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 내 몸을 바꾸는 에로스혁명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6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청춘이란 그 자체로 성 에너지가 부글거리는 시기니까 제쳐두더라도 성과 사랑은 이 시대를 달구는 뜨거운 화두입니다. 한 주간지 조사에 따르면, 한국 40~50대 중년 남성들의 최대 관심사는 ‘연애’라고 해요. 다들 모이면 연애 한번 멋지게 해보는 게 꿈이라고 하죠. 여성들은 한 술 더 떠요. 요즘 중년 여성들은 ‘연하 남친’하나쯤은 있어야 바보취급을 당하지 않는대요. 거기다 황혼 연애도 활발해진 오늘날,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연애공화국입니다.

 

거창하게 연애공화국이라고 했지만 정작 실태를 따져보면 ‘연애무능시대’입니다. 얼마나 사랑에 굶주리고 있는지 사람들이 어디서든 입만 열면 사랑타령이에요. 게다가 미디어는 온통 사랑과 섹스를 쉼 없이 쏘아대고 있지요. 그.러.나. 뜨겁게 사랑을 누려야할 사람들이 사랑 근처도 가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 ‘사랑하고 싶다’며 혼자 외로운 밤에 방바닥을 긁고 있는 실정입니다.

 

심지어 솔로지옥 커플천국이란 말이 생겨났지요. 자신은 누구와 사귀는 게 귀찮고 혼자인 게 좋다며 반발하는 분도 많이 계십니다. 솔로가 최고라고 말은 하지만 그들 마음에는 타자를 만나는 데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두려움을 넘어설 정도로 매력 있는 상대가 나타나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솔로 친구들을 배신하고 커플에 동참합니다. 사람을 만난다는 건 자연스러운 욕망이기에 솔로찬양은 자기 위로이자 핑계일 뿐이죠.

 

어떤 대단한 이라도 가슴 속을 뒤져보면 미련과 후회, 상처와 아픔이 고여 있습니다. 그러한 과거로부터 떠나고 싶다면, 자신을 가엾게 여기는 동정과 연민의 늪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사랑을 공부해야 합니다. 사랑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니까요. 살아있다면 자연스럽게 사랑을 하게 되죠. 그러니 포기할 수 없어요. 마땅히 배우고 익혀야 하죠.

 

멜로드라마에 넋을 놓고 부러워하면서도 사랑공부를 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사랑처럼 엄청난 희망과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다가 반드시 실패로 끝나고 마는 활동이 없는데도 늘 ‘제자리걸음’을 합니다. <호모 에로스>[그린비. 2008]는 실패의 원인을 가려내고 싶고 더 행복한 사랑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큰 힘을 주는 책이기에 이렇게 소개합니다.

 

쿨한 연애? 작업하는 선수들의 안쓰러움

 

IMF 이후 이른바 ‘쿨한 연애’가 나타났지요. 깊게 빠지지 않고 서로 적당히 즐기다가 깔끔하게 이별하는 연애행각이지요. 치고 빠지기로 요약할 수 있는 쿨한 연애는 한마디로 감정을 끈적하게 낭비하지 말자는 거죠. 이것을 연애의 자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때 대세였죠. 골드미스 2만 7천여 명, 1인 가구 300만 명이 ‘끈적하지 않은 인간관계’를 보여주지요.

 

그러나 쿨한 만남은 절대 자유가 아니지요. 쿨한 연애를 하는 사람 가운데 진짜 자유롭거나 행복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들이야말로 자의식과 두려움으로 똘똘 뭉쳐있지요. 영화 <동사서독>의 대사처럼 ‘버려지기 전에 내가 먼저 버리겠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살아가기 일쑤지요.

 

그렇기에 진정한 사랑을 하기보다는 ‘가벼운 감정’을 거래하고 ‘가볍게 몸’을 교환하지요. 연애가 작업이라는 허접한 이름으로 불리면서 아주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요. 연애가 삶의 기쁨, 존재의 해방으로 이어지지 않고 돈과 권력, 그리고 겉모습이라는 그물에 갇히는 거지요. 이런 연애는 애로틱한 열정과는 거리가 멀고 말 그대로 작업의 일종이고 노동이 될 뿐이지요. 입시나 취업전선과 차이가 없어진 것이죠.

 

작업을 하는 선수들이 늘어남에 따라 참사랑을 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통과하기’보다 어려워졌지요. 사람들은 선수답게 거의 날마다 경기에 출정하게 되는데, 여기서 아뿔싸, 그 모든 경기가 다 비스무레하게 됩니다. 몇 번을 하건, 또 몇 명과 동시다발로 하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거죠. 다람쥐 쳇바퀴돌기, 아이 지겨워.



이거야 원, 하면 할수록 몸과 마음이 피폐해집니다. ‘사냥하는 즐거움’이 아주 잠깐 있을지는 몰라도 행복과는 점점 멀어지죠. 더 큰 비극은 상대방도, 나의 경쟁자도 다들 선수라는 거예요. 따라서 이 게임에선 누구도 인정사정 봐 주지 않죠.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더한층 비열해지는 수밖에 없어요. 이런 존재들이 남과 제대로 소통을 할 리 없고 참사랑을 할 리 만무하죠.

 

낡은 연애 틀에 갇혀있는 순정파, 자기감정만 배설하는 스토커

 

선수들의 반대쪽에는 지고지순한 순정파라며 자신의 감정에 매몰된 사람들도 있어요. 이들 역시 사랑을 제대로 하기 어렵지요. 그들은 대중문화가 쳐놓은 그물망에 걸려서 새로운 사랑을 상상하지 못하고 드라마공식만을 흉내 낼 뿐이니까요. 드라마나 소설이 정해준 문법을 밟아가며 이것이 사랑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죠. 무슨 이벤트를 벌이고 희한한 쇼를 해야만 사랑을 표현하는 거라고 믿고 있죠.

 

낡은 연애 틀 안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고 하기에 불행하죠. 청순가련한 여성, 거칠지만 자상한 남성, 애틋한 추억의 장소들, 달콤한 배경음악, 닭살 돋는 대사 등등을 모방합니다. 그렇게 했는데 서로 죽이 잘 맞아서 진행이 매끄럽게 되었어요. 온갖 긴장과 설렘을 즐기지만 막상 사랑을 확인한 다음엔? 그들은 별로 할 게 없어요. 똑같은 얘기를 나누고 비슷한 데이트를 반복하게 되지요. 결국엔? 지쳐 떨어지죠.

 

이별한 뒤 추억이란 꽃가루로 옛사랑을 꾸민 뒤 소중히 간직하지요. 틈날 때마다, 그때는 참 좋았는데, 읊어댑니다. 울적할 때마다 과거를 회상하고 또 다시 그런 순간이 오기를 몽상하게 되지요. 이러한 순정파들은 회상과 몽상 사이를 왕복 달리기하느라 지금, 여기에서, 사랑을 할 능력도, 여유도 없게 됩니다. 그저 빙글빙글 돌아가는 고상한 회전목마에 앉아 ‘과거의 낭만’에 머물러 있는 ‘고매한 족속’이 되는 거지요.

 

이들은 슬픔을 통해서 사랑의 진실성을 보증 받는다고 믿고 있어요. 과거를 회상하며 슬픔에 잠겨있는 걸 예의라고 여기고 아름답게 치켜세우죠. 이것은 오늘을 제대로 살지 않는다는 반증이고 슬픔이 크기에 비례해서 사랑도 커진다는 착각입니다. 지나간 첫사랑에 방부제 잔뜩 뿌려 보관하고 사랑의 추억을 가능한 한 비극으로 덧칠하려고 해봤자 지금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뭔가 남다른 사랑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중요한 건 새로운 사랑을 준비하는 거예요.

 

새로운 사랑을 창조하지 못하면 스토커가 됩니다. 스토커는 순정파의 변태버전이죠. 그들은 대상이 누군지, 상대가 뭘 원하는지 따위는 관심이 없어요. 그저 한 방향으로 주구장창 자신의 감정을 배설하는 것만이 중요할 따름이죠. 자신의 방식을 사랑의 순수한 표현이라고 착각하고 착각의 동굴에서 나오지 않아요. 상대방과 소통할 용기가 없을 때 그런 식의 광기가 나타나는 법이라며 지은이는 따끔하게 꼬집지요.

 

엇갈리는 사랑과 성, 억눌리거나 돌변하거나

 

큰 인기를 끌었던 멜로물들을 떠올려 보세요. <가을 동화>, <겨울연가> 등등 드라마에 나오는 사랑은 하나같이 ‘탈성화’되어 있어요. 사랑에 빠진 남녀 주인공이 손을 잡고 입을 맞추기까지 우주가 폭발했다가 지구가 생성되는 시간이 걸려요. 보다보면 기다리다가 곯아떨어질 지경이에요. 키스신이 나온 이후에도 둘이 몸을 합쳤다는 건 암시조차 나오지 않아요.

 

한마디로 사랑과 섹스 사이에 컨테이너박스가 69층으로 쌓여있는 셈이에요. 대체 왜? 성욕이 개입할수록 사랑은 타락해버린다는 순결강박증 때문이죠. 혼전순결은 종교근본주의처럼 도그마가 되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죠. 성윤리는 무시무시한 강령이 되어 자기 검열하도록 만들죠. 지금 내 욕망이 올바른가, 성행위는 정당한가. 덜덜덜

 

성욕을 억누르려고 하는 수준이 성고문에 가까워요. 문제는 겉으로는 강하게 억누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금욕과는 다른 삶을 산다는 거죠. 낮에는 ‘단정한 사제’처럼 지내다가 밤만 되면 ‘발정난 사자’처럼 돌변하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인가요. 질주름(처녀막) 재생수술이 흔해진 시대입니다.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이죠. 혼전순결이 아직도 결혼의 보증수표가 된다는 사실도 어이없지만 무슨 짓이건 다 해도 되지만 질주름만 있으면 오케이라는 생각은 더더욱 어처구니없네요.

 

물론 성욕이 곧바로 사랑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상대방에게 신체 합일의 욕망을 느끼지 못한다면 사랑이라는 관계에 들어서기 어려워요.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기 성욕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남을 사랑할 수 있지요. 하지만 성욕과 사랑의 관계를 공부하지도, 교육받지도 않기에 사람들은 판타지멜로드라마로 사랑을 엿보고 야동으로 섹스를 알게 됩니다. 헐~

 

유치찬란한 몽상 아니면 야동 변태 사이를 오락가락한다는 얘기죠. 연애에 목말라하지만 연애를 제대로 하는 사람들은 가뭄에 콩 나기죠. 그렇기에 대부분의 솔로들은 야식 또는 야동을 탐해요. 야동은 말할 것도 없고, 야식(특히 폭식)은 외로움이 몸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니까요. 정신의 공허를 채우려고 몸은 반응하게 되는데, 그것이 허기에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노노, 사랑이 어떻게 ‘안’ 변하니!

 

사람들은 사랑을 언제나 대상의 문제로 환원하지요. 한마디로 대상만 잘 고르면 만사형통이라 여기는 거예요. 사랑에 실패한 건 대상을 잘 못 골랐기 때문이고, 사랑을 못 하는 건 ‘이상형’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모든 원인을 밖으로 돌리죠. 그렇게 외부에 의해서 결정되는 건 사랑이라기보다는 거래고 교환이라 할 수 있죠. 사랑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에요.

 

사랑이라는 사건이 일어나려면 사랑 따로 대상 따로 나 따로가 아니라 나와 사랑과 대상이 하나로 어우러져야 해요. 나의 반쪽을 만나느냐가 아니라 내 안에 잠재하고 있던 욕망이 표면으로 솟구칠 때 사랑이라는 사건이 발생하는 거예요. 그렇기에 반쪽이를 향한 무한도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짝을 찾아야 해요.

 

함께 걸으려면 최소한 방향이나 바라보는 눈길이 같아야 하는데, 이러한 짝을 시절인연이란 부르지요. 다시 말하면 시절인연이란, 서로 다른 길을 가던 두 사람이 어떤 강한 촉발로 공통의 흐름을 이루게 된 특정한 시간대를 뜻해요. 시절을 타게 되면 아주 작은 촉발만으로 사랑에 빠지게 되요. 봄이 오면 겨우내 잠자고 있던 씨앗들이 순식간에 땅을 뚫고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사랑은 타이밍이란 거죠. 대상이 누구냐 보다 언제 어디서 만났느냐가 더 중요한 거예요. 어떤 특별한 ‘시공간 배치’ 속에서 사랑이라는 특별한 감정이 생기고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그러한 시공간에 금이 생기고 틈이 벌어지면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되는 거예요. 결별의 진짜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해요. 사랑할 때 아무 이유가 없었듯이 헤어질 때도 아무 이유 없지요.

 

굳이 원인을 찾는다면, 시절인연이 다했고 어긋나기 시작한 탓이죠,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듯이 사랑도, 삶도 변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불멸이라는 판타지에서 빨리 던져버려야 해요. 불멸의 사랑은 망상 중의 망상이에요. 유지태는 이영애에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물었지만 유지태도 조금 더 경험을 하면 알게 되겠죠. 어떻게 사랑이 안 변하니!

 

밑줄 짝~ 사랑할 때 알아두어야 할 몇 가지!

 

세월 따라 흘러가는 사랑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지네요. 이 때 필요한 것이 걸어가면서 사랑하기, 사랑하면서 걷기에요. 세상과 소통하면서 걸어가는 게 인생이죠. 그러다 시절인연이 닿으면 곁에 도반이 생기는 거죠. 짝을 찾아 헤매지 않고 자연스럽게 도반을 만나려면 자신이 원인이 되어야 해요. 그럴 때 사랑은 그 자체로 축복이 됩니다. 열심히 사랑한 다음 그 대가로 천국에 가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행위 자체가 천국이 됩니다.

 

사랑할 때 생기는 열정은 쾌락이나 충동과 달라요. 아무리 뜨겁게 솟구친다 해도 열정은 중독되지 않아요. 오히려 열정은 유래 없는 평온을 선사해요. 수백도의 열 속에서 도자기가 단단히 구워지듯이. 보통 시작하는 연인들은 서로에게 강렬히 열중하죠. 이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서로 만나기전에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입증할 뿐이지 사랑의 증거가 되지 않아요. 얼마나 ‘뜨겁지만 평화롭게 사랑’을 하느냐가 중요한 거죠.

 

또 하나, 사랑은 거래가 아니에요. 자신을 다 버렸다고 무엇을 바라서는 안 돼요. 뭔가를 바라는 순간, 그건 이미 헌신이 아니라 교환이자 거래가 되니까요. 내가 버린 것만큼 너도 버리지 않았다고 따지기 시작할 때, 미움이 돋아나죠. 사랑은 희생을 통해서만 빛난다 → 내가 더 많이 희생했다 → 나의 희생을 저버린 상대는 나쁘다, 고 하는 건 자신을 망치는 지름길이에요. 주어진 연애 문법에서 벗어나 더 퍼주고 더 사랑하는 상상력을 키워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둘만 아등바등하는 만남을 하면 안 돼요. 둘만을 바라보는 사랑은 반드시 권태와 마주하게 되니까요. 사랑이 둘 사이에 벌어지는 아주 특별한 관계인건 맞지만 정말 중요한 건 타인들과 관계이고 일상의 토대에요. 두 사람과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감정, 하루하루 생활이 어떻게 이뤄지는가 사랑을 아름답게 하는 힘이죠. 그게 붕괴되면? 사랑은 물론, 삶도 무너져 버리죠.

 

사랑은 결코 장애물이 많다고 아름다운 게 아니에요. 신분 격차, 주위의 격렬한 반대, 출생의 비밀, 그리고 불치병 등등 사랑은 불행의 크기에 비례한지 않아요. 이것은 일종의 허무주의이고 여기에서 어서 탈출해야 해요. 불행과 상처를 과장하면서 자학증과 피학증 사이를 오가다보면 전도망상이 되요. 슬픔을 딛고 사랑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사랑이 영원하고 위대하려면 슬픔을 동반해야 한다는 식으로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되죠.

 

사랑하라, 두려움 없이! 온 몸으로 공부하고 온 생애를 걸어서 사랑하라!

 

너무 외로워요. 사랑을 너무 하고 싶어요. 그런데 사랑이 너무 두려워요. 거절당할까봐, 더 외롭게 될까봐… 많은 사람들이 가슴 속에 이런 생각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지요. 산다는 건, 낡은 것으로 되돌아갈 수 없어요. 배는 이미 불타버렸으니까요. 우리는 용감해지는 수밖에 없어요. 니체가 한 말이에요.^^

 

오만과 편견, 자의식을 둘러싼 망상에서 벗어나 한걸음이라도 내딛는 순간, 자신은 달라집니다. 자신의 몸이 바뀌고 삶이 변하고 세상이 움직입니다. 이것은 오로지 자신만이 할 수 몫이에요. 사람은 어차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거예요. 홀로 갈 수 없다면 절대 남을 사랑할 수 없어요. 사랑이라 일컫는 행위를 하지만 예속이나 집착, 또는 작업이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오노 요코에 대해 존 레논은 “그녀와 나는 음악과 정치, 예술, 모든 분야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거기다 섹스까지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짝이 어디 있단 말인가”라며 자신의 사랑을 설명했습니다. 걸어가면서 사랑하는 정말 멋진 두 사람이었지요.

 

자신도 이른바 ‘소울메이트’를 만나고 싶다면 자신이 그런 소울메이트가 되어야겠지요.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노예인가? 그렇다면 누군가의 짝이 될 수 없지요. 자신은 폭군인가? 그렇다면 짝을 사귈 수 없어요. 짝은 자신과 동등하게 걸어가는 도반이니까요. 뭐든지 자기 자신이 무엇을 바라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반성하는 지점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넘어진 곳에서 스스로 딛고 시작해야 하는 거죠.

 

아시다시피, 사랑을 하면 삶 자체가 싱싱하게 되죠. 사실, 삶은 원래 푸르러요. 그렇기에 20대 청년으로 돌아가는 것만을 젊음이라고 할 수 없지요. 자기 연령에 걸맞게 청춘을 매번 새롭게 창조해야 해요. 그럴 때 비로소 청춘이 되고 사랑을 할 수 있는 셈이지요. 온 몸으로 공부하고 온 생애를 걸어서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두려움 없이 사랑하시는 청춘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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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ad-meet-you 2009-02-20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정리 하셨네요. 차서를 바꾸어서 새로이 창조한 부분도 보이고요.
님의 발원대로 멋진 님 되시길, 멋진 도반 찾으시길 기원합니다.^^

좋은책 2009-03-20 15:2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선생님도 즐겁게 길 걸어가시길 바랄게요~~

스스로 보살피자 2009-10-25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절인연이라.....
그렇군요....

그런데 사랑이 잇긴잇나요??
영역확장용 아니던가요???
사랑이란 이름하에 자아도취에 빠져....상대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으면 ..그 요구는 끝을 모르고,,생주접을 떨고 ..서로 솔직하지도 못하고...

사랑단어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려는 것이엇다는 것...

연애 하지말고 중매한 후 연애하세요.....

좋은책 2009-11-23 20:53   좋아요 0 | URL
사랑은 자신의 그릇만큼 하는 것이죠. 사랑이란 허깨비가 현실에서 넘쳐나지만
참된 만남은 모두가 바라는 욕망이고 삶이 달라지는 기회죠.
진짜 사랑을 해보시길 바랄게요~~

스스로 보살피자 2009-10-25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한대로 한순간이 아닌 말이 통하는 그런 상대르 만나 연애를 하는 거라면.....
그러나 대개의 바람피는 아버지를 보면 말이 통한다기보다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게 아닌...
그러나 세월 흐른 지금 그런 바람둥이를 이해하는 것은 그들도 저살길 찾아 헤매는 중이엿다는 것...
단지 그뿐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니란 것...
그뿐입니다....아하??라는 것..보고 들은 게 그것 뿐이고 가장 손쉬운 것이니 나름 바람빼기를 하고 잇엇다는 것..
.......단지 그뿐
너무 그들에게 신경을 쓴다느 것은 매몰비용만 추가될 뿐이라는 것..

너무 많은 것은 기대하지않는 법을 배우고 익히길....

좋은책 2009-11-23 20:54   좋아요 0 | URL
말이 통한다는 것은 그저 자신의 헛헛함을 달래고 외로움을 잠깐 가시는 것이 아니라 존재와 존재가 마주치는 것이고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삶을 만들어내는 것이에요.
선생님이 어떠한 상처와 아픔이 있는지 모르지만 늘 처음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