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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의 두려움을 없애라 - 당신을 위한 글쓰기 레시피
김민영 지음 / 청림출판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본격적인 책읽기에 빠져든 시절, 내겐 두가지 욕망이 함께 자라기 시작했다. 보다 많은 책을 읽어 세상의 다양한 지식을 흡수하는 것, 그래서 세상에 대해 나름의 관점을 갖고자 하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보다 많이 알고 싶다는 지적 욕망은 허영이 아니라 어떤 갈망 같은 것이었다. 두번째 욕망은 보편적인 시각에서 인정받는 글을 써보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다른말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이 욕망이 발원한 시점은 20대 초반이었으니 이제 20여년이 가까이 오고 있다. 그러나, 그 때 이후로 나는 많은 책을 읽지 못했고 만족할만한 글을 써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제 책읽기와 글쓰기는 내가 평생을 추구해야 할 과업 같은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일년가야 100권의 책을 읽지 못하고, 여전히 내 글쓰기는 전진에 속도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만은 않다는 생각은 계속 읽고 쓰는 데 큰 힘을 실어준다. 나처럼 좋은 글을 읽고 좋은 글을 써보자 하는 이 꿈이 사람들의 보편적인 희망으로 변화하는 시절을 맞고 있다. 요즘 글쓰기 열풍은 심상치 않다. 서점에 가보면 글쓰기 관련 서적만 모아놓은 공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글쓰기에 관한 대중의 관심은 끝이 없다. 그래서일까? 유명 작가들은 글쓰기 입문서 하나씩은 내놓는 시절이다. 오직 글을 잘 쓰고 싶단 욕망 하나로 지금껏 나는 많은 글쓰기 책을 읽어왔다.
그러나, 한 권의 글쓰기 책을 읽고 난 후 뭇 사람이 곧바로 글을 잘 쓰게 되진 못한다. 세상일은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영어 공부를 한창 하던 시절, 내가 즐겨 읽었던 책은 영어공부 방법론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 책들을 따라 한동안 영어공부를 해봤지만, 시간이 지나면 영어공부는 시들해졌고, 나는 지금도 영어공부를 십수년째 하고 있다. 방법론 대로 따라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목표와 동기를 갖는게 더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또 한 권의 글쓰기 방법론에 관한 책을 읽었다. 신간 소식을 듣자 곧장 책을 주문했다.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할 것 같은 느낌. 읽지 않으면 내 글쓰기가 앞으로 한참동안 어떤 미로를 헤맬 것 같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네이버 책,교육 분야 파워 블로거이자 글쓰기 전문 강사인 김민영의 <첫 문장의 두려움을 없애라>는 내게 그런 의미로 다가온 책이다. 활발한 블로그 활동을 하고 있는 저자가 몇 해 전 내 블로그의 리뷰 한 편에 대해 첨삭을 해준적이 있다. 그는 첨삭 댓글을 달면서 내가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면 이 글을 이런 식으로 고쳤으면 좋겠단 의견을 제시했다. 그때 나는 쑥스러웠지만, 무척 기쁘고 고마웠다. 그 이후, 그의 블로그를 통해 글쓰기에 관한 글을 읽고 큰 도움을 받았고, 저자의 책과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글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는 책과 글쓰기에 관해 이론과 실전에 능한 최고의 전문가였다. 그는 평소 다양한 책을 사모았지만, 글쓰기 관련 서적을 거의 빠짐없이 구입해 연구하고 교육에 활용해왔다. 이 책은 그간의 모든 관심과 연구의 결과물이다.
이 책의 구성은 특히 글쓰기 입문자에게 유용하다. 글감이 없어 글쓰기를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머리속의 빨간 펜을 잊고, 초등학생으로 돌아가 글을 쉽게 써보라고 권유한다. 대부분의 글쓰기 입문자들이 잘 쓰겠단 강박관념에서 실패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 조언은 적절하다. 전반부에서 탄탄한 글쓰기를 위한 얼개 짜기, 단락의 개념 학습, 단락 연결 기술을 통해 매끄러운 글쓰기 비법 등을 다룬다. 후반부로 들어와선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글쓰기 방법에 관한 조언이 가득하다. 잘 읽히기 위해서 간결하게 쓰고, 묘사를 통한 생생한 글쓰기, 글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기교와 초고를 퇴고하는 노하우를 전한다. 이 책의 주제는 그간 우리가 보아왔던 글쓰기 책과 크게 차이가 없다. 글쓰기의 동기를 부여하고, 잘 쓴 글을 분석하여 생명력이 있는 글쓰기 방안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책에는 글쓰기 초심자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특별한 무엇이 있다. 결정적으로 그 `무엇'때문에 수많은 글쓰기 책 가운데서도 이 책은 단연 돋보인다.
"종일 글을 썼습니다. 강의가 없는 날이었거든요. 중간에 카레를 만들어 먹은 것 말고는 거의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붙잡고 있던 글을 마무리했습니다. 목표량을 달성한 지금, 기분 최고예요! 이제부터라도 나가 놀고 싶은 심정이네요(새벽2시에 이런 소망이라니...) 아무튼 컨디션이 매우 좋습니다. 요가도 못 가고, 읽고 싶은 책도 못 봤지만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생각에 행복합니다. 종일 집에서 지내며 생각했습니다. `결국 나는 글을 써야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고요. " 행복한 글쓰기 p.18 , 김민영 <첫 문장의 두려움을 없애라>
글쓰기의 노하우와 방법론만 전한 책이었다면 책장을 다 덮은 후 내게 별 감흥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필요하면 다시 찾아봐야할 글쓰기 참고서로 각인됐을 테니까. 그러나 이 책의 기저를 줄곧 떠받치고 흐르는 하나의 메세지가 있다. 그건 다름 아닌 `열망'이다. 부자가 되겠다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저자는 오직 글을 잘 쓰는 것이 꿈이었고, 글쓰기를 직업으로 갖고 싶은 열망으로 지금껏 살아왔다. 이 열망은 이 책의 곳곳에서 확인된다. 그간 저자가 블로그에 공개한 개인적인 글들을 방법론적인 글쓰기의 예시로 가져와 설명하는 것도 독특하지만, 그 방법론적 예시들이 주는 메세지 자체가 글쓰기에 관한 하나의 큰 가르침이자 이 책의 독창성을 드러낸다.
한때 저자는 잘 나가던 증권사를 그만두고 글쓰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꿈을 이루고자 자발적인 가난을 선택했다. 탄탄한 직장을 박차고 나와서 방송작가, 영화평론가, 지방지 기자, 잡지사 기자로 떠돌았다. 오직 자신의 글을 쓰겠다는 그 일념 하나로 말이다. 오늘날 그는 독서교육 전문회사의 이사로, 인터넷 서점과 포탈의 파워블로거로, 글쓰기 전문강사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꿈을 향한 인내와 각고의 노력이 오늘날 그를 최고의 글쓰기 전문가로 키운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책읽고 글쓰는 시간을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전문가로 발돋음했지만, 여전히 그의 소망은 글 잘 쓰는 사람이다. 그리고 글쓰는 시간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고, `결국 글을 써야 행복한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이 책의 독자들이 저자의 방법론을 눈여겨봐야할 테지만, 그의 태도와 열망에 더욱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내가 믿은 건 오직 버티는 실력과 노력뿐이었다. 달은 물론 6펜스까지 얻게 된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다. 글쓰기를 직업으로 갖고 싶은데 방법이 있겠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럴 때마다 `버틸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여기서 버텨야 하는 건 당연히 가난이다. (....) 대신 읽고 쓰기를 멈춰서는 안 된다. 특히 쓰기를 지속해야 한다. 그리고 표현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매일 쓰고, (온라인에) 올려야 한다. 이게 쌓여 브랜드가 되고, 직업으로 연결된다. 오래 읽고 쓴 사람은 강하다. " p.208 , 김민영 <첫 문장의 두려움을 없애라>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경제학에서 유명한 문구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일정한 대가 즉,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을 치뤄야 한다. 저자는 글을 쓰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당신은 무엇을 걸 수 있는가? 어느날 갑자기 글쓰기 입문서 한 권을 읽고, 글을 잘 쓸 수는 없다. 그건 과욕이다. 그런 책은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글쓰기의 방법론을 모두 안다고 해서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글은 머리에서만 나오지 않고, 가슴에서도 나온다. 가슴에서 흘러 나온 글이 진짜 글이다. 그러한 글을 쓰기 위해선 수많은 시간 읽고 쓰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읽고 쓰는 것을 반복하는 일은 여간 쉽지 않다. 그것은 가슴 저 깊이에서 더 많이 알고, 느끼고, 써보겠다는 강렬한 열망을 통해서만 실현된다. 좋은 글을 쓰겠다는 저자의 일념이 이 책의 방법론보다 가치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알 수 없는 충만감이 나를 감쌌다. 난,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기 위해 자발적인 가난을 선택할 용기가 없는 사람이다. 탄탄한 직장을 박차고 나올 용기또한 없다. 그럼에도 글쓰기에 관한 열망은 마음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니 저자보다 더 열심히 읽고 더 열심히 쓰는 수밖에 없다. 이 책의 가르침이다. 그것이 현실과 욕망의 균형을 유지하며 삶을 평화롭게 하는 길이다. 항상 내 안에 표현하고 싶은 욕망은 책을 읽기 시작하던 그 시점부터 함께 해왔을 것이다. 그래서 20대 시절, 읽은 토마스 만의 장편 <마의 산>의 한 귀절을 잊지 못한다. 소설속 인문주의자 세템브리니는 "인식하고 표현하려는 용기, 그것은 바로 문학이며 인문정신"이라고 단언한다.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은 보편적인 것이다. 오늘날 글쓰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이 책을 통해 내가 글을 써야 행복한 사람임을 자각했다. 이 발견은 신선한 것이다. 저자의 고백은 그대로 나의 것이었다. 이 반가움은 책을 읽는 내내 줄곧 공감과 지지로 이어졌다. 저자의 솔직한 자기고백이 버무려진 글쓰기 책, <첫 문장의 두려움을 없애라>가 이제 많은 글쓰기 입문자들을 설레게 할 것 같다. 꿈을 갖고 노력하면 잘 쓸 수 있다, 는 것을 그의 이력이 증거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글쓰기 책의 범주를 뛰어넘어, 글을 잘 쓰려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될 듯 하다. 지금도 잘 쓰고자 열망하는 삶을 살고 있는 저자가 행복한 책읽기와 즐거운 글쓰기의 세계로 당신을 이끈다.
기교나 기술은 열망 뒤에 오는 것이다. 열망이야말로 글쓰기의 모든 것이다. 열망이 당신을 보다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 지금 잘 쓰지 못해도 간절히 원하면 앞으로 잘 쓸 수 있다. 간절함은 스스로 도울 길을 만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글쓰기 레시피이자 글쓰기에 관한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을 담고 있는 이 책은 그 열망을 닮고 싶어하는 당신에게 하나의 지름길을 보여줄 것이다.

201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