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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 늙다리 ㅣ 보리피리 이야기 5
이호철 지음, 강우근 그림 / 보리 / 2008년 12월
평점 :
오랜 시간동안 소는 가장 귀한 짐승이었죠. 불평 없이 힘든 농사일을 하던 소는 그저 동물의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소를 우공(牛公)이라 부르며 한 식구처럼 대접하였고 같이 울고 웃으며 살았죠. 커다란 눈망울로 순했던 소, 믿음직스럽게 사람 곁에 있던 소, 이제는 추억 속에서나 떠올리는 동물이 되어버렸습니다.
도시화된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은 소를 그저 뿔 달린 초식동물로 여기죠. 한 끼 식사로 1인분에 18,000원하는 비싼 요리로 전락한 소를 생각하면 마음 한쪽이 저리지요. 뜨거운 햇볕아래에서 묵묵히 논을 갈았던 소, 사람에게 쌀과 밥을 주었던 소, 아이를 대학에 보냈던 소는 더 이상 없으니까요. 농촌이 더 이상 많은 사람들에게 생활의 터전이 아니듯이 소도 특별한 의미를 잃어버렸죠.
추억어린 소 이야기, 한동안 눈길을 멈추게 한다
<우리 소 늙다리>[2009. 보리]는 보는 사람들을 떨리게 하네요.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이 책을 보며 과거를 그리워하게 되죠. 지은이 이호철이 어렸을 적 겪었던 이야기를 구수한 사투리로 풀어놓은 이 책은 소와 사람이 얼마나 가까웠으며 소가 얼마나 귀한 존재였는지 되짚어 보게 합니다. 그림이 곁들어진 간단한 동화지만 다음 쪽으로 쉽게 넘기지 못하고 한동안 눈길을 멈추게 합니다.
책의 주인공 호철이 집에는 듬직한 소 ‘늙다리’가 있습니다. 이제는 늙어서 움직이는 것도 느릿느릿하지만 비쩍 마른 몸으로도 못 해내는 일이 없죠. 꾸역꾸역 일을 하는 늙다리와 어린 호철이가 어울리는 이야기는 추억어린 사진을 들추었을 때처럼 가슴을 찡하게 하네요. 이젠 이러한 향수를 안고 사는 사람들도 드물어지기에 마음이 애잔하죠.
어른들은 이 책을 보면서, 맞다, 그랬지, 하면서 눈망울이 소처럼 촉촉하게 될 터이고 아이들은, 정말, 이랬어? 하면서 눈이 소처럼 커지겠죠. 어른들에게는 평범한 농촌이야기가 요즘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이야기가 되었으니까요. 소와 함께 들판에서 뛰노는 얘기는 아이들에게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처럼 멀게만 느껴지고 있죠.
그럴수록 한국인의 영원한 고향, 농촌과 그때 정서를 알려줘야겠지요. 뿌리를 잊은 가지는 제대로 뻗어나가지 못하니까요. 아이들이 이런 책을 보면서 현재 사는 방식만이 전부가 아니며 인간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촌에 바탕이 있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네요. 소를 식탁에서만 보던 아이와 소에 얽힌 한국인들의 사랑을 아는 아이는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제 도시인들은 소를 잃어버렸습니다. 불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덩어리로만 생각합니다. 사람과 삶을 같이 하던 소가 단지 음식의 재료밖에 되지 않는 세태이기에서 불행한 일들이 벌어졌지요. 풀만 먹는 소에게 쇠고기를 먹임으로써 광우병이 생겨났지요. 소에게도, 사람에게도 끔찍한 일이지요. 그만큼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착하고 우직하게 일을 하던 소에게 사람들은 무슨 짓을 한 걸까
광우병, 이 말은 틀렸습니다. 소는 미친 게 아니라 아픈 거지요. 소는 잘못이 없습니다. 사람이 소를 아프게 한 거죠. 소는 늘 충실합니다. 받은 만큼 돌려주죠. 사람이 잘못을 했기에 그대로 돌려준 거죠. 젖 먹던 힘까지 짜서 사람을 도왔고 쟁기를 끌면서 저 넓은 땅을 갈았던 소의 착한 심정을 기억합니다. 평생을 일하고 자기 몸마저 주는 소에게 사람들은 무슨 짓을 한 걸까요.
더러운 물을 구정물이라고 하잖아. 예전에는 먹고 남은 음식찌꺼기를 모은 물이나 설거지한 물처럼 부엌에서 나온 물도 구정물이라고 했어. 이 구정물로 소죽을 끓이면 소가 훨씬 잘 먹어. 하지만 소죽을 끓일 구정물에도 아주 조금이라도 고기찌꺼기가 들어가면 안 돼. 소는 풀만 먹고 사는 짐승이라고 고기찌꺼기가 조금이라도 섞여있으면 소죽에 입도 대지 않았어. - 책에서
호철이는 자기 성질을 못 이기고 늙다리를 때립니다. 순한 늙다리는 피를 흘리며 맞죠. 늙다리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지요. 몹쓸 짓을 저지르고 나서야 호철이는 마음이 아려와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죠. 이튿날 일찍, 외양간으로 달려간 호철이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늙다리가 맞아주자 호철이는 눈물이 핑 돌며 후회하죠. “내 다시는 안 그러께, 참말로 미안하데이” 호철이가 반성하듯 세상 사람들도 뒤늦게 가슴을 치게 될까 걱정입니다.
책은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옛날이야기 들려주듯 이제는 잃어버린 고향 풍경을 두런두런 늘어놓지요. 아이들이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상력을 키우듯이 ‘우리 소 늙다리’를 읽으면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그동안 너무 무심하게 살아왔고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었다는 씁쓸함이 돋아납니다.
올해는 기축년, 소띠 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소와 연관된 일들이 많아지지요. 우선,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200만 명에게 훈훈한 감동을 전하였지요. 딸랑딸랑~ 잃어버린 워낭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은 지난날을 돌이켜보는 귀한 시간을 가졌지요. 소가 상징하는 바를 되새기며 하며 우리네 삶을 새삼 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