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글쓰기와 책읽기가 삶의 문제들에 맞설 수 있을까? 우리의 존재론적 고민과 현실적인 문제들은 어떻게 문학이 되며, 그것은 한 인간을 궁지로부터 구해낼 수 있게 되는가? 문학에는 그러한 힘이 있기나 하는 걸까? 소설이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담고, 우리의 평범한 삶에 어떤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소설을 읽는 일은 기쁘고 즐겁다. 김영하의 신작 소설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는 내게, 김영하를 읽은 첫 경험이었으나 그리 낯설진 않았다. 말줄임표가 붙을만한 이 어정쩡한 소설집의 제목은 여러 함의들을 담고 있고, 동시에 현실의 해명 불가능한 사소한 사건들에 대한 답답함을 표출한다. 사실, 소설집의 제목이란 대개 단편의 제목 한 꼭지를 가져오질 않는가? 그러나, 김영하는 소설속 문장 하나를 제목으로 삼았다. 형식에 대한 극도의 반감, 천편일률적 일상에 대한 반항, 제목에서 받은 인상은 이랬다.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집에 돌아간 후에도 매트에서 뒹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그런 아이의 파트너가 되어 함께 땀을 흘리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두 사람은 모두 그저 일상적인 스파링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단지 아이가 건 기술이 정확하게 들어가 남편의 몸이 허공에 붕 떴고 미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몸이 매트 밖으로 떨어졌던 것입니다. 머리가 바닥에 부딪히는 바람에......" <밀회>,김영하 p.92
평범함과 다양성을 가진 개인의 일상을 탐색하면서, 색다른 방법으로 그 내면의 복잡 다단한 욕망과 일상의 짓궂은 운명 같은 것에 반항하는 주인공들은 여타의 소설속 등장인물과 비슷하다. 그러나, 그들은 좀 색다른 방식으로 김영하의 문장속에서 변이를 일으킨다. 소설 <로봇>의 수경은 궁핍한 삶을 살아가는 보통의 직장인처럼 보인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어떤 남자가 그를 스토킹 하는건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 불청객은 불쓱, 그저 겉모습에 반해 그의 회사까지 찾아와 구애를 표출한다. 얼핏 보기엔 순애보 같은 사랑 이야기가 전개될 것 같으나, 실상 주인공 수경은 사장과 은밀한 관계를 짓고 있고, 직원들은 그런 수경을 외면한다. 그 은밀한 관계가 수경의 궁핍과 가난 때문이란 것을 가련한 변명처럼 보여주며 또다시 독자는 수경의 처지를 이해하려 할 때, 수경은 지하철 `우연남'과 시시껄렁한 로봇 3원칙을 들먹이며 진한 섹스에 몰두한다. 김영하의 이야기는 의미 짓기를 거부한다. 이야기는 전혀 교훈적인 방면으로 나아가질 않지만, 지상의 어느 지하철 역, 개찰구를 통과하는 한 여성의 삶속엔 존재할 것만 같다. 그러나, 사건의 허무맹랑함을 짓는 작가는 이야기 곳곳에 깃발처럼 자본주의와 탐욕에 물든 세상을 부표한다.
"모래폭풍이 부는 도시라니, 멋진걸. 목이 칼칼해지는걸 느끼면서도 그녀는 황사라는 자연현상에 매혹되었다. 황사는 평등했다. 황사는 어디에나 있었고 그것 때문에 모두가 함께 고통을 겪었다. 실로 공평한 재난이었다. 먼지는 일억원이 넘는 고급 승용차의 보닛 위에도, 오십만원짜리 스쿠터 위에도 모두 내려 앉았다. 황사가 지나가는 동안엔 멋진 빌딩도 화려한 쇼윈도도 모두 별볼일없었다." <로봇>, p.21
거울처럼 독자의 평이한 내면과 리얼한 현실을 비추어주는 작품이 없는건 아니다. 단편 <여행>과 <아이스크림>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결혼을 앞둔, 옛 연인을 납치하는 <여행>속에 등장하는 장면들과 대사들은 가장 보편적이며, 익숙한 방식으로, 독자의 경험을 추스린다. 결혼을 앞둔 수진은 오빠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빠한테는 말해줘야 할 것 같아서, 그게 예의인 것 같아서"(p.37) 소설속 대사 한 마디로, 독자의 사랑에 난 흠결들을 보듬아 앉는 솜씨가 놀랍다. 이 보편적인 사랑의 패악은 드라마처럼 낯익지 않은가? 강제적으로 여행길에 오른 수진과 오빠의 평범한 대사와 분위기를 중계하고 있는 이 소설은 마지막 수진의 이상한 대사를 통해 그 진의가 확인된다. 여행지에서 괴한에 쓰러진 오빠를 엠블런스에 보내고, 관계를 부정하며 동승을 거부한 수진이 택시 한대를 잡고서 택시기사와 나누는 대화는 이렇게 편리하고 사무적일 수 있나?
"서울에 무슨 급한 일이 있나봐요?"
제가 곧 결혼을 해요...." p.61 <여행>
<아이스크림>속 가난한 부부 동규과 혜선은 어떤가? IMF 시절의 가난한 젊은 부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유머와 페이소스를 적절히 배합한 유쾌한 소설이다. 가난한 부부에게 유일한 낙은 동네 슈퍼에서 매번 따로 포장된 사각형의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일이다. 따로따로 포장된 아이스크림을 베어먹는 일은 가난한 시절을 견딜 수 있는 그들의 호사였다. 그러나, 이 아이스크림이 배신을 한다. 기름냄새가 나는 아이스크림을 맛보고, 소비자상담실에 전화를 걸고, 곧 그들의 아파트에 제과회사 부장이 007 가방을 들고 모습을 드러낸다. 아이스크림을 조사하는 척 하면서 기름냄새가 나는 그걸 몇개나 먹어치우는 부장은 부부가 보기에 안쓰럽고 동시에 분통 터진다.
"그러더니 내용물을 통째로 입에 넣었다. 동규와 혜선은 예기치 않은 전개에 놀랐다. 회사를 위해 저렇게까지 몸을 던져 충성을 하다니! 동규는 대기업의 기업문화에 주눅이 들면서 동시에 먹고사는 일의 숭고함에 대해 새삼 경건한 마음을 품었다." p.161 <아이스크림>
이후, 동규의 상상은 유쾌하지만 동시에 측은한 시절을 상징한다. 제과회사 소비자 상담실의 대기실 구석, 명퇴를 당하고 50줄에 새로 입사한 대기업 부장들이 007 가방 하나씩을 들고 앉아 있다. 전화가 오면 출동을 할 요량으로 마치 군대의 5분 대기조 꼴이다. 동규네처럼 까다롭지 않고, 고급 초콜릿 선물세트로 어물쩡 넘어가는 고객이 있는 반면 그 앞에서 기름냄새 나는 스넥이나 아이스크림을 다 먹어치워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상은 재미있지만, 씁쓸하다. 유머와 페이소스는 같이 오는가?
"저는 인간들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어리둥절한 채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다가 결국은 죽어 사라지는 존재라고 봐요. 물론 여러 가지 영생에 대한 관념들도 있지만, 저는 그런 관념에는 동의하지 않아요. 그것에 관해서는 뭐랄까, 아주 오래 전부터 도저한 허무주의를 갖고 있었어요. 제가 이십대 후반에 쓴 소설에 나타난 허무주의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젊어서 그럴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계속 보신 분들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을 거예요. 앞으로도 저는 별로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문학평론가 김수이와의 대담, 2007년
의미를 탐색하고, 의미를 생산하는데 주력하는 기존의 소설과는 다른 의미의 생성과 탐색 끝에, 허망하게 결말을 구성하고 생성된 의미를 해체시키는 방법은 김영하 소설의 일상다반사한 전략이다. 의미를 탐구하는 독자들은 이 허망한 결론과 가벼운 서술에 불만과 어리둥절함을 갖고 있겠지만, 이것이 근원적으로 작가의 허무주의적 세계관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이러한 성향은 여성화자를 앞세운 연애소설 <마코토>의 이야기를 통해 또다시 재연되는데, 한국 대학원에 유학온 일본인 남학생 마코토를 짝사랑하는 나와 나의 경쟁 상대로 등장하는 학우, 현주의 모든 것을 곡해하는 `나'는 그의 아버지의 직업을 의심하고, 마코토와 그의 사랑을 시기하며, 결국엔 현주가 사람들 앞에서 자주 쓰러지는 위중한 병세까지도, 쇼에 지나지 않다며 확신케 된다. 소설은 마코토와 현주의 사랑 끝에 물러서는 `억울한' 피해자로 나를 서술하다가 결국 그 모든 것이 나의 오해였다는 것을 알고서도 별다른 양심의 가책이나 미안함 따위보다는, 잊혀진 사랑과 재회하고 다시 `가미카제 특공대처럼 내 불타는 입술을 그대로 내리꽂고야 마는' 사랑의 어떤 결말을 열정적으로 서술한다. 현상에 대한 고민이나 현상에 대한 의미, 보다는 현상에 임의로 대처해 나가는 나의 사랑방식은 아무래도 현실적이지 않지만, 어떤 개인의 현실과 빼닮은 이중성을 갖는다. 있을 것 같은 이야기로 시작해, 있어선 안되는 이야기로 흐르다가, 결국엔 그 모든 이야기의 의미를 비약하는 방식은, 김영하의 고백처럼 소설이 허무주의에 닿아 있음을 증거한다.
"도둑키스와 어설픈 포옹은 생각보다 오래도록 지속되었고 나는 거기가 어디인지, 내가 누구와 키스를 하고 있는지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 아득해지는 감각 속에서 내 영혼이 마치 잘 맞은 야구공처럼 펜스 너머 저 광대한 우주로, 하나의 작은 점이 되어 사라져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암전. " p.137 <마코토>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이자 백화점의 판매원인 `정'을 사랑하는 경찰 `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 <조>에선 그에게 구애하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연민에 가득한 눈빛으로 서술한다. 조는 백화점의 도둑들을 체포하고, 그들을 정의롭게 처단하는 인물이지만 도둑에게 빼앗은 비싼 시계를, 은밀히 `정'에게 다시 보냄으로써 타락의 순간은 어느 누구에게나, 어느 순간에나, 가능할 수 있다는, 타락의 일상성을 고발한다. <퀴즈쇼>의 두 등장인물 `은이'와 `동국'은 어떤가? 무참한 범죄로 부모를 잃은 은이가 인생에 맞서는 담담한 태도는, 제법 비범한 깨달음 덕분인데 사건의 비참함 보다는 그 이후를 `잘 살고 있는 청춘들'의 모습은 어떤 담대한 지혜를 주는 듯 하다.
"난 열여섯 살 이후로 깨달은 게 있어. 하고 싶은 걸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야. 그럼 늦어버려. 우리 아빠는 정말 완벽한 사람이었어..그런데.. 그렇게 완벽한 분도 한 치 앞을 못 내다보는 게 인생이야. 인생이라구. 니가 그런 걸 알아?" p. 247-248 <퀴즈쇼>
김영하의 소설을 읽으며, 일상의 모든 것은 소설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다. 단지, 어떤 문장으로 어떻게 현실을 프리즘 하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김영하의 소설은 전혀 소설 답지 않다. 이야기에 특별함이 없고, 별다른 흥미로움을 발산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야기가 평탄한 듯 하지만 어느 순간 비약하면서 색다른 결말에 도달한다. 과도한 성애가 드러나진 않지만, 끊임없이 감추어진 욕망을 드러내고(로봇,밀애) 자본주의의 물신적 타락을 비난하지 않지만, 은밀히 비꼬며(아이스크림,퀴즈쇼), 타인과의 소통불능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지만 극복을 위한 나름의 투쟁을 전개한다.(마코토, 여행)
김영하의 작품은 이번 단편집이 처음이다. 그러나, 나름 김영하를 주목해왔다. 1995년 하이텔 시절(대학원에 재학중이었을까?), 그가 게시판에 올려논 짧은 소설이나 평론들을 읽은 기억이 나며, 그 색다른 강렬함은 지금껏 유효하다.(나는 그 시절 군인이 되기 전이었다)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최근 그의 작품들은 외국에서 받는 인세가 국내 인세를 초과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은 미국이나 유럽 뿐 아니라, 제 3 세계의 나라들에서도 번역돼 출판되고 있고,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 시대에 가장 세계적인 작가가 그이며, 한국의 하루키에 버금갈 작가라는 것을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싶다. 이 모든 건 어쩌면, 김영하가 짓는 이야기가 세계 독자들의 보편적 지지를 받아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변해서 이제는 세계가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 이런 비루한 일상 속에 갇힌 인간들의 삶을 다루는 문학들의 시대가 왔어요. 그 점에서 이런 식의 고민을 하는 작가도 제가 마지막인 것 같아요. 제 뒤에 나온 작가들은 저처럼 왜 내 삶이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이렇게 평범한가, 같은 고민은 더 이상 안 하는 듯 해요." 문학평론가 김수이와의 대담, 2007년
문학이 시대를 해석하고, 비범한 인간들을 논하며, 역사의 아이러니를 고발하고, 이념의 경중을 따져들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세계는 더이상 그런 재밌는 화제들을 양산해 내지 않는다.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에 매몰돼 살아가고 있다. 정치적인 이슈들에 민감하지 못하고, 선거날엔 투표보다는 아직껏, 유흥을 즐기는데 앞장서고, 아니 그보다는 하루하루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과감히 정치적 관심을 끊고 자신의 삶의 반복성 속에서 지겨움을 거슬러 재미를 찾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김영하의 허무주의적 소설들은 이 `개인'들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영웅과는 거리가 멀고, 비범함 보다는 비루함이 가득한 사람들을 다루고 있는 소설은 그래서 독자와 가깝다. 친숙하다. 비루함은 이제 문학의 본령이 되었다. 거대담론은 저리가라. 흩어진 개미들의 삶이 문학세계의 흥미진진한 이야깃 거리들을 창출해 낼 것이다. 미래는 그들의 것이다.

201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