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덧붙임.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리어왕)
이번 주는 교통방송에서 김영하의 <말하다>를 소개했다. 여러 곳에서 이뤄진 인터뷰와 강의를 모은 것이라 하나로 관통하는 주제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지만, 굳이 정리해보자면 “자기 자신만의 기쁨을 찾아라” 정도가 될 것 같다. 독자적이고, 개별적인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만, 즉 누군가의 취향에 종속되지 않고서야 한 사람의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김영하 작가의 개인의 삶, 문학, 글을 통해 표현된다. 심지어 김영하 작가는 소설 쓰기에 대해서도 누군가와 나눠가질 수 없는 불가분의 것, 소통 가능하지 않는 어떤 것이라고 말한다. 소설을 쓰는 것과 읽는 것은 일견 비슷해 보일 뿐 사실은 전혀 다른데, 쓰는 행위에는 세계를 창조하는 즐거움이 있고, 읽는 것에 소설가의 세계를 만나는 기쁨이 있다는 것이다. 결코 소설가와 독자가 소설을 통해 직접 만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간접적으로 만난다. 와인 고를 때 남의 취향에 따를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 지금 당장 예술가가 되어라는 강권부터 소설 쓰기의 은밀한 즐거움에 이르기까지 모두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즐거움’을 가져라는 내용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에 동의하는 것은 물론이다. 뉴욕에서 만난 택시기사가 알고보니 연극배우기도 했다는 김영하 작가의 말을 들으면서 지금 내 포지션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아주 즐거운 자유를 나는 만끽하고 있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도 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누구일까? 쿵푸팬더3을 보면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던 대목도 바로 이 지점이다. 나는 거위의 아들인가, 팬더의 아들인가? 나는 국수집 먹보인가, 용의 전사인가?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포는 그 자신이 그 모든 것임을 알고 난 후 용의 전사가 된다. 어떤 학위나 직책으로 밖에 표상될 수밖에 없는 것은 얼마나 우울한 일인가. 독자적인 기쁨은 기호 체계 내에서 성립되지 않는다. 지난 해에 쓴 <직업의 지배>라는 글에 비슷한 문제의식을 담은 적이 있어 다시 옮겨 써 본다.


 '직업의 지배'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직업으로 규정될 수 없는 자신이 있음'을 다양한 형태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나 자신이 나의 밥벌이로 규정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째서 내가 내 직업이 아닌 '나'인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공중을 향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 정치에 참여하는 행위가 고귀하다고 말해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자유롭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새로운 것을 배울 때 비로소 내 자아는 직업과 그 직업이 부여하는 수동적인 정체성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독자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오랜 불황은 취업난 뿐만 아니라 사회와 개인의 삶 전반에 직업의 지배를 더 공고하게 만들고 있다. 갑을 문제로 대변되는 사회적 분열, 열정 페이로 대변되는 직장에 삶의 전영역을 헌신하지 않으면 안되는 왜소화된 개인의 삶 모두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직업의 지배와 무관하지 않다. 직업으로 누군가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믿는 사회, 직업으로 자신을 소개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사회, 그런 사회야말로 인간을 단번에 파악 불가능한 '깊이를 가진 존재'로 존중하는 사회다. 직업 밖의 자기 자신을 ‘표현해야’, 직업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거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좋은 직업을 가진 자들, 즉 기득권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게는 직업 외에도 무수한 또 다른 자아의 측면이 있다. 나는 내가 다니는 학교나 내가 믿고 있는 종교나 내가 속한 계급이 아니다. 그렇다. 나는 내 직업이 아니다. 



말하다
김영하에게 듣는 사람, 문학, 글쓰기

1.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이번 주에 제가 가져온 책은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만들고, 소설가 김영하가 쓴 <말하다>라는 책입니다. 예전에 제가 김영하 작가의 <보다>라는 산문집을 소개해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보다>가 김영하 작가가 한국 사회를 바라 보면서 느낀 점을 쓴 에세이 모음집이라고 한다면, <말하다>는 김영하 작가와의 인터뷰와 그간 행했던 강연을 모아 둔 책입니다. 글에서는 말하기 힘든, 그렇지만 작가의 솔직한 생각을 알 수 있는 책인데요, 저는 이 코너에서 <보다>를 소개했던 적이 있어서 다시 김영하 작가의 책을 소개하는 것이 주저가 되기도 했는데, 풍부한 영감을 많이 주는 책이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2. 예전에 <힐링 캠프>에서 김영하 작가가 했던 강연을 본 적이 있어요. 그 때 강의에서 어떤 군인이 “자기는 집안 형편도 좋지 않고, 학벌도 시원찮고, 스펙도 별로인데 어떻게 하면 성공하겠냐”고 질문을 했는데 김영하 작가가 “음, 잘 안 될 거에요”라고 대답해서 놀랐어요.

이 책에도 김영하 작가의 힐링캠프에서 했던 강연록이 들어 있는데요, 말씀하신 그 대목이 나옵니다. 김영하 작가는 우리가 “비관적인 현실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 군인에게 ‘잘 안 될 것’이라고 하는 말도 작가의 ‘비관주의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건데요, 김영하 작가는 자신이 젊은 시절에는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연 10%가 넘는 고도성장을 거듭하는 시기라 취업 걱정이 크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1~2% 수준이기 때문에 예전과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진단합니다. 그런데도 언론과 학교와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꿈을 가져라’, ‘제2의 스티브잡스가 되어라’고 권하는데 그런 희망을 가지기 어려운 사회라는 것을 냉정하게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젊은이들의 취업난은 젊은이들의 문제가 아니고, 세계 경제의 흐름이라는 큰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거지요.
김영하 작가는 자신이 소설가이기 때문에 성공하는 법 같은 것은 모른다고 합니다. 오히려 소설가는 실패전문가라고 해요. 문학은 성공하는 방법은 가르쳐 줄 수 없지만, 실패가 그렇게 끔찍하지만은 않다는 것, 때로는 위엄 있고 심지어 존엄하다는 것을 가르쳐주니까 인생의 보험이라 생각하고 소설을 읽어라고 권합니다.

3. 성공하는 방법을 물은 사람에게 ‘존엄한 실패’를 이야기하는 소설을 읽어라는 대답은 선뜻 와닿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성공하고 싶다고 하는데, “당신 실패할 수 있으니 소설 읽어라”고 하는 셈이잖아요?

네, 맞습니다. 김영하 작가는 그런 의미에서 ‘비관적 현실주의자’인데요, 우리 앞에 있는 건 ‘성공’이라는 낙관적인 미래보다는 ‘실패’라는 비관적인 미래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거죠. 그렇게 보면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람들 중 성공한 사람을 찾기는 정말 어려워요. 이 책에서 <노인과 바다>를 소개하는 부분이 나오는데요, 노인은 기껏 고생해서 커다란 물고기를 잡는데 성공하는데 결국 상어들에게 다 뜯기고 뼈만 끌고 나옵니다. 실패죠. <안나 카레니나>의 안나, <마담 보바리>의 보바리는 모두 자살합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는 옛사랑을 얻기는커녕 엉뚱한 사람이 쏜 총에 맞아 젊은 나이에 죽게 됩니다. 모두 실패한 인생인데, 그렇다면 이 실패가 과연 무가치하거나 쓸모 없는 것이냐 하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실패를 보면서 새로운 도전을 할 용기를 얻고, 힘든 싸움이라도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기는 것이죠.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 “저렇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 “너 자신이라도 바꿔라”고 하는 이야기보다 실패할 수 있으니까 실패를 단단히 대비해서 당신이 하고 싶을 하라고 권하는 김영하 작가의 말이 제게는 훨씬 더 와닿습니다.

4. 사실 자기계발서를 읽어보면 내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분명히 나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책을 읽었는데, 읽다보면 내가 뭔가 잘못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거든요.

봄에 우울증이 늘어나고 자살률이 높아지는 것 아세요? 햇살은 따사롭고 뉴스에는 나들이 나온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 나오는데 나만 불행하다는 느낌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온통 사회가 ‘낙관적 태도’, ‘긍정적 사고’만 강조하니까 나만 불행한가 싶은 거죠. 뭔가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들구요. 그래서 김영하 작가는 누가 시키는대로 따라 살려고 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 어떤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독자적으로, 현실적으로 고민해야”한다고 합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어떤 사람들은 먹을 물도 부족한데 면도를 하고 세수도 했다고 해요. 엘르의 편집장인 장 도미니크 보비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전신 마비가 되었는데 오직 왼쪽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 장 도미니크 보비가 평생 해오던 대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20만번 이상 눈을 깜빡여 15개월에 걸쳐 쓴 책이 바로 <잠수종과 나비>였고, 책이 출간되고 8일만에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1980년대 일본의 미즈노 겐조도 눈깜박임으로 시집을 만들어 냈구요, 사마천도 궁형의 치욕을 당하고도 <사기>를 썼습니다. 가장 극한의 상황에서도 자신이 누릴 즐거움을 찾았던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자기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와닿습니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말처럼 쉽지 만은 않은 거 같아요. 즐기기에는 너무 바쁜 시대를 모두가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네, 정말 쉽지만은 않은 거 같아요. 김영하 작가가 이 책에서 하는 이야기인데요, 가끔 택시를 타면 택시 기사분들이 행복한 일체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손님이 탔는지 안탔는지 신경도 안 쓰고, 혼자 차 몰고 가면서 웃기도 하고, 라디오에 빠져 있는거죠. 이건 분명히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 것과는 좀 다릅니다. TV는 화면이 계속 바뀌고, 광고도 나오고 몰입이 어렵습니다. 스마트폰의 정보도 라디오가 주는 몰입의 경험을 거의 주지 못하죠. 라디오를 들으며 몰입이 되는 것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여유를 갖기 때문인거죠.
또 택시 이야기이기는 한데요, 김영하 작가가 뉴욕에서 택시를 탔더니 좌석 앞에 어떤 배우의 프로필이 붙여져 있었다고 해요. 왜 이런 것을 붙이고 있냐고 물으니까 알고 보니 이 택시 기사가 바로 그 연극 배우였습니다. 무슨 배역을 연기했냐고 물으니 당당하게 ‘리어왕’이라고 말하더라는 겁니다. 이 기사분은 그러니까 택시 기사이면서도 동시에 연극 배우였던 거죠. 자기만의 즐거움을 찾은 것인데요, 작가는 이렇게 우리가 은행원이면서 화가, 골프선수이면서 작가, 가수이면서 소설가, 학원 강사이면서 피아노 연주가처럼 여러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합니다. 리어왕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우리가 자기 나름대로의 독특한 즐거움을 찾고 살아간다면, 언론과 사회, 주변 사람들이 규정하는 내가 아닌 오직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거죠.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이기는 한데요, 자기나름대로의 독특한 즐거움을 위해서 김영하 작가는 어떤 소설은 써놓고 공개하지 않는 소설도 많다고 합니다.

6. 아, 그러면 소설을 쓰기 쓰는데 독자들에게 공개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쓰는 건가요?

네, 그런 셈인데요, 김영하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로지 소설을 쓰면서 오직 자신의 소설과 소설 속의 인물들과만 소통한다고 해요.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서 그 인물과 대화하면서 사건을 엮고, 소설의 세계가 완성되면 자기는 그 세계에서 나오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면 어떤 소설은 공개해서 독자들이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 소설가가 만든 세계에서 독자들이 소설 속 인물과 소통하는 거죠. 그래서 김영하 작가는 소설 쓰기는 독자와 별로 관계가 없다고 해요. 오로지 작가와 작가 자신의 세계와의 문제라고 합니다. 그래서 소설을 쓰는 동안, 쓰고 나서 갖고 있는 동안 그 소설은 자기 것이 되고, 아무도 그 즐거움을 훼손할 수 없다고 해요. 작가가 글을 쓰면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독자는 글을 읽으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전혀 다른 즐거움을 갖기 때문에 독자들의 반응을 얻거나 성공한 소설이 되는 것이 소설가의 목적이 아니라고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자기 자신만의 즐거움’을 김영하 작가 스스로는 소설을 쓰면서 찾고 있는 거죠. 인기를 얻거나 독자들에게 공감을 많이 얻어서가 아니라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소설을 쓴다는 건 어떻게 보면 이기적이고 자폐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변의 인정과 기대를 뒤로 하고 소설 속 인물과 소통하고 거기서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은 김영하 작가의 내면이 매우 강하고, 감성 근육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죠.

7. 우리 사회처럼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상황에서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자기가 즐거운 일을 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 눈에 어떻게 보일까를 더 신경쓰는 경우가 많죠. 페이북이나 카카오스토리 같은 것 때문에 남들 눈에 신경쓰는게 더 심해진 것 같아요.

SNS가 그렇게 만드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있어빌리티’라는 신조어가 유행하잖아요. 실제로는 없지만 ‘있어보이도록 만드는 능력’을 의미하는 말인데요, sns에서 유명인과 사진을 찍거나 사진을 절묘하게 편집해서 사실보다 이미지가 훨씬 더 근사하게 보이도록 만들어 자신을 과시하는 건데요, ‘있어빌리티’가 중요한 사회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즐거운 일보다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까를 더 신경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세요. 와인을 전문적으로 테이스팅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별점을 보고 와인을 고를까요? 평생음악을 사랑하고 들어온 사람이 남의 평가만 보고 콘서트 티켓을 살까요? 자신의 내면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만의 고유한 즐거움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 눈에 어떻게 보일까 신경 쓰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 휘둘리게 됩니다. 결국 강한 내면을 갖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즐거움을 가져야 하는 거죠.
제 경우에 책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고, 이 코너에서도 지금 책을 추천하고 있지만 솔직히 저는 책을 읽을 때 누군가 추천해 준 책은 참고는 하지만, 그 중에 실제로 읽게 되는 책은 거의 없습니다. 제가 읽고 싶은 책만 읽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 내가 어떤 책을 읽어야 즐거움을 느끼는지는 나 외의 다른 사람은 절대 알지 못하는 거니까요.

8. 자기만의 즐거움을 찾아라, 오늘 책 <말하다>에서 김영하 작가가 말하고 있는 바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이 책을 추천해주시는 이유 정리해주시죠.

제가 7살 아들이 하나 있는데요, 아이와 레고를 가지고 놀다보면, 어느 새 아이에게는 손도 못대게 하고 레고를 조립하는 즐거움에 빠져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몰입이 된 거죠. 그리고 저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즐거움을 알게 됩니다. 아들 녀석에게 레고를 자주 사다 주는데, 사실 아이 때문이라기 보다 제가 너무 즐겁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아이와 그림도 그렸는데요, 아이도 물론 즐거워했지만 그림 그리기가 제가 너무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웃으실 수도 있는데, ‘내가 그림에 이렇게 재능이 있구나’, ‘내가 그렸지만 꽤 근사하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을 깨닫게 된거죠. 그래서 그림을 좀 그려봐야겠다고 제 아내에게 말했더니 ‘그건 해서 뭐하냐 왜 놀 궁리만 하냐’고 묻던데요, 저는 단지 그냥 재밌어서 합니다. 별로 쓸모가 없는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즐거운 일이 되고 창조적인 생각과 영감을 주거든요.
우리 사회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을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주관이 강하고 내면이 단단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행복한 사람들이 많아지는 거구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소설을 읽고, 춤을 추고, 커피를 마시고, 여행을 떠나고, 영화를 만들고, 그런 돈 안되는 일들을 지금 하고 계시는지요? 이 책 <말하다>는 돈이 안되고 필요 없는 그런 것을 우리가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경제적 불황, 곳곳의 지진과 전쟁의 위협, 취업난과 같은 비관적인 현실과 미래에서도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힘이 거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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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개정3판
박상훈 지음 / 후마니타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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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1.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네, 지난 수요일이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지요? 그래서 가져온 책인데요, 출판사 후마니타스에서 만들고, 박상훈 선생이 쓴 <정치의 발견>이라는 책입니다. 박상훈 선생은요, 이 책을 발간한 후마니타스 출판사의 대표이기도 하구요, 동시에 정치학 박사이기도 합니다. 


2. 그러니까 출판사 대표께서 쓰신 정치에 관한 책인 셈이네요. 


 그렇습니다. 서울 합정에 가면 이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후마니타스 책다방이 있는데요, 분위기가 좋은 곳이라 저도 서울에 가면 가끔 들립니다. 그 때마다 한 쪽 책상에서 열심히 책을 읽으시고 자판을 두드리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이 바로 박상훈 선생님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정치의 발견>이라는 책은 우리에게 정치라는 것이 왜 필요한지, 정치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어떻게 정치적인 실천을 할 수 있는지를 다루는 책입니다. 


3. 그런데, 대개 ‘정치’나 ‘정치적’이라는 말이 좋지 않은 의미로 쓰이는 것 같아요. 영화에서 보면 “정치가가 하는 말을 믿어?”라는 대사도 자주 나오잖아요? 


 네, 우리 사회에는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하면서 국회의원을 욕하는 아주 이상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주변의 누군가가 국회의원이 되거나 정치인이 되면 겉으로는 아닌 척 하겠지만, 아마 속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을 부러워 할 겁니다. 그러면서도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 아침 7시부터 확성기를 틀고,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도 하고, 온 종일 사람들과 악수하러 다니는 거죠. 저희 집 앞에서도 아침 일찍부터 확성기를 틀어서, 대북 확성기 방송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아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책에 재밌는 사례가 나오는데요, 18대 국회의원에서 노회찬씨는 낙선을 했었는데 길을 지나다 우연히 한 부부를 만났다고 했요. 그런데 그 부부가 하는 말이 “자신들은 노회찬 후보가 정치인이 될까 봐 걱정해서 내심 떨어졌으면 했다”고 해요. 그래도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구요. 노회찬씨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놀랐는데, 그 부부가 무안해 할까봐 웃으며 “제가 정치인이 되어야지 아님 왜 출마했겠어요. 그럼 누굴 찍으셨어요?”라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당연히 노회찬씨를 찍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부부는 노회찬씨를 신뢰하고 지지하지만 그래도 정치인이 되지 않고, 정치에 오염되지 않았으면 했다는 겁니다. 어떤 정치인을 지지하지만, 그 정치인이 정치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 부부의 심리에 ‘정치’라는 말이 가진 이중성이 다 들어있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저자인 박상훈 선생은 누군가 정치를 하겠다고 하면 “기꺼이 정치를 하라”고 말한다고 해요.


4. 아, 그건 왜일까요? 정치적이라고 하면 사람을 이용하거나, 협잡을 꾸미거나 국회의사당에서 싸움을 하는 모습이 먼저 그려져서 오히려 저라면 말리게 될 것 같은데요.


 네, 저도 그럴 것 같아요. 우리나라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특권이 많다는 비판이 많이 있지만, 다르게 말하면 국회의원도 4년 계약직이라고 할 수도 있거든요. 선거를 해서 재신임을 받지 않으면 일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인지, 요즘 고등학생들 중에서도 정치인을 미래직업으로 희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게다가 정치 자체가 마치 ‘반인반수의 양면성’이 있습니다. ‘선한 목적’을 위해 헌신하고자 노력하면서도 그 수단으로서 강제력이라는 ‘악마적 수단’을 회피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박상훈 선생은 ‘정치’가 꼭 필요하다고 합니다. 오바마가 아직 대통령이 아니었던 시절, 이제 막 정치에 입문하려고 할 때 사람들이 “왜 정치판처럼 더럽고 추잡한 곳에 뛰어들려고 하는가?”를 묻습니다. 거기에 대해 오바마가 답변했던 부분을 한번 읽어드릴께요.


“그런 회의적 시각을 갖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정치에는 또 다른 전통이 있다. 그것은 아주 단순하고 분명한 생각에 기초를 두고 있다. 우리는 서로 서로에 대한 관심과 이해관계를 갖추고 있고, 그 때문에 우리를 하나로 결집시키는 힘이 분열시키는 힘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이 옳다고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해도 상당한 성취를 이룰 수 있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약간만 조정해도 모든 어린이가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도록 도와줄 수 있고 국가적으로 당면한 여러 어려운 문제들에 잘 대처할 수 있다”.


여기까지인데요, 오바마의 말을 정리하면 정치에는 나쁜 면이 있지만, ‘또 다른 전통’ 즉 사람들의 생각을 결집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를 가져오는 힘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박상훈 선생은 우리가 정치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버릴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정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정치를 좋게 바꾸기 위한 노력도 부정당하게 되니까요. 그리고 우리에게 정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도록 해서 멀리하게 해서 이득을 보는 집단도 누구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해요.


5. 이번 총선에서 대구 지역의 투표율이 가장 낮았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낮은 투표율도 이 책의 설명처럼 대구 시민분들이 정치에 대한 회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까요?


 네, 확실히 이번 선거는 그 이전보다 정치에 대해서 회의할 수밖에 없게 하는 이슈가 많았던 것 같아요. 특히 대구시민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느낄 사안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요, 또 다른 이유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에는 서울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은 열 개 동네를 뽑으면 예외 없이 가장 부자인 동네가 순서대로 나열된다고 해요. 투표율이 낮은 동네는 그 반대구요. 그렇게 보자면 전국에서 가장 어려운 대구의 경기가 낮은 투표율의 원인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언론에서 이야기들하는 것처럼 단지 대구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해서는 안되고, 정치에 무관심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봐야 하는 거죠. 먹고 살기도 바쁜데 정치에 대한 관심까지 가지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니까요.


6. 게다가 정치인들의 비리나 특권을 남용하는 신문 기사를 보면 정말 정치라는 것에 회의를 느끼게 되요. 아마 청취자분들 중 다수가 그러실 겁니다.


 네, 그런데요, 물론 정치인들의 비리나 특권을 남용하는 것은 당연히 없어야 하는 건데, 재밌는 것은 이 책은 그렇다고 해서 정치인이 윤리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라는 거에요. 정치인들은 좀 다른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보통의 사람들은 “악에 대해 폭력으로 대항하지 말라”가 사랑의 윤리지만, 정치가는 “너는 악에 대해 폭력으로 저항해야 한다”가 사랑의 윤리가 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정치가는 악을 막지 못하면 악이 만연해지는 것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인거죠. 그래서 위대한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의 말을 빌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정치가는 악에 대해 폭력으로 저항하기 위해 악마적 힘을 사용하는 운명을 가졌다” 고요. 그런 의미에서 좋은 정치가는 단지 윤리적이고 착하기만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 대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어리석고 비열하다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거죠. 


7. 그러니까 좋은 정치란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식으로는 이뤄지지 않고, 악마적인 힘을 이용해서라도 악과 싸우는 태도가 있을 때만 이뤄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네, 맞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소개해드리는 이 책 <정치의 발견>은 정치에 대한 책이면서 동시에, 좋은 정치인의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주는 책입니다. 정치인이 되기 위해 정치인이 갖춰야 할 덕목과 이상을 다루고 있는 책인 거죠. 그 중 하나가 바로 금방 말씀드린 것처럼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악과 맞서 싸우는 의지’이구요, 또 다른 하나는 ‘말의 힘’을 사용할 줄 아는 능력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말을 잘하는 분들이 많지만, 박상훈 선생은 ‘말의 힘’을 사용할 줄 아는 정치인으로 ‘오바마 대통령’을 소개합니다. 심지어 박상훈 선생은 마흔 다섯에 오바마가 서른세 살에 쓴 <아버지로부터의 꿈>을 읽었는데 오바마의 인간에 대한 이해가 너무 깊어 자기 자신이 압도당하는 느낌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8. 저도 말을 해야 하는 직업이라 말을 잘하는 것에 관심이 많은데요, 오바마 대통령의 어떤 말이 저자를 사로잡은 걸까요?


 미국에서 9.11 테러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이 전쟁을 시작하기 위해 분위기가 고조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오바마는 어떤 반전 집회에서 연설해 줄 것을 부탁받았다고 해요. 오바마의 많은 참모들이 반대했는데 오바마가 해보겠다고 하고, 연설문을 써서 집회에 나가 연설을 했다고 합니다. 반전집회, 그러니까 전쟁을 반대하는 집회에 나가서 오바마가 처음 한 말이 뭔지 아세요? 어떤 말을 했을 것 같아요? (대답) 놀랍게도 “나는 모든 전쟁에 반대하지는 않는 사람으로서 이 자리에 나왔다” 며 연설을 시작합니다. 반전집회에서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전쟁하지 말자’고 경쟁하듯 이야기하는데, 거기에 나와서 ‘모든 전쟁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니까 야유가 터져 나온 거죠. 그런데, 오바마가 연설을 이어가자 분위기는 급 반전이 이뤄집니다. 제가 한 부분만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모든 전쟁에 반대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이 자리에 나왔다. 남북전쟁은 역사상 가장 잔인한 전쟁 가운데 하나였지만, 무력으로 인한 시련과 수많은 인명의 희생을 통해 이 나라를 완성했고 이 땅에서 노예제도라는 사회적 악을 철폐할 수 있었다.

나는 모든 전쟁에 반대하지 않는다. 9월 11일, 그 처참한 죽음과 폐허 그리고 그 숱한 먼지와 눈물을 목격했고, 이교도에게는 무자비해도 좋다는 미명 아래 무고한 사람들을 살육한 자들을 끝까지 추적하여 색출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지지했으며, 그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내 손에 무기를 들 것이다.

나는 모든 전쟁에 반대하지 않는다. 내가 반대하는 건 어리석은 전쟁이다. 내가 반대하는 건 경솔한 전쟁이다. 내가 반대하는 건 탁상공론에만 열중하는 이 정부의 몇몇 인사들이 인명손실이나 시민의 고통에 대해 고려도 하지 않는 정책을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오바마는 자신은 모든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지금 하려는 이라크 전쟁은 경솔한 전쟁이기에 반대한다고 합니다. 모든 전쟁을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모든 전쟁에 반대하지만 이라크 전쟁은 반대한다’고 말하는 편이 훨씬 더 합리적인 태도처럼 보이고, 이라크 전쟁이 경솔하고 오만한 전쟁이라는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죠. 그러면서 이라크 전쟁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의견까지도 존중합니다. 9.11 테러 이후의 울분을 이해한다고, 나름대로의 명분도 있다는 것을 읽어주면서 그들을 적으로 돌려 세우지 않는 것이지요.


9. 좋은 정치인이 갖춰야 할 덕목이 참 많은데요, 이제 마무리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먼저 이번에 국회의원이 되신 분들도 지혜로운 말과 용기로 악과 싸워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책은 정치는 더럽고 추잡한 면이 있더라도 그것이 우리가 사는 사회와 우리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어느 때보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하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는 바꿔야 할 현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청년 실업 문제, 노인 빈곤 문제, 교육 문제, 미세 먼지와 같은 환경 문제등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대구의 경우는 전국 시도 중 1인당 소득이 가장 낮아 힘든 시기를 겪고 계신 분들도 많구요. 투표 참여는 중요한 정치 참여 행위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닙니다. 우리 모두 깨어있는 정신으로 우리가 뽑은 정치인들을 지지하고, 비판하고, 감시할 때 좀 더 좋은 정치인이 나오게 되고, 그러면 더 좋은 정치가 실현되고, 좋은 정치가 좋은 사회를 만듭니다.

 사실 이 책은 박상훈 선생이 어느 진보적인 정당에서 했던 강의록을 정리한 것인데요, 책에서도 나오듯이 정치적 입장과 이 책 내용은 별로 관련은 없어요. 누가 읽으셔도 우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정치에 대한 나름대로의 판단과 기준을 정립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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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장소, 환대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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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교통방송에서 스물한번째로 소개한 책은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이다. 이 책은 사람이란 하나의 자격이며, 사람 자격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사회로 들어가기 위한 인정투쟁을 하고 있고, 그들에게 장소를 내어주는 절대적 환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논증하고 있다. 여러 논증들이 다채롭게 엮여 단번에 그 전모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 책 읽기는 내게 세 가지 의미에서 특별한 경험이었다.

 

첫째는, 그동안 내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써왔던 주제, 예를 들면 명함의 현상학, 직업의 지배, 겸손의 현상학으로 썼던 글이 이 책의 주제의식에 의해 거의 대부분 포괄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명함과 직업은 이 책의 주제에 비춰보면, 사람 자격을 상징하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나 자신이 하나의 유령처럼 여기 있으면서도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를 나는 거기에서 찾았다. 겸손의 현상학이라는 주제 역시 이 책의 주제에서 비춰보면 상호작용 의례라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상호작용 의례상에서 겸손인 것이 사회 구조적으로는 비겁이 될 수 있고, 겸손은 이 책의 '모욕의 의미'를 다루는 장에서 보듯이 누군가에게는 굴욕을 안겨 줄 수 있다.  

 

둘째는, 본색소사이어티에서 진행했던 '이단의 목소리'의 문제의식과 이 책의 주제는 거의 유사하다. 우리는 이단을 사회로부터 정당성을 얻기 위해 투쟁하는 자들이라 규정하고, 이들을 사회로부터 추방당한 자로 이름했는데 이 책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가 말하는 '이단'은 인간이지 사람은 아니다. 책에 나오는 인정투쟁에 대한 내용도 이단의 정당성 투쟁과 매우 유사하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사람됨'의 문제로까지 인식하지 않았지만 이 책은 그러하다는 것, 이 책에서 개인의 차원에 집중하는 것과는 달리 운동의 차원에서 접근했다는 것, 마지막으로 이단들의 정당성 투쟁에 집중한 나머지 사회의 역할을 규명하지 못했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 이 책은 공공성을 그 답으로 제시한다. 공공성은 환대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셋째는, 대단히 성실한 책이라는 것이다.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 자체는 이렇듯 이단과 정체성의 문제,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비교적 유행하는 흔한 주장일 수 있지만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엄밀하고 정직하다. 좋은 지적 결과물은 성실한 지적 훈련에서만 나온다는 것을 보여준 책이다. 주변에서 이뤄지는 사소한 사고를 사건으로 다루는 작가의 솜씨는 그럴싸한 직관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다. 나의 게으름에 대해서도 반성하게 된다.   

 

 

<이단의 목소리>를 시작하며.

에드워드 사이드는 사람들이 추방된다는 것의 의미를 완전한 단절, 고립, 절망적 분리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한다. 추방이 그런 완벽한 외과적 수술과 같은 것이라면 차라리 상황은 나았을 것이다. 오히려 추방 당한 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그런 고립과 분리이기 보다, "당신이 추방 상태에 있고, 당신의 집이 사실상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현 생활에서의 정상적인 왕래가 옛 거처와 끊임 없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그것이 감질나고 충족되지 못한 접촉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케 하는 것들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완전히 벗어난 것도 아니고 완전히 속한 것도 아닌 그 '어정쩡한 상태' 말이다.

 

우리는 이 어정쩡한 상태에 놓인 자들을, 많은 개념상의 오해에도 불구하고, "이단"으로 부르고자 한다. 사회적 정당성을 어느 순간에 상실해 버린 이들은 사실상 사회로부터부터 '정죄되었고', '추방된 것'과 마찬가지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적대로 추방의 고통이 그 '어정쩡함'에 있다면 사회와 일상적으로 만나고 교섭하면서도 사회와 진정으로 만나는데는 수많은 오해와 불신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소위 이단으로 불리는 자들이 겪는 어려움과 일치한다. 한 사회 내에 함께 현존하지만 연대에서는 배제된 자들. 바로 이단들이다.

 

철학본색과 대구경북학술공동체인 비상구에서는 소위 '이단'에 놓여 있는 자들과 몇 차례 만나는 자리를 만들고자 한다. 사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자들, 그래서 어정쩡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자들의 목소리.앞으로 몇 달 간 연속, 불연속적으로 진보정당 관계자, 양심적 병역거부자, 성소수자 등등 여러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분명하게 하고 싶은 한 가지는 우리가 그들을 '이단'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단은 사회적 정당성이 상실된 상태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것, 즉 사회가 그렇다고 규정하고 있는 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단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거나, 사회와의 손쉬운 화해나 조화를 꿈꾸지 않는 자들이다. 그래서 <이단의 목소리>는 이들이 어째서 그런 방식으로 살기로 했는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고, 그들과의 연대 가능성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이단의 목소리>는 이들을 편들고 위로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이들을 '적대적으로 여기는 것' 만큼이나 '대상화'하거나 '타자화' 시킬 위험이 있다. 동등한 시민으로, 그들의 입이 '말하는 입'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장이 되도록 하는 것에, '이단'이기 이전에 '목소리'를 지닌 인간으로서 그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14.4.8 본색소사이어티 권영민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1.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문학과 지성사에서 만들고, 김현경이 쓴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이제 출간된지 딱 1년이 되었는데요, 출간 이후 이 책은 하나의 '사건'이라고까지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책의 제목처럼 <사람, 장소, 환대>라는 세가지 개념을 중심으로 “사람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답을 찾아보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사람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어떻게 보면 단순하지만 아주 철학적인 질문이라 어렵게도 느껴지는데요. 저자가 생각하는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지난 3월 26일이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이 있었던지 25년이 되었던 해였는데요, 프랑스 민법에서는 사람이 아무 연락 없이 그의 집이나 거처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때 실종을 선고하는데, 이 때부터 실종추정기간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실종추정기간은 실종자가 귀가하거나, 죽었다는 증거가 나타나거나, 실종 선고로부터 10년이 흐르면 종료되는데요, 만약 실종자가 실제로 어딘가에 살아있다고 해도 10년이 지나면 죽었다고 여겨지게 됩니다.

 

3.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살아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겠네요.

 

그렇죠? 그래서 저자는 사람과 인간을 구분합니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저자인 김현경 선생에 따르면 어떤 존재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 안으로 들어오지 않아도 인간입니다. 실종자라는 것은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사회 속에서 확인되고 있지 않아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 거지요. 즉 사람이라는 것은 그냥 태어나서 살아간다고 해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일종의 자격이고 누군가 그 존재를 사람으로 인정해줄 때만 사람이 되는 거죠. 또 다른 예로, 태아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아직 자궁에 있는 태아는 분명히 인간이지만 사람은 아닙니다. 법적으로 일단 출생한 신생아를 죽이는 것은 살인죄가 인정되지만 태아를 죽이는 행위는 살인죄가 아닙니다.

 

이 뿐만 아니라 전통 사회에서는 출생했다고 모두 사람으로 인정된 것은 아니었다고 해요. 지금은 출생과 동시에 아기는 사람으로 인정되지만 과거에는 아기가 출생하더라도 백일잔치를 거치면 사람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만약 백일 전에 죽으면 태아가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장례도 치르지 않고 매장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점을 보면 인간이라고 해서 모두가 사람인 것은 아닌 거죠. 그런데 오해하지 말아야 마셔야 할 것이 있는데요, 이 책에서 사람과 인간을 구분한다고 해서 태아는 인간이니까 낙태해도 된다는 식의 주장을 이 책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로부터의 통과의례라던가 어떤 인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거죠.

 

4. 사람과 인간은 다른 이유는 사회로부터 사람으로 인정 받았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와 관련이 되어 있는 거라고 할 수 있는 거군요. 저도 예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어르신들은 예전에 백일이 되어서야 아기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는 하셨다고 하더라구요. 그것도 백일 이후에 사람이 되었다는 것과 관련이 되어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이 책에서는 노예의 사례도 나오는데요, 노예에게는 온전한 이름이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 로마법에서는 노예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으로 규정했다고 해요. 그리고 “노예는 태아와 같다”는 격언도 있었다고 합니다. 노예가 살아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죽었고, 사회 밖으로 쫓겨나 있고, 실종자 같은 존재라는 거죠. 그래서 저자는 사람이라는 것은 사회로부터 사람임을 인정 받을 때 얻어지는 하나의 자격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트롤로프의 <미국인의 가정예절>이라는 책에서는 흑인 남자 노예 앞에서 태연히 코르셋을 졸라매는 숙녀나, 밤중에 깼을 때 목이 마를까봐 부부 침실 한구석에 여자 노예를 재우기도 했다고 해요. 이 경우 이들은 노예들이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같은 공간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격으로 대우하지 않는 거죠.

 

5. 아, 그렇게까지나요?

 

충격적이죠? 이 책에는 이처럼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한 자들을 상징하는 존재로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소개합니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샤미소의 소설인데요, 어떤 한 사나이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거절하기 힘든 거래를 제안합니다. “다름 아니라 조금 전 정원을 거닐 때 햇빛 아래 펼쳐진 당신의 멋진 그림자를 보았노라고, 그 그림자가 몹시 마음에 드는데 자기에게 그걸 주는 대가로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이 사나이는 어떻게 했을까요? 진행자님은 어떻게 하셨을 것 같으세요? (대답) 이 사나이는 그림자를 주고 그 대가로 금을 무한하게 만들어내는 ‘행운의 자루’를 얻게 됩니다. 엄청난 부를 가지게 되었으니 너무 좋았을 것 같은데요, 이 사나이는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더 이상 낮 동안에 길거리를 걸을 수 없게 된 거에요. 사람들이 그림자가 없다고 이 사나이에게 손가락질을 하는거죠. 그림자라는 것은 그렇게 큰 용도도 없고, 금을 만들어내는 행운의 자루처럼 부를 가져다 주지도 않는데, 사람들은 이 남자가 그림자가 없다고 배척합니다. 심지어 결혼까지 좌절되고 맙니다.

 

6. 언뜻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가 연상이 되는데요, 그림자는 그 사나이의 영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책 <사람, 환대, 장소>는 이 사나이에게서 ‘그림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찾아가는 내용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책의 저자는요, 그림자가 의미하는 것은 영혼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림자는 영혼처럼 고상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아주 세속적이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해요. 그림자가 없어서 결혼도 못하고, 그림자가 없어서 길거리도 못 다니니까요. 사람들은 그림자가 없는 이 사내를 더럽고 역겨운 것을 볼 때처럼 멀리합니다. 그래서 이 남자는 하루 종일 집에 틀어 박혀 있는거죠. 그러니까 이 사나이는 인간이기는 했지만, 그림자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으로 인정 받지 못했던 거에요. 그러면 이 이야기에서 ‘그림자’는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가 없기 때문에 사람으로 인정 받지 못했다면 그림자가 있다면 사람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니까요.

 

7. 그러면 사람이 사람으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그림자가 필요한 것인데, 그림자가 영혼도 아니고 돈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사실 돈이 많다고 해서 사람임을 꼭 인정 받게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많은 경우에서 볼 수 있는데요, 예를 들면 유명한 축구 선수가 중요한 국가 대표 경기에서 계속 헛발질을 하고, 그 때문에 우리나라 국가 대표팀이 결국 패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경우 운동선수가 유명한 사람이니까 돈은 많겠지만 그 선수가 살고 있는 동네의 헬스장이나 커피샾에 가는 것은 굉장히 부담스러울 거에요. 돈과 권력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이 경우처럼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꺼려지는데, 그것은 역시 그림자를 판 사나이처럼 손가락질을 받고 배척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거든요. 그러니까 모욕을 당할까봐 두려운 겁니다.

 

그리고 법이 권리를 보장해준다고 해도 항상 사람으로 인정 받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우리나라 법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고 선언하죠. 잘 살거나 못 살거나, 배웠거나 못 배웠거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고는 하는데요,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 않습니다. 예고 없이 실직을 당했다거나, 일한 대가가 터무니 없이 적을 때, 아무리 절약해도 반지하 셋방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누군가가 일부러 모욕감을 준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는 굴욕감을 느끼는 거죠.

 

그래서 저자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림자를 갖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사람으로 인지되는 것은 그림자로 인지되는 것이라고 해요. 그림자는 조금씩 크기가 다르지만 다 비슷하잖아요? 몸과 달리 색깔과 표정이 없고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죽으면서 함께 사라지는 거죠. 어떤 사람이 돈이 많든 없든, 많이 배웠든 못 배웠든 사람들의 인격이나 개성과 상관 없이 같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환대해주고 있을 수 있는 장소를 허락해줘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합니다. 결국 그림자는 우리의 몸이 있는 자리를 표시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죠. 앞에서 말씀 드린 축구 선수의 경우도 사회가 그 사람을 유명한 국가대표 축가선수로 인지해서는 그 선수를 사람으로 인정하고 환대해줄 수 없는 거죠. 유명한 국가대표 선수든, 장애가 있든, 못 배웠든, 가난하든 간에 누구에게라도 사회에 자리를 내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8. 현실에서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못 배웠다는 이유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차별이 있는 것 같아요.

 

얼마 전 뉴스에서 집은 원룸 월세에 살면서 고급 수입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요, 그 뉴스를 본 대부분의 반응은 ‘생각이 없다’, ‘철이 없다’, ‘겉멋만 들었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집이 없거나, 벤츠나 BMW와 같은 고급차를 타지 않으면 사람 대접 해주지 않는 사회에서 수입차를 사는 편이 집 값 보다는 훨씬 더 싸게 먹힙니다.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든 힘을 기울여 사회에 들어오기 위해 인정투쟁을 하는데, 정작 우리 사회는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일에 너무 게으른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9. 마지막으로 우리 청취자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시는 이유를 정리해주시죠.

 

사실 저 자신이 모든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환대해주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좋은 사회는 누구에게라도 각자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환대해주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저마다에게 각자의 자리를 허락해줄 때 사람들 간에 우정이 생겨 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한번 생각해 보시면 우정이 없는 사회입니다. 사람들이 일상적인 모욕과 굴욕감에 시달립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종업원이 쭈그리고 앉아서 주문을 받게 합니다. 백화점 영업이 시작되는 시간에 직원들이 입구에 늘어서서 ‘어서 오세요 고객님 사랑합니다’ 와 같은 별로 의미도 없는 말을 한참동안 복창하게 합니다. 계산원이나 조립라인 작업원처럼 한 곳에 장시간 서 있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성인용 기저귀를 차고 근무하게 합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는 사회인거죠. 평등하다고 하지만 사람들에게 이런 굴욕감을 주는 사회에서는 우정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우정 대신 끝없는 경쟁과 그로 인한 경멸이 생기는 거죠. 그건 요즘 학교 폭력을 보면 분명히 드러납니다. 예전에는 ‘일진’이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었는데요, 지금은 아닙니다. 교실 내에서의 위계는 사회 내에서의 위계와 비슷합니다. 가진 게 많은 아이들, 공부 잘하는 아이, 운동 잘하는 아이가 꼭대기에 있고, 집이 가난하거나 특정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밑바닥에 있습니다. 위에 있는 아이들이 아래에 있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거죠. 아이들조차 서로의 자리를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정도 희박해졌습니다.

 

이 책은 대단히 좋은, 제가 근래 읽은 책 중에 가장 좋은 책이라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하지만 읽기 쉬운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 절 한 절 힘들게 따라 읽어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시며 뇌도 단련해 보시고, 모욕주고 모욕당하는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도 고민하시는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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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꿈들
박기범 지음, 김종숙 그림 / 낮은산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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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임.

 

<그 꿈들>.
이 책은 내용도 아름답지만 무엇보다 두 분 작가의 삶이 놀랍다. 책에 소개된 작가 소개를 그대로 옮겨 본다. 그림을 그린 김종숙 작가, 이야기를 만든 박기범 작가에 대한 소개.

 

 

박기범.
동화 쓰는 사람. 이천삼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할 무렵, 그곳 아이들의 곁이 되고자 인간방패, 평화지킴이로 전쟁터로 들어가 그 전쟁을 함께 겪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로 그곳에서 인연을 맺은 이들과 우정을 나누며 평화를 바라는 일들로 지내었으나, 내전으로 치닫는 상황에 하나둘 소식마저 멀어졌다. 세상에 대한 무력감은 글을 쓰는 일에 대한 자괴감으로 이어졌고, 이천칠년, 한옥 짓는 일을 배우는 목수학교에 들어갔다. 이천십이년, 숭례문 복원공사와 석가탑 해체보수공사 같은 곳에 잡부로 들어가 맨 밑에서 일들을 배운 뒤, 지금은 문화재보수기술자가 되어 일을 하고 있다.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글과그림」 동인...으로 『문제아』, 『미친개』 같은 동화를 썼다.

 

김종숙.
그림 그리는 사람.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그림만 그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림 그리는 것으로 진정의 끝에 닿고자 하며, 붓을 잡으면 고통스러운 대결을 놓지 못한다. 가난하고 굶주리고 눈물겨운 것,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그 극한의 칼날 위를 걸어야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는. 그러하기에 그의 작업을 지켜보는 일은 조마조마하기만 하다. 당신의 붓질 하나하나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를 알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살라 버릴 것만 같은, 몸속 식지 않는 불덩이. 그러나 그 작고 가녀린 몸으로 오징어 덕장에서는 다른 이보다 곱절의 일을 씩씩하게 해내며, 식당 설거지도 마다하지 않고 즐겁게 해 오고 있다. 1965년 속초에서 태어났고, 「글과그림」 동인으로 『미친개』에 그림을 그렸다.

 

두 분 모두 직업과 생업 사이의 거리를 지닌 분들이라는 점이 우선 감동이 된다. 인터뷰에서 박기범 작가는 세상의 조화를 깨고 싶지 않아 목수가 되었고, 문화재 복원일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http://www.aladin.co.kr/author/wauthor_interview.aspx?AuthorSearch=@63071 

 

 

이렇듯 동화작가가 된다는 것은 그냥 작가가 되는 것과는 조금 더 고단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동화작가는 한편의 동화를 개연성있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을 넘어 삶 전체가 고스란히 자신이 그려낸 동화 속 세계에 바쳐지길 요구 받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 헌신과 열정이 이 책의 그림과 글에서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책을 보고(읽는 것이 아닌), 또 작가의 삶을 보고 나는 어떤 세계에 바쳐진 삶인가 생각하게 된다. 하느님과 돈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데, 두 작가의 삶에 비하자면 나는 돈을 예배하며 매일 같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가.. 책에 나온 이야기처럼 공감도, 고통도, 애원도 숫자에는 들어있지 않다. 숫자의 편리함은 공감의 고통과 번거로움을 줄여준다. 그림책 한 장 한 장을 넘기면서 숫자란 그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 돈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호기있게 외쳤던 10살 때의 감각이 되살아 남을 느꼈다.

 

 

그 꿈들

    

 

1.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이번 주는 특이한 책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혹시 진행자님께서는 최근에 그림책을 읽어본 적 있으세요?

 

2.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이라면 자주 읽어주지요.

 

네, 저도 아직 아이가 어려서 그림책을 자주 읽어주는 편입니다만, 그래서인지 그림책이라는 것은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요, 아마 많은 분들이 저처럼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사실 서점에는 성인들을 위한 그림책도 많이 있는데요, 오늘은 특별하게 그림책 한권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출판사 낮은산에서 만들고, 박기범이 쓰고 김종숙이 그린 <그 꿈들>이라는 책입니다.

 

3. 성인을 위한 그림책이라고 하시니까, 언뜻 생각하기로는 만화책도 떠오르구요, 미술에 관한 책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어떤 책인가요?

 

네, 제가 오늘 소개해드릴 <그 꿈들>이라는 책을 처음 만나게 된 계기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이 책을 제주도에 있는 그림책 갤러리 제라진이라는 곳에 방문했다가 소개 받게 되었습니다. 제라진 갤러리는 미술작품을 판매하는 상업 갤러리는 아니구요, 그림책미술관 시민모임이라는 곳에서 운영하는 그림책 문화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제라진갤러리를 방문했을 때는 오늘 소개해드리는 책인 <그 꿈들>에 그려져 있는 김종숙 화가의 원화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잘 아시겠지만 사실 앤소니 브라운이나 로즈메리 웰스와 같은 아이들 그림책은 너무 아름다고 예술성도 뛰어나잖아요? 제라진갤러리는 그래서 이렇게 좋은 그림책에 실려있는 원화를 전시하고, 그림책을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가해 그림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림책 독서회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림책미술관 시민모임에서 읽는 그림책은 단지 어린이들을 위한 책은 아니구요, 어린이들도 읽기에는 별로 무리가 없긴 하지만 내용과 그림이 그보다는 좀더 복잡한 성인들이 읽는 그림책이라 할 수 있어요. 제라진 갤러리에서는 이 밖에도 그림책 창작 워크샵도 진행하구요, 드로잉 수업도 하구요, 작가를 모시고 북콘서트도 진행하기도 합니다.

 

4. 그림책을 읽고 독서모임을 하는 것을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왠지 그림책이라니까 참여하는데 부담이 적을 것 같아서 좋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저도 사실 제라진 갤러리에 방문해 그림책미술관 시민모임이라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그림책 독서모임이라는 것은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요, 제라진 갤러리에 계신 분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정말 괜찮은 모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일단 그림책이면 큰 부담이 되지 않으니까 독서회에 와서 누구라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고전이나 어려운 책을 읽는 모임도 도움이 많이 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지적으로 더 훈련 받은 사람들이 아니라면 모임에 나와서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기에는 한계가 많잖아요? 하지만 그림책은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읽는 것에는 부담이 적지만 책의 그림을 보거나 글을 읽고 느끼는 점은 사람마다 다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저는 이제 일곱 살인 제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줄 때도 새롭게 깨닫는 점이 많은데요, 저는 아이가 그림책에 나오는 이야기와 정보를 이해했는지에 집중하는 반면 아이는 이야기보다는 그림에 훨씬 더 관심이 많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엉망진창 흙>이라는 그림책을 읽어준 적이 있는데요, 저는 흙의 종류가 10만가지가 넘고, 가로세로 1미터 크기의 땅에 300만마리가 넘는 생물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아이가 알게 되는 것이 더가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는 그런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흙에 대해 설명해주는 두더지 옆에 조그맣게 그려진 개구리를 찾느라고 책을 읽어줘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거죠. 하지만 아이는 아빠가 전혀 보지 못하는 것을 배웁니다. 장난스럽게 그려진 개구리를 찾으면서 개구리는 흙에서만 살 수 있다는 것을, 흙이 점점 없어지면 더 이상 개구리도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말이죠. 아이와의 그림책 읽기에서도 어른인 제가 보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보게 되는데요, 이처럼 그림책은 단순해 보여도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책에 실려 있는 그림을 하나 하나 살펴보며 의미를 파악하고, 감상하기 위해서는 보통의 책을 읽는 것보다 훨씬 더 시간이 많이 걸리고 복잡하다고도 할 수 있죠. 오늘 소개해드리는 <그 꿈들>이라는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5. 아, 그렇네요. 그림책에 실려 있는 그림들은 이해를 돕기 위한 단지 참조그림이나 일러스트가 아니라 그것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니까 그 의미를 읽어가는 것이 만만치 않겠네요.

 

네, <그 꿈들>이라는 이 책에 실려 있는 삽화들도 말씀하신 대로 이야기를 돕기 위한 참조그림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 하나의 작품이라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마치 너무 좋은 작품이 많이 전시된 미술관에서는 이 작품을 보다가 저 작품으로 가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죠. 오늘 소개해드리는 <그 꿈들>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두꺼운 그림책입니다. 이 책에서는 전쟁에서 들리지 않는 목소리, 그러니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와 언론의 왜곡에 가려져 잘 들리지 않는 소박하고 힘이 없는 개인들의 삶과 꿈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책의 한 부분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저 멀리, 텔레비전과 신문으로만 소식을 듣는 사람들은 더는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슬픈 마음에 깊이 젖어들지 못했습니다.

-어제 하루에만 백 명도 넘게 죽었다는군.

-시장 한가운데다 로켓포를 쏘았다나 봐요.

-어쩌자고 죄 없는 사람들까지 다 죽게 하는지.

-어차피 이럴 거면 한 번에 다 쏟아 부어야 해. (중략)

 

어느 날은 백 명이었고, 어느 날은 백오십 명이라 했습니다.

어느 날은 공원에서 폭발이 일어났다고 했고, 또 어느 날은 예배당 건물에 포탄이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뉴스에서는 거기까지만 말해 줄 뿐,

죽거나 다치게 된 이들이 간직한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스러져 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

묻혀 버린 한 사람 한 사람의 어젯밤 이야기,

숨이 막힌 한 사람 한 사람의 사랑,

저물어 버린 한 사람 한 사람의 꿈.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것들.

하지만 전쟁을 벌이는 이들은 그 아름다운 것들을 아주 없는 것처럼 무시했습니다.

오로지 사망자 숫자만 헤아릴 뿐. 먼 곳의 사람들은 그 숫자에 무덤덤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번 그 오누이가 나눈 이야기도, 그 노인의 얼굴에 깊게 팬 주름도,

아이를 들쳐 업고 뛰던 아버지의 숨소리도 그 숫자로는 알 수 없었습니다.”.

    

 

6. 숫자에는 영혼이 없죠. 수백명이 죽었다는 것은 수백개의 삶과 꿈이 사라졌다는 것인데, 뉴스를 통해 사라져간 삶과 꿈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기란 어려우니까요.

 

그렇습니다. 이 책을 쓴 박기범 작가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될 무렵, 그곳 아이들의 곁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인간방패로 전쟁터에 들어가 함께 전쟁을 겪었다고 합니다. 인간방패가 되었다는 것은 미국의 이라크 전쟁의 명분에 동의하느냐 못하느냐, 그러니까 이라크 독재자인 후세인 편이냐 미국 편이냐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라크인들도 독재자의 지배가 옳지 않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인데요, 박기범 작가는 독재보다도 어떤 명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전쟁이 더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직접 전쟁을 겪으면서 한 개인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전쟁에는 결코 승자와 패자도 없고 모두가 패자라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이 책에는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너무 많은데요,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택시 기사인 하이달의 꿈은 곧 결혼할 가디르와 조그만 보금자리에서 가디르를 닮은 아기를 낳고, 해 저물녘 티그리스 강변을 가디르와 함께 거니는 것입니다. 소박한 꿈이죠. 또 다른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 전쟁에 참전한 군인인 미국인 스미스 일병입니다. 스미스는 원래 트럭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요, 여자 친구인 메이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고 결혼을 하려 했는데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결혼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여자친구의 아버지는 스미스를 열정도, 용기도 없는 청춘으로 보았다고 해요. 스미스는 그래서 이라크 파병 군인이 되기로 했다고 합니다. 여자친구의 아버지에게 자신이 용기있고 열정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다시 청혼하기 위해서 말이죠.

 

7. 두 명 모두 비슷한 처지네요. 모두 결혼을 하겠다는 소박한 꿈이 있는...

 

네, 나이도 비슷했다고 해요. 어느 날 스미스 일병이 지키고 있는 검문소에서 소동이 일어납니다. 저쪽에서 자동차 수색을 하던 선임병이 그 안에 타고 있던 사람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서로 맞고함을 치고 차 안에 있던 한 젊은 남자가 어떤 손동작을 하기도 하면서요. 스미스 일병은 주변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는 것을 자주 봤기 때문에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젊은 남자로부터 뭔가 위협을 느꼈어요. 그리고 죽고 싶지 않아서, 살아서 여자 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방아쇠를 당겨 총구를 휘갈겼습니다.

 

그런데요, 그 실랑이 벌였던 사람이 바로 택시기사 하이달이었습니다. 이라크에 폭격이 시작되자 한 초등학교에도 폭탄이 떨어져 수 많은 아이들이 팔다리가 잘려 나갔는데요, 하이달은 운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죽어가는 아이들을 병원으로 옮기는 일을 해 왔습니다. 늘 가는 병원에 더 이상 아이를 눕힐 곳이 없자 근처 보건소로 아이들을 싣고 가는 길에 검문소에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아이들의 출혈이 많아 위급한 상황이라 하이달은 너무 급하니까 그냥 지나가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군인들은 무조건 입다물고 기다려라는 거죠.

 

 하이달은 “아이들이 죽어간다”고 외쳤지만, 군인은 “한마디만 더 나불대면 테러범으로 생각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한 사람은 미국인, 한 사람은 이라크인이니까 서로 대화가 잘 될 리가 없죠.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에 하이달의 목소리가 커졌던 겁니다. 울부짖듯 애원을 했으니까요. 거기에 놀라서 스미스 일병이 하이달에게 총을 쏜 겁니다. 트럭기사인 스미스가 택시기사인 하이달을 쏘아죽인 거죠. 청혼을 준비하던 하이달에게 또 다른 청혼을 준비하던 스미스가 말이죠.

 

8. 아, 가슴이 아프네요. 한 사람은 전쟁에서 죽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 때문에, 다른 한 사람은 전쟁에서 죽어가는 아이를 살려야겠다는 간절함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거네요. 정말 전쟁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는 것 같아요.

 

이 책에는 사람들의 꿈이 전쟁에서 사그라드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습니다. 기름통을 배달하지만 축구 선수가 꿈인 한 소년의 무릎에 폭탄의 파편이 박히고, 90세의 노인이 평생 처음 갖게 된 집이 폭격으로 폐허가 됩니다. 아마 청취자분들께서는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안타깝게 느끼시겠지만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을 함께 보신다면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하게 되실 겁니다. 폐허가 된 땅을 쓸고 있는 노인의 뒷모습의 슬픔과 폭격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초조한 모습이 물감을 두껍게 발란 그린 유화 작품으로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박기범 작가는 이 책을 이라크에서 돌아온 후 10년이 지난 후에 썼습니다. 이라크에서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는 이라크의 많은 사람들과 연락이 닿았지만 종전 후에 이라크에서 내전이 발발하면서 대부분과 연락이 끊겼다고 해요. 그래도 마음 따뜻해지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10년 후 스미스가 이라크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람들에게 용서를 빕니다. 임신하고 있던 여자친구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데리고 와서 말이죠. 그리고 스미스가 무릎을 꿇고 있는 동안 스미스의 아이인 빌리와 이라크 아이들은 벌써 친구가 되었구요.

 

9. <그 꿈들>, 이 책을 추천해주시는 이유를 한번 정리해주시죠.

 

네, 이 책은 전쟁에서 우리에게 잘 들리지 않았던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이야기와 그림을 통해서 들려줍니다. 뉴스를 보면서, 수많은 숫자들을 보며 놓치기 쉬웠던 전쟁의 비극과 고통, 한 사람의 꿈에 대해 다시 상상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수십만의 실직자가 있고, 수백명이 바다에 빠져 죽었을 때 거기에는 숫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한 인간의 삶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상상하기 위해서 감수성이 필요합니다. 뉴스를 보면서는 분노할 수 있지만 감수성이 생기지는 않잖아요. 이 책은 아름다운 그림들과 함께 그런 감수성을 일깨워줍니다. 그런 점에서 그림을 전혀 보여드리지 못한 오늘의 책 소개는 반쪽짜리 소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림책은 한번만 보는 책이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사다주면 읽었던 그림책을 수십번을 읽잖아요? 읽을 책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읽을 때마다, 그림을 보면서 전에는 느끼지 못했고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다시 새롭게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동영상과 문자가 줄 수 없는 메시지를 움직이지 않는 한 장의 그림이 우리에게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해드리는 <그 꿈들> 뿐 아니라 더 많은 그림책을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어떤 분이 예전에는 문맹이 문제였지만 앞으로는 점점 더 이미지를 읽어내지 못하는 이미지맹이 문제가 될 거라고 한 말이 기억납니다. 그림책 읽기로 이미지맹에서 탈출을 시도해보시길 추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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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자 대구신문에 나가는 글. 예전에 페북에다 써 놓은 글을 가다듬어 신문사에 보냈는데, 오늘 다시 읽어 보니 신문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글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가능성은 적겠지만 부디 신문에 가득 찬 '배신'이라는 말과의 대비 속에서 '고흐의 사랑'을 읽어 주길 빌 뿐이다. 그리고 지난 주는 고난주간이었다는 것도, 이제 오순절 기간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도 누군가는 생각해주며 읽어주길 빌 뿐이다. 극렬한 사랑은 부작용을 낳는다. 그리고 그것이 삶인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것, 소동을 일으키고, 창피를 당하고, 망신을 당하고, 사람을 긴장하게 했다가 의기 소침하게 만드는 것이니까. 사랑은 아름다운 말이지만, 사랑은 항상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지 않는다. 그러나 삶의 의미는 사랑으로 어떤 결과를 얻었느냐가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했는가에 있지 않을까. 따뜻한 관심과 열정적 사랑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생의 이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아닌 내가, 아무 것도 아닌 이유는 쉽게 사랑을 포기해버리는 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 고흐가 가난했지만 가난하지만은 않았던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모든 순간, 그것이 무엇이든지 늘 강렬하게 사랑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규칙 위반이다."




반 고흐의 세계

김연수는 ‘하루키 월드’에서 깊이 사랑하는 것은 규칙위반이라고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는 거의 항상 주인공이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면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떠나게 되고, 결국 홀로 남은 사람의 마음에도 깊은 상처가 남는다. 얼마 전 반 고흐의 편지글을 읽으면서 발견한 것은 하루키와 달리 ‘반 고흐 월드’에서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죄가 된다는 것이었다. 고흐도 하루키의 생각처럼, 깊은 사랑은 결국 깊은 상처를 남기는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여동생 윌에게 남긴 편지에서 동생에게 ‘사랑할 것’을 권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래, 차라리 바보짓을 몇 번이든 하렴.” 이뿐 만 아니다. 고흐는 사람들이 공부에 집중하거나 종교나 이념에 빠지게 된 것은 ‘연애사건’, 즉 ‘사랑에 빠지지 못해서’라고 한다. 따라서 ‘반 고흐 월드’에서는 제대로 된 사랑을 하는 것이야말로 많은 공부를 하거나 사회주의에 심취하는 것보다 올바른 일이다. 

“대개는 그런 사건으로 창피와 망신만 당할 뿐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한 것이 전적으로 옳았다고 생각한다”.

고흐가 극렬주의자였다면 바로 이런 면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사랑에 있어서 절제가 필요하다거나 지나치게 열정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하루키의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남자들처럼 ‘세련된’ 사랑은 없다. 고흐는 주변 사람들을 지치고 힘들 정도로 사랑했다. 그건 사촌인 케이에 대한 사랑에서나 매춘부였던 시엔에 대한 사랑에서도 마찬가지고, 동생인 테오에 대한 사랑에서도 그렇다.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고흐가 목숨을 스스로 끊게 된 이유는 테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흐가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동생 테오에게 더 이상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편지 곳곳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정신 착란으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어 동생에게 진 빚을 갚을 길이 없게 된 고흐가 동생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죽음 외에는 없었다.

어쩌면 정신 착란 증세도 깊은 사랑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고흐는 동생에게 신세를 갚겠다는 마음으로 ‘예술’로 끝까지 자기를 내몰았다. 테오가 정신 착란 증세가 심각해져 생레미 요양원에 입원해 있는 고흐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글귀가 나온다. 

“그 그림들은 형이 자연과 살아 있는 생명체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거야. 형이 생명체 안에 본래부터 내재한다고 강렬하게 느끼는 것들. 이런 그림을 그리기 위해 형은?모든 것을 극한까지 몰고가는 모험을 감수했을 테니 머리가 얼마나 힘들었겠어. 혼란을 겪은 것도 무리가 아니야”. 

고흐는 동생도, 예술도, 연인도, 자연도 극한까지 사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도, 건강도, 돈도, 심지어는 동생까지 모든 것을 잃었다. 오로지 작품만 남았다.

하루키 월드에서 보자면 이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짓임이 틀림 없다. 하루키는 새벽에 늘 같은 시각에 일어나 원고를 쓰고, 오후에는 취미로 번역을 하고, 마라톤을 완주하고, 이 나라에서는 선인세로 수억원을 받으며, 깊이 사랑할 가능성이 있는 자녀도 애초부터 낳지 않아 부유하고, 건강하고, 고흐에 비하자면 이렇게까지나 오래 살고 있다. 물론 고흐와 비교해 그것을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두 세계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차이는 내가 보기에 ‘깊은 사랑’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어느 글에서 나는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을 읽고 하루키의 지혜가 내게 없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무 깊이 사랑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썼다. 누군가에 대한 사랑이 그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고흐의 서간집을 읽으면서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세상에 대한 경험도 부족한 주제에 사랑까지 깊이 하지 않겠다는 것은 사실상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한다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것, 소동을 일으키고, 창피를 당하고, 망신을 당하고, 사람을 긴장하게 했다가 의기 소침하게 만드는 것이니까. 사랑은 아름다운 말이지만, 사랑은 항상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지 않는다. 그러나 삶의 의미는 사랑으로 어떤 결과를 얻었느냐가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했는가에 있지 않을까. 따뜻한 관심과 열정적 사랑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생의 이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아닌 내가, 아무 것도 아닌 이유는 쉽게 사랑을 포기해버리는 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 고흐가 가난했지만 가난하지만은 않았던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모든 순간, 그것이 무엇이든지 늘 강렬하게 사랑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규칙 위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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