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철학자와 하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1.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건가요?

 

네, 제가 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책은 메디치 출판사에서 만들고, 철학자 고병권이 쓴 <철학자와 하녀>라는 책입니다. 지난 주에 제가 소개해드렸던 김영하 작가의 <보다>라는 책이 소설가의 에세이라면, 이번 주 소개해드리는 <철학자와 하녀>는 철학자의 에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철학자의 산문집이라고 할 수 있는 거네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일까요?

 

먼저 이 책을 본격적으로 소개해드리기 전에 제가 이 책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를 먼저 말씀드려보고 싶어요. 제가 이 책을 읽게 된 과정을 소개해드리면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 짐작하시기 한결 더 수월하실 것 같거든요. 제가 올해 4월부터 6월 사이에 대구미술관에서 시민들을 모시고 서양미술사를 강연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강의가 한 학기로 6회동안 이뤄졌는데 전체 강좌의 제목이 <마이너리그 미술사>였어요.

 

마이너리그 미술사로 이름 붙였던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요, 첫째는 제가 미술사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비전문가가 본 미술사를 말씀드린다는 뜻에서 마이너리그라는 이름을 붙였구요, 두 번째는 제가 강좌에서 다룬 인상주의부터 초현실주의에 이르는 시기의 수많은 거장들이 사실은 모두 마이너리티, 우리말로는 소수자라고 하는데 이게 약간 느낌이 좀 다르긴 합니다만, 어쨌든 알고보면 마이너리그였다는 것에 착안해서 그런 제목을 붙였어요. 지금이야 다 거장이고, 그림 값도 어마어마하지만 마네는 살롱전 입상에 집착하면서도 살롱전 입상이 굉장히 늦었구요, 고흐는 지금은 위대한 후기 인상파 화가지만 살아 생전에 그림 한점 밖에 팔지 못했던 찌질이였던 거죠. 저는 화가들의 그런 면모를 보고 위로를 받았고, 또 생각할 점도 많이 있어서 그런 내용을 미술관에서 강의를 했었습니다.

 

3. 선생님 강연을 홍보하러 나오신 것 같은 느낌인데요? 

 

알아채셨나요? 제 강의는 대구미술관 팟캐스트에서 전체 영상을 모두 볼 수 있으니 거기서 확인해보시구요, 내년에 책으로도 나올 예정이니 많이 읽어봐주세요.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요, 제 강의가 끝나던 날, 한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신다는 대학원생이 제게 오셔서 이 책 <철학자와 하녀>를 선물로 주고 가셨어요. 제목은 <철학자와 하녀>고, 부제를 보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제 미술사 강의와 주제의식이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선물로 주셨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읽어보면서 또 다른 통찰을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미술사 강의하면서 여러분들에게 공감을 많이 얻었는데요, 그게 사실 미술을 잘 알거나 제가 강의를 잘해서가 아닙니다. 알고 보면 우리가 다 어느 정도 마이너리티거든요. 알고 보면 누구나 조금씩은 소수자입니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대해서, 광인은 정상인에 대해서, 여성은 남성에 대해서, 빈자는 부자에 대해서, 유색인종은 백인인종에 대해서, 대구사람은 서울사람에 대해서, 기술직은 전문직에 대해서,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대해서, 흙수저는 금수저에 대해서 마이너리티인거죠.

 

4. 모두가 조금씩은 마이너리티라는 말씀이 와닿네요.

 

사실 제가 모두가 마이너리티라는 식으로 말씀을 드리면, 마이너리티라는 이유로 정말로 정치 사회적 차별을 당하고 계신 분들을 모독하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장애인이자 여성이며 가난한 자라도 자신이 좋은 학교를 나왔고, 백인이며, 전문직이라서 나는 마이너리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마이너리티가 아닐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스스로를 마이너리티라고 조금이라도 인식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보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마한 책이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5. 말씀을 듣고 보니 조금 이상하게 생각되는 부분이 있는데요. 그러면 <철학자와 하녀>라는 제목에서 하녀는 마이너리티를 상징하는 말인가요?

 

네, 그런 셈인데요, 그런 부분이 오해를 불러 올 수 있는 것 같긴 해요. 하지만 고병권 작가가 그렇게 쓴 데에는 이유가 있는데요, 철학사에서 ‘하녀’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어요. 그게 뭔가 하면, 최초의 철학자라 알려진 탈레스가 하늘에 별을 보면서 걷다가 우물에 빠지거든요. 그것을 본 트라케 지역의 하녀가 깔깔대며 하는 말이 있어요. “탈레스는 하늘의 것을 보는데서 열심히면서 발치 앞에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 서문에서 고병권 작가도 쓰고 있지만 이 하녀는 총명한 사람은 맞지만 철학사에서 이 하녀의 이미지는 그렇게 좋지가 않아요. 무지의 상징인거죠. 하지만 고병권 작가는 철학이 하녀의 말대로 하늘의 별만 쫓다가 발치 앞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할 때 현실 감각이 사라지고, 반대로 철학이 눈 앞에 있는 것만 쫓아간다면 그것도 철학이 해야 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철학자와 하녀>라는 제목은 철학은 가난한 이들의 현실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새기면 좋을 것 같습니다.

 

6.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철학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네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철학자 고병권이 제안하는 철학은 어떤 것일까요?

 

실제로 고병권 작가는 니체 철학의 해설서로 잘 알려진 <니체, 천개의 눈 천개의 길>이라는 책을 쓰는 등 니체에 대해서 전문가이지만 정작 자신은 철학 전공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본인도 마이너리티죠. 하지만 현대 프랑스철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계신 분인데요, 이 분이 공부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교도소에서도 철학을 가르치고, 장애인 자활 학습공동체인 노들야학 같은 곳에서도 철학을 가르치세요. “마이너리티”와 만나서 대화하고 철학을 가르치면서 느낀 대목들이 많이 나와요. 그래서 책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먼저는 고병권이란 사람이 마이너리티를 만나면서 자신이 철학자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부분이 있구요, 또 철학자로서 마이너리티에게 권하고 제안하는 부분이 있어요.

제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을 한번 읽어 드려보고 싶습니다. ‘배움 이전에 일어나는 배움’이라는 장에 나오는 부분인데요, 노들 장애인 야간학교에서 고병권 작가가 어떤 글을 읽고 쓴 내용입니다.

 

“내가 노들학생의 글에서 발견했다고 말한 것이 이런 변화였다. 교과서에 충실할 것인가, 변혁적 지식을 전달해야 하는가. 그러나 학생들의 변화는 정작 다른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교실에서만큼이나 소풍과 엠티 장소에서 일어났고, 수학문제를 풀 때도 일어났지만, 노래하고 춤출 때도 일어났다. 한 학생은 이렇게 적었다. ”지난 10월 엠티 때 TV에서나 보았던, 그렇게나 부러웠던, 모닥불을 피워놓고 얘기하는 것을 했을 때 너무 좋았어요. 그 때 하늘을 보신 분이 많으리라 생각해요. 모든 별이 우리 곁으로 다가와서 비추어주는 것 같았어요. 정말 눈물이 나와서 울뻔 했어요. 무언지 모를 눈물이 나오려고 하더군요.“

 

텔레비전에서만 보았던 모닥불 피고 노래하는 엠티를 자신이 해보았다는 것. 그때 본 밤하늘은 틀림 없이 그 학생 안에서 엄청난 변혁을 일으켰을 것이다. 이는 장애가 어떤 것인지를 안다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장애란 어떤 본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교육이든, 취업이든, 사랑이든, 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어떤 불가능의 체험이며, 그 때 자신에게 자신에게 생겨나는 ‘무능’과 ‘포기’의 정서이다. 어떤 불가능성의 체험, 그리고 그와 함께 일어나는 자기 무능과 자기 포기의 정서를 겪을 때 어떤 사람은 장애인이 된다. 그리고 불가능의 체험과 포기의 정서가 커질수록 중증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수십 년간 집이나 시설, 그리고 작업장에만 갇혀 있던 어떤 장애인이 야학 사람들과 모닥불을 피우고 밤하늘을 함께 보았다. 그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는 어떤 불가능이 가능으로, 어떤 무능이 능력으로 바뀌는 체험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마음 속에는 정서들의 대변혁이 일어났을 것이다. 모닥불이 있는 밤하늘이 그에게 무언가를 일깨우는 것이다. 이 일깨움, 이 깨달음, 이것이 바로 ‘배움 이전에 일어나는 배움’이다.

장애인 여성이었던 그는 자립 생활에 도전했다. “사람들이 ‘너 나가서 어떻게 살래?’ 이랬어요. 그런데 자신감이 있었어요. ‘나, 나가서 살고 싶어. 한번 겪어 보고 싶어’. 그런 자신감이 붙더라고요, 그래서 야학 다니면서 방도 얻고 자동차 면허증도 따고 독립을 했죠”.

 

7. 아, 감동적인 이야기네요. 배움 이전에 일어나는 배움이라...

 

그렇죠? 배움이라는 것을 읽고 쓰는 것을 다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철학자의 눈에는 이런 깨달음이야 말로 어떤 원초적 배움이랄까, 배움에의 의지를 갖게 만들어주는 겁니다. 고병권 작가가 책에서 철학자 칸트를 자주 인용하는데요, 특히 “계몽은 무지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려지 않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소위 박사 학위 소지자라 많은 배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타성에 젖어 해야 하니까 학위 취득을 한 경우도 많거든요. 그보다는 혼자 운전에 몰두하면 목적지로 향하는 중에 문득 창밖에서 들어오는 빛이, 라디오의 어떤 음악 하나가 ‘내가 배워야겠다’, ‘알아야겠다’는 의지를 불러 올 때가 있죠. 그럴 때가 바로 배움의 순간이라는 겁니다.

 

8. 마이너리티의 철학.. 들을수록 관심이 생기는데요, 그 밖에 어떤 것이 있나요?

 

사실 제가 말씀 드린 것은 책 전체 내용의 정말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작가는 루쉰의 말을 빌려서 마이너리티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루쉰도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마이너리티였죠. 루쉰은 병이 심해져 죽음을 예비한 상황에서 죽을 때 모든 원한을 정리하고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서양인은 임종 때에 곧잘 의식 같은 것을 행하여 타인의 용서를 빌고 자기도 타인을 용서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의 적은 상당히 많다. 만일 신식을 자처하는 사람이 묻는다면 뭐라 답할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결정하였다. 멋대로 원망하도록 하라. 나 역시 한 사람도 용서하지 않겠다”.

    

 

서양인이 주류가 된 세계에서 비주류인 루쉰이 하는 말인데요, 화해니 용서니 그런 것 듣기 좋은 말이지만 강자가 약자에게 강요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마이너리티라면 굴복하지 않는 것, 쉽게 무릎 꿇지 않고 저항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거지요. ‘멋대로 원망하도록 하라, 나 역시 한 사람도 용서하지 않겠다’.. 정말 멋진 말 아닌가요?

 

그 외에도 재밌는 내용이 참 많습니다. 혹시 사회자님께서는 전 세계에서 인구 10만명당 수형인구수, 즉 감옥에 갇힌 사람 수가 가장 많은 나라가 어딘지 아시나요?

 

9. 글쎄요.. 어디일까요? 중동국가나 북한 같은 나라일까요?

 

저는 러시아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인구대비 수형자수가 가장 많은 나라가 미국입니다. 10만명당 700명이 넘어 세계 1위인데요, 미국의 감옥에 갇힌 재소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유가 1980년대부터였다고 합니다. 특별히 이 시기에 범죄가 더 심화된 것이 이유가 아니고, 정부가 수형에 필요한 비용이 많이 드니까 민영교도소를 세워서 해결하려고 했어요. 정부는 돈이 적게 드니까 민영교도소를 세우니 효율적이구요, 민영교도소들은 수형자들과 고용계약을 맺어 제품을 생산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된거죠. 한예로 CCA라는 미국교정기업이 있는데요, 이 회사는 1990년 대 후반에 뉴욕증시에서 수익률이 가장 높은 미국 5대기업에 3년 연속이나 선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민영교도소가 증가하면서 실형선고가 증가하고 형량 인플레이션이 생기는 거죠. 단지 법질서 때문이 아니라 교도소의 수익 때문에 말이죠. 고병권 작가는 이런 것을 보면서 수익모델로 인간이 수용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합니다. 멀리 미국의 이야기이지만 철도니 공항이니 전력이니 민영화 논의가 많은 우리 상황에서도 새겨 들을만한 이야기죠. 뿐만 아니라 노동력이 상품화된 우리 사회도 넓은 의미에서는 인간 수용소라 할 수 있는거구요.

 

10. <철학자와 하녀>, 이 책을 우리 청취자들이 읽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앞서 설명드렸던 것처럼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마이너리티입니다. 그 점을 자각하고 있는 분이라면 마이너리티가 가져야 하는 정신이 뭔지, 마이너리티, 비주류인 내 존재를 어떤 철학적 논증들이 강력하게 지지해주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책이 다루는 내용에 비해 쉽게 잘 읽힙니다. 아마도 우리 이야기, 삶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꽉 짜여진 바쁜 일상을 사는 여러분에게 이 책에 나오는 도마복음 42절을 읽어드리면서 인사를 가늠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방랑하는 자들이 되어라”. 우리를 마이너리티로, 비주류로 규정하는 그 질서와 제도, 울타리 밖으로 나가 방랑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라 할 수 있겠습니다.

 

 

 

  ( 대구교통방송 라디오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책을 소개하는 코너에 나가고 있습니다. 거기서 소개해드리는 책을 이 곳에도 소개해드릴 생각입니다. 라디오에 나가는 대본 그대로 옮겨 둡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