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 - 우리가 꿈꾸던 마을이 펼쳐지고 있다, 2015년 세종도서 교양 부문 선정
박재동 글.그림 김이준수 글, 서울시 마을공동체 담당관 기획 / 샨티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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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책 소개 방송을 한지 6개월이 흘렀다. 꽤나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다음 주에 소개할 책을 정하고, 쫓기듯이 읽고, 대본을 준비하고, 방송국에 가서 방송을 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 이 모든 과정을 익숙하지 않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책을 소개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지금껏 내가 해온 책 소개는 줄거리 정리에 가깝다. 부끄럽다. 나는 생방송에 나가서 책을 소개하지만 사회자와 내가 나누는 대화는 내가 사전에 준비한 대본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책에 대한 나의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전할 기회는 거의 없다. 대본을 준비하면서 말로 할 것을 글로 쓰게 되니 생생한 감상은 떨어져 나가 버린다. 13분 내에 책을 소개하는 것 자체가 인상 비평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인터넷 서점이나 영화 리뷰에 해당되는 100자 평을 라디오판으로 하는 셈이지 않을까. 그러니까 우선 형식상 어떻게 해야 잘하는 소개인지 잘 판단이 안선다. 

 다른 어려움도 있는데, 책 소개라는 것을 왜 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일단 누가 이 방송을 듣는가 하는 문제도 있지만 듣는다고 하더라도 이 방송을 듣는 청취자가 내가 소개하는 책에 흥미를 가져 읽을 가능성은 낮을 것이다. 물론 내가 소개하는 책을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사실 나 조차도 누가 소개한 책을 잘 읽지 않는다. 내가 읽고 싶은 책도 많은데 남이 소개한 책까지 어떻게 읽나. 그러면 책 소개 방송에서 내가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뭘까? 이런 책이 있다는 정도를 알려주려고? 아니면 책을 빌미로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시간을 적당히 채우기 위해서? 혹시 그 모든 것이 아닐까 싶다가도 그렇게 생각하면 좀 우울해진다. 이 코너의 이유는 못찾겠지만 내가 이 방송에 나가는 이유는 있긴 하다. 이렇게라도 한 주에 한 권을 이 방송이 아니었다면 보지 않았을 의외의 책을 읽고 만나는 작은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즐겨들었던 책방송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과 이동진의 <빨간 책방>이었다. 김영하는 팟캐스트의 특성을 이용해 시간 제약 없이 아예 책을 읽어주는 방송을 했는데, 귀로 듣는 책이라는 점에서, 믿을 만한 소설가가 선택한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존재 이유가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나는 이 방송이 오랫동안 업로드되고 있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빨책>은 믿을만한 평론가이자 독서가인 이동진과 좋은 작가인 김중혁이 책을 중심에 두고 나누는 대화만으로 충분히 가치있는 방송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독서를 대신할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한 독해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자칫 묻힐뻔한 좋은 책을 건져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존재이유가 충분해 보인다. 책을 소개한다는 것을 어떤 사람을 다른 누군가에게 소개시켜준다는 관점에서 보면 김영하는 주선자가 나가지 않고 소개 받을 사람만 약속장소에서 만나게 하는 방식이라면, 이동진은 주선자가 소개팅 장소에 상대가 나오기 1시간 전에 나가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일장연설을 하고 있는 방식이다. 어느 방식이라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그렇지만 내가 하는 방송은, 내가 믿을만한 작가도 아니고, 섬세한 독해를 해주는 것도 아니고, 책에 대한 선정 기준도 모호하고, 책을 그대로 읽어주는 것도 아니라 이 방송이 왜 필요한지 이유를 잘 찾지 못하겠다. 그러니까 성혼 가능성이 매우 낮은 초보 결혼정보회사랄까. 심지어 돈도 되지 않으면서 말이다. 서동욱 선생이 하는 말로 위안을 먼저 삼겠다. 


"시작(詩作)이란, 홀로 훈련하는 운동선수가 오직 스스로에게 몰두하는듯하지만 기실 자신의 의식과 상관없이 공동체를 향해 열려 있듯이 그렇게 이루어진다. 수백 개 째 혼자 공을 던지는 투수의 훈련에서 오로지 의식되는 것은 자신의 구질이지만, 다른 한편 그의 공을 쳐낼 자를 의식의 바깥에서 필연적인 근거로 삼으며, 패스를 연습하는 축구 선수는 공의 향방만을 의식하지만 그야말로 자신의 패스를 받을 자를 필연적인 근거로 삼는다. 우리가 공동체를 인식하기 이전에, 우리의 실존은 공동체를 향해 이미 개방되어 있으며, 이 개방성은 타자를 향한 영원한 운동으로 표현될 것이다. 우리는 고독할 새가 없다기보다도 고독을 통해서조차 공동체를 향해 나간다. 따라서 표면에 나타난 형태가 나이건 너이건 어떤 것이건 간에 시를 주관하는 근본적인 화자는 '우리'이다." (<곡면의 힘>, 123~124쪽))


나는 시작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백 개 째 혼자 공을 던지는 투수처럼 책을 소개하는 내 목소리를 전파에 실어 보낸다. 공동체, 내게는 이 라디오를 듣는 지역의 청취자들을 희미하게 의식하면서. 물론 시와 같이 이런 책 소개가 우리의 언어를 교란하며 세계를 고양시키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 성찰이 아니라 책의 소중한 성찰의 빛이 조금 더 구석구석까지 미치도록.


이번에 소개한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은 지난 플레이어스 포럼에서 만난 김이준수님께 선물받았고, 김이준수님이 쓰신 책이다. 어린이날에 마을을 선물하자는 취지로 대본을 썼다. 저 이에게 소개할 여기 이 멋진 이를 주선자의 눌변과 우둔함으로 가려지지 않기를, 이 책이  담고 있는 소중한 성찰이 내가 살고 있는 대구도 비추길 빌 뿐이다.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


1.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네, 제가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샨티에서 만들고, 김이준수가 쓰고 박제동이 그린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이라는 책입니다. 박제동 선생님은 만화를 그리시는 분이시죠? 이 책의 삽화를 그려주셨구요, 김이준수 선생님은 늘 본인을 ‘커피 노동자’라고 하시는데, 과거에는 신문사에서 기자로 계시다가 지금은 자유롭게 글을 쓰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의 대부분의 글은 김이준수 선생님이 쓴 글입니다. 이 책에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곳으로 만든 20가지 사례가 소개되고 있는데요, 저는 이 책을 읽는동안 부끄럽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2.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이라는 제목만 들었을 때는 권영민씨가 부끄러움을 느끼실 이유가 무엇이었을지는 잘 짐작이 되지 않는데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네, 이 책을 읽어보면 사람들이 이웃을 만들며 정말 재미있게 살고 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저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만 해도 5년 째 살고 있구요, 대학 가기 전까지 10대 전부를 대구에서 살았는데도 주변 이웃들의 이름도 모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살고 있는 동네를 잘 모르고 살아왔다는 사실, 이웃이 없다는 점이 부끄럽게 느껴진거죠. 사실 그럴만도 한게 저는 아파트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웃이 없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이 책에 소개된 파크리오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파트에서도 이웃 만들기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3. 우리나라 주거 유형의 60%가 아파트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아파트에서 살면서 이웃을 만든다는 것이 잘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시죠? 저도 처음에는 잘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일텐데요, 이 책을 읽어보면 그런 상상이 꼭 허황되거나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금방 파크리오맘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요, 파크리오맘은 ‘파크리오’는 서울 잠실에 있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임유화씨의 별명입니다. 임유화씨는 분당에서 2006년에 첫 아이를 낳았는데요, 주위에 친구가 없어서 굉장히 우울했다고 해요.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니까 예전 친구들과 만나기도 어려워지게 되죠. 저 역시도 아이를 낳은 후부터 관계면에서 고립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런데 임유화씨는 파크리오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이 아파트 단지에 사는 기혼 여성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고 해요. 매일 두 시간 이상 관리하면서 회원을 모았고, 2009년 봄에 ‘새봄 초록 파티’라는 파크리오맘 1회 정기 모임까지 개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회원수가 많아지니까 지금 이 카페에서는 30-40개의 동호회가 자발적으로 움직이구요, 4월, 9월에는 오프라인 벼룩시장을 여는데 처음에는 공간을 찾기도 힘들었지만 10회 이상을 하게 되면서 관리사무소나 입주자대표회의에서도 파크리오 단지의 행사로 받아들이고 배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해요. 심지어 파크리오맘 카페에서는 ‘기부 릴레이 드림’이라는 것을 한다고 하는데요, 한 회원이 자신이 쓰던 식탁을 버리려고 하는데 혹시 필요한 분이 있느냐고 글을 올리고 다른 회원이 혹시 받아가면 파크리오맘의 기부통장에 두 사람 이름으로 1000원이 기부금으로 적립된다고 해요. 그리고 식탁을 받은 회원은 한 달 안에 다른 누군가에게 자기 물건 중 무엇이든 기부를 해야 하는데요, 이렇게 기부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거죠. 나눔 음악회를 하고 엄마들이 재능기부를 해서 연간 무려 4000만원 정도나 되는 큰 금액을 국내외 아이들에게 기부까지 한다고 해요. 


4. 파크리오맘이라는 한 사람의 상상이 놀라운 일을 만들어 낸거군요.


제 아이가 두 살 때인데요, 그 날 제가 아이를 보고 있는 중에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제가 중요한 약속을 잊고 있었던 겁니다. 전화를 받고 놀라 15분만 기다려 달라, 금방 가겠다고 하고선 제 어머니와 아이 엄마에게 전화를 해보니 아무도 대신 아이를 봐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거에요.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당황해서 결국 유모차를 밀고 약속 장소로 갔습니다. 아이가 자꾸 우는 통에 미팅은 사실 엉망이 되었는데요, 그날 누군가가 아이를 봐줄 이웃이 한 사람이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파크리오 아파트에서는 그게 정말 가능하다는 것을 보고 또 놀랐습니다. 임유화씨가 깊은 잠에 들어 아이가 초인종을 눌러도 듣지 못하고 전화도 꺼져 있었는데, 아이가 울면서 놀이터에 가자 놀이터에 있던 다른 엄마들이 아이를 달래며 함께 있어주고 저녁밥까지 먹여주며 돌봐주고 있었다고 해요. 어제가 어린이날이었는데요, 아이들이 가장 자라기 좋은 세상은 이런 이웃들이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인류학자인 조한혜정 선생님은 아이를 정말 키우고 싶다면 답은 하나 뿐이라고 합니다. “부모 외에 신뢰하는 어른들이 있고, 아이가 원할 때 쉽게 들락거릴 수 있는 놀이터와 도서관과 단골가게가 있는 환경에서 키우면 된다”는 거지요. 즉 아이를 낳고 키우고 사랑하며 늙어갈 수 있는 ‘마을’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어린이날이라서 아이들에게 이런 저런 선물을 사주게 되는데요, 어쩌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마을’이 아닐까 해요. 


5. 저도 그렇지만 많은 부모님들이 어린이날이라고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서 장난감 선물을 하게 되는데요, 부모 외에 신뢰하는 어른들이 있는 마을을 선물한다니 대단한 거 같아요. 그런 마을을 파크리오맘은 자녀에게 선물한 셈이네요.     


이 책에서 김이준수 선생님은 우리가 마을에서 ‘놀고, 먹고, 모이고, 협동하고, 말하고, 예술하고, 교육하고, 일한다’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데요, 서울에 ‘삼각산재미난마을’이라는 곳 혹시 아세요? 얼마나 재미있으면 마을 이름이 ‘재미난’ 마을일까요? 재미난 마을이 생기게 된 것은 아이들을 사람답게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 어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부모들 몇 사람이 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고 해요. IMF가 닥치니 실직이 늘어나고, 맞벌이 부부가 급증하면서 육아 문제가 지금처럼 사회 문제로 부각될 때 몇 사람들이 모여 ‘공동육아 협동조합’을 만들어 어린이집을 만들었다고 해요. 이 아이들이 자라 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니까 이 아이 부모들이 초등 교육도 고민하기 시작하게 된 겁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지닌 재능과 상관 없이 성적이라는 획일적인 잣대로 평가받는 치열한 경쟁 속에 살도록 내몰고 싶지 않아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결과 ‘배운 것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삶에 자연스레 녹아들게 하는 학교를 만들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 삼각산재미난학교를 만들게 되었다고 해요. 이게 삼각산재미난마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 획일적인 교육에 대해서 고민하는 부모들이 직접 학교까지 만든다.. 정말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인데요, 지금도 그런 교육이 정말 가능한지 잘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시죠? 재미난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국어 영어 수학도 가르치지만 그보다 더 재밌는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요. 텃밭 가꾸기, 재래시장 마실, 골목 사진찍기 등을 하는거죠. 자기 소변을 썩혀서 거름으로 텃밭에 쓰고,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들을 생각하며 아이들은 날씨에 민감해질 겁니다. 학교에서는 이론으로만 배우는 대자연의 순환을 재미난 학교의 아이들은 직접 경험하는 거죠. 재미난학교에서 아이들은 교사에게 높임말도 하지 않는다고 해요. 학생은 반말로 자기 의견을 교사에게 말하는데요 수평적인 관계일 때 교육 효과가 가장 크기 때문이겠죠. 


7. 아이들이 정말 마을에서 배우고, 자라고 있는 거네요. 그런데 ‘마을’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선물을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뭐부터 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어요. 마을은 혼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맞습니다. 저도 몇 해 전부터 아이들 놀이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요, 사실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1000세대가 넘는 아파트인데도 놀이터가 하나 밖에 없고, 눈비가 오거나 너무 춥거나 더우면 아이들이 놀 공간이 돈을 내고 가는 키즈카페가 아니면 별로 없다는 것을 보고 아이들이 놀이 문제가 정말 시급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동성로에 한번 가보세요. 놀이터가 없습니다. 놀이터가 없다는 것은 아이들 데리고 올 생각하지 마라는 겁니다. 요즘은 마트에도 놀이터가 있는데, 대구 시내에 아이들이 놀 공간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워 놀이터를 만들겠다고 저도 이리 저리 뛰어다녔는데 이게 정말 쉬운 문제가 아니더라구요. 저는 이 책을 보면 제가 놀이터 만들기를 하기 힘들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요, 먼저 마을에서 함께 아이를 키우는 아빠와 만나고 대화 나누고 집에 초대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 나온 정말 살기 좋은 마을들은 원래부터 있었던 곳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웃이 없어서, 외로워서, 집이 너무 비싸서, 아이들 교육하기가 좋지 않아서 불편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자기 집과 가게로 불러 모으고 이야기 나누고 대화하면서 학교와 도서관이 세워지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밥을 지어먹는 마을 부엌이 생기고, 마을 신문과 방송이 생기고, 놀이터가 만들어지더라구요. 좋은 마을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좋은 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한 사람의 꿈이 있고, 여러 사람들과 만나서 협력할 때 우리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자랄 수 있는 강한 마을이 자랄 수 있는거죠. 좋은 마을은 부동산 가치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 있고, 서로가 서로를 잘 알면 범죄의 가능성도 훨씬 줄게 됩니다.


8. 이웃이 있는 좋은 마을은 아이들과 어른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한편으로는 사생활이 침해되거나 번거로운 일이 많아질 것 같다는 걱정도 생기는 것이 사실입니다.


네, 저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는데요, 여기에 나오는 모든 분들은 “불편보다는 좋은 점이 훨씬 많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서울에서 한 개인이 일평생 일을 해도 집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은실이네는 여성 5명이 모여 사는데요, 한 사람 당 방 하나씩을 쓰면서 주방 거실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해요. 서울에서 주거비용을 원룸에서 지내도 최소 65만원이 드는데, 은실이네 하우스에서는 일인당 30만원으로 임대료, 생활비가 다 해결되는 거지요. 물론 그런 경제적 이점 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내 아이 이름을 아는 마을은 보안을 이유로 문 걸어 잠그기에 바쁜 아파트, 저택보다 훨씬 더 이점이 많겠죠.


9. 말씀을 들으며 책의 제목처럼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은데요, 끝으로 정리해주시죠.


 어제가 어린이날, 곧 있으면 어버이날인데요, 어린이와 노인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곳이 바로 ‘마을’입니다. 마을이 있으면 내 아이를 여러 사람이 돌보기 때문에 안전하고, 친구가 있기 때문에 노인분들도 외롭지 않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마을들에서는 시장이 열리고 축제가 생기고 아이들이 다시 골목을 뛰어 다니고, 한 동네에 사는 아저씨와 못 보던 아저씨를 아이들이 구분하고, 서로가 서로의 별명을 부릅니다. 주택을 재산으로 생각하면 돈은 벌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 ‘함께 사는’ 기쁨은 알려줄 수 없고, 우리 부모님들이 노년을 외롭게 보내게 만드는 것일 수 있죠. 서울 통계지만 서울 시만은 2년 이내에 35퍼센트, 5년 이내에 65퍼센트가 이사를 합니다. 교육, 일자리, 경제 문제 등으로요. 이렇게 이사 다니는 사회에서 이웃이 형성될리 없는데 대구도 사정이 비슷할 겁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이사를 많이 다니게 되거든요. 진짜 선물은 마을이라는 것을 이 책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이 책은 서울시에서 기획한 책인데요, 대구시에서도 <마을공동체만들기> 지원센터가 마련되어 마을 공동체 만들기를 지원해주고 교육도 한다고 합니다. 주변을 보면 정작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마을을 만드는 일에 관심도 없으면서 지원금을 따내서 다른 곳에 쓰는 경우가 많은데요, 부디 마을공동체만들기 사업은 많은 분들의 관심으로 대구가 정말 살기 좋은 도시로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보시며 마을을 꿈꾸는 분들이 더 많아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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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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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모멸감을 준 사람들에 대해서도, 내가 모멸감을 준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해준 책이었다. 그리고 내게 모멸감을 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 선생님들과 교수였음을 새삼 확인했다. 책을 다 읽고 나자 당시 내가 느낀 모멸감은 더욱 또렷해졌고 반드시 되갚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는다. 모멸감이 수치심을, 분노를 촉발시키는 최악의 방아쇠라는 저자의 말은 확실히 맞는 말이다.

교통방송에서 모욕과 모멸을 주제로 한 나만의 삼부작 소개가 끝났다. 모욕 당하지 않는 사회는 있을 수 없겠지만 모욕을 주고, 모멸감을 느끼도록 하는 사회와 싸우는 사회는 가능하다. 그리고 그 싸움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적 자부심일 것이다. 장애, 가난, 지방대 출신, 지방 거주, 비만, 여성이라는 사실이 자부심이 되는 사회에서 모욕과 모멸을 하는 이들이야말로 모욕과 모멸을 당하게 될 것이다. 본색소사이어티가 생각하는 사회는 그런 사회다.

 

 

모멸감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1.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혹시 2011년 7월 노르웨이에서 벌어졌던 테러를 기억하시나요? 어느 괴한이 오슬로 정부 청사 인근에서 차량 폭탄 테러를 일으켜서 8명을 숨지게 했고, 곧바로 노동당 청년캠프가 열리고 있던 섬으로 건너가 한 시간 동안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니면서 69명을 사살한 일이 있었는데요, 섬에 있던 청년들은 이곳 저곳으로 쫓겨다니면서 사냥을 당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계실텐데요, 범인은 브레이비크라는 32세 청년이었고, 단독범행이었습니다. 브레이비크가 왜 이토록 끔직한 짓을 저질렀는지 아시나요?

 

2. 글쎄요, 브레이비크도 노르웨이 사람이니까 이슬람 원리주의의 테러인 것도 아닐테고, 혹시 사이코 패스였던 것일까요?

 

저도 이번에 범행 동기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학창 시절 브레이비크에게 이런 경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브레이비크는 학창 시절에 심한 괴롭힘을 당했는데, 그때 그를 구해준 이는 파키스탄계 이민자 친구였다고 해요. 그러면 고마워 해야 할 것 같은데, 브레이비크는 오히려 굴욕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도움을 준 이는 이민자였기 때문이에요. 평소에 자기보다 열등하다고 업신여겼던 외국인에게 보호 받은 일이 너무 창피했다고 합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부터는 브레이비크는 신체적인 강인함을 키우는 일에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여성들에게 남자로서 인정받고 싶었는데요, 미국으로 건너가 북유럽 사람들은 잘하지 않는 성형 수술까지 하고 왔는데, 주변의 여성들은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고 해요. 그는 매춘으로 그 박탈감을 해소하며 여성에 대한 복수심을 키워 갔습니다. 학살을 할 때 예쁜 여학생부터 살해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즉 브레이비크는 자기가 업신여기던 사람에게서 도움을 받았다는 모욕감, 여성들로부터 외면당했다는 굴욕감 때문에 살인마가 된 것이지요.

(*세바시 강연에서는 브레이비크가 터키계라고 말씀하셨음)

 

3. 아, 여성들에게 인정 받고 싶어서 성형까지 했는데 모두에게 외면 당했다면 비합리적이긴 하지만 수치심이나 굴욕감이 생겼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우리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이라면 아시리라 생각하는데요, 제가 그동안 ‘모욕감’이나 ‘굴욕감’이라는 주제로 책을 자주 소개해왔는데요,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비행운>, 김현경 선생의 <사람, 장소, 환대>도 모두 갑이 을에게, 을이 병에게 모욕을 주는 이야기와 그 때 사람들이 느끼는 생생한 경험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모욕감을 주제로 한 책 삼부작 중 마지막 책을 소개해드릴까 하는데요, 바로 출판사 <문학과 지성사>에서 만들고, 김찬호 선생님이 쓰신 <모멸감>이라는 책입니다. 김찬호 선생님은 사회학 연구자인데요, 한국 사람들 마음 속에 얽혀 있는 수치심, 열등감, 자기혐오, 분노, 두려움 등의 감정이 어떻게 폭력적으로 분출되게 되는지, 모멸감이라는 감정이 한국 사회의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를 이 책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4. 모욕감, 모멸감 이런 감정들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셨는데, 모욕감, 모멸감은 모두 비슷한 말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요? 수치심보다는 모멸감이 더 피하고 싶은 감정인 것 같긴 한데요..

 

네, 먼저 모욕감부터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모욕감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대하는 태도에서 느껴지는 감정인 거죠. 많은 경우는 모욕감도 일종의 수치심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모욕을 당하면 수치심이 생겨나니까요. <디스커넥트>라는 영화가 있는데요, 중학교 남학생들이 벤이라는 학생을 골탕 먹이는 내용이 나옵니다. 외톨이로 지내며 음악과 SNS에 빠져 지내는 벤에게 두 명의 학우가 제시카라는 미모의 가짜 여성 아이디를 만들어 다가갑니다. 벤과 제시카는 친해지는데요, 제시카는 자신의 누드 사진을 보내면서 벤에게도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해요. 이게 친구들 장난인 줄 모르고 벤은 알몸에 사랑의 노예라고 쓰고 셀카를 찍어 보냅니다. 다음 날 두 학생은 전교생에게 이 사진을 발송하고, 벤은 사랑의 노예로 불리다가, 결국 자살을 감행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 벤이 느낀 감정이 모욕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거의 말로 쓰시긴 하지만 오늘 책의 제목인 <모멸감>은 모욕감과는 좀 뉘앙스가 다릅니다. 앞서 브레이비크가 느낀 것도 굳이 말하자면 모욕감이 아니라 모멸감이라고 할 수 있어요. 모멸감은 ‘모욕’과 ‘경멸’이 섞여 있는 단어거든요. 모욕이 적나라하게, 상대에게 직접 공격적인 언행을 가하는 거라면, 경멸이나 멸시는 은연 중에 무시하고 깔보는 태도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아무 생각 없이 모욕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상대를 경멸하는 것은 무심코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거든요. 그리고 많은 경우는 모멸감이 모욕감보다 훨씬 더 사람을 기분나쁘고 수치심을 일으키도록 만듭니다. 브레이비크가 수치심을 느낀 것은 학교에서 당한 집단 괴롭힘 때문이 아니라 이민계 학생에게 도움을 받았던 것이 결정적이었던 거거든요. 이민계 학생이 브레이비크에게 일부러 수치심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 했던 일이 아닌데도 브레이비크가 모멸감을 느낀 거죠.

 

5. 꼭 어떤 사람이 내게 모욕을 주는 것이 아니라도 어떤 상황 때문에 모멸감 같은 것이 느껴질 때도 많은 것 같아요. 을의 입장에서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만나지 못했다면 갑이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을은 무시당했다는 기분이 들죠.

 

이 책의 저자인 김찬호 선생님은 한국 사회가 모멸감을 주고, 모멸감을 느끼는 사회라고 진단하는데요, 모멸감을 느끼거나 모멸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거나 모두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무시하는 표정, 비웃는 눈빛, 퉁명스런 말투로 상대에게 모멸감을 주는 사람의 경우도 상대를 무시해야지만 자기 자신이 그 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열등의식에서 나온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멸감을 느끼는 경우도 상대가 나는 이런 대우를 받으면 안되는데 나를 무시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비롯했으니까 낮은 자존감이 원인이 되는 거죠. 하급자가 자신을 깍듯이 떠 받들지 않는다고 호통을 치는 공위 공직자들은 자존감이 낮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하급자가 자신을 무시했다는 거죠. 정작 무시한 사람도 없는데 말이죠. 실제로 우리나라는 개인의 자부심이 매우 낮은 사회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2005년 자료인데요, 미국에서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53개국 중 한국은 개인의 자부심 수준이 44위였다고 해요. OECD 36개국 중 삶의 질 수준은 2013년에 27위였다고 합니다.

 

6. 개인의 자부심이 낮은 사회에서 삶의 질이 높을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 것 같아요. 그러면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자존감이 낮고, 개인에 대한 자부심이 낮은 이유가 뭘까요?

 

이 책의 저자인 김찬호 선생님은 그 이유를 다각도로 분석하시는데요, 전부 소개해드리기는 어려워 하나만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혹시 일본에서는 ‘부라쿠민’이라는 집단이 있는 것 아세요? 부라쿠민은 가축의 도살, 사형 집행, 피혁 가공 업체 등에 종사한 천민집단의 후손들을 말하는데요, 일본은 불교 사회라서 이런 살생과 관계된 일은 혐오 직업이었다고 해요. 지금도 그래서 차별 받는데, 기업에서도 만약 부라쿠민이라는 것이 드러나면 음성적으로 해고하거나 애초부터 합격시키지 않을 정도라고 합니다. 유력한 총리 후보가 부라쿠민 출신이라고 지명을 받지 못했던 적도 있구요, 반대로 1990년대 호소카와 총리가 지명될 때는 호소카와가 영주 가문 상류층 출신이라는 것이 유리하게 작동했다고 해요.

 

7.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일은 거의 없는데, 가까운 일본이라도 상당히 다르네요.

 

맞습니다. 한국은 전통적인 신분제도는 거의 대부분 무너졌구요, 핏줄에 따른 특혜나 불이익도 거의 없지요? 양반의 후손임을 내세워도 유리할 게 별로 없고, 상놈 집안 출신임이 밝혀져도 낙인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처럼 혈통적 신분제가 깔끔하게 정리한 사회는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아요.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요, 18세기부터 평민들이 돈을 주고 호적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양반수가 늘어났구요, 19세기가 되면 인구 절반이 양반이 되니까 양반이 귀족 노릇하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일제 강점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요, 식민지배가 되니까 어차피 다 식민지 백성인데 거기서 반상을 따지는게 우스운 일이 되는 거죠. 그래도 일제 때는 어느 정도 양반의 지위가 유지되었는데 결정적으로 6.25 전쟁이 신분제를 쓸어버렸습니다. 전쟁이 나니까 기존 질서가 모두 뿌리 뽑히게 되고,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피난 가니까 지역 사회에서 양반 노릇하던 사람들이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게 된 거죠.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신분제 청산이 신분제에 억눌렸던 사람들이 힘을 모아 이뤄낸 성과가 아니라 식민지, 전쟁, 산업화의 결과라서 겉으로 드러나는 신분제는 없어졌지만 신분 의식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된 겁니다. 그런 신분 의식이 과거 신분을 대신해 학력, 빈부, 외모, 피부색, 지위 등으로 위계질서를 만드는 기준이 되게 된 거지요.

 

무슨 가게만 가면 ‘주인 나오라고 해!’라는 사람들 있죠? 그런 사람들은 주인 아닌 아랫것들과는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신분의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겁니다. 신분의식이 아주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서 철저한 서열의식, 귀천관념,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짓밟으면서 느끼는 쾌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거죠.

 

8. 갑과을 사회도 그런 신분 의식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은 중매도 당사자들이 직접 만나지 않고 예전 신분제 사회 때처럼 당사자의 부모들이 나와서 본다고 하더라구요.

 

홍세화 선생님이 쓴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파리에서 택시 운전하며 사십 세쯤 되어 보이는 두명의 승객은 회사의 간부로 보였고, 한 사람은 삼심 여세로 부하직원이었다고 해요. 운전사가 한국인인지 모르고서 그들이 나눈 대화를 듣고 홍세화 선생님은 적지 않게 충격을 받습니다. ‘근데 이 친구 월남애지?’라고 한 사람이 묻습니다. “글쎄요. 여기에 인도 지나 사람이 많으니까요”라고 부하직원이 답하자 “아냐 내 말이 맞아. 월남애가 틀림 없어. 깡마른게 월남애가 틀림 없다고”. “보트피플아냐?”라고 말하자 홍세화 선생이 뒤를 살짝 돌아봤다고 합니다. 그러자 하는 말이 “뭘 돌아봐 인마. 운전이나 잘할 것이지. 그래도 이 자식들 출세했어. 파리에서 택시 운전을 다 하고. 용됐지, 용 됐어”.

 

9. 피부색으로, 직업으로 서열을 나누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네요. 이제 정리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은연 중에 누군가에게 모멸감을 주거나 수치심을 준 적이 얼마나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의도를 가지고 한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기다리게 만들고, 퉁명스럽게 대하고, 연락을 끊어 버리고... 어쩌면 그 모든 것이 저의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며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그 분들에게 모두 사죄하고 싶은 마음인데요, 청취자분들도 이 책에서 먼저 자기 자신에게는 그런 점이 없었는지 보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요즘 취업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모욕 스터디’라는 것이 있습니다. 면접관들이 하도 대답하기 힘든 곤혹스럽고 기분나쁜 질문을 던지니까 거기에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하도록 연습하는 건데요, 예를 들면 면접관들은 “외모 때문에 고생 좀 하겠네요”. “그 나이가 되도록 뭐했어요?”, “공부 엄청 못했나 봐요”라는 식으로 모욕적인 말을 압박 면접이라는 명분으로 합니다. 그걸 대비하겠다는 건데요, 면접 경험이 있는 75%가 이런 질문을 받고 불쾌했다고 합니다. 약자일 수밖에 없는 취업준비생에게 모욕을 주는 것이 면접의 일부라는 것은 직장 생활에서는 이런 모욕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생각 없이 한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타인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이 회복되고, 사람들 사이의 결속을 통해 모멸감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이 책을 말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품위를 지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거기에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공부하는 것도 한 몫을 하지요. 이 책은 구성이 특이한데요, 책을 사면 책과 함께 음악이 담긴 CD가 있습니다. 유주환씨가 모멸감을 주제로 한 곡을 만들었는데요, 이 책을 읽으시고 음악을 들으시면서 굴욕 주는 사회에서 우리의 존엄을 지켜나가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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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덧붙임.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리어왕)
이번 주는 교통방송에서 김영하의 <말하다>를 소개했다. 여러 곳에서 이뤄진 인터뷰와 강의를 모은 것이라 하나로 관통하는 주제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지만, 굳이 정리해보자면 “자기 자신만의 기쁨을 찾아라” 정도가 될 것 같다. 독자적이고, 개별적인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만, 즉 누군가의 취향에 종속되지 않고서야 한 사람의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김영하 작가의 개인의 삶, 문학, 글을 통해 표현된다. 심지어 김영하 작가는 소설 쓰기에 대해서도 누군가와 나눠가질 수 없는 불가분의 것, 소통 가능하지 않는 어떤 것이라고 말한다. 소설을 쓰는 것과 읽는 것은 일견 비슷해 보일 뿐 사실은 전혀 다른데, 쓰는 행위에는 세계를 창조하는 즐거움이 있고, 읽는 것에 소설가의 세계를 만나는 기쁨이 있다는 것이다. 결코 소설가와 독자가 소설을 통해 직접 만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간접적으로 만난다. 와인 고를 때 남의 취향에 따를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 지금 당장 예술가가 되어라는 강권부터 소설 쓰기의 은밀한 즐거움에 이르기까지 모두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즐거움’을 가져라는 내용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에 동의하는 것은 물론이다. 뉴욕에서 만난 택시기사가 알고보니 연극배우기도 했다는 김영하 작가의 말을 들으면서 지금 내 포지션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아주 즐거운 자유를 나는 만끽하고 있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도 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누구일까? 쿵푸팬더3을 보면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던 대목도 바로 이 지점이다. 나는 거위의 아들인가, 팬더의 아들인가? 나는 국수집 먹보인가, 용의 전사인가?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포는 그 자신이 그 모든 것임을 알고 난 후 용의 전사가 된다. 어떤 학위나 직책으로 밖에 표상될 수밖에 없는 것은 얼마나 우울한 일인가. 독자적인 기쁨은 기호 체계 내에서 성립되지 않는다. 지난 해에 쓴 <직업의 지배>라는 글에 비슷한 문제의식을 담은 적이 있어 다시 옮겨 써 본다.


 '직업의 지배'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직업으로 규정될 수 없는 자신이 있음'을 다양한 형태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나 자신이 나의 밥벌이로 규정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째서 내가 내 직업이 아닌 '나'인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공중을 향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 정치에 참여하는 행위가 고귀하다고 말해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자유롭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새로운 것을 배울 때 비로소 내 자아는 직업과 그 직업이 부여하는 수동적인 정체성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독자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오랜 불황은 취업난 뿐만 아니라 사회와 개인의 삶 전반에 직업의 지배를 더 공고하게 만들고 있다. 갑을 문제로 대변되는 사회적 분열, 열정 페이로 대변되는 직장에 삶의 전영역을 헌신하지 않으면 안되는 왜소화된 개인의 삶 모두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직업의 지배와 무관하지 않다. 직업으로 누군가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믿는 사회, 직업으로 자신을 소개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사회, 그런 사회야말로 인간을 단번에 파악 불가능한 '깊이를 가진 존재'로 존중하는 사회다. 직업 밖의 자기 자신을 ‘표현해야’, 직업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거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좋은 직업을 가진 자들, 즉 기득권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게는 직업 외에도 무수한 또 다른 자아의 측면이 있다. 나는 내가 다니는 학교나 내가 믿고 있는 종교나 내가 속한 계급이 아니다. 그렇다. 나는 내 직업이 아니다. 



말하다
김영하에게 듣는 사람, 문학, 글쓰기

1.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이번 주에 제가 가져온 책은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만들고, 소설가 김영하가 쓴 <말하다>라는 책입니다. 예전에 제가 김영하 작가의 <보다>라는 산문집을 소개해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보다>가 김영하 작가가 한국 사회를 바라 보면서 느낀 점을 쓴 에세이 모음집이라고 한다면, <말하다>는 김영하 작가와의 인터뷰와 그간 행했던 강연을 모아 둔 책입니다. 글에서는 말하기 힘든, 그렇지만 작가의 솔직한 생각을 알 수 있는 책인데요, 저는 이 코너에서 <보다>를 소개했던 적이 있어서 다시 김영하 작가의 책을 소개하는 것이 주저가 되기도 했는데, 풍부한 영감을 많이 주는 책이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2. 예전에 <힐링 캠프>에서 김영하 작가가 했던 강연을 본 적이 있어요. 그 때 강의에서 어떤 군인이 “자기는 집안 형편도 좋지 않고, 학벌도 시원찮고, 스펙도 별로인데 어떻게 하면 성공하겠냐”고 질문을 했는데 김영하 작가가 “음, 잘 안 될 거에요”라고 대답해서 놀랐어요.

이 책에도 김영하 작가의 힐링캠프에서 했던 강연록이 들어 있는데요, 말씀하신 그 대목이 나옵니다. 김영하 작가는 우리가 “비관적인 현실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 군인에게 ‘잘 안 될 것’이라고 하는 말도 작가의 ‘비관주의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건데요, 김영하 작가는 자신이 젊은 시절에는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연 10%가 넘는 고도성장을 거듭하는 시기라 취업 걱정이 크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1~2% 수준이기 때문에 예전과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진단합니다. 그런데도 언론과 학교와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꿈을 가져라’, ‘제2의 스티브잡스가 되어라’고 권하는데 그런 희망을 가지기 어려운 사회라는 것을 냉정하게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젊은이들의 취업난은 젊은이들의 문제가 아니고, 세계 경제의 흐름이라는 큰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거지요.
김영하 작가는 자신이 소설가이기 때문에 성공하는 법 같은 것은 모른다고 합니다. 오히려 소설가는 실패전문가라고 해요. 문학은 성공하는 방법은 가르쳐 줄 수 없지만, 실패가 그렇게 끔찍하지만은 않다는 것, 때로는 위엄 있고 심지어 존엄하다는 것을 가르쳐주니까 인생의 보험이라 생각하고 소설을 읽어라고 권합니다.

3. 성공하는 방법을 물은 사람에게 ‘존엄한 실패’를 이야기하는 소설을 읽어라는 대답은 선뜻 와닿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성공하고 싶다고 하는데, “당신 실패할 수 있으니 소설 읽어라”고 하는 셈이잖아요?

네, 맞습니다. 김영하 작가는 그런 의미에서 ‘비관적 현실주의자’인데요, 우리 앞에 있는 건 ‘성공’이라는 낙관적인 미래보다는 ‘실패’라는 비관적인 미래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거죠. 그렇게 보면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람들 중 성공한 사람을 찾기는 정말 어려워요. 이 책에서 <노인과 바다>를 소개하는 부분이 나오는데요, 노인은 기껏 고생해서 커다란 물고기를 잡는데 성공하는데 결국 상어들에게 다 뜯기고 뼈만 끌고 나옵니다. 실패죠. <안나 카레니나>의 안나, <마담 보바리>의 보바리는 모두 자살합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는 옛사랑을 얻기는커녕 엉뚱한 사람이 쏜 총에 맞아 젊은 나이에 죽게 됩니다. 모두 실패한 인생인데, 그렇다면 이 실패가 과연 무가치하거나 쓸모 없는 것이냐 하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실패를 보면서 새로운 도전을 할 용기를 얻고, 힘든 싸움이라도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기는 것이죠.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 “저렇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 “너 자신이라도 바꿔라”고 하는 이야기보다 실패할 수 있으니까 실패를 단단히 대비해서 당신이 하고 싶을 하라고 권하는 김영하 작가의 말이 제게는 훨씬 더 와닿습니다.

4. 사실 자기계발서를 읽어보면 내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분명히 나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책을 읽었는데, 읽다보면 내가 뭔가 잘못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거든요.

봄에 우울증이 늘어나고 자살률이 높아지는 것 아세요? 햇살은 따사롭고 뉴스에는 나들이 나온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 나오는데 나만 불행하다는 느낌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온통 사회가 ‘낙관적 태도’, ‘긍정적 사고’만 강조하니까 나만 불행한가 싶은 거죠. 뭔가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들구요. 그래서 김영하 작가는 누가 시키는대로 따라 살려고 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 어떤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독자적으로, 현실적으로 고민해야”한다고 합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어떤 사람들은 먹을 물도 부족한데 면도를 하고 세수도 했다고 해요. 엘르의 편집장인 장 도미니크 보비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전신 마비가 되었는데 오직 왼쪽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 장 도미니크 보비가 평생 해오던 대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20만번 이상 눈을 깜빡여 15개월에 걸쳐 쓴 책이 바로 <잠수종과 나비>였고, 책이 출간되고 8일만에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1980년대 일본의 미즈노 겐조도 눈깜박임으로 시집을 만들어 냈구요, 사마천도 궁형의 치욕을 당하고도 <사기>를 썼습니다. 가장 극한의 상황에서도 자신이 누릴 즐거움을 찾았던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자기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와닿습니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말처럼 쉽지 만은 않은 거 같아요. 즐기기에는 너무 바쁜 시대를 모두가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네, 정말 쉽지만은 않은 거 같아요. 김영하 작가가 이 책에서 하는 이야기인데요, 가끔 택시를 타면 택시 기사분들이 행복한 일체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손님이 탔는지 안탔는지 신경도 안 쓰고, 혼자 차 몰고 가면서 웃기도 하고, 라디오에 빠져 있는거죠. 이건 분명히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 것과는 좀 다릅니다. TV는 화면이 계속 바뀌고, 광고도 나오고 몰입이 어렵습니다. 스마트폰의 정보도 라디오가 주는 몰입의 경험을 거의 주지 못하죠. 라디오를 들으며 몰입이 되는 것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여유를 갖기 때문인거죠.
또 택시 이야기이기는 한데요, 김영하 작가가 뉴욕에서 택시를 탔더니 좌석 앞에 어떤 배우의 프로필이 붙여져 있었다고 해요. 왜 이런 것을 붙이고 있냐고 물으니까 알고 보니 이 택시 기사가 바로 그 연극 배우였습니다. 무슨 배역을 연기했냐고 물으니 당당하게 ‘리어왕’이라고 말하더라는 겁니다. 이 기사분은 그러니까 택시 기사이면서도 동시에 연극 배우였던 거죠. 자기만의 즐거움을 찾은 것인데요, 작가는 이렇게 우리가 은행원이면서 화가, 골프선수이면서 작가, 가수이면서 소설가, 학원 강사이면서 피아노 연주가처럼 여러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합니다. 리어왕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우리가 자기 나름대로의 독특한 즐거움을 찾고 살아간다면, 언론과 사회, 주변 사람들이 규정하는 내가 아닌 오직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거죠.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이기는 한데요, 자기나름대로의 독특한 즐거움을 위해서 김영하 작가는 어떤 소설은 써놓고 공개하지 않는 소설도 많다고 합니다.

6. 아, 그러면 소설을 쓰기 쓰는데 독자들에게 공개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쓰는 건가요?

네, 그런 셈인데요, 김영하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로지 소설을 쓰면서 오직 자신의 소설과 소설 속의 인물들과만 소통한다고 해요.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서 그 인물과 대화하면서 사건을 엮고, 소설의 세계가 완성되면 자기는 그 세계에서 나오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면 어떤 소설은 공개해서 독자들이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 소설가가 만든 세계에서 독자들이 소설 속 인물과 소통하는 거죠. 그래서 김영하 작가는 소설 쓰기는 독자와 별로 관계가 없다고 해요. 오로지 작가와 작가 자신의 세계와의 문제라고 합니다. 그래서 소설을 쓰는 동안, 쓰고 나서 갖고 있는 동안 그 소설은 자기 것이 되고, 아무도 그 즐거움을 훼손할 수 없다고 해요. 작가가 글을 쓰면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독자는 글을 읽으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전혀 다른 즐거움을 갖기 때문에 독자들의 반응을 얻거나 성공한 소설이 되는 것이 소설가의 목적이 아니라고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자기 자신만의 즐거움’을 김영하 작가 스스로는 소설을 쓰면서 찾고 있는 거죠. 인기를 얻거나 독자들에게 공감을 많이 얻어서가 아니라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소설을 쓴다는 건 어떻게 보면 이기적이고 자폐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변의 인정과 기대를 뒤로 하고 소설 속 인물과 소통하고 거기서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은 김영하 작가의 내면이 매우 강하고, 감성 근육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죠.

7. 우리 사회처럼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상황에서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자기가 즐거운 일을 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 눈에 어떻게 보일까를 더 신경쓰는 경우가 많죠. 페이북이나 카카오스토리 같은 것 때문에 남들 눈에 신경쓰는게 더 심해진 것 같아요.

SNS가 그렇게 만드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있어빌리티’라는 신조어가 유행하잖아요. 실제로는 없지만 ‘있어보이도록 만드는 능력’을 의미하는 말인데요, sns에서 유명인과 사진을 찍거나 사진을 절묘하게 편집해서 사실보다 이미지가 훨씬 더 근사하게 보이도록 만들어 자신을 과시하는 건데요, ‘있어빌리티’가 중요한 사회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즐거운 일보다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까를 더 신경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세요. 와인을 전문적으로 테이스팅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별점을 보고 와인을 고를까요? 평생음악을 사랑하고 들어온 사람이 남의 평가만 보고 콘서트 티켓을 살까요? 자신의 내면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만의 고유한 즐거움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 눈에 어떻게 보일까 신경 쓰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 휘둘리게 됩니다. 결국 강한 내면을 갖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즐거움을 가져야 하는 거죠.
제 경우에 책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고, 이 코너에서도 지금 책을 추천하고 있지만 솔직히 저는 책을 읽을 때 누군가 추천해 준 책은 참고는 하지만, 그 중에 실제로 읽게 되는 책은 거의 없습니다. 제가 읽고 싶은 책만 읽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 내가 어떤 책을 읽어야 즐거움을 느끼는지는 나 외의 다른 사람은 절대 알지 못하는 거니까요.

8. 자기만의 즐거움을 찾아라, 오늘 책 <말하다>에서 김영하 작가가 말하고 있는 바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이 책을 추천해주시는 이유 정리해주시죠.

제가 7살 아들이 하나 있는데요, 아이와 레고를 가지고 놀다보면, 어느 새 아이에게는 손도 못대게 하고 레고를 조립하는 즐거움에 빠져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몰입이 된 거죠. 그리고 저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즐거움을 알게 됩니다. 아들 녀석에게 레고를 자주 사다 주는데, 사실 아이 때문이라기 보다 제가 너무 즐겁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아이와 그림도 그렸는데요, 아이도 물론 즐거워했지만 그림 그리기가 제가 너무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웃으실 수도 있는데, ‘내가 그림에 이렇게 재능이 있구나’, ‘내가 그렸지만 꽤 근사하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을 깨닫게 된거죠. 그래서 그림을 좀 그려봐야겠다고 제 아내에게 말했더니 ‘그건 해서 뭐하냐 왜 놀 궁리만 하냐’고 묻던데요, 저는 단지 그냥 재밌어서 합니다. 별로 쓸모가 없는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즐거운 일이 되고 창조적인 생각과 영감을 주거든요.
우리 사회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을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주관이 강하고 내면이 단단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행복한 사람들이 많아지는 거구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소설을 읽고, 춤을 추고, 커피를 마시고, 여행을 떠나고, 영화를 만들고, 그런 돈 안되는 일들을 지금 하고 계시는지요? 이 책 <말하다>는 돈이 안되고 필요 없는 그런 것을 우리가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경제적 불황, 곳곳의 지진과 전쟁의 위협, 취업난과 같은 비관적인 현실과 미래에서도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힘이 거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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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개정3판
박상훈 지음 / 후마니타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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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1.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네, 지난 수요일이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지요? 그래서 가져온 책인데요, 출판사 후마니타스에서 만들고, 박상훈 선생이 쓴 <정치의 발견>이라는 책입니다. 박상훈 선생은요, 이 책을 발간한 후마니타스 출판사의 대표이기도 하구요, 동시에 정치학 박사이기도 합니다. 


2. 그러니까 출판사 대표께서 쓰신 정치에 관한 책인 셈이네요. 


 그렇습니다. 서울 합정에 가면 이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후마니타스 책다방이 있는데요, 분위기가 좋은 곳이라 저도 서울에 가면 가끔 들립니다. 그 때마다 한 쪽 책상에서 열심히 책을 읽으시고 자판을 두드리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이 바로 박상훈 선생님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정치의 발견>이라는 책은 우리에게 정치라는 것이 왜 필요한지, 정치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어떻게 정치적인 실천을 할 수 있는지를 다루는 책입니다. 


3. 그런데, 대개 ‘정치’나 ‘정치적’이라는 말이 좋지 않은 의미로 쓰이는 것 같아요. 영화에서 보면 “정치가가 하는 말을 믿어?”라는 대사도 자주 나오잖아요? 


 네, 우리 사회에는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하면서 국회의원을 욕하는 아주 이상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주변의 누군가가 국회의원이 되거나 정치인이 되면 겉으로는 아닌 척 하겠지만, 아마 속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을 부러워 할 겁니다. 그러면서도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 아침 7시부터 확성기를 틀고,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도 하고, 온 종일 사람들과 악수하러 다니는 거죠. 저희 집 앞에서도 아침 일찍부터 확성기를 틀어서, 대북 확성기 방송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아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책에 재밌는 사례가 나오는데요, 18대 국회의원에서 노회찬씨는 낙선을 했었는데 길을 지나다 우연히 한 부부를 만났다고 했요. 그런데 그 부부가 하는 말이 “자신들은 노회찬 후보가 정치인이 될까 봐 걱정해서 내심 떨어졌으면 했다”고 해요. 그래도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구요. 노회찬씨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놀랐는데, 그 부부가 무안해 할까봐 웃으며 “제가 정치인이 되어야지 아님 왜 출마했겠어요. 그럼 누굴 찍으셨어요?”라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당연히 노회찬씨를 찍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부부는 노회찬씨를 신뢰하고 지지하지만 그래도 정치인이 되지 않고, 정치에 오염되지 않았으면 했다는 겁니다. 어떤 정치인을 지지하지만, 그 정치인이 정치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 부부의 심리에 ‘정치’라는 말이 가진 이중성이 다 들어있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저자인 박상훈 선생은 누군가 정치를 하겠다고 하면 “기꺼이 정치를 하라”고 말한다고 해요.


4. 아, 그건 왜일까요? 정치적이라고 하면 사람을 이용하거나, 협잡을 꾸미거나 국회의사당에서 싸움을 하는 모습이 먼저 그려져서 오히려 저라면 말리게 될 것 같은데요.


 네, 저도 그럴 것 같아요. 우리나라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특권이 많다는 비판이 많이 있지만, 다르게 말하면 국회의원도 4년 계약직이라고 할 수도 있거든요. 선거를 해서 재신임을 받지 않으면 일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인지, 요즘 고등학생들 중에서도 정치인을 미래직업으로 희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게다가 정치 자체가 마치 ‘반인반수의 양면성’이 있습니다. ‘선한 목적’을 위해 헌신하고자 노력하면서도 그 수단으로서 강제력이라는 ‘악마적 수단’을 회피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박상훈 선생은 ‘정치’가 꼭 필요하다고 합니다. 오바마가 아직 대통령이 아니었던 시절, 이제 막 정치에 입문하려고 할 때 사람들이 “왜 정치판처럼 더럽고 추잡한 곳에 뛰어들려고 하는가?”를 묻습니다. 거기에 대해 오바마가 답변했던 부분을 한번 읽어드릴께요.


“그런 회의적 시각을 갖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정치에는 또 다른 전통이 있다. 그것은 아주 단순하고 분명한 생각에 기초를 두고 있다. 우리는 서로 서로에 대한 관심과 이해관계를 갖추고 있고, 그 때문에 우리를 하나로 결집시키는 힘이 분열시키는 힘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이 옳다고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해도 상당한 성취를 이룰 수 있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약간만 조정해도 모든 어린이가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도록 도와줄 수 있고 국가적으로 당면한 여러 어려운 문제들에 잘 대처할 수 있다”.


여기까지인데요, 오바마의 말을 정리하면 정치에는 나쁜 면이 있지만, ‘또 다른 전통’ 즉 사람들의 생각을 결집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를 가져오는 힘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박상훈 선생은 우리가 정치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버릴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정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정치를 좋게 바꾸기 위한 노력도 부정당하게 되니까요. 그리고 우리에게 정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도록 해서 멀리하게 해서 이득을 보는 집단도 누구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해요.


5. 이번 총선에서 대구 지역의 투표율이 가장 낮았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낮은 투표율도 이 책의 설명처럼 대구 시민분들이 정치에 대한 회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까요?


 네, 확실히 이번 선거는 그 이전보다 정치에 대해서 회의할 수밖에 없게 하는 이슈가 많았던 것 같아요. 특히 대구시민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느낄 사안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요, 또 다른 이유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에는 서울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은 열 개 동네를 뽑으면 예외 없이 가장 부자인 동네가 순서대로 나열된다고 해요. 투표율이 낮은 동네는 그 반대구요. 그렇게 보자면 전국에서 가장 어려운 대구의 경기가 낮은 투표율의 원인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언론에서 이야기들하는 것처럼 단지 대구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해서는 안되고, 정치에 무관심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봐야 하는 거죠. 먹고 살기도 바쁜데 정치에 대한 관심까지 가지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니까요.


6. 게다가 정치인들의 비리나 특권을 남용하는 신문 기사를 보면 정말 정치라는 것에 회의를 느끼게 되요. 아마 청취자분들 중 다수가 그러실 겁니다.


 네, 그런데요, 물론 정치인들의 비리나 특권을 남용하는 것은 당연히 없어야 하는 건데, 재밌는 것은 이 책은 그렇다고 해서 정치인이 윤리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라는 거에요. 정치인들은 좀 다른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보통의 사람들은 “악에 대해 폭력으로 대항하지 말라”가 사랑의 윤리지만, 정치가는 “너는 악에 대해 폭력으로 저항해야 한다”가 사랑의 윤리가 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정치가는 악을 막지 못하면 악이 만연해지는 것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인거죠. 그래서 위대한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의 말을 빌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정치가는 악에 대해 폭력으로 저항하기 위해 악마적 힘을 사용하는 운명을 가졌다” 고요. 그런 의미에서 좋은 정치가는 단지 윤리적이고 착하기만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 대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어리석고 비열하다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거죠. 


7. 그러니까 좋은 정치란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식으로는 이뤄지지 않고, 악마적인 힘을 이용해서라도 악과 싸우는 태도가 있을 때만 이뤄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네, 맞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소개해드리는 이 책 <정치의 발견>은 정치에 대한 책이면서 동시에, 좋은 정치인의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주는 책입니다. 정치인이 되기 위해 정치인이 갖춰야 할 덕목과 이상을 다루고 있는 책인 거죠. 그 중 하나가 바로 금방 말씀드린 것처럼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악과 맞서 싸우는 의지’이구요, 또 다른 하나는 ‘말의 힘’을 사용할 줄 아는 능력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말을 잘하는 분들이 많지만, 박상훈 선생은 ‘말의 힘’을 사용할 줄 아는 정치인으로 ‘오바마 대통령’을 소개합니다. 심지어 박상훈 선생은 마흔 다섯에 오바마가 서른세 살에 쓴 <아버지로부터의 꿈>을 읽었는데 오바마의 인간에 대한 이해가 너무 깊어 자기 자신이 압도당하는 느낌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8. 저도 말을 해야 하는 직업이라 말을 잘하는 것에 관심이 많은데요, 오바마 대통령의 어떤 말이 저자를 사로잡은 걸까요?


 미국에서 9.11 테러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이 전쟁을 시작하기 위해 분위기가 고조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오바마는 어떤 반전 집회에서 연설해 줄 것을 부탁받았다고 해요. 오바마의 많은 참모들이 반대했는데 오바마가 해보겠다고 하고, 연설문을 써서 집회에 나가 연설을 했다고 합니다. 반전집회, 그러니까 전쟁을 반대하는 집회에 나가서 오바마가 처음 한 말이 뭔지 아세요? 어떤 말을 했을 것 같아요? (대답) 놀랍게도 “나는 모든 전쟁에 반대하지는 않는 사람으로서 이 자리에 나왔다” 며 연설을 시작합니다. 반전집회에서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전쟁하지 말자’고 경쟁하듯 이야기하는데, 거기에 나와서 ‘모든 전쟁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니까 야유가 터져 나온 거죠. 그런데, 오바마가 연설을 이어가자 분위기는 급 반전이 이뤄집니다. 제가 한 부분만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모든 전쟁에 반대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이 자리에 나왔다. 남북전쟁은 역사상 가장 잔인한 전쟁 가운데 하나였지만, 무력으로 인한 시련과 수많은 인명의 희생을 통해 이 나라를 완성했고 이 땅에서 노예제도라는 사회적 악을 철폐할 수 있었다.

나는 모든 전쟁에 반대하지 않는다. 9월 11일, 그 처참한 죽음과 폐허 그리고 그 숱한 먼지와 눈물을 목격했고, 이교도에게는 무자비해도 좋다는 미명 아래 무고한 사람들을 살육한 자들을 끝까지 추적하여 색출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지지했으며, 그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내 손에 무기를 들 것이다.

나는 모든 전쟁에 반대하지 않는다. 내가 반대하는 건 어리석은 전쟁이다. 내가 반대하는 건 경솔한 전쟁이다. 내가 반대하는 건 탁상공론에만 열중하는 이 정부의 몇몇 인사들이 인명손실이나 시민의 고통에 대해 고려도 하지 않는 정책을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오바마는 자신은 모든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지금 하려는 이라크 전쟁은 경솔한 전쟁이기에 반대한다고 합니다. 모든 전쟁을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모든 전쟁에 반대하지만 이라크 전쟁은 반대한다’고 말하는 편이 훨씬 더 합리적인 태도처럼 보이고, 이라크 전쟁이 경솔하고 오만한 전쟁이라는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죠. 그러면서 이라크 전쟁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의견까지도 존중합니다. 9.11 테러 이후의 울분을 이해한다고, 나름대로의 명분도 있다는 것을 읽어주면서 그들을 적으로 돌려 세우지 않는 것이지요.


9. 좋은 정치인이 갖춰야 할 덕목이 참 많은데요, 이제 마무리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먼저 이번에 국회의원이 되신 분들도 지혜로운 말과 용기로 악과 싸워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책은 정치는 더럽고 추잡한 면이 있더라도 그것이 우리가 사는 사회와 우리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어느 때보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하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는 바꿔야 할 현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청년 실업 문제, 노인 빈곤 문제, 교육 문제, 미세 먼지와 같은 환경 문제등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대구의 경우는 전국 시도 중 1인당 소득이 가장 낮아 힘든 시기를 겪고 계신 분들도 많구요. 투표 참여는 중요한 정치 참여 행위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닙니다. 우리 모두 깨어있는 정신으로 우리가 뽑은 정치인들을 지지하고, 비판하고, 감시할 때 좀 더 좋은 정치인이 나오게 되고, 그러면 더 좋은 정치가 실현되고, 좋은 정치가 좋은 사회를 만듭니다.

 사실 이 책은 박상훈 선생이 어느 진보적인 정당에서 했던 강의록을 정리한 것인데요, 책에서도 나오듯이 정치적 입장과 이 책 내용은 별로 관련은 없어요. 누가 읽으셔도 우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정치에 대한 나름대로의 판단과 기준을 정립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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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장소, 환대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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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교통방송에서 스물한번째로 소개한 책은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이다. 이 책은 사람이란 하나의 자격이며, 사람 자격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사회로 들어가기 위한 인정투쟁을 하고 있고, 그들에게 장소를 내어주는 절대적 환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논증하고 있다. 여러 논증들이 다채롭게 엮여 단번에 그 전모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 책 읽기는 내게 세 가지 의미에서 특별한 경험이었다.

 

첫째는, 그동안 내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써왔던 주제, 예를 들면 명함의 현상학, 직업의 지배, 겸손의 현상학으로 썼던 글이 이 책의 주제의식에 의해 거의 대부분 포괄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명함과 직업은 이 책의 주제에 비춰보면, 사람 자격을 상징하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나 자신이 하나의 유령처럼 여기 있으면서도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를 나는 거기에서 찾았다. 겸손의 현상학이라는 주제 역시 이 책의 주제에서 비춰보면 상호작용 의례라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상호작용 의례상에서 겸손인 것이 사회 구조적으로는 비겁이 될 수 있고, 겸손은 이 책의 '모욕의 의미'를 다루는 장에서 보듯이 누군가에게는 굴욕을 안겨 줄 수 있다.  

 

둘째는, 본색소사이어티에서 진행했던 '이단의 목소리'의 문제의식과 이 책의 주제는 거의 유사하다. 우리는 이단을 사회로부터 정당성을 얻기 위해 투쟁하는 자들이라 규정하고, 이들을 사회로부터 추방당한 자로 이름했는데 이 책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가 말하는 '이단'은 인간이지 사람은 아니다. 책에 나오는 인정투쟁에 대한 내용도 이단의 정당성 투쟁과 매우 유사하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사람됨'의 문제로까지 인식하지 않았지만 이 책은 그러하다는 것, 이 책에서 개인의 차원에 집중하는 것과는 달리 운동의 차원에서 접근했다는 것, 마지막으로 이단들의 정당성 투쟁에 집중한 나머지 사회의 역할을 규명하지 못했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 이 책은 공공성을 그 답으로 제시한다. 공공성은 환대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셋째는, 대단히 성실한 책이라는 것이다.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 자체는 이렇듯 이단과 정체성의 문제,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비교적 유행하는 흔한 주장일 수 있지만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엄밀하고 정직하다. 좋은 지적 결과물은 성실한 지적 훈련에서만 나온다는 것을 보여준 책이다. 주변에서 이뤄지는 사소한 사고를 사건으로 다루는 작가의 솜씨는 그럴싸한 직관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다. 나의 게으름에 대해서도 반성하게 된다.   

 

 

<이단의 목소리>를 시작하며.

에드워드 사이드는 사람들이 추방된다는 것의 의미를 완전한 단절, 고립, 절망적 분리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한다. 추방이 그런 완벽한 외과적 수술과 같은 것이라면 차라리 상황은 나았을 것이다. 오히려 추방 당한 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그런 고립과 분리이기 보다, "당신이 추방 상태에 있고, 당신의 집이 사실상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현 생활에서의 정상적인 왕래가 옛 거처와 끊임 없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그것이 감질나고 충족되지 못한 접촉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케 하는 것들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완전히 벗어난 것도 아니고 완전히 속한 것도 아닌 그 '어정쩡한 상태' 말이다.

 

우리는 이 어정쩡한 상태에 놓인 자들을, 많은 개념상의 오해에도 불구하고, "이단"으로 부르고자 한다. 사회적 정당성을 어느 순간에 상실해 버린 이들은 사실상 사회로부터부터 '정죄되었고', '추방된 것'과 마찬가지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적대로 추방의 고통이 그 '어정쩡함'에 있다면 사회와 일상적으로 만나고 교섭하면서도 사회와 진정으로 만나는데는 수많은 오해와 불신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소위 이단으로 불리는 자들이 겪는 어려움과 일치한다. 한 사회 내에 함께 현존하지만 연대에서는 배제된 자들. 바로 이단들이다.

 

철학본색과 대구경북학술공동체인 비상구에서는 소위 '이단'에 놓여 있는 자들과 몇 차례 만나는 자리를 만들고자 한다. 사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자들, 그래서 어정쩡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자들의 목소리.앞으로 몇 달 간 연속, 불연속적으로 진보정당 관계자, 양심적 병역거부자, 성소수자 등등 여러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분명하게 하고 싶은 한 가지는 우리가 그들을 '이단'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단은 사회적 정당성이 상실된 상태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것, 즉 사회가 그렇다고 규정하고 있는 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단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거나, 사회와의 손쉬운 화해나 조화를 꿈꾸지 않는 자들이다. 그래서 <이단의 목소리>는 이들이 어째서 그런 방식으로 살기로 했는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고, 그들과의 연대 가능성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이단의 목소리>는 이들을 편들고 위로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이들을 '적대적으로 여기는 것' 만큼이나 '대상화'하거나 '타자화' 시킬 위험이 있다. 동등한 시민으로, 그들의 입이 '말하는 입'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장이 되도록 하는 것에, '이단'이기 이전에 '목소리'를 지닌 인간으로서 그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14.4.8 본색소사이어티 권영민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1.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문학과 지성사에서 만들고, 김현경이 쓴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이제 출간된지 딱 1년이 되었는데요, 출간 이후 이 책은 하나의 '사건'이라고까지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책의 제목처럼 <사람, 장소, 환대>라는 세가지 개념을 중심으로 “사람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답을 찾아보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사람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어떻게 보면 단순하지만 아주 철학적인 질문이라 어렵게도 느껴지는데요. 저자가 생각하는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지난 3월 26일이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이 있었던지 25년이 되었던 해였는데요, 프랑스 민법에서는 사람이 아무 연락 없이 그의 집이나 거처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때 실종을 선고하는데, 이 때부터 실종추정기간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실종추정기간은 실종자가 귀가하거나, 죽었다는 증거가 나타나거나, 실종 선고로부터 10년이 흐르면 종료되는데요, 만약 실종자가 실제로 어딘가에 살아있다고 해도 10년이 지나면 죽었다고 여겨지게 됩니다.

 

3.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살아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겠네요.

 

그렇죠? 그래서 저자는 사람과 인간을 구분합니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저자인 김현경 선생에 따르면 어떤 존재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 안으로 들어오지 않아도 인간입니다. 실종자라는 것은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사회 속에서 확인되고 있지 않아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 거지요. 즉 사람이라는 것은 그냥 태어나서 살아간다고 해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일종의 자격이고 누군가 그 존재를 사람으로 인정해줄 때만 사람이 되는 거죠. 또 다른 예로, 태아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아직 자궁에 있는 태아는 분명히 인간이지만 사람은 아닙니다. 법적으로 일단 출생한 신생아를 죽이는 것은 살인죄가 인정되지만 태아를 죽이는 행위는 살인죄가 아닙니다.

 

이 뿐만 아니라 전통 사회에서는 출생했다고 모두 사람으로 인정된 것은 아니었다고 해요. 지금은 출생과 동시에 아기는 사람으로 인정되지만 과거에는 아기가 출생하더라도 백일잔치를 거치면 사람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만약 백일 전에 죽으면 태아가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장례도 치르지 않고 매장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점을 보면 인간이라고 해서 모두가 사람인 것은 아닌 거죠. 그런데 오해하지 말아야 마셔야 할 것이 있는데요, 이 책에서 사람과 인간을 구분한다고 해서 태아는 인간이니까 낙태해도 된다는 식의 주장을 이 책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로부터의 통과의례라던가 어떤 인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거죠.

 

4. 사람과 인간은 다른 이유는 사회로부터 사람으로 인정 받았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와 관련이 되어 있는 거라고 할 수 있는 거군요. 저도 예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어르신들은 예전에 백일이 되어서야 아기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는 하셨다고 하더라구요. 그것도 백일 이후에 사람이 되었다는 것과 관련이 되어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이 책에서는 노예의 사례도 나오는데요, 노예에게는 온전한 이름이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 로마법에서는 노예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으로 규정했다고 해요. 그리고 “노예는 태아와 같다”는 격언도 있었다고 합니다. 노예가 살아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죽었고, 사회 밖으로 쫓겨나 있고, 실종자 같은 존재라는 거죠. 그래서 저자는 사람이라는 것은 사회로부터 사람임을 인정 받을 때 얻어지는 하나의 자격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트롤로프의 <미국인의 가정예절>이라는 책에서는 흑인 남자 노예 앞에서 태연히 코르셋을 졸라매는 숙녀나, 밤중에 깼을 때 목이 마를까봐 부부 침실 한구석에 여자 노예를 재우기도 했다고 해요. 이 경우 이들은 노예들이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같은 공간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격으로 대우하지 않는 거죠.

 

5. 아, 그렇게까지나요?

 

충격적이죠? 이 책에는 이처럼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한 자들을 상징하는 존재로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소개합니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샤미소의 소설인데요, 어떤 한 사나이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거절하기 힘든 거래를 제안합니다. “다름 아니라 조금 전 정원을 거닐 때 햇빛 아래 펼쳐진 당신의 멋진 그림자를 보았노라고, 그 그림자가 몹시 마음에 드는데 자기에게 그걸 주는 대가로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이 사나이는 어떻게 했을까요? 진행자님은 어떻게 하셨을 것 같으세요? (대답) 이 사나이는 그림자를 주고 그 대가로 금을 무한하게 만들어내는 ‘행운의 자루’를 얻게 됩니다. 엄청난 부를 가지게 되었으니 너무 좋았을 것 같은데요, 이 사나이는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더 이상 낮 동안에 길거리를 걸을 수 없게 된 거에요. 사람들이 그림자가 없다고 이 사나이에게 손가락질을 하는거죠. 그림자라는 것은 그렇게 큰 용도도 없고, 금을 만들어내는 행운의 자루처럼 부를 가져다 주지도 않는데, 사람들은 이 남자가 그림자가 없다고 배척합니다. 심지어 결혼까지 좌절되고 맙니다.

 

6. 언뜻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가 연상이 되는데요, 그림자는 그 사나이의 영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책 <사람, 환대, 장소>는 이 사나이에게서 ‘그림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찾아가는 내용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책의 저자는요, 그림자가 의미하는 것은 영혼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림자는 영혼처럼 고상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아주 세속적이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해요. 그림자가 없어서 결혼도 못하고, 그림자가 없어서 길거리도 못 다니니까요. 사람들은 그림자가 없는 이 사내를 더럽고 역겨운 것을 볼 때처럼 멀리합니다. 그래서 이 남자는 하루 종일 집에 틀어 박혀 있는거죠. 그러니까 이 사나이는 인간이기는 했지만, 그림자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으로 인정 받지 못했던 거에요. 그러면 이 이야기에서 ‘그림자’는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가 없기 때문에 사람으로 인정 받지 못했다면 그림자가 있다면 사람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니까요.

 

7. 그러면 사람이 사람으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그림자가 필요한 것인데, 그림자가 영혼도 아니고 돈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사실 돈이 많다고 해서 사람임을 꼭 인정 받게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많은 경우에서 볼 수 있는데요, 예를 들면 유명한 축구 선수가 중요한 국가 대표 경기에서 계속 헛발질을 하고, 그 때문에 우리나라 국가 대표팀이 결국 패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경우 운동선수가 유명한 사람이니까 돈은 많겠지만 그 선수가 살고 있는 동네의 헬스장이나 커피샾에 가는 것은 굉장히 부담스러울 거에요. 돈과 권력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이 경우처럼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꺼려지는데, 그것은 역시 그림자를 판 사나이처럼 손가락질을 받고 배척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거든요. 그러니까 모욕을 당할까봐 두려운 겁니다.

 

그리고 법이 권리를 보장해준다고 해도 항상 사람으로 인정 받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우리나라 법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고 선언하죠. 잘 살거나 못 살거나, 배웠거나 못 배웠거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고는 하는데요,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 않습니다. 예고 없이 실직을 당했다거나, 일한 대가가 터무니 없이 적을 때, 아무리 절약해도 반지하 셋방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누군가가 일부러 모욕감을 준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는 굴욕감을 느끼는 거죠.

 

그래서 저자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림자를 갖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사람으로 인지되는 것은 그림자로 인지되는 것이라고 해요. 그림자는 조금씩 크기가 다르지만 다 비슷하잖아요? 몸과 달리 색깔과 표정이 없고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죽으면서 함께 사라지는 거죠. 어떤 사람이 돈이 많든 없든, 많이 배웠든 못 배웠든 사람들의 인격이나 개성과 상관 없이 같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환대해주고 있을 수 있는 장소를 허락해줘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합니다. 결국 그림자는 우리의 몸이 있는 자리를 표시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죠. 앞에서 말씀 드린 축구 선수의 경우도 사회가 그 사람을 유명한 국가대표 축가선수로 인지해서는 그 선수를 사람으로 인정하고 환대해줄 수 없는 거죠. 유명한 국가대표 선수든, 장애가 있든, 못 배웠든, 가난하든 간에 누구에게라도 사회에 자리를 내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8. 현실에서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못 배웠다는 이유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차별이 있는 것 같아요.

 

얼마 전 뉴스에서 집은 원룸 월세에 살면서 고급 수입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요, 그 뉴스를 본 대부분의 반응은 ‘생각이 없다’, ‘철이 없다’, ‘겉멋만 들었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집이 없거나, 벤츠나 BMW와 같은 고급차를 타지 않으면 사람 대접 해주지 않는 사회에서 수입차를 사는 편이 집 값 보다는 훨씬 더 싸게 먹힙니다.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든 힘을 기울여 사회에 들어오기 위해 인정투쟁을 하는데, 정작 우리 사회는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일에 너무 게으른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9. 마지막으로 우리 청취자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시는 이유를 정리해주시죠.

 

사실 저 자신이 모든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환대해주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좋은 사회는 누구에게라도 각자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환대해주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저마다에게 각자의 자리를 허락해줄 때 사람들 간에 우정이 생겨 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한번 생각해 보시면 우정이 없는 사회입니다. 사람들이 일상적인 모욕과 굴욕감에 시달립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종업원이 쭈그리고 앉아서 주문을 받게 합니다. 백화점 영업이 시작되는 시간에 직원들이 입구에 늘어서서 ‘어서 오세요 고객님 사랑합니다’ 와 같은 별로 의미도 없는 말을 한참동안 복창하게 합니다. 계산원이나 조립라인 작업원처럼 한 곳에 장시간 서 있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성인용 기저귀를 차고 근무하게 합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는 사회인거죠. 평등하다고 하지만 사람들에게 이런 굴욕감을 주는 사회에서는 우정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우정 대신 끝없는 경쟁과 그로 인한 경멸이 생기는 거죠. 그건 요즘 학교 폭력을 보면 분명히 드러납니다. 예전에는 ‘일진’이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었는데요, 지금은 아닙니다. 교실 내에서의 위계는 사회 내에서의 위계와 비슷합니다. 가진 게 많은 아이들, 공부 잘하는 아이, 운동 잘하는 아이가 꼭대기에 있고, 집이 가난하거나 특정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밑바닥에 있습니다. 위에 있는 아이들이 아래에 있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거죠. 아이들조차 서로의 자리를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정도 희박해졌습니다.

 

이 책은 대단히 좋은, 제가 근래 읽은 책 중에 가장 좋은 책이라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하지만 읽기 쉬운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 절 한 절 힘들게 따라 읽어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시며 뇌도 단련해 보시고, 모욕주고 모욕당하는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도 고민하시는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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