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모든 것 -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설득의 기술, 프로페셔널라이팅
송숙희 지음 / 인더북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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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의 장편 <마의 산>에는 매력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인물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인물은 `세템브리니'라는 인문주의자였다.  모든 게 미숙한 주인공 청년 한스 카스트로프에게 그는 "인식하고 표현하려는 용기, 그것은 바로 문학이며 인문정신"이라고 조언해 주었다.  대학 시절 읽은 이 소설을 다시 읽게 된다면 그 평가가 달라질지 모르지만, 지금껏 세템브리니의 이 대사만큼은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각인 돼 왔었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 영화를 보고 무언가 글로 표현해보고자 하는 노력, 주어진 주제에 꽉찬 글 한 편을 완성해 보려는 시도에 담긴 `열정'을 잘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루 세 끼 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존재다. 하여, 예술과 철학이 탄생했고 궁극적으로 가장 기본적 표현도구라 할 수 있는 언어가 발전했다.  누구나 글을 익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바로 언어교육의 본질이다. 하지만,  자신이 쓴 글에 만족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글을 쓰는 모든 사람은 역설적으로 글을 `잘 쓰기 위해'서 글을 쓴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단순히 작문 기술의 탁월함을 말하는게 아니다.  내용과 기술, 모두를 충족시켜야 한 편의 뛰어난 글이 탄생한다.   글밥먹고 사는 사람들조차 글쓰기를 힘들어 한다.  하물며, 글을 단순히 소비하는데 익숙해 온 일반 독자들에게 글쓰기는 넘지못할 거대한 산이었다.  글쓰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전직 저널리스트였고 이제는 책쓰기 코치로 제2의 인생을 보내고 있는 송숙희는 그간 출간된 저서들에서 독자들의 이같은 고민을 잘 이해하고, 속시원히 풀어줄 방법들을 연구해 왔다. <책쓰기의 모든 것>(인더북스,2011년)은 책쓰기와 글쓰기 노하우를 집대성해 놓은 훌륭한 책이었다. 또 다른 저작 <글쓰기의 모든 것>(인더북스,2013년)에서 그가 집중해 다룬 것은 진화한 글쓰기인 `프로페셔널라이팅'의 정체를 풀어낸 것이었다.  전작들과 중복된 내용들이 없지 않지만, 이 책에서 새롭게 정의한 프로페셔널라이팅을 통한 글 잘 쓰는 방법들은 수많은 사례와 문장가와 작가들의 경험담을 인용하면서 독자들을 유능한 정보컨텐츠 생산자로 커 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저자는 SNS가 대중화된 소셜시대의 최고 병기로, 프로페셔널라이팅을 지목한다. 프로페셔널한 글쓰기란 `글로써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설득기술'을 말한다.  또, `하고 싶은 말을 독자의 흥미와 관심사에 맞게 포장하여 전달하는 방법'을 통칭한다.  중요한 것은 프로페셔널이 쓴글에는 독자들이 원하는 컨텐츠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 있는 글은 사람들이 자신의 주머니를 열어, `기꺼이 그 대가를 지불할 만큼 잘 쓴 글이자 그들의 갈망을 충족시켜주는 글'이다.  돈이 되는 글쓰기가 어감상 속되게 보이지만, 돌려 말하면 그런 글이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에선 팔리는 글이며, 가치있는 글이 된다는 의미다.   하여, 저자는 이 책에서 가치있는 글쓰기란 무엇인지 프로페셔널라이팅으로 진화하는 방법을 속속들이 파헤친다. 

 

" 잘 팔리는 모든 것에는 콘셉트란 게 있다.  독자고객의 `묻지마' 구매를 유도할 만한 매혹적인 그 무엇, 이것이 바로 콘셉트다.  정보콘텐츠 또한 콘셉트가 내장되었을 때 잘 팔린다. 따라서 프로페셔널라이팅은 돌연히 떠오르는 어떤 영감에 의해서가 아니라 고도의 창의적인 사고와 실행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30쪽, 송숙희 <글쓰기의 모든 것>

 

무턱대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해서 프로페셔널라이팅의 세계에 발 디딜 수 있는게 아니다. 그 분야을 오랜 시간 연구하고, 가르쳐온 사람들의 조언을 들을 때 우리가 바라는 좋은 글, 가치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송숙희는 그간 내가 만나본 글쓰기 관련 분야의 저자 가운데서도 탁월한 코칭 기술을 선보이는 저자다.  그의 책에는 이 기술들이 흡입력 높게 요리 돼 나온다.  그가 언급한 프로페셔널라이팅의 주요한 기술을 몇 가지만 맛보자.

 

첫째, 글쓰기에 앞서 스마트하게 생각하기. 쓰기는 생각하기가 전부다. 쓰기 전에 생각하지 않으면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다.  정보컨텐츠 생산에 투입되는 시간과 에너지 90%는 생각하기의 과정이고, 그 생각들을 문자로 표현하는 데 나머지 10%가 쓰인다. 둘째, 새로운 정보는 없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는 세상에 이미 다 나와 있다. 성서에도 나오지 않던가.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창의적인 직업군인 기자,에디터,광고 및 상품 서비스 기획자들은 이미 나와 있는 정보를 조직하는데 달인들이다. 가치있는 정보컨텐츠를 생산하는데는 세상의 정보를 창의적으로 묶어내고 편집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글쓰기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이라기 보다는 가치있는 정보를 엮어내는 기술이다.

 

셋째, 글을 쓸 때는 대중의 언어를 구사하라. 당신은 전문용어를 써가며 폼나게 쓰고 싶겠지만 독자는 쉽고 재미있게 듣고 싶어한다.  독자 즉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는 어떤 글쓰기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넷째, 글쓰기에 속성과정은 없다.  하루 아침에 글을 잘 쓰겠다는 것은 그저 욕심일 뿐이다. 경험을 아이디어로 재창조하고 설득력 있게 스토리텔링 하는 기술은 오랜 연마를 필요로 한다.

 

 " 가치 있는 모든 일은 그것을 잘 해내기 위해 시간과 관심과 구체적인 연습과 훈련을 투자해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가치 있다'"  210쪽

 

햇수로 8년 째, 책을 읽고 블로그에 서평을 써 왔다. 지난 8년간 내 일상에서 3가지는 변함 없었다.  일하고 책읽고 글쓰는 것 !  살면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무언가를 이렇게 오래 해본 적이 없다. 서평이나 영화평 등 리뷰 중심으로 글을 썼지만, 어떤 글이 됐든 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다.  내 경험으로 보자면 처음 서평을 쓰는 데는 2시간이면 족했다.  그 이상 책상에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그러다 다시 글 한 편을 쓰는데 그 두배의 시간이 들었고, 다시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왜 그랬을까?  잘 쓰겠다는 염원과 자신의 글에 대해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요즘엔 다시 그 중간 지점으로 되돌아왔다.  너무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게 !   또,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면 쓰지 않았다. 하지만, 요즈엔 쓰겠다고 마음 먹으면 피곤해도 무조건 쓴다.  여전히 어떤것이 글쓰기의 정답인지 나 자신도 모른다. 

 

어떤 기술이나 예술이 됐든, 처음엔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만 그 뒤로 오랜 시간 부딪치고 깨어지면서 스스로 터득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내게 지난 8년은 숱한 시행착오의 시간이었다.  여전히 그 시행착오는 계속되고 있다.  시간이 지나자 좋은 글을 썼느냐 아니냐란 문제보단 그런 `노력' 자체가 보상이 되고, 글쓰기의 발판이 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1년에 30편에 밑도는 서평을 발표하고 서평 분야의 파워블로그가 됐을 때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3년째 그 정도의 서평을 쓰고 그 감투를 유지했다. 글을 잘 썼다기 보다는 계속 썼다는 것, 30편의 글을 12개월로 나눠 잘 배분해 썼다는 것. 글 한 편 한 편 고민하며 썼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줬다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내게 가끔 글쓰기를 조언하는 메일이나 쪽지가 날아온다. 내가 해주는 조언은 특별하지 않다. 나또한 배우는 사람으로서 특별한 비방이 없을 뿐더러 사람은 경험으로 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꾸준하게 읽고 쓰시길 바랍니다!"   송숙희라는 탁월한 글쓰기 코치도 이 책의 말미에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미국의 영화 감독 우디 알렌이 말했다. " 성공의 8할은 일단 출석하는 것이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출석해서 1등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런데, 그런 목표를 세웠지만 출석조차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과 독서와 글쓰기, 이 세가지는 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이 되고 말았다.  그것을 탁월하게 잘 해내겠다는 것은 `욕심'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욕심을 채울만큼 능력이 되지 않기에 계속해 써 나가겠다고 `약속'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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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론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남희 옮김 / 박하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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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단 하룻밤 만에 소설 한 편을 읽는 일은  짜릿한 경험이다. 나처럼 느린 독서를 선호하는 독자에겐 더욱 그렇다. 어쩌면 그건 추리소설이어서 가능한 일인 듯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작년 겨울에 이어, 올 겨울 다시 읽었다.  순수문학에 집착하는 습벽을 갖고 있는 나는 지난 겨울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현대문학,2012년)이 건네준 따뜻한 위로와 감성을 잊을 수 없다.  문학의 형식은 중요치 않다.  무엇을 담아냈는가, 내용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란 작가는 새로운 문학 영토로 나를 이끈 작가로 평가하고 싶다.  이 작가의 장점이라면 이야기의 빠른 전개, 복잡한 플롯,  특유의 반전,  예상치 못한 결말로 끝까지 독자의 방심을 허락치 않는다는 것이다.   더불어, 유머와 인간미가 넘치는 대사와 인물 창조는 그의 특기다.

 

2014년 겨울 시즌 추리소설 독자들을 위한 작품이 출현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근작 <질풍론도>(박하, 2014년)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환상과 현실의 조합을 추구하며 독자의 혼을 빼 놓았다면, 이 작품은 탄탄한 현실에 두 발 디딘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은 지극히 판타스틱하다.  `은색 빛이 넘치는 광활한 설원'이다.  남극이나 북극인가?  아니다.  바로 일본 최대의 `사토자와 온천 스키장'이다.  수많은 스키어들과 스노보더들이 화려한 복장과 날렵한 몸짓으로 앞다투어 설원을 질주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미스터리는 이곳에서 `활강'을 시작해 독자를 설원의 미스터리로 초대한다. 

 

다이오 대학 의과대 연구소에서 K-55라는 생물학 무기가 은밀히 계발된다. 이 무기의 정체는 `초미립자 형태로 가공된 탄저균'이다. 연구소의 룰을 어기고, 생화학 무기를 계발한 사람은 연구원 구즈하라였다.  연구소장 도고에게 이 사실이 들통나 결국 구즈하라는 해임당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 구즈하라가 설산에 밀봉된 K-55 를 파묻는 것에서 시작한다. 플라스틱 용기는 10C가 넘어서면 파손될 수 있다. 말하자면, 눈이 녹기 시작하면 탄저균 포자는 공기중에 떠돌아다니며 무서운 재앙을 초라할 것이다. 독자의 예상대로 구즈하라는 연구소장 도고에게 협박메일을 한 통 날린다.  탄저균을 회수하려면 3억엔을 준비하라 !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의 흐름을 끊어버리는 반전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 

 

미스터리의 추진엔진 악당 구즈하라가 연구소장 도고에게 협박 메일을 날리고, 운 나쁘게 교통사고로 사망해 버렸다.  미스터리는 힘을 잃을까?  아니다. 사건은 더 복잡하게 꼬였다.  악당이 감추어둔 광활한 설산속 K-55 회수가 미궁속에 빠져들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것은 이제 누구의 몫인가 ?  히가시노 게이고의 특기가 빛을 발할 시간이다. 해결사 두 명이 급파된다.  능력은 출중하나 요령없이 사는 것에 익숙한 만년 연구원 `구리바야시'와 스노보드 마니아인 그의 중학생 아들 `슈토'다.  K-55를 되찾아올 유일한 끈 하나가 등장한다.  수신기를 장착한 `테디베어'다.  악당 구즈하라는 스키장 출입금지 구역으로 걸어들어가 너도밤나무 가지에 테디 베어를 묶고, 그 아래 눈속에 생물 무기를 파묻었다. 그러니 전파를 발신하는 테디베어를 찾으면 K-55로 회수가 가능하다. 

 

대학시절 스키를 타본 후, 중학생 아들과 다시 스키장을 찾은 구리바야시는 형편없는 스키실력을 갖고 있다. 사건을 철저히 비공개로 처리해야 한다고 연구소장 도고에게 지시받은 그는 결국 테디베어를 찾다, 부상당하고 만다. 테디베어 송신기의 밧데리는 이틀후면 소진될 것이다. 테디베어를 혼자 힘으로 찾을 수 있을까?   파국을 막는 일은 비밀에 부친다고 해결될 수 없다.  작가는 스키실력이 출중하고 정의로운 구조요원 네즈와 전직 여성 스노보더 선수 치아키를 등장시킨다. 또, 구리바야시의 아들 슈토와 그의 친구들의 집요한 추적과 노력을 통해  K-55를 회수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낸다.   악당 구즈하라를 대신해 가공할 무기를 손에 넣으려는 신예 악당 `오리구치 마나미'를 등장시켜 서스펜스와 스릴을 잊지 않고 가미한다. 사건을 뚝딱 해결해줄 영웅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합심할 때 선(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꼬인 실타래를 풀어내는 일에 스키장의 구성원 모두가 조금씩 힘을 합친다는 건 분명 상징적이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다른 사람도 불행해지길 바라는 건 인간으로서 실격이야.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몫마저 행복해지길 바라야 해.  그러면 분명 그 행복이 넘쳐흘러 우리에게도 돌아올 테니까.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불행을 만났을 때, 다른 사람이 생각해야할 것은 자신들도 같은 불행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힘껏 행복을 만들어서 그 가엾은 사람들에게도 행복이 돌아가도록 애쓰는 것라고 생각해."  233 쪽, 히가시노 게이고 <질풍론도>

 

사건 해결의 주체인 전직 스노보더 치야키는 시합을 앞두고 K-55을 찾는 일에 앞장선다.  어쩌면 대량 살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태를 앞두고 이제 그만 뒤로 빠지라는 친구, 네즈에게 그는 빠질 수 없다고, 며칠 남은 시합 따위보다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토로한다.  이 작품은 후반부로 갈수록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일본인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짐작케 하는 대사들이 등장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유쾌한 추리게임 속에서도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열패감을 위로하는 길을 찾고 있었다. 이타심이 가득한 등장인물들이 생명을 살리는 숭고한 일에 열정을 쏟고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추리소설의 한계를 넘어서는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감성적 스토리 작법이다.

 

설산의 리프트가 찍힌 테디베어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정신없이 독자를 소설 안으로 빠져들게 했다. 스키장의 슬로프를 단 한 번이라도 질주해본 사람들은 그 짜릿한 속도감과 쾌감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이 겨울 가장 잘 어울리는 추리소설 한 편이 있다면, 바로 슬로프의 질풍같은 활강을 미스터리로 변주해 낸 이 작품이 아닐까 싶다. 더군다나 출입금지 구역인 슬로프 밖, 단 한 번도 스키어의 발자국이 나지 않은 그 평화롭고 신비로운 공간에 지금 K-55라는 무시무시한 생화학 무기가 감추어져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리고 당신은 지금 구조요원의 감시를 벗어나 스노보드와 스키에 몸을 싣고, 어딘가에 감추어져 있을 테디 베어의 송신음을 추적하기 위해 활강을 주저치 않는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질풍론도>가 스키시즌이 끝나가는 지금, 다시 마니아들을 `겔렌데(슬로프)'로 유혹하는 듯 하다.

 

질풍처럼 덮쳐오는 위기, 이야기 전개는 독자의 흥미와 즐거움을 유도하는 긍정적 면이 있지만, 후반부로 오면서 지나친 반전이 롤로코스터를 탄 듯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세심한 성격이 독자의 상상력을 침해하는 경향도 눈에 띈다. 지나치게 사건의 앞 뒤를 친절하게 풀어놓는 것은 `잉여적 설명'이다.  전편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보다는 플롯이 단순하고 이야기에 깊이가 부족한 면도 단점이다.  하지만, 그 모든 단점들을 조합해도 장점들이 더 많이 눈에 띄는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  매번 기발한 소재를 작품속에 담아낼 줄 아는 작가의 차기작을 마음 편히 기대할 수 있을 듯 하다.  스키시즌에 맞춰 출간된 이 책은 스키마니아들의 질주에 야릇한 흥분과 상상력을 선물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 구리바야시의 스키실력은 몸보다 마음이 앞서는 대표적 예다.  스키장에선 몸이 부자연스런 독자로서 자연스레 감정이입이 되고 말았다.  소설의 첫 페이지에 작가는 중의적인 멘트 하나를 남겼다.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나 자신도 놀랐다."  그 재밌다는게 자신의 소설일까?  자화자찬의 오해를 불러올 수 있기에 난 그걸 다르게 해석하고 싶다. 작가는 슬로프에서 활강의 추억을 저렇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소설 속에는 스키 전문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스키장을 자주 찾았을지 모른다.  물론 타보기도 했을 것이다. 자연스런 소설을 쓰기 위해 못할것도 없다.  이 작품은 슬로프의 질주를 빼닮았고 한밤의 독서는 지칠줄 몰랐다. 그리고 "추리문학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  나 자신도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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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근대, 다시 읽는 해방 전前사 - 이덕일 역사평설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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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제뉴스의 헤드라인를 삼키고 있는 소재들을 보라.  대부분 한국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에 관한 소식들이다.  얼마 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이 사건을 두고 네덜란드 언론은 "독일 총리가 히틀러의 무덤을 참배하는 격"이라 비꼬았단다.  우리가 알다시피 야스쿠니 신사는 2차대전의 전범들이 합사된 곳이다.  해서, 일본의 과거 총리들은 주변국 반발을 의식해 방문을 자제해 왔다. 그 앞에 서 현직 총리가 고개를 숙이고 묵념을 하는 것은 과거 일본의 역사범죄 자체를 긍정하겠다는 신호다.  일본의 직접 피해국인 한국과 중국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일본은 한술 더 떠, 독도를 자기영토라며 이제 교과서에서 당당히 가르치겠다 선언했다. 아베 정권이 들어선게 1년이 넘었지만,  삼국 정상이 한자리에 서본 적도 없다.  중국은 일본에 맞서 한국과 손잡고 하얼빈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설치했다. 중국은 또 일본과 댜오위다오(일본명:센카쿠열도)에 대한 영토 분쟁을 치르며 군사대치의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과연 21세기 동아시아의 패권을 앞에 두고 소리없는 전쟁이 진행중이다.  전쟁의 시발이 된 것은 과거사 문제였다. 1900년대 이 후, 근대 동아시아 역사가 21세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역사학자 이덕일의 최근작 <잊혀진 근대, 다시 읽는 해방전(前)사>(역사의 아침 펴냄, 2013년)가 집중한 시기가 바로 이 지점이다. 이 책을 주목해야 할 이유는 결코 우리가 배우지 못했던 역사의 세밀한 결에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제하 사회주의 운동사, 아나키즘 운동사, 식민지 시대 부호 열전, 그리고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동아시아 침략기, 그들의 질주와 패망을 이처럼 자세히 다룬 역사책은 없었다.  특히 이 책의 후반주가 집중해 그려내고 있는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 전략과 그것을 주도한 일본군의 성향을 알고나면, 아베 총리 언행의 역사적 뿌리와 그 위험성을 깨닫게 된다.

 

"현재 일본의 우경화는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충격을 받은 일본인들이 일본 본토에서 벗어나기 위한 집단적 병리현상의 표출로도 이해할 수 있다. 방사능 오염에 대한 극단의 공포가 독일처럼 원전 해체라는 이성적 방향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아시아 일부를 식민지배했던 군국주의에 대한 향수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5쪽, 이덕일 <잊혀진 근대, 다시 읽는 해방전(前)사> 

 

우리 교과서는 그간 일제 점령기하 사회주의와 아나키즘 운동사를 간략히 서술하는데 그쳤다. 이데올로기에 민감한 국민 정서와 정권의 입맛에 따른 것일테다.  20세기 초에 전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이러한 이데올로기 경향이 우리 나라에선 일본점령을 벗어나고자 한, 저항운동의 성격을 띠게 된 것이 특징이다. 그들은 마르크스를 추종하고 능동적 노동계급을 양성하는 세력을 만드는데 주력한다.  또, 코민테른(노동자들의 국제조직)이 러시아를 중심으로 전세계적으로 번져나갔지만,  레닌 이후 스탈린이 러시아를 접수하면서 사회주의가 전체주의와 민족주의 성향을 갖게 됐다.  이덕일은 일본 본토와 식민지 한국의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코민테른과 접선하는 과정, 일본의 일방적인 탄압, 또 그것이 일정부분 독립운동과 연계돼 있었다는 점을 흥미롭게 서술했다.

 

무정부주의는 `사회주의를 지향했지만, 좌파 전체주의를 공격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자와 형제이자 적'이었다. 아나키즘 운동사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은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부부였다.  일본정부는 이념에 치중한 사회주의 운동가들보다는 이념을 모태로 행동으로 나아가는 것을 주저치 않았던 아나키스트들을 더 무서워했다. 그것을 증명한 아나키스트가 박열과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다.  일본 재판부는 박열 부부가 왕세자 결혼식 때 일왕 등을 암살할 계획을 수립하고 폭탄 구입을 논의한 것을 대역죄로 걸어 사형을 언도한다.  가네코 후미코는 재판에서 `일본 국가 사회제도가 천황을 중심으로 한 계급 사회란 점을 성토하고, 무지한 민중은 꼭두각시요, 나무인형일 뿐이다'고 진술해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큰 주목을 받았다. 

 

1926년 3월 판결공판 때 사형을 언도받은 박열은 "재판장 수고했네"라면서 "내 육체야 자네들이 죽일 수 있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라고 태연했고, 가네코는 판결 순간 "만세!"라고 외치며 "모든 것이 죄악이요, 허위요 가식이다"라고 덧붙인다. 그 시절 아나키스트들의 의연함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두 사람은 훗날 무기형으로 감형되지만 다른 형무소로 분리 이감된 아내 가네코는 23살 나이에 감옥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그녀는 옥중에서 "한 번은 저버린 세상이지만 / 글 읽으니 / 가슴에 솟는 가여운 슬픔" 이란 시를 짓기도 했다.  남편 박열은 해방 후 22년만에 석방되어 조선민족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우린 일본점령기의 아나키즘 운동사에서 해방조국과 자신의 신념을 위해 일본에 맞선 용기있는 인사들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육군유년학교 출신의 장교들은 천황에 대한 충성과 관료들에 대한 불신으로 자주 쿠테타를 일으키며 일본 내 가장 강력한 군부세력으로 커 나갔다. 이 전쟁기계들은 `세계최종전쟁론'을 퍼트리며 일본 정부 위에 자주 군림하고자 했다. 이들은 훗날, 만주침략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중국 대륙을 손쉽게 접수할 것을 기대했으나 어디까지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국공내전으로 힘이 분산된 중국군은 훗날 국민당과 공산당의 국공합작을 거치며, 관동군의 기세를 꺽고 만다. 이덕일은 이 책에서 `조직폭력배'에 가까운 일본군부의 성향과 동남아시아 침략전쟁의 전략을 시기별로 상세히 풀어냈다. 특히 훗날 천황 외에는 일본정부의 통제조차 받지 않았던 관동군과 군부의 무소불위 힘과 오만, 전쟁범죄의 잔혹함은 지금 되돌아봐도 그 악랄함에 치를 떨 정도다.

 

`현인신'으로 군림하며 실제적으로 폭력배나 다름없던 군부세력을 배후조정한 히로히토 천황은 전후 전쟁 책임을 일부 회피하는 비겁함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일본 본토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전까지 일본군의 패주를 인정하지 않고 일본 본토를 요세화하며, 최후 결전을 준비한 군부 세력에 장단을 맞춘 장본인이었다. 미군에 태평양의 일본해군이 궤멸되었지만, 일본의 전쟁기계들은 함께 죽자는 `1억 옥쇄'작전을 전략이라고 내걸며 집단 할복도 불사하겠다는 정신착란에 빠져든다. 그런 군부의 손에 놀아나며 마지막까지 항복을 미뤄 수많은 일본인을 원자폭탄에 희생시킨 이가 다름아닌 히로히토 천황이었다.

 

" 이때 더글라스 맥아더가 국무장관 제임스 번스의 답변에 따라 `천황제를 해체하고 일왕을 전범으로 처벌'했다면 전후 아시아의 정치 지형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과거가 미래의 발목을 잡는 현재 동아시아 상황의 원죄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366쪽

 

근대는 잊혀졌다기 보다는 가르치지 않았다고 표현해야 정확하다. 아니면 가르쳤으나 그 역사교육은 지극히 부실했다. 이덕일이 풀어낸 망국에서 해방 전까지의 역사는 새롭고 흥미로웠다. 이 책의 강점은 일본점령기에 가장 왕성한 활동과 적극적인 반일 투쟁을 전개했던, 사회주의와 아나키즘 세력의 잊혀진 역사를 복원한 점이다. 그러한 서술을 통해 독자들은 해방공간에서 좌,우익이 대립하게 된 원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될 듯 하다. 또, 점령기에 나름의 수완을 발휘해 부를 쌓은 인물 열전을 읽다보면 어느 시대에나 실속을 차릴 줄 아는 인간의 놀라운 적응력을 흥미롭게 살필 수 있다.  끝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가장 큰 소득은 일본군국주의 세력의 성격과 그 만행을 추적함으로써 우리 시대 일본 우익들의 언행을 경계할 근거를 확보한 데 있을 듯 하다.

 

기시 노부스케는 2차 대전 당시 군부 파시즘을 지지한 관료로 전후 A급 전범으로 분류돼 복역한 전쟁범죄자였다. 공교롭게도 그의 손자가 다름아닌 현직 아베 신조 일본 총리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가 부메랑이 되어 다시 동아시아를 휩쓸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누구를 비판하기에 앞서 먼저 우리 자신을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최근 뉴욕타임즈는 사설을 통해, 일본과 한국 정부를 동시에 비판했다. "두 나라 정부의 역사 교과서 수정 노력으로 역사적 교훈이 뒤집힐 위험에 빠졌다"고 논평한 것이다. 독재와 친일 미화 논란을 불러일으킨 한국 교과서나 독도를 일본땅이라 왜곡하고 일본 전범들의 행동을 긍정하는 일본 교과서는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논조다.  일방적 피해자였던 우리가 급이 다른 일본과 나란히 비난을 받는 것은 억울하다.  하지만, 외부세계의 시선은 객관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 자신이 역사에 대해 정직하지 않는데, 어떻게 다른 나라의 역사왜곡을 비판할 수 있겠는가? 

 

이덕일의 역사에 대한 시선을 공감한다. 그는 이 평설을 통해 일본이 키워낸 전쟁기계들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했다. 어린 시절부터 전쟁과 군사기술만을 교육받고 자라난 일본 육군유년학교 출신들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은 유년시절 잘못된 교육 탓이 크다.  그러나  오늘 일본은 자신들의 왜곡된 과거사를 다시 자라나는 일본 학생들에게 가르치겠다고 당당히 선언했다. 범죄를 저지르도록 태어난 특수한 인간이 있는게 아니라, 어른들의 그릇된 욕망과 그 사회의 잘못된 교육이 있을 뿐이다.  진정 깨어있고 싶다면 한 국가와  한 사회가 소홀히 다룬 과거를 알아야 한다.  주류 역사교육에서 소외되고 잊혀진 한 시대가 있다면, 그것은 `근대'일 것이라고 이덕일은 이 평설을 통해 문제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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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세트 - 전2권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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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가끔 오빠의 영혼이 다른 그 무엇보다도 언어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어요."  제 2 권, 134 쪽  파스칼 메르시어 <리스본행 야간열차>

 

어떤 소설은 쉽게 규정지을 수 없다.  대체, 이 소설이 무엇에 관한 이야기일까?  평론가들은 작품을 분해하고 그것을 둘러싼 의미망을 추적하려 하지만 독자들은 그들의 해석에 쉽게 수긍하지 못한다. 평범한 나의 독서는 왜 그런 명쾌한 정의와 분석에 가닿지 못할까?  열패감을 안기기도 한다.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명사들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첫 독서에서 큰 감동과 끌림을 남기지 못했다. 내가 이 소설을 다시 보게 된 것은 밑줄을 긋고, 페이지를 접어둔 책을 두 번, 세 번 훑으면서부터다. 곱씹을수록 대단한 문장들이 내 눈에 선명히 와서 박혔고 작가가 문장속에서 담아내고자 하는 우리 삶을 비추어주는 철학이 예사롭지 않은 통찰력 속에 담겨 있었다. 만약 내가 이 책을 두 번 읽고 서평을 쓰게 된다면 이 글은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할 것이다.

 

더군다나 독자들은 이 소설에 대한 예비적 지식이나 추측이 쓸모 없는 착각이런 걸 곧 깨닫게 된다. 제목에서 암시되는 `기차'라는 사물이 갖는 상징성은 지극히 약하게 보인다. 그게 일단은 착각일지라도 !  `일상이 낯설어진 한 남자의 돌연한 일탈'과 그에 얽힌 흥미진진 뒷 이야기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그게 이 소설의 발단일지라도 !   그러면 무엇이 남는가?  독자들은 제목과 출판사의 멋들어진 홍보문구를 보고 책을 잡았을 듯 하다. 사건의 발단은 독자들을 강렬히 유인한다. 한번의 이혼경력을 갖고 있는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예순을 바라보는 스위스의 베른, 김나지움의 고전어 선생이다. 그는 학생들 사이에서 문두스(Mundus, 세계, 우주, 하늘이란 뜻을 지닌 라틴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의 완벽한 수업 능력과 고전어 실력은 익히 알려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더군다나 30년 동안 그의 일상은 단조롭고 규칙적이었다.

 

그런 그가 아침 출근길에 김나지움과 연결되는 키르헨펠트 다리 위에서 자살하려는 여인을 우연찮게 구한다. 이 여인과의 대화 한 구절이 그의 잔잔한 일생에 전환점이 된다.   "모국어가 뭐지요?"  "포르투케스(Portugues)"  그녀는 포루투칼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이다. 평소 언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문두스'에게 이 소리는 하루종일이라도 들을 수 있는 멜로디였다. 서점에 들려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을 읽는다. 그것은 공교롭게도 포루투칼어로 쓴 것이었고, 지은이는 아마데우 이나시오 드 알메이다 프라두라는 사람이었다. 번역을 통해서야 한 구절 진도를 낼 수 있는 그 책은 묘한 감동과 느낌을 전해준다.  드디어, 그레고리우스는 `57년이 지난 후 처음으로 자기 인생을 이제 완전히 장악하려는 시도' 즉 프라두의 고향이자 조국인 도시, 포루투칼의 수도 리스본으로 향한다.  

 

하여,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오른 것이다. 사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고 봐야 한다. 소설은 짧은 열차여행을 포착한다. 소설은 리스본에 도착한 문두스가 프라두의 삶의 궤적을 쫓는 것' 그리고 그가 작품 <언어의 연금술사>를 번역해 조금씩 읽어내는게 전부기 때문이다. 사실 소설의 내용이란게 고작 프라두라는 인물이 포루투칼의 독재 시절을 살아온 이력을 추적하는 것이다. 뼈대를 이루는 이야기, 서사에는 흡입력이 약하다.  이 작품이 뛰어난 점은 다른 곳에 있다.  책 속의 책인 프라두의 <언어의 연금술사>를 조금씩 번역해 소개하는 그 문장들이야말로 작가가 독자에게 드러내고픈 이야기의 진실, 알맹이였다.

 

" 여행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연민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그들이 외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면서 내적으로도 뻗어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계발할 수 없고, 스스로를 향한 먼 여행을 떠나 지금의 자기가 아닌 누구 또는 무엇이 될 수 있었는지 발견할 가능성을 박탈당한 채 살아간다 "    제 2 권, 30쪽

 

`프라두'라는 인물은 여러가지로 화자 `그레고리우스'와 연관된 인물이다. 그들은 태생도, 자라온 환경도, 달랐다.  프라두가 귀족 가문의 엄한 법률가 아버지 밑에서 교육받고, 귀하게 자랐다면, 그레고리우스는 박물관의 경비원 아버지를 둔 가난한 집 출신이다.  스위스와 포투투칼이라는 지리와 역사적 배경 또한 다르다. 그럼에도, 독자들은 이 두 인물의 유사성에 대한 의혹을 품고 나가게 된다. 이 유사성의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는 세가지다. 바로 `언어와 글쓰기, 그리고 존재론적 사유'다.  독자는 메르시어와 그레고리우스, 그리고 프라두를 잇는 이상한 유사점을 눈치챈다. 그들은 고전어 강사요, 언어학자요, 작가였다.  언어라는 공통항이 그들 삶을 묶고 있는 끈이었다.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세상과 담을 쌓고, 고전어로 대표되는 언어의 세계에서 행복과 존재의 이유를 찾은게 그레고리우스다. 그런데 그가 감행한 일탈이란게 또다시 `언어'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집착 때문이란게 놀랍다. 자살하려던 여인에게서 들려온 새로운 언어, 포르투게스가 낯선 세계, 낯선 인물로 그를 이끌어 낸다. 질서정연했던 한 인간의 삶에 벼락 같은 충격을 안긴 것이 새로운 언어와 그 언어로 빚어진 프라두의 책 한 권 이었다.  그 책의 제목을 보라.   `언어의 연금술사' 아닌가.    왜 작가는 언어에 집착하는가?  

 

프라두는 다방면의 천재였다.  하지만, 그는 실력있는 고전어학자 그레고리우스를 숙연하게 만드는 `글쓰기의 천재'였다. 프라두라는 인물의 삶에는 미숙한 점이 발견된다. 아버지와 주변인물, 그리고 시대와의 갈등은 평범한 인물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언어의 연금술사'를 통해 바라본 프라두는 독자까지를 전율케 할 정도로 훌륭한 글을 써낸다.  이 소설은 프라두의 글귀를 이정표처럼 곳곳에 배치하고, 독자를 글쓰기와 사유의 세계로 인도한다. 본래의 주제로 알려졌던 60대 남성의 일탈과 방황은 서서히 잊혀지고, 남겨진 것은 언어가 빚어낼 수 있는 궁극의 아름다움이며, 언어와 글쓰기가 가닿을 수 있는 신비한 세계, 또 우리 삶에서 그것이 가진 의미를 발견해 내는 일이다.

 

" 그리고 몇 주 후에는 `왜 좀 더 일찍 시작하지 않았을까!  글을 쓰지 않으면 사람은 결코 깨어 있다고 할 수 없어. 자기가 누구인지 알지 못해. 자기가 어떤 사람이 아닌지는 더욱 알지 못하고` " 제 1 권, 171쪽

 

이 소설은 흥미롭다기보다는 정교한 깊이를 선물한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소설을 가장한 `언어 철학'이다.  하여, 무턱대고 제목의 매력에 끌려 책을 잡은 독자들이 당황하는건 당연하다.  인내하며 도달한 마지막 장은 허무하다.  허나,  깊이 있고 사변적인 언어로 삶을 포착하려한 작가의 글을 참아낼 수 있는 독자들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밑줄 그은 부분들과 다시 마주할 수 있다.  그레고리우스는 독자에게 다른 삶이 가능하며, 그것이 비교적 쉬운 일임을 보여준다. 그는 30년간 다녔던 출근길을 포기하고, 리스본행 열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자신의 삶과는 전혀 연관도 없던 한 인물의 역사와 종적을 추적한다. 그 동기를 건네 준 것은 그가 일생을 거쳐 사랑한 대상 즉 `언어의 세계' 덕분이다.

 

" 단어들은 윤을 낸 대리석처럼 흠이 없고,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은 모두 완벽한 침묵으로 변화시키는 바하의 변주곡 음색처럼 맑아야 한다."   제 1 권, 46쪽

 

우리 삶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가?  혹여 집착의 대상이 물질적인 것은 아닌가 ?  그것은 죽음과 동시에 덧없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언어는 그렇지 않다. 언어는 생명력이 강하고 특히 아름답게 빚어진 언어는 더욱 더 오랜시간 사람들의 기억속에 뿌리내려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며, 한 사람의 가치를 증명하고 나의 존재와 나의 사유 능력을 북돋을 테다.  책장을 덮기 전, 파스칼 메르시어는 프라두의 언어를 마지막으로 인용한다.    "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제 2 권, 334쪽    우리가 사는 그것은 물리적 세계의 곤궁함이다.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은 언어와 사유로 대표되는 차원높은 세계다.  

 

우리가 이 부분에서 김춘수의 `꽃'이란 시를 상상한다면 적절하지 않겠는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파스칼 메르시어는 똑같은 말을 달리 표현하고 있었다.  " 말은 시(詩)가 되고 나서야 진정으로 사물에 빛을 비출 수가 있어" (제2권, 286쪽),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은 물리적 세계가 아닌 언어와 사유의 세계를 강조한다.  파스칼 메르시어의 이 작품은 독자들의 통속적인 언어습관을 되돌아보게 한다. 시가 되는 언어, `윤을 낸 대리석 같고, 바하의 변주곡 처럼 맑은' 그런 언어에 대한 갈망을 이처럼 극적으로 표출한 작품은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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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2-04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서사가 아니라 시, 소설이라기 보다는 시집, 외부세계로의 여행이라기 보다는 내면으로의 탐색과 침잠 인 작품이죠 ..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개츠비 2014-02-08 12:07   좋아요 0 | URL
다시 살펴보고 싶은 부분이 많은 소설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카루스 이야기
세스 고딘 지음, 박세연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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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는 `이카루스의 날개'란 에피소드가 있다.  이 에피소드에는 다수의 인물이 등장한다. 먼저 크레타의 왕 미노스가 있다.  그의 곁엔 대장간의 신(神)  헤파이토스의 자손인 `다이달로스'라는 건축과 공예의 명공이 있었다. 그는 미노스 왕의 총애를 받지만, 훗날 미노스의 왕비 파시파이의 부정에 연루된 죄로 미움을 사서, 자신이 설계한 감옥에 아들과 함께 갇히게 됐다.  이들 부자는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만들어 감옥의 탑을 날아올라 탈출에 성공한다.  날아오르기 전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루스에게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 당부했다.  하지만, 자유로운 날갯짓에 감동한 이카루스는 아버지의 충고를 잊고 끝없이 날아올랐다.  

 

이카루스는 결국 깃털을 이어붙인 밀랍이 태양열에 녹아내려 바다로 추락해 죽고 말았다.  이 허무한 신화에는 특별한 가르침이 있다.  왕 혹은 어른의 충고를 어기지 말 것, 자신의 능력을 너무 믿고 나서지 말 것, 하여 이 신화는 겸손의 미덕을 가르치는 에피소드로 든든한 자리매김을 해왔다. 신화학자 조지프 켐벨은 "신화는 사회가 꾸는 꿈"이라 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 신화에서 다른 형태의 꿈을 꾸고 있다.  이카루스여, 추락을 걱정하지 말고 더 높이 날아보라고 다그치는 한 사람이 있다. 세계적 경영 구루, 세스 고딘이다.  <이카루스 이야기>(한국경제신문, 2014년)에서 세스 고딘은 이카루스 신화에 숨겨진 이야기 하나를 공개한다.

 

알려진 것처럼 다이달로스는 너무 높게 날지 말라 한 것처럼, 또 너무 낮게 날아서도 안된다고 경고했다. 바닷물에 날개가 젖으면 역시 추락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신화는 오랜 시간 너무 높게 나는 것만을 터부시했다. 공정치 못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바로 산업화 시대가 요구한 인재의 요건이 바로 보스와 조직의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세스 고딘은 세상이 산업화 시대를 거쳐, 연결경제(connection economy)의 시대로 진입했다고 선언한다.  산업화 시대에는 시키는 일만 잘하는 사람이 인정받았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경계가 허물어진 지금의 세계에선 사람과 사람의 `연결과 관계' 자체가 돈벌이와 직결된다. 

  

세상이 요구하는 인재상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그럼에도, 직장인들은 무너진 산업화 시대의 향수에 젖어 있다.  그들은 다이달로스의 경고를 금과옥조로 모시고 추락을 상정하지 않는 `안정'과 `복종'의 습관에 안주한다.  과거 안전한 직장과 직위는 새로운 영역으로 옮겨간지 오래라고 고딘은 선포한다. 안전지대 자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껏 우리가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세상이 이동한 것 뿐이다. 하여, 과거에는 조직의 임원, 대학의 교수, 신이 내린 직장이 직업인의 이상향이었다면, 지금은 `아트와 혁신'이 있는 곳이 바로 안정의 블루오션이다.  하여, "새로운 틀을 구축하고, 사람과 아이디어를 연결하며, 정해진 규칙없이 무언가를 시도하는 사람"을 고딘은 아티스트라 부른다. 

 

연결경제의 시대에 각광받는 인재가 바로 직업과 삶 속에서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용기와 통찰력, 창조성과 결단력"을 뽐내는 아트(art)에 능한 사람이다.  이카루스의 날갯짓을 오만으로 치부하는 세상은 갔다.  자신의 가치를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야만 한다.   지시를 따르고 안전한 방식으로 일하면 더이상 먹고 살 수 없다.  하여, 고딘은 실패와 추락을 감수하고 더 높이 날아오르려는 이카루스의 무모함을 지지한다. 

 



 " 우리는 새롭게 배우기보다 정답을 외우고, 변화를 시도하기보다 시험에 통과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으로,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이제 우리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45쪽, 세스 고딘 <이카루스 이야기> 

 

연결경제에서 `아트'는 독창성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독창성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대량 생산으로 가격을 낮추면 그럭저럭 물건은 잘 팔려나갔고 고객들은 만족했다.  하지만, 지금 시장은 특색이 없는 상품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고객들의 눈높이가 획기적이고 놀라운 제품으로 옮겨가 있다. 그런 상품을 기획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  어떤 사고방식을 가져야 할까?  과거 시대에는 상품이 성공하는 정답이 존재했다.  하지만, 독창성에 정답은 없다.  정답을 찾는 일은 아트의 적이라고 고딘은 단언한다.  이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올바른 대답이 아니라 `흥미로운 대답'이다.  가치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현재 상황에 도전하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그런 성향이 바로 연결경제의 아트다.

 

세스 고딘이 지목하는 아티스트는 선택받기 보다는 스스로 선택하는 독립적인 사람을 가리킨다.  그는 질문을 던지고 의견을 내놓고 하고 싶은 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하는 사람이다. 달인의 경지에 오를 때까지 매일 끊임없이 몸에 배도록 추구하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습관을 평생동안 연마한다. 아티스트는 신뢰와 공감, 독창성과 리더십, 사람들 사이에 오르내리는 스토리를 품고, 연결과 공감, 겸손이라는 인간적인 요소를 갖춘 인재를 말한다.  아티스트에겐 자신이 직접 겪은 반복된 실패의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 왜냐면, 아티스트가 추구하는 것은 과정과 방향, 연결에 대한 열정이지 그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 다들 알다시피 우리는 항상 실패한다.  모든 일이 성공할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언제나 춤을 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기든 지든 즐겨야 한다.  나는 항상 모든 프로젝트와 관계에 지나친 부담감을 느끼지 말자고 다짐한다.  우리의 목표는 이기는 게 아니다. 계속해서 즐기는 것이다.  위로의 말은 오래가지 않는다. 모든 일이 성공할것이라는 격려 역시 그렇다. 정말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여행 자체가 핵심이라는 깨달음이다."  256쪽

 

요즘 대학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직업이 공무원이란다. 우리 시대 직장인들이 갈구하는 최고의 가치가 바로 `안정'이다.  그런데, 세스 고딘은 <이카루스 이야기>에서 안정이 전근대적 가치라고 평가절하 한다. 안정 자체가 나쁘다는게 아니라, 더 이상 안정을 줄 수 없는 구역에서 안정을 찾고 있다는 질책이다. 하여, 그는 도전과 용기 안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를 가질 때 삶이 새로운 안정 영역에 진입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시대를 앞서가는 전문가들은 미래 세대는 `직장보다 직업'이 중시되는 세상이 될 것으로 예언했다. 직장은 일시적인 돈벌이지만, 직업엔 한 사람의 전문성이 깃든다.  직장은 은퇴할 수 있지만 직업엔 은퇴가 없다.  

 

우린 세스 고딘이라는 걸출한 경영 구루를 통해 변화의 날갯짓을 시도해야 하는 이유를 발견했다. 그는 지도없이 새로운 길을 갈 것을 요구했고, "확실함과 보장과 안전망"이 없는 아티스트의 삶으로 나아가야 할 동기를 주입했다.  인류의 삶에 굵은 발자국을 남겨준 예술가들이 살아온 길을 이제 평범한 우리들이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패를 상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대학생들조차 공무원이란 지극히 `평범한' 직장을 얻으려고만 한다. 그들은 직장을 얻겠지만 꿈은 잃을 것이다. 그들은 돈을 얻겠지만, 일생일대의 기회는 놓칠 것이다.  세스 고딘은 그렇게 살지 말자고 속삭인다.  

 

연결경제에선 평범한 것은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 개성이 묻어 있는 컨텐츠 자체가 돈이 되는 세상이다. 우린 자신만의 컨텐츠를 갖고 연결경제의 승자로 태어날 수 있다. "연결과 관계"를 중시하는 시대에는 아트하는 인간, 즉 아티스트가 산업화 시대의 바톤을 이어받을 것이라고 세스 고딘은 가르쳐줬다.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세스 고딘은 이 책을 집필하기에 앞서, 펀딩사이트를 통해 후원금을 모금했다. 불과 세 시간도 되기 전 목표금액 4만 달러를 넘어 25만 달러 이상을 모금했단다.  고딘은 이 열렬한 호흥에 내색하지 않고, 곧바로 노트북을 들고 일터로 향했다.  왜냐면 그런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최고의 특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공과 실패는 뒷 일이다.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느끼는 일을 할 때, 연결경제 시대의 이카루스들은 아트적 재능으로 비상할 수 있다.

 

" 모든 사람은 천재다.  하지만 물고기들을 나무 타기 실력으로 평가한다면, 물고기는 평생 자신이 형편없다고 믿으며 살아갈 것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62쪽

 

세스 고딘이 강조하는 것이 바로 아트적인 직업이다. 예술가는 월급을 받는 직장이 없다.  그는 자신의 업으로 돈을 벌고, 인생을 완성한다. "자신에게 살고 싶은 대로 살아 볼 기회를 한 번은 주어라"고,  변화경영전문가로 살았던 故 구본형은 말했다.  달리 표현했지만 그가 강조했던 것 역시 아트적인 삶이다.  추락할까 두려워 높게도 낮게도 날지 못하는 우리 시대의 이카루스들에게 세스 고딘과 구본형은 생애 한 번은 마음껏 날아올라 볼 것을 요구했다.  스티브 잡스에게 직업이란 돈과 안정을 보상하기 보단 세상과 사람들에게 놀라운 제품을 선물하는 기회였다.  패기 가득해야 할 젊은이들조차 돈과 안정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퇴행의 시대,  세스 고딘의 혁명적인 목소리가 뜨겁고 벅차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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