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매체철학 -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철학의 정원 12
심혜련 지음 / 그린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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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론가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미덕을 지니고 있지만, 매체에 대한 사유에 있어 중요할 수 있는 몇몇 이론적 쟁점들에 대해서는 오해나 오독의 여지가 많은 책이다.  

일단 눈에 뜨인 두가지만 이야기해보자.

 

저자는 벤야민이 말하는 촉각적 수용을 '시각적 촉각성'으로 제한시킨다. 

 

엄격히 말해서 벤야민이 말하는 촉각성이란, 시각적 촉각성을 의미한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작품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어떤 대상을 시각적으로 지각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마치 촉각성과 유사한 지각의 체험을 준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67면)

 

하지만 이러한 이해는, 집합체의 신체의 신경감응 수단으로서 제2기술의 잠재성을, 벤야민이 사진, 영화와 같은 기술 매체들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혁명적 잠재성'을 '시각'으로 환원시켜 버리는, 잘못된 이해이다. 오히려 벤야민은 촉각적 수용을 분명히 '시각'과 대비시키고 있다.  

 

 

 

 

역사의 전환기에 인간의 지각기관에 부과되는 과제는 단순히 시각, 다시 말해 관조를 통해서는 전혀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과제는 촉각적 수용의 지도에 따라,

익숙해짐을 통해 극복될 것이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최성만 역, 발터 벤야민 선집 2, 91면. 번역 일부수정) 

 

 

 

 

 

이러한 방식의 오독은,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논의를 소개하는 대목에서도 발견된다. 저자는 키틀러에게서 축음기, 영화, 타자기가 인간의 두뇌가 기억하던 것들을 대신 기억하는 매체로 이해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과거를 망각하지 않기 위해서 기억하고 기록한다. 기록이 기억을 대신하고, 또 기록을 위해 매체가 사용되는 한, 매체와 기억은 긴밀한 관계를 맺게된다. 기록(기록매체)와 기억, 그리고 의식적 기록과 그 뒷면에 존재하는 무의식적 기록(무의식)의 상관관계, 바로 이것이 프리드리히 키틀러가 특히 주목하는 매체철학적 주제다...그가 주로 분석하는 매체는 축음기, 영화 그리고 타자기다. 이 세 개의 아날로그 매체들은 각기 기록하는 내용과 지각방식이 다르다. 축음기는 청각적 지각내용을, 영화는 시각적 지각내용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타자기는 사유의 내용을 기록한다. 그는 이 세 개의 기록매체들이 인간의 두뇌 대신 기억들을 저장하는 방식에 주목해서 분석한다." (153-154면)

 

키틀러의 매체이론이, 축음기, 영화, 타자기가 "인간의 두되대신 기억들을 저장하는 방식"에 대한 분석이라면, 사실 그의 매체론은 그 이전 다른 매체이론과 크게 다를바 없게된다. 키틀러 매체이론의 특징은, 기억 혹은 기록해야 할 '내용'이 선재하고, 그것을 어떤 매체 - 인간 두뇌? 축음기? 타자기 등 - 가 기록/기억하는가라는, 매체 이론의 패러다임 자체를 넘어서 있다. Claude Shannon 의 정보이론에서 출발하는 키틀러에게 우리가 듣고, 보는 모든 것들은 감각적 데이터 흐름이며, 그것은 특정한 채널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각각의 채널은 감각 데이터흐름을 서로 다르게 필터링하며, 그를 통해 의미있는 정보와  노이지를 구분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 전달의 문제인 것이다.

 

 

 

 

 

 

 

 "인간의 두뇌 대신 기억들을 저장하는 방식에 주목해서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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