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좋을 그림 - 여행을 기억하는 만년필 스케치
정은우 글.그림 / 북로그컴퍼니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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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다 보면 종종 저자의 삶이 부러워질 때가 있다. 이미 성공 궤도에 올라서 돈 걱정 없이 살면서 '이렇게 살면 성공할 수 있어요.'이라고 말하는 저자가 부러울 때도 있지만, 그 저자보다 더 부러운 삶이 있다. 바로, 평범하게 살면서도 자신의 일을 즐기면서 사는 사람이다.


 성공 궤도에 올라선 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겠지만, 그 사람들은 대체로 악착같이 일을 하면서 최대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많다. 다른 사람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높은 자리에서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이다.


 그러나 높은 자리에서 차기 리더로 삶을 살지는 않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저자도 있다. 오늘 읽은 <아무래도 좋을 그림>의 저자 정은우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정은우 씨는 나와 마찬가지로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직장생활을 하는 저자였다.


 그의 책 <아무래도 좋을 그림>은 그가 여행을 다니면서 기록한 만년필 스케치와 기억을 옮긴 책이었다. 그동안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담은 여행 에세이는 읽어보았지만, 손수 만년필로 그림을 그려 풍경을 담은 여행 에세이는 이번 <아무래도 좋을 그림>이 처음이었다.


 단순히 같은 블로거로서 어떤 이야기를 적었는지 궁금하고, 내가 다니지 못한 곳의 여행기를 어떤 식으로 적었는지 궁금해 읽었지만, 책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마치 오늘 우리가 지금 고개를 들면 볼 수 있는 파란 가을 하늘 아래에서 여유를 찾고 싶을 때, 여유를 주는 책이라는 느낌이었다.


견주는 총명하다거나 빠르고 힘이 세다는 이유로 어떤 개만 총애하지 않는다. 견주의 역할은 각각의 개가 가진 역량을 파악하고 잠재력을 끌어내는 데 있기 때문에 특정 개를 편애하지 않는 것이다. 견주가 그들 한 마리의 이름을 불러 주고 안아주느라 하루를 다 보냈던 것이 그제야 이해가 갔다. 개들의 역량을 파악하고 조화를 이뤄내는 것이 견주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견주는 그래야만 썰매개들이 인간에게 잘 보이려는 욕심이 아닌, 스스로 잘하는 것을 잘하기 위해 달릴 수 있다고 했다.

여덞 마리의 썰매개 중 리더의 자리를 두고 다투는 녀석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뒤에서 잔꾀를 부리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각자의 능력에 맞게 땀을 흘리고 '달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행복해한다. 개들조차 할 수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아는 것이다.


'내일 뛰지 않으려면 오늘 걸어야 한다'는 말을 혐오한다. 인간은 그런 말로 몰아붙이지 않아도 어차피 하루치 이상의 노력은 할 수 없는 존재다. 어제의 나를 끌어 쓰거나 내일의 나를 당겨 쓸 수 없다. 젊었을 때 있는 고생 없는 고생 다한 것을 무슨 대단한 미담이라도 되는 양, 그렇게 살지 않는 자들을 인생에 큰 죄라도 짓고 있는 것처럼 욕하지만 못 뛰면 못 뛰는 대로 잘 뛰면 잘 뒤는 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게 보통이고 정상이다. 이걸 알지 못하면 우리 삶은 달리고 싶어서 달릴 뿐인 저 썰매개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다. (p232)


 윗글은 책에서 내가 포스트잇을 붙인 부분 중 하나이다. 만년필의 스케치를 통해 볼 수 있는 깔끔하면서도 투박한 느낌의 그림과 함께 읽는 작은 글은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평범한 여행기가 아니라 주변의 사소한 일상을, 여행지에서 목격한 일상 속의 생각을 적은 책이라 더 그랬던 것 같다.


 언젠가 나도 이런 책, 아니, 내 이야기를 편하게 담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티스토리 블로그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를 운영하면서 항상 내 생각과 주장을 담고 있지만, 상당히 고집이 심해서 편안하게 모두와 소통할 수 있는 글이 되지 못했다. 과연 나는 <아무래도 좋을 그림> 같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이 가을 하늘 아래에서 나는 한번 나에게 물어본다. '나는 지금 내가 보는 이 사소한 일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여기서 다시 시작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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