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류의 서적들을 나는 좋아하지 않았다. 문학이라고 하면
뭔가 무겁고 진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진리는 어려운 글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볍고 낯익은 일상을 담고 있는 글들에서 오히려 삶을 새롭게 발견
하는 위트를 발견할 수도 있다. 올 봄에 읽은 두 권의 서적은 그 좋은 본보기다.
<내 생애 단 한번>과 <문학의 숲을 거닐다> 마음에 와닿는 작가를 만나기는 힘들 일이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결국엔 저자의 아름다운 글이 아니라 아름다운 삶이기
때문이다. 삶과 글이 건강한 삶의 자세와 조화를 맺고 있는 그녀의 글에는 당당함과
명징함이 돋보인다. 그리고 그런 삶의 자세를 갖기까지 문학이 그녀에게 준 위안과 용기
가 어떤 것인지 이 책들속에서 엿볼 수 있었다. <내 생애 단 한 번>이 그녀의 삶이 담겨
있는 일상사의 에세이라면, 신간 <문학의 숲을 거닐다>는 고전이라는 테마안에서 문학과
일상을 뒤섞여 거대한 바다와 같다는 고전들의 숲으로 독자를 안내하고 있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는 모 일간지에 연재되었던 그녀의 문학 칼럼을 모은 책이다. 아마도
이 책의 출판은 좀더 늦추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두번째로 발병한 암 때문에, 저자가
불가피하게 연재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단 한번도 빠짐없이 써오던
기사를 어느날 중단하게 되었을 때, 그녀의 글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섭섭함 같은 것과 더
불어 그녀의 안타까움을 느껴볼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의 마지막장을 채우고 있는 `문학의
힘'이란 글에서였다. 그리고 글 속에서 평범하게만 보였던 그녀의 굴곡진 삶을 약간은 엿
볼 수 있게 된다. 장영희 님의 아버지 고 장왕록 박사는 유명한 번역가이다. 아버지를 따라
그녀도 번역가로 활동중이고,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이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영어 교과서
저자이기도 하다. 그녀의 화려한 성공에는 더불어 이면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여기서 그런
이면들에 대한 언급은 불필요할 것 같다. 오히려 많은 삶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보여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자세에 대해 배울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자.

이 책에 소개된 고전들은 다양하다. 읽어본 책들은 저자의 소개에 반가웠고 새로운 책들에
대한 언급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책을 가까이하던 시절에는 나도 고전 읽기를
무척 좋아했다. 그 시절에 나의 손을 거쳐간 작가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도스토옙
스키다. 삼성판 세계문학전집을 통해 그의 <까라마조프네 형제들>을 읽었을 때의 감흥의
기억들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는 과거 내가 지나쳐온 문학의 숲
길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다시금 돌아가고 싶기도 한 시절이다. 무언가에 순수하게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은 많은 행복을 가져다 준다. 그것이 곧 열정이고 그 열정이 식었다는 것은,
삶에 그만큼의 생기가 없다는 것이 아닐까? 고전읽기에 대한 독려로서 비춰지는 장영희님
의 책. 일반독자들을 너무 고려한 나머지 때로는 당의정의 당도가 너무 지나친게 아닌가란
생각도 들지만, 소개글을 읽고 그 책을 한번쯤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면 이 책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고전들에 대한 기억을 다시 추스려보면, 한번쯤 다시 읽고 싶단 책들이 있다. 그러나
책을 잡기까지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여전히 책장의 먼지낀 책들만 먼발치서 바라
보고 그냥 지나친다. 내게 그러한 책이 몇 권 있는데, 토마스 만의 장편 <마의 산>이나
허만 멜빌의 <백경> 같은 책들이다. 고전은 읽을때에는 힘에 겹지만, 그러고보면 가장
오래도록 독자의 기억에 남겨지는 책이다. 올해는 몇 권의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나는
머리속에 오래도록 남겨지는 책을 읽고 싶다. 강렬한 자극을 받고 싶은 것이다.


- 밑줄긋기-

----------
그의 노벨상 수상 연설문에서 윌리엄 포크너는 말했었다.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
그렇다.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친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삶을,그들의 투쟁을, 그리고
그들의 승리를 나는 배우고 가르쳤다. 문학의 힘이 단지 허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도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p.318)



2005. 5.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