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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 프랑스 현대문학선 14 ㅣ 프랑스 현대문학선 14
앙리 베르그송 지음, 정연복 옮김 / 세계사 / 199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베르그송은 이 책에서 희극적인 것이 생명적인 것에서 기적인 것이 도출될 때 나온다는 놀라운 통찰을 보여준다. 늘 변화하는 세계에 대해 방심하고 습관적으로 익숙해진 덕택에 발생하게되는 행위들이 희극적이라는 것이다. 의자에 앉으려다 엉덩방아를 찧거나 상대의 말을 듣지않고 성급하게 말함으로써 실수하거나, 상대를 오인하여 희극적 상황이 연출되는 경우들이 이에 해당된다. 그런 점에서 베르그송은 희극적인 것은 삶과 생명적인 것의 긴장감에 대한 상실과 방심에서 기인하는 사회적 교정의 기제라고 이야기한다.
희극적인 장면을 보고 웃을수 있기 위한 중요한 전제는 대상에 대한 지적 태도다. 많은 희극적 장면은 우리가 그에 감정이입을 해 본다면 당사자에게 감정적 분노, 당혹,수치,곤란, 고통 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런 장면들에서 우리가 웃을 수 있는 것은 그에대해 우리가 전적으로 지적인, 무감정적이고 무감각한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인물이나 사건, 행동에 대해 무감각하고 무감정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인물이나 사건, 행위들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들의 내적 감정상태에서가 아니라, 다만 드러나진 기계적인 결과로만 고찰되며, 그것이 우리에게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이 정신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관심을 한 사람의 육체로 향하게 하는 사건은 무엇이나 다 희극적이다“ 비장한 연설 도중 재채기 하기, 장례식 도중 코풀기, 예배시간에 코골기 등. 신체에 대한 배려가 희극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비극 혹은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연극 등에서 주인공들의 탈 육체성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들은 뭘 마시지도, 먹지도, 화장실에 가지도 않는다. 정신적인 것이 문제가 되는 경우에 ‚육체와 육체성을 상기시키는 행위는 추구되는 정신성과 육체를 대비시킴으로써 웃음을 효과를 불러낸다.
동물원에서 살아있는 동물들의 움직임을 보는 데서 느껴지는 매력은 그 동물들의 완벽한 육체성에 있을 것이다. 그들의 육체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육체성을 보여주며, 하나하나의 움직임에서 저 완벽한 육체성이 발현된다. 그들의 육체는 그들의 생존, 곧 육체성의 보존이라는 목적에 완벽하게 기여하도록 이루어져 있다. 불필요한 혹은 잉여적인 움직임, 그저 재미삼아, 그냥, 심심해서 이루어지는 운동이 하나도 없는 저 완벽한 육체성의 합목적성의 발현에 우린 매료되는 것이다.
부족하지만 인간 역시 육체의 합목적성을 가지고 있다. 많은 경우 우리의 의지에 의해 규제되고 사회화되었지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스스로 육체성의 합목적성을 지향하는 많은 부분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재채기, 기침, 콧물, 발기, 코골기 등이 그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정신성의 한 가운데서 이러한 육체성이 폭로되는 장면이 우리에게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그를통해 우리 육체가 우리의 영혼과 정신을 ‚제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역시 생명적인 것 속에서 기계적인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못생긴 얼굴, 뚱뚱한 몸 등 희극배우 중에는 유달리 육체적 특징을 자신의 밑천으로 삼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못생긴 얼굴을 한 희극 배우는 그 스스로가 극중에서 ‚비장한 연설도중에 발생한 재채기‘의 역할을 한다. 멋지게 준비한 결혼식장에서 처음 드러난 신부의 못생기고 뚱뚱한 얼굴은 한순간 지금까지 진행된 모든 예식과 노력을 ‚육체성‘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함으로써 희극적인 순간을 창출하는 것이다.
타인의 목소리나 특정한 얼굴표정, 제스쳐, 몸동장을 흉내내는 행위가 웃음을 자아내는 것 역시 베르그송의 희극성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그렇게 흉내내어지는 목소리, 표정, 제스쳐, 몸동작은 그 인물에게서 특징적으로 고착된 것, 전형적인 것으로 포착된 것들이다. 그것들은 그 인물을 그의 목소리,표정,제스쳐, 동작 등의 고정된 것으로 드러내며 그 순간 그 인물은 특정한 목소리,제스쳐, 동작, 표정으로 환원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