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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 김선주 세상 이야기
김선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6월
평점 :
그러니까 그 시절 나는 새벽마다 신문을 배달했다. 대학 졸업 후 취업에 실패했고 이것 저것 해보다 한 물류업체에 비정규직으로 들어갔다. 낮에는 트럭에 가득 실린 타이어를 자동차 공장의 야치장에 차곡차곡 쌓는 일을 해야 했다. 한달 4일을 쉬고 세금 제하면 알량한 월급이래야 백만원을 겨우 넘겼다. 부족한 월급에 보탬이 될까 해서 아침마다 신문을 돌렸다. 꼬박 2년간 나는 그 도시에서 한겨레 신문을 배달했다. 내가 그 일을 2년간이나 한 것은 인생이 맘처럼 잘 풀리지 않아서 이기도 했지만, 내가 배달하는 신문이 조중동이 아니라 한겨레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진실과 정의에 닿아 있는 언론에 대한 애정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 시절 한겨레 지면의 여러 칼럼 가운데 내가 가장 즐겨 읽었던 칼럼이 있다. 바로 김선주 칼럼이다. 2003년 9월자 김선주 칼럼의 제목은 `공상가가 직업이 되는 세상'이다. 그 칼럼의 시작은 제법 흥미롭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서문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책장에서 잠자고 있던 장정일의 책을 다시 펴본다.
"어린 시절의 내 꿈은 이런 것이었다. 동사무소의 하급 공무원이나 하면서 아침 아홉시에 출근하고 오후 다섯시에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발 씻고 침대에 드러누워 새벽 두시까지 책을 읽는 것. 누가 이것을 소박한 꿈이라고 조롱할 수 있으랴. 결혼은 물론 아이를 낳아 기를 생각도 없이, 다만 딱딱한 침대 옆자리에 책을 쌓아놓고 원없이 읽는다는 건 원대한 꿈이다. " 장정일의 독서일기 서문 中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그 칼럼은 돈을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보다는 적게 벌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21세기 신유목민 세대를 논한다. 김선주가 장정일의 문장을 인용한것도 좋았지만, 그가 그 넓은 세대의 차이에도 신유목민의 행태를 전혀 낯설게 바라보지 않고 지지 하는 듯한 논조를 유지한게 마음에 들었다. 왜냐하면, 그 시절 취업에 실패한 나또한 그런 유목민의 행태로 삶을 살아가고자 했으니까.
그 이후 장정일의 꿈은 곧 나의 꿈이 되었다. 김선주와 장정일, 나의 꿈이 하나로 묶여진 것이 그날 그 칼럼을 읽은 후부터였다. 그 시절도 책읽고 신문보는 것을 참 좋아했다. 책과 신문 읽는 시간은 나의 궁핍한 삶 한 가운데 빳빳한 자존감을 내게 실어주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여전히 정신은 깨어 있고 영혼이 깨어 있는 한 내게 미래는 있다, 뭐 이런 자존감을 갖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새벽 2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날랐던 그 한겨레 신문과 고된 육체 노동의 시간들로 채워졌던 도시를 떠났다. 그 1년 후, 정말로 운이 좋아서 수험생에서 반듯한 직장인으로 환생했고 나는 더이상 새벽에 신문을 배달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의 힘겨웠던 시절, 빛나는 칼럼으로 내 청춘을 위로했던 김선주의 글이 한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는 소식을 작년에 들었다. 보배로운 청춘의 한 시절을 건져올리듯 반가운 소식이었다. 어떤 글에 대해 갖는 독자의 기억이란 참으로 미묘하다. 대작으로 기억되는 작가가 있는 반면, 단 몇 줄의 글로서도 독자의 뇌리를 떠나지 않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사람이 있다. 문장가들이란 글 한 편 한 편이 버릴게 없다. 15년간 한겨레의 칼럼에 연재된 김선주의 글을 묶어서 읽고나니 그 말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된다.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사회 모든 문제를 짚고 있는 칼럼이지만, 짙은 문학성을 내보인다. 칼럼 하나하나가 필자의 사소한 삶의 일부분에서 차용하지 않는게 없어서일까? 故 노무현 대통령 또한 그의 칼럼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그의 칼럼은 소박하지만, 강단있고, 소신있다. 흥분되어 목소리를 키우지 않지만, 잔잔히 세태를 비판하고 준엄히 꾸짖는다. 1970년대 서슬퍼런 유신의 시절, 뿌리채 흔들린 언론의 자유를 외치며 자유언론실천운동을 하다 해직된 이력을 그는 갖고 있다. 조선 일보에 근무하던 시절, 선배였던 칼럼니스트 이규태와 그가 나누었던 설전은 언론인 김선주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케 한다.
이규태가 김선주에게 했다는 그 조용한 충고는 대강 이렇다. " 이봐, 김선주, 그만 설쳐, 역사를 보라구, 암흑시대가 이백 년도 넘게 계속되고도 했어. 그냥 조용히 살라구, 설치지 말라구......" 이에 김선주는 혈기방장한 신입언론인으로 이렇게 답했다 한다. " 아니 그럼 나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암흑 시대에 살아야 한단 말이에요? 나는 그렇게 못해요. 못참아요. 지금 시대에 어떻게 암흑시대가 이백년이나 계속된단 말이에요. 일제 시대도 오래갈 것 같았지만 삼십육 년으로 끝났잖아요. 이광수도 최남선도 일제 시대가 영원히 계속 될 것이라고 믿고 친일을 했지만, 결국 암흑시대는 끝났잖아요. 이 선배는 평생을 암흑시대다 하고 나 죽었다 하고 살건가요?"
그렇게 김선주는 조선일보에서 쫓겨나 훗날 한겨레 신문에 둥지를 틀고 여성언론인으로 크게 성장한다. 문화부장에 논설위원, 출판본부장, 논설주간에 이르고 여성 언론인의 본보기가 되어 여러 후배 언론인들을 끌어준다. 반대로 이규태는 조선일보에서 `설치지 않고 조용히' 명칼럼을 쓰다, 몇 해 전 세상을 등졌다. 김선주는 어느 칼럼에서 한국의 언론인이 정의의 편에 서지 못하고 신문사 사주의 길들이기에 넘어가, 세상을 곡해하고 기자가 고급 월급쟁이로 전락한 시점을 1970년대, 언론인 대량 해직의 시절로 규정한다. 그 이후, 해직된 언론인은 원상복구 되지 않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해직언론인을 돈으로 회유하려는 사주들의 시도만 계속되었다.
나나, 노무현 대통령이나, 아니 김선주의 칼럼을 좋아하는 그 누구라도 그의 글을 좋아하는 데는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신문사의 칼럼은 아무나 쓰지 않는다. 그 신문의 논조를 대표하는 것은 사설이지만, 칼럼은 보다 격조높게 신문의 색깔을 규정하기 마련이다. 색깔은 독자의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사실에 대한 공평무사함과 도덕성, 그리고 세상을 정의의 눈으로 바라보려는 기자의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김선주 칼럼은 내가 짐작하는 정의에 가장 가깝다. 그의 칼럼엔 노동자, 농민, 비정규직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묻어 난다. 세상에서 소외되고 차별받는 대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곳곳에 담겨 있다. 정치권력에 곁눈질 하지 않고 언론인으로서 한길에 충직하려했고, 그 때문에 강단있는 글을 계속 쓸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그의 칼럼을 좋아하는 것은 인생을 욕심없이 관조하고 그렇게 살아가려는 의지를 그의 문장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평생 내가 존경해온 사람은 창작을 위해 전생을 바치는 사람들이다. 비록 세상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 해도 전업 예술가로 사는 사람들의 인생은 보통 사람이 못 갖는 충족감으로 가득 찬 한차원 높은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들은 전업작가고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국민연금도 없다. 누군가의 불운을 보고 자신의 처지에 안도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긴 하다. 우리 부부 국민연금을 합치면 150만 원 정도 되니까 이들에 비하면 나는 대재벌이다. 나보고 부자라니! 잠시 억울하던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김선주, p.76
김선주의 책이 나오자 내 청춘의 잊혀진 기억들이 하나둘 되살아 났다. 새벽 신문, 고된 노동, 열악한 임금, 암담한 미래, 그러나 그 시절 긍정적인 청춘의 희망도 함께 내 기억을 노크한다. 젊음, 책, 작가, 신문칼럼, 글쓰기, 꿈, 자유, 타향의 익명성, 정처없이 떠났던 여행. 시간은 흘렀고 이제 나는 장정일이 독서일기의 서문에서 밝힌 책읽는 하급 서기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장정일의 꿈을 이뤘다고 해야 하나?
그 시절, 장정일의 글에 절대 공감했고 비로소 그의 소박한 꿈은 나의 꿈이 됐다. 김선주의 글을 통해 세상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책에 대한 허기에 찬 그같은 삶에도 희망이 있음을 확인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읽고 쓰는 일은 힘에 벅차고 세상은 조용히 책읽는 시간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어떤 날은 책이 눈에 들어오질 않고, 한줄 문장 읽을 여유조차 없이 생활이 나를 짓누르기도 한다. 세상사는 그렇게 간단한게 아니다. 매번 쓰는 글이라지만, 쓸 때마다 어렵고 써놓은 글은 나를 낯뜨겁게 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기억의 저편에서 어느 시절 나의 절망과 나의 꿈, 희망을 확인케 해주는 것은 역시 한 권의 책이고, 반가운 저자다. 김선주라는 한 칼럼니스트이자 언론인의 글속에서 나의 청춘을 회고하고, 다시 미래를 기약한다. 여전히 세상은 알 수 없지만 한 권의 책과 공감가는 저자를 만나는 일은 즐겁고 아름답지 않은가? 삶이 한없이 힘들어도 그 시절을 견디듯, 지금의 삶을 견딜 수 있다. 그래서 읽고 쓰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이 책의 끝에서 김선주는 다음생을 소망한다.
"다음 생에선 진정한 로맨티스트로 살아야겠다." 그의 이모는 인생의 고저가 확연히 드러나는 아슬아슬한 모험을 자주했다. 그는 `온 식구가 밥을 굶은 날 밤에도 조그만 등을 켜놓고 조용히 글을 썼던" 작가였다. 김선주는 그런 이모를 한결같은 로맨티스트로 동경하며 사랑했다, 고 고백한다. 현모양처가 되기 위해 분투했던 어머니의 삶에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도, `이모의 삶 또한 목을 빼고 길게 동경하며 산 것'이 자신의 자화상이었다고 밝힌다. 김선주의 칼럼들을 읽으며 여유와 주장이 확고한 그의 글쓰기를 닮고 싶었다. 어느 글 하나 버릴 게 없이 고갱이로 가득한 책을 만나는 일은 여간 쉽지 않다.

201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