에 입사해 자애와 봉사의 정신으로 목숨을 내건 구호 사업에 치중했던 여인으로서 한비야, 는 너무도 잘 알려졌다. 전작 <지도밖으로 행군하라>에서 그는 월드비전의 구호 현장을 생생한 육성이 담긴 문장으로 엮어내, 뭇 사람들에게 재난현장의 고통을 알리는데 일조했고, 세계시민으로서 왜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 하는지, 뭉클한 감동을 주며 NGO의 구호사업에 인식의 전환를 가져왔다.  신작 <그건, 사랑이었네>는 그와는 좀더 다른 성향의 에세이집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내밀한 삶을 들춰보인다.  거기엔 실패한 첫사랑의 이야기를 비롯해, 소소한 일상의 단편들이 흥미롭게 묶여 있다.  다섯가지 점에서 나는 그를 `마음놓고 닮고 싶은 여자'로 생각한다. 

첫째, 낙천주의자라는 점이다.  사람이란 나이와 조건에 상관없이 온갖 걱정과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오지 여행으로 지구를 몇 바퀴 돌면서 그가 터득한 인생철학은 현재에 맞닥뜨리는 사건 사고들, 마주하는 모든 풍경들을 실컷 보고, 느끼고, 표현하며,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살아가자는 것이다.  마음 졸이며 걱정한다고 해서 우리의 일상사가 단 한가지라도 해결되진 않는다. 일단,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부딪혀 보는 것은 여행이라는 습성 그 자체와 닮아 있다.  여행은 실로 얼마나 많은 불안과 공포가 내포된 행위인가?  그러나, 한걸음 내딛여 보면 불안과 공포의 많은 부분이 거짓임이 판명나는 경우가 많다.   

둘째, 책읽기와 글쓰기를 평생 실천하고 있다.  간혹 신문지면으로 그의 글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이분 글쓰기 내공이 보통이 아니군, 이란 느낌이 들었다.  글이 호흡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란 쉽지 않다. 그의 글은 문장 하나하가 살아 숨쉰다. 군더더기도 찾을 수 없다. 경험과 인상이 짧은 글에 잘 녹아 있다.  그런데,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고교 시절 이후, 1년에 책 100권 읽기를 실천하고 있는 열혈 독서가요, 지면에 발표될 글 한 편을 짓기 위해 거의 예외없이 하룻밤을 지새우는 열정의 작가였다.  

셋째, 옹졸하지 않는 종교인이다.  그는 독실한 천주교도다.  온갖 위험과 비극이 일상화된 구호현장을 다니면서 언제나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나약함과 지혜를 하느님께 의지하고 구했지만 자신의 신앙을 구호 현장에선 내비춘적이 없다.  구호활동의 영역은 전세계를 아우르고 그 지역의 문화와 종교는 판이하게 다르다. 자신의 종교를 내걸고 구호 업무에 종사하는 일은 곧 종교적 시혜란 오해를 살 수 있으므로 엄격히 금지된다.  일부 종교인들이 전도와 개종을 목표로 현지의 문화와 관습을 무시하고, 이슬람 사원에 들어가 찬송가를 부르는 행태가 있었다.  세계 시민으로서 얼마나 큰 무지와 결례인지 그들은 알까?  

"`종교 간의 대화 없이 종교 간의 평화가 있을 수 없고, 종교 간의 평화 없이 세계 평화가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명언이요 진리다. 나는 요즘도 텔레비전에서 부처님 오신 날 특집이나 이슬람 문명 특집을 하면 `본방 사수'를 해가며 꼭 챙겨 본다. 재방송이라도 본다. 이런 프로그램은 재미도 있지만 그냥 보기만 해도 세계 평화에 일조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 지구상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가 공존하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며 상대방을 제대로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종교 간의 평화, 나아가 세계 평화의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아프가니스탄 부엌에서 얻은 내 확신이다."   본문,271 <그건,사랑이었네>  

넷째,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영감을 준다.  젊은사람들에게 그가 가장 인기 있는 명사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이나 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치는 사람은 많지만, 진정 행동으로 그걸 살아내기란 어렵다. 말과 행동에 간극이 비좁은 사람이 바로 그다. 한비야는 성공적인 삶의 조건이란 자신의 목표뿐만 아니라 공공의 선도 함께 이루는 사람, 그리하여 그들의 성공의 열매가 곧 우리 모두의 것이 되리라는걸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다섯째, 쉰살의 나이에도 새로운 꿈을 간직한 사람이다. 그는 현재 백수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다시 학생이 되었다. 월드비전 구호팀장과 베스트셀러 작가 등, 모든 사회적 명함을 내려놓고 그는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터프츠 대학교의 `인도적 지원에 관한 석사 과정'에 지원해 다시 배움의 자리로 돌아갔다. 세계 각국의 명석한 두뇌들이 모여 토론 위주로 진행된다, 는 수업에 그는 당당히 도전했다.  우리 주위엔 나이 오십에 은퇴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이십대의 나이로 애늙은이 같은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 젊은이들도 많다. 나이 오십에 배움의 자리에 선 그는 지금 어떤 가슴 설레이는 꿈을 꾸고 있을까? 

청년들이 읽으면 많은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책이다.  한비야는 누나처럼, 형처럼, 불확실한 미래에 발이 묶인 청춘들에게 한줄기 빛을 선물한다.  이제 삼십 후반줄에 들어선 나도, 되돌아보면 온갖 불행과 상처만이 그 청춘시절 나를 설명한다. 그 시절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더 잘 살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 같다.  청춘을 통과한다는 것은 모두에게 힘들다.  더군다나,  공정한 사회를 외치면서도 온갖 특혜와 면제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오직 실력과 이상만으로 꿈을 이루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행복전도사는 행복하지 않아서 죽었다. 이러한 역설은 가끔 인생을 헷갈리게 만든다.  우리 안의 어떤 우상을 심는 일은 옳지 않다. 한비야도 마찬가지다.  한비야는 젊은 이들의 `우상'에 머물 순 없다.  이 책이 감동적인 사연으로 가득하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그도 우리와 다를 바 없이 인생에 대해 어려움과 고뇌를 품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임을 알게 될 것이다.  다만, 그는 우리에게 부족한 유쾌한 사고와 결단력을 갖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며 군집에 긍정의 영향력을 전파하는 사람이었다.  한비야는 마음 놓고 닮고 싶은 여자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선 곤란하다.  한비야를 참고서 삼고 모든 세상의 위인들을 본받아 세상에 긍정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우리 젊음이들의 목표는 그것이어야 한다.  그는 앞서 눈길위를 바르게 걸어간 젊은이들의 사표(師表)가 될 만 하다.  

 


2010.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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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10-26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비야, 이러니 저러니 이 책에 대한 말이 많아도
전 그녀를 좋아해요.
진심이 묻어나는 걸 느낄 수 있는데, 그게 허상일 거라 생각되지 않아요.
그녀의 에너지 백분의 일이라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최윤희님에 대한 부분 중, 행복을 전도하면서 정작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배어있지 않았다는 내용이 와닿네요. 정말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아, 누군가의 삶은 정말 규정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녀는 나름대로 그녀만의 고민이 있지 않았을까요.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안타까워요. 공감도 되구요.

개츠비 2010-10-26 23:06   좋아요 0 | URL
한비야의 거짓말이라는 인터넷글이 뭔가 프레이야님 글을 보고 검색해 봤답니다. 이름에 세례명을 달았다, 여행지의 정보가 다르다, 6개국어 하는거 맞냐? 1년에 책을 100권 읽는건 거짓말같다. 참으로 다양하더군요. 이런 글을 유포한 사람은 잡아다가 곤장을 좀 매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비야의 거짓말이라는 글은 타진요의 모함들을 연상시키던데요. 인터넷엔 컴퓨터 바이러스만 있는게 아닙니다. 인간 바이러스들이 가득한데, 백신으로 잡을 수도 없고 어째야 할지...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