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워 하는 아이를 부끄러워 하는 아빠
내 아이는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나도 인사를 잘 하지 않고, 예쁜 중학생들이 재잘대며 인사를 건네도 아빠 옷자락을 붙잡고 뒤로 숨어 버린다. 아이가 세 살일 때 아이 엄마는 미국에 가 있었다. 혼자서 아이를 보는 일이 지루하게 느껴져서 문화센터에서 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에 등록했던 적이 있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둘러 앉아서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노래도 부르고 율동도 따라하는 식의 프로그램이었는데, 아이는 따라하기는커녕 언제나 멀뚱히 서서 지켜보기만 했다. 마칠 때면 앞으로 나가 선생님과 포옹을 하고 작은 과자를 받아와야 했는데 아이는 과자는 먹고 싶었지만 인사를 하고 싶어하지는 않았다. 선생님은 내게 손짓을 하며 아이와 함께 나오라고 했다. 엄마들 중에 아빠는 나 혼자 뿐이었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자리에 일어나서 과자를 받아오는 것이 뭔가 모르게 부담스러웠다. 아이가 부끄러움이 많아 다른 아이들은 다하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도 부끄럽고, 그래서 과자를 받으러 아이와 함께 나가야 한다는 것도 부끄러웠다. 그리고 나서는 그 어린이 프로그램에 나가는 것을 그만두고 말았다.
아이의 부끄러움은 지금도 여전하다. 얼마 전 유치원에서 아이 학급만의 작은 발표회가 있었다. 이번에도 아이는 율동에 거의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노래도 따라 부르는냥 마는냥 했고, 율동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관객인 것처럼 친구들의 율동을 구경하는 듯 했다. 아이는 무대 위에서 최대한 주목 받고 싶어하지 않으려 했지만 사실 그 때문에 가장 도드라졌다. 발표회 내내 마음이 조급해졌다. 언제 이 무대가 끝날까. 어떻게 아이의 부끄러움을 당장 뜯어고칠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아이 엄마에게 했더니 내게 “당신도 부끄러움 많이 탔다며?”라고 되물어왔다. 하긴 나도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였다. 유치원에서 각자 그린 그림을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 앞에서 소개하는 일이 있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그 때 내 그림을 보고 다른 아이들이 웃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내가 그린 그림을 내가 보더라도 ‘엄마의 기준’에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런 내게 항상 “지나치게 내성적”이라며, 그 당시 한창 유행하던 웅변학원에 등록했다. “이 연사 소리 높여 외칩니다!”, 목소리 높여 주장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웅변대회에서 받았던 트로피만큼은 또렷이 기억난다. 아이 엄마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고 했다. 유치원 학예회 발표 때 사회를 맡았는데, 학예회가 시작되자마자 얼어붙어 그만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유치원 원장님은 얼마나 황당했겠냐고, 정도가 다를 뿐이지 누구나 다 그런 시기를 겪는다고 했다.
게오르그 짐멜이라는 사회학자는 <부끄러움의 심리학에 대해서>에서 부끄러움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 의해 부각된 자아가 자신의 이상적인 자아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고 한다. 현실의 나와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나 사이에는 간극이 있는데, 그 간극을 누군가가 바라보게 되면 부끄러움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문화센터에서 느꼈던 부끄러움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현실의 나는 ‘문화센터에 데려오는 육아하는 아빠’이지만 문화센터에서 엄마들과 둘러 앉아 있으며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나는 ‘직장에서 일하는 아빠’였던 것이다. 나는 거기에 있는 많은 엄마들 사이에서 ‘일하러 가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보는 아빠’로 나 자신이 부각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아이가 세 살 때인 당시만 하더라도 아빠가 휴직을 해서 아이를 문화센터에 데리고 나오는 일은 그렇게 일반적이지는 않았으니까.. 그런 상황 속에서는 나는 내가 육아하는 남자라는 사실 자체가 낯설게 느껴졌던 것이다. 지금은 물론 내가 ‘육아하는 아빠’를 부끄럽게 여겼다는 사실을 부끄러워 하고 있지만 말이다.
아이 엄마와 내가 어릴 적에 겪은 경험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아이 엄마는 ‘무대 위에 선 자신’이 낯설었고, 나는 ‘내 그림을 다른 사람에게 발표하는 자신’이 낯설었던 것이다. 아이의 부끄러움도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세상에 처음으로 내 던져진 아이에게는 아마도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할 것이다. 인사를 하지 않고 뒤로 숨어 버리는 것은 가끔 보는 이웃도 낯설고, 이웃과 인사를 주고 받는 자기 자신도 낯설기 때문이지 않을까? 무대 위에서 몸을 꼬며 지켜보기만 하는 아이는 사람들 앞에서 율동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자기 자신이 낯설게 여겨졌던 것은 아닐까?
솔직히 말해 나는 그동안 아이에게 부끄러움이 많은 것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인사를 시키려 등을 떠밀고, 노래를 부르게 하려고 다그치고, 율동을 따라 시키려고 혼을 내보기도 했다. 나는 왜 아이에게 억지로 인사를 시키고, 노래를 부르게 하고, 율동을 시켰던 것일까? ‘인사를 잘 하는 아이의 아빠’라는 이상 속의 내가 ‘인사를 하지 않는 아이의 아빠’라는 현실 속의 나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고 거기에서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불필요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이가 아니다. 바로 나였던 것이다.
내가 ‘육아하는 아빠’라는 낯선 나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인사를 하지 않는 아이의 아빠’라는 낯선 나와 익숙해지기 위해서 ‘아빠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아이에게도 ‘웅변학원’보다는 아이의 시간이 필요하다. 다그친다고 몸이 빨리 자라나지 않는 것처럼 마음도 빨리 자라진 않는다. 아이는 오직 아이의 시간에 자란다. 이청준은 “소설이란 기껏해야 한 사람이 끝없이 감당해내는 '헤맴'을 적는 일”이라고 썼는데, 육아야말로 아이가 처음 만나는 이 낯선 세상에서 끝없이 감당해내는 ‘헤맴’을 잘 견뎌내도록 응원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낯선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고, 아빠도 함께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