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사상사에서 인류의 역사는 '상실'의 역사로 특징지워진다. 인간의 역사는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에 인간이 가지고 있었던 근원적인 소중한 무엇인가를 점점 잃어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공유하고 있는 구약은 이 상실의 역사로서의 인간의 역사에 대한 출발점을 이룬다. 신이 만들어준 에덴 동산 속에서 모든 자연과 인간을 위해 신이 창조해 준 동물들과 평화로운 공존을 해오던 아담과 이브는 금지된 과실을 따 먹음으로써 상실의 역사로서의 인간 역사를 출발시켰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힘든 노동과 출산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인간 역사의 출발은 동시에 에덴동산에서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들을 잃어버린 상실의 역사의 출발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자연과의 평화로운 공존과 신에게 배운 언어와 세계 사이의 원초적 통일성, 영원히 살 수 있었던 인간의 삶의 시간과 그를통한 세계 시간과의 조화를 잃어버렸다.

창조주가 마련해 준 낙원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 최초의 상실은 그러나, 이후 인류 역사가 마련해주는 상실의 첫 출발에 불과했다. 중세 신학교부들은 저 최초의 가장 결정적 상실 이후 인류의 역사가 얼마나 많은 얼마나 큰 상실의 역사에 다름아닌 가를 이야기한다. 이들에게 있어 사람들 사이의 지배와 불평등, 노예, 엄격한 처벌과 법률에 의한 지배는 원죄 이후 점점 상실해 가는 인간의 원초적 윤리성을 극복하기 위해 인류가 도입할 수 밖에 없는 필요악들이었다.[1] „이성을 가진 존재로 그리고 신을 닮게 창조된 존재로서 인간은 다만 이성이 없는 피조물들만을 지배해야 했다. 인간을 지배하는 인간이 아니라, 동물을 지배하는 인간이 그것이다... 우리가 분명히 보아야 할 것은 노예가 생겨나게 된 것은 (창조의 질서가 아니라) 인간의 죄에 의해서인 것이다. 노예의 첫번째 원인은 죄요, 그것이 인간을 강제를 통해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신의 나라, 19권 15절) 그 어떤 지배나 강제, 복종과 처벌도 필요없었던 인류는 저 최초의 죄로인해 점점 더 많은 것들을 상실해 갈 것이다.

물론 인간의 역사는 이러한 상실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저 상실에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잃어버리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인류의 역사는 얻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축적되는 더 많은 세계에 대한 '지식'과 그 지식에 근거하고 있는 문명을 이룩해왔고, 소위 과학적 지식에 근거해있는 이러한 문명은 점점 더 인류를 모든 강제와 부자유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다! 소위 역사의 '발전' 개념에 기초해 있던 계몽주의 초기 과학과 합리적 지식들에 대한 낙관적 믿음 속에서 사람들은 에덴동산 이후 우리가 상실했던 것을 보상해 줄만한 위안을 찾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정말 저 과학과 그를 통한 문명이 인간이 잃어버린 것을 보상해 줄 수 있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저 과학과 문명은 오히려 다른 한편 그나마 인간이 지니고 있었던 중요한 무엇인가를 그 댓가로 치르고서 얻어지는 것은 아닌가. 인류의 문명이 사실상 인간이 지니고 있었던 자연성, 조화로운 본능에 의거한 자유로운 삶을 억압하고, 훼손시킨 바탕 위에 서있다고 하는 루소의 문명론은 잊고 있었던 인간의 상실의 역사를 상기시켜준 결정적 한방이었다. 인간 문명의 역사란 결국 우리가 지니고 있었던, 인간의 행복의 원천이었던 자연과 조화로운 본능을 상실해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과학과 그것의 결과가 자연에 대한 파괴로, 그로인해 인간에까지 미치는 부작용으로, 심지어 인류 전체를 절멸시킬 수 있는 위협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저 '상실의 역사'는 더 큰 힘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자연은 인류의 생존까지를 위협할 정도로 점점 더 황폐해져가고, 사람들은 점점 더 큰 처벌과 폭력을 통해서만 규제될 수 있을 정도로 포악해져 가며,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배와 폭력은 더 가증스러워지며, 인간 사회는 어떤 낙관적 전망도 갖지 못할만큼 혼란스러워져 간다고 사람들은 믿기 시작했다.

마르크스가 인간에 의한 인간에 대한 지배, 인간의 탐욕에 의한 자연과 인간의 황폐화가 사실상 '자본주의'라고 하는 특정한 역사 단계의 산물이었다고 선언했을때, 그리하여 저 역사적 단계가 극복된다면 인간의 상실의 역사는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분석했을 때, 그건 인류 역사 전체를 상실의 역사로 비관하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커다란 위로였을 것이다. 무엇인가 무척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아니 지금 현재도 계속 잃어가고 있다는 위기감이 사람들을 절망과 비관을 향해 몰아대고 있을 때 맑스는 상실의 역사를 상대화시킴으로써 탈출구를 제시해주었다.

그러나, 맑스는 자본주의의 극복이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발전된 생산력에 의해 가능하다고 말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지양을 역사적 필연성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자기 모순을 범했다. 이 역사가,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가는 상실의 역사가 어떻게 거꾸로 그를 극복하게 할 원동력과 필연성을 제공한다는 말인가. 우리가 견디는 오늘의 이 고통과 상실이 이 고통과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필요한 전제 조건이란 말인가.  이 고통과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 이 고통과 상실을 감수해야 한다고? 오히려 자본주의의 극복은 우리가 그로부터 탈출하고 벗어나고자 하는 이 역사 자체의 극복으로 이해되었어야 했다. 맑스가 말했던 혁명은 역사 속에서 이 역사로부터 동력을 얻는 '역사 내에서의 혁명'이 아니라, 이 상실의 역사 자체를 끝장내는 '역사 외부에서의' 단절이었어야 했다.

인간이 이 역사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필연적인 역사적 존재임을 받아들인다면 저 상실의 역사에 대한 음울한 비관론은 피해갈 수 없다. 상실의 역사에 대한 이 비관적 정조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 변증법>에까지 이어진다. 우리가 이 역사 자체로부터 탈출할 수 없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이 '상실'을 견디는 다른 방법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유일한 방법은 아직 완전히 상실되어 버리지는 않은, 그러나 이 인간의 역사에 의해 멸종의 위기에 처해있는, 저 위태롭게 남아있는 원초적 자연성을 보존하는데 있다. 인간의 문명과 모든 것을 자신의 메마른 틀 속으로 흡수해 버리는 저 합리적 이성이라는 괴물, 자연과의 원초적 화해 대신에 가상의 유희만을 제공하는 문화산업들로 부터 소멸의 위협에 처해있는 미메시스를 구해내는 것, 여기에 오늘날 철학과 비판의 과제가 있다고 아도르노는 말한다. 베케트의 연극 속에서, 쉔베르크와 말러의 교향곡 속에 아직 남아있는, 저 채 상실되지 않은 미메시스가 이 상실의 역사를 견디게 해 주는 유일한 위안이다.

발터 벤야민의 역사철학은 <계몽 변증법>과 맑스주의의 그것 사이에 머물고 싶어한다. 벤야민은 맑스와 더불어 인류가 견뎌야만 하는 저 고통스러운 상실의 역사가 자본주의의 극복과 결부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는 이 극복이 '역사적 진보'라는 이름하에 이루어지는 '역사 속에서의 정치적 혁명'을 통해 이루어질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이 상실의 역사는 이 역사의 바깥에서 오는 메시아적 구원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파괴하고, 역사의 종말을 가져올 저 메시아는 그러나, 지금 이 역사로 부터 출현하지 않는다. 만일 그렇다면 그는 결국 이 상실의 역사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에피소드 일 뿐, 결코 이 역사 자체를 종결시키는 구원자가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실의 역사가, 어떤 식으로든 극복될 수 있고 극복되어야 한다고 믿는 벤야민은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비판이론가들에게 공통적인 비관적 정조를 물려받는다. 우리를 구원해 줄 메시아가 역사의 바깥에서, 비역사적으로 도래해야만 한다는 것은, 곧 지금 이 역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저 메시아가 도래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벤야민의 메시아가 맑스의 혁명과 결정적으로 구별되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1] Augustinus, Vom Gottesstatt, Buch 19, Ka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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