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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ㅣ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보다>
1.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안녕하세요? 이번 주에 제가 소개해 드릴 책은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만들고 김영하가 쓴 <보다>라는 책입니다. 앞서 제가 소개해드렸던 <내 서재 속 고전>이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은 의미심장한 내용이긴 했지만 읽어 내기는 쉽지 않은 면이 있는데요, 오늘 소개해드릴 <보다>는 읽는 맛이 아주 좋은 책이라고 먼저 소개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김영하 작가는 소설가로 알려지신 분이잖아요? 얼마 전에 <살인자의 기억법>이란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적도 있었죠?
네, 김영하 작가는 <살인자의 기억법> 뿐 아니라 <퀴즈쇼>,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등 많은 소설을 쓰고 있구요, 최근에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하기도 하셨어요. 그 뿐만 아니라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이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하기도 하는 등 문학 영역 전반에서 전방위적으로 활동하시는 소위 ‘스타작가’죠. 오늘 소개해드리는 <보다>는 소설이나 번역 작품은 아니구요,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입니다.
3. 재밌는 소설을 쓰는 스타 작가의 산문집이라... 어떤 내용일지 기대가 되는데요. 어떤 책일까요?
김영하 작가는 대략 4년 간을 해외에서 체류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보니 우리나라 사회가 너무 빨리 변해서 변한 것이 무엇인지 기록조차 하기 힘들었다고 해요. 해외에서도 한국에서 일어난 일들, 이를테면 숭례문 화재나 천안함 격침, 세월호 침몰 소식을 영상으로 보고 들을 수도 있었지만 우리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보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치 않다는 거죠. 일상에서 보고 경험하는 것을 충분히 숙고하고 그것을 정연하게 써내려가려고 노력하면서 여러 매체에 김영하 자신이 경험한 일상에 대해 생각하고 글로 표현한 것을 싣게 되었다고 합니다.
좀 더 말씀드리자면, 이 책 제목의 ‘보다’는 그저 ‘see’, 어떤 대상을 그냥 바라보는 것과는 다른 ‘보다’입니다. 오히려 ‘look’에 더 가깝습니다. 어떤 대상을 집중해서 주시하고 그 대상을 깊이 숙고하는 것이죠. 우리는 뉴스에서 본 것, 일상에서 경험한 것이라면 내가 보았다고, 겪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사실 ‘보는 것’은 쉬워도 ‘제대로 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잔과 같은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거장조차도 제대로 보기 위해 그렸던 사과를 수십 수백 번을 반복해서 그리잖습니까? 이 책 ‘보다’는 김영하 작가가 일상과 사회를 제대로 보고자 노력했던 기록, 그리고 제대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그런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보는 것은 쉬워도 ‘제대로 본다는 것’은 어렵다.... 그렇다면 김영하 작가가 어떻게 자신의 일상을 제대로 보고자 했는지 궁금해집니다.
이 책 <보다>에는 재밌는 글이 너무도 많지만 제가 재밌게 읽었던 한 부분을 한번 읽어드리고 싶습니다. ‘택시라는 연옥’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췌해서 읽어드리겠습니다.
가정을 해보자. 술을 마시지 않는 나라의 택시는 어떨까. 밤이 늦기 전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아주 바쁜 사람들이거나 응급한 일이 있는 사람들만 심야의 택시를 이용할 것이다. 손님들은 모두 제정신이니 얌전할 것이고 기사들도 취객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을 것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라의 택시는 어떨까. 승객들은 시트에 밴 담배냄새가 자기 옷에 밸까 걱정할 일이 없이 쾌적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대중교통이 완벽한 나라의 택시는 어떨까. 늘 앉아서 이용할 수 있는 버스나 지하철이 그물망처럼 도시를 연결하는 나라의 택시는 부유충이나 이용하는 사치재일 것이다.
(중략)
택시 기사가 대기업의 정규직만큼의 수입을 올리는 나라는 어떨까. 난폭 운전이나 과속은 시켜도 안할 것이다. 자칫 사고라도 나면 좋은 일자리를 잃을 테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런 나라에 살고 있지 않다. 주류 소비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다 모여 마시기를 좋아하니 밤늦은 시각의 승객들은 거의 술에 취해 있다. 높은 흡연률로 많은 택시가 담배 냄새에 절어 있고, 대중 교통은 자리 잡기 전쟁이고, 기사들의 벌이는 최저 생계비를 겨우 넘기는 정도다. (중략)
아침에 일어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기사가 딸린 회사 차를 타고 출근했다가, 그 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회사 임원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택시에 큰 관심이 없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마을 버스와 시내 버스를 갈아타고 시내 빌딩으로 출근해 하루종일 청소를 하고 밤에 집으로 돌아오는 가난한 여성에게도 택시는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하는 사물일 것이다. 택시는 엄청나게 부유하지도,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관련이 깊다. 애매하다.
지금까지 읽어드린 부분은 김영하가 본 택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닌 연옥처럼 ‘애매하다’는 것인데요, 작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이런 애매함이 2013년에 문제가 되었던 택시법 논쟁을 낳았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작가의 시선에서 보자면, 택시는 대중교통이 완벽하면 불황, 대중교통이 실패하면 호황을 누리는데, 2013년 택시법 문제의 진짜 원인은 대중교통의 성공이라는 거죠. 그렇니까 택시의 미래는 대중교통의 미래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수동적이고, 또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라는 성찰을 이끌어 냅니다.
5. 우리가 흔히 이용하는 택시를 두고 이런 식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니 흥미롭네요.
택시 뿐 아니라 이 책에는 김영하 작가가 일상을 바라보는 재밌는 소재가 참 많아요. 예를 들면, 스마트폰, 신문사 식자공, 여행, 유니클로 티셔츠 등 일상에서 우리가 늘 자주 만나는 사물과 인물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에 소설가가 풀어내는 재밌는 이야기가 덧붙여지고, 또 작가만의 깊이 있는 성찰이 더해져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면 손에 내려 놓기 힘들 정도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친구에게 이런 문자 메시지를 보냈어요. “김영하가 쓴 산문은 달다. 아주 기분 좋고 깊은 맛이 나는 단맛이 난다”. 이렇게요.
6. 기분 좋고 깊은 맛이 나는 단맛이 어떤 맛일지 궁금해집니다. (웃음)
제가 그렇게 표현한 것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데요, 이 책의 많은 글이 김영하 작가의 개인적 일상, 그러니까 작가가 부산에 살게 된 이유, 대학 시절 유럽 여행에서 잠깐 마음이 갔던 부다페스트의 여인에 대한 이야기, 가정 방문 영어테잎 세일즈를 하다가 돈을 때일 뻔한 일 등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니까 타자의 삶이라고 할까요, 그런 것을 들여다 보는 재미가 읽는 이를 아주 기분 좋게 해요.
그런데 제가 그것을 또 깊은 맛이 난다고 한 이유는요, 김영하 작가는 말하려는 바를 직접적으로, 단도 직입적으로 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우회적으로, 많은 경로를 둘러서 전합니다. 한 예로 여기에 실린 거의 모든 글에는 김영하 작가가 읽은 책과 본 영화의 내용이 함께 결부되어 있어요. 40대가 된 작가가 부산의 어느 극장에서 <비포 미드나잇>을 보고 영화의 배경이 그리스인 것과 주인공의 직업이 작가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20대에 잠깐 함께 여행을 하다 그리스에서 헤어진 부다페스트의 여인을 떠올리고는 20대는 몸으로 살았고 40대는 머리로 살지만 모두 그 나름대로 좋았다며 인생의 의미를 숙고하는 식이죠.
7.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직접 하지 않는다는 지점이 재밌습니다. 바쁜 현대인들은 우회적으로 돌려 말하는 것을 답답하고 비효율적으로 느끼기 쉬운데요.
그래서 책이 팔리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을 직접적으로 말해야 하고, 말하고 있는 세상은 사실 굉장히 재미없는 세상이에요. 네비게이션 켜 두고 출발지와 목적지만 있는 여행이 재미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무미건조한 효율성만이 지배하는 세상이니까요. 문학이란 것은 바로 그런 흐름에 근본적으로 저항하는 겁니다. 20대는 몸으로 산다는 이야기를 그냥 하는 것보다, 내가 20대 유럽여행 당시 피렌체로 이동하던 중 열차에서 잠깐 본 부다페스트로 간다는 여자를 보기 위해, 피렌체로 도착해서 다시 가방 싸들고 무턱대고 부다페스트행 열차를 타서 그 여자를 다시 만나게 됐다는 식의 이야기는 비록 길고 비효율적인 방식이지만 훨씬 더 설득력 있지 않나요? 우리는 모든 것을 효율성이라는 하나의 가치로만 바라보는 관습에 지배되어 ‘진정성’과 ‘감동’은 놓치고 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김영하 작가가 ‘빈부격차 문제’를 자주 쓰는 것도 그런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영하 작가의 말인데요, “진심을 담아 전하기만 하면 상대에게 전달되리라는 믿음 속에서 살아간다. 안타깝게도 진심은 진심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진심 역시 ‘잘 설계된 우회로’를 통해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그게 이 세상에 아직도 이야기가, 그리고 작가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저는 이 책이 작가의 말대로 아주 잘 설계된 우회로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 <보다>외에 <말하다> <읽다> 3부작이 모두 완간되었습니다. 여러분들게 일독을 권합니다.
( 대구교통방송 라디오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책을 소개하는 코너에 나가고
있습니다. 거기서 소개해드리는 책을 이 곳에도 소개해드릴 생각입니다. 라디오에 나가는 대본 그대로 옮겨
둡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