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의 아이들 - 21세기문화총서 1
더글러스 러시코프 지음, 김성기 외 옮김 / 민음사 / 1997년 8월
평점 :
절판


영화나 드라마, 게임과 스포츠 나아가 아이들 장난감에서 '인류 진화의 새로운 방향'을 읽어내는 저자의 시각은, 그가 직접 그들을 체험해보지 않고는 얻기 힘든 것이었다. 저자는 수많은 영화와 TV 프로를 보고, 오락과 놀이들을 즐기며, 아이들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보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뿐 아니라, 실제로 이러한 아이들의 문화야말로 인류가 진화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며, 새로운 질서를 담고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겐 이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인류의 진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마치 주라기 시대의 공룡처럼 도태의 운명을 같이할 것이라고 믿는다.

여기서 알수있는 것은 저자는 인류가 계속 진화해 가고 있으며, 아이들의 문화속에 반영된 진화의 방향은 틀림없이 지금의 질서보다 '좋은'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그의 세계관의 문제에 시비를 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어쩌면 그가 탁월하게 분석해낸 구체적 문화들 지도 모르며, 그의 말대로 거기에 우리가 적응해나가야만 할 인류미래의 청사진이 숨겨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구체적인 하나의 문화현상을 보고 내릴 수 있는 평가의 방향은 그가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비종말론적 낙관론자인 그에겐 '진짜 나이키'와 '오리지날'을 찾으려는 것이 사이버화된 세계 속에서도 현실계와의 연관성을 잃지 않으려는 새로운 문화의 긍정성으로 보이지만, 새로운 진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같은 '비관주의자'에게 그것은 '물신화'의 변형된 현상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인류 역사상 세계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은 다양한 형태로 등장했었다. 여기에,세계가 계속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는 진화론과 이 세계엔 언젠가 종말이 도래할 것이라는 종말론이 더해져 복잡하게 조합을 이루는 세계관의 역사는 인류의 문화와 사상에 각인되어있다.(기독교적 세계관은 낙관적 종말론을 대표한다.)

인류는 발전적 진화의 산물이라는 진화론은 종말론을 설파하던 종교적 속박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켰다. 진화론은 종말에 대한 불안없이 마음껏 발전을 구가할 자유를 인간에게 던져주었고 계몽주의를 거쳐 비약적 '발전'을 이루는 세계관을 제공하였다. 이는 또한 진화에 적응한자와 그렇지 못한자를 구분하고, 적응한자가 살아남고 부적응자가 도태하는 서구적 발전관의 토대가 되었다. 진화한 서구인들은 미개한 종족들에게 인류 미래의 진화방향을 제시해주고 이끌 책임이 있었다! 거기에 이끌려오지 못한 자들에겐 도태라는 필연적 결과만이 남겨질 것이다.

다른 한편, 종말론은 이러한 발전의 신화에 대한 제동장치의 역할을 해왔다. 핵전쟁으로 인류전체가 절멸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인류의 생존을 위한 군축요구의 목소리를 낳게 했으며, 자연 생태계의 훼손이 가져올 종말의 예감이 생태계 보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종류의 종말론은 낙관적 진화론에 근거, 세계를 '활용'하려는 자들에게는 눈엣 가시같은 방해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들에겐 세계는 결코 멸망하지 않으며, 지금의 문제와 혼란들은 더 큰 차원의 진화의 하부질서에 다름아니라는 새로운 낙관적 진화론이 요구되었다.

내가 보기에 '가이아'와 '카오스' 이론은 이러한 요구에 부응해 생겨난 것이다. 그들은 생명체로서의 지구는 웬만한 오염이나 핵폭발 정도는 거뜬히 처리하는 자정능력을 통해 종말없는 미래를 보장할수 있으며, 혼란이란 더 큰 차원에서의 '질서'에 다름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가 강하게 믿고있는 비종말적 낙관론의 근거가 여기에 있다면 그가 말하는 '새로운 문화'는 어쩌면 모습을 바꾼 '발전의 신화'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과 발전에의 신화가 어떻게 다정했던 한 공동체를 파괴시키는가를 우린 <오래된 미래>에 등장하는 마을의 사례에서 본다. 우리에게 초가집을 없애고 시멘트 집을 만들게 했던 발전이 그를 통해 얻을 것과 잃을 것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면, 그건 '발전된' 서구적 질서에 대한 맹목적 추종에 다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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