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이다 -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김난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알맹이와 그 뜻은 사뭇 괜찮지만 읽다보면 아쉬운 책들이 꽤 많습니다. 그 까닭은 그 괜찮음이 오로지 낱낱사람들의 마음맺음만을 얘기하기 때문입니다. 두말할 것 없이 저마다의 재주와 깜냥을 헤아리면서 자신의 삶을 추스르고 가다듬는 일은 중요하고 중요하지요. 미처 몰랐던 생각들을 배우며 자기 삶을 키워가는 건 누구나 평생 해나가야 하는 운동이니까요. 이때 곰살궂은 북돋음이 곁들여지면 매우 고맙죠.

 

허나, 거기에만 그친다면 그 사람은 결코 자기 삶을 바꿀 수 없습니다. 사람은 사회와 떼려야 뗄 수 없으니까요. 사회를 바꾸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기 일쑤입니다. 따라서 사회성과 정치의식을 얘기하지 않는 ‘괜찮은 책’은 도리어 해로울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좋은 생각거리들’을 던져주고 그 바깥을 상상치 못하게 빗금 긋는 노릇을 하면서, 진짜 깊이 있게 생각해야 하는 이야기들을 덮으니까요. 불티나게 팔리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도마 위에 올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현실여건에 대한 꼬집음이나 돌아봄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 책은 자기 경험과 기억들을 어쭙잖게 늘어놓는 뻔한 책들보다는 조금 낫습니다. 지은이가 대학교수다보니 대학생들과 어울리면서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여러 고민을 나름 잘 알고 있고 그에 따라 젊은이들의 형편을 헤아리려는 몸가짐이 있으니까요. 이런 점들이 글에 잘 우러나와 적잖은 이들에게 따뜻한 울림과 따끔한 울음을 느끼게 하지요.

 

하지만 거북하게도 그는 젊은이들의 어깨를 어루만져주고 이겨내라고 쓴 소리도 날리지만, 그 어려움이 왜 생겨났고 이렇게 옴팡진지는 얘기하지 않습니다. 끝 모르고 치솟는 대학등록금에 버거워하는 대학생들, 비명문대생들의 열등감, 연애가 거래가 되어버린 것에 찝찝해하면서 그렇게 만들어진 ‘이유’엔 모르쇠입니다.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 지은이는 엉뚱하게도 자신보다 힘겨운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 다스리기를 권합니다.

 

실제로 고개를 돌려 주위를 돌아보라.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그대의 좌절조차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검정고시를 치르고 수능을 준비하며 만학(晩學)의 꿈을 불태운다. (…) 생활고에 쫓겨 스펙은커녕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너무도 많다. 우리 주위에는 언론의 주목조차 받지 못하는 수많은 어둠의 공간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그대의 힘겨운 오늘이, 자신은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호사일 수도 있다. 136쪽

 

스펙을 쌓느라 애면글면해야 하고 그렇게 안달복달해도 취업이 안 되는 현실여건에 대한 ‘꼬집음’이나 ‘돌아봄’은 전혀 없고 스펙에 매달리지 말라는 얘기만 합니다. 젊은이들이 “학벌의 열등감을 전과를 통해 치유하겠다고 황금같은 시간을 허비”(193쪽)하는 걸 안타까워하면서 수능점수 더 높은 학과로 전과하는 걸 ‘학벌세탁’이자 ‘고3마인드’(191~192쪽)라 부르지만, 고3마인드와 학벌세탁을 할 수밖에 없는 사회조건에 대한 비판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겪은 세상이 좁고 몸소 움직여서 뭔가를 바꿔본 경험이 얕다보니, 그의 이야기들은 정겹고 포근하지만 하나같이 학생들이 알아서 자기 삶을 바꿔보라는 ‘뻔한 마무리’로 마감됩니다. 그렇기에 교수가 해야 할 몫을 학생에게 덤터기까지 씌웁니다. 교수들이 대학체제에 휩쓸려 학생들과 상담은커녕 수업도 엉망이 되었다고 푸념하면서 뜨악하게 이런 얘기를 꺼내죠.

 

미안한 말이지만, 학생들이 먼저 시작해주는 것이 좋을 거 같다. 먼저 할 일은 학교나 교육당국에 ‘선생님’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일이다. 교수나 연구나 봉사뿐 아니라, 강의와 상담을 통해 전인적 교육의 실질적 담당자가 되도록 해달라고 말이다. 강의와 상담을 잘해주고 동아리의 지도를 기꺼이 맡아주는 교수들이 어떤 형태로든 그 보상(꼭 금전적인 의미가 아니다)을 받도록 현실적인 제안을 해야 한다. 172쪽

 

요즘 교수들과 학생들 사이가 데면데면하고 강의도 변변찮고 학생들이 상담신청을 해도 퉁명스러운 건 교수들이 강의나 상담이나 지도에서 “어떤 형태로든 그 보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니 그걸 받을 수 있도록 학생들이 나서야 한다는 얘기에, 어이가 없어 웃음도 안 나오지요. 터무니없음을 느끼며 도로 그에게 물어야 하겠지요. 왜 교수인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가? 청춘은 불안한 게 ‘너무 자연스럽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은 왜 ‘너무 자연스럽게’ 철밥통을 끌어안고 있는가? 당신들은 왜 학교나 교육당국에 ‘학생들’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지 않는가?

 

이런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 생게망게하게도 알바로 큰돈을 벌지 말라고 딱 부러지게 얘기합니다. 뜯어 먹히는 대다수 젊은이들의 현실엔 눈 감으면서 젊은 나이에 알바로 삶이 기름기가 끼는 한줌도 안 되는 이들에게 호통을 칩니다. ‘자기경험’에 틀어박힌 지은이는 아무 고민도 없이 돈 많이 버는 데에 경계심을 나타내면서 ‘가혹한 저임금’이란 낱말만 한 번 꺼내놓고 입을 꾹 다뭅니다.

 

알바가 가혹하게 저임금이면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힘들고 허탈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수입이 지나치게 좋은 경우다. 일부의 사례이지만, 그 알바의 수입이 꽤 좋은 경우에는 ‘굳이 졸업을 해야 하나?’ 혹은 ‘취업을 해도 초봉이 형편없다던데’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하니 말이다. 279~280쪽

 

지은이는 왜 이렇게밖에 글을 쓰지 못 하나, 사람들은 왜 이런 책을 ‘자꾸’ 읽나

 

유명대학의 교수이자 글쓰기에 애를 쓴다고 얘기하는 지은이가 어쩜 이리도 생뚱맞은 이야기들을 마치 대단한 귀띔인 것처럼 털어놓는지 책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미디어가 메시지라며 젊은이들이 신문을 읽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면서 덜렁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기사만 책에 따옵니다.

 

김수영의 시를 들먹이지만 조선일보에 2년째 칼럼을 쓴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정도로 ‘정치의식’이 거의 없다보니 그는“1980년대는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우리나라 경제가 고도성장을 하던 시기였다”(245쪽)고 적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가혹한 저임금’으로 죽어나갈 때, '손무덤‘이 쌓여가던 시기에, 행정고시를 붙으려고 아득바득하던 그에게는 3저 호황에 따른 경제번영의 시기였나봅니다.

 

달랑 6개월 만에 ‘장교로 전역’시켜주는 석사장교제도가 있었습니다. 전두환과 노태우의 아들들이 딱 써먹고 없애버린 몹쓸 제도인데,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석사장교가 되었다며 자꾸 떠벌리는 대목들에선 안쓰러움을 넘어서 서글픔까지 자아내지요. 학생들에게 ‘좋은 선생’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는 교수인데, 어찌하여 이리도 ‘사회의식’이 떨어지는지 스산하고 씁쓸하기만 하네요.

 

지은이는 ‘청년실업을 완화를 위해 기성세대가 기득권을 많이 양보해야 한다’는 칼럼을 싣고 엄청난 ‘악플’을 받은 경험을 꺼내며, 젊은이들이 눈높이를 낮추면 얼마든지 취직할 수 있다는 댓글들이었다고 소개합니다.(291쪽) 이명박 대통령 수준에 머무르는 기성세대들의 댓글들에 지은이는 울컥하지만 정작 그 댓글들을 다는 기성세대들과 자신의 글이 큰 차이가 없다는 걸 느끼지 못 합니다.

 

꼰대들이 거칠고 서투르게 돌팔매질을 한다면, 그는 좀 더 살갑게 등 두드려주지만, 저들이나 지은이나 젊은이들의 삶에 별 도움이 안 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오히려 걸림돌이기 쉽지요. 왜냐하면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사람들은 지은이처럼 “스승으로서, 아버지로서, 그러면서도 기득권을 가져버린 기성세대로서, 미안하고 안쓰럽다”(292쪽)면서도 “기차에 올라타라”고 충고하는 기성세대가 아니라 기득권을 내려놓고 이 사회와 싸우는 ‘팔팔한 어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성세대에게 절절하게 있어야 하는 몸가짐은 젊은이들에게 어정쩡한 도움말을 던지는 게 아니라 지은이가 “나의 진정한 성장은 아직도 20여 년이 남아 있다”(312쪽)고 털어놓듯 반성을 통한 성장입니다. 그 자람은 자신이 갖고 있던 기득권을 놓으려는 몸부림과 남의 고통에 함께하려는 몸가짐에서만 얻어질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시간강사를 하면서 ‘죽고 싶었다’던 지은이가 정교수가 되었으니 시간강사들의 형편을 바꿔내고자 팔 걷어붙일 때!

 

차고 넘치는 볼품없는 교수들 틈바구니에서 그는 좋은 교수 쪽에 속할 테고, 어쩌면 그에게 날아간 화살들은 좀 지나치지 않았나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책은 어려움에 빠진 젊은이들이 현실의 맨얼굴과 마주보고 견디게 하기보다는 야트막한 아늑함을 살짝 안겨주면서 오히려 정치성에 눈가리개를 합니다. 어줍게 겉으론 드러난 잎사귀들을 보듬으려 해봤자 썩어있는 뿌리를 고치지 않으면 별 쓸모가 없듯, 이 사회의 경제모순과 짓눌린 정치의식을 되짚지 않는다면, 알량한 토닥임일 따름이니까요.

 

조금만 뒤져보면, 몇 년 전에도, 더 몇 년 전에도, 십 년 전에도, 아니 어느샌가, 제목과 지은이만 슬쩍 바뀔 뿐, 거의 판박이 같은 책이 나옵니다. 차갑게 말하면, 허접한 빨간약 같은 글들이죠. 그런 글들은 자신의 아픔을 잠깐 가라앉히는 듯싶지만 치유에 이르진 못합니다. 금세 상처는 도지고 뭇사람들은 또 다른 빨간약을 찾게 만들지요. 그러므로 꼭 있어야 하는 책은,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프니까 그 이유를 찾자, 너희들이 아픈 건 정치의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혀주는 책입니다.

 

경제사회정치를 젊은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지 않고선 어떠한 희망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들어야 할 말은 “이제 좀 위안이 돼? 하지만 위안 받기는 아직 일러. 이 글이 진정 위안이 되려면 네 ‘오늘’이 변화해야 하거든. 실천하지 못하는 결심이란, 한낱 자위일 뿐이거든.(230쪽)” 지청구가 아니라 이것입니다. “어설픈 위안을 받으려 하지 마, 진정 위안이 되려면 네가 속한 ‘사회의 오늘’이 변화해야 하거든. 사회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없는 결심이란, 한낱 자위일 뿐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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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와로 2011-03-13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대 중반인 저도 이 책이 역겹더라고요. 서평 잘 읽었습니다.

좋은책 2011-03-23 08:31   좋아요 0 | URL
이 책이 '먹히는' 사회환경을 두루 짚어볼 필요가 있겠지요.

diline 2011-09-29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서평입니다.
이런 내용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걸 보면 20대들이 많이 힘들긴 하나봅니다.

좋은책 2011-10-18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젊은이들만이 아닌 걸 보면
이 시대에 '아픈 이들'이 이렇게 많다고도 읽어낼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