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이순(웅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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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일기

- 롤랑 바르트

 

1.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네, 제가 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이순에서 만들고 롤랑 바르트가 쓴 <애도일기>라는 책입니다. 롤랑 바르트는 20세기 프랑스의 지적 거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사르트르가 죽고 난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사람이기도 하구요, 탁월한 비평가이기도 하고, 기호학자이기도 한 롤랑 바르트가 써 내려간 애도의 기록이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애도일기>라는 책입니다.

 

2. 성탄절 아침에 읽는 <애도일기>라 뭔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인데요, 어떤 책인가요?

 

네, 성탄절에 <애도일기>를 소개해드려 저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만 왜 이 책을 성탄절에 소개하게 되었는지는 조금 후에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 책은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의 죽음 이후부터 2년간 자신의 슬픔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써내려간 일기들입니다.

 

프랑스어로 ‘마망’은 엄마를 뜻하는 말인데요, 롤랑 바르트가 ‘마망’이라고 이 글에서 쓰고 있는 어머니는 투병 생활을 하다 1977년 10월 25일에 돌아가시게 됩니다. 바르트의 어머니는 23세부터 84세의 나이로 별세하기까지 평생을 과부로 지냈는데요,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두 사람 사이가 각별했던 것 같습니다. 롤랑 바르트가 1915년 생이니까 어머니는 그의 나이 62세에 돌아가셨는데요, 책을 읽다보면 이 사람이 과연 60세가 넘은 어른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요, 마치 한 소년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곳곳에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절절하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바르트가 어머니에 대한 애도로 쓴 일기 한편을 먼저 읽어 드리겠습니다. 어머니를 떠나 보낸 후 보름 정도가 지난 11월 9일에 쓴 일기입니다.

 

허우적거리면서 나는 겨우겨우 슬픔을 건너가는 길을 찾아나가고 있다.

끊임 없이.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로, 뜨겁게 달아오른 어떤 지점이 되돌아온다 ; 말들, 죽음과 싸우면서 그녀가 내게 입김과 더불어 불어 넣곤 하던 말들, 너무도 메마른, 지옥 불처럼 타오르는 고통의 점화점, 나를 완전히 압도해버리는 말들 “나의 롤랑, 나의 롤랑”, -“저, 여기 있어요.”- “너 앉아 있는게 불편해 보이는구나”

 

- 이 순수한 슬픔, 외롭다거나 삶을 새로 꾸미겠다거나 하는 따위와는 아무 상관 없는 슬픔. 사랑의 관계가 끊어져 벌어지고 패인 고랑.

- 모든 것들이 줄어든다, 글쓰는 일도, 말하는 일도. 그러나 이것만은 제외하고(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것)

 

모든 것은 줄어들지만 줄어들지 않는 것,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것이라고 마지막에 이야기한 것은 ‘슬픔’을 말합니다. 글쓰는 일도, 말하는 일도 줄어드는데 오로직 슬픔만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해요. 그래서 작가는 이 책 어딘가에서 자신은 슬픔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 자기 자신이 ‘슬픔’이 되어버렸다고까지 씁니다. 방금 읽어드린 부분에서 바르트의 어머니는 바르트를 향해 ‘나의 롤랑’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요, 더 이상 ‘나의 롤랑’이라고 불러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 때문에, 어머니를 잃었다는 것을 사랑의 관계가 끊어져 벌어지고 패인 고랑이 되어 버렸다고 해요.

 

3. 작가가 어머니에 대해 쓴 사모곡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네, 그런 점이 분명히 없지는 않습니다만, 사실 이 책이 단순히 자식이 부모에게 더 잘해드리지 못해서 후회하면서 살아계시는동안 부모에게 더 잘해야 한다는 도식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 책 어디에도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식의 교훈을 강조하는 내용은 단 한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 책은 교훈에 대한 글 아니라 ‘슬픔’과 ‘그리움’에 관한 책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롤랑 바르트는 자신의 슬픔과 우울한 기분을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여행을 가더라도, 쇼핑을 하더라도, 친구들을 만나면서도 즐길 수 없엇다고 합니다. 그리고서는 자신을 이토록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슬픔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계속 묻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롤랑 바르트는 제과점에 들렀다가 작은 여점원이 손님을 도와주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부알라”, “부알라”라는 말은 물건을 건네주면서 ‘당신이 찾는 물건이 여기 있어요’라는 프랑스어인데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반 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그녀는 메아리처럼 ‘부알라’, ‘나 여기 있다’라는 그 말을 따라했다고 합니다. 여 점원이 빵을 건네면서 무심코 했던 이 한마디 말 때문에 롤랑 바르트는 오랫동안 혼자 울었다고 해요. 그러면서 롤랑 바르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슬픔은 그러니까 외로움 때문이 아니다. 그 어떤 구체적인 일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일들이라면 나는 어느 정도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가 있다. 나의 슬픔이 놓여 있는 곳, 그곳은 다른 곳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라는 사랑의 관계가 찢어지고 끊어진 바로 그 지점이다. 가장 추상적인 장소의 가장 뜨거운 지점...

 

4. 사랑의 관계가 찢어진 지점에 슬픔이 있다는 말이 깊이 와닿습니다.

 

아마도 가족을 잃었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롤랑 바르트의 이런 말에 깊이 공감할 수 있을텐데요, 저는 오늘 이 책을 이 세상에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 이별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개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성탄의 의미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예수는 슬퍼하는 사람과 함께 있기 위해 이 땅에 온 것이지 단지 기쁨을 주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크리스마스에는 모두들 들뜨고,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기대하지만 사실 성탄의 진정한 의미는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고, 아파하는 자와 함께 아파하는 것일 겁니다.

 

아마 지금 라디오를 듣고 계시는 분들 중에서도 슬픔과 함께 이 성탄절 아침을 보내고 계신 분들이 계실 거에요. 저는 그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혼자 슬퍼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또 롤랑 바르트가 함께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예수가 나사로가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몹시 슬퍼하면서 함께 이틀 밤을 보냈다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책은 슬픔을 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는 슬픔을 없애기 위해 온 분이 아니라 슬퍼하는 자와 함께 하기 위해 오신 거죠. 이 책에서 롤랑 바르트 역시 슬픔을 섣불리 위로하거나 슬픔을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쇼핑도, 여행도, 친구도, 파티도, 새로운 계획과 기분 전환 그 어떤 것도 이길 수 없는 슬픔, 외로움, 허무함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5. 성탄절 아침에 <애도일기>를 가져오신 이유가 그런 이유 때문이었군요.

 

프로이트라는 정신분석학자가 있지요? 프로이트도 애도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는데요, 프로이트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하고 나면, 그 사람을 잃었다는 상실의 상처에 우리가 머물면서 그 사랑을 다른 사람이나 대상에게 이동시키길 거부하게 되고, 거기서 슬픔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애도의 과정을 통해서 이 상처를 인정하고 자신의 사랑을 다른 대상으로 이동시키면 애도 작업이 완료된다고 해요. 쉽게 말해서 사랑하는 누군가가 죽었다면 처음에는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다른 곳으로 옮겨지지 않아 힘든 시기를 겪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랑이 옮겨지게 되면 슬픔도 지워지고, 애도도 성공하게 된다고 하는 거죠. 그런데 롤랑 바르트는 프로이트처럼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옮겨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사라지면 사랑이 그냥 끊어진다고 보는 거에요. 그리고 끊어진 사랑에서 슬픔이 계속 일어난다고 봅니다.

 

저도 프로이트의 생각보다는 롤랑 바르트의 생각에 동의가 되는데요, 대학 다닐 때 좋아했던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사귀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친구가 제게 헤어지자고 하더군요. 사랑이 끊어져 버린 건데요,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실연에 빠져 있던 제게 다른 좋은 여자들도 많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공부를 해야 한다, 여행을 가서 모든 것을 잊고 돌아와라, 정말 많은 조언들을 해줬는데 어떤 것도 그 여학생을 대체할 수 없었습니다. 프로이트는 사랑하던 대상이 사라지면 내 사랑의 방향이 다른 대상으로 옮겨간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오히려 한동안을 그 여학생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혀 계속 그 여학생을 찾게 되는 거죠. 슬픔에 대한 위로가 아무 소용 없는게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는 슬퍼하는 동안에도 끝없이 잃어버린 사랑을, 그 사람을, 이미 죽어버린 그 사람,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 나와 헤어져 버린 그 사람을 끝없이, 계속 찾는거지요. 이 책에서 롤랑 바르트도 슬퍼하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끝없이 찾고, 부릅니다. ‘나의 롤랑’이라고 부르는 마망을 말이죠.

 

6. 선생님의 연애 이야기를 들으니 더 이해가 쉽긴 하네요. 이건 여담입니다만 선생님은 그 여학생과 결국 어떻게 되셨나요?

 

여학생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끝까지 저는 그 여학생만을 쫓아다녔죠. 운 좋게도 저는 결국 그 여학생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제 아내구요.

그런데요, 저는 당연히 살아 있는 여학생을 쫓아 다녔으니까 다시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고 해도 그리 놀라울 일이라 할 수 없지만, 롤랑 바르트는 이미 죽은 어머니를 찾고 또 찾고 쫓아다니는데요, 그러다가 결국 어머니를 만나게 됩니다.

 

물론 어머니가 환생을 해서 돌아온 건 아니구요, 어머니 사진 한 장을 발견하면서 다시 어머니를 만나게 됩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실텐데요, 이 사진에서 찍힌 어머니는 롤랑 바르트가 태어나기도 전인 다섯 살 어린 소녀였을 때 찍은 사진인데요, 롤랑 바르트는 그 사진에서 “마침내 나는 어머니를 만났다”고 합니다. 물론 살아있는 어머니를 다시 만난 것은 아니죠. 그런데 이 사진 한 장을 통해 어머니의 ‘본질’과 만났다고 해요. 마치 제가 오랜 기다림과 구애 끝에 그 여학생을 다시 만난 것처럼 바르트도 오랜 슬픔과 외로움 끝에 사진 한 장에 나타나 있는 다섯 살 어린 여자 아이의 얼굴에 나타난 “해맑은 얼굴과 순박한 손 모양, 얌전한 자세”에서 ‘선함’과 ‘순수함’을 본질로 가지고 있는 어머니를 만나게 된 겁니다.

 

이런 이야기가 이상하게, 또 어렵게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롤랑 바르트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애도는 그냥 단지 죽은 사람으로 인해 슬퍼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진정한 애도는 잃어버린 사람, 죽은 사람과의 본질과 만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지요.

 

7. 애도는 온전히 슬퍼하고, 또 기다리는 것이라는 말씀이 와닿는데요, 그냥 슬퍼하기만 하는 것은 사실 너무 어렵고 힘들잖아요? 슬퍼하되 슬픔을 견뎌내는 방법은 없을까요?

 

<멜랑꼴리의 검은 마술>이라는 책을 쓴 맹정현 박사라는 분이 있는데요, 이 분은 애도는 단순한 슬픔이 아니고 슬픔을 실천하는 노동이라고 합니다. 슬픔이 하나의 정서라면, 통곡은 슬픔으로부터 빠져 나오도록 하는 하나의 노동이라고 하는데요, 꼭 통곡만이 애도의 방법은 아닙니다. 지금 애도의 과정 중에, 슬픔 중에 있는 분이 있다면 저는 ‘글쓰기’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롤랑 바르트도 “커다란 생의 위기를 이겨내고자 하는 작업은 너무 급하게 끝내서는 안된다. 그런 작업은 나의 경우 글쓰기를 통해서만, 또 글쓰기 안에서만 비로소 완결될 수 있다”고 쓰고 있습니다. 롤랑 바르트처럼 짧은 일기를 쓰면서 글을 써 내려가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쓴 슬픔의 기록이 자신에게도 슬픔을 견디는 노동이 되겠지만 슬퍼하는 다른 누군가에게도 위로가 되겠죠.

 

8. <애도일기>, 우리가 이 책을 지금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마다 여러이유로 슬픔을 갖고 살아가는데요, 이 책이 그런 많은 분들에게 격려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온전히 슬픔으로 들어가고, 자신의 슬픔의 정체를 알고, 또 애도를 완성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서 경험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아내의 아버지, 제 장인의 기일이 오는 29일인데요, 올해가 12주기입니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아내에게 이 책에 나온 일기 한 장을 읽어줬더니 바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바르트가 어머니의 어릴 적 사진에서 어머니를 만났다고 한 것처럼 제 아내는 제 아들의 모습에서 아버지가 돌아온 것 같다는 느낌을 간혹 받는다고 해요. 슬퍼하시는 모든 분들이 슬픔을 온전히 견뎌내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입니다.

 

한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우리 사회 곳곳에 저민 슬픔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위기 때 가족을 잃은 사람들, 세월호 유가족들.. 말로 다할 수 없는 큰 슬픔을 가슴에 담아두고 일생을 살아가야 할 분들에게 이 책 <애도일기>가 조금이라도 가 닿길 빌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함께 슬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는 세월호에서 죽은 어린 학생들을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 걸까요? 저는 이 책을 보며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성탄절이 기쁜 날인 이유는 슬퍼하는 자가 더 이상 혼자 슬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책을 통해 나의 슬픔을, 이웃의 슬픔을 살펴보실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 대구교통방송 라디오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책을 소개하는 코너에 나가고 있습니다. 거기서 소개해드리는 책을 이 곳에도 소개해드릴 생각입니다. 라디오에 나가는 대본 그대로 옮겨 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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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 행복지수 1위 덴마크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행복사회 시리즈
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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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1. 안녕하세요? 이번 주에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네, 제가 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책은 오마이북 출판사에서 만들고, 오연호가 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책입니다. 혹시 오마이뉴스라는 인터넷 신문을 아시나요? 이 책의 저자인 오연호씨가 바로 오마이뉴스를 창간한 분입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책을 소개드리기 전에 진행자분과 청취자분들께 먼저 질문을 드려보고 싶은데요, 혹시 요즘 걱정거리가 있으세요? 어떤 걱정거리가 있는지 한번 말씀해주세요. (진행자 대답) 아, 그러시군요. 저도 걱정거리가 있습니다. 이제 아이가 취학 연령이 되었는데, 어떤 학교를 보내야 할지도 걱정이구요, 저는 글을 쓰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노후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도 걱정이에요. 여기서 다 말씀 드리지는 못하지만 누구나 걱정을 적어도 하나, 둘 정도는 갖고 살아가기 마련인데요, 걱정이 없는 나라가 있다고 하면 믿으시겠어요? 사람들이 걱정거리를 물으면 걱정거리를 찾느라 곤혹스러워 하는 나라가 있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2. 그런 나라가 세상에 있을까요? 걱정거리가 없다고 하면 그것은 아마 천국이겠죠.

 

정말 놀랍게도 걱정거리가 없는 것이 걱정인 나라가 있는데요, 바로 덴마크입니다. 작가인 오연호씨는 덴마크 전역을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요즘 걱정거리가 있다면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든 사람의 반응이 한결같이 딱히 걱정거리가 없다면서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하는 표정이었다고 해요. 마치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 듯 애써 걱정거리가 무엇인지 한참 궁리하다가 결국은 걱정이 별로 없다고 대답했다는 거죠.

 

오연호씨는 덴마크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그래서 당신은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까”라는 질문도 던졌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어김 없이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고 해요. 행복하냐고 물으면 행복하다고 대답하고, 걱정거리가 있냐고 물으면 딱히 없다고 대답하는 나라가 바로 덴마크인데요, 오늘 소개해드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는 오연호씨가 덴마크가 이토록 행복한 나라가 된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보고, 어떻게 하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지를 찾아가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제가 예전에 읽었던 기사에서 덴마크가 행복지수에서 세계 1위라고 하던데 맞나요?

 

네, UN은 2012년부터 매년 세계행복보고서라는 것을 만들고 있는데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덴마크가 156개 국가 중 1위였습니다. 올해는 덴마크가 3위를 했죠. 혹시 우리나라는 몇 위인지 아시나요? (진행자 대답) 네, 우리나라는 2013년 기준으로 41위인데요, 덴마크는 다른 조사기관에서 실시하는 행복지수 조사에서도 1위 아니면 최상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4. 그렇다면, 덴마크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책을 읽으면서 제가 느꼈던 가장 두드러진 점은 바로 자존과 연대가 있는 사회라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덴마크 사회는 자신이 어떤 직업을 갖느냐가 자존감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회입니다.

 

책에서 오연호씨는 여러 덴마크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데요, 그 중에 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가 식당의 웨이터로 일하고 있는 페테르센이라는 사람입니다. 보통 웨이터라고 하면 젊은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잖아요? 페테르센씨는 56살인데다 17살 때부터 40년동안 웨이터로 일했고 자신이 걸어다닐 수 있는 한 자기 일을 끝까지 계속하고 싶다고 합니다. 물론 고참 웨이터라고 해서 특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한 사람의 평범한 웨이터인데요, 자신이 웨이터라고 해서 위축되거나 하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페테르센씨는 코펜하겐에 아파트도 있고, 도시 근교에는 별장도 있구요,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당당히 말합니다. 자기는 자신의 일을 정말로 즐거워하고 있구요, 더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더 많은 돈을 갖는 것을 원하지도 않는다고 해요. 심지어 아들 자랑을 엄청하는데, 아들의 직업이 열쇠수리공입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열쇠 수리공으로 일하고 있는 아들을 자랑스러워 하기 쉽지 않지요.

 

5. 웨이터로 살아가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열쇠수리공으로 살아가는 것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그런 자신감이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네, 그런 것 같습니다. 덴마크가 처음부터 그런 사회였던 것은 아니었다고 해요. 페테르센씨의 말을 한번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아버지 세대만 하더라도 직업의 귀천이 있었고 빈부격차도 있었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것이 사라지고 평등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행복하냐고요? 물론이죠. 특별한 걱정이 없고 오늘에 만족하니까요”

 

그러니까 행복한 사회라는 것은 “나는 웨이터다. 아들은 열쇠수리공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 그렇게 말하더라도 우리의 자존에 영향이 없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우리나라는 다른 사람의 눈을 너무 많이 의식하며 살아가잖아요. 사실 거기에는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차와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은 다른 사람을 너무 많이 의식하는 우리 국민성의 문제가 아니라 좋은 차와 명품가방이 아니면 평등하게 대우해주지 않는, 차별이 당연시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남의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겁니다. 페테르센씨처럼 자기 직업에 대한 높은 자존은 결국 평등한 사회이기 때문에, 의사나 변호사가 아니라도 평등하게 대우받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6. 덴마크가 행복한 사회가 된데에는 결국 밑바탕에 평등이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군요.

 

덴마크는 대학등록금과 병원비 전액이 무료인 사회이구요, 실업보조금도 충분할만큼 제공하는 사회입니다. 예를 들면 회사의 경영 상황이 악화되어 해고가 된 경우에도 사람들은 걱정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그 이유는 정부가 실업 이후에도 생활자금을 지원해주는데요, 2년동안 우리돈으로 최소 200만원, 최대 300만원을 받거든요. 아버지나 어머니가 실직 상태라고 하더라도 자녀가 대학 진학을 고민하거나 걱정할 이유도 전혀 없어요. 대학 등록금은 무료인데다 생활지원금이 한 달에 120만원씩 나온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실직 중에 자녀는 대학을 가고, 어머니가 투병 생활을 해도 문제가 안됩니다. 실직으로 인한 생활 자금이 나오고, 자녀의 대학 생활 지원금이 나오고, 병원비는 어차피 무료기 때문이죠. 사회 안전망이 철저하게 갖춰진 사회라고 할 수 있어요. 지난 해 세모녀 자살 사건 같은 일이 있었잖아요? 그렇게 사지로 내몰린다거나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경우가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된다라는 전 시민들의 합의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7. 듣다 보니 놀랍고 부럽기도 한데요, 대신 그렇게 높은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려고 하면 조세 부담이 굉장히 커지지 않을까요?

 

네, 맞습니다. 덴마크의 부자들은 월급의 50%이상을 세금으로 낸다고 해요. 우리나라가 25.9%이니까요, 거의 두배 차이가 나는 거니까 세부담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세금을 많이 내게 하면 부자들이 나라를 떠나거나 조세 회피를 할 것 같은데 덴마크 사람들은 기꺼이 그 세금을 낸다고 해요. 그 이유는 두가지인데요, 하나는 정부에 대한 높은 신뢰가 있습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결국 실업하면 실업보조금도 받고, 대학도 다니고 병원비도 평생 무료기 때문에 세금을 정부가 제대로 쓰고 있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는 거죠. 우리나라 시민들이 정부에 대한 불신이 강한 것과는 상당히 대비가 되는 부분이죠?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연대’입니다. 사람들 사이의 연대가 튼튼하고, 이웃들 간의 관계가 살아 있기 때문에 기꺼이 자기 돈을 내서라도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나와 이웃의 운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이 있고 사회가 이웃들 간의 연대를 든든하게 지원해주니까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 되는 겁니다.

 

몇 가지 예가 있는데요, 덴마크에서는 의사라고 해서 큰 돈을 버는 것은 아닙니다. 의사라고 해서 웨이터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 사회에서 머물면서 지역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나가는 일을 적극적으로 해야 해요. 덴마크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주치의가 있는데요, 주치의가 내 아버지, 나, 나의 아들까지도 계속 봐 온 사람이기 때문에, 또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이기 때문에 유전적 문제도 잘 알고, 환경적 요인도 고려해서 처방을 내려줍니다. 또 사람들은 고민이 있으면 의사에게 찾아가 상담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진료를 보는데 3분도 안 걸리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풍경이죠. 이렇게 되면 의사와 지역사회는 하나의 운명 공동체가 되는 거죠.

 

8. 우리는 바로 옆집에 사는 주민들과도 모르며 살아갈 때가 많은데, 부러운 모습입니다.

 

책과는 좀 동떨어진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아쉽게 여겨졌던 부분이 바로 아이들 놀이터였습니다. 일단 우리나라에는 놀이터가 많지 않구요, 설치된 놀이터도 아이들끼리 규칙을 만들고 협력하면서 놀이할 수 있는 환경이 잘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놀이터 바닥이 우레탄일 때보다는 모래일 때 아이들이 서로 협력하는 놀이를 더 잘할 수 있는데요, 정작 아이들 노는 것을 보면 엄마나 할머니와 와서 혼자 그네 타고 미끄럼 몇 번 타고 돌아갑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함께 놀면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와 할머니, 아빠도 이웃과 함께 인사하며 지낼 수 있거든요. 놀이터가 사회 연대의식을 높이고 이웃을 만나는 장이고, 아이들도 협력을 배우는 곳인데 현실은 놀이터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는 분위기에요.

 

제가 놀이터 이야기를 먼저 드린 이유는 덴마크에서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아이들로 하여금 경쟁 보다는 협력하면서 자라도록 교육하기 때문입니다. 덴마크 학교에서는 1학년 때부터 7학년 때까지는 아예 점수를 매기는 시험도 없고, 그러니까 등수를 매기는 시험도 없다고 해요. 심지어 한 담임 선생님 하에서 같은 학생들이 9학년까지 무려 9년을 함께 지내는 거죠. 이 정도의 시간을 함께 보내면 이건 친구가 아니라 거의 동지 수준이 됩니다. 아주 끈끈한 사이가 되는 거죠. 8학년부터는 시험을 치고 등수도 나오는데, 시험 성적 때문에 루저가 되는 경우는 아예 없어요. 왕따도 없구요. 왜냐하면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함께 해왔고,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성적이라는 하나의 잣대로만 서로를 평가하지 않게 되는거죠. 일찍부터 아이들을 경쟁시키고, 경쟁에서 이기도록 하는 것에 관심이 많은 우리 사회와는 정말 다른 풍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교육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9. 어떤 행복의 선순환이라 할까요, 이웃간의 연대, 정부에 대한 신뢰, 평등한 사회, 자존감이 높은 사회가 연결이 되면서 개인들의 행복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것 같아요. 책의 제목대로, 덴마크는 행복한 사회가 되었는데,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요?

 

덴마크가 얼마나 평등하고 협력적인 사회인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는데요, 40분 정도 이동하는 열차 안에서 옆자리에 모르는 누군가와 함께 앉게 되면 내릴 때 협동조합이 하나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서로 간 네트워킹에 관심이 많고 서로를 정말 중요하고 내 삶에 함께 하고 싶은 사람으로 존중한다는 것을 말하는거죠. 몇 일 전에 제가 평택에 강의가 있어서 열차를 타고 세 시간을 갔는데요, 공교롭게 평택으로 갈 때 함께 앉은 분과 대구로 올 때 함께 앉은 분이 같은 분이었어요. 협동조합은커녕 서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뭔가 말을 붙여볼까 하다가도 그 분에게 폐가 될까봐 말을 하지 않았는데요, 덴마크라면 그 시간이면 협동조합이 6개 만들어졌겠지요. 오연호씨는 택시 기사 밀보씨와의 인터뷰도 소개하는데요, 택시 기사 밀보씨는 자신은 누구도 부럽지 않고, 택시 기사일을 통해 세계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즐겁다고 해요.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 타인에 대한 존중,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는 실천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10.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정말 행복하려면, 이분법적 사고를 뛰어 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부자냐 가난한 자인지, 우파인지 좌파인지 하는 것이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 예로 덴마크에는 유연안정성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유연성이라고 하면 기업이 해고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거구요, 안정성이라고 하면 노동자들에게 안정된 소득과 고용을 보장하는 거에요. 언뜻 생각하면 유연성과 안정성을 대비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죠? 그런데 덴마크 사람들은 기업을 위해서는 노동자들을 해고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에 동의했어요. 그리고 노동자들에게는 안정된 소득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도 모든 사람들이 동의를 했고, 이것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기업이 노동자를 해고하면 노동자들에게 실업 급여를 제공하고 재취업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았어요. 그게 바로 유연안정성이라는 겁니다. 심지어 이런 합의가 1899년에 이뤄져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구요, 덴마크가 해운회사인 머스크나 장난감 회사인 레고 같은 경쟁력있는 회사를 탄생시키면서도, OECD 회원국 중 직장만족도 1위를 이뤄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죠? 좌파냐 우파냐, 종북이냐 아니냐, 친일이냐 아니냐, 유연성이냐 안정성이냐, 효율성이냐 평등이냐 하는 것들을 넘어서는 상상력이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12월에 이 책을 꼭 읽어보시라고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추구하고 살아온 삶의 방향이 옳았는지, 나는 어떤 이분법에 빠져 살았는지, 내 삶은 행복한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지 연말에 생각해보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구요, 행복은 혼자서 이룰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덴마크의 사례에서 보듯이 같이, 함께 이뤄가는거죠. 이 책을 읽으시고 가족 모임에서 망년회에 가셔서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 대구교통방송 라디오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책을 소개하는 코너에 나가고 있습니다. 거기서 소개해드리는 책을 이 곳에도 소개해드릴 생각입니다. 라디오에 나가는 대본 그대로 옮겨 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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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철학자와 하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1.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건가요?

 

네, 제가 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책은 메디치 출판사에서 만들고, 철학자 고병권이 쓴 <철학자와 하녀>라는 책입니다. 지난 주에 제가 소개해드렸던 김영하 작가의 <보다>라는 책이 소설가의 에세이라면, 이번 주 소개해드리는 <철학자와 하녀>는 철학자의 에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철학자의 산문집이라고 할 수 있는 거네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일까요?

 

먼저 이 책을 본격적으로 소개해드리기 전에 제가 이 책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를 먼저 말씀드려보고 싶어요. 제가 이 책을 읽게 된 과정을 소개해드리면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 짐작하시기 한결 더 수월하실 것 같거든요. 제가 올해 4월부터 6월 사이에 대구미술관에서 시민들을 모시고 서양미술사를 강연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강의가 한 학기로 6회동안 이뤄졌는데 전체 강좌의 제목이 <마이너리그 미술사>였어요.

 

마이너리그 미술사로 이름 붙였던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요, 첫째는 제가 미술사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비전문가가 본 미술사를 말씀드린다는 뜻에서 마이너리그라는 이름을 붙였구요, 두 번째는 제가 강좌에서 다룬 인상주의부터 초현실주의에 이르는 시기의 수많은 거장들이 사실은 모두 마이너리티, 우리말로는 소수자라고 하는데 이게 약간 느낌이 좀 다르긴 합니다만, 어쨌든 알고보면 마이너리그였다는 것에 착안해서 그런 제목을 붙였어요. 지금이야 다 거장이고, 그림 값도 어마어마하지만 마네는 살롱전 입상에 집착하면서도 살롱전 입상이 굉장히 늦었구요, 고흐는 지금은 위대한 후기 인상파 화가지만 살아 생전에 그림 한점 밖에 팔지 못했던 찌질이였던 거죠. 저는 화가들의 그런 면모를 보고 위로를 받았고, 또 생각할 점도 많이 있어서 그런 내용을 미술관에서 강의를 했었습니다.

 

3. 선생님 강연을 홍보하러 나오신 것 같은 느낌인데요? 

 

알아채셨나요? 제 강의는 대구미술관 팟캐스트에서 전체 영상을 모두 볼 수 있으니 거기서 확인해보시구요, 내년에 책으로도 나올 예정이니 많이 읽어봐주세요.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요, 제 강의가 끝나던 날, 한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신다는 대학원생이 제게 오셔서 이 책 <철학자와 하녀>를 선물로 주고 가셨어요. 제목은 <철학자와 하녀>고, 부제를 보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제 미술사 강의와 주제의식이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선물로 주셨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읽어보면서 또 다른 통찰을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미술사 강의하면서 여러분들에게 공감을 많이 얻었는데요, 그게 사실 미술을 잘 알거나 제가 강의를 잘해서가 아닙니다. 알고 보면 우리가 다 어느 정도 마이너리티거든요. 알고 보면 누구나 조금씩은 소수자입니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대해서, 광인은 정상인에 대해서, 여성은 남성에 대해서, 빈자는 부자에 대해서, 유색인종은 백인인종에 대해서, 대구사람은 서울사람에 대해서, 기술직은 전문직에 대해서,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대해서, 흙수저는 금수저에 대해서 마이너리티인거죠.

 

4. 모두가 조금씩은 마이너리티라는 말씀이 와닿네요.

 

사실 제가 모두가 마이너리티라는 식으로 말씀을 드리면, 마이너리티라는 이유로 정말로 정치 사회적 차별을 당하고 계신 분들을 모독하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장애인이자 여성이며 가난한 자라도 자신이 좋은 학교를 나왔고, 백인이며, 전문직이라서 나는 마이너리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마이너리티가 아닐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스스로를 마이너리티라고 조금이라도 인식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보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마한 책이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5. 말씀을 듣고 보니 조금 이상하게 생각되는 부분이 있는데요. 그러면 <철학자와 하녀>라는 제목에서 하녀는 마이너리티를 상징하는 말인가요?

 

네, 그런 셈인데요, 그런 부분이 오해를 불러 올 수 있는 것 같긴 해요. 하지만 고병권 작가가 그렇게 쓴 데에는 이유가 있는데요, 철학사에서 ‘하녀’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어요. 그게 뭔가 하면, 최초의 철학자라 알려진 탈레스가 하늘에 별을 보면서 걷다가 우물에 빠지거든요. 그것을 본 트라케 지역의 하녀가 깔깔대며 하는 말이 있어요. “탈레스는 하늘의 것을 보는데서 열심히면서 발치 앞에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 서문에서 고병권 작가도 쓰고 있지만 이 하녀는 총명한 사람은 맞지만 철학사에서 이 하녀의 이미지는 그렇게 좋지가 않아요. 무지의 상징인거죠. 하지만 고병권 작가는 철학이 하녀의 말대로 하늘의 별만 쫓다가 발치 앞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할 때 현실 감각이 사라지고, 반대로 철학이 눈 앞에 있는 것만 쫓아간다면 그것도 철학이 해야 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철학자와 하녀>라는 제목은 철학은 가난한 이들의 현실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새기면 좋을 것 같습니다.

 

6.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철학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네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철학자 고병권이 제안하는 철학은 어떤 것일까요?

 

실제로 고병권 작가는 니체 철학의 해설서로 잘 알려진 <니체, 천개의 눈 천개의 길>이라는 책을 쓰는 등 니체에 대해서 전문가이지만 정작 자신은 철학 전공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본인도 마이너리티죠. 하지만 현대 프랑스철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계신 분인데요, 이 분이 공부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교도소에서도 철학을 가르치고, 장애인 자활 학습공동체인 노들야학 같은 곳에서도 철학을 가르치세요. “마이너리티”와 만나서 대화하고 철학을 가르치면서 느낀 대목들이 많이 나와요. 그래서 책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먼저는 고병권이란 사람이 마이너리티를 만나면서 자신이 철학자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부분이 있구요, 또 철학자로서 마이너리티에게 권하고 제안하는 부분이 있어요.

제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을 한번 읽어 드려보고 싶습니다. ‘배움 이전에 일어나는 배움’이라는 장에 나오는 부분인데요, 노들 장애인 야간학교에서 고병권 작가가 어떤 글을 읽고 쓴 내용입니다.

 

“내가 노들학생의 글에서 발견했다고 말한 것이 이런 변화였다. 교과서에 충실할 것인가, 변혁적 지식을 전달해야 하는가. 그러나 학생들의 변화는 정작 다른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교실에서만큼이나 소풍과 엠티 장소에서 일어났고, 수학문제를 풀 때도 일어났지만, 노래하고 춤출 때도 일어났다. 한 학생은 이렇게 적었다. ”지난 10월 엠티 때 TV에서나 보았던, 그렇게나 부러웠던, 모닥불을 피워놓고 얘기하는 것을 했을 때 너무 좋았어요. 그 때 하늘을 보신 분이 많으리라 생각해요. 모든 별이 우리 곁으로 다가와서 비추어주는 것 같았어요. 정말 눈물이 나와서 울뻔 했어요. 무언지 모를 눈물이 나오려고 하더군요.“

 

텔레비전에서만 보았던 모닥불 피고 노래하는 엠티를 자신이 해보았다는 것. 그때 본 밤하늘은 틀림 없이 그 학생 안에서 엄청난 변혁을 일으켰을 것이다. 이는 장애가 어떤 것인지를 안다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장애란 어떤 본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교육이든, 취업이든, 사랑이든, 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어떤 불가능의 체험이며, 그 때 자신에게 자신에게 생겨나는 ‘무능’과 ‘포기’의 정서이다. 어떤 불가능성의 체험, 그리고 그와 함께 일어나는 자기 무능과 자기 포기의 정서를 겪을 때 어떤 사람은 장애인이 된다. 그리고 불가능의 체험과 포기의 정서가 커질수록 중증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수십 년간 집이나 시설, 그리고 작업장에만 갇혀 있던 어떤 장애인이 야학 사람들과 모닥불을 피우고 밤하늘을 함께 보았다. 그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는 어떤 불가능이 가능으로, 어떤 무능이 능력으로 바뀌는 체험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마음 속에는 정서들의 대변혁이 일어났을 것이다. 모닥불이 있는 밤하늘이 그에게 무언가를 일깨우는 것이다. 이 일깨움, 이 깨달음, 이것이 바로 ‘배움 이전에 일어나는 배움’이다.

장애인 여성이었던 그는 자립 생활에 도전했다. “사람들이 ‘너 나가서 어떻게 살래?’ 이랬어요. 그런데 자신감이 있었어요. ‘나, 나가서 살고 싶어. 한번 겪어 보고 싶어’. 그런 자신감이 붙더라고요, 그래서 야학 다니면서 방도 얻고 자동차 면허증도 따고 독립을 했죠”.

 

7. 아, 감동적인 이야기네요. 배움 이전에 일어나는 배움이라...

 

그렇죠? 배움이라는 것을 읽고 쓰는 것을 다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철학자의 눈에는 이런 깨달음이야 말로 어떤 원초적 배움이랄까, 배움에의 의지를 갖게 만들어주는 겁니다. 고병권 작가가 책에서 철학자 칸트를 자주 인용하는데요, 특히 “계몽은 무지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려지 않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소위 박사 학위 소지자라 많은 배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타성에 젖어 해야 하니까 학위 취득을 한 경우도 많거든요. 그보다는 혼자 운전에 몰두하면 목적지로 향하는 중에 문득 창밖에서 들어오는 빛이, 라디오의 어떤 음악 하나가 ‘내가 배워야겠다’, ‘알아야겠다’는 의지를 불러 올 때가 있죠. 그럴 때가 바로 배움의 순간이라는 겁니다.

 

8. 마이너리티의 철학.. 들을수록 관심이 생기는데요, 그 밖에 어떤 것이 있나요?

 

사실 제가 말씀 드린 것은 책 전체 내용의 정말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작가는 루쉰의 말을 빌려서 마이너리티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루쉰도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마이너리티였죠. 루쉰은 병이 심해져 죽음을 예비한 상황에서 죽을 때 모든 원한을 정리하고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서양인은 임종 때에 곧잘 의식 같은 것을 행하여 타인의 용서를 빌고 자기도 타인을 용서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의 적은 상당히 많다. 만일 신식을 자처하는 사람이 묻는다면 뭐라 답할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결정하였다. 멋대로 원망하도록 하라. 나 역시 한 사람도 용서하지 않겠다”.

    

 

서양인이 주류가 된 세계에서 비주류인 루쉰이 하는 말인데요, 화해니 용서니 그런 것 듣기 좋은 말이지만 강자가 약자에게 강요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마이너리티라면 굴복하지 않는 것, 쉽게 무릎 꿇지 않고 저항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거지요. ‘멋대로 원망하도록 하라, 나 역시 한 사람도 용서하지 않겠다’.. 정말 멋진 말 아닌가요?

 

그 외에도 재밌는 내용이 참 많습니다. 혹시 사회자님께서는 전 세계에서 인구 10만명당 수형인구수, 즉 감옥에 갇힌 사람 수가 가장 많은 나라가 어딘지 아시나요?

 

9. 글쎄요.. 어디일까요? 중동국가나 북한 같은 나라일까요?

 

저는 러시아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인구대비 수형자수가 가장 많은 나라가 미국입니다. 10만명당 700명이 넘어 세계 1위인데요, 미국의 감옥에 갇힌 재소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유가 1980년대부터였다고 합니다. 특별히 이 시기에 범죄가 더 심화된 것이 이유가 아니고, 정부가 수형에 필요한 비용이 많이 드니까 민영교도소를 세워서 해결하려고 했어요. 정부는 돈이 적게 드니까 민영교도소를 세우니 효율적이구요, 민영교도소들은 수형자들과 고용계약을 맺어 제품을 생산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된거죠. 한예로 CCA라는 미국교정기업이 있는데요, 이 회사는 1990년 대 후반에 뉴욕증시에서 수익률이 가장 높은 미국 5대기업에 3년 연속이나 선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민영교도소가 증가하면서 실형선고가 증가하고 형량 인플레이션이 생기는 거죠. 단지 법질서 때문이 아니라 교도소의 수익 때문에 말이죠. 고병권 작가는 이런 것을 보면서 수익모델로 인간이 수용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합니다. 멀리 미국의 이야기이지만 철도니 공항이니 전력이니 민영화 논의가 많은 우리 상황에서도 새겨 들을만한 이야기죠. 뿐만 아니라 노동력이 상품화된 우리 사회도 넓은 의미에서는 인간 수용소라 할 수 있는거구요.

 

10. <철학자와 하녀>, 이 책을 우리 청취자들이 읽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앞서 설명드렸던 것처럼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마이너리티입니다. 그 점을 자각하고 있는 분이라면 마이너리티가 가져야 하는 정신이 뭔지, 마이너리티, 비주류인 내 존재를 어떤 철학적 논증들이 강력하게 지지해주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책이 다루는 내용에 비해 쉽게 잘 읽힙니다. 아마도 우리 이야기, 삶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꽉 짜여진 바쁜 일상을 사는 여러분에게 이 책에 나오는 도마복음 42절을 읽어드리면서 인사를 가늠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방랑하는 자들이 되어라”. 우리를 마이너리티로, 비주류로 규정하는 그 질서와 제도, 울타리 밖으로 나가 방랑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라 할 수 있겠습니다.

 

 

 

  ( 대구교통방송 라디오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책을 소개하는 코너에 나가고 있습니다. 거기서 소개해드리는 책을 이 곳에도 소개해드릴 생각입니다. 라디오에 나가는 대본 그대로 옮겨 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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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보다>

 

1.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안녕하세요? 이번 주에 제가 소개해 드릴 책은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만들고 김영하가 쓴 <보다>라는 책입니다. 앞서 제가 소개해드렸던 <내 서재 속 고전>이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은 의미심장한 내용이긴 했지만 읽어 내기는 쉽지 않은 면이 있는데요, 오늘 소개해드릴 <보다>는 읽는 맛이 아주 좋은 책이라고 먼저 소개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김영하 작가는 소설가로 알려지신 분이잖아요? 얼마 전에 <살인자의 기억법>이란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적도 있었죠?

 

네, 김영하 작가는 <살인자의 기억법> 뿐 아니라 <퀴즈쇼>,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등 많은 소설을 쓰고 있구요, 최근에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하기도 하셨어요. 그 뿐만 아니라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이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하기도 하는 등 문학 영역 전반에서 전방위적으로 활동하시는 소위 ‘스타작가’죠. 오늘 소개해드리는 <보다>는 소설이나 번역 작품은 아니구요,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입니다.

 

3. 재밌는 소설을 쓰는 스타 작가의 산문집이라... 어떤 내용일지 기대가 되는데요. 어떤 책일까요?

 

김영하 작가는 대략 4년 간을 해외에서 체류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보니 우리나라 사회가 너무 빨리 변해서 변한 것이 무엇인지 기록조차 하기 힘들었다고 해요. 해외에서도 한국에서 일어난 일들, 이를테면 숭례문 화재나 천안함 격침, 세월호 침몰 소식을 영상으로 보고 들을 수도 있었지만 우리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보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치 않다는 거죠. 일상에서 보고 경험하는 것을 충분히 숙고하고 그것을 정연하게 써내려가려고 노력하면서 여러 매체에 김영하 자신이 경험한 일상에 대해 생각하고 글로 표현한 것을 싣게 되었다고 합니다.

 

좀 더 말씀드리자면, 이 책 제목의 ‘보다’는 그저 ‘see’, 어떤 대상을 그냥 바라보는 것과는 다른 ‘보다’입니다. 오히려 ‘look’에 더 가깝습니다. 어떤 대상을 집중해서 주시하고 그 대상을 깊이 숙고하는 것이죠. 우리는 뉴스에서 본 것, 일상에서 경험한 것이라면 내가 보았다고, 겪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사실 ‘보는 것’은 쉬워도 ‘제대로 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잔과 같은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거장조차도 제대로 보기 위해 그렸던 사과를 수십 수백 번을 반복해서 그리잖습니까? 이 책 ‘보다’는 김영하 작가가 일상과 사회를 제대로 보고자 노력했던 기록, 그리고 제대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그런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보는 것은 쉬워도 ‘제대로 본다는 것’은 어렵다.... 그렇다면 김영하 작가가 어떻게 자신의 일상을 제대로 보고자 했는지 궁금해집니다.

 

이 책 <보다>에는 재밌는 글이 너무도 많지만 제가 재밌게 읽었던 한 부분을 한번 읽어드리고 싶습니다. ‘택시라는 연옥’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췌해서 읽어드리겠습니다.

 

가정을 해보자. 술을 마시지 않는 나라의 택시는 어떨까. 밤이 늦기 전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아주 바쁜 사람들이거나 응급한 일이 있는 사람들만 심야의 택시를 이용할 것이다. 손님들은 모두 제정신이니 얌전할 것이고 기사들도 취객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을 것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라의 택시는 어떨까. 승객들은 시트에 밴 담배냄새가 자기 옷에 밸까 걱정할 일이 없이 쾌적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대중교통이 완벽한 나라의 택시는 어떨까. 늘 앉아서 이용할 수 있는 버스나 지하철이 그물망처럼 도시를 연결하는 나라의 택시는 부유충이나 이용하는 사치재일 것이다.

(중략)

 

택시 기사가 대기업의 정규직만큼의 수입을 올리는 나라는 어떨까. 난폭 운전이나 과속은 시켜도 안할 것이다. 자칫 사고라도 나면 좋은 일자리를 잃을 테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런 나라에 살고 있지 않다. 주류 소비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다 모여 마시기를 좋아하니 밤늦은 시각의 승객들은 거의 술에 취해 있다. 높은 흡연률로 많은 택시가 담배 냄새에 절어 있고, 대중 교통은 자리 잡기 전쟁이고, 기사들의 벌이는 최저 생계비를 겨우 넘기는 정도다. (중략)

 

아침에 일어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기사가 딸린 회사 차를 타고 출근했다가, 그 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회사 임원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택시에 큰 관심이 없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마을 버스와 시내 버스를 갈아타고 시내 빌딩으로 출근해 하루종일 청소를 하고 밤에 집으로 돌아오는 가난한 여성에게도 택시는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하는 사물일 것이다. 택시는 엄청나게 부유하지도,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관련이 깊다. 애매하다.

 

지금까지 읽어드린 부분은 김영하가 본 택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닌 연옥처럼 ‘애매하다’는 것인데요, 작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이런 애매함이 2013년에 문제가 되었던 택시법 논쟁을 낳았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작가의 시선에서 보자면, 택시는 대중교통이 완벽하면 불황, 대중교통이 실패하면 호황을 누리는데, 2013년 택시법 문제의 진짜 원인은 대중교통의 성공이라는 거죠. 그렇니까 택시의 미래는 대중교통의 미래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수동적이고, 또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라는 성찰을 이끌어 냅니다.

 

5. 우리가 흔히 이용하는 택시를 두고 이런 식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니 흥미롭네요.

 

택시 뿐 아니라 이 책에는 김영하 작가가 일상을 바라보는 재밌는 소재가 참 많아요. 예를 들면, 스마트폰, 신문사 식자공, 여행, 유니클로 티셔츠 등 일상에서 우리가 늘 자주 만나는 사물과 인물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에 소설가가 풀어내는 재밌는 이야기가 덧붙여지고, 또 작가만의 깊이 있는 성찰이 더해져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면 손에 내려 놓기 힘들 정도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친구에게 이런 문자 메시지를 보냈어요. “김영하가 쓴 산문은 달다. 아주 기분 좋고 깊은 맛이 나는 단맛이 난다”. 이렇게요.

 

6. 기분 좋고 깊은 맛이 나는 단맛이 어떤 맛일지 궁금해집니다. (웃음)

제가 그렇게 표현한 것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데요, 이 책의 많은 글이 김영하 작가의 개인적 일상, 그러니까 작가가 부산에 살게 된 이유, 대학 시절 유럽 여행에서 잠깐 마음이 갔던 부다페스트의 여인에 대한 이야기, 가정 방문 영어테잎 세일즈를 하다가 돈을 때일 뻔한 일 등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니까 타자의 삶이라고 할까요, 그런 것을 들여다 보는 재미가 읽는 이를 아주 기분 좋게 해요.

 

그런데 제가 그것을 또 깊은 맛이 난다고 한 이유는요, 김영하 작가는 말하려는 바를 직접적으로, 단도 직입적으로 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우회적으로, 많은 경로를 둘러서 전합니다. 한 예로 여기에 실린 거의 모든 글에는 김영하 작가가 읽은 책과 본 영화의 내용이 함께 결부되어 있어요. 40대가 된 작가가 부산의 어느 극장에서 <비포 미드나잇>을 보고 영화의 배경이 그리스인 것과 주인공의 직업이 작가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20대에 잠깐 함께 여행을 하다 그리스에서 헤어진 부다페스트의 여인을 떠올리고는 20대는 몸으로 살았고 40대는 머리로 살지만 모두 그 나름대로 좋았다며 인생의 의미를 숙고하는 식이죠.

7.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직접 하지 않는다는 지점이 재밌습니다. 바쁜 현대인들은 우회적으로 돌려 말하는 것을 답답하고 비효율적으로 느끼기 쉬운데요.

 

그래서 책이 팔리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을 직접적으로 말해야 하고, 말하고 있는 세상은 사실 굉장히 재미없는 세상이에요. 네비게이션 켜 두고 출발지와 목적지만 있는 여행이 재미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무미건조한 효율성만이 지배하는 세상이니까요. 문학이란 것은 바로 그런 흐름에 근본적으로 저항하는 겁니다. 20대는 몸으로 산다는 이야기를 그냥 하는 것보다, 내가 20대 유럽여행 당시 피렌체로 이동하던 중 열차에서 잠깐 본 부다페스트로 간다는 여자를 보기 위해, 피렌체로 도착해서 다시 가방 싸들고 무턱대고 부다페스트행 열차를 타서 그 여자를 다시 만나게 됐다는 식의 이야기는 비록 길고 비효율적인 방식이지만 훨씬 더 설득력 있지 않나요? 우리는 모든 것을 효율성이라는 하나의 가치로만 바라보는 관습에 지배되어 ‘진정성’과 ‘감동’은 놓치고 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김영하 작가가 ‘빈부격차 문제’를 자주 쓰는 것도 그런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영하 작가의 말인데요, “진심을 담아 전하기만 하면 상대에게 전달되리라는 믿음 속에서 살아간다. 안타깝게도 진심은 진심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진심 역시 ‘잘 설계된 우회로’를 통해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그게 이 세상에 아직도 이야기가, 그리고 작가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저는 이 책이 작가의 말대로 아주 잘 설계된 우회로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 <보다>외에 <말하다> <읽다> 3부작이 모두 완간되었습니다. 여러분들게 일독을 권합니다.

 

 

   ( 대구교통방송 라디오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책을 소개하는 코너에 나가고 있습니다. 거기서 소개해드리는 책을 이 곳에도 소개해드릴 생각입니다. 라디오에 나가는 대본 그대로 옮겨 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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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1. 안녕하세요? 지난 주 서경식 작가의 책에 이어 이번 주에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안녕하세요? 제가 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책은 자음과 모음 출판사에 만들고 사사키 아타루가 쓴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라는 책입니다. 제목이 좀 섬뜩하죠?

 

2.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이라... 제목이 좀 무섭게 느껴지는데 어떤 책이죠?

 

그렇죠? 책 제목이 저도 무섭게 느껴지는데요, 책 제목은 파울 첼란이라는 시인의 <빛의 강박>에 실린 시구를 인용한 것이라고 합니다만, 책 제목에 대해서 작가가 어디에서도 직접 설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왜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는 고민을 좀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남의 멀쩡한 손을 잘라 버리라고 하는 것일까요? 기도하는 소녀를 표현한 아름다운 그림들을 떠올려 보세요. 사사키 아타루는 바로 곱게 모아진 아름답고 가녀린 그 소녀의 손을 잘라라고 하는 거에요.

 

3. 설마. 기도하는 손을 정말로 잘라 버리라는 내용은 아니겠죠? 손을 잘라버리는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는 잔혹동화 같은 책을 소개해 주실리는 없을 것 같은데요.

 

네, 맞습니다. 책의 제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이 어떤 책인지를 좀 봐야 합니다. 이 책도 부제가 있는데요,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이 바로 이 책의 부제에요. 그러니까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이 책은 ‘책’에 대한 책이구요, 또 ‘혁명’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작가의 주장은 “책을 읽는 것이야말로 혁명이다”라는 거에요. 작가가 책을 읽는 것이 왜 혁명이 되는지를 두 주에 한번씩 5회에 걸쳐 2010년 강연한 내용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4. 그렇다면 일종의 강연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책을 읽는 것이 혁명이다라는 작가의 주장은 쉽게 와닿지 않는데요, 책 읽기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내용으로 보면 될까요?

 

아, 이 책이 책 읽기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것은 맞긴 합니다만, 사사키 아타루라는 작가가 이야기하는 ‘책을 읽는다’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의 책 읽기와 상당히 다릅니다. 편하게 안락의자에 앉아서 혹은 열차 안에서 좋아하는 책을 편안한 마음으로 읽으며 즐기는 책 읽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교수나 연구하는 사람들이 책상 머리에 앉아 논문을 읽는 식의 책 읽기와도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런 식으로 읽는 책 읽기가 우리에게 혁명이라 부를 만큼의 영향력은 가져다 주지 않잖아요? 즐거움을 주고, 지식을 주지만 ‘혁명’이라고 부를 만큼의 변화는 아니죠. 말하자면 사사키 아타루가 생각하기에 그런 것은 책 읽기가 아닙니다. 그건 그냥 정보를 얻는 행위이지, 책 읽기가 아니라는 거죠. 제가 이 책의 한 부분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다양한 것들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미술관에 다니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영화보는 것도 그만두었습니다. 듣는 것을 그만두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습니다만, 음악활동도 그만두었습니다. 텔레비전 보는 것을 그만 두었습니다. 잡지 보는 것도 그만두었습니다. 스포츠 관람도 그만두었습니다. 어쩐 일인지 담배도 끊었습니다. (중략)

 

그리고 다양한 정보를 차단하기로 했습니다. 친구가 하는 말밖에 듣지 않고, 친구가 권하는 것밖에 보지 않습니다. 그것도 이따금 있는 일입니다. (중략)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5. 세상과 완전히 차단하고 살아가고 있네요.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걸까요? 책도, 영화도, 미술관도 가지 않으면서... 그렇게 되면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고, 뒤처지게 되지 않을까요?

 

이 책의 작가인 사사키 아타루도 자기가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게 조금은 힘들다고 해요. 하지만 자신은 무식해지기로 했다, 어리석게 살기로 했다고 하면서 소위 온갖 정보들을 차단시키고 있습니다. 정보를 모으고 정보가 말해주는 대로 행동하는 식으로 살기 싫다는 거에요.

사실 우리도 정보를 끊임 없이 모으고 정보에 따라 살아가려고 악착 같이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한 예로 인터넷 SNS 상에서 자주 공유되는 소위 ‘꿀팁’이라고 있지요? 어느 사이트에 가면 스마트폰을 좀 더 싸게 살 수 있다더라, 내지 사진을 어떤 각도로 찍을 때 가장 멋지게 보이는지, 부동산 투자를 통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떤 팁이 있는지, 주식 투자를 할만한 회사는 어딘지.. 인터넷은 어떤 물건을 가장 싸게, 그리고 쉽고 편하게 살 수 있는지를 소개해주는 각축장 같아요.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요즘 출판시장이 어렵다고 해도 그건 문학이 그렇구요, 지식을 쉬운 말로 편하게 알게 해준다거나 직장 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시간 관리법에 대한 책들처럼 실용적인 정보를 담은 책들은 또 잘 팔리거든요. 책을 읽는다고 하지만 사실 ‘꿀팁’을 인터넷 대신 책으로 끌어 모으는 것과 다르지 않은거죠.

 

6. 그러니까 이 책의 작가는 우리가 책을 읽는 방식이 ‘꿀팁’을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는 거군요. 미술관에 가는 것이나 영화관에 가는 것, 텔레비전을 보는 것도 모두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작가는 어떤 철학자의 말을 인용해서 ‘타락한 정보가 있는 게 아니라 정보 자체가 타락한 것이다’라고 까지 하는데요. 모든 정보가 타락했다고 하는 것이니까, 아마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라디오 방송도 작가의 관점에서는 타락한 것일 겁니다. (웃음)

 

7. 좀 극단적이라고 할까요.. 지나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지나치다고 느끼실 수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만 다른 쪽으로 생각하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예를 들면 공부를 할 때 ‘배움’ 보다 ‘입시정보’가 중요해지거나, 집을 살 때 ‘내가 살고 싶은 곳’ 보다 ‘부동산 정보’가 더 중요해진 상황, 또 결혼을 할 때 ‘사랑’보다는 결혼정보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면 이건 타락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런 정보들을 긁어 모으는 것과는 다르다는 거죠.

 

8. 그러면 도대체 작가가 생각하는 책읽기란 뭔가요?

 

인지심리학 연구에서 본 내용입니다만 연구자가 실험참가자들에게 책을 읽으면서 줄을 치도록 했는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모르는 내용 보다는 자신이 아는 내용에 줄을 치는 경향이 있었고, 아는 내용이 많이 나오는 책을 읽을 때 책읽기가 즐거웠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고 해요. 변화하기 위해 책읽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책읽기를 한다는 건데요, 사사키 아타루의 책 읽기도 이런 사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이 작가에게 책 읽기란 ‘책을 읽어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쉽게 말씀 드려서 그냥 책을 읽었다가 아니라, ‘오 맙소사, 책을 읽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느낌이에요.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이 책에 마틴 루터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요, 루터가 종교개혁을 불러온 혁명가이지 않습니까? 그런데요, 이 종교개혁이라는 대혁명이 ‘성서를 읽는 운동’이었다는 겁니다. 루터가 철저하게 성서를 읽었다고 하는데요, 성서를 읽어버리는 바람에 평범한 농민의 아들인 루터가 교황의 권위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또 다른 예는 마호메트인데요, 마호메트는 글을 읽을 수 없던 문맹이었는데 천사로부터 어떤 책을 ‘읽어라’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계시가 바로 이슬람 세계의 시작이라는 거죠. 그런 변화의 예가 이 책에 계속 소개되고 있어요. 앞서 제가 말씀 드렸던 실험에서 피험자들이 책을 읽는 것과 루터나 마호메트가 책을 읽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인거죠.

 

9. 책을 읽는 것이 혁명이라는 말의 뜻이 바로 그런 것이군요. 책을 제대로 읽어버리면 세계가 바뀐다.. 책읽기에 그런 큰 힘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사키 아타루는 책을 읽어버리면 사람이 미쳐 버린다고 합니다. 꿀팁을 얻는다고 해서는 미치지 않죠. 그런데 책을 제대로 읽어버리면 루터나 마호메트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미치던지, 세상이 미치던지 둘 중 하나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기도를 할 필요가 없는거죠. 그 대신 책을 읽어버리면 되는 겁니다.

 

10.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라는 제목이 바로 그런 뜻이군요.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혁명을 일으키기에는 기도보다는 책 읽기를 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이런 말을 작가가 합니다.

 

“대혁명이란 책을 읽는 겁니다. 루터는 무엇을 했을까요? 성서를 읽었습니다. 그는 성서를 읽고, 성서를 번역하고, 그리고 수없이 많은 책을 썼습니다. 이렇게 하여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반복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오늘은 시간상 루터의 예를 가져왔지만 책에는 오늘 말씀 드렸던 종교의 사례 말고도 많이 있습니다.

 

11.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요?

 

글쎄요, 저자는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을 강조합니다. 여러 번 읽고 다시 고쳐 쓰면서 읽어라고 해요. 하지만 어떤 책을 읽으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건 작가의 관점에서 정보에 불과하니까요. 반복해서 읽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아마 반복해서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야 하겠죠? 오늘 소개해드린 이 책,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구요, 놀라운 통찰을 보여주는데도 책은 참 쉽게 술술 읽힙니다. 복잡한 일이 많은 요즘인데요, 이 책을 한번 읽어버리시길 추천드립니다.

    

 

   ( 대구교통방송 라디오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책을 소개하는 코너에 나가고 있습니다. 거기서 소개해드리는 책을 이 곳에도 소개해드릴 생각입니다. 라디오에 나가는 대본 그대로 옮겨 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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