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1. 안녕하세요? 지난 주 서경식 작가의 책에 이어 이번 주에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안녕하세요? 제가 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책은 자음과 모음 출판사에 만들고 사사키 아타루가 쓴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라는 책입니다. 제목이 좀 섬뜩하죠?

 

2.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이라... 제목이 좀 무섭게 느껴지는데 어떤 책이죠?

 

그렇죠? 책 제목이 저도 무섭게 느껴지는데요, 책 제목은 파울 첼란이라는 시인의 <빛의 강박>에 실린 시구를 인용한 것이라고 합니다만, 책 제목에 대해서 작가가 어디에서도 직접 설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왜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는 고민을 좀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남의 멀쩡한 손을 잘라 버리라고 하는 것일까요? 기도하는 소녀를 표현한 아름다운 그림들을 떠올려 보세요. 사사키 아타루는 바로 곱게 모아진 아름답고 가녀린 그 소녀의 손을 잘라라고 하는 거에요.

 

3. 설마. 기도하는 손을 정말로 잘라 버리라는 내용은 아니겠죠? 손을 잘라버리는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는 잔혹동화 같은 책을 소개해 주실리는 없을 것 같은데요.

 

네, 맞습니다. 책의 제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이 어떤 책인지를 좀 봐야 합니다. 이 책도 부제가 있는데요,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이 바로 이 책의 부제에요. 그러니까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이 책은 ‘책’에 대한 책이구요, 또 ‘혁명’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작가의 주장은 “책을 읽는 것이야말로 혁명이다”라는 거에요. 작가가 책을 읽는 것이 왜 혁명이 되는지를 두 주에 한번씩 5회에 걸쳐 2010년 강연한 내용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4. 그렇다면 일종의 강연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책을 읽는 것이 혁명이다라는 작가의 주장은 쉽게 와닿지 않는데요, 책 읽기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내용으로 보면 될까요?

 

아, 이 책이 책 읽기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것은 맞긴 합니다만, 사사키 아타루라는 작가가 이야기하는 ‘책을 읽는다’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의 책 읽기와 상당히 다릅니다. 편하게 안락의자에 앉아서 혹은 열차 안에서 좋아하는 책을 편안한 마음으로 읽으며 즐기는 책 읽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교수나 연구하는 사람들이 책상 머리에 앉아 논문을 읽는 식의 책 읽기와도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런 식으로 읽는 책 읽기가 우리에게 혁명이라 부를 만큼의 영향력은 가져다 주지 않잖아요? 즐거움을 주고, 지식을 주지만 ‘혁명’이라고 부를 만큼의 변화는 아니죠. 말하자면 사사키 아타루가 생각하기에 그런 것은 책 읽기가 아닙니다. 그건 그냥 정보를 얻는 행위이지, 책 읽기가 아니라는 거죠. 제가 이 책의 한 부분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다양한 것들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미술관에 다니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영화보는 것도 그만두었습니다. 듣는 것을 그만두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습니다만, 음악활동도 그만두었습니다. 텔레비전 보는 것을 그만 두었습니다. 잡지 보는 것도 그만두었습니다. 스포츠 관람도 그만두었습니다. 어쩐 일인지 담배도 끊었습니다. (중략)

 

그리고 다양한 정보를 차단하기로 했습니다. 친구가 하는 말밖에 듣지 않고, 친구가 권하는 것밖에 보지 않습니다. 그것도 이따금 있는 일입니다. (중략)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5. 세상과 완전히 차단하고 살아가고 있네요.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걸까요? 책도, 영화도, 미술관도 가지 않으면서... 그렇게 되면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고, 뒤처지게 되지 않을까요?

 

이 책의 작가인 사사키 아타루도 자기가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게 조금은 힘들다고 해요. 하지만 자신은 무식해지기로 했다, 어리석게 살기로 했다고 하면서 소위 온갖 정보들을 차단시키고 있습니다. 정보를 모으고 정보가 말해주는 대로 행동하는 식으로 살기 싫다는 거에요.

사실 우리도 정보를 끊임 없이 모으고 정보에 따라 살아가려고 악착 같이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한 예로 인터넷 SNS 상에서 자주 공유되는 소위 ‘꿀팁’이라고 있지요? 어느 사이트에 가면 스마트폰을 좀 더 싸게 살 수 있다더라, 내지 사진을 어떤 각도로 찍을 때 가장 멋지게 보이는지, 부동산 투자를 통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떤 팁이 있는지, 주식 투자를 할만한 회사는 어딘지.. 인터넷은 어떤 물건을 가장 싸게, 그리고 쉽고 편하게 살 수 있는지를 소개해주는 각축장 같아요.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요즘 출판시장이 어렵다고 해도 그건 문학이 그렇구요, 지식을 쉬운 말로 편하게 알게 해준다거나 직장 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시간 관리법에 대한 책들처럼 실용적인 정보를 담은 책들은 또 잘 팔리거든요. 책을 읽는다고 하지만 사실 ‘꿀팁’을 인터넷 대신 책으로 끌어 모으는 것과 다르지 않은거죠.

 

6. 그러니까 이 책의 작가는 우리가 책을 읽는 방식이 ‘꿀팁’을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는 거군요. 미술관에 가는 것이나 영화관에 가는 것, 텔레비전을 보는 것도 모두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작가는 어떤 철학자의 말을 인용해서 ‘타락한 정보가 있는 게 아니라 정보 자체가 타락한 것이다’라고 까지 하는데요. 모든 정보가 타락했다고 하는 것이니까, 아마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라디오 방송도 작가의 관점에서는 타락한 것일 겁니다. (웃음)

 

7. 좀 극단적이라고 할까요.. 지나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지나치다고 느끼실 수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만 다른 쪽으로 생각하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예를 들면 공부를 할 때 ‘배움’ 보다 ‘입시정보’가 중요해지거나, 집을 살 때 ‘내가 살고 싶은 곳’ 보다 ‘부동산 정보’가 더 중요해진 상황, 또 결혼을 할 때 ‘사랑’보다는 결혼정보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면 이건 타락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런 정보들을 긁어 모으는 것과는 다르다는 거죠.

 

8. 그러면 도대체 작가가 생각하는 책읽기란 뭔가요?

 

인지심리학 연구에서 본 내용입니다만 연구자가 실험참가자들에게 책을 읽으면서 줄을 치도록 했는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모르는 내용 보다는 자신이 아는 내용에 줄을 치는 경향이 있었고, 아는 내용이 많이 나오는 책을 읽을 때 책읽기가 즐거웠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고 해요. 변화하기 위해 책읽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책읽기를 한다는 건데요, 사사키 아타루의 책 읽기도 이런 사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이 작가에게 책 읽기란 ‘책을 읽어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쉽게 말씀 드려서 그냥 책을 읽었다가 아니라, ‘오 맙소사, 책을 읽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느낌이에요.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이 책에 마틴 루터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요, 루터가 종교개혁을 불러온 혁명가이지 않습니까? 그런데요, 이 종교개혁이라는 대혁명이 ‘성서를 읽는 운동’이었다는 겁니다. 루터가 철저하게 성서를 읽었다고 하는데요, 성서를 읽어버리는 바람에 평범한 농민의 아들인 루터가 교황의 권위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또 다른 예는 마호메트인데요, 마호메트는 글을 읽을 수 없던 문맹이었는데 천사로부터 어떤 책을 ‘읽어라’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계시가 바로 이슬람 세계의 시작이라는 거죠. 그런 변화의 예가 이 책에 계속 소개되고 있어요. 앞서 제가 말씀 드렸던 실험에서 피험자들이 책을 읽는 것과 루터나 마호메트가 책을 읽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인거죠.

 

9. 책을 읽는 것이 혁명이라는 말의 뜻이 바로 그런 것이군요. 책을 제대로 읽어버리면 세계가 바뀐다.. 책읽기에 그런 큰 힘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사키 아타루는 책을 읽어버리면 사람이 미쳐 버린다고 합니다. 꿀팁을 얻는다고 해서는 미치지 않죠. 그런데 책을 제대로 읽어버리면 루터나 마호메트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미치던지, 세상이 미치던지 둘 중 하나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기도를 할 필요가 없는거죠. 그 대신 책을 읽어버리면 되는 겁니다.

 

10.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라는 제목이 바로 그런 뜻이군요.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혁명을 일으키기에는 기도보다는 책 읽기를 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이런 말을 작가가 합니다.

 

“대혁명이란 책을 읽는 겁니다. 루터는 무엇을 했을까요? 성서를 읽었습니다. 그는 성서를 읽고, 성서를 번역하고, 그리고 수없이 많은 책을 썼습니다. 이렇게 하여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반복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오늘은 시간상 루터의 예를 가져왔지만 책에는 오늘 말씀 드렸던 종교의 사례 말고도 많이 있습니다.

 

11.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요?

 

글쎄요, 저자는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을 강조합니다. 여러 번 읽고 다시 고쳐 쓰면서 읽어라고 해요. 하지만 어떤 책을 읽으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건 작가의 관점에서 정보에 불과하니까요. 반복해서 읽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아마 반복해서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야 하겠죠? 오늘 소개해드린 이 책,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구요, 놀라운 통찰을 보여주는데도 책은 참 쉽게 술술 읽힙니다. 복잡한 일이 많은 요즘인데요, 이 책을 한번 읽어버리시길 추천드립니다.

    

 

   ( 대구교통방송 라디오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책을 소개하는 코너에 나가고 있습니다. 거기서 소개해드리는 책을 이 곳에도 소개해드릴 생각입니다. 라디오에 나가는 대본 그대로 옮겨 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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