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란 무엇인가 - 대학이라는 '미디어'의 역사 그리고 재탄생
요시미 순야 지음, 서재길 옮김 / 글항아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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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란 무엇인가?>

    

1.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안녕하세요? 이번 주에 제가 소개해드릴 책은 글항아리 출판사에서 만들고, 요시미 순야가 쓴 <대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입니다. 요시미 순야는 도쿄대학교의 부총장을 역임했고, 지금도 도쿄대에서 정보학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인데요, 이 책은 사실 제가 지난 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흥미를 가지고 읽었던 책 중에 하나입니다.

 

2. 선생님이 가장 재밌게 읽으신 책이라고 하시니 기대가 되긴 하는데요, <대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만 봐서는 딱히 재미는 없을 것 같아요.(웃음)

 

네, 어쩌면 제가 이 책을 재미있다고 느낀 이유가 제목을 보고 재미가 없을 것으로 생각해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재미있게 읽게 된 또 다른 제 개인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사실 그동안 제가 대학원에서 학위를 위한 논문을 계속 미뤄두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대학원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했는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저 자신이 왜 학위를 하려고 했는지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3. 어떤 책인지 점점 더 궁금해지는데요, 요시미 순야가 생각하는 대학은 무엇일까요?

 

요시미 순야가 생각하는 대학을 본격적으로 말씀드리기 전에, 근래들어 세계적으로 ‘대학의 위기’를 말하는 목소리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부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진행자분께 한번 여쭤보고 싶은데요, 요즘 미국 대학교의 등록금이 얼마인지 혹시 아시나요? (대답) 네, 우리가 알고 있는 하버드대, 예일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립대학은 5만불에 가깝습니다. 우리 돈으로 연간 5천만원이 되는 셈인데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UC 버클리와 같은 주립대는 대략 1300만원 정도인데도 지난 2015년 초에 등록금이 올라 대학 내에서 큰 시위도 있었다고 해요. 문제는 이겁니다. 등록금은 자꾸만 치솟고 있는데, 이렇게 많은 돈을 내고 있음에도 졸업 후 취업도 제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서 ‘대학교육이 정말로 가치 있는가’ 하는 거죠. 심지어 윌리엄 데레저위치 교수는 대학이 취업은커녕 비판정신도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대학이 사회가 요구하는 온순한 양들만 양산하고 있다고까지 합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죠? 대학 등록금은 해마다 조금씩 올라 벌써 서울 주요 사립대학교의 등록금만 연간 1000만원이 넘고 이보다 비싼 곳도 많습니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안되니까, 명문대학이라도 가야지 취업이 된다는 생각에 고등학교에서 입시 경쟁은 더 치열해집니다. 그리고 대학에 가서도 상황이 별로 달라지지 않죠. 학점 경쟁, 토익 경쟁 등 취업을 위한 온갖 스펙 쌓기에 혈안이 되는거죠. 대학 졸업 후에는 다시 로스쿨을 비롯한 온갖 공무원 시험에 혈안이 됩니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지원하는 학생들 중 ‘기업가’가 꿈인 친구는 거의 없다고 해요. 모두 법조인이나 고위 공무원을 목표로 하는 거지요. 지방대의 경우도 등록금은 서울과 별차이가 없는데 취업은 더 어려우니까 경쟁이 더 치열집니다.

 

4. 대학의 위기라는 말이 실감이 되네요.

 

요시미 순야가 살고 있는 일본도, 또 일본 최고의 대학이라고 하는 도쿄대학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요시미는 대학의 위기가 초래된 이유를 ‘대학 거품’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한마디로 인구가 점점 증가할 때 점점 더 많아진 대학의 수가 인구가 줄어드는데도 줄어들지 않는 것이죠. 일본의 경우는 1965년에 300개이던 대학이 2005년에는 726개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미국의 경우는 대학이 무려 4000개에요. 대학의 나라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거품이 생기는 이유는 결국 대학이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에요. 들어올 학생은 줄어드는데 대학은 많아지니 대학이 학생 유치를 위해 온갖 홍보활동에 열을 올리고, 홍보 비용으로 돈을 쓰면 학생 등록금으로 충당하는 식의 악순환이 생깁니다. 그런데도 대학이 돈벌이가 되니까 신설대학이 생기고 다시 또 수요를 만들어내는 ‘거품’이 생겨나게 됩니다. 아마도 도쿄대의 부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요시미 순야는 이런 고민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습니다.

 

5. 우리도 지하철이나 역에서 대학 광고를 많이 볼 수 있는데요, 그런 이유 때문이었군요. 만약 지금의 대학이 거품이라면 언제라도 그 거품이 꺼질 수도 있다는 말일까요?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되는 이야기입니다만..

 

네, 맞습니다. 요시미 순야는 멀지 않은 장래에 이 거품이 꺼지고 말 것이라고, 그러니까 대학이 대규모로 도태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합니다. 대학이 도태된다니 이게 상상이 안되는 이야기인데요, 책을 읽어보면 납득이 됩니다. 이 책에서는 대학은 탄생과 죽음, 그리고 재탄생을 해왔다고 해요. 그러니까 대학이 도태되거나 죽었던 것이 예전에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책의 한 부분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대학은 지금까지 적어도 두 번의 탄생과 한 번의 죽음을 겪었다. 대학이 탄생한 것은 12세기에서 13세기 중세 유럽에서였다. 중세적 질서 속에서 대학은 교황 권력과 황제 권력의 대립을 적절히 이용하여, 또 이 두 보편적 권력과 도시를 지배하는 지방 유력자들 간의 힘의 균형을 이용하여 전 유럽으로 증식해갔다. 그러나 (중략) 16세기에 대학은 그 지식 생산의 중심적 장으로서의 지위를 잃게 되었다. 이 시기 대학을 능가한 것은 인쇄술의 발달이었다.(중략) 이 시기 대학은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대학은 국민국가, 나아가서는 제국의 지적 자원의 주요한 공급원으로 자리 매김하면서 인재육성과 연구 개발의 양면에서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종합적인 고등 교육 및 연구 기관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6. 아, 그러니까 대학이 역사 속에서 늘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말이군요.

 

네, 바로 그겁니다. 대학이 역사 속에서 12세기에 처음 등장하고, 16세기 인쇄술이 등장하면서 지식과 관련해 주도권이 약화되었고, 다시 19세기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부활하게 되었다는 거죠. 처음에 진행자분께서, ‘그럼 요시미 순야가 생각하는 대학이란 무엇인지’ 여쭤보셨는데, 한마디로 말씀드리자면, 요시미 순야는 대학을 하나의 미디어로 정의합니다. 그러니까 책이나 TV, 라디오, 인터넷처럼 사람들이 커뮤니케이션하고 지식을 생산하고, 전달한다는 의미에서의 미디어인데요, 우리가 TV를 보면 기자들이 뉴스를 전달하고, 우리는 그것을 듣고 학습하는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 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대학도 가르치고 배운다는 특징이 있는 TV나 라디오와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인쇄술이 등장해서 중세대학이 죽게 된 것도 그런 이유로 설명이 됩니다. 인쇄술을 통해서 책이라는 강력한 미디어가 보급되니까 더 이상 비싼 돈을 내면서 멀리까지 수업을 들으러 가야하는 대학이 살아남을 수가 없었던 거죠.

 

이렇게 본다면 대학의 위기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단지 등록금은 비싼데 취업은 안된다는 문제만은 아닙니다. 인터넷을 한번 보세요. 책보다 훨씬 더 강력합니다. 스마트폰으로 접속되는 팟캐스트를 통하면 우리는 공짜로 하버드, 옥스퍼드, 예일대학과 같은 세계 최고의 대학의 강좌를 무료로 들을 수 있구요, 우리나라도 MOOC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등록금 없이 대학 강좌를 인터넷으로 볼 수 있고, 심지어 질문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과연 비싼 돈을 내고 왜 대학에 가야하는가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는거지요.

 

7. 그렇네요. 대학강의는 유튜브에도 많이 올라와있으니까요. 그런데요, 19세기에 대학이 새롭게 부활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날의 대학의 원형은 독일에서 훔볼트라는 행정가가 탄생시켰다고 합니다. 독일에서 19세기 독일에서 대학이 탄생한 것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에 맞선 프로이센군의 패배와 관련이 있다고 해요. 프랑스에게 지고나니까 정부의 핵심으로부터 위기의식이 생겼고, 독일을 프랑스 제국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고 다음 세대를 새로운 국가 건설에 매진하게 하려는 목표로 대학이 다시 만들어진거죠. 그러니까 대학의 탄생은 당시 독일과 프랑스의 격렬한 경쟁과 관계가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대학을 대신해서 아카데미라는 것이 학문과 예술의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요, 독일에서는 대학을 부활시켜서 프랑스와 경쟁하려 했던 것이죠. 즉 대학의 탄생은 민족주의나 국민국가의 탄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 우리 나라를 위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대학이 설립되었던 것이죠. 이 때부터 독일이 세계 학문과 예술의 주도권을 장악해 갑니다. 철학자 헤겔도 이 때 활동했고, 베토벤, 괴테나 실러도 모두 이 근대국가의 대학에서 등장하게 된 거죠.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대학교는 표어는 없는데 캠퍼스 곳곳에서 이런 말이 자주 보입니다. “조국의 미래가 궁금하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라”라는 말인데요, 이런 말도 대학이 국가 발전과 밀접한 연관 속에서 존재해 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요, 대학의 위기라는 것이 어쩌면 이 문제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민국가가 힘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인데요, 요시미 순야에 따르면 이제 국민국가의 시대는 끝을 향해 가고 있다고 합니다. 자본주의가 세계화되고 있고, 점차 국경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더 이상 국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독일식 대학도 살아남기 힘들게 되었다는 것이죠.

 

8. 그럼 앞으로 대학은 어떻게 될까요? 정말 없어지게 되는 것일까요?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이 책의 제목이 <대학이란 무엇인가>인데요, 요시미 순야도 그래서 이제 미래의 대학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또 대학의 본질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묻기 위해 이 책의 제목을 이렇게 붙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책의 한 부분을 더 읽어보겠습니다.

 

 앞으로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에 걸쳐 인류가 몰두해야 할 중요 과제는 모두 이미 국경을 초월해 있다. 환경, 에너지, 빈곤, 차별, 고령화 등에서 지적 소유권, 문화복합, 국제경제, 국제적 법질서에 이르기까지, 여러 학문적 관제는 이미 국민국가라는 틀을 전혀 전제하지 않는다. 싫든 좋든 향후 내셔널한 인식의 지평을 넘어 지구사적 시점에서 이러한 인류의 과제를 해결할 전문적 방법론을 찾아내는 일과,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전문 인재를 사회에 제공하는 일이 점점 대학에 요구될 것이다.

 

요즘 인문학이 사회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인문학자들이 스타가 되고 공중파 방송에서 인문학 강의를 하기도 하는데요, 저는 최근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인문학 붐의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가 전문지식에 대한 피로와 불만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기억에 남는 논문이 ‘빅토리아 시대 영국교회의 교인수 변화 및 사회적 역할에 대한 연구’가 있는데요, 이런 연구도 나름대로 의의가 있지만 보통의 경우라면 이런 연구가 도대체 왜 필요한가 질문을 하게 되거든요. 우리 삶과 별로 관계가 없다는 건데, TV에 인문학자들이 나와서 좀 더 전체적이고 우리와 연결된 이야기를 해주니까 인기를 얻고 호응을 얻게 되는 거라고 봅니다. 대학에 계신 분들은 인기 인문학자들을 무시하고, 인기 인문학자들은 대학에 계신 분들 보고 답답하다고 합니다. 저는 인문학 붐은 사회가 대학에게 새로운 역할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학위를 주고 교수를 만들고 하는 것이나 취업 시켜주는 것이 대학의 역할이 이제 될 수도 없으니까 새로운 역할을 찾으라는 거지요.

 

9. 지나치게 대학이 전문화되어 그들만의 리그가 된 건 아닌가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우리 청취자들이 읽어봐야 할 이유를 한번 설명해주세요.

 

먼저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데 이 책이 큰 도움이 됩니다. 최근 시간강사법이 통과되었지요? 이것도 결국 대학의 위기라는 문제와 관련이 됩니다. 더 이상 대학이 취업을 보장해줄 수도, 교수 자리를 보장해주지도 못합니다. 대학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을 해야 하니까요. 막스 베버가 미국 대학을 ‘정신 없는 전문인’의 화석화된 철창이라 말한 적이 있는데요, 우리나라 대학이 미국 대학을 따라 한다고 정신 없는 것을 보면 가히 틀린 말이 아닙니다.

 

지금 1월인데요, 지금도 정시 원서를 내고 결과를 기다리는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이 계실 건데요 이 분들에게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누구보다 마음 조리고 계실 텐데요, 우리가 대학에 왜 가야 하는지, 대학에서 정말 배워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입시생들과 부모님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대학은 그 시작이 교황과 황제 권력을 피한 지적 열망이 있는 사람들이 자유를 얻고자 함에 있었고, 대학의 부활도 독일이 프랑스제국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함에 있었습니다. 취업이 아니라 ‘자유’를 위해 대학을 선택하신다면 대학 생활이 더 뜻 깊을 겁니다.

 

저는 대학과 별로 상관이 없다는 분들에게도 이 책을 강력히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이 책은 대학을 주제로 하지만 아주 흥미로운 역사책이기도 하구요, 우리 주변의 일상을 ‘미디어 플랫폼’이라는 틀로 이해하고 바라보면 전혀 다른 생각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대학이 미디어라면, 우리 가정도 미디어일 수 있다, 제가 참가하는 공부 모임도 미디어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납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래의 대학교육은 교양과 전문지식이 융합되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요, 저는 이 책이야말로 교양독서로서도 훌륭하고, 전문지식도 갖춘 훌륭한 본보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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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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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하늘 보기>

 

1.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건가요?

 

안녕하세요? 제가 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삼인에서 만들고 황현산 선생님이 쓰신 <우물에서 하늘 보기>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는 ‘황현산의 시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요, 문학평론을 하시는 황현산 선생님께서 ‘시’에 대해 쓴 29편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한 마디로 ‘시화집’이라 할 수 있지요.

 

2. 황현산 선생님은 저도 많이 들어본 분인데요, 청취자들을 위해서 소개해주시죠.

 

황현산 선생님은 고려대 불문학과에서 교수 생활을 하시다가 지금은 은퇴하시고 집필에 집중하고 계신데요, 우리 문학계의 큰 어른 중의 한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3년 전인가 쓰셨던 <밤이 선생이다>라는 산문집이 문학계에 큰 호응을 얻었는데요, 글만 봐서는 이 글을 쓴 작가가 70세가 넘으신 어른이라고는 전혀 예상도 못할 정도로 위트가 넘칩니다. 문장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과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구요, 문학계의 여러 작가분들도 <밤이 선생이다>가 출간되고나서 ‘드디어 읽을만한 글이 나왔다’고 크게 환영했을 정도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우물에서 하늘 보기>는 <밤이 선생이다> 출간 이후 3년만에 나온 선생의 신간인데요, <밤이 선생이다> 만큼이나 문학과 시에 대한,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의 계기를 제공해주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두 권의 책 제목도 뭔가 시적이네요. 하지만 요즘 참 ‘시’를 많이들 읽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시’라고 하면 뭔가 난해하다는 생각이 저도 앞서거든요.

 

네, 최근 출판계가 어렵다고 하는데 소설가나 에세이 작가, 자기계발서 작가보다 시인이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시집을 읽는 것이 유행일 때도 있었고, 시인이 인기를 얻어 유명세를 타는 경우들도 있었다고 하던데요, 요즘에는 정말로 그런 상황을 찾아보기란 어렵죠. 아마 시인들 중에서 ‘시인’이라는 직업만으로 생업을 유지할 수 있는 분은 거의 없을 거에요. 거기에는 말씀하신대로 ‘시’라고 하면 일단 어렵다라는 생각이 한 몫했을 겁니다. 요즘 시들, 특히 뉴웨이브 계열로 분류되는 시들은 난해시라서 읽고 이해하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바쁘게 움직이는 세상에서 하나라도 정보가 되는 지식을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획득하는게 독서의 목표가 된 상황에서 이해도 안되고, 정보도 안되고, 경제적인 이익도 생기지 않는 시를 인내를 가지고 읽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게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현산 선생님은 “시를 쓰거나 읽는 사람들에게는 무언지 모를 극단적인 것”이 있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시를 오랫동안 비평해오면서 이 무언지 모를 극단적인 것에 관해서 되풀이해서 거듭 생각해오셨다고 해요. 제가 ‘시에는 극단적인 것이 있다’는 선생의 말과 관련한 부분을 한 부분 읽어보겠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제 심정이 한 자락 노래를 타고 날아오르듯 약동하고, 삶의 어떤 매듭이 물결처럼 밀려드는 몽환에 휩쓸리고, 정신이 문득 소스라치면서 또 하나의 새로운 각성에 이르던 순간들을 기억할 것이다. 내가 ‘시적인 무엇’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그 순간의 동력과 연결된 모든 것들을 말한다. 그 동력은 정신이 집중된 시간에도 나타나고 심신이 풀려 자유로워진 시간에도 솟아올라 내 존재가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존재가 아님을 알려주곤 한다.

 

4. 아, 아름다운 글이네요.

 

그렇죠? 우리의 마음이 날아오르게 약동하고, 현실이 꿈에 휩쓸리게 만들고, 정신이 새로운 각성을 하게 만드는 그 동력이 바로 ‘시’에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시에는 극단적인 것이 있다’고 할 때 극단성이라는 것은 우리가 현실에 있지만 현실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극단’을 말한다고 할 수 있어요. “시라는 것을 읽으면 우리는 이 세상의 시간이 아닌 것 같은 다른 시간을 경험”하지요? 노래 한 곡을 부를 때 세상 시름을 잊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시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시간을 경험하게 만드는 것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5. 구체적으로 어떤 시들이 소개되고 있는지 궁금해지는데요, 하나 소개해주시지요.

 

네, 한 편을 소개하기 전에 진행자분과 청취자분들에게 한번 질문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한 사람의 시인이 있습니다. 이 시인은 자신이 경멸하는 친구들에게 이틀이 멀다 하고 신세를 지는 데다 일정한 거처가 없어 사실상 노숙을 하는 신셍입니다. 그런 그가, 늘 최고급 원고지를 품에 안고 다닙니다. 지금은 컴퓨터가 보급되어 원고지에 글을 쓰는 사람은 없지만 예전에는 많았지요? 이 시인은 질 좋은 종이에 금박으로 테를 두르고 역시 금자로 제 이름을 박어 넣고 다녔습니다. 이 시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되시나요? (대답) 네, 아마도 제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기가 쉽죠. 그 누구라도 밥벌이도 못하는 사람이 금박 원고지를 들고 다니면 지나치게 사치스럽다고 생각하기 마련일겁니다. 그런데요, 이 시인은 누가 그렇게 타박하면 ‘이것이 바로 예술가의 긍지’라고 대답했다고는 합니다. 황현산 선생님은 이 이야기를 하시면서 ‘사치스러움’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틉니다. 선생은 사치는 “예술을 예술되게 하는 기본 요소”라고 해요. 오페라 가수들을 생각해보세요. 가수들은 온갖 재능과 기량을 다해서 가장 불편하고 사치스러운 방법으로 가사를 읊습니다. 그림에 있는 균형 잡힌 구도, 색깔의 배합, 시의 운율, 언어적 장치 등이 모두 생각해보면 금박 테두리 원고지만큼이나 사치스러운 거죠.

 

사치는 예술의 기본요소라는 점을 생각하고서, 김종삼의 <북치는 소년>을 한번 들어보시죠.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이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6. 가난한 아이에게 온 서양 나라의 크리스마스 카드라는 구절이 들어오네요.

 

네, 가난한 아이에게 서양 나라의 크리스마스 카드는 얼마나 유용한 것일까요? 그러나 지금 가난하고 내용이 없다고 해도 ‘아름다움’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억압의 저 너머를 꿈꾸지 않는 삶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시는, 노숙자 시인의 원고지처럼 어쩌면 사치스러운 것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사치는 ‘저 세상에서 보게 될 삶의 맛보기’이구요, 또 다른 삶을 그리는 작업인거에요. 이건 제 생각인데요, 카푸어라는 말이 있죠? 집을 아직 사지 못한 사람들이라 원룸에서, 혹은 월세로 살면서 벤츠나 BMW 자동차 같은 고급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자동차 할부를 갚느라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 사람들을 부르는 말인데요, 저는 원룸 살면서 벤츠 타는 것을 뉴스에서 사회적 문제나 천태만상인 것처럼 표현하는 것에는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권장할 수는 없지만 가난하면 bmw 타면 안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치스럽고 낭비인 듯 보이지만, 거기에 깃든 것은 오직 허영만인 것은 아니에요. 인간이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울만큼 깊은 존재이니까요.

 

명품시계는 정확하지 않은 것 아시나요? 수천만원짜리 태엽 시계는 몇 만원짜리 전자시계보다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값도 비싸고 관리도 꾸준히 계속 해줘야 하구요, 사용 방법도 배워야 합니다. 비싼 것이라서 그런지 관리도 쉽지 않지만 어쩌면 그게 재미라면 재미입니다. 시도 먹고 사는 문제에 급한 우리에게 사치일 수 있습니다. 명품시계만큼이나 비효율적입니다. 시는 읽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문학은 바로 효율성에 저항하고, 유용성에 저항하면서 삶의 의미를 묻습니다.

 

7. 사치라는 것은 부정적이라 이해하기 쉬운데 이렇게 다른 이해도 가능하다는 점이 재밌습니다. <우물에서 하늘 보기>라는 제목에도 호기심이 생기는데요, 제목은 어떤 의미인가요?

 

사실 책 전체에서 <우물에서 하늘 보기>라는 제목에 대해서 작가가 직접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없습니다. 그래서 짐작을 해봐야 하는데요, 일단 <우물에서 하늘보기>라는 말은 가장 먼저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자기가 살고 있는 우물만이 세계의 전부로 안다는 점에서 어리석은 존재죠. 우물에서 하늘을 본다는 것은 다른 세계를 꿈꾼다는 것, 당장 도착할 수는 없어도 희망하는 세계를 그려보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우리들을 우물 안의 개구리라 한다면 우물에서 하늘을 보는 방법, 다른 세계를 꿈꾸는 방법으로 황현산 선생은 ‘시’를 제시한 것이라 이해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황현산 선생이 이 제목을 붙이면서 염두에 둔 것은 ‘우물 안 개구리’라는 속담보다 한 편의 시였을 겁니다. 이 책에서 소개되어 있는 정화진 시인의 <박우물>이라는 시입니다. 아마 청취자분들께서 진행자님이 낭송해주시길 바라실 것 같은데 한번 이 시를 읽어주시지요.

 

8. 제가 <박우물>이란 시를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둥글게 내 볼을 파갔어. 박바가지였어

그래도 있잖아, 새색시였어

이쁘게 들여다보는 새벽이었어

떨려 온몸이 파들거렸지 뭐

 

하늘이 몇 번 우그러지고 펴지고 그랬어

 

감사합니다. 이 시에서 화자는 ‘박우물’입니다. 바가지로 물을 뜰 수 있는 얕고 작은 우물이죠. 시를 보면 한 새색시가 와서 바가지로 물을 펐고, 그러자 물의 온 몸이 떨리면서 파들거렸다고 해요. 우물의 물과 새색시의 바가지가 만나는 수간을 마치 성적인 흥분상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 흔히 영감이라고 부르는 것과 글의 관계도 이것과 비슷하다는 것이 황현산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수면이 요동하며 거기 비친 하늘이 우그러졌다 펴지듯이 작가가 어떤 진실을 만나 그것을 글로 옮길 때도 작가를 움찔거리게 할만큼의 뜨거운 전율이 오죠. 황현산 선생은 이 책의 제목을 <우물에서 하늘보기>로 붙이면서 자신을 박우물로 생각하고, 자신에게 비춰진 하늘을 뜨거운 전율로 써내려갔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런데요, 저는 이것이 우리가 시를 읽고, 또 글을 써야 할 이유라고 생각해요. 저는 청취자분들에게 가장 최근에 ‘뜨거운 전율’, 마치 하늘이 몇 번 우그러지고 펴지는 것 같은 그런 경험을 하신 게 언제신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돈도 되지 않고, 스펙도 되지 않는 것이지만 우리의 잠자는 감각을 일깨워주고, 우리를 다른 세계로 데려갑니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글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쓰시고 나눠 읽으시면 삶이 전혀 다른 차원으로 옮겨지게 될 겁니다. 올 한해 시를 읽고, 또 써보시라 적극 권하고 싶습니다.

    

부기. 제목에 관해

나는 황현산 선생의 <우물에서 하늘 보기>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우물 안 개구리가 하늘 보는 것을 생각했더랬다. 우물이라는 좁은 세상에서 다른 세상인 하늘을 보게 하는 것이 시라는 것을 보여주는 제목이 아닐까? 근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선생은 이 책 어디에서도 <우물에서 하늘 보기>라는 제목에 주를 달지 않았지만 필시 이 시를 염두에 뒀을 것이다. 이 시의 박우물은 글을 쓰는 이들이다. 글을 쓰는 이들이 우그러지고 펴지고 하는 것, 그 전율은 박우물이 새벽의 새색시를 만나는 것과 같은 경험, 새색시가 바가지로 물을 흔드는 경험이다. 그리고 거기에 하늘이 우그러지고 펴지는 것이 비추는 것은 한편의 글이다. 선생은 우물이 되어 하늘을 보고 그 우그러지고 펴짐을 이 책에다 쓰려 한 것 같다. 그 뿐만 아니다. 이 책은 사실 세월호에 대한 글이다. 세월호 이후 선생이 쓴 글은 아마 모두 세월호를 쓴 것일 것이다. 그래서 우물은 슬픔의 깊이고, 이 슬픔이 내는 길을 따라가면 하늘을 만난다. 무엇보다 시는 슬픔을 담는 우물이고, 우물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하늘이다. 그래서 선생은 이렇게 쓴다. "시가 보기에 쓸고 닦아야 할 삶이 이 세상에는 없다. 시는 이를 갈고 이 세계를 깨뜨려 저 세계를 본다. 시가 아름답다는 것은 무정하다는 것이다".

 

9. 우리가 <우물에서 하늘보기>를 지금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는 우리에게 긍지와 위엄을 줍니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황진이가 이생을 이끌고 이곳 저곳을 여행하다가 나주에 당도했을 고을 원이 절도사와 함께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고 해요. 기생도 그 자리에 많이 있었는데요, 그때그때 필요한 경비를 벌어서 황진이는 여행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 잔치판에 끼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해진 옷에 때묻은 얼굴로 그 자리에 끼어 앉아서도 부끄러운 기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고는 제 차례가 오자 적삼 속에 손을 넣어 태연히 이 한 마리를 잡아 죽이고, 거문고를 무릎에 괴고 노래를 불렀다고 해요. 그 모습을 보고 뭇 기생들이 기가 죽었지만 기가 죽은 건 기생 뿐만 아니라 양반 관료도 마찬가지였어요. 이게 바로 시의 힘입니다. 황진이는 이 긍지가 있었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었죠.

 

제가 이 프로그램에서 소개해드렸던 서경식 작가라는 분이 있죠? 그 분이 지난 해 쓰신 <시의 힘>이라는 책이 한국작가회의에서 뽑은 2015년의 책으로 선정이 되었어요. 우리에게, 또 우리 사회에 ‘시의 힘’이 그만큼 필요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의 힘으로, 올한해 정신의 사치를 누려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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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떠났다 그리고 자유를 배웠다 - 짜릿한 자유를 찾아 떠난 여성 저널리스트의 한 달에 한 도시 살기 프로젝트!
마이케 빈네무트 지음, 배명자 옮김 / 북라이프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나는 떠났다 그리고 자유를 배웠다>

 

1. 안녕하세요? 이번 주에는 어떤 책인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북라이프에서 만들고 마이케 빈네무트가 쓴 <나는 떠났다 그리고 자유를 배웠다>입니다. 마이케 빈네무트라는 작가는 아마도 생소하실텐데요, 여러 잡지와 매체에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입니다. 마이케는 독일의 유명한 퀴즈쇼인 <누가 백만장자가 될 것인가?>에 도전해 50만 유로, 우리 돈 6억 5천만원 정도의 상금을 받게 됩니다. 우승자가 되기 전 사회자로부터 만약 상금을 받는다면 무엇을 하겠냐는 질문을 받는데요, 한 달에 한 도시씩 총 두 열두도시를 1년 동안 여행하겠다고 대답을 하고, 대회에서 우승을 하자 이를 정말로 실행하게 됩니다. 안정된 일상을 떠나 세계여행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은 거지요. 세계 여행을 떠나고, 고향인 함부르크로 돌아오는 1년 간의 과정을 기록이 바로 <나는 떠났다 그리고 자유를 배웠다>라는 이 책입니다.

 

2. 1년 간의 세계 여행이라니 말로만 들어도 흥분되는 일인데요, 작가가 여행한 도시들은 어떤 곳들인가요?

작가는 정말로 한 달에 한 도시 씩 머무는 방식으로 여행을 합니다. 1월은 호주 시드니에서 보내고, 2월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지냅니다. 3월은 인도의 뭄바이, 4월은 중국 상하이, 5월은 하와이 호놀룰루, 6월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7월은 영국 런던, 8월은 덴마크 코펜하겐, 9월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10월은 이스라엘의 텔 아비브, 11월은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 12월은 쿠바의 아바나, 모두 열 두 도시지요. 열 두 도시를 여행하면서 남긴 기록이니 이 책은 일종의 여행기라 볼 수 있는데요, 단지 여행기라 볼 수는 없는 책이에요. 작가는 어떤 곳에서 묵었고, 어떤 식사가 좋았고, 어떤 곳을 다녔는지 소개하고 있지만 작가는 여행 정보를 주려는데에는 사실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마이케의 관심은 오직 자기 자신이 무엇을 배웠는지, 여행을 통해서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데에 있습니다. 책을 보면요, 각 도시에서 배운 10가지를 간단하게 정리하는데요, 예를 들어 시드니에 대해서 쓴 후 가장 마지막에는 <시드니에서 배운 열가지>, 뭄바이 여행을 마칠 때는 <뭄바이에서 배운 열가지>, 이런 식입니다. 이 책의 가장 마지막 말이 인상적입니다.

 

나는 세계 여행을 한 것이 아니라 나를 여행한 것이다.

 

3. 여행은 정말 나를 성장시키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인 마이케는 보통의 경우에는 아주 하기 힘든 특별한 여행을 한 만큼 하면서 얻은 깨달음도 남다를 것 같은데요, 구체적으로 그녀가 얻은 깨달음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네, 마이케가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 길러낸 성찰은 아주 다양한데요, 그 전에 이 책이 편지글로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작가는 한 도시 당 한 명의 편지 수신자를 선택해서 모두 12명에게 편지를 쓰는데요, 거기에는 함부르크에 있는 작가의 집에서 작가를 대신해 살면서 집을 관리해주고 있는 친구, 예전에 만났다 헤어진 남자 친구, 한번도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블로그에서 만나 매일 아침마다 채팅을 하며 마음을 나누는 함부르크에 사는 10살 언니 아이메도 있습니다. 마이케는 저널리스트라서 글이 정말 재미있는데요, 편지를 받을 사람을 선택하는 센스도 넘칩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낼 때 빌린 집이 칼 제라시 교수의 아파트였는데요, 이 사람이 경구 피임약 개발자이자 지난 1000년간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30명 중 한 사람이에요. 칼 제라시와의 인연으로 런던에서 다시 칼의 아파트를 빌려 지내게 되고, 런던의 그의 아파트에서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내고 있는 칼 제라시에게 편지를 쓰는 거지요.

 

작가의 재기발랄함이 잘 드러난 편지는 덴마크에서 쓴 편지였습니다. 예전에 제가 오연호 대표의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책을 소개해드렸던 적이 있는데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인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50살이 된 마이케가 15살 어린 마이케에게 미래로부터 편지를 보냅니다. 그 편지 중 일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다시 코펜하겐, 이곳에선 너를 생각할 수밖에 없어. 코펜하겐에는 10대 때를 생각하게 하는 뭔가가 있어. 덴마크 사람들을 보면 사춘기 시절이 떠올라. 놀이공원과 패스트푸드를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자치권을 주장하는 프리타운 크리스티아니아도 그렇지. 또한 자신을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과대평가하는 자세도 10대들을 꼭 닮았어. 그들의 이런 자신만만함을 보고 있노라면 독일 작가 테오도르 폰타네가 함부르크 여자들에 대해 묘사한게 생각나.

 

모두가 강한 확신에 차 있고 내적으로 그리고 외적으로 매우 깨끗하다.

 

자신만만하게, 두려움 없이 자신과 조화롭게 사는 것, 혹시 그것이 행복의 열쇠일까? 전 세계 행복 순위에서 덴마크는 몇 년째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어. 분명 비결이 있을거야. 행복 연구가들도 늘 주장하잖아. 만족은 절대적인 소득수준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자신의 소득수준이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달렸다고. 무엇보다 비교가 불행을 낳지. (중략) 다른 사람과 널 비교하지! 그래 맞아, 남들과 비교하지 않기란 쉽지 않지. 솔직히 고백하면 너와 나는 마흔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렇게 할 수 있게 돼. 지금 키가 178센티미터지? 열다섯 살 소녀에겐 좀 버거운 키긴 해. 눈에 띄는 게 싫고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싫겠지. 이해해. 하지만 부디 구부정하게 서거나 걷지는 마. 그래봐야 허리 통증만 생길 뿐 키가 작아지는 것도 아니니까.

 

183센티미터의 키, 이제 50세가 된 마이케는 15살 어린 마이케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걸 두려워 마. 물론 부탁하는 모든 걸 얻지는 못할 거야. 하지만 부탁조차 않는다면 대답은 언제나 ‘아니요’일 수밖에 없잖아. 세상에 대해 빚쟁이처럼 굴지마. 세상은 너에게 아무것도 빚지지 않았어. 그러니 좋은 날씨, 지하철 빈자리, 기적, 사랑 등을 얻게 되면 진심으로 감사하고 기뻐하도록 해. (중략) 가장 중요한 것! 서두르지 마.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어. 인생은 서른에도 마흔에도 끝나지 않아. 심지어 여든에도. 계속해서 좋은 일들이 생길거야. 널 믿어봐. 만에 하나 플랜 A가 제대로 안 되면 플랜 B, 플랜 C가 있음을 기억해. 그리고 알파벳은 많아.

 

4. 여행을 통해서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해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군요.

 

네,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항상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거죠. 저는 마이케가 세상에 대해 빚쟁이처럼 굴지 마라고 한 말이 제게 하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오늘 여기로 오는 길에 운전을 해서 왔는데요, 끼여드는 앞 차에 화가 나서 경적을 눌렀습니다. 도로가 내 것도 아닌데, 마치 내 것인양 굴었던 거지요. 2016년은 어쩌면 제가 꼭 맞이해야 할 한 해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세계가 2016년을 내게 꼭 줘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2015년 한 해를 보냈고, 새로운 해를 맞이한다는 것, 내가 받아야 할 권리가 딱히 없는데도 내게 선물로 주어진 것, 그것을 인정할 때 행복할 수 있는 것이지요.

세상은 나로부터 아무 것도 빌린 것이 없다, 세상은 내게 돌려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도 오늘따라 도로는 이렇게 한적하고, 날씨는 맑고, 가족들이 곁에 있고, 새해를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인식이라면 행복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겠죠?

 

5. 사실 매달마다 다른 도시를 여행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잖아요? 이 책의 저자가 부럽기도 한데요, 한편으로는 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책의 제목처럼 우리는 자유를 배우기 위해서는 꼭 떠나야 하는 것일까요?

 

아마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 중에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꽤 많이 계실 것 같아요. 확실히 비현실적이에요. 저자는 50만 유로나 상금으로 받은 사람이구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습니다. 또 저널리스트라는 직업 특성상 한 곳에 매여 일할 필요가 없죠. 이런 조건을 가진 사람은 아마 전 세계에 몇 명 없을 거에요.

 

그런데요, 마이케는 여행 중에 정말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여행 경비로 매달 5000유로, 우리나라 돈으로 650만원 정도를 예산으로 넉넉하게 잡았다고 해요. 1년에 6만 유로를 예산으로 잡았던 건데요, 여행을 해보니 비교적 편하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사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경비가 적게 들었다고 해요. 부에노스 아이레스나 뭄바이, 상하이는 물가가 아주 싸니까요. 거의 귀족처럼 지냈는데도 한 달에 3000유로 정도를 썼다고 해요. 그러면서 작가는 이렇게 씁니다.

 

 

충격 속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그건 바로 퀴즈쇼 상금을 타지 못했더라도 세계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는 거야.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었던 거지. 모든 게 내 손에 달렸던거야. 이걸 깨달은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어. 상금이 없었더라면 아마 올해 같은 1년을 상상조차 하지 않았겠지. 그럴만한 여유 자금이 있다는 생각조차 못했을 거야. 그건 내 생애 최고의 ‘아하! 경험’이었어. 생각 없이 바쁘게 살면서 상상만 하는 것보다 실제로 훨씬 많은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번 생애의 중요한 교훈으로 삼으려 해.

 

한 마디로 마이케의 세계 여행은 상금이 없었더라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던 거죠. 우리는 더 많은 가능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삶의 관성에 따라서, 해왔던 일을 계속하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고 싶었던 일, 꿈꾸고 있었던 일, 일상을 떠나 세계를 누비는 일, 그것은 돈이 많고 적음의 문제나 직업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에 달려 있는 일이었다는 거죠. 어쩌면 자유는 오래된 차를 타고 다니고, 좁은 집에서 오래된 가구를 들여 놓고 살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에서 비롯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6. 맞아요. 그런데 그 용기가 참 어려워요. 떠나서 자유를 얻자니 여기서 누리는 안정을 놓치고 싶지는 않고, 또 그냥 이대로 있자니 나답게 사는 것이 아닌 것 같고.

 

저도 그것이 늘 고민입니다. 자유와 안정 사이에서 늘 고민하게 됩니다. 또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주변 사람들이 내게 바라는 것이 충돌합니다. 제 친구 이야기로 대신합니다만, 소위 명문대를 졸업해서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한 친구가 있어요, 사진작가로만 살아가기에는 생활이 되지 않아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잘 나가는 영어 강사가 되었어요. 친구는 늘 자기 자신에게 묻습니다. ‘나는 사진작가인가, 학원강사인가?’. 그리고 밥벌이를 포기하지 못하는 자신의 비루함, 용기 없음에 힘들어 하는 때가 많지요.

 

저는 마이케의 글을 읽으면서 이런 고민에 대한 해답을 어렴풋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요, 첫째는 ‘나는 사진작가인가, 학원강사인가?’, 혹은 ‘자유인가 안정인가’ 하는 질문에는 답이 있을 수 없다는 것, 어쩌면 이런 질문을 끝까지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이케가 릴케가 젊은 시인에게 쓴 편지를 인용하는 글이 참 와닿았습니다.

 

당신의 마음에 풀리지 않은 모든 질문들을 참고 기다리세요. 부디 그 질문들을 사랑하려고 노력하세요. 당신에게 올 수 없는 답을 지금 찾으려 애쓰지 마세요. 당신은 답으로 살 수 없습니다. 지금은 질문으로 사세요. 그러면 당신은 서서히 미래의 어느 날 답으로 살게 될 겁니다.

 

두 번째는 용기라는 것은 원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배워 나가야 한다는 것을 마이케는 깨달았다고 해요. 용기도 근육 운동이 필요한 것이죠. 작은 일에 용기를 내다보면 큰 용기를 내기 쉬워지기 마련입니다. 모든 것을 단번에 버리기 보다 조금씩, 작은 것부터 떠나 보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거죠.

 

‘자유냐 안정이냐?’ 사이에서 갈등을 하기 마련인데, 여행 전체를 통해서 마이케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둘 중에 어느 하나를 꼭 선택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그것이 세 번째인데요, 우리는 모두 “완전히 모순된 욕구”를 모두 가지고 살아갑니다. 소속감을 갈망하면서도 자유를 갈망하는 거죠. 마이케는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앞으로도 이 두 극단 사이를 계속 오갈 것이다. 하나를 온전히 얻으면 그 반대편의 걸 간절히 바랄 것이다. 나는 두가지 모두를 가질 것이다. ‘이것과 저것 모두’를 할 것이다.”

 

7. 새해 첫 날 이 책을 우리에게 소개해주신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마이케가 모든 것을 다가지겠다, 자유나 안정 둘 중에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하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마음 먹은데에는 런던에서는 변호사이면서 시드니에서는 연기자로 살아가는 미셀과의 만남, 세계적인 화학자이면서 동시에 60세가 되어 극작가가 된 칼 제라시와의 만남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이분법을 벗어나 모든 것을 다 훌륭하게 해내고 있었던 거죠. 새로운 만남이 마이케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준 겁니다. 마이케는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람을 만나기 위해 꼭 마이케처럼 먼 여행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끊임 없는 만남, 나의 집으로 새로운 친구들을 초대하고 이야기하기를 통해서 우리는 더 넓은 세계로 여행하는 것이 주는 것과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새해에는 용기를 가지시길, 새해에는 더 많은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만나시길, 새해에는 자유와 안정을 모두 가지시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더 드리자면, 멕시코 화가인 프리다 칼로가 아버지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룰 수 있을까요?”. 프리다의 아버지는 “짧은 기억력”이라고 답합니다. 행복을 위해서라면 짧은 기억력도 도움이 됩니다. 마이케는 샌프란시스코가 너무 마음에 들어 다음 행선지인 바로셀로나로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떠났습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를 망각하고, 버리고, 비워내고 바르셀로나에서 새로운 행복이 찾아오는 경험을 합니다.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되는 것은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떠나는 경험,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인지도 모르겟습니다. 2016년으로의 여행이 부디 행복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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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이순(웅진)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애도일기

- 롤랑 바르트

 

1.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네, 제가 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이순에서 만들고 롤랑 바르트가 쓴 <애도일기>라는 책입니다. 롤랑 바르트는 20세기 프랑스의 지적 거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사르트르가 죽고 난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사람이기도 하구요, 탁월한 비평가이기도 하고, 기호학자이기도 한 롤랑 바르트가 써 내려간 애도의 기록이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애도일기>라는 책입니다.

 

2. 성탄절 아침에 읽는 <애도일기>라 뭔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인데요, 어떤 책인가요?

 

네, 성탄절에 <애도일기>를 소개해드려 저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만 왜 이 책을 성탄절에 소개하게 되었는지는 조금 후에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 책은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의 죽음 이후부터 2년간 자신의 슬픔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써내려간 일기들입니다.

 

프랑스어로 ‘마망’은 엄마를 뜻하는 말인데요, 롤랑 바르트가 ‘마망’이라고 이 글에서 쓰고 있는 어머니는 투병 생활을 하다 1977년 10월 25일에 돌아가시게 됩니다. 바르트의 어머니는 23세부터 84세의 나이로 별세하기까지 평생을 과부로 지냈는데요,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두 사람 사이가 각별했던 것 같습니다. 롤랑 바르트가 1915년 생이니까 어머니는 그의 나이 62세에 돌아가셨는데요, 책을 읽다보면 이 사람이 과연 60세가 넘은 어른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요, 마치 한 소년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곳곳에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절절하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바르트가 어머니에 대한 애도로 쓴 일기 한편을 먼저 읽어 드리겠습니다. 어머니를 떠나 보낸 후 보름 정도가 지난 11월 9일에 쓴 일기입니다.

 

허우적거리면서 나는 겨우겨우 슬픔을 건너가는 길을 찾아나가고 있다.

끊임 없이.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로, 뜨겁게 달아오른 어떤 지점이 되돌아온다 ; 말들, 죽음과 싸우면서 그녀가 내게 입김과 더불어 불어 넣곤 하던 말들, 너무도 메마른, 지옥 불처럼 타오르는 고통의 점화점, 나를 완전히 압도해버리는 말들 “나의 롤랑, 나의 롤랑”, -“저, 여기 있어요.”- “너 앉아 있는게 불편해 보이는구나”

 

- 이 순수한 슬픔, 외롭다거나 삶을 새로 꾸미겠다거나 하는 따위와는 아무 상관 없는 슬픔. 사랑의 관계가 끊어져 벌어지고 패인 고랑.

- 모든 것들이 줄어든다, 글쓰는 일도, 말하는 일도. 그러나 이것만은 제외하고(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것)

 

모든 것은 줄어들지만 줄어들지 않는 것,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것이라고 마지막에 이야기한 것은 ‘슬픔’을 말합니다. 글쓰는 일도, 말하는 일도 줄어드는데 오로직 슬픔만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해요. 그래서 작가는 이 책 어딘가에서 자신은 슬픔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 자기 자신이 ‘슬픔’이 되어버렸다고까지 씁니다. 방금 읽어드린 부분에서 바르트의 어머니는 바르트를 향해 ‘나의 롤랑’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요, 더 이상 ‘나의 롤랑’이라고 불러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 때문에, 어머니를 잃었다는 것을 사랑의 관계가 끊어져 벌어지고 패인 고랑이 되어 버렸다고 해요.

 

3. 작가가 어머니에 대해 쓴 사모곡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네, 그런 점이 분명히 없지는 않습니다만, 사실 이 책이 단순히 자식이 부모에게 더 잘해드리지 못해서 후회하면서 살아계시는동안 부모에게 더 잘해야 한다는 도식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 책 어디에도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식의 교훈을 강조하는 내용은 단 한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 책은 교훈에 대한 글 아니라 ‘슬픔’과 ‘그리움’에 관한 책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롤랑 바르트는 자신의 슬픔과 우울한 기분을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여행을 가더라도, 쇼핑을 하더라도, 친구들을 만나면서도 즐길 수 없엇다고 합니다. 그리고서는 자신을 이토록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슬픔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계속 묻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롤랑 바르트는 제과점에 들렀다가 작은 여점원이 손님을 도와주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부알라”, “부알라”라는 말은 물건을 건네주면서 ‘당신이 찾는 물건이 여기 있어요’라는 프랑스어인데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반 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그녀는 메아리처럼 ‘부알라’, ‘나 여기 있다’라는 그 말을 따라했다고 합니다. 여 점원이 빵을 건네면서 무심코 했던 이 한마디 말 때문에 롤랑 바르트는 오랫동안 혼자 울었다고 해요. 그러면서 롤랑 바르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슬픔은 그러니까 외로움 때문이 아니다. 그 어떤 구체적인 일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일들이라면 나는 어느 정도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가 있다. 나의 슬픔이 놓여 있는 곳, 그곳은 다른 곳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라는 사랑의 관계가 찢어지고 끊어진 바로 그 지점이다. 가장 추상적인 장소의 가장 뜨거운 지점...

 

4. 사랑의 관계가 찢어진 지점에 슬픔이 있다는 말이 깊이 와닿습니다.

 

아마도 가족을 잃었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롤랑 바르트의 이런 말에 깊이 공감할 수 있을텐데요, 저는 오늘 이 책을 이 세상에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 이별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개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성탄의 의미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예수는 슬퍼하는 사람과 함께 있기 위해 이 땅에 온 것이지 단지 기쁨을 주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크리스마스에는 모두들 들뜨고,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기대하지만 사실 성탄의 진정한 의미는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고, 아파하는 자와 함께 아파하는 것일 겁니다.

 

아마 지금 라디오를 듣고 계시는 분들 중에서도 슬픔과 함께 이 성탄절 아침을 보내고 계신 분들이 계실 거에요. 저는 그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혼자 슬퍼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또 롤랑 바르트가 함께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예수가 나사로가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몹시 슬퍼하면서 함께 이틀 밤을 보냈다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책은 슬픔을 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는 슬픔을 없애기 위해 온 분이 아니라 슬퍼하는 자와 함께 하기 위해 오신 거죠. 이 책에서 롤랑 바르트 역시 슬픔을 섣불리 위로하거나 슬픔을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쇼핑도, 여행도, 친구도, 파티도, 새로운 계획과 기분 전환 그 어떤 것도 이길 수 없는 슬픔, 외로움, 허무함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5. 성탄절 아침에 <애도일기>를 가져오신 이유가 그런 이유 때문이었군요.

 

프로이트라는 정신분석학자가 있지요? 프로이트도 애도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는데요, 프로이트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하고 나면, 그 사람을 잃었다는 상실의 상처에 우리가 머물면서 그 사랑을 다른 사람이나 대상에게 이동시키길 거부하게 되고, 거기서 슬픔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애도의 과정을 통해서 이 상처를 인정하고 자신의 사랑을 다른 대상으로 이동시키면 애도 작업이 완료된다고 해요. 쉽게 말해서 사랑하는 누군가가 죽었다면 처음에는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다른 곳으로 옮겨지지 않아 힘든 시기를 겪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랑이 옮겨지게 되면 슬픔도 지워지고, 애도도 성공하게 된다고 하는 거죠. 그런데 롤랑 바르트는 프로이트처럼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옮겨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사라지면 사랑이 그냥 끊어진다고 보는 거에요. 그리고 끊어진 사랑에서 슬픔이 계속 일어난다고 봅니다.

 

저도 프로이트의 생각보다는 롤랑 바르트의 생각에 동의가 되는데요, 대학 다닐 때 좋아했던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사귀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친구가 제게 헤어지자고 하더군요. 사랑이 끊어져 버린 건데요,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실연에 빠져 있던 제게 다른 좋은 여자들도 많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공부를 해야 한다, 여행을 가서 모든 것을 잊고 돌아와라, 정말 많은 조언들을 해줬는데 어떤 것도 그 여학생을 대체할 수 없었습니다. 프로이트는 사랑하던 대상이 사라지면 내 사랑의 방향이 다른 대상으로 옮겨간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오히려 한동안을 그 여학생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혀 계속 그 여학생을 찾게 되는 거죠. 슬픔에 대한 위로가 아무 소용 없는게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는 슬퍼하는 동안에도 끝없이 잃어버린 사랑을, 그 사람을, 이미 죽어버린 그 사람,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 나와 헤어져 버린 그 사람을 끝없이, 계속 찾는거지요. 이 책에서 롤랑 바르트도 슬퍼하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끝없이 찾고, 부릅니다. ‘나의 롤랑’이라고 부르는 마망을 말이죠.

 

6. 선생님의 연애 이야기를 들으니 더 이해가 쉽긴 하네요. 이건 여담입니다만 선생님은 그 여학생과 결국 어떻게 되셨나요?

 

여학생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끝까지 저는 그 여학생만을 쫓아다녔죠. 운 좋게도 저는 결국 그 여학생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제 아내구요.

그런데요, 저는 당연히 살아 있는 여학생을 쫓아 다녔으니까 다시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고 해도 그리 놀라울 일이라 할 수 없지만, 롤랑 바르트는 이미 죽은 어머니를 찾고 또 찾고 쫓아다니는데요, 그러다가 결국 어머니를 만나게 됩니다.

 

물론 어머니가 환생을 해서 돌아온 건 아니구요, 어머니 사진 한 장을 발견하면서 다시 어머니를 만나게 됩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실텐데요, 이 사진에서 찍힌 어머니는 롤랑 바르트가 태어나기도 전인 다섯 살 어린 소녀였을 때 찍은 사진인데요, 롤랑 바르트는 그 사진에서 “마침내 나는 어머니를 만났다”고 합니다. 물론 살아있는 어머니를 다시 만난 것은 아니죠. 그런데 이 사진 한 장을 통해 어머니의 ‘본질’과 만났다고 해요. 마치 제가 오랜 기다림과 구애 끝에 그 여학생을 다시 만난 것처럼 바르트도 오랜 슬픔과 외로움 끝에 사진 한 장에 나타나 있는 다섯 살 어린 여자 아이의 얼굴에 나타난 “해맑은 얼굴과 순박한 손 모양, 얌전한 자세”에서 ‘선함’과 ‘순수함’을 본질로 가지고 있는 어머니를 만나게 된 겁니다.

 

이런 이야기가 이상하게, 또 어렵게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롤랑 바르트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애도는 그냥 단지 죽은 사람으로 인해 슬퍼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진정한 애도는 잃어버린 사람, 죽은 사람과의 본질과 만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지요.

 

7. 애도는 온전히 슬퍼하고, 또 기다리는 것이라는 말씀이 와닿는데요, 그냥 슬퍼하기만 하는 것은 사실 너무 어렵고 힘들잖아요? 슬퍼하되 슬픔을 견뎌내는 방법은 없을까요?

 

<멜랑꼴리의 검은 마술>이라는 책을 쓴 맹정현 박사라는 분이 있는데요, 이 분은 애도는 단순한 슬픔이 아니고 슬픔을 실천하는 노동이라고 합니다. 슬픔이 하나의 정서라면, 통곡은 슬픔으로부터 빠져 나오도록 하는 하나의 노동이라고 하는데요, 꼭 통곡만이 애도의 방법은 아닙니다. 지금 애도의 과정 중에, 슬픔 중에 있는 분이 있다면 저는 ‘글쓰기’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롤랑 바르트도 “커다란 생의 위기를 이겨내고자 하는 작업은 너무 급하게 끝내서는 안된다. 그런 작업은 나의 경우 글쓰기를 통해서만, 또 글쓰기 안에서만 비로소 완결될 수 있다”고 쓰고 있습니다. 롤랑 바르트처럼 짧은 일기를 쓰면서 글을 써 내려가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쓴 슬픔의 기록이 자신에게도 슬픔을 견디는 노동이 되겠지만 슬퍼하는 다른 누군가에게도 위로가 되겠죠.

 

8. <애도일기>, 우리가 이 책을 지금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마다 여러이유로 슬픔을 갖고 살아가는데요, 이 책이 그런 많은 분들에게 격려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온전히 슬픔으로 들어가고, 자신의 슬픔의 정체를 알고, 또 애도를 완성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서 경험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아내의 아버지, 제 장인의 기일이 오는 29일인데요, 올해가 12주기입니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아내에게 이 책에 나온 일기 한 장을 읽어줬더니 바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바르트가 어머니의 어릴 적 사진에서 어머니를 만났다고 한 것처럼 제 아내는 제 아들의 모습에서 아버지가 돌아온 것 같다는 느낌을 간혹 받는다고 해요. 슬퍼하시는 모든 분들이 슬픔을 온전히 견뎌내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입니다.

 

한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우리 사회 곳곳에 저민 슬픔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위기 때 가족을 잃은 사람들, 세월호 유가족들.. 말로 다할 수 없는 큰 슬픔을 가슴에 담아두고 일생을 살아가야 할 분들에게 이 책 <애도일기>가 조금이라도 가 닿길 빌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함께 슬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는 세월호에서 죽은 어린 학생들을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 걸까요? 저는 이 책을 보며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성탄절이 기쁜 날인 이유는 슬퍼하는 자가 더 이상 혼자 슬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책을 통해 나의 슬픔을, 이웃의 슬픔을 살펴보실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 대구교통방송 라디오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책을 소개하는 코너에 나가고 있습니다. 거기서 소개해드리는 책을 이 곳에도 소개해드릴 생각입니다. 라디오에 나가는 대본 그대로 옮겨 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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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 행복지수 1위 덴마크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행복사회 시리즈
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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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1. 안녕하세요? 이번 주에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네, 제가 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책은 오마이북 출판사에서 만들고, 오연호가 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책입니다. 혹시 오마이뉴스라는 인터넷 신문을 아시나요? 이 책의 저자인 오연호씨가 바로 오마이뉴스를 창간한 분입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책을 소개드리기 전에 진행자분과 청취자분들께 먼저 질문을 드려보고 싶은데요, 혹시 요즘 걱정거리가 있으세요? 어떤 걱정거리가 있는지 한번 말씀해주세요. (진행자 대답) 아, 그러시군요. 저도 걱정거리가 있습니다. 이제 아이가 취학 연령이 되었는데, 어떤 학교를 보내야 할지도 걱정이구요, 저는 글을 쓰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노후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도 걱정이에요. 여기서 다 말씀 드리지는 못하지만 누구나 걱정을 적어도 하나, 둘 정도는 갖고 살아가기 마련인데요, 걱정이 없는 나라가 있다고 하면 믿으시겠어요? 사람들이 걱정거리를 물으면 걱정거리를 찾느라 곤혹스러워 하는 나라가 있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2. 그런 나라가 세상에 있을까요? 걱정거리가 없다고 하면 그것은 아마 천국이겠죠.

 

정말 놀랍게도 걱정거리가 없는 것이 걱정인 나라가 있는데요, 바로 덴마크입니다. 작가인 오연호씨는 덴마크 전역을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요즘 걱정거리가 있다면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든 사람의 반응이 한결같이 딱히 걱정거리가 없다면서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하는 표정이었다고 해요. 마치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 듯 애써 걱정거리가 무엇인지 한참 궁리하다가 결국은 걱정이 별로 없다고 대답했다는 거죠.

 

오연호씨는 덴마크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그래서 당신은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까”라는 질문도 던졌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어김 없이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고 해요. 행복하냐고 물으면 행복하다고 대답하고, 걱정거리가 있냐고 물으면 딱히 없다고 대답하는 나라가 바로 덴마크인데요, 오늘 소개해드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는 오연호씨가 덴마크가 이토록 행복한 나라가 된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보고, 어떻게 하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지를 찾아가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제가 예전에 읽었던 기사에서 덴마크가 행복지수에서 세계 1위라고 하던데 맞나요?

 

네, UN은 2012년부터 매년 세계행복보고서라는 것을 만들고 있는데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덴마크가 156개 국가 중 1위였습니다. 올해는 덴마크가 3위를 했죠. 혹시 우리나라는 몇 위인지 아시나요? (진행자 대답) 네, 우리나라는 2013년 기준으로 41위인데요, 덴마크는 다른 조사기관에서 실시하는 행복지수 조사에서도 1위 아니면 최상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4. 그렇다면, 덴마크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책을 읽으면서 제가 느꼈던 가장 두드러진 점은 바로 자존과 연대가 있는 사회라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덴마크 사회는 자신이 어떤 직업을 갖느냐가 자존감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회입니다.

 

책에서 오연호씨는 여러 덴마크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데요, 그 중에 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가 식당의 웨이터로 일하고 있는 페테르센이라는 사람입니다. 보통 웨이터라고 하면 젊은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잖아요? 페테르센씨는 56살인데다 17살 때부터 40년동안 웨이터로 일했고 자신이 걸어다닐 수 있는 한 자기 일을 끝까지 계속하고 싶다고 합니다. 물론 고참 웨이터라고 해서 특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한 사람의 평범한 웨이터인데요, 자신이 웨이터라고 해서 위축되거나 하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페테르센씨는 코펜하겐에 아파트도 있고, 도시 근교에는 별장도 있구요,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당당히 말합니다. 자기는 자신의 일을 정말로 즐거워하고 있구요, 더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더 많은 돈을 갖는 것을 원하지도 않는다고 해요. 심지어 아들 자랑을 엄청하는데, 아들의 직업이 열쇠수리공입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열쇠 수리공으로 일하고 있는 아들을 자랑스러워 하기 쉽지 않지요.

 

5. 웨이터로 살아가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열쇠수리공으로 살아가는 것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그런 자신감이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네, 그런 것 같습니다. 덴마크가 처음부터 그런 사회였던 것은 아니었다고 해요. 페테르센씨의 말을 한번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아버지 세대만 하더라도 직업의 귀천이 있었고 빈부격차도 있었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것이 사라지고 평등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행복하냐고요? 물론이죠. 특별한 걱정이 없고 오늘에 만족하니까요”

 

그러니까 행복한 사회라는 것은 “나는 웨이터다. 아들은 열쇠수리공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 그렇게 말하더라도 우리의 자존에 영향이 없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우리나라는 다른 사람의 눈을 너무 많이 의식하며 살아가잖아요. 사실 거기에는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차와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은 다른 사람을 너무 많이 의식하는 우리 국민성의 문제가 아니라 좋은 차와 명품가방이 아니면 평등하게 대우해주지 않는, 차별이 당연시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남의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겁니다. 페테르센씨처럼 자기 직업에 대한 높은 자존은 결국 평등한 사회이기 때문에, 의사나 변호사가 아니라도 평등하게 대우받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6. 덴마크가 행복한 사회가 된데에는 결국 밑바탕에 평등이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군요.

 

덴마크는 대학등록금과 병원비 전액이 무료인 사회이구요, 실업보조금도 충분할만큼 제공하는 사회입니다. 예를 들면 회사의 경영 상황이 악화되어 해고가 된 경우에도 사람들은 걱정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그 이유는 정부가 실업 이후에도 생활자금을 지원해주는데요, 2년동안 우리돈으로 최소 200만원, 최대 300만원을 받거든요. 아버지나 어머니가 실직 상태라고 하더라도 자녀가 대학 진학을 고민하거나 걱정할 이유도 전혀 없어요. 대학 등록금은 무료인데다 생활지원금이 한 달에 120만원씩 나온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실직 중에 자녀는 대학을 가고, 어머니가 투병 생활을 해도 문제가 안됩니다. 실직으로 인한 생활 자금이 나오고, 자녀의 대학 생활 지원금이 나오고, 병원비는 어차피 무료기 때문이죠. 사회 안전망이 철저하게 갖춰진 사회라고 할 수 있어요. 지난 해 세모녀 자살 사건 같은 일이 있었잖아요? 그렇게 사지로 내몰린다거나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경우가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된다라는 전 시민들의 합의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7. 듣다 보니 놀랍고 부럽기도 한데요, 대신 그렇게 높은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려고 하면 조세 부담이 굉장히 커지지 않을까요?

 

네, 맞습니다. 덴마크의 부자들은 월급의 50%이상을 세금으로 낸다고 해요. 우리나라가 25.9%이니까요, 거의 두배 차이가 나는 거니까 세부담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세금을 많이 내게 하면 부자들이 나라를 떠나거나 조세 회피를 할 것 같은데 덴마크 사람들은 기꺼이 그 세금을 낸다고 해요. 그 이유는 두가지인데요, 하나는 정부에 대한 높은 신뢰가 있습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결국 실업하면 실업보조금도 받고, 대학도 다니고 병원비도 평생 무료기 때문에 세금을 정부가 제대로 쓰고 있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는 거죠. 우리나라 시민들이 정부에 대한 불신이 강한 것과는 상당히 대비가 되는 부분이죠?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연대’입니다. 사람들 사이의 연대가 튼튼하고, 이웃들 간의 관계가 살아 있기 때문에 기꺼이 자기 돈을 내서라도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나와 이웃의 운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이 있고 사회가 이웃들 간의 연대를 든든하게 지원해주니까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 되는 겁니다.

 

몇 가지 예가 있는데요, 덴마크에서는 의사라고 해서 큰 돈을 버는 것은 아닙니다. 의사라고 해서 웨이터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 사회에서 머물면서 지역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나가는 일을 적극적으로 해야 해요. 덴마크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주치의가 있는데요, 주치의가 내 아버지, 나, 나의 아들까지도 계속 봐 온 사람이기 때문에, 또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이기 때문에 유전적 문제도 잘 알고, 환경적 요인도 고려해서 처방을 내려줍니다. 또 사람들은 고민이 있으면 의사에게 찾아가 상담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진료를 보는데 3분도 안 걸리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풍경이죠. 이렇게 되면 의사와 지역사회는 하나의 운명 공동체가 되는 거죠.

 

8. 우리는 바로 옆집에 사는 주민들과도 모르며 살아갈 때가 많은데, 부러운 모습입니다.

 

책과는 좀 동떨어진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아쉽게 여겨졌던 부분이 바로 아이들 놀이터였습니다. 일단 우리나라에는 놀이터가 많지 않구요, 설치된 놀이터도 아이들끼리 규칙을 만들고 협력하면서 놀이할 수 있는 환경이 잘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놀이터 바닥이 우레탄일 때보다는 모래일 때 아이들이 서로 협력하는 놀이를 더 잘할 수 있는데요, 정작 아이들 노는 것을 보면 엄마나 할머니와 와서 혼자 그네 타고 미끄럼 몇 번 타고 돌아갑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함께 놀면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와 할머니, 아빠도 이웃과 함께 인사하며 지낼 수 있거든요. 놀이터가 사회 연대의식을 높이고 이웃을 만나는 장이고, 아이들도 협력을 배우는 곳인데 현실은 놀이터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는 분위기에요.

 

제가 놀이터 이야기를 먼저 드린 이유는 덴마크에서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아이들로 하여금 경쟁 보다는 협력하면서 자라도록 교육하기 때문입니다. 덴마크 학교에서는 1학년 때부터 7학년 때까지는 아예 점수를 매기는 시험도 없고, 그러니까 등수를 매기는 시험도 없다고 해요. 심지어 한 담임 선생님 하에서 같은 학생들이 9학년까지 무려 9년을 함께 지내는 거죠. 이 정도의 시간을 함께 보내면 이건 친구가 아니라 거의 동지 수준이 됩니다. 아주 끈끈한 사이가 되는 거죠. 8학년부터는 시험을 치고 등수도 나오는데, 시험 성적 때문에 루저가 되는 경우는 아예 없어요. 왕따도 없구요. 왜냐하면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함께 해왔고,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성적이라는 하나의 잣대로만 서로를 평가하지 않게 되는거죠. 일찍부터 아이들을 경쟁시키고, 경쟁에서 이기도록 하는 것에 관심이 많은 우리 사회와는 정말 다른 풍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교육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9. 어떤 행복의 선순환이라 할까요, 이웃간의 연대, 정부에 대한 신뢰, 평등한 사회, 자존감이 높은 사회가 연결이 되면서 개인들의 행복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것 같아요. 책의 제목대로, 덴마크는 행복한 사회가 되었는데,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요?

 

덴마크가 얼마나 평등하고 협력적인 사회인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는데요, 40분 정도 이동하는 열차 안에서 옆자리에 모르는 누군가와 함께 앉게 되면 내릴 때 협동조합이 하나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서로 간 네트워킹에 관심이 많고 서로를 정말 중요하고 내 삶에 함께 하고 싶은 사람으로 존중한다는 것을 말하는거죠. 몇 일 전에 제가 평택에 강의가 있어서 열차를 타고 세 시간을 갔는데요, 공교롭게 평택으로 갈 때 함께 앉은 분과 대구로 올 때 함께 앉은 분이 같은 분이었어요. 협동조합은커녕 서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뭔가 말을 붙여볼까 하다가도 그 분에게 폐가 될까봐 말을 하지 않았는데요, 덴마크라면 그 시간이면 협동조합이 6개 만들어졌겠지요. 오연호씨는 택시 기사 밀보씨와의 인터뷰도 소개하는데요, 택시 기사 밀보씨는 자신은 누구도 부럽지 않고, 택시 기사일을 통해 세계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즐겁다고 해요.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 타인에 대한 존중,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는 실천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10.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정말 행복하려면, 이분법적 사고를 뛰어 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부자냐 가난한 자인지, 우파인지 좌파인지 하는 것이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 예로 덴마크에는 유연안정성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유연성이라고 하면 기업이 해고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거구요, 안정성이라고 하면 노동자들에게 안정된 소득과 고용을 보장하는 거에요. 언뜻 생각하면 유연성과 안정성을 대비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죠? 그런데 덴마크 사람들은 기업을 위해서는 노동자들을 해고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에 동의했어요. 그리고 노동자들에게는 안정된 소득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도 모든 사람들이 동의를 했고, 이것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기업이 노동자를 해고하면 노동자들에게 실업 급여를 제공하고 재취업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았어요. 그게 바로 유연안정성이라는 겁니다. 심지어 이런 합의가 1899년에 이뤄져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구요, 덴마크가 해운회사인 머스크나 장난감 회사인 레고 같은 경쟁력있는 회사를 탄생시키면서도, OECD 회원국 중 직장만족도 1위를 이뤄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죠? 좌파냐 우파냐, 종북이냐 아니냐, 친일이냐 아니냐, 유연성이냐 안정성이냐, 효율성이냐 평등이냐 하는 것들을 넘어서는 상상력이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12월에 이 책을 꼭 읽어보시라고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추구하고 살아온 삶의 방향이 옳았는지, 나는 어떤 이분법에 빠져 살았는지, 내 삶은 행복한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지 연말에 생각해보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구요, 행복은 혼자서 이룰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덴마크의 사례에서 보듯이 같이, 함께 이뤄가는거죠. 이 책을 읽으시고 가족 모임에서 망년회에 가셔서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 대구교통방송 라디오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책을 소개하는 코너에 나가고 있습니다. 거기서 소개해드리는 책을 이 곳에도 소개해드릴 생각입니다. 라디오에 나가는 대본 그대로 옮겨 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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