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통해 시간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 곧 서사를 재현하는 이러한 두가지 방식은 그런데, 서양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의 옛 그림들에서도 서사를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두가지 방식을 모두 발견할 수 있다.

 

전체 서사 중 중요한 한 장면만을 뽑아 그려 전체 서사를 대표하고 상기시키는 방법을 우리는 1797년 발행된 필사 채색본 <오륜 행실도>에 실려있는 « 맹희득금 »이란 그림에서 본다.  « 맹희득금 »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지닌 서사다. « 촉나라의 맹희는 비록 가난하지만 부모님을 지극으로 모시고 살았다. 그는 과일을 팔아 아버지를 부양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거적을 깔고 상을 지냈다. 그때 맹희가 있던 자리에 쥐가 땅을 파내려 갔는데 그 곳에서 황금 수만냥이 나왔다. « 이 그림은 저 서사 중 맹희가 아직 살아계신 아버지를 모시며 과일을 팔러가는 장면을 그리고 있는데, 이를통해 이 그림은 전체 서사를 상기시키면서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맹희의 지극한 태도와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이보다 거의 300여 년 앞서 1431년 세종의 명으로 출판된 <삼강행실도>에서 우리는 서사의 시각적 재현의 또 다른 방식, 곧 서로 다른 시간에 일어난 사건들을 동일한 공간 속에 배치시키는 방법이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삼강행실도>에 등장하는 황향선침 ‘, « 황향이 베게에 부채질하다 »라는 제목의 그림은 동한시대 황향의 부모에 대한 효도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우리는 주인공 황향이 한 그림에 세 번 동시에 등장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서양의 그것과는 다르게 여기선 주인공 옆에 친절하게 그의 이름을 붙여 놓았는데, 그를통해 그림 속에선 여러번 등장하는 인물들이 사실상 황향이라는 한 인물임을 알려주고 있다. 왜 이렇게 이름을 붙여 놓아야 했을까? 그렇지 않았다면 저 동일한 공간 -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서로 다른 인물인 걸로 혼동될까봐? 그렇다면 15세기의 한국인들은 20세기 이후나 등장했던 사진적 재현, 한 그림은 그것이 보여진 (화가 혹은 사진사에 의해) 순간 그 공간에 함께 존재하던 대상과 인물들을 재현하는 것이라는 근대적 시각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한 공간에 서로 다른 시간을 동시에 배치하는 이런 재현 방식이 그들에겐 같은 시기의 유럽인들만큼 익숙한 것이 아니였기 때문일까?

 

 

 

 

 

 

 

 

 

 

 

 

 

 

 

 

 

 

 

 

 

 

 

 

 

 

 

 

 

 

 

 

 

 

 

 

 

 

또 하나 흥미로운 건 이 그림에서 시간이 어떤 시각적 질서에 따라 표현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위 세 명의 황향 중 누가 시간적으로 먼저이고 누가 나중인지가 어떤 규칙에 따라 재현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를 알기 위해선 이 그림이 전하고 있는 서사의 구조를 확인해야 한다. « 동한 때의 황향은 이미 나이 9살 때 어버이 섬기는 도리를 깨달았다. 무더운 여름날에는 아버님의 침석을 부채질하여 모기를 쫓고 잠자리를 시원하게 하여 편안히 주무실 수 있게 하였으며, 추운 겨울에는 아버지의 베게, 이불, 요를 자기 몸의 체온으로 따뜻하게 하여 아버지가 따뜻한 잠자리에서 주무실 수 있도록 해 드리니 그 이름이 임금의 궁성에 까지 알려졌다이에 의하면 위 그림 가장 아래 쪽엔 9살때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신 앞에 꿇어앉아 예를 표하고 있는 - 다른 기록에 의하면 « 황향은 9살에 어머님을 여위고 아버지만을 모시고 살았다 »고 되어있다. - 황향을, 그 위 중간은 여름에 아버지의 침석에 부채질하는 황향을, 그리고 그 위엔 겨울에 아버지의 잠자리를 따뜻하게 하는 황향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림 속에서 서사의 시간적 순서는 아래에서 부터 위를 향하는 공간적 질서를 통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공간적 질서가 모든 그림들에 다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유럽 회화들에서도 « 왼쪽에서 오른쪽 », 그리고 « 아래쪽에서 위»로 향하는 시간의 공간적 시각화의 기본 원리는 화가들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어 사용되었다. 그건 화가가 자신이 재현하는 서사의 어떤 부분을 부각하고 싶은지, 어떤 주제와 내용을 강조하고 싶은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옛 그림들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우리는 이를 1617년 광해군의 명에 따라 편찬된 <동국신속삼강행실도>의 그림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금이 왜적을 치다 >라는 제목의 이 그림에서도 주인공 최금이 두번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서로 다른 시간에 일어났던 사건을 한 공간 속에서 표현하는 서사의 재현방식을 따랐기 때문이다. « 양민여자 최금은정유란에 그 지아비를 따라 두 아들을 거느리고 산중으로 왜적을 피하였는데, 왜적이 갑자기 이르러 지아비와 두 아들을 죽이거늘 최금이 돌을 가지고 돌진하여 왜적 하나를 죽이고 살해당했다. (그래서) 임금께서 정문을 내리셨다. »는 서사를 이 그림은, 파격적인 공간적 질서를 통해 재현하고 있는데, 그건 저 그림에 등장하는 사건의 시간적 순서가 아래에서 위로가 아니라,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그리고 다시 오른쪽 아래라는 지그 재그식질서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통해 산 속에서 마주친 왜구와의 싸움이 갖는 긴장감과 격렬한 운동이 시선의 공간적 이동을 통해 부각되는 효과를 갖는다. 흥미로운건, 최금의 용감한 행실을 치하하기 위해 임금이 내린 정문이 그림의 가장 위쪽 중앙에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시간상 가장 나중에 일어난 사건을 그림의 가장 위쪽에 그리는 전통적 공간 질서를 따르고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이를통해 이 서사 전체를 통해 보여주려는 메시지, , «장한 행동에 대한 보상»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같은 책에 실린 <이보가 손가락을 자르다>라는 제목의 서사에서도 마찬가지다.

 



 

 

 

 

 

 

 

 

 

 

 

 

 

 

 

 

 

 

 

 

 

 

 

 

 

 

 

 

 

 

 

 

 

« 이보는 용안현 사람이나 그 아버지 태방이 고치기 힘든 병을 얻어 거의 죽게되니 구완하여 치료해도 효험이 없어 밤낮으로 울고 있는데, 꿈에 어떤 중이 일러 말하되 산 사람의 뼈를 먹으면 나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이보가 즉시 놀라서 깨어 손가락을 베어 약을 드리니 아버지의 병이 즉시 나았다 » 이 그림 속에서 두번 등장하는 이보의 행적은 그림 중앙에서 부터 시작하는데, 그건 이보가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안간힘쓰며 괴로와하고 있는 장면이다. 잠깐 조는 사이에 꿈 속에서서 나타난 중 현실이 아닌 꿈 속의 인물임을 강조하기 위해 구름을 타고 있는 이 그 다음의 시간적 순서에 해당된다면, 그의 왼쪽 아래서 손가락 피를 짜내고 있는 이보는 시간적으로 가장 마지막에 해당되는 장면이다. 역시 이 그림에서도 강조되고 있는 것은 아버지의 병 구완을 위한 이보의 노력   그건 자기 손가락을 베는 장면에서 절정에 달한다. – 이다. 이보의 아버지가 병이 나은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이 그림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가 – <행실도 >에 실린 다른 일화들과 마찬가지로 - 효도의 세속적, 현실적 « 효과 »가 아니라 지극한 효도 행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미 한국 그림의 역사 속에서 엄연히 존재했었던, 그림에 시간을 담아내려는 시도들은 유감스럽게도 한국 미술사에서 예술적 재현의 새로운 방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는 어쩌면 외재적인 근대화의 논리와 더불어 수입된 편협하고 나이브한 리얼리즘에의 강박이 저 옛 그림들에 표현되어 있던 풍부한 시각적 재현의 시도들을, 다른 모든 전통적 가치들과 더불어, 원시적이고 비 과학적인 것으로 싸잡아 폐기함으로써 생겨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를통해 우린, 이후 유럽 미술의 역사 속에선 다채로운 시각적 재현의 방식들로 발전되어 온 시간의 시각화의 단초들을 잃어버린 것이다.

 

시시각각 운동하는 시간적 변화들을 한 평면에 동시에 배치함으로써 시간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려던 시도들이 이후 유럽 미술사에서 어떤 모습으로 이어졌는가를 우리는 20세기 이후의 현대 미술에서 발견한다.

 


 

 

 

 

 

 

 

 

 

 

 

 

 

 

 

 

 

 

 


 

 

 

 

 

 

 

1912년 마르셀 뒤샹이 발표한 그림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 No.2>는 화가가 바라본 순간 저 계단에 존재하고 있던 서로 다른 여러 피규어들을 그린 것이 아니다. 이 그림은 서로 다른 시간에 걸쳐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동일한 한 명의 벌거벗은 사람을 그림의 동일한 공간 속에 동시에 배치함으로써 생겨난 것이다. 시간과 운동을 시각적으로 재현하고 있는 이 그림이 이전 시대의 그림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서로 다른 시간에 존재했던 동일인물의 다른 모습들을 좀 더 집약적인 공간에 집중시켜 놓았다는 것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예술은 시간을 어떻게 표현할까. 언어로 이루어지는 예술, 곧 문학의 경우 이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 있다. 그건 말이나 글을 사용하는데 이미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말이나 글이 가진 시간성은 그를 그림과 비교해 보면 가장 분명히 드러난다. 사과를 그린 그림을 보고 그것이 사과라는 걸 알아보는데는 일초도 걸리지 않지만 사과를 묘사하는 말이나 글을 통해 그 모습을 떠올리기까지는 그를 듣거나 읽어 이해하고, 그를 머리 속에서 그림으로 변환시키는 시간이 소요된다. 한 장의 그림을 통해서라면 금방 전달할 수 있는 장면을 말이나 글로 묘사하려면 시간이 걸리며, 이는 그 묘사를 듣거나 읽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다른 한편 바로 이런 특성으로 인해 언어는 시간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행위를 묘사하는데 그림보다 더 큰 장점을 갖는다. 그림이 사건의 경과나 행위들을 다만 그 중 특정한 한 장면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데 반해 시간성을 특성으로 갖는 언어는 사건의 경과나 행위를 묘사하는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달리고 있는 말이나 날아가는 새, 사건의 경과 혹은 전쟁 등을 소재로 한 그림은 실제로는 계속 움직이는 그 대상들의 한 모습과 장면만을 포착해 표현할 수 밖에 없지만, 언어는 이들의 사건과 운동을 모두 전달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라오콘>을 통해 레싱은 시와 회화의 우열을 둘러싼 논쟁에서 시의 편을 든다. 그에 의하면, 회화는 운동하는 대상으로부터 시간을 제거하여 그를 특정한 순간으로 고정시켜 공간화시킨 예술이다. 이를통해 원래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대상들은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그림의 공간 속에 고정되어 표현된다. 운동이 살아있는 것,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의 본질적 속성이라면 회화는 이런 의미에서 운동하는 것의 세계, 곧 정신적의 것의 세계에 참여하지 못한다[1]는 것이다.

 

하지만 그림이라는 매체가 갖고 있는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림은 지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그것도 훌륭하게 시간을 표현해왔다. 시간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 곧 서사는 호머 이래 시와 소설 뿐 아니라 회화의 주요 대상이기도 했으며, 회화가 정물과 풍경 등의 고정된 대상을 묘사하기 시작한 건 2,500 년 서양 미술의 역사에서 보면 오히려 짧은 기간에 불과하다. 매체의 특성상 비 시간적일 수 밖에 없는 그림이 도대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서사를 표현해 왔을까? 그를위해 그림은 어떤 장치와 질서, 표현방식을 발전시켜 왔을까?          

 

그림이 서사를 표현하는데는 전통적으로 크게 두가지 방식이 있었다. 첫째는 표현하고자 하는 전체 서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한 장면을 그리는 것이다. 신약전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일생이라는 서사 중에서 아기 예수의 탄생“, „최후의 만찬“,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피에타“, „예수의 부활등의 장면을 그린 그림들은 저 길고도 드라마틱한 서사 중 그것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택된 하나의 장면은 그를통해 그 그림을 그린 (혹은 위탁한) 사람들이 무엇을 저 전체 서사의 핵심으로 여기고 있는가를 보여주며, 나아가 그 서사 전체를, 위의 경우엔 예수의 생애 전체를 상기시켜 주는 촉매적 (일종의 Mnemographie!) 역할을 한다.

 

서사 속의 한 특정한 한 장면이 이처럼 서사 전체를 대변하는 일이 반복될수록 그 장면은 점차 서사 전체를 지시하고 암시하는 상징이자 알레고리로 일반화된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림이 단지 일회적이고 역사적인 그 사건 자체의 재현이 아니라 신약전서 전체의 메시지 - 인류의 죄를 대속해 인간을 구원하는 신의 아들 의미하는 기호가 되고, 아기 예수를 안고있는 마리아 그림이 특정한 종교적 인물 마리아와 예수 에 대한 묘사를 넘어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Caritas적 사랑과 구원을 상징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처럼 벌거벗은 비너스 그림이 아름다움의 알레고리로, 뱀이악과 불신의 상징으로, 턱을 괴고있는 사람이 멜랑코리의 알레고리로 자리잡게 되면, 이는 이후의 많은 다른 예술적 실천들 속에서도 일반적이고 보편적 기호로 등장하게 된다.[2]

 

그림을 통해 서사를 표현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그림의 동일한 공간 속에 서로 다른 시간에 일어난 사건들을 함께 배치해 넣는 것인데 이는 거의 18세기 초까지 시간의 시각적 재현의 방법으로 꾸준히 사용되어 왔다.  1416 Bruder von Limburg 가 그린 <에덴동산>은 이러한 방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화가는 이 한 장의 그림 속에서 서사 전체를 이루는, 서로 다른 시간에 걸쳐 일어났던 사건들을 동시에 배치하고 있는데, 여기선 신이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고, 이브가 뱀의 유혹을 받아 금지된 나무 열매를 따 아담과 나누어 먹고, 그로인해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는 장면들이 모두 한 공간 속에 그려져 있다.

 

 

 

 

 

 

 

 

 

 

 

 

 

 

 

 

 

 

 

서로 다른 시간에 일어난 사건들을 동일 공간 속에 배치해 그 사건들로 이루어진 전체 서사를 표현하는 이러한 재현 방식은, 서로 다른 시간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걸 허용치 않는 사진의 재현에 익숙해 있는 우리에겐 낯설게 느껴진다. 우린 그림 속에 그려져 있는 사람과 대상들이, 마치 사진을 볼 때 처럼 사진을 찍은 바로 그 순간에 함께 존재하고 있던 것으로 인지하며, 그를통해 저 그림 속에 네 명의 이브와 세 명의 아담이 같은 순간에 동일한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고 느껴 이를 모순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각적 재현이 카메라를 통해 시간적 동시성의 요구를 충족 – 순간포착! - 시키게 된 것은 사진이 발명되고 나서도 한참 후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초기의 카메라는 한 장면을 잡아내기 위해 몇 시간에 걸친 노출과 감광 시간을 필요로 했었고, 그를통해 만들어진 사진엔 ‚순간’이 아니라 그렇게 노출된 만큼의 긴 시간이 찍혀져 있었다. (1827년 Nicéphore Niepce 가 자신의 거실 창밖을 촬영한 최초의 사진은 8시간의 노출을 필요로 했다![1])

1530Lucas Cranach (the elder) 가 그린 <파라다이스>에서도 한 공간 속에 서로 다른 시간의 사건들이 공존하고 있다. 신이 흙으로 아담을 빚어내는 장면부터 그의 옆구리에서 이브를 뽑아내는모습, 금지된 열매를 따먹고 난 아담과 이브가 신의 노한 목소리를 피해 숨어있는 장면들이 Limburg의 그림에 더 추가되어 있다. 이를통해 이 그림은 Limburg의 그것보다 더 상세하고 친절하게 에덴 동산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나 소설이 그저 일어났던 사건들을 시간순서에 따라 기계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서술을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사건의 순서를 바꾸거나 특정 장면들을 강조하듯, 그림 또한 화가의 재량에 따라 일어났던 사건들의 순서를 재배치하거나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사건을 부각시킴으로써 서사의 시각적 재현을 다채롭게 한다. 이 그림에서 화가는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서사 가운데 신이 아담과 이브에게 계율을 전하는 장면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 정면에 배치하고 있는데, 이를통해 화가는 신으로 부터 받은 계율의 중요성을 저 에덴동산에서 일어났던 서사의 핵심 주제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위 두 그림에선 그래도 그림의 공간 속에, 동일한 시간이 아닌 서로 다른 시간들이 공존한다는 걸 알아보기가 쉬운 편이다. 그건 에덴동산이라는 제한된 공간과 거기 등장하는 인물들이 결국 아담과 이브, 그리고 신, 이 셋 뿐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아직 생겨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림 속의 여러 등장 인물들이 결국 모두 서로 다른 시간의 아담과 이브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이 번식과 번창을 거듭하는 동안 이 땅엔 수많은 아담의 후손들이 생겼고 또 그들이 이전보다 훨씬 더 복잡한 사건들에 연루되게 되면서, 이제 그림을 통한 서사의 표현도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게 되었다. 이런 복잡한 서사를 표현한 그림들에선 한 공간 속에 공존하는 서로 다른 시간을 확인하기가 쉽지않다.

 

1470 Hans Memling이 그린 <Passion Christi> 를 익숙해 있는 사진적 재현 방식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 저 군중들이 마치 같은 순간에 저 성벽 도시 안 팎에 운집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 그림은 도시 주변의 모습을 한 순간에  포착한 풍경화가 아니라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행적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서사화라는 걸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성전에서 쫓겨나는 상인들, 유대인들의 모의, 최후의 만찬, 유다의 배반, 예수의 체포, 대제사장의 사형판결, 십자가 행진, 골고다 언덕에서의 십자가 형, 예수의 죽음과 그의 부활까지, 소위 고난주간이라 일컫는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 간의 삶들을 예루살렘이라는 한 공간을 중심으로 절묘하게 배치함으로써 여기서 표현되고 있는 사건의 경과를 그림을 바라보는 시선의 이동을 통해 함께 체험할 수 있게 한다. 우린 그림의 왼쪽 위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다시 왼쪽으로 이어지는, 마치 책을 읽을 때와 같은 시선 이동을 통해 예수가 체포될 때 까지 사건의 전개를 읽는데“, 그 사건의 긴장감은 이어 도시의 중심이자 그림의 한 가운데에서 이루어지는 대제사장의 사형판결을 통해 절정에 달한다. 그 후 시선은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의 걸음을 쫓아 성벽을 오른쪽으로 돌아 저 위 쪽의 언덕을 향해 가면서 이전에 일어났던 모든 시간적 사건들을 다시한번 공간적으로 조망하게 된다. 그림의 왼쪽 위,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과 대응점을 이루는 오른쪽 끝에서 부활해 승천하는 예수의 모습은 이 전체 서사의 결말이자 마침표인 셈이다.

 

근대까지 서양미술의 큰 쟝르를 차지하는 순교 성인들을 그린 그림들은, 이처럼 그림 속에 공간화되어 존재하는 서로 다른 시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다. 그건 바로 순교자라는 단어 자체가 시간성과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순교자는 특정 종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다. 그들이 순교자로 불리는 건 그들이 죽었기때문이다. 누군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그는 아직 순교자가 아니다. 바로 이 때문에, 크리스트교 신앙의 확산에 부인할 수 없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들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는, 그를 말이나 글로 전할 때는 없던 표현의 문제가 생긴다. 도대체 순교자와 그들의 순교 행위를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할 것인가? 이들을 아직 순교하기 전, 말하자면 죽기 전의 모습대로 그린다면 이는 순교자 그림이 아니라 다만 특정 인물들의 초상화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죽은, 그래서 비로소 순교자가 된 이들의 시체를 그림으로 그려, 누구 누구 순교자라는 제목을 붙여 보여줄 수만도 없다. 그건 시체 보관소의 시체들을 상기시킬 것이다. 이 난점을 해소하기 위해 서양 회화가 택한 방법은 이들 순교자들을 아직 살아 있으면서도 이미 순교자인 상태로, 말하자면 아직 죽지 않았으면서도 이미 죽어 순교자가 된 상태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를위해, 그림은 위에서 언급했던 서사의 시각적 재현의 원리를 따라, 죽기 전의 순교자와 죽은 순교자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적 간극을 한 그림 속에 동시에 공존시켜 표현하게 되었다. 

 

이 대표적인 사례를 우리는 1416 Henri Bellechose가 그린 <데니스 성인의 순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그림에서 주인공 Denis성인은 총 네 번 등장한다. 왼쪽 아직 감옥에 갖혀있을 때의 그의 모습과 오른쪽 끝, 붙들려와 사형을 기다리는 모습, 그리고 형틀에 댄 목이 반쯤 잘려나간 모습, 마지막으로 완전히 목이 잘려 바닥에 누워있는 모습이 그것이다. 우린 이제 이 네 명의 데니스가 동일한 인물이 서로 다른 시간에 겪어야 했던 사건들을 공간적으로 시각화시킨 것이라는 걸 안다. 흥미로운 사실은 감옥에 갇혀있던 데니스에게선 보이지 않던 성인을 상징하는 후광이 사형을 기다리는 데니스에게서부터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목 잘리기를 기다리고 있던 순간의 데니스는 아직 죽지 않았건만, 그에겐 이미 순교자로서의, 말하자면 종교를 위해 죽은성인으로서의 지위가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시간에 일어난, 그러나 한 그림 안에 동시적으로 표현된 사건들 사이의 이러한 시간적 간극은 성인과 사형수 사이에서도 발견되는데, 아직 사형 집행인이 칼을 내려치지도 않았는데 데니스 성인의 목은 이미 반쯤 잘려 나갔고, 또 한 명의 데니스는 아예 목이 잘린 채 뒹굴고 있다. 화가는, 사형 집행인이 칼을 들어올리고, 사형수의 목이 잘리며, 잘린 목이 바닥에 나 뒹구는, 단두형의 가장 극적인 순간의 장면들을 동시에 배치함으로써, 움직이지 않는 그림들을 통해 움직이는 시간의 생생함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1653 Guercino가 그린 <카트린 성인의 순교> 1628년 니콜라스 푸쎙이 그린 <에라스무스 성인의 순교>에서도 그외 대부분의 순교성인 그림들에서도 마찬가지로 -  우리는 이러한 살아있는, 그래서, 아직 순교자가 아닌 인물들을, 이들이 죽고 나서야 비로소 차지하게 될 순교자라는 지위로 표현하기 위한 화가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그림 속의 카트린과 에라스무스는 아직 죽지 않았건만, 저 하늘 위에선 푸토가 이미 순교자를 상징하는 월계관과 야자수 가지를 든 채 이들이 죽어 순교자가 되기를 기다리고있다. 그림 속에서 고문 당하며 죽음을 기다리는 성인들이 그들의 « 현재 »를 보여준다면, 저 푸토들은 이 그림엔 그려있지 않은 않은 이들의 순교자 성인으로서의 « 미래 »를 대변하고 있다. 이를통해 이 그림들 역시 서로 다른 시간에 일어난 사건들을 한 그림 속에 공존시킴으로써 그 사이의 시간 속에서 일어난 하나의 서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1] G.E. Lesseing : Laokoon, Reclam, XVI.

[2] Vgl. Carsten-Peter Warncke : Sprechende Bilder – sichtbare Worte. Das Bildverständnis in der frühen Neuzeit, Wiesbaden 198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앙시엥레짐의 중세적 유산과 깊이 연루되어 있던 형벌 및 처형제도를 인간적이고 근대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길로틴에 의해 제안된 길로틴이 갖는 문화적, 정치적, 나아가 심리적 의미를 탁월하게 분석하고 있는 책.

몸둥이를 찟어 죽이거나, 형리에 의해 도끼나 칼로 목이 내려치거나, 화형시키거나, 아니면 목을 매달아 죽였던 이전 시대의 형벌들이, 푸코가 지적했듯이, 형리와 사형수 간의 ‚싸움’의 장으로, 그 속에서 사형수라는 개인의 개성과 삶을 향한 충동과 혹은 그에 대한 신의 은총등이 드러날수 밖에 없었던 개별성의 발현의 장으로 받아들여졌다면, 이제 단 몇초 만에 몸뚱이와 머리를 잘라내 버리는 ‚기계’ 길로틴은, 사형수의 개체성을 사형이라는 국가적 메카니즘의 작동 속에서 하나의 형법적 기능으로 만들어버렸다.

살이 찟기고, 피가튀고, 살갗이 불태워지거나 벗겨지는 카니발적 광경에 열광했던 중세의 유럽인들은 이제, 권력의 정치적 상징이 된 길로틴을 통해 익명성으로 화해버리는 혁명의 반역자들을 하나의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내게 관심을 끄는 것은 길로틴이 지니고 있던 정치적 성격보다 오히려 공개 처형이 보여주고 있었던 미학적 효과다.

죄를 속죄하게 하는 육체적 고통과 그를 통해 도달하게 되는 죽음이 극적으로 몇시간 내에 펼쳐저보여지는 무대로서의 공개처형은, 당연하게도 죄의 댓가에 대한 본보기로서의 교육적 효과를 노리고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길로틴을 통해 단 몇초만에 '끝나'버리는 공개처향은 본보기로서의 공개처향이라는 제도 자체의 유의성을 상실시키고, 급기야 비공개처형 제도를 불러일으키는 발단이 되었다.

육체에 대한 즉물적, 카니발적, 패티시즘적 집착은 유럽에서 육체에 대한 이들의 태도와 관련이 있다. 찟기고, 불태우고, 자르고, 벗기고, 뚫고, 동강내는 육체의 이미지가 이들에게는 결코 낯설지 않을 것이다. 다른 글(육체와 신성)에서도 지적했듯이, 유럽인들은 이미 이러한 육체적 패티시즘에 지극히 익숙해있었다.  

조선에서의 공개처형은 어떻게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 장면은 어떻게 연출되고,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그것은 어떤 종교적 혹은 전통적 믿음과 결부되어 있으며, 어떻게 그 믿음을 강화 혹은 변화시켰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분석의 논리는 대화의 논리와 구분되어야 한다. 분석이 대상의 표면적 외관을 뚫고 들어가

 그 대상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심층과 무의식 까지를 밝혀내어야 하는 것이라면,

 구체적인 상대와의 대화나 논쟁은, 그의 진술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감추어진 이해관계,

 무의식적 욕구와 권력에의 의지를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더불어 '강제없는,

 자발적 동의'에 도달하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와 대화나 논쟁을 벌이는 상대의 진술 Mitteilung의 배후를, 그 진술의 외면 속에

 감추어져 있을 무의식적 욕구를, 권력에의 의지와 계급적 이해 관계를 '들여다보려'는 순간,

상대는 더 이상 우리에게 대화의 상대자가 아니라, 우리가 분석하는 대상 Objekt 으로

사물화되고, 낯설어 entfremdet 진다.

 

Sloterdijk 이 지적하듯, 그를통해 낯설고 사물화된 상대와의 논쟁은 더 이상 계몽과 비판의

본래적 이상이었던 '자발적 동의'의 이념을 좇지 않는다. 무의식적 욕망, 계급적 혹은 

물질적 대립, 맹목적인 권력에의 의지로 환원되어버린 상대와의 논쟁은 이제,

더 이상 언어적 논쟁과 대화를 통해선 해소될 수 없는 욕망과 이해 관계와 힘의 대립으로

변하며,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이 중요한 것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대화와 비판, 논쟁의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선,

상대가 자신의 진술로 제기 mitteilen 하지 않은 모든 진술 외적 의미들 Signifikation 을 

상대의 제기된 '진술'과 구분할 줄 아는 날카로운 참을성이 필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스푸트니크의 연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정환 옮김 / 자유문학사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에서 부쳤던 책들이 도착, 읽었다. 무라까미 하루끼의 최근 소설 스푸트니크의 연인과 호머의 오디세이아, 68년 격동의 세계사를 정리한 1968년, 책 그림책이 그것이다.

   하루끼 소설이 내게 갖는 매력은 여전하지만, 웬지 그의 소설이 기반하고 있는 저 상류층 생활의 지반이 날 꺼림직하게 한다. 분노, 울분, 저주, 앙갚음 등을 알지 못하는 하루끼 소설의 주인공들은 그래서 깔끔하고, 가볍게 삶을 살며 예민한 감성이 느낄 수 있는 미세한 감정과 삶의 결들을 호소한다.

그 깔끔함, 그 낯선 그러나 낯익은 거리감, 그로부터 생겨나는 삶에 대한 관조적 태도, 감정에 따라 살면서도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포자기 하지는 않는 저 주인공들의 일상적 견고함, 칸트와 혁명을 비틀즈나 스파게티처럼 들먹일 수 있는 자유로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아무런 장애도 없는 그들의 경제적 기반, 그 특권감...

기묘한 사랑과 충동적 감정, 무해한 방황과 멋진 여행 등으로 이루어져있는 그들의 삶엔, 노동의 피로, 권력으로부터의 피해, 가진 자에 대한 박탈감, 생존을 위한 노고, 그로부터 생겨날 피해의식 등이 깔끔히 씻겨져있다. 그의 소설이 내 속에서 울리는 감흥엔 그래서 무언가 꺼림직한 것이 있다. 

  

나의 이러한 생각은 어쩌면 하루끼 다음에 읽었던 {1968년}으로부터 기인한 것일 확률이 크다. 왜 억압과 차별, 저항과 진압의 이야기들은 언제나 나를 흥분시키는 것일까. 1968년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졌던, 단지 지리적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미국의 베트남 침공을 통해 불러내어진 저 전세계적 혁명의 분위기를 이 책은 연대기적으로, 그러나 생생하게,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그려내고 있다.

베트남에 퍼부었던 미국의 저 엄청난 폭탄들만큼이나 전 세계에서 흑인과 여성, 학생과 노동자, 민중들을 향해 내리꽂혔던 지배와 학정의 치밀한 잔인함, 그에 대한 저항, 폭력적인 진압, 이데올로기, 죽임... 세계가 아직 미래를 향해 꿈틀거리고 있을 때, 그들이 아직 혁명의 희망을 가지고 있을 때, 그리고 그 혁명을 그들의 삶과 투쟁 속에서 실현시키려 하고 있을 때...

"우리가 우리의 집단적 자아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전망에 쏟아 부을 수 있었을 때 우리는 행복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세계의 억압받는 사람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을 위해 그럴 수 있었을 때 말이다. 우리는 그러한 희망을 통해 무엇을 먼저 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했다. 우리의 행복은 달콤한 행복이나 황홀경이 아니라 인간의 대의를 향상시킬 수 있다면 위험을 무릅쓰거나 자기 자신의 삶도 희생할 수 있는 행복이다."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느꼈을 때 난 기뻤는가? 난 안다. 집회와 가두 투쟁의 무질서, 혼잡스러움, 제어되지 않는 무분별과 발산되는 유치함을. 그 속에서 난 피로했으며, 이것이 진정 혁명의 진실인가하고 회의했었다. 그럼에도 내겐 저 무질서, 저 피로함, 저 유치함, 저 열정이 보여주는 피 빛 혼란에 두근거리는 가슴이 남아있다. 베트남 민중들에게, 시위대에게, 학생들에게 내리쳐졌던 총탄과 최루탄, 폭력적 진압의 섬뜩함에 치를 떠는 분노가 남아있다.

이 '낡은 감정'들은 도대체 무엇을 어디를 향해있는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드무비 2006-02-07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무질서, 저 피로함, 저 유치함, 저 열정이 보여주는 핏빛 혼란에
두근거리는 가슴이 남아있다.

저도요.


딸기 2006-05-25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헷 남시오빠다아아아아

김남시 2006-05-25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하하, 그래 나 다아아아아!!!

딸기 2006-05-27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빠 방가방가 *^^*
언제 함 안 오나요, 서울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