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시엥레짐의 중세적 유산과 깊이 연루되어 있던 형벌 및 처형제도를 인간적이고 근대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길로틴에 의해 제안된 길로틴이 갖는 문화적, 정치적, 나아가 심리적 의미를 탁월하게 분석하고 있는 책.

몸둥이를 찟어 죽이거나, 형리에 의해 도끼나 칼로 목이 내려치거나, 화형시키거나, 아니면 목을 매달아 죽였던 이전 시대의 형벌들이, 푸코가 지적했듯이, 형리와 사형수 간의 ‚싸움’의 장으로, 그 속에서 사형수라는 개인의 개성과 삶을 향한 충동과 혹은 그에 대한 신의 은총등이 드러날수 밖에 없었던 개별성의 발현의 장으로 받아들여졌다면, 이제 단 몇초 만에 몸뚱이와 머리를 잘라내 버리는 ‚기계’ 길로틴은, 사형수의 개체성을 사형이라는 국가적 메카니즘의 작동 속에서 하나의 형법적 기능으로 만들어버렸다.

살이 찟기고, 피가튀고, 살갗이 불태워지거나 벗겨지는 카니발적 광경에 열광했던 중세의 유럽인들은 이제, 권력의 정치적 상징이 된 길로틴을 통해 익명성으로 화해버리는 혁명의 반역자들을 하나의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내게 관심을 끄는 것은 길로틴이 지니고 있던 정치적 성격보다 오히려 공개 처형이 보여주고 있었던 미학적 효과다.

죄를 속죄하게 하는 육체적 고통과 그를 통해 도달하게 되는 죽음이 극적으로 몇시간 내에 펼쳐저보여지는 무대로서의 공개처형은, 당연하게도 죄의 댓가에 대한 본보기로서의 교육적 효과를 노리고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길로틴을 통해 단 몇초만에 '끝나'버리는 공개처향은 본보기로서의 공개처향이라는 제도 자체의 유의성을 상실시키고, 급기야 비공개처형 제도를 불러일으키는 발단이 되었다.

육체에 대한 즉물적, 카니발적, 패티시즘적 집착은 유럽에서 육체에 대한 이들의 태도와 관련이 있다. 찟기고, 불태우고, 자르고, 벗기고, 뚫고, 동강내는 육체의 이미지가 이들에게는 결코 낯설지 않을 것이다. 다른 글(육체와 신성)에서도 지적했듯이, 유럽인들은 이미 이러한 육체적 패티시즘에 지극히 익숙해있었다.  

조선에서의 공개처형은 어떻게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 장면은 어떻게 연출되고,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그것은 어떤 종교적 혹은 전통적 믿음과 결부되어 있으며, 어떻게 그 믿음을 강화 혹은 변화시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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