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꿈들
박기범 지음, 김종숙 그림 / 낮은산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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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임.

 

<그 꿈들>.
이 책은 내용도 아름답지만 무엇보다 두 분 작가의 삶이 놀랍다. 책에 소개된 작가 소개를 그대로 옮겨 본다. 그림을 그린 김종숙 작가, 이야기를 만든 박기범 작가에 대한 소개.

 

 

박기범.
동화 쓰는 사람. 이천삼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할 무렵, 그곳 아이들의 곁이 되고자 인간방패, 평화지킴이로 전쟁터로 들어가 그 전쟁을 함께 겪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로 그곳에서 인연을 맺은 이들과 우정을 나누며 평화를 바라는 일들로 지내었으나, 내전으로 치닫는 상황에 하나둘 소식마저 멀어졌다. 세상에 대한 무력감은 글을 쓰는 일에 대한 자괴감으로 이어졌고, 이천칠년, 한옥 짓는 일을 배우는 목수학교에 들어갔다. 이천십이년, 숭례문 복원공사와 석가탑 해체보수공사 같은 곳에 잡부로 들어가 맨 밑에서 일들을 배운 뒤, 지금은 문화재보수기술자가 되어 일을 하고 있다.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글과그림」 동인...으로 『문제아』, 『미친개』 같은 동화를 썼다.

 

김종숙.
그림 그리는 사람.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그림만 그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림 그리는 것으로 진정의 끝에 닿고자 하며, 붓을 잡으면 고통스러운 대결을 놓지 못한다. 가난하고 굶주리고 눈물겨운 것,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그 극한의 칼날 위를 걸어야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는. 그러하기에 그의 작업을 지켜보는 일은 조마조마하기만 하다. 당신의 붓질 하나하나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를 알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살라 버릴 것만 같은, 몸속 식지 않는 불덩이. 그러나 그 작고 가녀린 몸으로 오징어 덕장에서는 다른 이보다 곱절의 일을 씩씩하게 해내며, 식당 설거지도 마다하지 않고 즐겁게 해 오고 있다. 1965년 속초에서 태어났고, 「글과그림」 동인으로 『미친개』에 그림을 그렸다.

 

두 분 모두 직업과 생업 사이의 거리를 지닌 분들이라는 점이 우선 감동이 된다. 인터뷰에서 박기범 작가는 세상의 조화를 깨고 싶지 않아 목수가 되었고, 문화재 복원일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http://www.aladin.co.kr/author/wauthor_interview.aspx?AuthorSearch=@63071 

 

 

이렇듯 동화작가가 된다는 것은 그냥 작가가 되는 것과는 조금 더 고단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동화작가는 한편의 동화를 개연성있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을 넘어 삶 전체가 고스란히 자신이 그려낸 동화 속 세계에 바쳐지길 요구 받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 헌신과 열정이 이 책의 그림과 글에서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책을 보고(읽는 것이 아닌), 또 작가의 삶을 보고 나는 어떤 세계에 바쳐진 삶인가 생각하게 된다. 하느님과 돈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데, 두 작가의 삶에 비하자면 나는 돈을 예배하며 매일 같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가.. 책에 나온 이야기처럼 공감도, 고통도, 애원도 숫자에는 들어있지 않다. 숫자의 편리함은 공감의 고통과 번거로움을 줄여준다. 그림책 한 장 한 장을 넘기면서 숫자란 그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 돈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호기있게 외쳤던 10살 때의 감각이 되살아 남을 느꼈다.

 

 

그 꿈들

    

 

1.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이번 주는 특이한 책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혹시 진행자님께서는 최근에 그림책을 읽어본 적 있으세요?

 

2.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이라면 자주 읽어주지요.

 

네, 저도 아직 아이가 어려서 그림책을 자주 읽어주는 편입니다만, 그래서인지 그림책이라는 것은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요, 아마 많은 분들이 저처럼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사실 서점에는 성인들을 위한 그림책도 많이 있는데요, 오늘은 특별하게 그림책 한권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출판사 낮은산에서 만들고, 박기범이 쓰고 김종숙이 그린 <그 꿈들>이라는 책입니다.

 

3. 성인을 위한 그림책이라고 하시니까, 언뜻 생각하기로는 만화책도 떠오르구요, 미술에 관한 책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어떤 책인가요?

 

네, 제가 오늘 소개해드릴 <그 꿈들>이라는 책을 처음 만나게 된 계기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이 책을 제주도에 있는 그림책 갤러리 제라진이라는 곳에 방문했다가 소개 받게 되었습니다. 제라진 갤러리는 미술작품을 판매하는 상업 갤러리는 아니구요, 그림책미술관 시민모임이라는 곳에서 운영하는 그림책 문화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제라진갤러리를 방문했을 때는 오늘 소개해드리는 책인 <그 꿈들>에 그려져 있는 김종숙 화가의 원화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잘 아시겠지만 사실 앤소니 브라운이나 로즈메리 웰스와 같은 아이들 그림책은 너무 아름다고 예술성도 뛰어나잖아요? 제라진갤러리는 그래서 이렇게 좋은 그림책에 실려있는 원화를 전시하고, 그림책을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가해 그림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림책 독서회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림책미술관 시민모임에서 읽는 그림책은 단지 어린이들을 위한 책은 아니구요, 어린이들도 읽기에는 별로 무리가 없긴 하지만 내용과 그림이 그보다는 좀더 복잡한 성인들이 읽는 그림책이라 할 수 있어요. 제라진 갤러리에서는 이 밖에도 그림책 창작 워크샵도 진행하구요, 드로잉 수업도 하구요, 작가를 모시고 북콘서트도 진행하기도 합니다.

 

4. 그림책을 읽고 독서모임을 하는 것을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왠지 그림책이라니까 참여하는데 부담이 적을 것 같아서 좋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저도 사실 제라진 갤러리에 방문해 그림책미술관 시민모임이라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그림책 독서모임이라는 것은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요, 제라진 갤러리에 계신 분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정말 괜찮은 모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일단 그림책이면 큰 부담이 되지 않으니까 독서회에 와서 누구라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고전이나 어려운 책을 읽는 모임도 도움이 많이 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지적으로 더 훈련 받은 사람들이 아니라면 모임에 나와서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기에는 한계가 많잖아요? 하지만 그림책은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읽는 것에는 부담이 적지만 책의 그림을 보거나 글을 읽고 느끼는 점은 사람마다 다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저는 이제 일곱 살인 제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줄 때도 새롭게 깨닫는 점이 많은데요, 저는 아이가 그림책에 나오는 이야기와 정보를 이해했는지에 집중하는 반면 아이는 이야기보다는 그림에 훨씬 더 관심이 많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엉망진창 흙>이라는 그림책을 읽어준 적이 있는데요, 저는 흙의 종류가 10만가지가 넘고, 가로세로 1미터 크기의 땅에 300만마리가 넘는 생물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아이가 알게 되는 것이 더가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는 그런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흙에 대해 설명해주는 두더지 옆에 조그맣게 그려진 개구리를 찾느라고 책을 읽어줘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거죠. 하지만 아이는 아빠가 전혀 보지 못하는 것을 배웁니다. 장난스럽게 그려진 개구리를 찾으면서 개구리는 흙에서만 살 수 있다는 것을, 흙이 점점 없어지면 더 이상 개구리도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말이죠. 아이와의 그림책 읽기에서도 어른인 제가 보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보게 되는데요, 이처럼 그림책은 단순해 보여도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책에 실려 있는 그림을 하나 하나 살펴보며 의미를 파악하고, 감상하기 위해서는 보통의 책을 읽는 것보다 훨씬 더 시간이 많이 걸리고 복잡하다고도 할 수 있죠. 오늘 소개해드리는 <그 꿈들>이라는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5. 아, 그렇네요. 그림책에 실려 있는 그림들은 이해를 돕기 위한 단지 참조그림이나 일러스트가 아니라 그것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니까 그 의미를 읽어가는 것이 만만치 않겠네요.

 

네, <그 꿈들>이라는 이 책에 실려 있는 삽화들도 말씀하신 대로 이야기를 돕기 위한 참조그림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 하나의 작품이라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마치 너무 좋은 작품이 많이 전시된 미술관에서는 이 작품을 보다가 저 작품으로 가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죠. 오늘 소개해드리는 <그 꿈들>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두꺼운 그림책입니다. 이 책에서는 전쟁에서 들리지 않는 목소리, 그러니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와 언론의 왜곡에 가려져 잘 들리지 않는 소박하고 힘이 없는 개인들의 삶과 꿈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책의 한 부분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저 멀리, 텔레비전과 신문으로만 소식을 듣는 사람들은 더는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슬픈 마음에 깊이 젖어들지 못했습니다.

-어제 하루에만 백 명도 넘게 죽었다는군.

-시장 한가운데다 로켓포를 쏘았다나 봐요.

-어쩌자고 죄 없는 사람들까지 다 죽게 하는지.

-어차피 이럴 거면 한 번에 다 쏟아 부어야 해. (중략)

 

어느 날은 백 명이었고, 어느 날은 백오십 명이라 했습니다.

어느 날은 공원에서 폭발이 일어났다고 했고, 또 어느 날은 예배당 건물에 포탄이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뉴스에서는 거기까지만 말해 줄 뿐,

죽거나 다치게 된 이들이 간직한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스러져 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

묻혀 버린 한 사람 한 사람의 어젯밤 이야기,

숨이 막힌 한 사람 한 사람의 사랑,

저물어 버린 한 사람 한 사람의 꿈.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것들.

하지만 전쟁을 벌이는 이들은 그 아름다운 것들을 아주 없는 것처럼 무시했습니다.

오로지 사망자 숫자만 헤아릴 뿐. 먼 곳의 사람들은 그 숫자에 무덤덤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번 그 오누이가 나눈 이야기도, 그 노인의 얼굴에 깊게 팬 주름도,

아이를 들쳐 업고 뛰던 아버지의 숨소리도 그 숫자로는 알 수 없었습니다.”.

    

 

6. 숫자에는 영혼이 없죠. 수백명이 죽었다는 것은 수백개의 삶과 꿈이 사라졌다는 것인데, 뉴스를 통해 사라져간 삶과 꿈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기란 어려우니까요.

 

그렇습니다. 이 책을 쓴 박기범 작가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될 무렵, 그곳 아이들의 곁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인간방패로 전쟁터에 들어가 함께 전쟁을 겪었다고 합니다. 인간방패가 되었다는 것은 미국의 이라크 전쟁의 명분에 동의하느냐 못하느냐, 그러니까 이라크 독재자인 후세인 편이냐 미국 편이냐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라크인들도 독재자의 지배가 옳지 않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인데요, 박기범 작가는 독재보다도 어떤 명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전쟁이 더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직접 전쟁을 겪으면서 한 개인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전쟁에는 결코 승자와 패자도 없고 모두가 패자라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이 책에는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너무 많은데요,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택시 기사인 하이달의 꿈은 곧 결혼할 가디르와 조그만 보금자리에서 가디르를 닮은 아기를 낳고, 해 저물녘 티그리스 강변을 가디르와 함께 거니는 것입니다. 소박한 꿈이죠. 또 다른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 전쟁에 참전한 군인인 미국인 스미스 일병입니다. 스미스는 원래 트럭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요, 여자 친구인 메이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고 결혼을 하려 했는데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결혼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여자친구의 아버지는 스미스를 열정도, 용기도 없는 청춘으로 보았다고 해요. 스미스는 그래서 이라크 파병 군인이 되기로 했다고 합니다. 여자친구의 아버지에게 자신이 용기있고 열정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다시 청혼하기 위해서 말이죠.

 

7. 두 명 모두 비슷한 처지네요. 모두 결혼을 하겠다는 소박한 꿈이 있는...

 

네, 나이도 비슷했다고 해요. 어느 날 스미스 일병이 지키고 있는 검문소에서 소동이 일어납니다. 저쪽에서 자동차 수색을 하던 선임병이 그 안에 타고 있던 사람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서로 맞고함을 치고 차 안에 있던 한 젊은 남자가 어떤 손동작을 하기도 하면서요. 스미스 일병은 주변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는 것을 자주 봤기 때문에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젊은 남자로부터 뭔가 위협을 느꼈어요. 그리고 죽고 싶지 않아서, 살아서 여자 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방아쇠를 당겨 총구를 휘갈겼습니다.

 

그런데요, 그 실랑이 벌였던 사람이 바로 택시기사 하이달이었습니다. 이라크에 폭격이 시작되자 한 초등학교에도 폭탄이 떨어져 수 많은 아이들이 팔다리가 잘려 나갔는데요, 하이달은 운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죽어가는 아이들을 병원으로 옮기는 일을 해 왔습니다. 늘 가는 병원에 더 이상 아이를 눕힐 곳이 없자 근처 보건소로 아이들을 싣고 가는 길에 검문소에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아이들의 출혈이 많아 위급한 상황이라 하이달은 너무 급하니까 그냥 지나가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군인들은 무조건 입다물고 기다려라는 거죠.

 

 하이달은 “아이들이 죽어간다”고 외쳤지만, 군인은 “한마디만 더 나불대면 테러범으로 생각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한 사람은 미국인, 한 사람은 이라크인이니까 서로 대화가 잘 될 리가 없죠.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에 하이달의 목소리가 커졌던 겁니다. 울부짖듯 애원을 했으니까요. 거기에 놀라서 스미스 일병이 하이달에게 총을 쏜 겁니다. 트럭기사인 스미스가 택시기사인 하이달을 쏘아죽인 거죠. 청혼을 준비하던 하이달에게 또 다른 청혼을 준비하던 스미스가 말이죠.

 

8. 아, 가슴이 아프네요. 한 사람은 전쟁에서 죽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 때문에, 다른 한 사람은 전쟁에서 죽어가는 아이를 살려야겠다는 간절함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거네요. 정말 전쟁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는 것 같아요.

 

이 책에는 사람들의 꿈이 전쟁에서 사그라드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습니다. 기름통을 배달하지만 축구 선수가 꿈인 한 소년의 무릎에 폭탄의 파편이 박히고, 90세의 노인이 평생 처음 갖게 된 집이 폭격으로 폐허가 됩니다. 아마 청취자분들께서는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안타깝게 느끼시겠지만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을 함께 보신다면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하게 되실 겁니다. 폐허가 된 땅을 쓸고 있는 노인의 뒷모습의 슬픔과 폭격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초조한 모습이 물감을 두껍게 발란 그린 유화 작품으로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박기범 작가는 이 책을 이라크에서 돌아온 후 10년이 지난 후에 썼습니다. 이라크에서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는 이라크의 많은 사람들과 연락이 닿았지만 종전 후에 이라크에서 내전이 발발하면서 대부분과 연락이 끊겼다고 해요. 그래도 마음 따뜻해지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10년 후 스미스가 이라크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람들에게 용서를 빕니다. 임신하고 있던 여자친구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데리고 와서 말이죠. 그리고 스미스가 무릎을 꿇고 있는 동안 스미스의 아이인 빌리와 이라크 아이들은 벌써 친구가 되었구요.

 

9. <그 꿈들>, 이 책을 추천해주시는 이유를 한번 정리해주시죠.

 

네, 이 책은 전쟁에서 우리에게 잘 들리지 않았던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이야기와 그림을 통해서 들려줍니다. 뉴스를 보면서, 수많은 숫자들을 보며 놓치기 쉬웠던 전쟁의 비극과 고통, 한 사람의 꿈에 대해 다시 상상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수십만의 실직자가 있고, 수백명이 바다에 빠져 죽었을 때 거기에는 숫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한 인간의 삶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상상하기 위해서 감수성이 필요합니다. 뉴스를 보면서는 분노할 수 있지만 감수성이 생기지는 않잖아요. 이 책은 아름다운 그림들과 함께 그런 감수성을 일깨워줍니다. 그런 점에서 그림을 전혀 보여드리지 못한 오늘의 책 소개는 반쪽짜리 소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림책은 한번만 보는 책이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사다주면 읽었던 그림책을 수십번을 읽잖아요? 읽을 책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읽을 때마다, 그림을 보면서 전에는 느끼지 못했고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다시 새롭게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동영상과 문자가 줄 수 없는 메시지를 움직이지 않는 한 장의 그림이 우리에게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해드리는 <그 꿈들> 뿐 아니라 더 많은 그림책을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어떤 분이 예전에는 문맹이 문제였지만 앞으로는 점점 더 이미지를 읽어내지 못하는 이미지맹이 문제가 될 거라고 한 말이 기억납니다. 그림책 읽기로 이미지맹에서 탈출을 시도해보시길 추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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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자 대구신문에 나가는 글. 예전에 페북에다 써 놓은 글을 가다듬어 신문사에 보냈는데, 오늘 다시 읽어 보니 신문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글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가능성은 적겠지만 부디 신문에 가득 찬 '배신'이라는 말과의 대비 속에서 '고흐의 사랑'을 읽어 주길 빌 뿐이다. 그리고 지난 주는 고난주간이었다는 것도, 이제 오순절 기간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도 누군가는 생각해주며 읽어주길 빌 뿐이다. 극렬한 사랑은 부작용을 낳는다. 그리고 그것이 삶인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것, 소동을 일으키고, 창피를 당하고, 망신을 당하고, 사람을 긴장하게 했다가 의기 소침하게 만드는 것이니까. 사랑은 아름다운 말이지만, 사랑은 항상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지 않는다. 그러나 삶의 의미는 사랑으로 어떤 결과를 얻었느냐가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했는가에 있지 않을까. 따뜻한 관심과 열정적 사랑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생의 이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아닌 내가, 아무 것도 아닌 이유는 쉽게 사랑을 포기해버리는 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 고흐가 가난했지만 가난하지만은 않았던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모든 순간, 그것이 무엇이든지 늘 강렬하게 사랑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규칙 위반이다."




반 고흐의 세계

김연수는 ‘하루키 월드’에서 깊이 사랑하는 것은 규칙위반이라고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는 거의 항상 주인공이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면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떠나게 되고, 결국 홀로 남은 사람의 마음에도 깊은 상처가 남는다. 얼마 전 반 고흐의 편지글을 읽으면서 발견한 것은 하루키와 달리 ‘반 고흐 월드’에서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죄가 된다는 것이었다. 고흐도 하루키의 생각처럼, 깊은 사랑은 결국 깊은 상처를 남기는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여동생 윌에게 남긴 편지에서 동생에게 ‘사랑할 것’을 권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래, 차라리 바보짓을 몇 번이든 하렴.” 이뿐 만 아니다. 고흐는 사람들이 공부에 집중하거나 종교나 이념에 빠지게 된 것은 ‘연애사건’, 즉 ‘사랑에 빠지지 못해서’라고 한다. 따라서 ‘반 고흐 월드’에서는 제대로 된 사랑을 하는 것이야말로 많은 공부를 하거나 사회주의에 심취하는 것보다 올바른 일이다. 

“대개는 그런 사건으로 창피와 망신만 당할 뿐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한 것이 전적으로 옳았다고 생각한다”.

고흐가 극렬주의자였다면 바로 이런 면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사랑에 있어서 절제가 필요하다거나 지나치게 열정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하루키의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남자들처럼 ‘세련된’ 사랑은 없다. 고흐는 주변 사람들을 지치고 힘들 정도로 사랑했다. 그건 사촌인 케이에 대한 사랑에서나 매춘부였던 시엔에 대한 사랑에서도 마찬가지고, 동생인 테오에 대한 사랑에서도 그렇다.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고흐가 목숨을 스스로 끊게 된 이유는 테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흐가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동생 테오에게 더 이상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편지 곳곳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정신 착란으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어 동생에게 진 빚을 갚을 길이 없게 된 고흐가 동생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죽음 외에는 없었다.

어쩌면 정신 착란 증세도 깊은 사랑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고흐는 동생에게 신세를 갚겠다는 마음으로 ‘예술’로 끝까지 자기를 내몰았다. 테오가 정신 착란 증세가 심각해져 생레미 요양원에 입원해 있는 고흐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글귀가 나온다. 

“그 그림들은 형이 자연과 살아 있는 생명체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거야. 형이 생명체 안에 본래부터 내재한다고 강렬하게 느끼는 것들. 이런 그림을 그리기 위해 형은?모든 것을 극한까지 몰고가는 모험을 감수했을 테니 머리가 얼마나 힘들었겠어. 혼란을 겪은 것도 무리가 아니야”. 

고흐는 동생도, 예술도, 연인도, 자연도 극한까지 사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도, 건강도, 돈도, 심지어는 동생까지 모든 것을 잃었다. 오로지 작품만 남았다.

하루키 월드에서 보자면 이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짓임이 틀림 없다. 하루키는 새벽에 늘 같은 시각에 일어나 원고를 쓰고, 오후에는 취미로 번역을 하고, 마라톤을 완주하고, 이 나라에서는 선인세로 수억원을 받으며, 깊이 사랑할 가능성이 있는 자녀도 애초부터 낳지 않아 부유하고, 건강하고, 고흐에 비하자면 이렇게까지나 오래 살고 있다. 물론 고흐와 비교해 그것을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두 세계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차이는 내가 보기에 ‘깊은 사랑’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어느 글에서 나는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을 읽고 하루키의 지혜가 내게 없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무 깊이 사랑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썼다. 누군가에 대한 사랑이 그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고흐의 서간집을 읽으면서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세상에 대한 경험도 부족한 주제에 사랑까지 깊이 하지 않겠다는 것은 사실상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한다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것, 소동을 일으키고, 창피를 당하고, 망신을 당하고, 사람을 긴장하게 했다가 의기 소침하게 만드는 것이니까. 사랑은 아름다운 말이지만, 사랑은 항상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지 않는다. 그러나 삶의 의미는 사랑으로 어떤 결과를 얻었느냐가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했는가에 있지 않을까. 따뜻한 관심과 열정적 사랑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생의 이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아닌 내가, 아무 것도 아닌 이유는 쉽게 사랑을 포기해버리는 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 고흐가 가난했지만 가난하지만은 않았던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모든 순간, 그것이 무엇이든지 늘 강렬하게 사랑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규칙 위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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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관한 일기 (5) - 지방샘

                             성공과 실패의 표상으로서의 비만 



나는 집에서 버스로 25분 정도는 가야 하는 중학교에 배정받아 다녔다. 내가 살고 있는 집 가까이에는 중학교가 없었기 때문인데, 버스는 언제나 만원이었고, 비가 오는 날은 초만원이 되었다. 버스에서 내려 다시 10분 정도를 걸으면 학교 정문이 보였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40년이나 되어 낡디 낡았을 뿐 아니라 곧 이전을 앞두고 있어 관리가 전혀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아이들은 아주 거칠었다. 입학 첫 날부터 각 국민학교에서 온 주먹질 좀 한다는 아이들이 겁을 줬고, 누가 진정한 일진인지를 두고 싸움을 벌였다. '쓰바리'란 말은 중학교에 가서 처음 들었다. 상급생들이 신입생들에게 버스 승차권이라던가 잔돈 따위를 뺏아가는 '쓰바리'를 쳤다. 심지어 나는 중학교에 배정 후 입학 전에 치른 반 배치고사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다. 어머니께 야단을 하도 맞은 탓에 지금도 정확히 등수를 기억한다. 학급 9등, 전교 81등. 600명 신입생 중에서 10%에도 들지 못한다는 것을 어머니는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셨다. 학교까지 오고 가고, 일진 아이들에게 치이고, 선배들을 피해다니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는데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성적 때문에 학교를 마치면 셔틀 버스를 타고 다시 학교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종합반 학원을 다녀야 했다. 셔틀 버스에서 아이들은 어느 학교의 누가 더 주먹이 쎈지, 어느 만화가 볼만한지, 어느 오락실이 좋은지를 이야기했다. 자위행위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것도 그 셔틀 버스 안이었다. 다른 학교에 다니던 한 녀석은 자위 행위를 소설가적 감수성으로 이야기하고는 했다. 어떤 여자를 생각하는지, 사정이 될 때의 느낌은 어떤 것인지 떠들어 대는 녀석 앞에서 나는 그저 애송이에 불과했다. 성적이나 학원 수업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해 본 기억이 없다. 그 때 한창 드라마 <마지막 승부>가 인기를 끌던 때라 이따금씩 주말에 만나 농구를 하자고 약속하는 정도가 셔틀 버스 토크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건전한 주제였다. 


중학교 시절은 지금 생각해봐도 모든 것이 어둡기만 하다. 이제 제법 근육이 붙기 시작하는 사춘기 남자아이들의 힘의 각축전으로 학교는 홉스적 자연상태라 늘 나는 뭔가 위축되어 있었고, 국민학교 때에 비해 성적도 떨어져 나는 선생님께나 다른 아이들에게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중학교를 입학할 때만 하더라도 72Kg 정도였던 몸무게가 2학년 때는 100Kg까지 나갔다. 학교에서의 일과가 끝나고 곧장 학원으로 가면 저녁은 언제나 라면이었다. 밤 10시에 집에 들어가면 늘 야식을 먹었다. 아버지는 다정한 분이시라 밤 10시에 가족이 함께 둘러 앉아 드라마를 보며 치킨을 먹고, 빵을 먹고, 과일을 먹는 것을 좋아하셨다. 공부 부담 때문에 운동할 겨를도 없었다. 성적은 꾸준히 올라 어느 덧 1, 2등을 다투게 되었지만 나도 모르게 살은 어마어마하게 쪄 있었다. 살이 쪘지만 사실 불편한 것은 없었다. 금화주머니와 그림자를 바꾼 사내처럼 나도 성적과 몸무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심지어 당시에는 나 자신이 '비만'이라는 인식조차 없었다. 덩치가 좋아진 것일 뿐이었고 그것이 나의 학교 생활을 점점 더 편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14살 남자 아이들은 단순하다. 덩치가 크다는 것은 곧 강함을 의미했다. 어떤 세계에서는 큰 차가 권위를 상징하고, 큰 집이 부를 상징하고, 큰 것이 곧 권력을 상징하는 것처럼 말이다. 덩치가 커지자 학교에서 눈치 볼 일이 줄어들었다. 학교에서 꽤나 주먹을 쓴다고 하던 아이들까지도 나를 견제할 정도가 되었다. 나 역시 내 힘을 과시하고 싶었다. 나보다 덩치가 작았던 아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게 굴면 가차 없이 두들겨 팼다. 나는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불량 학생의 표상이던 교내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거나, 힘이 약한 아이들에게 쓰바리를 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학교의 일진들이 공유하는 기호를 하나씩 갖기 시작했다. 빈폴 코트, 노티카 점퍼, 트래벌 폭스 야구화, 블랙앤화이트 바지 등을 입고선 마음에 들지 않는 덩치 작은 녀석 하나 두들겨 패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 태도까지. 게다가 공부도 제법 했기 때문에 3학년이 되자 나는 언제나 학급의 중심에 있게 되었다. 신입생 때 가졌던 두려움은 모두 사라졌다. 성적은 올랐고, 덩치가 커져서 어느 누구도 나를 괴롭힐 수 없고, 최고학년이 되어 쓰바리를 당할 걱정도 하지 않았다. 힘이 생기자 학교 생활은 편해졌다. 그 때 나는 내가 느끼는 자신감의 원천을 지금처럼 제대로 규명해낼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다행스럽게 생각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또렷이 기억한다. 어머니 외에는 아무도 내 성적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분명 성적은 아니었다. 나는 내가 남들보다 상당히 덩치가 크다는 것, 거기에 안도했다. 


어머니도 내가 살이 찌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셨다. 어머니는 나더러 뚱뚱하다는 친척들에게 언제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국민학교 때도 살이 많이 쪘었는데 그게 다 키로 가더라구요". 살이 키로 갈리 없는데도, 어머니는 이번에도 내 살이 키로 갈 것이라 믿고 계셨다. 그래서 튼 살이 생기고, 몸에 맞는 옷이 점점 줄어들어도 어머니는 개의치 않으셨다. 오히려 어머니의 걱정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내 몸 곳곳에 여드름처럼 올라오는 붉은 뾰루지들이었다. 사춘기 시절에는 누구나 얼굴에 나는 여드름으로 고민하지만, 나는 뾰루지가 팔뚝에 집중적으로 생기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주말 저녁이면 나를 무릎에 눕혀 놓고선 팔뚝에 난 뾰루지의 고름을 짜냈다. 뾰루지는 아주 작았기 때문에 고름의 양은 많지 않았지만 양 팔의 팔뚝에 작은 뾰루지가 수백개나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단순한 여드름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고, 심각한 피부병일 수 있겠다며 걱정하셨다. 며칠 후 내 엄지 손톱의 물집을 치료했던 피부과로 갔다. 오랜만에 나를 본 의사는 내 팔에 난 뾰루지를 보기도 전에 이렇게 물었다. "왜 이렇게 살이 쪘어?". 어머니는 대답 대신 내 팔뚝에 난 뾰루지를 의사에게 보이며 이게 왜 생기는 거냐고 물었다. 의사는 이번에도 "당장 살을 빼세요"라며 이번에도 내 살을 문제 삼았다. 어머니는 "살이 요새 좀 쪘는데 다 키로 갈거에요"라고 하신 후 내 팔에 난 뾰루지에 대해서 다시 물었지만 의사는 내 팔에 난 뾰루지가 뭔지 정확히 설명해주지 않았고, 별 다른 치료도 없었다. 그냥 여드름 같은 거니까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고만 했다. 진료실을 나서려 하자 의사는 등 뒤에서 다시 말했다. "지금 팔이 중요한 게 아냐. 당장 살을 빼야 해요!".


의사의 말과 달리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내 팔뚝의 뾰루지는 없어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한동안 뾰루지 짜내기에 집중하셨지만, 얼마 안 가 그만두셨다. 내 피부가 닭살이라서 그렇다고 어머니는 자체 결론을 냈다. 사실 별로 불편한 것이 없었다. 가렵거나 아프지 않고, 일부러 짜지 않으면 고름이 나와 옷을 더렵히는 일도 없었다. 민소매만 입지 않으면 남들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피부 문제를 해결도 못하는 실력 없는 피부과 의사 주제에 나더러 왜 자꾸 살을 빼라는 건지 짜증만 났다. 살은 나의 힘이었기 때문에 살을 빼라는 것은 힘을 버려라는 것과 똑같은 말이었다. 어머니도 그 의사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살은 키로 곧 갈 것이기에, 또 의사가 말한대로 뾰루지들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살을 빼라는 말을 진지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확실히 그 의사는 돌팔이였다. 내 팔뚝에 난 수백개의 뾰루지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대로다. 20년이 넘도록 전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만약 여드름이라면 나는 지금까지도 2차 성징기를 겪고 있는 셈이 되는 거다.


내 팔뚝의 뾰루지를 여드름이 아닌 다른 관점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대학 3학년 때이다. 교회에서 친하게 지냈던 선배 둘과 함께 목욕탕에 갔는데 공교롭게 두 선배에게도 팔뚝 뾰루지가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같은 대학에 다닌다는 것, 같은 교회에 다닌다는 것, 같은 성가대에서 노래한다는 것, 팔뚝에 같은 뾰루지가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셋 다 뚱뚱하다는 것. 같은 대학, 같은 교회, 같은 성가대라고 해서 같은 뾰루지가 있을 가능성보다는 우리 모두가 뚱뚱하다는 것이 같은 뾰루지의 원인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생각하고 나는 그날부터 생각날 때마다 뚱뚱한 사람들의 팔뚝을 관찰했다. 뚱뚱한 사람들은 뚱뚱하기 때문에 민소매 티셔츠를 거의 입고 다니지 않아 일부러 티셔츠의 소매를 들춰보지 않는 한 팔뚝에 뾰루지가 있는지를 확인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었다. 의심스러우면 모른 척 좀 더 가까이 가서 보기도 했다. 실례가 되지 않는 사이라면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이런 뾰루지가 주로 뚱뚱한 남자들에게 많이 발견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께 오랜만에 다시 한번 뾰루지를 짜달라고 했다. 그러고보니 짜낸 것은 고름과는 확실히 달랐다. 고름을 짜내면 피가 섞여 나오지만 내 팔뚝의 뾰루지에서는 피가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고름처럼 보이는 노란 것은 끈적한 액체가 아니라 오히려 작은 알갱이 같았다. 나는 친구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생물학과에 다니는 동아리 후배에게 '노란 알갱이'의 성분이 무엇인지를 알아봐달라 부탁했다. 다음 날 문자 메시지가 왔다. "형 어제 주신거요. 그거 지방인데요".


지방이라고? 그러면 내 몸에 과잉 축적된 지방이 팔뚝 지방샘으로 분비되는 것인가? 그때 의사가 살을 빼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이었나? 여드름이 아니라 지방샘인가? 몸에 지방을 더 이상 저장할 곳이 없어서 뚱뚱한 사람들만이 지니고 있는 새로운 배출 기관인건가? 물론 얼마 안가 이런 생각이 조금도 신체애 대한 완전한 무지에서 나온 공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 팔뚝의 뾰루지가 '팔뚝 여드름' 증상의 하나이고, 팔뚝 모공이 각질로 인해 막히면서 생기게 된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실제와는 정반대로 추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팔뚝의 뾰루지는 지방을 배출하는 지방샘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반대로 정상적인 경우라면 지방샘에서 지방이 배출되어야 하는데 각질과 노폐물로 지방샘이 막혀 지방이 나가지 못해 생긴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과는 다르게 나는 내 팔뚝 뾰루지를 볼 때마다 나 자신이 지방으로 꽉 차 있다는 것을 다시 인지하게 된다. 그러니까 내게 팔뚝 여드름은 모공의 고장이 아니라 지방이 꽉 차 있음을 드러내는 문학적인 상징 같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항상 모든 것을 거꾸로 이해하며 지내왔다. 12살 어린이일 때는 살이 키가 된다고 믿었고, 14살 까까머리 중학생일 때는 살이 찌는 것을 문제가 아니라 자랑으로 믿었고, 23살 대학생 때는 팔뚝 여드름을 보며 지방이 너무 많이 분출되고 있다고 믿었고, 최근까지 나는 고도비만이면서 동시에 건강할 수 있다고, 수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믿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이 순간도 사실과는 전혀 다르게, 또 어떤 것을 완전히 거꾸로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내 몸의 변화와 내가 하는 작은 습관 조차도 알지 못하면서 모두 아는 양 여기에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두웠던 중학교 시절에 성적을 올리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살이 쪘고, 다른 한편 힘을 갖기 위해 일부러 살을 찌웠다. 살은 성적 상승의 결과였고, 작은 아이들을 굴복하게 만들었으니까. 오래동안 살을 빼지 못했던 것은 '살'은 최소한 나 자신에게만큼은 승리의 표상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패배와 무책임과 낮은 자존감의 표상이다. 의학에서나 팔뚝 여드름이나 비만은 단정적으로 문제로 규정할 수 있겠지만, 실제에서는 팔뚝 여드름 하나 조차 앞서 내가 문학적 상징으로 이해한 것처럼 의미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중학교 때 아이들을 두들겨 팬 것에 대한 대가는 지금 충분히 치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큰 덩치로 지금 나는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3월 29일.

27일이 생일이었다. 생일에는 일을 했다. 28일에 처형이 생일축하를 해주셨다. 나를 위한 케잌을 사기 위해 버스를 타고 2시간이나 시간을 쓰셨기 때문에 사양할 수가 없어서 조금 먹기로 했다. 그런데 너무 맛있었다. 케잌이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 2시간을 쓸만큼 맛있는 케잌이었기 때문에 유혹을 이길 수가 없었다. 오늘은 아이와 집근처 커피샵에 갔다. 아이가 배 고파해 커피샵에서 파는 피자를 사줬다. 아이가 졸라대는 통에 몇 조각을 먹었다. 다이어트는 정성을 거절하고, 남은 음식은 버릴 수 있는 자만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새삼 든다. 정말 나 자신이 먹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나는 지금 케잌과 피자를 먹은 나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이어트는 음식만이 아니라 예의와 경제 관념과도 거리를 둘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나는 아직 그럴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내가 먹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먹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던 거다. 하지만 정말 맛있었다. 케잌도, 피자도. 내일은 어떤 어쩔 수 없는 일이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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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워 하는 아이를 부끄러워 하는 아


 내 아이는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나도 인사를 잘 하지 않고, 예쁜 중학생들이 재잘대며 인사를 건네도 아빠 옷자락을 붙잡고 뒤로 숨어 버린다. 아이가 세 살일 때 아이 엄마는 미국에 가 있었다. 혼자서 아이를 보는 일이 지루하게 느껴져서 문화센터에서 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에 등록했던 적이 있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둘러 앉아서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노래도 부르고 율동도 따라하는 식의 프로그램이었는데, 아이는 따라하기는커녕 언제나 멀뚱히 서서 지켜보기만 했다. 마칠 때면 앞으로 나가 선생님과 포옹을 하고 작은 과자를 받아와야 했는데 아이는 과자는 먹고 싶었지만 인사를 하고 싶어하지는 않았다. 선생님은 내게 손짓을 하며 아이와 함께 나오라고 했다. 엄마들 중에 아빠는 나 혼자 뿐이었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자리에 일어나서 과자를 받아오는 것이 뭔가 모르게 부담스러웠다. 아이가 부끄러움이 많아 다른 아이들은 다하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도 부끄럽고, 그래서 과자를 받으러 아이와 함께 나가야 한다는 것도 부끄러웠다. 그리고 나서는 그 어린이 프로그램에 나가는 것을 그만두고 말았다. 


 아이의 부끄러움은 지금도 여전하다. 얼마 전 유치원에서 아이 학급만의 작은 발표회가 있었다. 이번에도 아이는 율동에 거의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노래도 따라 부르는냥 마는냥 했고, 율동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관객인 것처럼 친구들의 율동을 구경하는 듯 했다. 아이는 무대 위에서 최대한 주목 받고 싶어하지 않으려 했지만 사실 그 때문에 가장 도드라졌다. 발표회 내내 마음이 조급해졌다. 언제 이 무대가 끝날까. 어떻게 아이의 부끄러움을 당장 뜯어고칠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아이 엄마에게 했더니 내게 “당신도 부끄러움 많이 탔다며?”라고 되물어왔다. 하긴 나도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였다. 유치원에서 각자 그린 그림을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 앞에서 소개하는 일이 있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그 때 내 그림을 보고 다른 아이들이 웃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내가 그린 그림을 내가 보더라도 ‘엄마의 기준’에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런 내게 항상 “지나치게 내성적”이라며, 그 당시 한창 유행하던 웅변학원에 등록했다. “이 연사 소리 높여 외칩니다!”, 목소리 높여 주장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웅변대회에서 받았던 트로피만큼은 또렷이 기억난다. 아이 엄마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고 했다. 유치원 학예회 발표 때 사회를 맡았는데, 학예회가 시작되자마자 얼어붙어 그만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유치원 원장님은 얼마나 황당했겠냐고, 정도가 다를 뿐이지 누구나 다 그런 시기를 겪는다고 했다.


 게오르그 짐멜이라는 사회학자는 <부끄러움의 심리학에 대해서>에서 부끄러움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 의해 부각된 자아가 자신의 이상적인 자아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고 한다. 현실의 나와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나 사이에는 간극이 있는데, 그 간극을 누군가가 바라보게 되면 부끄러움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문화센터에서 느꼈던 부끄러움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현실의 나는 ‘문화센터에 데려오는 육아하는 아빠’이지만 문화센터에서 엄마들과 둘러 앉아 있으며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나는 ‘직장에서 일하는 아빠’였던 것이다. 나는 거기에 있는 많은 엄마들 사이에서 ‘일하러 가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보는 아빠’로 나 자신이 부각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아이가 세 살 때인 당시만 하더라도 아빠가 휴직을 해서 아이를 문화센터에 데리고 나오는 일은 그렇게 일반적이지는 않았으니까.. 그런 상황 속에서는 나는 내가 육아하는 남자라는 사실 자체가 낯설게 느껴졌던 것이다. 지금은 물론 내가 ‘육아하는 아빠’를 부끄럽게 여겼다는 사실을 부끄러워 하고 있지만 말이다.


 아이 엄마와 내가 어릴 적에 겪은 경험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아이 엄마는 ‘무대 위에 선 자신’이 낯설었고, 나는 ‘내 그림을 다른 사람에게 발표하는 자신’이 낯설었던 것이다. 아이의 부끄러움도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세상에 처음으로 내 던져진 아이에게는 아마도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할 것이다. 인사를 하지 않고 뒤로 숨어 버리는 것은 가끔 보는 이웃도 낯설고, 이웃과 인사를 주고 받는 자기 자신도 낯설기 때문이지 않을까? 무대 위에서 몸을 꼬며 지켜보기만 하는 아이는 사람들 앞에서 율동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자기 자신이 낯설게 여겨졌던 것은 아닐까? 


 솔직히 말해 나는 그동안 아이에게 부끄러움이 많은 것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인사를 시키려 등을 떠밀고, 노래를 부르게 하려고 다그치고, 율동을 따라 시키려고 혼을 내보기도 했다. 나는 왜 아이에게 억지로 인사를 시키고, 노래를 부르게 하고, 율동을 시켰던 것일까? ‘인사를 잘 하는 아이의 아빠’라는 이상 속의 내가 ‘인사를 하지 않는 아이의 아빠’라는 현실 속의 나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고 거기에서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불필요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이가 아니다. 바로 나였던 것이다.


 내가 ‘육아하는 아빠’라는 낯선 나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인사를 하지 않는 아이의 아빠’라는 낯선 나와 익숙해지기 위해서 ‘아빠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아이에게도 ‘웅변학원’보다는 아이의 시간이 필요하다. 다그친다고 몸이 빨리 자라나지 않는 것처럼 마음도 빨리 자라진 않는다. 아이는 오직 아이의 시간에 자란다. 이청준은 “소설이란 기껏해야 한 사람이 끝없이 감당해내는 '헤맴'을 적는 일”이라고 썼는데, 육아야말로 아이가 처음 만나는 이 낯선 세상에서 끝없이 감당해내는 ‘헤맴’을 잘 견뎌내도록 응원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낯선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고, 아빠도 함께 있다고 말이다.



자책육아, 부끄러움, 짐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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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 금지 - 재미있는 게 이기는 거다!
놀공발전소 엮음 / 이야기나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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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이번 주 교통방송에서는 놀공발전소의 <노력금지>를 소개했다. 이 책이 지닌 다채로움과 놀공이 만든 게임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설명했다는 자신이 없다. 게다가 오늘은 내 코너를 마친 후 특집 방송이 있어 13분 내에 소개를 마쳐야 했다. 지난 12월에 플레이어스 캠프에서 피터공을 만나 뵌 적이 있는데, 나보다 더 무섭게 생기셔서 다가가기 힘들었지만 몇분의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피터공이 직접 소개하는 게임과 놀공발전소에 대해서 들을 수 있는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그 때 들었던 내용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정확한 멘션은 기억나지 않지만, 게임은 가상적이지만 게임의 참가자들이 느끼는 경험과 감정은 결코 가상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가상현실을 체험한다고 하더라도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나 자신은 결코 가상적이지 않다는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나는 그 때 가상현실에서의 체험을 실제현실에서의 체험에 비해 인식론적으로 더 불확실하고, 낮은 질과 등급을 지닌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어왔다는 것을 피터공과 대화하며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예술-경험 자체가 본질적으로 '가상성'과 불가분하다는 것은 당연한 것임에도 유독 게임에 대해서만큼은 그 가상성을 어떤 혐의를 가진 것으로 의심하고 경계하고 있었다. 내가 별로 게임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도 아마 그런 오해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흔한 스타크래프트 한번 한 적이 없고, 화투나 카드놀이, 장기, 바둑, 모든 종류의 보드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놀이를 굳이 들자면 그냥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이 거의 유일했다고 할 수 있다. 왜 그랬을까. 돌이켜보건대 나는 가상의 갈등에 참여하면서 내가 갈등으로부터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 느끼는 그 결코 '가상적이지는 않는 기분과 느낌'을 용납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실제 현실에서도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은데 왜 가상현실에서까지 그런 경험을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었던 거다. 가상의 갈등에서 진 것은 내가 바둑판에 둔 흰돌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것을 견디기 힘들었다.

 

더하여, <노력금지>를 이번에 소개하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된 것도 있다. 놀공이 하는 일, 더 본질적으로 게임이라는 것이 현상학적 환원과 유사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현상학은 규정하기 어려운 분야지만, 내 식으로 이해하자면 '보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후설과 하이데거는 모두 사태 그 자체로 가서 사태를 직시하면서 보이는 것을 기술하려고 했다. 즉 관찰자가 아니라 세계 내에 존재하는 참가자로서 말이다. 놀공이 만드는 게임은 그런 의미에서 현상학적이다. 게임 참가자들이 사태의 방관자나 관찰자가 아니라 사태 자체에 들어가도록 게임을 고안하고, 어떤 사태를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고 낯설게 볼 수 있도록 한다. 그러니까 놀공클래식의 경우, 우리가 고전에 대해서 갖고 있는 선입견에 대해서 판단 중지하고, 고전에 대해 누군가로부터 듣는 수준이 아니라 게임이라는 '틀'에서 직접 체험하게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특정 고전을 다른 방식으로 보도록 만들고, 게임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 예를 들면 교보문고 강남점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이해하도록 만들고, 심지어 게임에 참여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다르게 보도록 만든다. 놀공이 유니세프와 협력해서 만드는 교육 게임이나 책에 소개된 어느 그룹에서 진행된 창의성과 관련된 게임도 기존의 구호활동, 창의성 자체를 게임을 통해 새롭게 보고 재정의하도록 유도하는데 이런 과정은 '현상학적인 것' 그 자체이다. 

 

현상학 이야기가 나왔으니 더 이어가자면, 하이데거는 '보는 방법'을 배우고자 오랜 시간을 들여야만 했다고 한다. 세잔 역시 생빅투아르산과 사과를 끝도 없이 그렸던 것도 보는 방법에 대한 탐구였다고 할 수 있다. 세잔을 사랑했던 피카소는 세잔이 이룩한 성과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보는 방법을 개척해 나갔다. 즉 그 방법은 '모방'이었다. 피카소는 습작으로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수없이 모방했는데 이것은 단지 테크닉 때문이 아니라 '다른 나'가 되어 보는 연습이었다. 다른 존재가 되어 대상을 바라보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의 반복을 통해 피카소는 자아를 연성화시키고자 했다. 쉽게 말해 모방은 자아를 '말랑말랑'하게 만든다. 창의성, 새롭게 보기는 이 말랑말랑한 자아라야 가능하다. 딱딱한, 경화된 자아의 시선은 일상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는 가능성에 닫혀 있다. 무엇이든지 '-되기'를 원했던  피카소가 최종적으로 모방하고 싶었던 것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자유분방하고 언제든지 다른 나자신이 되고,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편견이 없다. 어쩌면 놀공은 놀라운 현상학적 직관으로 자신들이 풀어야 하는 문제, 고전에 대해서, 학습에 대해서, 창의성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새로운 경험을 담은 게임을 고안하고, 게임 참가자들은 게임 속에서 피카소처럼 '다른 나'가 되는 경험으로 자아를 연성화시키고 사태를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된다. 어쩌면 나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토록 자아가 경직되고 굳어있고, 현상학 연구도 포기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몸이 안좋아져서 읽으면서 든 생각, 다이어트도 '노력금지'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것. 공부보다 살을 빼기 위한 노력의 총량이 더 많았던 것이 그동안 내 삶이었다. 놀듯이 공부하는 것처럼 놀듯이 다이어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놀공발전소를 따라 놀듯이 다이어트하는 놀다이체육관을 만들어보고 싶다. 피터공은 러닝머신을 탈까?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그 기계를 '노력금지'를 세상에 외치는 놀공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궁금해진다.

 

 

노력금지

재미있는 게 이기는 거다!

 

1.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이번 주에는 출판사 이야기나무에서 만들고, 놀공발전소에서 만든 <노력금지>라는 책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특이하게도 이 책의 저자는 한 사람이 아닙니다. 놀공발전소라는 회사의 구성원들이 함께 쓴 책인데요, 사실 이 책이 특이한 점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노력금지>라는 책의 제목도 독특하고, 책의 구성도 독특하고요, 주제도 독특합니다. 그리고 책을 쓴 이 회사 구성원의 이름도 독특하고, 놀공발전소라는 회사가 하는 일도 독특합니다. 정말 모든 것이 독특한 책을 오늘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2. 그렇게 모든 것이 독특할 수 있나요? 어떤 책일지 궁금해집니다. 먼저 책의 저자가 놀공발전소라고 하셨는데요 어떤 곳인가요? 꼭 동아리 이름 같아요.

 

놀공발전소는 ‘놀공’으로 부르기도 하는데요, 한마디로 말하면 게임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게임이라고 하면 아마 많은 분들이 컴퓨터 게임이나 보드게임 같은 것을 떠올리실텐데요, 이 회사는 좀 다른 종류의 게임을 만듭니다. 사람들이 직접 움직이며 체험할 수 있는 빅게임을 만드는데요, 예능 프로그램 중에 “러닝맨”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죠? 거기에서 출연자들이 미션을 수행하고, 추격전을 펼치는 것을 생각해보시면 이해가 쉬우실 겁니다. 놀공발전소는 이렇게 게임 참가자들이 말을 움직이거나 캐릭터를 손가락으로 조작하는 게임과는 달리 참가자들이 직접 카드가 되고, 캐릭터가 되는 게임을 만드는 회사라고 소개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게임을 만드는 회사라는 설명만으로는 놀공발전소를 제대로 소개했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놀공에서는 게임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합니다. “삶의 반경과 생각의 깊이가 게임을 통해 확장되도록” 만들겠다는 거지요. 그래서 이 회사의 이름이 놀이발전소가 아닙니다. 놀이와 공부의 첫 글자가 합쳐진 ‘놀공발전소’죠. ‘놀 듯이 공부하자!’라는 뜻을 품고 있는 회사인 겁니다. 그래서 이 회사는 게임을 만드는 동시에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죠.

 

3. 아, 놀공발전소가 그런 뜻이었군요. 놀 듯이 공부하고, 공부하듯이 논다.

 

이 책의 제목 <노력금지>, 부제인 “재미있는 게 이기는 거다!” 라는 말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노력금지라는 말은 놀공을 창립한 피터공의 좌우명이라고 해요. 피터공은 미국 뉴욕에서 대학을 마치고 19년 동안 생활하면서 ‘Dinner Dash'라는 성공한 게임을 만든 게임회사의 CEO였습니다. 피터공은 게임회사를 세우기 전에 타임지에서도 일을 했고, 제약회사에서도 있었는데 그 때 “내가 진정으로 즐거운 일이 아니라면 노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이렇게 말하면 꼭 해야 할 일 중에 꼭 즐겁기만 한 일이 아닌 것도 있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피터공의 말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피터공과 놀공발전소는 하기 싫지만 어떻게 하면 우리가 꼭 해야 할 일들을 ’게임‘을 활용해서 즐기면서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겁니다.

공부도 바로 그런 거죠? 꼭 해야 하지만 하기 싫죠. 사실 학창시절에 공부 참 하기 싫잖아요. 그래도 엉덩이에 진물이 날 정도로 앉아서, 졸리면 허벅지를 연필로 찔러가면서 공부했던 기억이 누구나 있죠? 피터공은 공부도 게임을 이용하면 전혀 다르게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게임의 문법을 이용하면 지루한 공부도 재미있게, 그리고 더 낫게 공부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책에서 피터공은 게임을 “플레이어가 규칙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갈등에 참여하고 그 과정에서 측정 가능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시스템”이라고 규정하는데요, 어떤 게임이라도 해 보셨던 분은 다 아시겠지만 이 게임 속의 갈등은 분명히 현실이 아니고 가상인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참여하면서 갈등에서 이기려고 노력하고, 지면 분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이런 게임의 특성을 현실을 변화시키고, 사람들이 힘들게 느끼는 학습과도 접목시켜 보겠다는 것이 피터공의 생각이었던 거지요.

 

4. 놀공발전소의 대표인 피터공이라는 이름도 특이하네요. 성이 공씨인건가요?

 

특이하죠? 저는 처음에는 좀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피터공의 본래 이름은 피터 리거든요. 근데 왜 피터공이라고 할까, 이상했습니다. 그런데 피터공 뿐만 아니라 놀공발전소의 모든 구성원들의 호칭에도 지인공, 애련공, 은현공처럼 공이 붙어 있습니다. 피터공은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후 수평적인 대화환경을 만들기가 어려웠다고 해요. 창의적인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멤버가 수평적으로 자유롭게 토론하고 비판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는데 서로를 부를 마땅한 호칭도 찾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씨’라고 하기에는 건방지고, 영어 이름을 만드는 것도 어색했다고 해요. 그래서 이름 끝에 ‘씨’를 대신해 ‘공’을 붙여 부르기로 했다고 합니다. 뭔가 옛날 유럽 귀족 호칭도 연상되고 나이 차이나 직위 차이도 지워지기도 하고, 구성원들 간의 멤버십도 돈독해지는 효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놀공만의 특이한 조직 문화인데요, 놀공만이 지닌 독특하고 재밌는 조직문화가 이 책에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혹시 진행자분은 다른 회사 워크샵에 가본 적 있으세요? (대답) 내 회사 워크샵도 가기 싫은데 다른 회사 워크샵을 왜 갑니까? 그런데 놀공멤버들은 새로움에 대한 갈증을 해갈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워크샵에 초대해서 1박2일간 게임하고, 바비큐하고, 콘서트도 한다고 해요. 놀공에는 놀공싸롱이라는 모임도 있는데요,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주 수요일 저녁 7시에 놀공사무실에서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를 초대해 자유로운 만남을 갖는다고 해요. 이렇게 창의적인 조직 문화 속에서 창의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5. 놀공발전소가 만들어낸 창의적인 결과물이 어떤 것들이 있나요?

 

이 책에는 놀공이 만들어지는 과정, 멤버 소개, 놀공만의 문화 뿐 아니라 놀공이 그동안 해온 일을 하나씩 소개하고 있는데요, 저는 그 중에서도 놀공클래식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마도 문고판 책이 나오는 펭귄클래식에서 착안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놀공클래식도 펭귄클래식처럼 고전을 다루는 프로젝트입니다. 그동안 놀공에서는 놀공클래식으로 조지 오웰의 <1984>,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니나>,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쥴리엣>, 괴테의 <파우스트>와 같은 고전을 다뤘다고 합니다.

 

6. 아, 그러면 고전을 게임으로 만드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정말 놀랍죠? 저는 이 책에서 놀공클래식을 소개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사실 고전은 읽기 힘들고 어렵잖아요? 고전은 꼭 읽어야 되는 책이기는 한데 정작 읽은 사람은 잘 찾기 어려워요. <로미오와 쥴리엣>도 많은 분들이 영화나 동화로 보았지, 정작 이 책을 원작 그대로 독서한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솔직히 저만 해도 그렇구요. 놀공클래식은 고전을 놀공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게임의 문법을 활용해서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고전’을 친숙하게 여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게임 시리즈입니다.

 

한 예로 <1984>라는 소설은 전체주의 국가에서 빅브라더가 사람들을 통제하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는 작품인데요, 놀공은 자체 스터디를 통해서 <1984>라는 작품 안에서 구어를 대신하여 ‘신어’, 그러니까 새로운 말을 빅브라더가 개발해 사회를 통제해 나갑니다. 신어를 개발하는 목적은 글의 구조를 단순하게 만들고, 어휘의 양을 줄여서 사회의 구조를 위협하는 사상 범죄를 차단하는 것에 있는 것인데요, 왜냐하면 어휘가 단순해지면 사고의 폭이 좁아져 사상 범죄가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놀공은 <1984>에 대한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게임 규칙은 이렇습니다. 12개의 부스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각각 서로 다른 단어가 스티커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12개의 부스에는 빅브라더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게임 참가자는 그 얼굴 앞으로는 지나갈 수 없습니다. 참가자는 12개의 부스를 드나들며 그 속에 있는 단어를 기억하고, 방송에서 기습적으로 어떤 단어를 찾으라고 하면 그 단어가 적힌 부스를 찾아서 자신이 가지면 됩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해서 가장 많은 단어를 수집한 사람이 승리하는 게임입니다. 물론 실제 게임에는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세부적인 장치들이 있습니다.

 

7. 일종의 단어 스티커의 위치를 기억해서 많이 가지면 이기는 게임이군요.

 

네, 단순해보이지만 이 게임에는 <1984>와 관련된 많은 장치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빅브라더의 얼굴 앞으로 지나가지 못하는 규칙은 빅브라더의 통제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찾아야 하는 단어는 빅브라더가 없애려고 하는 구어를 상징하구요, 그리고 참가자는 게임에 참여를 하면서 이 소설의 핵심 주제라 할 수 있는 전체주의적인 통제 사회의 문제점을 온 몸으로 깨닫게 되는 겁니다. 실제로 후기를 보면 사람들이 이 게임을 계기로 <1984>를 직접 읽게 되었다고 해요. 게임을 통해, 놀이를 통해 공부한다는 놀공의 목표대로 말이죠.

 

8. 게임을 통해서 직접 체험하게 되니까 그냥 고전이 중요하다고 들을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겠네요.

 

저는 이 게임을 직접 해본 적이 없는데도, 책에 소개된 게임 방법을 읽고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놀공클래식에서 다룬 고전작품들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피터공은 이 책에서 학습에도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고 해요. 전통적인 관점에서 학습은 무엇에 관해서 배운다라는 목표 하에서 지식 전달이 핵심이었지만 지금은 클릭 한번만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이런 식의 학습은 불필요해졌다고 해요. 피터공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어떤 활동을 할 때 자신이 가장 즐거운지 알 수 있는 기회를 교육을 통해 제공해야 한다. 마치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가 자신의 정체성을 마법사, 요정, 기사 등으로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새로운 과제 앞에서 능수능란하게 전화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즉 놀공이 생각하는 교육 모델은 누군가가 되는 법을 배우는 형태였다”.

 

즉, 게임을 통해서 ‘누군가가 되는 법’을 배운다는 거죠. 수학을 배워야 한다면 공식을 위한 지식습득이 아니라 직접 수학자가 된 것처럼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게임을 통해 가능할 수 있다는 거죠. <1984>라는 게임에 참여한 사람은 직접 전체주의적 통제 하에 놓여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되고, 그것이 고전으로 더 가까이 가도록 해주는 징검다리가 되는 겁니다.

 

8. 끝으로 청취자들에게 책을 추천하시는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놀공은 놀공클래식에서 <안나 카레니나>를 런칭하기 위해서 박웅현씨와 함께 강독회를 합니다. 박웅현씨는 <책은 도끼다> <여덟단어>와 같은 좋은 인문서를 쓴 유명한 광고디렉터시죠? 그리고 <파우스트>는 독일문화원의 요청으로 만들어져 이미 글로벌한 프로젝트가 되어 성공을 거뒀습니다. 놀공발전소라는 작은 회사가 해내는 일이 놀랍지요? 저 역시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저는 지금의 일상과 일에 권태를 느끼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아주 일부만 소개해드렸지만 놀공발전소가 해온 일은 결국 우리가 세계를 조금 다른 방식과 태도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한 것이라 정리할 수 있습니다. 게임이라는 틀로 공부, 사회, 세계를 바라보니까 이전에 가치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는 거지요. 놀공은 놀공 클래식의 하나로 <로미오와 쥴리엣>을 게임으로 만들었는데요, 이 게임은 영업이 끝난 강남 교보문고에서 진행했다고 합니다. 어렵고 딱딱한 고전만 새롭게 보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점이라는 일상적 공간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도록 만들어 준거죠. 지루한 일상에서 너무 많은 노력으로 고단해 하시는 분들에게 <노력금지>,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일상을 새롭게 보는 마법의 방법을 익히게 되실 겁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피터공과 놀공발전소가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일로, 자신들이 가장 즐거워 하는 일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공부는 힘들고 지루하고 어렵다는 우리 모두가 한번은 겪는 고민을 ‘노력금지’를 외치면서 더 즐겁게 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으니까요. 저는 놀공발전소가 게임으로 일과 놀이와 예술을 재정의하고 있다고 감히 단언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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