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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장소, 환대 ㅣ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평점 :
덧붙임.
교통방송에서 스물한번째로 소개한 책은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이다. 이 책은 사람이란 하나의 자격이며, 사람 자격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사회로 들어가기 위한 인정투쟁을 하고 있고, 그들에게 장소를 내어주는 절대적 환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논증하고 있다. 여러 논증들이 다채롭게 엮여 단번에 그 전모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 책 읽기는 내게 세 가지 의미에서 특별한 경험이었다.
첫째는, 그동안 내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써왔던 주제, 예를 들면 명함의 현상학, 직업의 지배, 겸손의 현상학으로 썼던 글이 이 책의 주제의식에 의해 거의 대부분 포괄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명함과 직업은 이 책의 주제에 비춰보면, 사람 자격을 상징하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나 자신이 하나의 유령처럼 여기 있으면서도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를 나는 거기에서 찾았다. 겸손의 현상학이라는 주제 역시 이 책의 주제에서 비춰보면 상호작용 의례라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상호작용 의례상에서 겸손인 것이 사회 구조적으로는 비겁이 될 수 있고, 겸손은 이 책의 '모욕의 의미'를 다루는 장에서 보듯이 누군가에게는 굴욕을 안겨 줄 수 있다.
둘째는, 본색소사이어티에서 진행했던 '이단의 목소리'의 문제의식과 이 책의 주제는 거의 유사하다. 우리는 이단을 사회로부터 정당성을 얻기 위해 투쟁하는 자들이라 규정하고, 이들을 사회로부터 추방당한 자로 이름했는데 이 책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가 말하는 '이단'은 인간이지 사람은 아니다. 책에 나오는 인정투쟁에 대한 내용도 이단의 정당성 투쟁과 매우 유사하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사람됨'의 문제로까지 인식하지 않았지만 이 책은 그러하다는 것, 이 책에서 개인의 차원에 집중하는 것과는 달리 운동의 차원에서 접근했다는 것, 마지막으로 이단들의 정당성 투쟁에 집중한 나머지 사회의 역할을 규명하지 못했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 이 책은 공공성을 그 답으로 제시한다. 공공성은 환대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셋째는, 대단히 성실한 책이라는 것이다.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 자체는 이렇듯 이단과 정체성의 문제,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비교적 유행하는 흔한 주장일 수 있지만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엄밀하고 정직하다. 좋은 지적 결과물은 성실한 지적 훈련에서만 나온다는 것을 보여준 책이다. 주변에서 이뤄지는 사소한 사고를 사건으로 다루는 작가의 솜씨는 그럴싸한 직관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다. 나의 게으름에 대해서도 반성하게 된다.
<이단의 목소리>를 시작하며.
에드워드 사이드는 사람들이 추방된다는 것의 의미를 완전한 단절, 고립, 절망적 분리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한다. 추방이 그런 완벽한 외과적 수술과 같은 것이라면 차라리 상황은 나았을 것이다. 오히려 추방 당한 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그런 고립과 분리이기 보다, "당신이 추방 상태에 있고, 당신의 집이 사실상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현 생활에서의 정상적인 왕래가 옛 거처와 끊임 없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그것이 감질나고 충족되지 못한 접촉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케 하는 것들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완전히 벗어난 것도 아니고 완전히 속한 것도 아닌 그 '어정쩡한 상태' 말이다.
우리는 이 어정쩡한 상태에 놓인 자들을, 많은 개념상의 오해에도 불구하고, "이단"으로 부르고자 한다. 사회적 정당성을 어느 순간에 상실해 버린 이들은 사실상 사회로부터부터 '정죄되었고', '추방된 것'과 마찬가지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적대로 추방의 고통이 그 '어정쩡함'에 있다면 사회와 일상적으로 만나고 교섭하면서도 사회와 진정으로 만나는데는 수많은 오해와 불신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소위 이단으로 불리는 자들이 겪는 어려움과 일치한다. 한 사회 내에 함께 현존하지만 연대에서는 배제된 자들. 바로 이단들이다.
철학본색과 대구경북학술공동체인 비상구에서는 소위 '이단'에 놓여 있는 자들과 몇 차례 만나는 자리를 만들고자 한다. 사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자들, 그래서 어정쩡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자들의 목소리.앞으로 몇 달 간 연속, 불연속적으로 진보정당 관계자, 양심적 병역거부자, 성소수자 등등 여러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분명하게 하고 싶은 한 가지는 우리가 그들을 '이단'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단은 사회적 정당성이 상실된 상태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것, 즉 사회가 그렇다고 규정하고 있는 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단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거나, 사회와의 손쉬운 화해나 조화를 꿈꾸지 않는 자들이다. 그래서 <이단의 목소리>는 이들이 어째서 그런 방식으로 살기로 했는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고, 그들과의 연대 가능성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이단의 목소리>는 이들을 편들고 위로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이들을 '적대적으로 여기는 것' 만큼이나 '대상화'하거나 '타자화' 시킬 위험이 있다. 동등한 시민으로, 그들의 입이 '말하는 입'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장이 되도록 하는 것에, '이단'이기 이전에 '목소리'를 지닌 인간으로서 그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14.4.8 본색소사이어티 권영민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1.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문학과 지성사에서 만들고, 김현경이 쓴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이제 출간된지 딱 1년이 되었는데요, 출간 이후 이 책은 하나의 '사건'이라고까지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책의 제목처럼 <사람, 장소, 환대>라는 세가지 개념을 중심으로 “사람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답을 찾아보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사람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어떻게 보면 단순하지만 아주 철학적인 질문이라 어렵게도 느껴지는데요. 저자가 생각하는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지난 3월 26일이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이 있었던지 25년이 되었던 해였는데요, 프랑스 민법에서는 사람이 아무 연락 없이 그의 집이나 거처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때 실종을 선고하는데, 이 때부터 실종추정기간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실종추정기간은 실종자가 귀가하거나, 죽었다는 증거가 나타나거나, 실종 선고로부터 10년이 흐르면 종료되는데요, 만약 실종자가 실제로 어딘가에 살아있다고 해도 10년이 지나면 죽었다고 여겨지게 됩니다.
3.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살아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겠네요.
그렇죠? 그래서 저자는 사람과 인간을 구분합니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저자인 김현경 선생에 따르면 어떤 존재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 안으로 들어오지 않아도 인간입니다. 실종자라는 것은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사회 속에서 확인되고 있지 않아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 거지요. 즉 사람이라는 것은 그냥 태어나서 살아간다고 해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일종의 자격이고 누군가 그 존재를 사람으로 인정해줄 때만 사람이 되는 거죠. 또 다른 예로, 태아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아직 자궁에 있는 태아는 분명히 인간이지만 사람은 아닙니다. 법적으로 일단 출생한 신생아를 죽이는 것은 살인죄가 인정되지만 태아를 죽이는 행위는 살인죄가 아닙니다.
이 뿐만 아니라 전통 사회에서는 출생했다고 모두 사람으로 인정된 것은 아니었다고 해요. 지금은 출생과 동시에 아기는 사람으로 인정되지만 과거에는 아기가 출생하더라도 백일잔치를 거치면 사람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만약 백일 전에 죽으면 태아가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장례도 치르지 않고 매장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점을 보면 인간이라고 해서 모두가 사람인 것은 아닌 거죠. 그런데 오해하지 말아야 마셔야 할 것이 있는데요, 이 책에서 사람과 인간을 구분한다고 해서 태아는 인간이니까 낙태해도 된다는 식의 주장을 이 책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로부터의 통과의례라던가 어떤 인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거죠.
4. 사람과 인간은 다른 이유는 사회로부터 사람으로 인정 받았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와 관련이 되어 있는 거라고 할 수 있는 거군요. 저도 예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어르신들은 예전에 백일이 되어서야 아기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는 하셨다고 하더라구요. 그것도 백일 이후에 사람이 되었다는 것과 관련이 되어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이 책에서는 노예의 사례도 나오는데요, 노예에게는 온전한 이름이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 로마법에서는 노예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으로 규정했다고 해요. 그리고 “노예는 태아와 같다”는 격언도 있었다고 합니다. 노예가 살아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죽었고, 사회 밖으로 쫓겨나 있고, 실종자 같은 존재라는 거죠. 그래서 저자는 사람이라는 것은 사회로부터 사람임을 인정 받을 때 얻어지는 하나의 자격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트롤로프의 <미국인의 가정예절>이라는 책에서는 흑인 남자 노예 앞에서 태연히 코르셋을 졸라매는 숙녀나, 밤중에 깼을 때 목이 마를까봐 부부 침실 한구석에 여자 노예를 재우기도 했다고 해요. 이 경우 이들은 노예들이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같은 공간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격으로 대우하지 않는 거죠.
5. 아, 그렇게까지나요?
충격적이죠? 이 책에는 이처럼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한 자들을 상징하는 존재로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소개합니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샤미소의 소설인데요, 어떤 한 사나이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거절하기 힘든 거래를 제안합니다. “다름 아니라 조금 전 정원을 거닐 때 햇빛 아래 펼쳐진 당신의 멋진 그림자를 보았노라고, 그 그림자가 몹시 마음에 드는데 자기에게 그걸 주는 대가로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이 사나이는 어떻게 했을까요? 진행자님은 어떻게 하셨을 것 같으세요? (대답) 이 사나이는 그림자를 주고 그 대가로 금을 무한하게 만들어내는 ‘행운의 자루’를 얻게 됩니다. 엄청난 부를 가지게 되었으니 너무 좋았을 것 같은데요, 이 사나이는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더 이상 낮 동안에 길거리를 걸을 수 없게 된 거에요. 사람들이 그림자가 없다고 이 사나이에게 손가락질을 하는거죠. 그림자라는 것은 그렇게 큰 용도도 없고, 금을 만들어내는 행운의 자루처럼 부를 가져다 주지도 않는데, 사람들은 이 남자가 그림자가 없다고 배척합니다. 심지어 결혼까지 좌절되고 맙니다.
6. 언뜻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가 연상이 되는데요, 그림자는 그 사나이의 영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책 <사람, 환대, 장소>는 이 사나이에게서 ‘그림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찾아가는 내용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책의 저자는요, 그림자가 의미하는 것은 영혼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림자는 영혼처럼 고상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아주 세속적이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해요. 그림자가 없어서 결혼도 못하고, 그림자가 없어서 길거리도 못 다니니까요. 사람들은 그림자가 없는 이 사내를 더럽고 역겨운 것을 볼 때처럼 멀리합니다. 그래서 이 남자는 하루 종일 집에 틀어 박혀 있는거죠. 그러니까 이 사나이는 인간이기는 했지만, 그림자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으로 인정 받지 못했던 거에요. 그러면 이 이야기에서 ‘그림자’는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가 없기 때문에 사람으로 인정 받지 못했다면 그림자가 있다면 사람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니까요.
7. 그러면 사람이 사람으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그림자가 필요한 것인데, 그림자가 영혼도 아니고 돈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사실 돈이 많다고 해서 사람임을 꼭 인정 받게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많은 경우에서 볼 수 있는데요, 예를 들면 유명한 축구 선수가 중요한 국가 대표 경기에서 계속 헛발질을 하고, 그 때문에 우리나라 국가 대표팀이 결국 패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경우 운동선수가 유명한 사람이니까 돈은 많겠지만 그 선수가 살고 있는 동네의 헬스장이나 커피샾에 가는 것은 굉장히 부담스러울 거에요. 돈과 권력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이 경우처럼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꺼려지는데, 그것은 역시 그림자를 판 사나이처럼 손가락질을 받고 배척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거든요. 그러니까 모욕을 당할까봐 두려운 겁니다.
그리고 법이 권리를 보장해준다고 해도 항상 사람으로 인정 받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우리나라 법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고 선언하죠. 잘 살거나 못 살거나, 배웠거나 못 배웠거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고는 하는데요,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 않습니다. 예고 없이 실직을 당했다거나, 일한 대가가 터무니 없이 적을 때, 아무리 절약해도 반지하 셋방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누군가가 일부러 모욕감을 준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는 굴욕감을 느끼는 거죠.
그래서 저자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림자를 갖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사람으로 인지되는 것은 그림자로 인지되는 것이라고 해요. 그림자는 조금씩 크기가 다르지만 다 비슷하잖아요? 몸과 달리 색깔과 표정이 없고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죽으면서 함께 사라지는 거죠. 어떤 사람이 돈이 많든 없든, 많이 배웠든 못 배웠든 사람들의 인격이나 개성과 상관 없이 같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환대해주고 있을 수 있는 장소를 허락해줘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합니다. 결국 그림자는 우리의 몸이 있는 자리를 표시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죠. 앞에서 말씀 드린 축구 선수의 경우도 사회가 그 사람을 유명한 국가대표 축가선수로 인지해서는 그 선수를 사람으로 인정하고 환대해줄 수 없는 거죠. 유명한 국가대표 선수든, 장애가 있든, 못 배웠든, 가난하든 간에 누구에게라도 사회에 자리를 내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8. 현실에서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못 배웠다는 이유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차별이 있는 것 같아요.
얼마 전 뉴스에서 집은 원룸 월세에 살면서 고급 수입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요, 그 뉴스를 본 대부분의 반응은 ‘생각이 없다’, ‘철이 없다’, ‘겉멋만 들었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집이 없거나, 벤츠나 BMW와 같은 고급차를 타지 않으면 사람 대접 해주지 않는 사회에서 수입차를 사는 편이 집 값 보다는 훨씬 더 싸게 먹힙니다.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든 힘을 기울여 사회에 들어오기 위해 인정투쟁을 하는데, 정작 우리 사회는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일에 너무 게으른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9. 마지막으로 우리 청취자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시는 이유를 정리해주시죠.
사실 저 자신이 모든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환대해주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좋은 사회는 누구에게라도 각자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환대해주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저마다에게 각자의 자리를 허락해줄 때 사람들 간에 우정이 생겨 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한번 생각해 보시면 우정이 없는 사회입니다. 사람들이 일상적인 모욕과 굴욕감에 시달립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종업원이 쭈그리고 앉아서 주문을 받게 합니다. 백화점 영업이 시작되는 시간에 직원들이 입구에 늘어서서 ‘어서 오세요 고객님 사랑합니다’ 와 같은 별로 의미도 없는 말을 한참동안 복창하게 합니다. 계산원이나 조립라인 작업원처럼 한 곳에 장시간 서 있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성인용 기저귀를 차고 근무하게 합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는 사회인거죠. 평등하다고 하지만 사람들에게 이런 굴욕감을 주는 사회에서는 우정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우정 대신 끝없는 경쟁과 그로 인한 경멸이 생기는 거죠. 그건 요즘 학교 폭력을 보면 분명히 드러납니다. 예전에는 ‘일진’이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었는데요, 지금은 아닙니다. 교실 내에서의 위계는 사회 내에서의 위계와 비슷합니다. 가진 게 많은 아이들, 공부 잘하는 아이, 운동 잘하는 아이가 꼭대기에 있고, 집이 가난하거나 특정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밑바닥에 있습니다. 위에 있는 아이들이 아래에 있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거죠. 아이들조차 서로의 자리를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정도 희박해졌습니다.
이 책은 대단히 좋은, 제가 근래 읽은 책 중에 가장 좋은 책이라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하지만 읽기 쉬운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 절 한 절 힘들게 따라 읽어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시며 뇌도 단련해 보시고, 모욕주고 모욕당하는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도 고민하시는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