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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이순(웅진)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애도일기
- 롤랑 바르트
1.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네, 제가 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이순에서 만들고 롤랑 바르트가 쓴 <애도일기>라는 책입니다. 롤랑 바르트는 20세기 프랑스의 지적 거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사르트르가 죽고 난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사람이기도 하구요, 탁월한 비평가이기도 하고, 기호학자이기도 한 롤랑 바르트가 써 내려간 애도의 기록이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애도일기>라는 책입니다.
2. 성탄절 아침에 읽는 <애도일기>라 뭔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인데요, 어떤 책인가요?
네, 성탄절에 <애도일기>를 소개해드려 저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만 왜 이 책을 성탄절에 소개하게 되었는지는 조금 후에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 책은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의 죽음 이후부터 2년간 자신의 슬픔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써내려간 일기들입니다.
프랑스어로 ‘마망’은 엄마를 뜻하는 말인데요, 롤랑 바르트가 ‘마망’이라고 이 글에서 쓰고 있는 어머니는 투병 생활을 하다 1977년 10월 25일에 돌아가시게 됩니다. 바르트의 어머니는 23세부터 84세의 나이로 별세하기까지 평생을 과부로 지냈는데요,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두 사람 사이가 각별했던 것 같습니다. 롤랑 바르트가 1915년 생이니까 어머니는 그의 나이 62세에 돌아가셨는데요, 책을 읽다보면 이 사람이 과연 60세가 넘은 어른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요, 마치 한 소년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곳곳에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절절하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바르트가 어머니에 대한 애도로 쓴 일기 한편을 먼저 읽어 드리겠습니다. 어머니를 떠나 보낸 후 보름 정도가 지난 11월 9일에 쓴 일기입니다.
허우적거리면서 나는 겨우겨우 슬픔을 건너가는 길을 찾아나가고 있다.
끊임 없이.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로, 뜨겁게 달아오른 어떤 지점이 되돌아온다 ; 말들, 죽음과 싸우면서 그녀가 내게 입김과 더불어 불어 넣곤 하던 말들, 너무도 메마른, 지옥 불처럼 타오르는 고통의 점화점, 나를 완전히 압도해버리는 말들 “나의 롤랑, 나의 롤랑”, -“저, 여기 있어요.”- “너 앉아 있는게 불편해 보이는구나”
- 이 순수한 슬픔, 외롭다거나 삶을 새로 꾸미겠다거나 하는 따위와는 아무 상관 없는 슬픔. 사랑의 관계가 끊어져 벌어지고 패인 고랑.
- 모든 것들이 줄어든다, 글쓰는 일도, 말하는 일도. 그러나 이것만은 제외하고(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것)
모든 것은 줄어들지만 줄어들지 않는 것,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것이라고 마지막에 이야기한 것은 ‘슬픔’을 말합니다. 글쓰는 일도, 말하는 일도 줄어드는데 오로직 슬픔만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해요. 그래서 작가는 이 책 어딘가에서 자신은 슬픔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 자기 자신이 ‘슬픔’이 되어버렸다고까지 씁니다. 방금 읽어드린 부분에서 바르트의 어머니는 바르트를 향해 ‘나의 롤랑’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요, 더 이상 ‘나의 롤랑’이라고 불러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 때문에, 어머니를 잃었다는 것을 사랑의 관계가 끊어져 벌어지고 패인 고랑이 되어 버렸다고 해요.
3. 작가가 어머니에 대해 쓴 사모곡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네, 그런 점이 분명히 없지는 않습니다만, 사실 이 책이 단순히 자식이 부모에게 더 잘해드리지 못해서 후회하면서 살아계시는동안 부모에게 더 잘해야 한다는 도식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 책 어디에도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식의 교훈을 강조하는 내용은 단 한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 책은 교훈에 대한 글 아니라 ‘슬픔’과 ‘그리움’에 관한 책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롤랑 바르트는 자신의 슬픔과 우울한 기분을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여행을 가더라도, 쇼핑을 하더라도, 친구들을 만나면서도 즐길 수 없엇다고 합니다. 그리고서는 자신을 이토록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슬픔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계속 묻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롤랑 바르트는 제과점에 들렀다가 작은 여점원이 손님을 도와주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부알라”, “부알라”라는 말은 물건을 건네주면서 ‘당신이 찾는 물건이 여기 있어요’라는 프랑스어인데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반 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그녀는 메아리처럼 ‘부알라’, ‘나 여기 있다’라는 그 말을 따라했다고 합니다. 여 점원이 빵을 건네면서 무심코 했던 이 한마디 말 때문에 롤랑 바르트는 오랫동안 혼자 울었다고 해요. 그러면서 롤랑 바르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슬픔은 그러니까 외로움 때문이 아니다. 그 어떤 구체적인 일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일들이라면 나는 어느 정도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가 있다. 나의 슬픔이 놓여 있는 곳, 그곳은 다른 곳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라는 사랑의 관계가 찢어지고 끊어진 바로 그 지점이다. 가장 추상적인 장소의 가장 뜨거운 지점...
4. 사랑의 관계가 찢어진 지점에 슬픔이 있다는 말이 깊이 와닿습니다.
아마도 가족을 잃었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롤랑 바르트의 이런 말에 깊이 공감할 수 있을텐데요, 저는 오늘 이 책을 이 세상에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 이별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개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성탄의 의미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예수는 슬퍼하는 사람과 함께 있기 위해 이 땅에 온 것이지 단지 기쁨을 주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크리스마스에는 모두들 들뜨고,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기대하지만 사실 성탄의 진정한 의미는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고, 아파하는 자와 함께 아파하는 것일 겁니다.
아마 지금 라디오를 듣고 계시는 분들 중에서도 슬픔과 함께 이 성탄절 아침을 보내고 계신 분들이 계실 거에요. 저는 그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혼자 슬퍼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또 롤랑 바르트가 함께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예수가 나사로가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몹시 슬퍼하면서 함께 이틀 밤을 보냈다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책은 슬픔을 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는 슬픔을 없애기 위해 온 분이 아니라 슬퍼하는 자와 함께 하기 위해 오신 거죠. 이 책에서 롤랑 바르트 역시 슬픔을 섣불리 위로하거나 슬픔을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쇼핑도, 여행도, 친구도, 파티도, 새로운 계획과 기분 전환 그 어떤 것도 이길 수 없는 슬픔, 외로움, 허무함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5. 성탄절 아침에 <애도일기>를 가져오신 이유가 그런 이유 때문이었군요.
프로이트라는 정신분석학자가 있지요? 프로이트도 애도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는데요, 프로이트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하고 나면, 그 사람을 잃었다는 상실의 상처에 우리가 머물면서 그 사랑을 다른 사람이나 대상에게 이동시키길 거부하게 되고, 거기서 슬픔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애도의 과정을 통해서 이 상처를 인정하고 자신의 사랑을 다른 대상으로 이동시키면 애도 작업이 완료된다고 해요. 쉽게 말해서 사랑하는 누군가가 죽었다면 처음에는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다른 곳으로 옮겨지지 않아 힘든 시기를 겪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랑이 옮겨지게 되면 슬픔도 지워지고, 애도도 성공하게 된다고 하는 거죠. 그런데 롤랑 바르트는 프로이트처럼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옮겨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사라지면 사랑이 그냥 끊어진다고 보는 거에요. 그리고 끊어진 사랑에서 슬픔이 계속 일어난다고 봅니다.
저도 프로이트의 생각보다는 롤랑 바르트의 생각에 동의가 되는데요, 대학 다닐 때 좋아했던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사귀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친구가 제게 헤어지자고 하더군요. 사랑이 끊어져 버린 건데요,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실연에 빠져 있던 제게 다른 좋은 여자들도 많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공부를 해야 한다, 여행을 가서 모든 것을 잊고 돌아와라, 정말 많은 조언들을 해줬는데 어떤 것도 그 여학생을 대체할 수 없었습니다. 프로이트는 사랑하던 대상이 사라지면 내 사랑의 방향이 다른 대상으로 옮겨간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오히려 한동안을 그 여학생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혀 계속 그 여학생을 찾게 되는 거죠. 슬픔에 대한 위로가 아무 소용 없는게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는 슬퍼하는 동안에도 끝없이 잃어버린 사랑을, 그 사람을, 이미 죽어버린 그 사람,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 나와 헤어져 버린 그 사람을 끝없이, 계속 찾는거지요. 이 책에서 롤랑 바르트도 슬퍼하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끝없이 찾고, 부릅니다. ‘나의 롤랑’이라고 부르는 마망을 말이죠.
6. 선생님의 연애 이야기를 들으니 더 이해가 쉽긴 하네요. 이건 여담입니다만 선생님은 그 여학생과 결국 어떻게 되셨나요?
여학생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끝까지 저는 그 여학생만을 쫓아다녔죠. 운 좋게도 저는 결국 그 여학생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제 아내구요.
그런데요, 저는 당연히 살아 있는 여학생을 쫓아 다녔으니까 다시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고 해도 그리 놀라울 일이라 할 수 없지만, 롤랑 바르트는 이미 죽은 어머니를 찾고 또 찾고 쫓아다니는데요, 그러다가 결국 어머니를 만나게 됩니다.
물론 어머니가 환생을 해서 돌아온 건 아니구요, 어머니 사진 한 장을 발견하면서 다시 어머니를 만나게 됩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실텐데요, 이 사진에서 찍힌 어머니는 롤랑 바르트가 태어나기도 전인 다섯 살 어린 소녀였을 때 찍은 사진인데요, 롤랑 바르트는 그 사진에서 “마침내 나는 어머니를 만났다”고 합니다. 물론 살아있는 어머니를 다시 만난 것은 아니죠. 그런데 이 사진 한 장을 통해 어머니의 ‘본질’과 만났다고 해요. 마치 제가 오랜 기다림과 구애 끝에 그 여학생을 다시 만난 것처럼 바르트도 오랜 슬픔과 외로움 끝에 사진 한 장에 나타나 있는 다섯 살 어린 여자 아이의 얼굴에 나타난 “해맑은 얼굴과 순박한 손 모양, 얌전한 자세”에서 ‘선함’과 ‘순수함’을 본질로 가지고 있는 어머니를 만나게 된 겁니다.
이런 이야기가 이상하게, 또 어렵게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롤랑 바르트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애도는 그냥 단지 죽은 사람으로 인해 슬퍼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진정한 애도는 잃어버린 사람, 죽은 사람과의 본질과 만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지요.
7. 애도는 온전히 슬퍼하고, 또 기다리는 것이라는 말씀이 와닿는데요, 그냥 슬퍼하기만 하는 것은 사실 너무 어렵고 힘들잖아요? 슬퍼하되 슬픔을 견뎌내는 방법은 없을까요?
<멜랑꼴리의 검은 마술>이라는 책을 쓴 맹정현 박사라는 분이 있는데요, 이 분은 애도는 단순한 슬픔이 아니고 슬픔을 실천하는 노동이라고 합니다. 슬픔이 하나의 정서라면, 통곡은 슬픔으로부터 빠져 나오도록 하는 하나의 노동이라고 하는데요, 꼭 통곡만이 애도의 방법은 아닙니다. 지금 애도의 과정 중에, 슬픔 중에 있는 분이 있다면 저는 ‘글쓰기’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롤랑 바르트도 “커다란 생의 위기를 이겨내고자 하는 작업은 너무 급하게 끝내서는 안된다. 그런 작업은 나의 경우 글쓰기를 통해서만, 또 글쓰기 안에서만 비로소 완결될 수 있다”고 쓰고 있습니다. 롤랑 바르트처럼 짧은 일기를 쓰면서 글을 써 내려가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쓴 슬픔의 기록이 자신에게도 슬픔을 견디는 노동이 되겠지만 슬퍼하는 다른 누군가에게도 위로가 되겠죠.
8. <애도일기>, 우리가 이 책을 지금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마다 여러이유로 슬픔을 갖고 살아가는데요, 이 책이 그런 많은 분들에게 격려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온전히 슬픔으로 들어가고, 자신의 슬픔의 정체를 알고, 또 애도를 완성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서 경험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아내의 아버지, 제 장인의 기일이 오는 29일인데요, 올해가 12주기입니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아내에게 이 책에 나온 일기 한 장을 읽어줬더니 바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바르트가 어머니의 어릴 적 사진에서 어머니를 만났다고 한 것처럼 제 아내는 제 아들의 모습에서 아버지가 돌아온 것 같다는 느낌을 간혹 받는다고 해요. 슬퍼하시는 모든 분들이 슬픔을 온전히 견뎌내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입니다.
한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우리 사회 곳곳에 저민 슬픔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위기 때 가족을 잃은 사람들, 세월호 유가족들.. 말로 다할 수 없는 큰 슬픔을 가슴에 담아두고 일생을 살아가야 할 분들에게 이 책 <애도일기>가 조금이라도 가 닿길 빌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함께 슬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는 세월호에서 죽은 어린 학생들을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 걸까요? 저는 이 책을 보며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성탄절이 기쁜 날인 이유는 슬퍼하는 자가 더 이상 혼자 슬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책을 통해 나의 슬픔을, 이웃의 슬픔을 살펴보실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 대구교통방송 라디오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책을 소개하는 코너에 나가고
있습니다. 거기서 소개해드리는 책을 이 곳에도 소개해드릴 생각입니다. 라디오에 나가는 대본 그대로 옮겨
둡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