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중그네 ㅣ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평점 :
지를까 말까?
책을 사려고 한참 망설였다.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약 1만원되는 책의 정가가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 같이 재밌다는 추천평도 마음을 돌려 책을 읽게 만들지는 못했다. 정작 책을 읽게 된 것은 내 강박관념에 대한 반항이었다. 어렵고 진지한 책이 주는 포스에 찌달려 있으면서도 벗어나길 두려워 했던 내 자신에 대한 반항! 그러나 그 버릇이 어딜가겠는가...보관함-장바구니-구매결정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했으니...결정적으로 나를 끌어당겨 준 또 하나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멋진 하루>라는 일본 작가 책의 심사위원이 쓴 심사평 때문이었다. <공중그네>처럼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개성적인 인물들이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참고적으로 살펴보았는데, "소설을 읽으면서 문학상의 심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말은 마음을 움직이기 충분했다. 그리고 몇 주 전에 산 현대문학상 소설집을 아주 재미없게 읽고서 내팽겨쳐 버렸는데, 혹시나 해서 엄마에게 읽어 보라고 했더니 "제목은 재밌는데 너무 재미가 없어서 한 장을 읽기가 싫다"며 돌려 줬던 것도 한 몫 했다.(참고로 엄마는 김영하의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나 프란체스카 같은 드라마 스타일을 좋아한다.) 마지막으로 읽었던 소설이 레이먼드 커버의 촌설살인 같은 하드보일드 작품이라 그런지 마음은 냉랭하기 그지 없었기에 섣불리 책을 읽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책을 샀다
유쾌한 일본 소설의 인물들은 만화 캐릭터의 느낌을 주는데, 나쁘지만은 않다고 본다. 인물의 독특한 면은 곧 이야기의 개성으로 이어지며, 같은 이야기라도 누가 이야기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기 등장하는 이마부 종합병원장의 아들이자 선택 받은 특권 계층인 이마부 정신과 박사? 역시 그런 인물 중 하나 이다. 소설은 이마부에게 어쩌다가 치료받게 된 야쿠자 중간 보스, 공중 그네 곡예사, 대학 동기인 정신과 의사, 3루수 프로야구 선수, 여자 소설가의 5개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각의 인물은 직업과 관련된 정신적인 강박증세를 보인다. 그러나 소설은 정신적인 문제만을 다루지 않고 은근슬적 인물들의 증세와 엮어진 현대 사회의 증세도 함께 진단한다. 문제를 발생시키게 한 요인은 직업적인 것인지 몰라도 그것을 병적인 증상으로 키운 주변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눈치를 봐야하거나 불편하기만 한 가족과 집, 자기 일이 아니라서 섣불리 뭐라고 말해주지 않는 주변 사람들은 "빨대로 숨을 쉬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충분하다. 대놓고 비타민 주사만 남발하는 이마부 역시 겉으로 보기엔 너무나도 특이한 정신 세계에 약간의 조증이 가미된 환자에 불과하다. 다만, 다른 것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즐거워 지기 위해 솔직하게 행동한다는 점이다. 경제적 사회적 특권층이라는 점이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계층들 역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강요에 떠밀려 살게 되고, 주변의 질투와 시기를 받으며 쓸쓸하게 혼자 라는 점에서는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더 쉽게 정신병에 걸릴 수 있지 않을까? 이마부를 두둔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등장 인물들도 사회적으로 안정적이고 꽤 인정받고 있는 지위에 있다. 그러나 그것을 지키 위해 타인을 시기하고 의심하는 동안 도리어 쌓아온 것들을 다 잃게 된다. 타인에 대한 지나친 의식과 경계심이, 결국 자기 자신의 마음이 자신을 병들게 한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것이고 서로의 도움이 없다면 살아나가기 힘들지 않겠냐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주의가 극도로 일반화된 일본 사회에 말이다.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울어라. 말하고 싶을 때 외쳐라! 이마부의 행동은 남의 눈치를 보면서 걱정 속에 맞추어 살기 보다는 적당한 잔머리와 적당한 무대포 정신으로 나라는 인간을 납득 시키면서 살아라고 조언한다. 세상 속에 자신을 맞추기만 하지말고 적당히 세상이 자신에게 맞추어지게도 하라는 것이다.
잊어라 모두 잊어라
과도한 의식은 좋지 않다. 결국에는 세상이 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길들여 나가는 것이다. 웃으면서 뾰족한 주사기로 들이대는 이마부. 조금 더 제멋대로라도 좋지 않은가. 세상은 그렇게 쫀쫀하지만은 않고 대놓고 말할 수 없이 괴상한 나의 행동이 덮혀지는 운, 운수 좋은 날들이 없으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우울한 당신에게 같이 미쳐보자고 권유하는 의사 이마부를 만나보라, 자신을 잊고 웃을 수 있다.
깔깔깔. 킥킥킥. 눈가에 눈물을 머금고.
들춰보기
-어릴 때는 전학에 전학이 이어지는 생활이었다. 새로운 친구가 생겨도 예외 없이 2개월 만에 이별해야 했다. 슬픔을 견디는게 싫어서 그때부터 벽을 쌓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사귀는 일을 회피하게 된 것이다.
방어 본능도 강했다. 서커스단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상하게 켜다보고, 때로는 싸움을 걸어 오기도 했다. 같은 단원 아이가 괴롭힘을 당하면 앞장서서 앙갚음을 하러 갔다. 동료의식이 강해진 반면, 외부에 대한 경계심은 더욱 커졌다.
아마도 자신은 닫혀 있을 것이다. 실은 사람을 무척이나 그리워하면서도 가까이 다가서려 하지 않는다. 친구가 늘어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순식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말의 힘을 새삼 깨달았다. 왜 조금 더 빨리 대화를 나눠보지 않았을까. 초등학생 시절로 되돌아가 새 친구도 다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다쓰로는 생각에 잠겼다. 분명히 학생 시절에는 여러사람 앞에서 떠들어대길 좋아했다. 장난도 잘 쳤다. 대학 창립자 동상에 훈도시를 채운 것은 거칠고 품위 없는 행동을 하며 으스대던 젊은 시절의 자기 모습이었다.
-그런 행동을 1년 동안 계속해봐. 그럼 주위에서도 포기해. 성격이란 건 기득권이야. 저놈은 어쩔 수 없다고 손들게 만들면 이기는 거지.
-"하하하. 슬슬 알 것 같다. 이케짱, 그러니까 내키는 대로 제멋대로 굴고 싶단 말이지. 주위 사람들에게 빈축을 살 만큼."
-"이봐, 체면 때문에 절절메고 사는 거 힘들지 않아? 꾸밈없이 소탈하게 사는 게 훨씬 편하잖아?"
-"좋은 물건을 만들면 팔린다는 말, 거짓말이란 거 진작부터 알고 있는데도 현실에서 맞닥뜨리면 괴롭지."
-"대신 작품은 남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긴 한데, 그것도 틀린 말이야. 팔린 물건이 아니면 남지도 않아."
-분명 괜찮을 것이다. 그런 기분이 든다. 무너져버릴 것 같은 순간은 앞으로 여러 번 겪을 것이다. 그럴 마다 주위 사람들이나 사물로부터 용기를 얻으면 된다. 모두들 그렇게 힘을 내고 살아간다. 어제 사쿠라가 한 말이 큰 격려가 되었다. 반성도 했다. 자신의 작은 그릇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심각한 일들에 비하면 작가의 고민 따위는 모래알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사라진대도 상관없다. 바람에 날려가도 괜찮다. 그때그때 한순간만이라도 반짝일 수만 있다면.
-인간의 보물은 말이다. 한순간에 사람을 다시 일으켜주는 게 말이다. 그런 말을 다루는 일을 하는 자신이 자랑스럽다. 신에게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