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 햇빛출판사 / 199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독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은 것도 그러고보면 올해로 딱 10년차에 접어든다.
그러니까 내가 무슨 목적을 갖지 않고 순수히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그리 많이 된 것
은 아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책을 고르고 책을 읽고 감상을 써 내려가는 법이 서툴고
언제나 어떤 책에 대한 감상을 적을 땐 긴장되기까지 한다. 때로는, 내가 단시간에
읽어내려간 책이, 또 그렇게 쉽게 습득할 수 있는 책이란 것이, 대부분 작자의 무한한
인내와 노력과 내공이 뒤섞인 땀의 결정체이자,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어떠한 삶을 기
록해 놓은 것일수도 있다. 그러할때, 별다른 노고없이 이루어지는 나의 독서는 그저
사치스런 소일거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6월초부터 지금껏 틈틈이 읽어내려간 신영복 선생님의 글은 한 개인의 내면이
도달할 수 있는 사색과 통찰, 그리고 인내와 인생이 활자 하나하나에 박혀있는 책으
로서 지금껏 내가 서술한 그 예에 적확히 해당하는 저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한
책을 읽을 때면 밀려오는 감회와 존경의 마음은 어떠한 미디어도 책을 대신할 수 없
다는 생각을 품게 만든다. 그래서 그 책에 대한 독서의 시간들은 더없이 소중하게 되
며, 내 손때가 묻은 작가의 저서가 그대로 내 짧은 독서인생의 값진 장서가 되어 버린
다.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저자가 1968년에 터진 통일혁명당 사건
으로 무려 20년 20일을 복역하고 1988년 8.15 특사로 풀려나기까지 부모님과 가족
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묶은 책이다. 무슨 죄로 인해서 그는 20년이란 긴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을까 ? 그것이 가장 먼저 궁금했다. 인터넷에서 통혁당 사건을
검색하면 이렇게 시작된다..



" 통일혁명당(統一革命黨)사건이라고...김종태(金鍾泰)는 북한공산집단의
대남사업총국장 허봉학(許鳳學)으로부터 직접 지령과 공작금을 받고 남파된
거물간첩... 그는 운수업으로 위장하여 통일혁명당(북한노동당의 在南地下黨)
을 조직.. 전(前)남로당원·혁신적 지식인·학생·청년 등을 대량 포섭..
그리고 결정적 시기가 오면 무장봉기하여 수도권을 장악하고, 요인암살·정부
전복을 기도 "문화인·종교인·학생 등이 다수 포함"...이들 중 73명이 송치되었는데,
김종태는 1969년 7월 10일 사형이 집행되고, 이문규(李文奎) 등 4명은 9월 23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고........" - 네이버



시사에 관심이 적은 사람들은 인터넷 검색에서야 겨우 찾을 수 있는 통혁당사건.
가끔 신문지상에서 박정희 독재권력이 지배하던 시절의 조작 간첩사건으로 지금은
밝혀진 이 사건에 그가 연루돼 있었다. 육군사관학교와 숙명여대에서 경제학을 가
르쳤던 그는 사형을 언도받은후, 곧이어 무기징역형으로 감형받아, 20년 20일 감옥
에서 보낸 것이다. 전도유망하고 평탄한 학자의 삶이 독재권력의 망령된 폭력에
희생된 순간이다. 그는 20대의 후반과 30대의 전부를 그리고 40대의 초반을 사방
이 막힌 감옥에서 끝없는 인동의 시간으로 보내야 했다. 평범한 우리들로선 그
시간에 주눅들기 일수이지만 어디까지나 우리들의 상상이란 관념에 머문다. 그러나
20년이란 긴 세월을 감옥에서 실제로 살아내야 했을 당사자의 고통과 절망은 어떻게
상상이 가능할 수 있을까 ?


강산이 두번 변하고도 남을 시간동안 그는 감옥에 유폐되어 있었다. 그것은 스무번
의 봄이자 스무번의 겨울이다. 왜 이렇게 표현해야 할까?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나또
한 감옥 생활을 간접체험한 덕분이다. 그의 글대로라면, 징역생활은 `겨울을 인내
하여 봄을 맞이하는 일' 같단 생각이 들어서다. 20년간 반복된 편지글의 계절인사
를 읽다보면 단 한번도 그러한 유폐를 경험하지 못한, 독자들로서도 그러한 인사가
단순한 편짓글의 예절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가 밖에서 살았던 27년이 관념이라면
감옥은 현실이고 세상의 밑바닥이었다. 사람도 환경도 모두 그러했다. 그래서 충분
히 그의 관념도 그렇게 추락할 수 있는 여건에 있었다. 그러나 그의 편짓글들속에서
나는 환경이 누추해도 인간의 내면의 성숙이 방해받지 않을 수 있단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그는 꾸준히 책을 가까이 했고, 서예를 통한 글쓰기도
멈추지 않는다. 지나친 독서는 사색을 방해하고 방대한 지식은 실천이 배제된 환경
속에서 무용지물이 될 거란 고민을 하게 된다. 그의 편짓글들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수님과 계수님 앞으로 보내진 것들인데, 20년간 편지들은 놀랍게도 한결
같이 감정적인 기복과 흐트러짐이 없다. 변화없는 감옥 생활의 소소한 일상의 깨달
음, 밖에서 경험하지 못한 노동의 교훈, 개성이 남다른 죄수들과의 관계맺기 등을
서술하면서 자신이 깨달은 삶의 가치와 방향성을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감옥생활을 살아가면서도, 그는 인간과 학문에 대한 나름의 사
색을 멈추지 않았다. 그로부터 환경에 지배받지 않고 내면의 힘을 키워온 학자의
기상과 의지, 그리고 그 긴 인고의 시간을 견디어 낸 인내를 본받을 수 있었다. `자유
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외침이 있듯이, 자유를 빼앗긴 인간은 절망하기 일수다.
그럼에도, 더구나 독재권력의 희생양이 되어 삶 자체가 송두리째 훼손된 상황속에서
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하는 법 없이 그 현실 자체를 `또렷한 의식'속에서 살아온
그의 정신은 위대하다고 할 수 있을 법하다.



20년이란 긴 세월의 노고가 깃들인 글을 그 짧은 시간 동안, 가볍게 읽어 낸다는 것이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오늘날 기교가 넘치고 세련된 글들을 생
산해 내고 있는가 ? 그러나 감동은 그러한 작문 기교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 짧은
서간문들 사이에서 발견한 작가의 진중한 삶의 기록은 결코 아무나 흉내내지 못할 그
무엇이다. 그리고 그러한 책을 발견해 내고, 또 선택하여 읽는 행위는 오직 독자의 몫
이지만 또 쉽지 않은 일이다. 쭉정이가 너무 많아 낱알을 고르기 힘든 것이 오늘날
독자들의 고민 아닌가 ? 나는 그래서 다시한번 현명한 독자로서 `책의 선택'을 강조
해 두고 싶다.



그의 첫 저서는 이 책이지만, 다음 기회에 그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와
<더불어 숲> 등의 저서를 읽어볼 계획이다.



------------밑줄긋기-------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그가 몸소 겪은 자기 인생의 결론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사상을 책에다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서 이끌어
내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아무리 조잡하고 단편적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사상은
그 사람의 삶에 상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삶의 조건에 대하여는 무
지하면서 그 사람의 사상에 관여하려는 것은 무용하고 무리하고 무모한 것입니다.
더욱이 그 사람의 삶의 조건은 그대로 둔 채 그 사람의 생각만을 다른 것으로 대
치하려고 하는 여하한 시도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폭력입니다. 그러한 모든 시도는
삶과 사상의 일체성을 끊어버림으로써 그의 정신세계를 이질화하고 결국 그 사람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p.297,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2006. 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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