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이후의 한국경제 - 글로벌 금융위기와 MB노믹스를 넘어 새사연 신서 4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지음 / 시대의창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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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풍경 하나. “시장에 맡기고 간섭하지 말라” 시장만능주의자들의 구호가 요란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정부는 해결책이 아니라 문젯거리라며 규제를 받지 않았던 기업들이 상황이 어려워지자 손을 내밀며 돈을 달라고 합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될 때는 자유방임을 주장하던 그들이었죠. 잘 나갈 때는 자기만 챙기다가 손해가 나니까 책임을 지지 않고 국민들 혈세를 내놓으라고 합니다.

 

미국 풍경 둘. 뉴욕타임즈는 “미국이 다른 국가에 요구했던 것을 자신은 실천하지 않는 국가가 되었다”며 미국의 이중성을 비판했습니다. 신자유주의 원리에 따라 모든 걸 내버려두라고 세계를 윽박지르던 그들이 정작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네요. 존 메케인 공화당 대통령 후보도 “월스트리트의 규제받지 않는 탐욕과 부패가 현재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말할 정도로 미국 내 분위기는 급변하였습니다.

 

21세기 초, 세계 경제가 변하고 있습니다. 자유시장과 규제완화를 주장하던 신자유주의자들의 위세가 꺾였습니다. 구제금융을 받은 ‘2008년 3월 14일 금요일을 기억하라,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꿈이 사망한 날이다’고 할 정도로 시장기능이 마비되었습니다. 불투명한 경제 상황이 불안한 사람들에게 <신자유주의 이후의 한국경제>[2009. 시대의 창]는 반가운 책이지요. 세계경제가 왜 위기를 맞았으며 한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앞길을 밝혀주니까요.

 

미국발 경제위기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지금 세계 경제위기는 신자유주의 사상에 따라 진행된 ‘경제의 금융화와 금융의 세계화’ 때문이라고 책은 지적합니다. 실물자산보다 급격하게 늘어난 금융자산은 당연히 거품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고 그게 터진 거죠. 거기다 금융상품을 다양화시키고 안정된 수익을 준다고 믿었던 각종 파생상품들이 위험을 분산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위험을 세계로 확산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제지할 감독과 규제 장치는 갖춰지지 않아 위기는 커졌지요.

 

신자유주의 허상과 사람들의 탐욕은 끝내, 한계를 드러냈고 세계 경제는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베어스턴스가 무너져도 시장에 맡기라고 떠들어대던 윤똑똑이들 때문에 미국정부는 위기에 대처하지 못하다 리먼브라더스, 메릴린치, AIG가 쓰러지자 비로소 ‘시장이 자기통제 기능을 상실’했음을 인정하며 구제금융에 들어갑니다. 이미 상황은 너무 악화되었지만 오바마 의사는 미국 경제를 살려보려고 메스를 들고 대수술을 시작하였습니다.

 

미국금융위기는 자기들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죠. 신자유주의가 지배한 30년 동안 금융의 세계화가 이뤄지면서 한국 경제의 손실도 엄청납니다. 특히, 다른 나라보다 더욱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며 따랐던 한국이기에 위기를 직격탄으로 맞으며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이 책은 경제위기가 한국 경제가 왜 다른 나라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했는지 분석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세히 다룹니다.

 

책은 정부가 두 가지를 하라고 제시 하죠. 예측이 불가능한 외부의 금융충격에 무방비로 노출돼있는 국민경제를 살릴 수 있는 완충장치를 마련하는 것과 밑에서부터 붕괴되어가는 내수기반을 회복하는 일이지요. 한국만큼 외부변화에 요동치는 나라도 없지요. 세계에서 가장 변동이 컸던 외환은 한국경제가 얼마나 불안한지 보여주죠.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조치들을 설명하며 다방면에서 검토하고 실시하자고 얘기합니다.

 

한국은 자영업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내수기반 경제, 수출대기업과 단기수익 추구에 몰두하는 거대 금융기업들의 경제로 둘로 나뉜 경제체제를 갖고 있습니다. 두 경제는 연결되지 않은 다른 세계입니다. 몇몇 기업이 큰 돈을 벌어 결과상 GDP가 높았을 뿐이지 결코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가 아닙니다. 서민들 주머니에는 돈이 없어 내수가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금융충격이 서민들 삶을 파괴한 뒤에 뒷수습할 게 아니라 빨리 지원을 하라고 촉구합니다.

 

정부가 해야 할 두 가지, 피해야 할 세 가지

 

또한, 피해야할 세 가지를 강조합니다. 바로 감세와 부동산 거품 확대, 금융 규제완화지요. 미국 오바마도 증세를 하는 형편에 MB정부는 대규모 부자감세를 합니다. 그러면서도 돈은 마구 쓰겠다고 합니다. 수입은 줄이지만 지출은 늘리겠다니, 앞뒤 안 맞는 정책에 기가 막힐 따름이죠. 위기상황에서 시급히 감세를 하는 건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빚이 산더미처럼 늘고 있어요. 그 짐은 또 국민들이 짊어져야겠죠.

 

MB 정부는 28조9천억 원에 이르는 대규모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하였습니다. 이로써 적자폭이 51조6천억 원으로 늘어납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두해 동안 관리대상수지 적자는 67조2천억 원에 이릅니다. 이는 참여정부 5년간 총 적자액 18조3천억원의 3.7배 규모입니다. 올해 국가채무는 지난해보다 58조6천억 원 늘어난 366조9천억 원에 이를 전망입니다. 이는 국내총생산 대비 38.5%로 지난 2002년(19.5%)과 비교해 7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입니다. 앞날이 밝을 수 없습니다.

 

부동산 문제, 지금 세계 금융위기는 미국의 부동산 거품에서 빚어졌죠. 침체기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부동산거품이 한창 빠지고 있죠. 그동안 잘못된 정책과 사람들의 투기로 빚어진 거품이기 때문에 조금 고통스럽더라도 빼고 가야하는 게 맞죠. 그러나 MB정부는 부동산 거품을 더 키우고 투기를 활성화시키는 정책들을 폅니다. 종부세를 사실상 폐지하고 투기지역을 해제하면서 억지로 부동산거품을 유지하려다 더 큰 위험이 올까 조마조마합니다.

 

금산분리완화 방침을 통과시키면서 금융선진화를 외치고 있는 것도 문제죠. 이미 세계는 금융 규제를 검토하고 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규제강화로 경제를 살리려는 거죠. 한국만 서둘러 금융완화를 시도하고 금융재편에 들어갑니다. 그것도 30년 전의 미국방식으로. 이것에 비판의 목소리가 드높았지만 2월 국회에서 통과되었지요. 당장 이득은 자신들이 가지나 피해는 사회화시키는 일이 되풀이될까 우려되는 현실입니다.

 

문제를 일으킨 원인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MB정부

 

현 정권을 보면서 많은 시민들이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이뤄진 신자유주의로 중산층은 무너지고 사회양극화는 심화되었으며 서민들의 삶은 피폐해졌습니다. 국민들은 경제문제를 해결하라며 MB정권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이를 더욱 확대된 신자유주의 해법으로 풀겠다고 합니다. 문제를 일으킨 원인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 제대로 될 리 없습니다. 정부의 무능함을 비판해야할지, 국민들의 아둔함을 탓해야 할지 갑갑한 정국입니다.

 

다른 나라 사정을 살피면서 비슷하게 따라만 해도 그나마 나을 텐데, 한국은 어떻게 된 건지 모든 게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제창자 미국도 반성하고 있는데, 30년 전, 신자유주의가 태어나던 시절로 한국은 역주행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규제강화, 증세, 공영화를 하는데 반해 규제완화, 감세, 민영화를 과감하게 추진하며 ‘선진화’라고 합니다.

 

과거에 사로잡힌 시선은 세계정세 변화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어 불안하기만 합니다. 747공약이 한낱 신기루였으며 허황된 말이라는 것이 빤히 보이는데도 무조건 맹신하고 ‘더 부자로 만들어 달라’고 옹알대던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한국은 그들과 함께 MB정부를 믿고 격벽하는 21세기를 건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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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 오후 4시의 천사들
조병준 지음 / 그린비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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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결코, 부유해지지 않았습니다. 손에 쥔 건 많아졌는지 몰라도 갈수록 마음이 가난해지기 때문이죠. 자살하는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세상비관과 염세입니다. 겉으로 드러나기는 돈 문제, 우울증이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튼실하지 못한 사람관계가 웅크리고 있습니다.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정이 가난하기 때문에 살 가치를 못 느끼는 겁니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지요. 딛고 있는 곳에서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는 존재지요. 이 점을 까먹고 남을 억누르려고만 하기에 날로 옴팡지는 사람들은 ‘영혼의 가난’으로 고통 받습니다. 아무리 비싼 명품 옷을 걸치고 사회 지위가 높아도 속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벗이 없다면, 불쌍하고 비루한 삶이지요.

 

누구나 부족하기에 타인을 만나서야만 온전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 타인들이 친구라는 멋진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들을 떠올려봅니다. 나와 남 사이에서 빚어지는 숱한 일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일이죠. 그 반짝이는 순간이 행복이고 즐거움의 뿌리죠. 진정한 부자는 친구들과 관계가 깊은 사람이죠.

 

인도꼴까타로 자원봉사를 하러 온, 맑고 따뜻한 친구들 이야기

 

너무나 가난한 이 시대에서 부자로 살고 싶은 마음에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2005. 그린비]를 읽었습니다. 조병준 시인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친구들 이야기는 잔잔한 파문을 남깁니다. 활짝 웃고 있는 그들을 보면 행복이 무엇인지 곰곰 톺아보게 됩니다. 봄 햇살에 꽃봉오리가 열리듯 읽은 이는 절로 그들의 웃음에 감염됩니다.

 

인도 꼴까타에는 <사랑의 선교회>에서 운영하는 구호시설 <칼리카트>와 <프렘 단>이 있습니다. 마더 테레사가 세운 이 곳에서 지은이는 봉사활동을 하지요. 그곳에서 지은이가 만난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얘기입니다. 국적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지만 그들은 누군가를 돕겠다는 마음 하나로 인도 꼴까타로 향합니다.

 

칼리카트 건물은 원래 힌두교의 죽음과 파괴의 여신 ‘칼리’의 신전이었는데, 마더 테레사가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살피는 집으로 바꿉니다. 어떤 도움을 못 받은 채 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씻깁니다. 그리고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줍니다. 고통스런 죽음이 아니라 성스런 죽음으로 변하는 곳이 된 거죠.

 

책을 읽은 뒤, 훌륭한 사람들이구나, 하지만 난, 이 말을 붙이며 애써 핑계를 댈 수가 없더군요. 집값이 날로 높아지는데, 경제가 어렵다는데 등등 변명거리를 대면서 책을 덮을 수 없습니다. 환하게 웃고 있는 그들의 얼굴을 보면서 어쩜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감탄하며 한참을 쳐다보게 됩니다. 거울 속에 나는 어떤 얼굴인가 바라보게 되네요.

 

서로 가진 걸 재거나 탐내지 않고 더 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이 친구들은 사실, 불편합니다. 꼭꼭 감춰두었던 욕심을 들키게 되거든요. 여러 논리로 자신의 행동을 대충 합리화했던 과거를 건드리며, 진짜, 행복하냐고 묻는 거 같습니다. 머뭇거리며 궁색한 대답을 하려고 할 때, 괜찮다며 무엇을 하든 너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기도해주는 이 친구들 앞에서 울컥 뜨거운 감정이 치솟습니다.

 

세상이 썩었다고 합니다. 사람다움이 무엇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하지 않는 세태에서도 맑고 깨끗한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죠. 그들은 잘 닦인 거울처럼 세상과 이웃을 비춥니다. 세상이 뭐라고 꼬드기고 손가락질하건 그들은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죠. 경쟁만이 해법이고 세상은 원래 이런 거라며 떠드는 윤똑똑이들에게도 손을 내미는 사람들, 그들이 있기에 아직 세상은 살만 하지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사람들 가슴에서 가슴으로 이어진 고마운 책

 

시절인연이란 말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에는 피고 지는 때가 있으며, 사람 사이 인연도 그렇게 만나고 헤어지는 때가 있다는 말이죠. 책도 마찬가지, 조병준 시인이 이렇게 글로나마 써줬기에 사람들은 책을 통해 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지요. 그 인연이 소중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잔잔한 감동을 낳는 이 책을 가만히 쓰다듬어 봅니다.

 

책도 인스턴트식품처럼 짧은 유통기간을 갖게 되었죠. 많은 책들이 한철이 지나면 싹 사라집니다. 그러나 이 책은 나온 지 10년도 훌쩍 지났지만 이렇게 사람들 손에서 손으로, 가슴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네요. 오래 살아 남아준 이 책이 정말 고맙더군요. 책을 읽으며 고마운 마음에 코끝이 시큰거리고 괜스레 뭉클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많이 외롭다고 합니다. 그 외로움을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끙끙거리며 괴로워하죠.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기도 하고 외로움을 달래려고 술에 취해보기도 합니다.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에 눈물 글썽거리며 하늘을 쳐다보면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죠. 세찬 밤바람에 흔들리는 가지처럼 현대인들은 휘청거리면서 이 시대를 건너고 있습니다.

 

막막한 사막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면 이 책은 마음의 갈증을 풀어주는 한 줄기 샘물이 될 수 있겠네요. 조금 더 책에 빠져서 상상력을 펼친다면 오아시스가 될 수 있지요. 다시 길을 나서야겠지만 잠깐 발 쉼을 하면서 어디로 가야할지 앞 뒤 사정을 돌아보게 하는 여유를 담뿍 주네요.

 

가끔씩 “무엇으로 사세요?”라는 물음에 “좋은 사람들의 기억으로 살지요”라고 조병준 시인은 대답합니다. 좋은 사람들의 기억은 언제나 삶을 촉촉하게 하죠. 가족, 애인의 기억들도 좋지만 그 수는 한정될 수밖에 없는데 반해, 친구의 기억은 제한이 없지요. 오로지 타인을 거쳐서야 세상으로 나갈 수 있고 좋은 친구를 통해서만 삶이 빛납니다.

 

조병준 시인은 두런두런 친구들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읽는 이에게 소개해줍니다.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망설이지 않고, 그 친구들을 만나고 싶고 그런 벗이 되고 싶다고 얘기하고 싶네요. 친구들끼리 손을 잡으면 뭔가 좋은 일을 세상에서 할 수 있답니다. 자신도 누군가에게 좋은 추억이 되고 있는지, 훌륭한 길동무인지 살피면서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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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 늙다리 보리피리 이야기 5
이호철 지음, 강우근 그림 / 보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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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동안 소는 가장 귀한 짐승이었죠. 불평 없이 힘든 농사일을 하던 소는 그저 동물의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소를 우공(牛公)이라 부르며 한 식구처럼 대접하였고 같이 울고 웃으며 살았죠. 커다란 눈망울로 순했던 소, 믿음직스럽게 사람 곁에 있던 소, 이제는 추억 속에서나 떠올리는 동물이 되어버렸습니다.

 

도시화된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은 소를 그저 뿔 달린 초식동물로 여기죠. 한 끼 식사로 1인분에 18,000원하는 비싼 요리로 전락한 소를 생각하면 마음 한쪽이 저리지요. 뜨거운 햇볕아래에서 묵묵히 논을 갈았던 소, 사람에게 쌀과 밥을 주었던 소, 아이를 대학에 보냈던 소는 더 이상 없으니까요. 농촌이 더 이상 많은 사람들에게 생활의 터전이 아니듯이 소도 특별한 의미를 잃어버렸죠.

 

추억어린 소 이야기, 한동안 눈길을 멈추게 한다

 

<우리 소 늙다리>[2009. 보리]는 보는 사람들을 떨리게 하네요.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이 책을 보며 과거를 그리워하게 되죠. 지은이 이호철이 어렸을 적 겪었던 이야기를 구수한 사투리로 풀어놓은 이 책은 소와 사람이 얼마나 가까웠으며 소가 얼마나 귀한 존재였는지 되짚어 보게 합니다. 그림이 곁들어진 간단한 동화지만 다음 쪽으로 쉽게 넘기지 못하고 한동안 눈길을 멈추게 합니다.

 

책의 주인공 호철이 집에는 듬직한 소 ‘늙다리’가 있습니다. 이제는 늙어서 움직이는 것도 느릿느릿하지만 비쩍 마른 몸으로도 못 해내는 일이 없죠. 꾸역꾸역 일을 하는 늙다리와 어린 호철이가 어울리는 이야기는 추억어린 사진을 들추었을 때처럼 가슴을 찡하게 하네요. 이젠 이러한 향수를 안고 사는 사람들도 드물어지기에 마음이 애잔하죠.

 

어른들은 이 책을 보면서, 맞다, 그랬지, 하면서 눈망울이 소처럼 촉촉하게 될 터이고 아이들은, 정말, 이랬어? 하면서 눈이 소처럼 커지겠죠. 어른들에게는 평범한 농촌이야기가 요즘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이야기가 되었으니까요. 소와 함께 들판에서 뛰노는 얘기는 아이들에게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처럼 멀게만 느껴지고 있죠.

 

그럴수록 한국인의 영원한 고향, 농촌과 그때 정서를 알려줘야겠지요. 뿌리를 잊은 가지는 제대로 뻗어나가지 못하니까요. 아이들이 이런 책을 보면서 현재 사는 방식만이 전부가 아니며 인간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촌에 바탕이 있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네요. 소를 식탁에서만 보던 아이와 소에 얽힌 한국인들의 사랑을 아는 아이는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제 도시인들은 소를 잃어버렸습니다. 불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덩어리로만 생각합니다. 사람과 삶을 같이 하던 소가 단지 음식의 재료밖에 되지 않는 세태이기에서 불행한 일들이 벌어졌지요. 풀만 먹는 소에게 쇠고기를 먹임으로써 광우병이 생겨났지요. 소에게도, 사람에게도 끔찍한 일이지요. 그만큼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착하고 우직하게 일을 하던 소에게 사람들은 무슨 짓을 한 걸까

 

광우병, 이 말은 틀렸습니다. 소는 미친 게 아니라 아픈 거지요. 소는 잘못이 없습니다. 사람이 소를 아프게 한 거죠. 소는 늘 충실합니다. 받은 만큼 돌려주죠. 사람이 잘못을 했기에 그대로 돌려준 거죠. 젖 먹던 힘까지 짜서 사람을 도왔고 쟁기를 끌면서 저 넓은 땅을 갈았던 소의 착한 심정을 기억합니다. 평생을 일하고 자기 몸마저 주는 소에게 사람들은 무슨 짓을 한 걸까요.

 

더러운 물을 구정물이라고 하잖아. 예전에는 먹고 남은 음식찌꺼기를 모은 물이나 설거지한 물처럼 부엌에서 나온 물도 구정물이라고 했어. 이 구정물로 소죽을 끓이면 소가 훨씬 잘 먹어. 하지만 소죽을 끓일 구정물에도 아주 조금이라도 고기찌꺼기가 들어가면 안 돼. 소는 풀만 먹고 사는 짐승이라고 고기찌꺼기가 조금이라도 섞여있으면 소죽에 입도 대지 않았어. - 책에서

 

호철이는 자기 성질을 못 이기고 늙다리를 때립니다. 순한 늙다리는 피를 흘리며 맞죠. 늙다리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지요. 몹쓸 짓을 저지르고 나서야 호철이는 마음이 아려와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죠. 이튿날 일찍, 외양간으로 달려간 호철이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늙다리가 맞아주자 호철이는 눈물이 핑 돌며 후회하죠. “내 다시는 안 그러께, 참말로 미안하데이” 호철이가 반성하듯 세상 사람들도 뒤늦게 가슴을 치게 될까 걱정입니다.

 

책은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옛날이야기 들려주듯 이제는 잃어버린 고향 풍경을 두런두런 늘어놓지요. 아이들이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상력을 키우듯이 ‘우리 소 늙다리’를 읽으면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그동안 너무 무심하게 살아왔고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었다는 씁쓸함이 돋아납니다.

 

올해는 기축년, 소띠 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소와 연관된 일들이 많아지지요. 우선,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200만 명에게 훈훈한 감동을 전하였지요. 딸랑딸랑~ 잃어버린 워낭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은 지난날을 돌이켜보는 귀한 시간을 가졌지요. 소가 상징하는 바를 되새기며 하며 우리네 삶을 새삼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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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없는 십오 초 문학과지성 시인선 346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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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시를 읽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거칠게 말하면, 현실감각 없는 별종이죠. 모든 걸 돈으로 셈하는 세상에서 시를 읽는 건 쓸모없는 일이니까요. 도대체 시를 읽을 시간이 어디 있어, 그럴 시간에 효율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키워, 요란한 소리는 끊이질 않고 사회에서 그리고 가슴속에서 메아리 치고 있습니다.

 

세상이 하라는 대로 살지만 바닷물을 마신 거처럼 충족은커녕 불만만 쌓입니다. 도대체 언제 행복할지 감이 전혀 오지 않습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사랑하는 님과 언젠가는 행복하게 살겠지, 그림 같은 집을 짓는 심정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림이 정말 그림일 뿐이더군요. 누구나 겪어서 알다시피 내일은, 다시 내일로 미뤄지기 때문에, 애타게 바라는 행복은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그림의 떡을 쳐다보지 말고 쌀을 찧고 떡 만들 궁리가 필요합니다. 몰아붙이는 대로 끌려가는 사람이 행복하기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행복하기보다 어렵습니다. 사람 목에는 워낭이 걸려 있지 않기에 충실하게 훈육되어졌다고 해도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의문을 결코, 잠재울 수 없습니다. 대중문화가 촘촘히 펼쳐놓은 그물에 갇힌 물고기가 되기보다 큰 바다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가 되려면 힘들더라도 자기 삶을 일구어내야 합니다. 스스로 주인이 되는 길 가운데 하나가 시 읽기입니다.

 

책 볼 시간도 없는 사회, 읽는다 해도 자기계발서에 코를 박고 어떻게 몸값을 높여야하는지 머리를 싸매는 세태에서 시집 읽는 이는 서울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헤아리는 사람만큼 드뭅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시를 읽어야 합니다. 자신이 불행하다면 고개를 돌려야겠지요. 자신이 몰랐거나 외면하였던 창 밖에서 파랑새가 지저귀고 있을 수 있으니까요.

 

멋진 시인들이 많이 계시지만 먼저, <슬픔이 없는 십오 초>(문학과지성사 펴냄)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등단한지 14년 된 심오선 시인의 첫 시집이지요. 천천히 차를 마시듯 하루에 몇 편씩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넘치지는 않았지만 가득 차인 슬픔이 고요하게 담겨 있는 시집이더군요.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놀라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습니다. 독특한 상상력으로 빚어내는 그의 말잔치는 아름다웠지만 쓰라렸거든요.

 

심보선 시인은 “세계가 점점 나빠진다고 생각해요. 나도 행복해질 것 같지 않고요. 그럼에도 어찌할 수 없이 살아야 하죠. 이럴 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것을 멍에로 짊어지고 사는 사람이 세계를 바라보고 관계를 맺을 때 생기는 파열, 갈등, 체념. 이런 정서가 저에게 있는 것 같아요.”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시는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과 절망스러운 희망이 얽혀 있지요. “사랑을 잃은 자 다시 사랑을 꿈꾸고, 언어를 잃은 자 다시 언어를 꿈꿀 뿐”「먼지 혹은 폐허」

 

굳건한, 너무나 굳건한 세상 앞에서 청춘의 꿈들은 허물어지기 일쑤지요. 푸르른 봄은 끝까지 저항하기보다는 투항하면서 저뭅니다. 20대에 주목받으면서 등단한 뒤 온 몸으로 밀어도 꿈쩍도 안 하는 세상 앞에서 시인은 얼마나 많은 절망을 하였고 그 안에서 가쁜 숨을 내쉬었을까요. 누구와도 나눠질 수 없는 청춘의 무게를 그는 고뇌하면서 이렇게 쓴 걸까요.

 

거울 속 제 얼굴에 위악의 침을 뱉고서 크게 웃었을 때…매일 밤 치욕을 우유처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잠들면 꿈의 키가 쑥쑥 자랐을 때 그림자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에서 그 그림자들 거느리고 일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을 때 사랑한다는 것과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이 같은 말이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했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청춘」

 

세상을 온 몸으로 밀어내야 간신히 한 뼘 정도 자신의 자리가 생깁니다. 가까스로 자리를 마련하였다는 기쁨에 앞서 버거운 세상살이와 무너지는 자신을 바라보면 눈물이 차오르죠. 수많은 핑계를 대면서 타협하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살아가는 모습을 느낄 때마다 가슴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합니다. 하지만 그 뿐이죠. 다른 길로 발걸음을 돌리기보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거라며 자위하곤 합니다.

 

그렇다고 과거로 뒷걸음질할 수도 없고 다른 길을 찾지 못하죠. 그렇기에 인생은 고통이고 사람은 눈물을 흘리는 존재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들을 끝없는 바닥으로 슬픔은 떠밉니다. 「슬픔이 없는 십오 초」는 십오 초만 슬픔이 없기에 너무 슬픈 시입니다. 십오 초를 뺀 앞과 뒤 슬픈 시간, 그게 삶이겠죠. 가끔 슬픔 없는 십오 초를 위해 그 삶을 걸어가야겠지요.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아득한 고층 아파트 위

태양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낮달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치욕에 관한 한 세상은 멸망한 지 오래다

가끔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난다

가능한 모든 변명들을 대면서

길들이 사방에서 휘고 있다

 

(중략)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양이 온 힘을 다해 빛을 쥐어짜내는 오후

과거가 뒷걸음치다 아파트 난간 아래로

떨어진다 미래도 곧이어 그 뒤를 따른다

 

(중략)

 

나는 길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다

남자가 울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궁극적으로 넘어질 운명의 인간이다

현기증이 만발하는 머릿속 꿈 동산

이제 막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났다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으나

어디로든 끝간에는 사라지는 길이다

 



꿈보다 해몽이 좋은 법입니다. 시인이 어떤 의도를 썼을지 완전히 알 수 없습니다. 모든 소통은 불완전하며 어떠한 표현도 온전하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단절과 오해는 숙명이죠. 그렇기에 외롭고 슬프지요. 다만, 사람에게는 상상력이 있습니다. 자신이 처함에서 시작하여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고 품으려고 애를 써야하겠지요. 시가 풍기는 인상과 느낌을 곱씹으며 행복을 상상해봅니다. 그 맛에 시를 읽는 거죠. 시 읽는 맛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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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 - 인권 운동가 오창익의 거침없는 한국 사회 리포트
오창익 지음, 조승연 그림 / 삼인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2008. 삼인]은 재미난 책입니다. 지은이는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오창익으로 오랜 시간 이 사회의 그늘을 밝힌 인권운동가입니다. 그는 다른 나라에는 없거나 찾아보기 힘든데, 이 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을 모아 정리합니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들이 그의 글을 읽다보면 당연하지 않게 다가옵니다. 낯설게 하기, 책을 보다보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되는 기분입니다. 뭬야, 이런 나라에서 산 게야?!

 

이 책에 실린 한국의 모습들은 대부분 한국 사회가 고쳐야할 것들입니다. 베트남 처녀는 절대 도망가지 않는다는 현수막, 명절증후군, 무노조왕국, 실례한다면서 묻는 나이, 영어라는 종교, 계급사회가 낳은 폭탄주, 시민들을 통제하는 주민등록증 등등 여러 가지 낯부끄러운 일들을 담았지요. 솔직히 다른 나라 사람들은 보지 않았으면 하는 대목도 적지 않지요.

 

지은이는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그동안 만났던 외국인들이 신기하다며 했던 많은 이야기들은 좋은 소재가 되었다고. 한국인들에게는 익숙한 것이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요상한 일들이 많지요. 그렇다고 어렵게 분석한 뒤 무조건 비난하는 책은 아닙니다. 읽는 이들이 쉽게 공감하면서 한번쯤 되돌아볼 수 있는 수준에서 글이 흘러가네요. 재미있는 이야기 2가지를 소개합니다.

 

통장에 29만원 밖에 없는 불우이웃 전직대통령

 

집요한 권력욕으로 1979년 12월 12일 쿠데타를 감행했고,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광주시민을 무참히 살육했다. 그리고 그토록 원했던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그가 집권하던 시기는 참으로 무서운 시절이었다. 입도 벙긋할 수 없었다. 그는 절대 권력이었고 왕 같은 대통령이었다. - 책

 

이 무서운 전직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난 뒤 한참 뒤, 그가 모아 두었다는 비자금이 드러납니다. 정확한 액수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1995년 기준으로 대체로 1조원 가까운 돈이라는 게 정설입니다. 재임기간 씀씀이가 큰 것으로 유명했는데, 쓰고 남은 돈이 그 정도입니다. 아직도 뭉칫돈들이 다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가 법원에 출석해서 근엄한 표정으로 재산이 29만원이라고 말합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 당황하면서 쓰러지는 국민들, 정부는 혈압약을 제공하라! 그래도 이 말을 믿고 그를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지요. 통장의 잔고가 29만원밖에 없기에 생활하기 어려울뿐더러 2.205억 원의 추징금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요. 극빈자가 되어버린 한국의 대통령, 쓸쓸한 한국의 모습입니다.

 

불우이웃돕기 덕분인지 요즘도 그는 왕 같은 행세를 하고 다니지요. 나들이를 할 때는 경찰이 교통 통제를 해주어 현직 대통령과 똑같은 호사를 누립니다. 부인과 골프를 치고는 기분 좋다고 수백 만 원짜리 나무를 심기도 하고 골프장에 갈 때는 왕년에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을 몰고 다닙니다. 짝짝짝! 박수가 나오는 흐뭇한 풍경이지요.

 

잠깐 있었다가 사라진 ‘석사장교’ 제도는 전두환 큰 아들, 전재국씨(78학번)부터 시작해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씨(83학번)까지 혜택을 보고 없어집니다. 대학원을 마치고 석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이 간단한 시험만 치르면 군 생활을 6개월만 하도록 만든 제도지요. 넉 달 동안 훈련받는 것을 빼면 달랑 두 달만 ‘군대 체험’하는 제도로 막상 자기 자식들을 면제시키기는 좀 거시기 했던지, 이렇게 훌륭한 제도를 만듭니다. 역시 군인출신 대통령! 다른 권력자들처럼 자기 자식을 군에서 빼지 않고 갔다 오게 하네요. 짝짝짝!

 

그의 그런 위대한 업적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요. 전두환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 전사모 팬클럽 회원수가 18,000이 넘었지요. 전씨가 태어난 경남 합천의 군수는 ‘새천년 생명의 숲’이라는 멀쩡한 이름의 공원을 ‘일해공원’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일해는 전씨의 호입니다. 아무래도 큰 인물이 태어난 곳이니 그를 기리고 싶었나 봅니다. 짝짝짝!

 

조폭 동원하여 납치하고 집단폭행했으나 집행유예 받는 회장님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 재벌 회장이 조폭 영화를 너무 많이 보셨나. 애지중지 아끼는 아들이 얻어터지고 들어오자, 완전히 한 편의 조폭 영화를 찍으셨다. 진짜 조폭을 동원하고, 아들을 때린 사람들을 야심한 밤에 납치해서 흠씬 두들겨 주었다. 죽지 않을 만큼 때리고는 술이나 마시라고 거액을 뿌리기까지 했단다. “니네들이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라”는 근엄한 멘트를 날리면서 - 책에서

 

이 사건은 전직 경찰청창이 한화 그룹의 고문으로 있기에 알려지기가 어려웠습니다. 상부의 비호 때문에 사건을 처리할 수 없었던 한 경찰관은 <한겨레>기자를 만나 자초지종을 털어놓음으로써 그제야 알려지게 됩니다. 여론의 힘에 밀려 겨우 구속은 되었지만, 구속된 직후부터 우울증과 불면증을 호소하더니 구치소 대신 대학 병원의 특실에서 생활하게 되는 김씨, 영화배우다운 연기력에 감탄이 절로 납니다.

 

누구든 구치소에 가면 잠을 뒤척이게 마련이죠. 처벌을 받기 위해 집이 아닌 특별한 장소에 갇혀있는데 잠이 잘 온다면 그게 이상한 일 아닐까요. 그리고 우울하지 않다면 사이코패스겠지요.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재소자가 처음에는 우울증과 불면증을 갖게 되지요. 그렇다고 누구나 김씨처럼 대학병원으로 가는 특혜를 누리는 건 아닙니다.

 

특혜는 주구장창 이어지죠. 당시 법무장관이 나서 “부정이 기특하다.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다”고 분위기를 띄운 다음, 집행유예가 선고됩니다. 그리고 언제나 되풀이 되고 있는 고장난 라디오 소리가 흘려 나옵니다. “어려운 경제사정에 어쩌고저쩌고~~” 그리고 회장님의 명연기가 재연됩니다. 면도를 하지 않은 초췌한 얼굴로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는 회장님, 오, 회장님!!!

 

법 앞에 만민이 평등하다는 헌법정신은 권력자들이 까먹은 지 꽤 되었지요. 1988년, 탈주범 지강헌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울분을 터뜨렸지만 한국 사회는 “맞아, 돈 없는 건 죄야, 억울하면 돈 벌어”라고 대답을 합니다. 납치, 위험한 물건으로 집단폭행을 저지른 범인이 집행유예를 받는 한국, 누구랑 말싸움이 나도 혹시 회장님 자제분이 아닌지 꼭 확인해야 합니다. 아니면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로 끌려갈 수 있습니다.

 

공정하게 법을 판단해야 할 사법부가 이상한 판결을 하도 자주 내놓은 턱에 깜짝깜짝 놀라는 시민들은 청심환이라도 하나 먹으면서 가슴을 진정시킵니다. 그래도 법인데, 하면서 교대역 근처에 있는 건물을 믿고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허탈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촛불판결에도 끼어든 게 드러났지만 신영철 대법관과 이용훈 대법원장은 비판 여론에도 아랑곳없이, 비밀이메일은 보냈으나 압력은 아니었다고 떳떳하게 말합니다. 평생 법 공부하신 분들이니까 그들이 맞겠지요. 대한민국은 법치주의국가니까요.

 

전직 대통령이 극빈자가 되고 사건을 일으키면 마스크에 휠체어에 앉는 재벌 회장들을 보면서 한국 사회를 돌아봅니다. 이만큼 온 게 어디야, 하면서 그들을 눈감아 주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꼭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앞에서는 눈을 부릅뜨고 큰소리치기 일쑤입니다. 인권, 이 말을 누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는지 떠올려봅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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