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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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하늘 보기>

 

1.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건가요?

 

안녕하세요? 제가 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삼인에서 만들고 황현산 선생님이 쓰신 <우물에서 하늘 보기>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는 ‘황현산의 시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요, 문학평론을 하시는 황현산 선생님께서 ‘시’에 대해 쓴 29편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한 마디로 ‘시화집’이라 할 수 있지요.

 

2. 황현산 선생님은 저도 많이 들어본 분인데요, 청취자들을 위해서 소개해주시죠.

 

황현산 선생님은 고려대 불문학과에서 교수 생활을 하시다가 지금은 은퇴하시고 집필에 집중하고 계신데요, 우리 문학계의 큰 어른 중의 한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3년 전인가 쓰셨던 <밤이 선생이다>라는 산문집이 문학계에 큰 호응을 얻었는데요, 글만 봐서는 이 글을 쓴 작가가 70세가 넘으신 어른이라고는 전혀 예상도 못할 정도로 위트가 넘칩니다. 문장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과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구요, 문학계의 여러 작가분들도 <밤이 선생이다>가 출간되고나서 ‘드디어 읽을만한 글이 나왔다’고 크게 환영했을 정도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우물에서 하늘 보기>는 <밤이 선생이다> 출간 이후 3년만에 나온 선생의 신간인데요, <밤이 선생이다> 만큼이나 문학과 시에 대한,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의 계기를 제공해주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두 권의 책 제목도 뭔가 시적이네요. 하지만 요즘 참 ‘시’를 많이들 읽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시’라고 하면 뭔가 난해하다는 생각이 저도 앞서거든요.

 

네, 최근 출판계가 어렵다고 하는데 소설가나 에세이 작가, 자기계발서 작가보다 시인이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시집을 읽는 것이 유행일 때도 있었고, 시인이 인기를 얻어 유명세를 타는 경우들도 있었다고 하던데요, 요즘에는 정말로 그런 상황을 찾아보기란 어렵죠. 아마 시인들 중에서 ‘시인’이라는 직업만으로 생업을 유지할 수 있는 분은 거의 없을 거에요. 거기에는 말씀하신대로 ‘시’라고 하면 일단 어렵다라는 생각이 한 몫했을 겁니다. 요즘 시들, 특히 뉴웨이브 계열로 분류되는 시들은 난해시라서 읽고 이해하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바쁘게 움직이는 세상에서 하나라도 정보가 되는 지식을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획득하는게 독서의 목표가 된 상황에서 이해도 안되고, 정보도 안되고, 경제적인 이익도 생기지 않는 시를 인내를 가지고 읽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게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현산 선생님은 “시를 쓰거나 읽는 사람들에게는 무언지 모를 극단적인 것”이 있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시를 오랫동안 비평해오면서 이 무언지 모를 극단적인 것에 관해서 되풀이해서 거듭 생각해오셨다고 해요. 제가 ‘시에는 극단적인 것이 있다’는 선생의 말과 관련한 부분을 한 부분 읽어보겠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제 심정이 한 자락 노래를 타고 날아오르듯 약동하고, 삶의 어떤 매듭이 물결처럼 밀려드는 몽환에 휩쓸리고, 정신이 문득 소스라치면서 또 하나의 새로운 각성에 이르던 순간들을 기억할 것이다. 내가 ‘시적인 무엇’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그 순간의 동력과 연결된 모든 것들을 말한다. 그 동력은 정신이 집중된 시간에도 나타나고 심신이 풀려 자유로워진 시간에도 솟아올라 내 존재가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존재가 아님을 알려주곤 한다.

 

4. 아, 아름다운 글이네요.

 

그렇죠? 우리의 마음이 날아오르게 약동하고, 현실이 꿈에 휩쓸리게 만들고, 정신이 새로운 각성을 하게 만드는 그 동력이 바로 ‘시’에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시에는 극단적인 것이 있다’고 할 때 극단성이라는 것은 우리가 현실에 있지만 현실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극단’을 말한다고 할 수 있어요. “시라는 것을 읽으면 우리는 이 세상의 시간이 아닌 것 같은 다른 시간을 경험”하지요? 노래 한 곡을 부를 때 세상 시름을 잊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시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시간을 경험하게 만드는 것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5. 구체적으로 어떤 시들이 소개되고 있는지 궁금해지는데요, 하나 소개해주시지요.

 

네, 한 편을 소개하기 전에 진행자분과 청취자분들에게 한번 질문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한 사람의 시인이 있습니다. 이 시인은 자신이 경멸하는 친구들에게 이틀이 멀다 하고 신세를 지는 데다 일정한 거처가 없어 사실상 노숙을 하는 신셍입니다. 그런 그가, 늘 최고급 원고지를 품에 안고 다닙니다. 지금은 컴퓨터가 보급되어 원고지에 글을 쓰는 사람은 없지만 예전에는 많았지요? 이 시인은 질 좋은 종이에 금박으로 테를 두르고 역시 금자로 제 이름을 박어 넣고 다녔습니다. 이 시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되시나요? (대답) 네, 아마도 제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기가 쉽죠. 그 누구라도 밥벌이도 못하는 사람이 금박 원고지를 들고 다니면 지나치게 사치스럽다고 생각하기 마련일겁니다. 그런데요, 이 시인은 누가 그렇게 타박하면 ‘이것이 바로 예술가의 긍지’라고 대답했다고는 합니다. 황현산 선생님은 이 이야기를 하시면서 ‘사치스러움’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틉니다. 선생은 사치는 “예술을 예술되게 하는 기본 요소”라고 해요. 오페라 가수들을 생각해보세요. 가수들은 온갖 재능과 기량을 다해서 가장 불편하고 사치스러운 방법으로 가사를 읊습니다. 그림에 있는 균형 잡힌 구도, 색깔의 배합, 시의 운율, 언어적 장치 등이 모두 생각해보면 금박 테두리 원고지만큼이나 사치스러운 거죠.

 

사치는 예술의 기본요소라는 점을 생각하고서, 김종삼의 <북치는 소년>을 한번 들어보시죠.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이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6. 가난한 아이에게 온 서양 나라의 크리스마스 카드라는 구절이 들어오네요.

 

네, 가난한 아이에게 서양 나라의 크리스마스 카드는 얼마나 유용한 것일까요? 그러나 지금 가난하고 내용이 없다고 해도 ‘아름다움’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억압의 저 너머를 꿈꾸지 않는 삶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시는, 노숙자 시인의 원고지처럼 어쩌면 사치스러운 것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사치는 ‘저 세상에서 보게 될 삶의 맛보기’이구요, 또 다른 삶을 그리는 작업인거에요. 이건 제 생각인데요, 카푸어라는 말이 있죠? 집을 아직 사지 못한 사람들이라 원룸에서, 혹은 월세로 살면서 벤츠나 BMW 자동차 같은 고급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자동차 할부를 갚느라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 사람들을 부르는 말인데요, 저는 원룸 살면서 벤츠 타는 것을 뉴스에서 사회적 문제나 천태만상인 것처럼 표현하는 것에는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권장할 수는 없지만 가난하면 bmw 타면 안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치스럽고 낭비인 듯 보이지만, 거기에 깃든 것은 오직 허영만인 것은 아니에요. 인간이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울만큼 깊은 존재이니까요.

 

명품시계는 정확하지 않은 것 아시나요? 수천만원짜리 태엽 시계는 몇 만원짜리 전자시계보다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값도 비싸고 관리도 꾸준히 계속 해줘야 하구요, 사용 방법도 배워야 합니다. 비싼 것이라서 그런지 관리도 쉽지 않지만 어쩌면 그게 재미라면 재미입니다. 시도 먹고 사는 문제에 급한 우리에게 사치일 수 있습니다. 명품시계만큼이나 비효율적입니다. 시는 읽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문학은 바로 효율성에 저항하고, 유용성에 저항하면서 삶의 의미를 묻습니다.

 

7. 사치라는 것은 부정적이라 이해하기 쉬운데 이렇게 다른 이해도 가능하다는 점이 재밌습니다. <우물에서 하늘 보기>라는 제목에도 호기심이 생기는데요, 제목은 어떤 의미인가요?

 

사실 책 전체에서 <우물에서 하늘 보기>라는 제목에 대해서 작가가 직접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없습니다. 그래서 짐작을 해봐야 하는데요, 일단 <우물에서 하늘보기>라는 말은 가장 먼저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자기가 살고 있는 우물만이 세계의 전부로 안다는 점에서 어리석은 존재죠. 우물에서 하늘을 본다는 것은 다른 세계를 꿈꾼다는 것, 당장 도착할 수는 없어도 희망하는 세계를 그려보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우리들을 우물 안의 개구리라 한다면 우물에서 하늘을 보는 방법, 다른 세계를 꿈꾸는 방법으로 황현산 선생은 ‘시’를 제시한 것이라 이해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황현산 선생이 이 제목을 붙이면서 염두에 둔 것은 ‘우물 안 개구리’라는 속담보다 한 편의 시였을 겁니다. 이 책에서 소개되어 있는 정화진 시인의 <박우물>이라는 시입니다. 아마 청취자분들께서 진행자님이 낭송해주시길 바라실 것 같은데 한번 이 시를 읽어주시지요.

 

8. 제가 <박우물>이란 시를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둥글게 내 볼을 파갔어. 박바가지였어

그래도 있잖아, 새색시였어

이쁘게 들여다보는 새벽이었어

떨려 온몸이 파들거렸지 뭐

 

하늘이 몇 번 우그러지고 펴지고 그랬어

 

감사합니다. 이 시에서 화자는 ‘박우물’입니다. 바가지로 물을 뜰 수 있는 얕고 작은 우물이죠. 시를 보면 한 새색시가 와서 바가지로 물을 펐고, 그러자 물의 온 몸이 떨리면서 파들거렸다고 해요. 우물의 물과 새색시의 바가지가 만나는 수간을 마치 성적인 흥분상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 흔히 영감이라고 부르는 것과 글의 관계도 이것과 비슷하다는 것이 황현산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수면이 요동하며 거기 비친 하늘이 우그러졌다 펴지듯이 작가가 어떤 진실을 만나 그것을 글로 옮길 때도 작가를 움찔거리게 할만큼의 뜨거운 전율이 오죠. 황현산 선생은 이 책의 제목을 <우물에서 하늘보기>로 붙이면서 자신을 박우물로 생각하고, 자신에게 비춰진 하늘을 뜨거운 전율로 써내려갔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런데요, 저는 이것이 우리가 시를 읽고, 또 글을 써야 할 이유라고 생각해요. 저는 청취자분들에게 가장 최근에 ‘뜨거운 전율’, 마치 하늘이 몇 번 우그러지고 펴지는 것 같은 그런 경험을 하신 게 언제신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돈도 되지 않고, 스펙도 되지 않는 것이지만 우리의 잠자는 감각을 일깨워주고, 우리를 다른 세계로 데려갑니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글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쓰시고 나눠 읽으시면 삶이 전혀 다른 차원으로 옮겨지게 될 겁니다. 올 한해 시를 읽고, 또 써보시라 적극 권하고 싶습니다.

    

부기. 제목에 관해

나는 황현산 선생의 <우물에서 하늘 보기>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우물 안 개구리가 하늘 보는 것을 생각했더랬다. 우물이라는 좁은 세상에서 다른 세상인 하늘을 보게 하는 것이 시라는 것을 보여주는 제목이 아닐까? 근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선생은 이 책 어디에서도 <우물에서 하늘 보기>라는 제목에 주를 달지 않았지만 필시 이 시를 염두에 뒀을 것이다. 이 시의 박우물은 글을 쓰는 이들이다. 글을 쓰는 이들이 우그러지고 펴지고 하는 것, 그 전율은 박우물이 새벽의 새색시를 만나는 것과 같은 경험, 새색시가 바가지로 물을 흔드는 경험이다. 그리고 거기에 하늘이 우그러지고 펴지는 것이 비추는 것은 한편의 글이다. 선생은 우물이 되어 하늘을 보고 그 우그러지고 펴짐을 이 책에다 쓰려 한 것 같다. 그 뿐만 아니다. 이 책은 사실 세월호에 대한 글이다. 세월호 이후 선생이 쓴 글은 아마 모두 세월호를 쓴 것일 것이다. 그래서 우물은 슬픔의 깊이고, 이 슬픔이 내는 길을 따라가면 하늘을 만난다. 무엇보다 시는 슬픔을 담는 우물이고, 우물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하늘이다. 그래서 선생은 이렇게 쓴다. "시가 보기에 쓸고 닦아야 할 삶이 이 세상에는 없다. 시는 이를 갈고 이 세계를 깨뜨려 저 세계를 본다. 시가 아름답다는 것은 무정하다는 것이다".

 

9. 우리가 <우물에서 하늘보기>를 지금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는 우리에게 긍지와 위엄을 줍니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황진이가 이생을 이끌고 이곳 저곳을 여행하다가 나주에 당도했을 고을 원이 절도사와 함께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고 해요. 기생도 그 자리에 많이 있었는데요, 그때그때 필요한 경비를 벌어서 황진이는 여행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 잔치판에 끼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해진 옷에 때묻은 얼굴로 그 자리에 끼어 앉아서도 부끄러운 기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고는 제 차례가 오자 적삼 속에 손을 넣어 태연히 이 한 마리를 잡아 죽이고, 거문고를 무릎에 괴고 노래를 불렀다고 해요. 그 모습을 보고 뭇 기생들이 기가 죽었지만 기가 죽은 건 기생 뿐만 아니라 양반 관료도 마찬가지였어요. 이게 바로 시의 힘입니다. 황진이는 이 긍지가 있었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었죠.

 

제가 이 프로그램에서 소개해드렸던 서경식 작가라는 분이 있죠? 그 분이 지난 해 쓰신 <시의 힘>이라는 책이 한국작가회의에서 뽑은 2015년의 책으로 선정이 되었어요. 우리에게, 또 우리 사회에 ‘시의 힘’이 그만큼 필요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의 힘으로, 올한해 정신의 사치를 누려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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