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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러멜 팝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요시다 슈이치의 전작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소설에서 <퍼레이드>, <일요일들>, <거짓말의 거짓말>을 떠올리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것이다. <랜드마크>는 전혀 취향에 맞지 않아 덮어 버렸고 <거짓말의 거짓말>에서는 이야기 구조가 너무 헐겁고 엉성한 기분이 느껴졌다면 이번 소설은 그런 걱정은 제쳐두고 읽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형식상으로는 <퍼레이드>와 같이 각각의 인물별로 이야기를 진행해나가는 구조인데 그 유기성이 한층 성숙해졌다고 해야하나? 아무래도 가족의 이야기가 중심 라인이다보니 훨씬 매끄럽게 써진 느낌이다. 제목인 '캐러멜 팝콘'처럼 처음에는 통통 튀는 젊은 연애담에 끌려 책장을 덤기다 보면 어느새 책장을 덮을 때는 가족과 연인, 친구 사이에 서로의 눈치하에 협의되어 묵인해버린 일들이 떠오르게 될것이다. 그러나 딱히 속았다던가 썩 기분이 좋지 않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것이 요시다 슈이치라는 작가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 같다. 독자의 입장에서 읽게되면 자신의 치부가 까발려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마련인 부분들을 판단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끔 만들어 놓았다.
10여명 남짓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나의 이야기 속에 얽혀 있지만 그것은 4계절 각각의 쳅터로 나누어져 또 개별의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소설의 구조가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데 요시다 슈이치는 이런 구성에 있어서는 참으로 탁월한 것 같다. 모두가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나 또한 개인일 수 밖에 없다. 타인들이 말하는 행복도 내가 원하는 싶은 행복도 모두다 갖고 싶다. 선택하기 싫다. 그러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한 마리도 못잡게 되는 일이 허다하지 않는가. 그걸 알면서도 마음 먹은대로 안되서 답답하기만 인생인데 또 하루는 가고 내일은 온다. 그러다 그런 고민마저 잊게 된다. 이런 인물들의 고민을 좀 더 재밌게 읽고자 한다면 소설의 중반부인 '여름'까지 읽는 뒤, 원하는 인물 쳅터만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런 다음 다른 인물들의 쳅터도 같은 방법으로 읽어보면 퍼즐을 끼우는 것처럼 추리하면서 읽어볼 수 있다. 왜 이런 반응을? 왜 이런 말을? 하면서 말이다. 요시다 슈이치의 섬세한 묘사가 중반 이후로 가면 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선택한 것도 있고, 이렇게 읽은 다음 다시 '가을'부터 읽어나가면 같은 소설이라도 읽는 방법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기때문에 좀 더 적극적인 독서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역시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처럼 <퍼레이드>의 거칠지만 무모한 젊음이 그립다. 날이 갈수록 매끄럽고 세련되어지는 소설의 기술이라는 달콤함을 걷어내면 '세상살이 다 이런거야?' '세상살이 다 이런거야.' 라는 식상한 뒷맛이 느껴져 영 개운치 않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