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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류시화 옮김 / 오래된미래 / 2005년 3월
평점 :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 헨리 데이빗 소로우 / 오래된 정원 / 류시화 옮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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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오후다. 그러나 한가하다. 오늘과 내일은 일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다. 교대 근무자인
나는 이렇게 어쩡쩡한 휴일을 맞는것이 일상사다. 남이 놀때 일하고 남이 일할땐 또 이렇게
쉰다. 휴일의 개념이 상실된지 오래다. 어떤 약속도 없다. 온전히 휴일이다. 그런 휴일을
맞는것이 두달만이다. 그러고보면 정말로 바쁘게 산것 같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바빴는지
나조차 모르겠다. 결국 올해 두달을 허비하고 말았다. 그 두 달동안 나의 생활이 없었다고
한다면, 거기엔 물론 책 읽을 시간도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딱 1년전 이맘때 읽었던 책
한 권을 다시 펴들었다. <월든>의 작가, 소로우의 편지들을 엮은 책이다.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2005 서점에 들러서 직접 골랐다.
소로우는 200년전 미국 사람이다. 그 당시 하버드 대학을 나왔을 정도면 학식도 갖추었고,나
름 생활도 윤택한 가정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연필 공장 사장이었다. 그는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그가 가진 명함을 들여다볼까? 그는 우선 명상가였다. 자연주의자, 초월주의 사상
가라고도 불린다. 왜냐하면 인도 힌두 사상에 일평생 깊이 몰입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귀농
인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유기농업의 선구자이다. 또 자신의 재능을 살려 목수일도 했고, 가
끔 이웃의 측량작업도 해주고 생활비도 벌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일평생, 그가 돈을
벌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은 하지 않았던 사람이란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로 치면 백수이
자, 게으름뱅이라고나 할까?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고향 메사추세츠 주의 콩코드
일대를 산책 하는 것, 또 자연을 관찰 하는 것, 하버드 대학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는 것,
여행 하는 것, 사색 하는 것 등이었다. 그런 그가 오늘날 19세기에 미국을 대표하는 쟁쟁한
작가들(나다니엘 호손, 에머슨, 월트휘트먼)사이에서도 비중있게 다루어진다. 그 이름 소로우
다.
"우리가 가진 생각이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밖의 다른 것들은 단지 우리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불어가는 바람이 쓰는 일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p.60
대학을 나와 별 직업없이 전전하던 소로우에게 관심을 갖는 이가 있었다. 같은 대학 신학부를
졸업한 헤리슨 블레이크란 사람이다. 블레이크도 소로우와 기질이 비슷했던가보다. 사회적 성
공과 부를 떨쳐버리고, 세속에서 멀어져서 영적인 삶을 추구하려던 그는, 허술한 듯 하면서도
깨달음이 가득한 삶을 실천하고 있던 소로우를 알아본 것이다. 그래서 블레이크는 소로우
에게 가르침을 구하는 편지를 보낸다. 그렇게 이 두 사람 사이에는 13년동안이나 편지가 오고
간다. 이 편지들에서 소로우는 자신의 생활을 블레이크에게 전해줄 뿐이다. 소로우가 쓴 편지
는 자신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 대한 몇가지 단상들 이겠지만, 그것은 블레이크에겐 하나의
가르침이었다. 숲속의 생활에서 탄생한 저서 <월든>에서 충분히 그 깊이가 드러나는 소로우의
소박한 삶의 철학이, 편지글 속에서 부연되고 있다고 해야 할까?
2년 2개월이란 시간동안 소로우는 고향의 월든 호숫가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살았다. 대학을
나와서 직업전선에 뛰어들지 않고, 에메슨이라는 당대의 뛰어난 사상가 소유의 땅에 오두막을
손수 짓고 20대의 2년 2개월을 보낼 계획을 세운다. 숲속의 생활은 온전히 자급자족이었다.
집을 짓고, 식량을 구하고, 텃밭을 일구고, 물고기 낚시를 하는 것 등으로 육신을 돌보았다면,
그는 고요한 아침 나절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고, 또 숲속을 방랑하며 나무와 동물들
을 관찰하고 그들과 하나가 되면서, 영적인 성숙을 위해 노력했다. 몇평남짓한 오두막집을 짓
고 이 자연친화적 삶을 살겠다는 아이디어는, 그 후 많은 미국의 시인이나 작가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고, 그와 닮은 삶을 살아가려 흉내내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2년 2개월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는, 20대의 한창 나이를 군에서 보낸 사람이면 알 것이다. 세속에서 2년 2개월과
단절된 공간에서의 그 시간은 분명히 다르다. 물론 소로우가 보낸 숲속의 생활만큼은 아닐지
라도, 그와 상당히 닮아 있는 시간일 수 있다. 강원도 전방 고지에서 보낸 시간들은 소로우의
삶을 체험해보기에 딱 좋은 기회였다. 그때, 그 깊은 산속에서 나는 <월든>을 일부러 찾아 읽
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래서 그때, 나도 소로우를 조금은 흉내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 한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외부와 떨어진 자연속에 파묻혀 있었건만, 군대라는 생활의 제약
상 무수한 인간관계가 나를 억누르고 있었기에, 그 실험은 실패였을게 분명하다. 아무튼, 그
의 <월든>을 감명깊게 읽은 사람들이라면 하나같이 그 삶속에 녹아있는 `자유분망함'을 갈망
하고 `속박'과 `억압'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을 지닌 사람임에는 분명하다.
"추운 날씨에 몸을 녹일 장막 몇 개를 구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그것과 동시에
당신의 영혼을 따뜻하게 하기 위한 신성한 불을 지필 수 없다면." p.89
소로우 같은 삶을 오늘날 실천할 수 있을까? 오직 성공을 위해 달려나가야 하는 현대인들에겐
꿈같고 이상적인 삶이 아닌가? 더 많이 가져야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우리 인간이
다. 어느 시대에나 돈과 권력은 인간이 탐내기 가장 쉬운 것들이었다. 비단 오늘날만이 아니라,
소로우의 시대에도 더 많은 소유를 통해 더 많은 노예를 갖고, 인디언을 몰살해서 그들의 땅
을 빼앗고, 사회적 지위를 얻어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들로 가득했을 것이
다. 어찌보면, 소로우의 삶은 기행과도 같은 것이다. 더 많이 가질 수록 더 많이 행복한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돈이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인것은 부정하지 못한다. 우리는 부동산 투기억
제대책을 기안했던 고위 공직자들이 강남에 아파트를 두채씩이나 가지고 있다해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격이라고 비아냥거리지만, 거기엔 사람들의 은근한 시샘도 내포되어 있다. 그만큼
오늘날이나 몇백년전이나 소로우의 삶은 과히 누구나 실천하지 못하는 `소유'를 포기한 `존재'
중심적인 삶이다. 영적인 성장이 없이 물질적인 풍요만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삶은 소로우에겐
진정 사는 것이 아니었다.
"육체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하는 데는 우리는 얼마나 즉각적입니까? 그러나
정신의 배고픔과 갈증을 충족시키는 데는 얼마나 느립니까? 너무도 현실적인 종
족인 우리는 얼굴을 붉히지 않고서는 차마 `영혼'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도 없
습니다." p.79
20대엔 혼자가 참 좋았다. 혼자가 마음 편하고 홀가분하고 간섭받지 않고 자유스러웠다. 그러
나 3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그게 아니란걸 느낀다. 누군가 곁에 있어야 마음이 평화롭고, 그
렇지 않으면 불안하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단순하게 함께 있으면 외롭지 않고, 고독하지 않다
고 얘기한다. 그러나 소로우는 `고독만큼 친해지기 쉬운 벗은 없다'라고 단언한다. 일평생 구
도자의 길을 갔던 소로우의 영혼의 깊이는 고독을 상쇄시키고도 남았겠지만, 우리같은 사람이
야 어디 그렇겠는가? 그러나 소로우의 말은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에 닿아 있다. 언젠가
사람은 결국 혼자가 되어야 한다. 인생의 결정적인 부분들에선 타인의 조력을 받지 못하고 혼
자서 감당해 내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들이 있다. 외롭다는 생각은 아마도 영혼의 더듬이가
오직 인간만을 향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고독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외부에
있는 모든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영역에 내가 닿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짜로 고독한 것은
혼자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영혼이 가난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소로우는 이렇게 자신의 영
혼의 풍성함을 설명한다.
" 내 집에는 많은 친구들이 있는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아침 나절이면 더욱
그렇다. 나의 상황을 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몇 가지 비유를 들어 보겠다. 마
치 웃는 것 같은 특유의 소리를 내며 크게 울어 대는 저 아비새나 월든 호수가
외롭지 않듯이 나는 외롭지 않다. 저 외딴 호수에게 대체 어떤 벗이 있겠는가?
태양 역시 홀로 있는데, 안개 낀 날에는 간혹 둘로 보이는 때도 있지만 하나는
가짜 태양인 것이다. 신 역시 홀로 존재하지만 악마는 홀로 있는 법이 없다.악
마는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며 그 무리는 수도 없이 많다. 초원의 한 송이 할미
꽃이나 민들레, 콩잎, 괭이밥, 등에, 땅벌이 외롭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나
도 외롭지 않다. 샛강이나 지붕 위에 풍향계, 북극성, 남풍, 4월의 소낙비, 정
월의 해빙, 새로 지은 집에 든 첫번째 거미가 고독하지 않듯이 나도 외롭지 않
다." p. 72
소로우는 19세기 미국의 동양인으로 불린다. 그가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들은 인도의 종교
서적들이다. 힌두서적인 <바가바드 키다>와 <마누 법전>을 그는 평생 읽고 명상했다. 소박
하고 자연친화적이며 영적인 삶은 이런 그의 사상에서 나왔던 것이라 할 수 있겠다.그러나
아무런 종교적 편견없이 그의 저서들을 대하면, 그의 사색들이 심오하면서도 독자의 마음
을 편하게 해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쁘고 이기적이며 경쟁적인 사회의 정글에서 살아
가야 하는 인간들에게 소로우는 깊은 가르침을 준다. 본말이 전도된 세상에서 인간은 자
신의 본질을 망각하기 쉽상이다. 200년전 소로우가 세속을 거부하고 산속의 오두막으로 들
어간 이유는, 삶을 제대로 누려보기 위해서였다. 영혼이 아니라 육신을 위해 살아가는 삶
이란 그저 삶의 유지일 뿐이지, `향유'가 되지 못한다. 소로우의 삶을 그대로 우리가 빼
닮을 필요는 없겠지만, 그러나 오늘 나의 삶을 반성하고 되돌아볼 기회는 된다. 그리고 기
회가 된다면, 언젠가는 이 답답한 세속에서 벗어나 그처럼 자유분망한 생활을 꾸려가보며
생을 진정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절대적인 공감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대지가
봄기운으로 넘쳐나는 이때에, 영원한 자연인 소로우를 다시 만나게 돼 기뻤다.
2005.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