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덧붙임.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리어왕)
이번 주는 교통방송에서 김영하의 <말하다>를 소개했다. 여러 곳에서 이뤄진 인터뷰와 강의를 모은 것이라 하나로 관통하는 주제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지만, 굳이 정리해보자면 “자기 자신만의 기쁨을 찾아라” 정도가 될 것 같다. 독자적이고, 개별적인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만, 즉 누군가의 취향에 종속되지 않고서야 한 사람의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김영하 작가의 개인의 삶, 문학, 글을 통해 표현된다. 심지어 김영하 작가는 소설 쓰기에 대해서도 누군가와 나눠가질 수 없는 불가분의 것, 소통 가능하지 않는 어떤 것이라고 말한다. 소설을 쓰는 것과 읽는 것은 일견 비슷해 보일 뿐 사실은 전혀 다른데, 쓰는 행위에는 세계를 창조하는 즐거움이 있고, 읽는 것에 소설가의 세계를 만나는 기쁨이 있다는 것이다. 결코 소설가와 독자가 소설을 통해 직접 만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간접적으로 만난다. 와인 고를 때 남의 취향에 따를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 지금 당장 예술가가 되어라는 강권부터 소설 쓰기의 은밀한 즐거움에 이르기까지 모두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즐거움’을 가져라는 내용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에 동의하는 것은 물론이다. 뉴욕에서 만난 택시기사가 알고보니 연극배우기도 했다는 김영하 작가의 말을 들으면서 지금 내 포지션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아주 즐거운 자유를 나는 만끽하고 있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도 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누구일까? 쿵푸팬더3을 보면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던 대목도 바로 이 지점이다. 나는 거위의 아들인가, 팬더의 아들인가? 나는 국수집 먹보인가, 용의 전사인가?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포는 그 자신이 그 모든 것임을 알고 난 후 용의 전사가 된다. 어떤 학위나 직책으로 밖에 표상될 수밖에 없는 것은 얼마나 우울한 일인가. 독자적인 기쁨은 기호 체계 내에서 성립되지 않는다. 지난 해에 쓴 <직업의 지배>라는 글에 비슷한 문제의식을 담은 적이 있어 다시 옮겨 써 본다.


 '직업의 지배'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직업으로 규정될 수 없는 자신이 있음'을 다양한 형태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나 자신이 나의 밥벌이로 규정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째서 내가 내 직업이 아닌 '나'인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공중을 향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 정치에 참여하는 행위가 고귀하다고 말해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자유롭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새로운 것을 배울 때 비로소 내 자아는 직업과 그 직업이 부여하는 수동적인 정체성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독자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오랜 불황은 취업난 뿐만 아니라 사회와 개인의 삶 전반에 직업의 지배를 더 공고하게 만들고 있다. 갑을 문제로 대변되는 사회적 분열, 열정 페이로 대변되는 직장에 삶의 전영역을 헌신하지 않으면 안되는 왜소화된 개인의 삶 모두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직업의 지배와 무관하지 않다. 직업으로 누군가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믿는 사회, 직업으로 자신을 소개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사회, 그런 사회야말로 인간을 단번에 파악 불가능한 '깊이를 가진 존재'로 존중하는 사회다. 직업 밖의 자기 자신을 ‘표현해야’, 직업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거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좋은 직업을 가진 자들, 즉 기득권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게는 직업 외에도 무수한 또 다른 자아의 측면이 있다. 나는 내가 다니는 학교나 내가 믿고 있는 종교나 내가 속한 계급이 아니다. 그렇다. 나는 내 직업이 아니다. 



말하다
김영하에게 듣는 사람, 문학, 글쓰기

1.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이번 주에 제가 가져온 책은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만들고, 소설가 김영하가 쓴 <말하다>라는 책입니다. 예전에 제가 김영하 작가의 <보다>라는 산문집을 소개해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보다>가 김영하 작가가 한국 사회를 바라 보면서 느낀 점을 쓴 에세이 모음집이라고 한다면, <말하다>는 김영하 작가와의 인터뷰와 그간 행했던 강연을 모아 둔 책입니다. 글에서는 말하기 힘든, 그렇지만 작가의 솔직한 생각을 알 수 있는 책인데요, 저는 이 코너에서 <보다>를 소개했던 적이 있어서 다시 김영하 작가의 책을 소개하는 것이 주저가 되기도 했는데, 풍부한 영감을 많이 주는 책이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2. 예전에 <힐링 캠프>에서 김영하 작가가 했던 강연을 본 적이 있어요. 그 때 강의에서 어떤 군인이 “자기는 집안 형편도 좋지 않고, 학벌도 시원찮고, 스펙도 별로인데 어떻게 하면 성공하겠냐”고 질문을 했는데 김영하 작가가 “음, 잘 안 될 거에요”라고 대답해서 놀랐어요.

이 책에도 김영하 작가의 힐링캠프에서 했던 강연록이 들어 있는데요, 말씀하신 그 대목이 나옵니다. 김영하 작가는 우리가 “비관적인 현실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 군인에게 ‘잘 안 될 것’이라고 하는 말도 작가의 ‘비관주의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건데요, 김영하 작가는 자신이 젊은 시절에는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연 10%가 넘는 고도성장을 거듭하는 시기라 취업 걱정이 크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1~2% 수준이기 때문에 예전과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진단합니다. 그런데도 언론과 학교와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꿈을 가져라’, ‘제2의 스티브잡스가 되어라’고 권하는데 그런 희망을 가지기 어려운 사회라는 것을 냉정하게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젊은이들의 취업난은 젊은이들의 문제가 아니고, 세계 경제의 흐름이라는 큰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거지요.
김영하 작가는 자신이 소설가이기 때문에 성공하는 법 같은 것은 모른다고 합니다. 오히려 소설가는 실패전문가라고 해요. 문학은 성공하는 방법은 가르쳐 줄 수 없지만, 실패가 그렇게 끔찍하지만은 않다는 것, 때로는 위엄 있고 심지어 존엄하다는 것을 가르쳐주니까 인생의 보험이라 생각하고 소설을 읽어라고 권합니다.

3. 성공하는 방법을 물은 사람에게 ‘존엄한 실패’를 이야기하는 소설을 읽어라는 대답은 선뜻 와닿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성공하고 싶다고 하는데, “당신 실패할 수 있으니 소설 읽어라”고 하는 셈이잖아요?

네, 맞습니다. 김영하 작가는 그런 의미에서 ‘비관적 현실주의자’인데요, 우리 앞에 있는 건 ‘성공’이라는 낙관적인 미래보다는 ‘실패’라는 비관적인 미래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거죠. 그렇게 보면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람들 중 성공한 사람을 찾기는 정말 어려워요. 이 책에서 <노인과 바다>를 소개하는 부분이 나오는데요, 노인은 기껏 고생해서 커다란 물고기를 잡는데 성공하는데 결국 상어들에게 다 뜯기고 뼈만 끌고 나옵니다. 실패죠. <안나 카레니나>의 안나, <마담 보바리>의 보바리는 모두 자살합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는 옛사랑을 얻기는커녕 엉뚱한 사람이 쏜 총에 맞아 젊은 나이에 죽게 됩니다. 모두 실패한 인생인데, 그렇다면 이 실패가 과연 무가치하거나 쓸모 없는 것이냐 하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실패를 보면서 새로운 도전을 할 용기를 얻고, 힘든 싸움이라도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기는 것이죠.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 “저렇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 “너 자신이라도 바꿔라”고 하는 이야기보다 실패할 수 있으니까 실패를 단단히 대비해서 당신이 하고 싶을 하라고 권하는 김영하 작가의 말이 제게는 훨씬 더 와닿습니다.

4. 사실 자기계발서를 읽어보면 내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분명히 나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책을 읽었는데, 읽다보면 내가 뭔가 잘못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거든요.

봄에 우울증이 늘어나고 자살률이 높아지는 것 아세요? 햇살은 따사롭고 뉴스에는 나들이 나온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 나오는데 나만 불행하다는 느낌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온통 사회가 ‘낙관적 태도’, ‘긍정적 사고’만 강조하니까 나만 불행한가 싶은 거죠. 뭔가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들구요. 그래서 김영하 작가는 누가 시키는대로 따라 살려고 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 어떤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독자적으로, 현실적으로 고민해야”한다고 합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어떤 사람들은 먹을 물도 부족한데 면도를 하고 세수도 했다고 해요. 엘르의 편집장인 장 도미니크 보비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전신 마비가 되었는데 오직 왼쪽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 장 도미니크 보비가 평생 해오던 대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20만번 이상 눈을 깜빡여 15개월에 걸쳐 쓴 책이 바로 <잠수종과 나비>였고, 책이 출간되고 8일만에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1980년대 일본의 미즈노 겐조도 눈깜박임으로 시집을 만들어 냈구요, 사마천도 궁형의 치욕을 당하고도 <사기>를 썼습니다. 가장 극한의 상황에서도 자신이 누릴 즐거움을 찾았던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자기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와닿습니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말처럼 쉽지 만은 않은 거 같아요. 즐기기에는 너무 바쁜 시대를 모두가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네, 정말 쉽지만은 않은 거 같아요. 김영하 작가가 이 책에서 하는 이야기인데요, 가끔 택시를 타면 택시 기사분들이 행복한 일체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손님이 탔는지 안탔는지 신경도 안 쓰고, 혼자 차 몰고 가면서 웃기도 하고, 라디오에 빠져 있는거죠. 이건 분명히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 것과는 좀 다릅니다. TV는 화면이 계속 바뀌고, 광고도 나오고 몰입이 어렵습니다. 스마트폰의 정보도 라디오가 주는 몰입의 경험을 거의 주지 못하죠. 라디오를 들으며 몰입이 되는 것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여유를 갖기 때문인거죠.
또 택시 이야기이기는 한데요, 김영하 작가가 뉴욕에서 택시를 탔더니 좌석 앞에 어떤 배우의 프로필이 붙여져 있었다고 해요. 왜 이런 것을 붙이고 있냐고 물으니까 알고 보니 이 택시 기사가 바로 그 연극 배우였습니다. 무슨 배역을 연기했냐고 물으니 당당하게 ‘리어왕’이라고 말하더라는 겁니다. 이 기사분은 그러니까 택시 기사이면서도 동시에 연극 배우였던 거죠. 자기만의 즐거움을 찾은 것인데요, 작가는 이렇게 우리가 은행원이면서 화가, 골프선수이면서 작가, 가수이면서 소설가, 학원 강사이면서 피아노 연주가처럼 여러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합니다. 리어왕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우리가 자기 나름대로의 독특한 즐거움을 찾고 살아간다면, 언론과 사회, 주변 사람들이 규정하는 내가 아닌 오직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거죠.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이기는 한데요, 자기나름대로의 독특한 즐거움을 위해서 김영하 작가는 어떤 소설은 써놓고 공개하지 않는 소설도 많다고 합니다.

6. 아, 그러면 소설을 쓰기 쓰는데 독자들에게 공개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쓰는 건가요?

네, 그런 셈인데요, 김영하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로지 소설을 쓰면서 오직 자신의 소설과 소설 속의 인물들과만 소통한다고 해요.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서 그 인물과 대화하면서 사건을 엮고, 소설의 세계가 완성되면 자기는 그 세계에서 나오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면 어떤 소설은 공개해서 독자들이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 소설가가 만든 세계에서 독자들이 소설 속 인물과 소통하는 거죠. 그래서 김영하 작가는 소설 쓰기는 독자와 별로 관계가 없다고 해요. 오로지 작가와 작가 자신의 세계와의 문제라고 합니다. 그래서 소설을 쓰는 동안, 쓰고 나서 갖고 있는 동안 그 소설은 자기 것이 되고, 아무도 그 즐거움을 훼손할 수 없다고 해요. 작가가 글을 쓰면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독자는 글을 읽으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전혀 다른 즐거움을 갖기 때문에 독자들의 반응을 얻거나 성공한 소설이 되는 것이 소설가의 목적이 아니라고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자기 자신만의 즐거움’을 김영하 작가 스스로는 소설을 쓰면서 찾고 있는 거죠. 인기를 얻거나 독자들에게 공감을 많이 얻어서가 아니라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소설을 쓴다는 건 어떻게 보면 이기적이고 자폐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변의 인정과 기대를 뒤로 하고 소설 속 인물과 소통하고 거기서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은 김영하 작가의 내면이 매우 강하고, 감성 근육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죠.

7. 우리 사회처럼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상황에서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자기가 즐거운 일을 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 눈에 어떻게 보일까를 더 신경쓰는 경우가 많죠. 페이북이나 카카오스토리 같은 것 때문에 남들 눈에 신경쓰는게 더 심해진 것 같아요.

SNS가 그렇게 만드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있어빌리티’라는 신조어가 유행하잖아요. 실제로는 없지만 ‘있어보이도록 만드는 능력’을 의미하는 말인데요, sns에서 유명인과 사진을 찍거나 사진을 절묘하게 편집해서 사실보다 이미지가 훨씬 더 근사하게 보이도록 만들어 자신을 과시하는 건데요, ‘있어빌리티’가 중요한 사회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즐거운 일보다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까를 더 신경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세요. 와인을 전문적으로 테이스팅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별점을 보고 와인을 고를까요? 평생음악을 사랑하고 들어온 사람이 남의 평가만 보고 콘서트 티켓을 살까요? 자신의 내면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만의 고유한 즐거움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 눈에 어떻게 보일까 신경 쓰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 휘둘리게 됩니다. 결국 강한 내면을 갖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즐거움을 가져야 하는 거죠.
제 경우에 책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고, 이 코너에서도 지금 책을 추천하고 있지만 솔직히 저는 책을 읽을 때 누군가 추천해 준 책은 참고는 하지만, 그 중에 실제로 읽게 되는 책은 거의 없습니다. 제가 읽고 싶은 책만 읽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 내가 어떤 책을 읽어야 즐거움을 느끼는지는 나 외의 다른 사람은 절대 알지 못하는 거니까요.

8. 자기만의 즐거움을 찾아라, 오늘 책 <말하다>에서 김영하 작가가 말하고 있는 바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이 책을 추천해주시는 이유 정리해주시죠.

제가 7살 아들이 하나 있는데요, 아이와 레고를 가지고 놀다보면, 어느 새 아이에게는 손도 못대게 하고 레고를 조립하는 즐거움에 빠져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몰입이 된 거죠. 그리고 저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즐거움을 알게 됩니다. 아들 녀석에게 레고를 자주 사다 주는데, 사실 아이 때문이라기 보다 제가 너무 즐겁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아이와 그림도 그렸는데요, 아이도 물론 즐거워했지만 그림 그리기가 제가 너무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웃으실 수도 있는데, ‘내가 그림에 이렇게 재능이 있구나’, ‘내가 그렸지만 꽤 근사하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을 깨닫게 된거죠. 그래서 그림을 좀 그려봐야겠다고 제 아내에게 말했더니 ‘그건 해서 뭐하냐 왜 놀 궁리만 하냐’고 묻던데요, 저는 단지 그냥 재밌어서 합니다. 별로 쓸모가 없는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즐거운 일이 되고 창조적인 생각과 영감을 주거든요.
우리 사회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을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주관이 강하고 내면이 단단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행복한 사람들이 많아지는 거구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소설을 읽고, 춤을 추고, 커피를 마시고, 여행을 떠나고, 영화를 만들고, 그런 돈 안되는 일들을 지금 하고 계시는지요? 이 책 <말하다>는 돈이 안되고 필요 없는 그런 것을 우리가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경제적 불황, 곳곳의 지진과 전쟁의 위협, 취업난과 같은 비관적인 현실과 미래에서도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힘이 거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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