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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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에서 가장 글을 잘 쓰는 사람은 황구라와 유구라다.’라는 우스개가 있었다. 얼마나 글을 잘 쓰면 구라도 사실인 것처럼 여겨진다는 말이다. 그 황구라가 황석영씨다. 만주에서 출생하여 시대의 모순과 분단의 아픔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대표 작가다. 방북사건으로 복역을 하기도 하면서 이데올로기의 허구를 지적하고 민족 분단의 비극을 글로 써온 그가 이번에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세상을 얘기한 바리데기(창비. 2007)를 냈다.

책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주인공 바리는 북조선 여염집의 신통력있는 막내딸이다. 90년대 북한사회가 겪은 식량대란이 어린 바리에게도 덮쳐와 식구들은 죽고 흩어지게 된다. 바리는 중국에서 발안마를 배워 일하다 영국으로 밀항한다. 거기서 발안마사로 자리 잡고 파키스탄인 2세 알리를 만나 결혼한다. 9/11 테러가 일어나 중동지방 사람에 대한 경계와 탄압이 강해지고 이슬람사람들의 저항의식은 높아질 때, 아프카니스탄으로 싸우러 떠난 동생을 찾으려고 간 알리의 소식이 끊긴다. 그 와중에 같이 밀항했던 중국인 언니가 약에 절어 비상금을 털어가고 소중한 딸이 죽는다.


줄거리를 훑기만 해도 슬프다. 그만큼 고통스런 장면이 많고 묘사를 너무 잘해 마치 겪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바리가 청진으로 걸어가면서 만나는 끔찍한 풍경들과 사람들, 탈북해서 겪는 사건들, 밀항선에서 벌어지는 지독한 상황들, 런런에서 일어나는 우여곡절들. 이러한 고통들을 이어놓으며 작가는 소설 속 인물의 입을 빌려 묻는다.
‘우리가 받은 고통은 무엇때문인지. 우리는 왜 여기있는지.’ - 본문 중에서-


‘사람들은 불꽃놀이를 보듯이 전쟁장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먹고 마시고 떠들었다.’ -본문 중에서-
전쟁 소식과 기아사태는 머리로만 안다. 그 다음이 없다. 세상을 바꾸려는 불꽃은 자욱한 연기만 남기고 꺼진 거 같다. 손을 잡고 소리치던 지난 날에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보신주의와 기존체제의 상부에 편승하고자 바쁜 세태를 보면서 바리는 말한다.
‘나는 나중에 다른 세상으로 가서 수많은 도시들과 찬란한 불빛들과 넘쳐나는 사람들의 활기를 보면서 이들 모두가 우리를 버렸고 모른 척 했다는 섭섭하고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본문 중에서-


책의 내용은 너무 아프게 다가왔고 부끄럽게 하는 물음을 던진다. 침묵하는 대중을 대변하여 다른 사람, 다른 사회, 세상에 눈을 돌리기엔 지고 있는 짐들이 많다고 하소연을 하고 싶었다. 나도 죽을 거 같다고, 밥 먹고 살기 힘들다는 핑계를 내놓으려고 하자 갑자기 내 삶이 초라해졌다. 만약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우연하게 중동에서 자라 무슬림이었다면, 또는 아프리카에서 산다면 어땠을까. 이러한 가정을 하며 한국과 다른 사회를 견주고 고통의 양을 재본다. 그리고 고통의 원인을 살펴본다.
‘사람들의 욕망때문이래.’ - 본문 중에서 -


황석영씨는 소련의 해체, 북한식량난, 9/11 테러, 관따나모 수용소, 런던지하철 테러같은 현재 진행하는 사건들을 뜨겁게 주물러 자기만의 신선한 형식으로 소설을 엮어냈다. 주인공이 겪는 환상을 소설에 끌어들여 보는 재미를 높였고 지옥 같은 현실을 성찰하게 한다. 그래서 그를 노작가라고 말할 수 없다. 그의 몸은 일흔에 가까워지지만 그의 정신은 누구보다 뜨겁고 눈은 따뜻하면서 날카로웠다. 고통의 현장을 직시하지만 현실을 냉소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희망의 씨를 뿌린다. 책을 읽으면 희망을 일구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으로 느끼게 되는 건 그가 가슴으로 글을 쓰기 때문이다. 고통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작가를 보면서 많은 걸 느낀다.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지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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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전략 - Reading & Writing
정희모.이재성 지음 / 들녘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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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소개할 책을 보면 MIT 방문 얘기가 나온다. 이공계 대학인 MIT에서 왜 그렇게 학생들에게 글쓰기 교육을 많이 시키는지를 물었다. MIT교수는 뜻밖의 질문이라는 듯 놀라면서 MIT학생들은 대부분 사회의 리더로 성장할 학생이며, 리더가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글을 쓰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글쓰기는 누구나 어려워한다. 펜을 들어본 사람은 안다. 막막하게 펼쳐진 하얀 사막 위에 작은 개미가 된 느낌, 돌아가는 길은 없다.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채워 나가야한다. 뛰어난 문장가들도 글이 써지지 않아 벽에 머리를 찧고 싶을 때가 있다고 고백한다. 보통사람들은 글 쓸 일이 별로 없는 거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휴대전화, 컴퓨터 같은 첨단 장비들을 활용하여 사람들과 접할 때도 바탕에는 글이 있다. 글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길이다. 길이 원활한 사람도 있고 꽉 막힌 사람도 있을 거다. 길을 열어서 상대방에게 제대로 의사를 전달하고픈 사람은 잠깐 마우스를 멈춰주시길. 글쓰기에 도움을 주는  글쓰기의 전략(들녘. 2005)을 소개한다.

먼저 글쓰기의 전략은 원리를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원리를 적용하는 방법을 알려 주려 한다. 지은이가 교수다 보니 글의 작성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주고 ‘글쓰기 과정학습’이라고 해서 글쓰는 과정을 단계별로 지도하려고 애썼다. 장점으로 모범이 될 예문을 뽑아서 분석하고 적용하여 읽기와 쓰기를 동시에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문을 보며 필자들이 어떠한 생각의 흐름으로, 어떠한 논리를 거쳐 한편의 글을 썼는지 배울 수 있다. 읽기를 통해서 쓰기를 학습하는 것이다. 거기다 예문 자체가 갖고 있는 배경지식은 덤으로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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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 -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 101인의 가상유언장
도종환.황금찬 외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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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한 장과 연필 한 자루를 주며 유언장을 쓰라고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살기 바쁜 삶이라 머리 한 구석에 꽁꽁 숨겨두었던 죽음이 그제서야 슬금슬금 기어 나와 조심스럽게 얘기한다.
‘너에게 내일은 안 올지도 몰라, 그러니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을 쓰렴.’

죽음을 똑바로 바라보고 받아들인 사람만이 제대로 살 수 있다.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보고 가상유언장을 써본다. 삶을 성찰하기 위해. 그런 기획으로 만들어진 책이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경덕 출판사. 2006)이다.  

이 책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101인의 가상유언장'이란 부제목을 달고 있는 만큼 글이 삶이었던 문인들이 생애 마지막일 수 있는 글 모음이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다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한 편, 한 편이 명문이다. 짊어졌던 짐들과 거추장스런 누더기들을 홀가분하게 벗어던지고 또렷하게 가슴 속 얘기를 전한다. 남은 시간은 없고 종이는 한정되어 있으므로.

떠나는 사람들은 한 결 같이 미안하다고 말한다. 남편에게, 아내에게, 딸, 아들에게, 삶의 동반자들에게 남기는 말은 더할 수 없는 사랑과 끝 모를 미안함이 담겨있다. 그리고 당부의 말을 잊지 않는다. 떠나는 이는 아쉬울 수밖에 없기에. 어느 한 사람도 돈, 명예, 권력을 더 가지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다. 떠날 때가 되면 보이나 보다. 무엇이 더 중요한 지. 유언장을 읽으며 삶을 돌아본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유언장이기에 딱딱하고 교훈을 주려고 애쓰기보다 연서 같은 느낌을 받는다. 문인들의 유언장이라 그런가. 그래도 유언장이라 내용이 비슷비슷해서 조금 지루한 느낌도 있다. 그만큼 공통된 중요 내용이겠지만 되풀이되니 재미가 떨어진다. 한 번에 읽기보다 여러 날에 걸쳐 나눠 읽으면 좋겠다. 글자 하나마다 배어있는 사랑의 기운이 여러 날에 걸쳐 움틀 것이다.

이 가을날, 가상유언장을 쓰면서 다시 한 번 삶을 추스르는 건 어떨지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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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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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책을 하나 소개한다. 시작부터 재미있다고 할 정도로 재치와 풍자가 가득한 책의 제목은 허삼관 매혈기다.[푸른 숲, 1999]

허삼관이란 남자주인공이 큰 돈 쓸 일이 생길 때 피를 팔게 되는 사건과 사건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인물들의 이야기로 책은 짜여 있다. 줄거리를 짧게 정리해보면, 온종일 땀 흘려 벌어도 못 만지는 큰돈을 피를 팔아 얻게 된 주인공은 돈이 급할 때마다 피를 팔게 된다. 아이가 사고를 쳐서 돈이 필요할 때, 흉년이 왔을 때, 아이가 입원했을 때 같은. 이렇게 피를 파는 주인공의 이야기와 시대상이 펼쳐진다.

책은 크게 두 가지에 맞추어보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먼저 인물이다. 허삼관은 핏줄에 집착하지만 안쓰럽다. 첫째 아들이 싸움하다가 상대아이를 다치게 해서 병원비를 물어줘야 하는데 자기 아들이 아니라고 돈을 안주고 자기 집 물건을 전부 가져가게 하는 장면이나 가뭄 때 먹을 게 없어 피를 판 다음 가족끼리 국수를 먹으러 가고 첫째 아들은 고구마 사먹으러 가는 장면은 피식 웃음과 함께 연민을 자아낸다. 그리고 피의 양을 늘리려고 물을 거푸 10사발을 먹는 장면이나 피를 판 뒤 마치 자주 사먹는 것처럼 돼지간볶음과 데운 황주 두 잔을 큰 소리로 주문하는 장면은 삶의 슬픔을 인물을 통해 밝게 그려낸다.

두 번째는 소설 배경인 시대다. 주인공의 말과 행동거지는 그 시대를 반영하기 때문에 우리가 속하지 않는 시대와 사회를 엿볼 수 있다. 잘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는 어이없는 상황과 인물들의 모습은 초기공산주의 중국사회라는 배경으로 필연성을 얻는다. 문화대혁명 당시 첫째 아들이 전 애인에게서 나온 자식이었다고 아내이자 아이들의 어머니를 집에서도 비판 투쟁대회를 하는 장면이나 모택동 주석 한마디에 농촌 생산대로 아들 둘이 떠나는 일, 남자들이 요리와 집안일을 하는 장면이나 남아선호사상을 알 수 있는 장면등은 생생한 인물들의 대화로 표현해서 중국근대미시사를 알 수 있다.

덧붙여 책의 독특한 서술형식은 대화로 꾸며져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저녁 8시면 나오는 주말드라마처럼 대화로 사건이 전개되기에 인물들이 자기 목소리로 말을 하고 행동하는 걸 상상되게 한다. 대화체 구성은 무거울 수 있는 근대사를 어렵지 않게 독자들에게 전하는 자각의 노련한 솜씨다. 그 말솜씨에 기대어 중국근대사로 가볍게 들어갈 수 있다.

멀찍이 떨어져서 봤을 때, 소설은 무거운 내용이지만 가볍게, 인물들은 안쓰럽지만 우습게 그리고 있다. 다시 말하면 비극을 재미있게 썼다. 책 지은이, 위화의 두 번째 소설 제목이 ‘살아간다는 것’ 이듯이, 작가 위화는 인생을 재미있는 비극으로 보여준다. 슬픔과 즐거움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면 작가처럼 비극일지언정 웃음으로 잘 버무려 인생을 살게 하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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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 법정 잠언집
법정(法頂) 지음, 류시화 엮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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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은 무소유를 사람들에게 일깨우면서 소박하고 간소한 삶을 평생 실천하신 분이다. 사람은 혼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아시고 출가하여 깊은 산에서 홀로 사시지만 글로써 세상과 소통한다. 그가 쓴 명문들 중에 추려서 묶은 잠언집이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조화로운 삶, 2006]이다.

출가한지 50년이 지났고 30년 넘게 쓴 그의 글과 법문에서 한편 한편 류시화 시인이 가려 뽑았기에 첫 장부터 책 내용이 깊다. 꾸미는 말을 하기보다 여백을 두고 이야기를 꺼내는 단계를 밟기보다 바로 주제를 던진다. 한마디로 법정스님이 수양하며 얻으신 수확물의 진수라 하겠다. 읽는 재미보다는 ‘고민하는 즐거움’을 준다

이 책은 차 같다. 빨리 마셔버리면 별 맛이 없지만 천천히 마실 때 떫은 듯하면서 그윽한 맛을 내는 녹차처럼, 차분히, 그리고 되새기며 읽기가 필요한 책이다. 현란한 말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단순할 수 있다. 잠언집이기에 글자수도 많지 않고 얼핏 가볍게 보여 소설책 읽듯이 읽으면 싱겁게 느껴진다. 차 마실 때 입과 코와 마음으로 마시듯이 이 책도 눈과 입과 손으로 읽어야 한다. 눈으로 글을 따라가다 입으로 조용히 소리 내어 읽고 마음에 문을 열어주는 구절을 만나면 미소를 지으며 적는다. 처음 읽을 때는 맹물같지만 다시 온 몸으로 읽으면 책을 모조리 적을 만큼 빼어난 글 모음이다.
세 구절을 골라봤다.

할 수 만 있다면 유서를 남기는 듯한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읽히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삶의 진실을 담고 싶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늙음이나 죽음이 아니다.
녹슨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

인간의 마음이란 미묘하기 짝이 없다.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
한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여유도 없다

무소유, 홀로 있음, 침묵, 존재 성찰을 체험하고 화두를 한국 사회에 전하는 법정스님은 생태주의자로 유명한 ‘월든’의 지은이 소로우와 닮았다. 도시화된 세상과 맞물려 진행되는 물신화에 비판하시고 속세를 등진 거와 세상과 거리를 두었지만 글로써 세상과 관계하는 게 그러하다. 더 깊은 산속에서 명상하면서 잔잔한 웃음이 어려 있을 법정스님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가 쓴 글을 읽으며 고민을 한다. 이어서 현재 짊어진 고민과 부딪히는 문제들을 곱씹어 본다. 행복한가?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는 스님의 축복을 받으며 마지막 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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