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 오후 4시의 천사들
조병준 지음 / 그린비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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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결코, 부유해지지 않았습니다. 손에 쥔 건 많아졌는지 몰라도 갈수록 마음이 가난해지기 때문이죠. 자살하는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세상비관과 염세입니다. 겉으로 드러나기는 돈 문제, 우울증이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튼실하지 못한 사람관계가 웅크리고 있습니다.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정이 가난하기 때문에 살 가치를 못 느끼는 겁니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지요. 딛고 있는 곳에서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는 존재지요. 이 점을 까먹고 남을 억누르려고만 하기에 날로 옴팡지는 사람들은 ‘영혼의 가난’으로 고통 받습니다. 아무리 비싼 명품 옷을 걸치고 사회 지위가 높아도 속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벗이 없다면, 불쌍하고 비루한 삶이지요.

 

누구나 부족하기에 타인을 만나서야만 온전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 타인들이 친구라는 멋진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들을 떠올려봅니다. 나와 남 사이에서 빚어지는 숱한 일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일이죠. 그 반짝이는 순간이 행복이고 즐거움의 뿌리죠. 진정한 부자는 친구들과 관계가 깊은 사람이죠.

 

인도꼴까타로 자원봉사를 하러 온, 맑고 따뜻한 친구들 이야기

 

너무나 가난한 이 시대에서 부자로 살고 싶은 마음에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2005. 그린비]를 읽었습니다. 조병준 시인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친구들 이야기는 잔잔한 파문을 남깁니다. 활짝 웃고 있는 그들을 보면 행복이 무엇인지 곰곰 톺아보게 됩니다. 봄 햇살에 꽃봉오리가 열리듯 읽은 이는 절로 그들의 웃음에 감염됩니다.

 

인도 꼴까타에는 <사랑의 선교회>에서 운영하는 구호시설 <칼리카트>와 <프렘 단>이 있습니다. 마더 테레사가 세운 이 곳에서 지은이는 봉사활동을 하지요. 그곳에서 지은이가 만난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얘기입니다. 국적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지만 그들은 누군가를 돕겠다는 마음 하나로 인도 꼴까타로 향합니다.

 

칼리카트 건물은 원래 힌두교의 죽음과 파괴의 여신 ‘칼리’의 신전이었는데, 마더 테레사가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살피는 집으로 바꿉니다. 어떤 도움을 못 받은 채 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씻깁니다. 그리고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줍니다. 고통스런 죽음이 아니라 성스런 죽음으로 변하는 곳이 된 거죠.

 

책을 읽은 뒤, 훌륭한 사람들이구나, 하지만 난, 이 말을 붙이며 애써 핑계를 댈 수가 없더군요. 집값이 날로 높아지는데, 경제가 어렵다는데 등등 변명거리를 대면서 책을 덮을 수 없습니다. 환하게 웃고 있는 그들의 얼굴을 보면서 어쩜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감탄하며 한참을 쳐다보게 됩니다. 거울 속에 나는 어떤 얼굴인가 바라보게 되네요.

 

서로 가진 걸 재거나 탐내지 않고 더 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이 친구들은 사실, 불편합니다. 꼭꼭 감춰두었던 욕심을 들키게 되거든요. 여러 논리로 자신의 행동을 대충 합리화했던 과거를 건드리며, 진짜, 행복하냐고 묻는 거 같습니다. 머뭇거리며 궁색한 대답을 하려고 할 때, 괜찮다며 무엇을 하든 너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기도해주는 이 친구들 앞에서 울컥 뜨거운 감정이 치솟습니다.

 

세상이 썩었다고 합니다. 사람다움이 무엇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하지 않는 세태에서도 맑고 깨끗한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죠. 그들은 잘 닦인 거울처럼 세상과 이웃을 비춥니다. 세상이 뭐라고 꼬드기고 손가락질하건 그들은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죠. 경쟁만이 해법이고 세상은 원래 이런 거라며 떠드는 윤똑똑이들에게도 손을 내미는 사람들, 그들이 있기에 아직 세상은 살만 하지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사람들 가슴에서 가슴으로 이어진 고마운 책

 

시절인연이란 말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에는 피고 지는 때가 있으며, 사람 사이 인연도 그렇게 만나고 헤어지는 때가 있다는 말이죠. 책도 마찬가지, 조병준 시인이 이렇게 글로나마 써줬기에 사람들은 책을 통해 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지요. 그 인연이 소중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잔잔한 감동을 낳는 이 책을 가만히 쓰다듬어 봅니다.

 

책도 인스턴트식품처럼 짧은 유통기간을 갖게 되었죠. 많은 책들이 한철이 지나면 싹 사라집니다. 그러나 이 책은 나온 지 10년도 훌쩍 지났지만 이렇게 사람들 손에서 손으로, 가슴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네요. 오래 살아 남아준 이 책이 정말 고맙더군요. 책을 읽으며 고마운 마음에 코끝이 시큰거리고 괜스레 뭉클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많이 외롭다고 합니다. 그 외로움을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끙끙거리며 괴로워하죠.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기도 하고 외로움을 달래려고 술에 취해보기도 합니다.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에 눈물 글썽거리며 하늘을 쳐다보면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죠. 세찬 밤바람에 흔들리는 가지처럼 현대인들은 휘청거리면서 이 시대를 건너고 있습니다.

 

막막한 사막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면 이 책은 마음의 갈증을 풀어주는 한 줄기 샘물이 될 수 있겠네요. 조금 더 책에 빠져서 상상력을 펼친다면 오아시스가 될 수 있지요. 다시 길을 나서야겠지만 잠깐 발 쉼을 하면서 어디로 가야할지 앞 뒤 사정을 돌아보게 하는 여유를 담뿍 주네요.

 

가끔씩 “무엇으로 사세요?”라는 물음에 “좋은 사람들의 기억으로 살지요”라고 조병준 시인은 대답합니다. 좋은 사람들의 기억은 언제나 삶을 촉촉하게 하죠. 가족, 애인의 기억들도 좋지만 그 수는 한정될 수밖에 없는데 반해, 친구의 기억은 제한이 없지요. 오로지 타인을 거쳐서야 세상으로 나갈 수 있고 좋은 친구를 통해서만 삶이 빛납니다.

 

조병준 시인은 두런두런 친구들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읽는 이에게 소개해줍니다.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망설이지 않고, 그 친구들을 만나고 싶고 그런 벗이 되고 싶다고 얘기하고 싶네요. 친구들끼리 손을 잡으면 뭔가 좋은 일을 세상에서 할 수 있답니다. 자신도 누군가에게 좋은 추억이 되고 있는지, 훌륭한 길동무인지 살피면서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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