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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빙점 -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56-2 ㅣ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59
미우라 아야꼬 지음, 최현 옮김 / 범우사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미우라 아야꼬의 소설 <빙점>을 읽고 얼마 안있어 연달아 읽은 소설이 <빙점>의 후편인 (속) 빙점이다. <빙점>의 성공은 미우라 아야꼬를 무명의 보통사람에서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만큼 <빙점>은 잘 쓰여진 재미있는 소설이다. 인물간의 심리묘사나 인간 내면에 기생하는 악의 뿌리인 죄의 문제를 이정도로 치밀하고, 사실적으로 담은 소설을 찾아보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다. 거기다가 소설 읽기의 재미 측면에서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여러가지를 두루갖춘 빼어난 작품이란데 독자들은 동의할 것이다.
<빙점>을 10년 사이에 두번 읽은 나이지만 이 작품의 후편인 (속)<빙점>을 읽어보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우라 아야꼬와 요즘의 나는 코드가 가장 잘 맞아 떨어지는 작가다. 그는 젊은 시절 고뇌의 답을 신앙에서 찾은 사람이고, 그 답을 찾기까지 그가 겪은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고통은 너무나도 처절해서 그가 수기로 적은 <길은 여기에>의 절절한 울림은 숱한 비신앙인들을 신앙의 길로 인도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또한 스물 네살 때, 군대 서가에서 우연하게 발견한 그 책 한 권으로 인간에게 종교적인 구원의 빛이 얼마나 큰 위력을 발산할 수 있는지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됐던 기억이 새롭다.
<빙점>은 이같은 아야꼬의 신앙적 체험과 깨달음을 죄의 본질과 구원이라는 측면에서 해명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군상들을 보면,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며 또 친숙하기까지 하다. 그 이유는 아야꼬가 이 소설에서 나열한 인물들이 우리와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이며, 소설속 범주가 현실의 우리 세계의 영역을 너무나 분명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인물들간에 벌어지는 사건 또한 20세기나 21세기나 별 차이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란 간단한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의 주요한 테마는 `불륜'이다.
그러나 `불륜'은 이 소설이 보여주고자 하는 죄안에 갖힌 인간의 진정한 구원이라는 큰 테마를 이끌어내는 소재 역활을 하고 있다. 전편에서 병원장 게이조오는 자신의 딸 루리꼬가 살해된 이유를 아내 나쓰에와 의사 무라이의 불륜으로 넘겨짚고, 아내에게 복수하고자 살인범의 딸 요오꼬를 몰래 데려와 아내에게 키우게 한다. 그 이유는 아내에 대한 들끓는 복수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불륜을 저지른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게이조오의 행동도 또한 결코 용서될 수 없는 잔인한 복수에 불과했다. 이러한 사실을 몰래 알게 된 나쓰에가 요오꼬를 구박하고, 요오꼬는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후 자살을 감행했다. 그리고 도덕적으로 깨끗함을 자신했던 요오꼬는 부모의 사악함을 알게되자, 자신의 핏속을 흐르고 있는 죄의 무게감에 쓰러지고 만 것이다. 그러면서 요오꼬는 마지막 유서에서 자신의 죄를 구원할 수 있을 `권위있는 존재'를 갈망한다.
(속)<빙점>에서 요오꼬는 살아나지만,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살인범의 자식이 아니라는 오명을 벗었지만, 요오꼬는 자신의 출생이 어머니의 부정이라는 큰 오점에서 기인한 것을 알고, 어머니를 결코 용서하지 않으려든다. 큰 맥락에서 보자면 속편은 요오꼬가 어머니를 용서하게 되는 기나긴 여정과 같은 것이다. 요오꼬는 때가 타지 않은 청순한 여인으로 자라나지만, 자신의 내면속에 흐르는 어머니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전혀 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즉, 깨끗한 자신이 부정한 어머니를 심판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아야꼬는 이 부분에서 신약성서속 예수님의 일화를 그대로 가져온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가르침을 이어가던 어느날, 유대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예수 앞으로 데리고 온다. 유대 율법에 간음한 여인은 현장에서 돌로 쳐 죽이게 돼 있었다. 유대인들이 말했다. 이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만약에 그녀를 감싸고 돈다면, 예수는 율법을 어기게 되고, 또 죽이자고 하면 자신이 가르쳤던 사랑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침묵을 지킨 예수가 군중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조용히 땅에 이렇게 썼다. "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이 광경을 지켜본 유대인들은 하나둘씩 그 자리를 도망쳤다 한다.
아마도 아야꼬는 이같은 예시를 통해 태생적으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그같은 죄책감으로 어두움속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인간이란 누구나 예외없이 깨끗하지 않다는, 그래서 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성경은 `의인은 없다'라고 적시하고 있다. 요오꼬는 스스로를 의인으로 생각했으리라. 그래서 어머니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그렇게 순수했던 요오꼬도 마음속엔 죄의 씨앗인 `빙점'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그것을 깨닫게되자 자신이 죄많은 인간이라는 진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성경속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오꼬는 자신의 죄에서 이제 어떤 방법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지 그 힌트를 얻게 된 것이다.
"요오꼬는 기다하라에게, 도오루에게, 게이조오에게, 나쓰에에게, 그리고 준꼬에게
지금 본 불타는 유빙의 놀라운 광경을 알려 주고 싶었다. 자기의 눈앞에 생각지도
않았던 전혀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을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죄가 많다고 마음속으로 느꼈을 때 이상한 안식을 얻을 수 있었던 불가 사의함
도 알리고 싶었다. " p.555 (속) 빙점의 마지막 장인 `불타는 유빙'에서
전 문화부장관이자 한국의 대표적 지성인 이어령 선생님이 74세에 세례를 받고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내 나이 막 스무살이 되던 해, 나는 그의 수필과 소설들에 잠깐 빠져지낸적이 있다. 그의 글엔 항상 윗트와 자신감이 넘쳤고,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한 뛰어난 문장들은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는 왜 그 늦은 나이게 회심했을까? 그는 간단히 이렇게 말했다. "절대 고독 속에서 절대자를 느꼈으며, 지상의 언어가 헛되다는것을 50년만에 깨달았다" 고. 진정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약함과 부족함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것을 깨닫게 되었을때, 우리는 신앞에 겸손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아야꼬가 <빙점>속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예외없이 죄짓는 우리가 진정 누구에게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분이 누군인지 깨달았을때의 삶이야말로 진정한 기쁨과 희망의 길이 열리는 순간이 될 것이라고 아야꼬는 이 소설에서 말하고 있는 듯 하다.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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