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철초고에서 칼 맑스는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가 대상에 대한 모든 감각들, 곧 만지고, 보고, 듣고, 느끼고, 냄새맡고, 맛보는, 인간과 세계 사이의 교통을 가능하게 하는 이 감각들을 단지 사적으로 ‚가진다’라고 하는 소유 감각으로만 축소시켰다고 말한다. 사적 소유관계 하에서 „한 대상은 나만의 자본으로 존재하거나, 내가 그것을 먹거나 마시거나 내 몸에 지니거나 그 안에 살게되거나 한 한에서만, 간단히 말해 우리에 의해 사용될 때에만 비로소 우리의 것이 된다." (Karl Marx, 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in Schriften, Manuskripten, Briefe bis 1844, Berlin Dietz, S.540)

맑스는 나아가 인간의 다양한 감각을 다만 '소유한다'고 하는 감각으로 축소시킨 사적 소유제가 폐지되어야만 비로소 모든 인간적인 감각들이 완전한 해방을 맞게될 것이라고 말한다. 사적 소유제 하에서 사람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들과 인간이 생산해낸 물건들을 만지고, 보고, 느끼는 감각적 향유를 다만 그것을 사적으로 소유하고서야 누릴 수 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는 자신의 소유가 아닌 많은 사물과 대상들에 대한 감각적 접근 가능성을 차단시켰다는 거다. 내 지우개 만지지마.  내 책 보면 안돼!  내 장난감 가지고 놀지마...  

맑스가 꿈꾸었던 인간의 모든 감각들이 해방된 사회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곳에선 말하자면 어떤 대상이 구지 나의 소유가 아니더라도 난 그것을 만지고, 보고, 듣고, 냄새맡고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회의 모든 재화들이 공유되어 있어 그 누구도 특정한 대상들에 대한 독점적인 감각적 향유를 주장하지 못할 그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연과 그로부터 인간이 만들어내는 모든 재화들을 사적으로 소유하지 않고서도 함께 향유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맑스가 꿈꾸었던 저 인간 감각의 해방은 맑스가 꿈에도 생각치 못했을 엉뚱한 장소에서 실현되고 있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집어 먹어볼 수 있는 음식들로 가득찬 백화점 식품부, 스스로 만져보고, 입어보고 살 수 있도록 되어있는 옷 매장과 직접 작동하고 들어볼 수 있는 티브이, 라디오, 전자제품 매장, 시승을 가능케하는 자동차 매장 등 새로운 자본주의적 상품시장...  

다만 여기선 사적소유와 인간 감각의 관계가 뒤바뀌어 있을 뿐이다. 누구나 먹어보고, 만져보고, 들어보고, 타 보고, 입어볼 수 있으나 그 물건들은 다만 돈을 지불한 사람들에게만 소유된다. 누구나 만져보고, 누구나 타보고, 누구나 입어볼 수 있는 것들을 그래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한다는 것이 주는 흥분!  우린 1844년의 맑스가 아직 알지 못했던 새로운 소유의 감각을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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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과학, 문학이 분화되지 않던 근대 이전의 학문들과 마찬가지로 근대 이전의 세계에선 또한 다양한 가치들 또한 아직 분화되지 않았다. 진-선-미가 떨어질 수 없는 가치로 결합되어 있던 이 시대엔 참되고 선한 것은 반드시 아름다울 수 밖에 없으며, 역으로 아름다운 것은 곧 그 내에 선과 참을 함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자신 주변의 아름다운 대상에 대한 추구(에로스)가 결국엔 선과 진리의 이데아에 대한 추구로 이어진다는 플라톤에게서 이는 분명히 표현되고 있다.

도덕적 순결함에다 아기 예수를 낳음으로써 크리스트교적 진리의 모태이기도 한 성모 마리아가 당연히 미인일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이다. 선한 주인공들은 잘 생기고 아름다운 반면, 악당들은 그렇지 못하게 등장하는 오늘날 헐리우드의 많은 영화에서도 저 오래된 진-선-미의 결합은 아직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진-선-미가 떨어질수 없는 가치들로 결합되어 있었던 시대는 서양에서는 르네상스 이후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마키아벨리즘을 통해 정치의 영역에서 분명하게 드러난 이러한 변화는 정치가 곧 ‚정의’이자 ‚선의 실현’으로 이해되어왔던, 더구나 기독교적 종교적 가치가 접목되어 더욱 강화된 이러한 가치들이 이제 서로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 것으로 독립하게 되는 것으로 드러난다. 동화나 설화, 민중설화의 영역에서 ‚아름다운 마녀’가 등장하게 되는 것도 이 시기 이후의 일이다. 진-선-미의 가치가 극단적으로 상대화되어 분리되게 되는 과정을 많은 이들은 보들레르 이후 서구의 미적 근대성에서 본다. 아름다움을 위해서 비도덕적, 비윤리적 행위조차 정당화시키려고 했던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등에서 이러한 경향은 극단화되어 드라난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참된 것은 반드시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며, 아름다운 것이 반드시 도덕적으로 선하거나 참된 것도 아니라는 진-선-미의 상대적 자율성, 나아가 그들 사이의 갈등을 거의 당연한 것으로까지 받아들인다.

결합되어 있던 진-선-미의 가치가 분화되고 자율화되는 과정을 이처럼 중세/전근대에서 근대적 사유로의 이행 과정으로 이해할수 있다면 동화 백설공주는 저 이행기의 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백설공주의 계모 왕비는 백설 공주 다음으로 ‚이 세상에서 두번째로 예쁜’미인이다. 아름다움의 가치를 구현하고 있는 그녀는 그러나, 백설공주를 죽여서라도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미인이 되고자 하는 ‚악인’이다. 여기서 아름다움은 악함이라는 대립적 가치와 결합되어 있다. 꺼꾸로 말하면 악한 계모 왕비는 ‚아름다움’이라는, 전 근대 시대에서라면 대립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가치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악인 계모 왕비는 또한 ‚참됨/진리’도 소유하고 있다.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마술거울’이 그것이다. 계모 왕비의 방에 걸려있는 마술 거울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라는 질문에 늘 진리만을 대답하도록 되어있는 거울은 자신의 그 ‚어쩔수 없는 진리’로 인해 계모 왕비를 자극, 그녀의 악행을 출발시키게하는 원인이 된다. 전통적으로 대립되는 것으로 여겨져왔던 진과 거짓, 선과 악함, 미와 추의 대립 구도가 저 왕비와 거울의 관계에서는 묘한 방식으로 교차한다. 왕비라는 악이 소유하고 있는, 늘 진리를 말할 수 밖에 없는 거울은 그를통해 „선함’과 결합되어 있던 자신의 도덕적 기반으로부터 벗어나 그의 대립물인 악함의 ‚수단’, 아니 나아가 그 악함이 발현하게 하는 ‚원인’으로까지 활약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다른 식의 해석도 가능하다. 악한 계모 왕비는 사실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백설공주의 아름다움이 제거되어야만 발현되는 것이다. 나아가 계모왕비는 진리와도 대립하고 있다. 그녀는 진리, 곧 자신이 백설공주보다 아름답지 못하다는 진리를 ‚참지못해’결국 백설공주를 죽일 결심을 (악을)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결심을 일으키게 한 건 또한 저 ‚아름다움’에의 추구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행위는 플라톤에게서도 곧 ‚진리’를 추구하는 첫걸음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추구하던 아름다움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둘러싼 진리에서 좌절되고, 그녀는 급기야 그 ‚진리’를 인위적으로 해소시키려 결심하게에 이른다. 결국 승리하는 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백설공주의 선함이다.

 이와는 다른 차원에서이긴 하지만 심청전 역시 중세시대와는 달라진 멘탈리티를 반영하고 있다. 물론, 심청은 선하고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까지 아버지를 구하려는 효녀에다, 연꽃에서 등장한 후 국왕을 반하게 만들만한 미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의 이러한 선함은 아버지의 눈뜸을 통해 보상을 받는다는 점에서도 중세적 가치관에서 크게 벗어나있지 않다. 그러나, 최소한 일국의 왕이 어디 출신인지도 모를, 다만 연꽃에서, 아름다운 자태로 나타난 ‚여인’을 왕비로 – 아마, 정식 왕비라기 보다는 총애하는 ‚첩’이었겠지만 – 맞이한다는 발상은 이미 저 확실한 신분제도 상의 윤리적 질서의 해체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

 이러한 중세적 가치의 해체과정은 흥부전에서도 드러난다. 장자가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는 중세적 관습에 따라 놀부는 동생의 모든 재산을 자신이 독차지하고는 동생과 그의 가족을 쫓아낸다. 그러나, 흥부전은 이러한 형의, 당시의 관습적 전통에서 보자면 정당하기조차 했을 행동을 ‚인간주의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동생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길 거부하는 형은 이를통해 비인간적이며 고약한 욕심꾸러기로 묘사된다. 말하자면 장자상속이라고 하는 중세적 관습이 휴머니즘이라고 하는 새로운 시대적 경향에 의해 비판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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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엔 우릴 매료시키는 물건들로부터 출발한다. 누군가가 가지고 있던 장난감, 우연히 고물상에서 접한 옛 물건, 헌책방에서 만난 한권의 멋진 고서적 등이 우리 내부의 수집가적 열망에 불을 붙인다. 그리곤 우린 매혹시켰던 그 물건들을 자신의 공간 속에 가져오려는 욕구로 밤잠을 설치기 시작한다.

수집가들은 물건들을 소유하고 가지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이 수집하고자 하는 물건이 저기, 저 곳에, 나아가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들은 박물관에 혹은 골동품 가게에 '만지지 마시오'라는 딱지와 함께 붙어있는 물건들을 멀찍이 구경하는 것만으론 성이 차지 않는다. 그들은 그 물건을 자신의 것으로, 자신의 공간 속으로 가져와 언제든지 꺼내 만져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수집가들은 발터 벤야민이 멋지게 표현했듯, 촉각적 본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1

자신이 수집하는 물건들을 언제라도 자신이 원할 때 자신에 앞에 현전하게 만드는 참된 방법은 그것들을 우리의 공간 속에 가져다 놓는 것이다.2  이 점에서 수집가들은 등산자나 산책가 혹은 박물관 방문자 들과는 다르다. 등산자나 산책자, 박물관 방문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물건들이 있는 공간에 자기 자신을 가져다 놓음으로써 그 물건들을 자신 앞에 현전하게 만든다. 등산가는 배낭을 메고 산에 오름으로써, 박물관 방문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이 전시되는 박물관을 방문함으로써 스스로를 만족시킨다. 그러나, 수집가들은 물건들을 자신의 공간 속으로 가져다 놓아야만, 언제든지 자신이 원할 때 그것들을 자신 앞에서 현전하게 만들 수 있도록 그 물건들을 아예 소유하고 가지고 있어야만 적성이 풀리는 인간 들이다.

일단 어떤 물건들을 수집하기 시작하면 이제 수집가는 또 다른 하나의 형이상학적 욕구에 의해 이끌린다. 총체성, 완전성에 대한 욕구가 그것이다. 물건들이, 그것이 어떤 물건이든 수집가에 의해 분류되고 범주화되면 그것은 하나의 완전한 체계적 총체성을 지향한다. 분류나 범주화는 곧 그를 통해 하나의 체계를 완성하려는 형이상학적인 총체성 욕구의 출발점이다.3

자신이 수집한 물건의 체계에 무엇인가가 빠져있다는 결핍감은 수집가로 하여금 그 빠져있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채워넣으려는 욕구에 안달하게 한다. 연도별로 수집한 책들 중 빠져 있는 1949년 판과 유럽 모든 국가의 주화모음에서 비어있는 덴마크 주화의 자리는, 그를 바라보는 수집가의 가슴에 휑하니 비어있는 구멍을 만든다. 그리곤 어떻게 해서든 그를 채우고 나서야만 비로소 치유되는 완전성의 결핍이라는 병을 낳는다. 낯과 밤, 하늘과 바다, 나무와 풀, 해와 별, 물고기와 새, 온갖 들짐승들을 지은 신이 천지 창조의 여섯째 날 '자신의 모습을 닮은 인간'을 만듦으로써 창조를 완성했듯이, 수집가는 자신의 수집물에 빠져있는 공백을 채워넣음으로써만 일곱째 날의 안식을 맞이할 수 있다.

수집가에게 있어 물건들은 다만 그 물건 자체의 가치로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수집가에게 그 수집품들은 그 물건들의 과거, 물건들의 역사를 통해 말을 건다. 수집가에게 자신의 수집품들은 그것이 얼마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얼마나 희귀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디에서 생산되었고, 어떤 진귀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등의 그 물건 자체의 기원과 역사뿐 아니라, 그 물건과 수집가와의 관계의 역사, 곧 그 물건을 자신이 어디에서 발견하였으며, 그것을 처음 보았을때의 감격은 어느 정도였는지, 그리고 어떤 힘들고 아슬아슬한 과정을 거쳐 자신의 손에 넣게 되었는지 등의 역사를 통해 더 큰 의미를 갖는다. 그는 보관해둔 자신의 수집품 하나 하나를 다시 꺼내 볼 때마다 그 물건과 자신 사이에 일어났던 과거를 회상하며, 마치 뮤즈 신에 의해 영감에 빠져들듯 그 물건과 자신 사이의 과거가 주는 아우라4에 빠져든다. 그 물건을 구하는 과정에 얽힌 우여곡절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물건이 수집가에게 갖는 아우라는 더 크고 오래 지속될 것이다. 그 물건들을 통해 영감을 받은 수집가가 자신의 물건을 꺼내 바라볼때 '그는 마치 그 물건들을 통해 물건들의 저편을 바라 보고 있는 마법사와도 같다.'5

저 책의 이전 소유자, 애초의 구입가격, 경매장에서의 긴장감, 그리고 처음 그 책을 손에 잡았을 때의 환희 등이 저 책이라는 물건과 더불어 수집가의 진열장에 꽂혀져있다. 책장에서 그 책을 뽑아든 수집가에게 그 책은 자신의 과거들을, 자신의 역사성을 수집가에게 펼쳐보임으로써 수집가를 마법사와 같은 도취에 빠지게 한다. 수집가에게 자신의 수집품들이 갖는 아우라는 그 물건들이 수집가에게 펼쳐보이는 물건들의 역사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관상학자가 사람들의 얼굴 모습만을 보고 그의 과거와 그의 운명을 읽어내듯이 우리의 수집가들은 자신의 수집물을 보면서 그 물건의 과거와 그것의 숙명을 읽어낸다. 그러한 점에서 그들은 벤야민이 말하듯 '물건의 관상학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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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alter Benjamin, Das Passagen-Werk,Shurkamp 1982, Erster Band, S.274

2Walter benjamin, O.g. S.273

3개별적인 것들이 주어져 있을 때 그로부터 존재하지 않는 보편자를 추출해내는 능력인 칸트의 '반성적 판단력'은 현상계에서는 사실상 그에 대해 알 수 없는 가상적 완전성을 이성 이념으로 상정하게 한다. 이미 보편이 알려져 있을 때 개별적인 것들을 그 보편아래 포섭시키는 '규정적 판단력'이 그러한 점에서 존재하는 사물들로 구성되는 하나의 체계를 지향하지만, 우리의 경험을 통해 사실상 인식할수 없는 그 체계의 완전성의 이념은 반성적 판단력을 통해서 요청되는 것이다.

4발터 벤야민의이 말하는 '아우라'가 이처럼 대상이 갖는 역사성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말하는 '복제가 아닌 진품이 갖는 아우라'를 통해서도 설명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진품 모나리자가 우리에게 주는 아우라는, 저 그림 속에 다빈치의 손길과 숨길이 직접 닿았었다는 역사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복제품은 그 그림의 '내용'을 전달해줄 수는 있지만, 그 진품이 갖는 물질적 역사성을 전해주지는 못하며, 그런 점에서 진품이 갖는 아우라를 갖고있지 못하다.

5Walter Benjamin,O.g.S.274/275

6walter benjamin, S.273

7Walter Benjamin,S.274

8Walter Benjamin,S.274/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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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게다가 이렇게 친절한 리뷰까지 달아주신 것에 대해 번역자로써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비록 번역자의 입장이지만, 누군가 그를 읽어주고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마음을 뿌듯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말씀하신 Physiognomie의 번역어에 대해선, 그러나 저는 '관상학'보다는 여전히 '인상학'이란 단어를 고집하고 싶습니다. 그건 한국어 '관상학'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좁은 내포 때문에 그렇습니다. '관상'이란 단어는 '수상' 혹은 '족상' 등과 관련해서 좁은 의미로 주로 '얼굴' 과 관련되어 사용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동아 새국어 사전>에서 "관상"은 "사람의 얼굴 등을 보고 그 사람의 재수나 운명 등을 판단하는 일"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Physiognomie는 말씀하셨던 것처럼 동양에서의 이러한 '관상학'과도 관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미 그 출발부터 그 대상을 '얼굴'로 제한하고 있지지 않았습니다. 철학 역사사전 (historisches Wörterbuch der Philosophie)의 Physiognomie 항목에서는 이 단어가 이미 고대부터 "생물 - 특히 사람에게 있어 그 외적인 지표나 특징들 (얼굴, 표정, 머리형태, 골격, 태도나 제스쳐 등)로부터 영혼의 성격 (능력과 소질, 감정, 기질과 성격, 병과 운명)을 유추해내는 이론"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유럽의 근대 Physiognomie를 확립한 인물인 Johann Caspar Lavater의 주저 Physiognomiesche Fragmente 에서도 Physiognomie는 "한 인간의 외면을 통해 그의 내면을 인식하는 기술" (Stuttgart  1999, 21쪽)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Physiognomie의 대상은 따라서 단지 인간의 "얼굴"에로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직접적인 외양들. 모든 생김새, 윤곽, 모든 수동적이고 능동적인 운동들, 인간 육체의 모든 상태와 자세들 ;  alle unmittelbare Äußerungen des Menschen. Alle Züge, Umrisse, alle passive und active Bewegungen, alle Lagen und Stellungen des menschlichen Körpers" ( 위의 책 22 쪽) 를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지요.

'외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특징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내적인 특성들을 유추해내는' 방법으로써 이러한 Physiognomie에 대한 이해는 발터 벤야민에게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파사지 베르크에서 벤야민이 수집가를 '사물 세계의 Physiognomiker'라고 말할때(Passagen Werk H 2, 7), 수집가가 자신이 수집한 대상물들을 보면서 겉으로는 드러나보이지 않는 그 물건의 '운명'을 마치 "그 물건을 통해 그것의 미래 Ferne를 꿰뚫어보는 마법사처럼" 들여다본다고 말할 때에도 역시 Physiognomie는 위에서 말한 넓은 의미로 이해되고 있다고 봅니다.

Physiognomie가 이처럼 눈에 드러나 보이는 외적인 모습을 통해 보여지 않는 내적인 무엇인가를 간파해내는 기술 (혹은 방법)이라고 한다면, 제 생각에 이는 "관상학"이라는 좁은 의미보다는 사람과 사물, 나아가 도시와 풍경 들이 주는 전체적인 외적 인상을 1차적인 대상으로 갖는다는 점에서 "인상학"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관상학"이라는 단어를 단지 '얼굴'에만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대상의 인상 전체와 관련하는 의미로 이해해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관상학'이라는 단어가 갖는 기존의 의미 연상이 아직 너무 강하다는 느낌을 버릴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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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jami

 

 

벤야민, 하이데거, 카프카.

 

이름만으로도 우리에게 유명한 이 세 명의 독일인들이 한 때 동일한 시간, 동일한 공간 속에서 살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어떤 신비로운 감정을 느끼게한다. 마치 플라톤과 비트겐스타인이 우연히 동네 비디오 방에서 만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갖게 될 그런 감정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그들의 저작만으로도 충분히 우릴 주눅들게 하는 저 세 명의 철학자와 문학자들은 같은 시대를 공유했던 동시대인들이었다. 이들은 서로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지만, 이 세 명의 삶의 괘적은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에서처럼 이곳 저곳에서 서로 엇갈리며 교차하고 있었다.

1892년 베를린에서 태어나 1940년 스페인 국경에서 자살한 발터 벤야민과 1889년 태어나 1976년 프라이부르크에서 사망한 마틴 하이데거 사이에는 삼년의 나이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12년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철학 공부를 시작한 벤야민은 그 해 여름학기 철학과에서 개설된 리케르트 Rickert 교수의 „인식론과 형이상학 입문“ 강의를 수강한다. 벤야민 보다 조금 먼저 같은 대학 철학과에서 공부하던 마틴 하이데거 역시 같은 학기 리케르트 교수의 이 강좌를 수강하였다. 말하자면 발터 벤야민과 마틴 하이데거는 1912년 여름학기 같은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들었었다는 말이다. 이제 막 철학공부를 시작한 벤야민과 아직 박사과정 중이던 하이데거가 서로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구나 그 강좌의 수강생은 100명이 넘었다. (Autenthalte und Passagen, Leben und Werk Walter Benjamins, Willem van Reijen und Herman van Doorn, 2001, 25 쪽)

 


hrd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각자의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게 될 두 명의 철학자가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한 채 1912년 여름 같은 강의실에 앉아 함께 수업을 들었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어쩌면 하이데거는 그 수업 중 당시 형이상학 이론의 대가였던 리케르트 교수에게 날카로운 철학적 질문을 던졌을 것이고, 그 질문은 이제 막 철학 공부를 시작했던 그 강의실의 수강생 벤야민의 철학적 사유에 자극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당시 이미 프라이브르크 대학에서 '청년운동'에 연계되어 있었던 벤야민이 저명한 철학교수에게 대학개혁에 관한 비판적 문제제기를 했을 것이고, 이것이 학구적 철학도 하이데거의 눈에 거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둘은 어쩌면 서로를 알지 못한 채 바로 옆자리에 앉아 눈인사를 나누었을지도 모른다.

 


 

1883년 태어난 프란츠 카프카는 1924년 비인의 요양소에서 사망하기 불과 몇달 전까지, 그러니까 1923년 9월부터 1924년 3월까지 그의 여자 친구인 도k라 디아만트 Dora Diamant 와 함께 베를린에 살았다. 벤야민은 1915년 카프카의 작품을 처음 접했고 이후 그의 작품을 통해 받은 깊은 인상을 1934년 그가 죽은지 10주기를 기해 카프카에 대한 글을 써 남기기도 했다. 프란츠 카프카가 베를린에 살았던 이 기간 동안, 프랑크프르트에서 다시 베를린으로 올라온 발터 벤야민은 1923년 11월부터 1924년 4월 카프리로 여행을 떠날때 까지 계속 베를린에 머무른다. (Autenthalte und Passagen, Leben und Werk Walter Benjamins, Willem van Reijen und Herman van Doorn, 2001, 86/87쪽)

 당시 카프카가 여자 친구와 함께 살던 미쿠엘 가 8번지와 벤야민이 머물렀었던 그의 아버지 집 델브뤽 가 23번지는 걸어서 8분 정도 거리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Bucklicht Männlein und Engel der Geschichte : Walter Benjamin. Theoretiker der Moderne, Ausstellung des Werkbund-Archivs im Martin-Gropius-Bau in Berlin, 28.Dezember 1990 bis 28.April 1991, 1990)

어쩌면 그 사이 벤야민은 집에 오가는 도중 폐렴에 걸린 가슴을 움켜잡고 쿨럭거리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던 한 명의 수척하고 창백한 병자를 목격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카프카는 어느날 산책길에서 삼층짜리 저택으로 들어가던, 말끔한 복장의 한 부르조아 지식인을,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늘 우수에 어려있는 그의 눈동자를 마주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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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4-02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글입니다!!

김남시 2005-04-02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글이 멋지다기 보다는, 이 글을 낳게했던 저 세명의 삶의 좌표들이 그렇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